플라톤의 고전 <향연>(문학동네, 2006)이 새롭게 번역돼 나왔다.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만화가 조안 스파르의 그림과 낙서가 보태져 있다는 것. 그러니까 좀 특이한 '일러스트레이트' 버전의 <향연>이고 그런 만큼 가장 접근하기 쉬운 '플라톤'이 될 듯하다. 게다가 재기발랄한 우리말로 옮겨져 있다고도 하니까 '고전 멀미증'을 가진 독자들에게 희소식이 될 듯하다. 물론 고전으로의 여행에 흥미를 느끼는 독자에 한에서. 참고로, 자세한 리뷰기사를 하나 옮겨놓는다.  

문화일보(06. 12. 08) 그림-낙서와 만난 향연, 플라톤이 술∼술 읽히네

고대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의 ‘향연’은 그의 대화편 중 가장 아름다운 문체와 짜임새 있는 구성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러나 고전 중의 고전이라고 할 수 있는 ‘향연’을 처음부터 끝까지 숙독한 이가 과연 얼마나 될까. 고전이란 것이 항용 그렇듯이 ‘누구나 다 좋다고 이야기하면서도 아무도 읽지 않는’ 책이라면 ‘향연’ 역시 그런 대접을 받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지만 이 책은 전혀 다르다. 우리가 고전에 대해 일반적으로 갖고 있는 선입견들, 즉 딱딱하고 지루하고 재미없을 것이라는 편견을 한순간에 날려버린다. 그럼, 기존의 ‘향연’과는 텍스트 자체가 다른가. 그렇지도 않다. 플라톤의 ‘향연’을 우리말로 옮긴 것은 분명하다. 그런데 어떻게 손에 잡는 즉시 놓기 힘들 정도로 읽는 이를 빨아들이는 것일까.

그 답은, 조안 스파르가 거의 매 장마다 그려넣은 ‘그림과 낙서’ 때문이다. 유럽 만화계에서 뛰어난 아티스트로 주목 받는 조안 스파르는 프랑스의 니스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한 후 에콜데보자르(국립고등미술학교)에서 미술을 공부한 인물. 그의 기발한 독법(讀法)이 담긴 그림과 낙서가 2500여년 전의 ‘향연’을 고색창연한 고전에서 생기발랄한 ‘오늘의 책’으로 되살려놓았다.


‘향연’은 소크라테스를 비롯한 당시 그리스 사회의 유명인사들이 술잔을 기울이면서 각자 돌아가며 ‘사랑의 신 에로스’를 찬양하는 내용으로 이뤄져 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전설 같은 이야기, 즉 원래 인간은 네 개의 손과 네 개의 발, 하나의 머리에 두 개의 얼굴을 가지고 있었는데 제우스의 번갯불에 몸이 두 동강 나서 지금과 같은 신체를 갖게 됐다는 이야기도 ‘향연’에 나오는 것이다.

‘향연’의 등장인물 중 한 명인 아리스토파네스는 “따라서 인간은 끊임없이 자신의 ‘반쪽’을 찾아 헤매게 됐는데 그 욕망이 바로 인간의 사랑”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이 얼마나 웃기는 이야기인가. 하지만 ‘향연’에선 너무나 진지하게 이에 대한 논증을 거듭 늘어놓는다. 그 중 하나는 ‘원래 남성과 남성이 한 몸이었다가 반으로 나뉜 남성은 남성을 좋아할 수밖에 없다’는 대목이다. 고대 그리스 사회에서 성인 남성과 소년의 관계가 단순한 사제지간 이상이었으며, 성적인 면모도 내포하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심지어 ‘향연’의 핵심인 소크라테스의 연설에서는 이같은 관계를 통해서만 진리에 이를 수 있다고까지 이야기한다. 아마도 ‘향연’처럼 동성애에 대해 편견 없이 다루는 고전도 없을 것이다.

‘향연’은 이어 기술의 원리로서의 사랑, 진리에 이르는 길로서의 사랑, 쾌락으로서의 사랑, 사랑 받는 이의 사랑, 사랑을 주는 이의 사랑에 대해 각 등장인물들이 장황하리만큼 자신의 생각을 늘어놓는다. 그리고 그 옆에는 예외없이 조안 스파르의 기발한 그림과 낙서가 따라붙는다. 조안 스파르는 플라톤 철학에 대한 어떠한 이론에도 의지하지 않고, 오로지 자신의 시각으로서만 텍스트를 이해한다. 그는 등장인물들을 벌거벗은 채 엉켜 있는 동성애자로 그리는 데 전혀 주저함이 없다. 또 소크라테스를 능수능란한 언변으로 젊은이들을 유혹하는 ‘의뭉스러운 늙은이’로 묘사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같은 해석에 단순히 비아냥만 깔려 있는 게 아니다. 그의 기발하면서도 솔직한 발상은, ‘향연’의 등장인물들을 마치 우리가 바로 어젯밤 술자리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눴던 인물들인 것처럼 생생하게 되살려 놓고 있다. 또 하나, 이 책의 흡인력을 뒷받침하고 있는 것은 역자의 탁월한 번역이다. ‘향연’의 원 텍스트뿐 아니라 조안 스파르의 그림에 붙은 ‘낙서’까지 얼마나 재기발랄하게 우리말로 옮겨 놓았는지 절로 감탄하게 된다. 한마디로, 이 책에서 독자들은 딱딱하고 지루한 철학이 아닌, 부담없이 즐기고 자유롭게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철학의 가능성을 엿볼 수 있을 것이다.(김영번 기자)

06. 12. 10.

 

 

 

 

P.S. 그간에 가장 많이 읽히던 <향연>은 박희영 역의 <향연>(문학과지성사, 2003)이다. 문고본에다가 최신 번역이어서 손에 들기 가장 좋다. 한데, 부분적으로는 번역이 정확하지 않다는 지적도 감안해야겠다(일반 독자에게는 크게 대수롭지 않겠지만). 더불어 만화책 <플라톤>(김영사, 2001)이나 <30분에 읽는 플라톤>(랜덤하우스코리아, 2004) 등도 부담없는 입문서. 부담을 원한다면, 남경희 교수의 <플라톤>(아카넷, 2006)을 손에 들어도 좋겠다.

새 <향연>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플라톤, 조안 스파르를 만나다'가 될 텐데, 만화를 잘 안 읽는 탓에 생소한 이름이지만 스파르의 책들은 국내에 다수 소개돼 있다.

 

 

 

 

그 중에서도 나의 눈길을 끄는 것은 <금붕어, 죽음을 택하다>(현실문화연구, 2002). 왠지 '철학적'이지 않은가? 품절된 걸로 나오는데, 다시 판을 찍으면 좋겠다. 22쪽 1000원짜리 책으로 '철학'을 떠올려볼 수 있는 물건은 흔하지 않을 것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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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06-12-10 15:51   좋아요 0 | URL
이번에 <랍비의 고양이> 시리즈를 냈어요.
아랍과 유대, 종교와 현실, 철학과 공존이라는 주제입니다.
무거운 주제인데 술렁술렁 처리한 유머가 돋보이는 만홥니다.
플라톤도 왠지 그럴것 같은 분위기에요
<금붕어, 죽음을 택하다>는 제목이 정말 비장합니다.
아, 요거 어디가서 구할까나..궁리궁리

로쟈 2006-12-10 16:08   좋아요 0 | URL
예, 책이 많더군요. 아동용이면 아이한테도 사주겠는데...

자꾸때리다 2006-12-10 18:25   좋아요 0 | URL
박희영 교수의 향연 번역은 모 전공자의 말에 의하면 상당히 오역이 많다고 해서 안 읽고 있었는데 차라리 이걸 읽어볼까나여?

로쟈 2006-12-10 18:45   좋아요 0 | URL
'상당히'까지는 아닌 거 같고 아무튼 전공자들에겐 좀 불만스럽다고 들었습니다. 이번 번역은 불역본으로부터의 중역일 텐데, 박희영본보다 정확하다면 아니러니컬할 일이고, 다만 가독성은 더 나을 수도 있지 않을까란 짐작입니다...

클리오 2006-12-10 20:42   좋아요 0 | URL
향연,을 꼭 한번 읽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이 책을 읽을까요??^^

로쟈 2006-12-10 20:50   좋아요 0 | URL
밑져야 본전 아닐까요? 그림만 봐도 되니까...

비로그인 2006-12-10 21:51   좋아요 0 | URL
이 책 보고 놀랐어요. 그림도 웃기지만, 그림에 담긴 대화들이 너무 깜찍해요..;;

로쟈 2006-12-10 22:10   좋아요 0 | URL
머, 말 그대로 먹고 즐기는 '잔치'니까요.

Poissondavril 2006-12-11 13:32   좋아요 0 | URL
평소 로쟈 님 리뷰와 페이퍼를 열독하는 알라디너이자... 이 책의 번역자입니다. 조안 스파르가 서문에서 밝히듯 "철학을 평생 직업을 삼고자 하는 이에게 권할 생각은 추호도 없음"이고요. 그래도 한 번 보실 만은 할 겁니다. 참고로, 조안 스파르와 낙서와 그림을 제외한 본문 번역대본은 Les Belles Lettres 사의 (프랑스에서는 가장 교과서적으로 통하는) 것을 사용했는데 그 텍스트 자체가 그리스어 원본판과 약간 (편집상의) 차이가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도 <향연>을 연구 텍스트로 쓰시는 분에게는 추천할 수 없지만 불어판 텍스트 자체는 굉장히 명료하고 잘 읽혀서 배움이 일천한 저로서는 참으로 다행(?)이었어요. 그리고 번역 과정에서 최명관본과 박희영본 두 가지 모두 참고했는데 약간 애매한 부분들이 있기도 했고(그런 부분은 전부 다 불역본에 기준을 두었습니다. 어쨌든 저는 번역 대본에 충실해야 할 책임이 있으니까요) 쉽게 해도 될 말을 어렵게 한다는 인상도 받았습니다.
한 가지 고백하자면, 이 책을 번역하면서 제일 힘든 점은 조안 스파르의 손글씨를 알아보는 것이었어요! (번역을 하는 건지 금석학을 하는 건지 모르겠더라고요...)

로쟈 2006-12-11 21:54   좋아요 0 | URL
이크, 역자께서 직접 찾아주시니 영광입니다(어디 험담한 건 없다 두리번^^:). 저도 오늘 교보에 갔다가 책을 훑어봤는데 손글씨 때문에 '고생'하셨다니까 고개를 끄덕이게 되네요. 제가 이미지들을 찾다 보니까 조안 스파르가 아예 이런 시리즈를 쓰려는 건지 두어 권만 맡아서 쓴 건지 궁금하더군요. <캉디드>도 썼길래요. 혹 아시나요?^^

Poissondavril 2006-12-12 10:36   좋아요 0 | URL
<향연>은 '조안 스파르의 철학 서가'라는 시리즈의 맨 첫 번째 책입니다. 몇 권이나 더 내려는지는 모르겠지만 아직 <향연>과 <캉디드>밖에 나오지 않은 것으로 압니다.

로쟈 2006-12-12 13:05   좋아요 0 | URL
역시나 그렇군요. 아직 젊은 만화가이던데, 야심만만입니다.^^
 

오전에 생각난 김에 숀 호머의 <라캉> 원서를 잠시 찾아보다가 손에 집어든 책은 폴 패튼의 <들뢰즈와 정치(Deleuze and the political)>(2000)이다. 작년인가 ''들뢰즈와 정치'를 읽기 위한 메모'까지 페이퍼로 써둔 적이 있었는데, 아직까지 읽은 거라고는 그때 읽은 서론이 전부이다. 그 서론을 다시 한번 훑어보았다. 한데, 나의 관심사인 '들뢰즈와 경험론'이란 주제를 이전에 두어 차례 다루면서 이 서론의 마지막 대목은 빠뜨렸던 듯하다(확인해보니까 적어놓지 않았다). 그걸 보충해서 채워넣는다. 그러니까 이 글은 '들뢰즈와 경험론'에 대한 간단한 보유이기도 하다.

 

 

 

 

따라 읽어야 하는 대목은 번역본 <들뢰즈와 정치>(태학사, 2005)의 서론 36-7쪽이다. 들뢰즈의 다양성(multiplicity; 요즘은 '다양체'라고 더 많이 번역되는 듯하다) 철학이 정치철학과 어떻게 접속되는지를 이야기하는 대목이다('들뢰즈와 경험론'이나 '들뢰즈와 경험론의 비밀' 같은 페이퍼를 참조).

"들뢰즈가 자신의 다양성의 철학에 논증을 제공하려고 시도하는 방식들 중 하나는 동사 '이다(to be)'보다 접속사 '그리고(and)'에 대한 우선권을 주장하는 것이다.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다음과 같다. 즉 그는 부분적으로는 철학적 전통을 전복시키려고 하고, 관계성의 연결적 역능을 그것의 속성화(attribution)에로의 종속으로부터 해방시키고자 한다."

여기서 '역능'은 물론 'power'의 번역어이며 내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 단어이다. (이 단어의 유래인) 스피노자 전공자들이 새롭게 제안하는 건 '역량'이다. 다시 말하면, 들뢰즈는 '계사' 대신에 '접속사'의 우선성을 주장하면서 암묵적으로 '계사존재론'의 형식을 취해온 서구 형이상학에 딴지를 걸고 다른 한편으로 ('접속사'라는 언어적 표현형식에 의해 표시되는) 관계성의 역량을 속성/속사에 대한 종속에서 해방시키고자 한다(속성/속사는 'X is Y'라고 할 때 X를 기술하는 Y를 가리킨다. 이때 X와 Y를 연결시켜주는 것, 그럼으로써 X를 특정한 속성 Y에 귀속시켜주는 것이 계사 is이다. 들뢰즈는 이 사태에 대한 기술을 'X and Y'로 전환시키고자 한다).

그리고 이어지는 건 내가 예전에 강조하면서 인용한 바 있는 <디알로그>의 문장이다. "'이다(IS)'를 사유하거나 '이다에 대해(for IS)' 사유하는 것 대신에 '그리고'와 함께(with 'AND') 사유하라. 경험론은 결코 또 다른 신비를 갖고 있지 않다."(*'신비'는 'secret'의 번역이다.)

이에 대한 패튼의 주석: "모든 관계들에 내재하는 비규정적인 접속사로서, '그리고'는 상호 관계하게 된 어떤 두 사물들 사이(in-between)에 있는 것을 상징하게 된다. 새로운 '생성들', 사건들 또는 존재들이 항상 이런 '사이(in-between)'에서 발생한다는 것은 들뢰즈와 가타리의 정치철학의 공리가 된다. 그들의 견해에서 '그리고'는 항상 두 요소들 간의 경계선이고, 그 자체로서 사물들이 발생하고 변화들이 발생하게 되는 잠재적인 탈주노선이다. 이런 관점에 따르면 이 책이 '들뢰즈와 정치'라고 불리는 것은 전적으로 온당한 것이다."

'비규정적인 접속사(indeterminate conjunction)'란 '부정 접속사'란 뜻도 되겠는데, 이것은 부정 대명사와 마친가지로 무엇을 특징하거나 한정하지 않는다(들리즈가 좋아하는 것은 품사들은 이러한 부정대명사나 비인칭대명사이다). A and B라고 할 때 'and' 가 A나 B에 대해서 보태거나 한정해주는 게 없다는 얘기이다. 'and'는 그것들 '사이'를 대신할 뿐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모든 새로운 사건들이란 항상 그 '사이'에서 출현한다는 것. 마치 사이먼 앤 가펑클의 화음처럼. '험한 세상의 다리'가 되어주는 것이 바로 AND이다(http://www.youtube.com/watch?v=XGbnOmOzW-o).

반복하자면, 이것이 들뢰즈와 가타리의 정치철학의 공리이다. 거기엔 아무런 비밀도 들어 있지 않다. 따라서, "이 책이 '들뢰즈와 정치'라고 불리는 것은 전적으로 온당한 것이다"라고 할 때 '들뢰즈와 정치(Deleuze and the political)'에서 and가 강조되지 않은 것은 온당하지 않다. 패튼의 책은 '들뢰즈와 정치', 혹은 '들뢰즈 그리고 정치'에 관한 것이기 때문이다...

06. 12.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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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데일리에 들어갔다가 '알라딘서점 조유식 대표'란 타이틀이 눈에 띄어 클릭해보았다. '명사 추천도서' 연재의 한 꼭지인데, '명사'가 조유식 대표이고, 그의 '추천도서'가 <바람의 그림자>(문학과지성사, 2005)이다(이 소설은 소설가 후배도 매우 재미있게 읽었다고 했다). 알라딘서재를 무료로 임대해주고 계신 '대표(업자)'님에게 사의를 표한다는 의미에서 기사를 옮겨온다. 알라딘의 직원들은 쑥쓰러워서 못할 테니까.

북데일리(06. 12. 08) 조유식

인터넷서점 알라딘의 조유식 대표는 자사 플래티넘 회원이다. 그는 모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홍보용으로 출판사에서 보내오는 책은 서평용으로 직원들이 읽고, 자신은 책을 구입해서 본다”고 밝힌 바 있다. 책 구입비로 보통 월 15만원 정도를 쓴단다(*오타가 아닌가 해서 한참 들여다봤다. 150만원이 아니라 15만원이라고? 나도 '플래티넘 회원'이긴 한데, 그래도 나보다 구입비가 적다는 것은 의외이다. '직원'에게는 90% 할인해준다면 모를까).

베르나르 올리비에의 <나는 걷는다>(효형출판. 2003)는 최근 조 대표의 도서 구입 목록에 이름을 올린 책. 30여 년간 프랑스의 주요 일간지와 방송국에서 정치, 경제부 기자로 일한 저자가 터키 이스탄불에서 중국 시안까지, 1099일간에 걸친 대장정을 기록하고 있다. 특기할 점은 이 여행이 모두 도보(徒步)로 이루어졌다는 사실. 올리비에는 1년에 3개월씩, 네 번에 걸쳐 무려 12,000km를 걸었다고 한다(*이 책이 '시리즈'인 줄은 이번에 알았다. 얼마나 걸었으면!).

조 대표는 최근 알라딘을 통해, 웹 2.0에 기반을 둔 블로그 수익모델 ‘생스 투 블로거(TTB)’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TTB는 누리꾼들이 자신의 블로그에 쓴 책, 음반, DVD 리뷰가 알라딘에도 게시되고, 고객이 그 리뷰를 읽고 상품을 사면 블로거에게 판매가의 3%, 구매자에게 1%의 수익을 지급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그러니까 알라딘 서재가 무료라고는 하지만, 외부 블로거에 비해 TTB의 2%가 덜 배분되는 걸로 보아 나름대로 그에 대한 '대가'는 지불하고 있는 셈이겠다).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에 발맞춰, 서점도 진화된 운영을 하고 있지만 정작 조 대표의 마음을 움직이는 건 시대를 초월한 고전들인 듯하다. 그는 가장 좋아하는 작가로 독일의 대문호 헤르만 헤세를, 가장 감명 깊게 읽은 책으로 도스토예프스키의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을 꼽았다(*음, 이건 마음에 든다).

카를로스 루이스 사폰의 <바람의 그림자>(문학과지성사. 2005)는 조 대표가 독자들에게 권하는 책. 배경은 스페인 내전 직후의 바르셀로나. 주인공 소년이 우연히 갖게 된 한 권의 책과 그 작가에 의문을 품기 시작하면서 겪게 되는 사랑과 증오, 복수와 배신, 부재와 상실 등을 이야기하는 장편소설이다. 책은 2002년 스페인의 ‘최고의 소설’, 2004년 프랑스의 작가, 비평가, 출판업자들로 구성된 심의회에서 그해 출판된 ‘최고의 외국 소설’로 선정되기도 했다.(고아라 기자)

06. 12. 09.

 

 

 

 

P.S. 하여, 정리하자면 우리의 대표님은 오늘도 걷고 또 걷는다, 바람의 그림자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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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6-12-09 12:40   좋아요 0 | URL
ㅎㅎㅎ 재밌군요.

끼사스 2006-12-09 14:07   좋아요 0 | URL
<바람의 그림자>는, 제겐, 너무 반듯해서(≒너무 잘 써서) 별로 인상에 안 남는 책이었습니다만…. 근데 '책 구입비 15만원'을 정색하고 기사 리드에 올린 건 로쟈님 만큼이나 제게도 생뚱맞게 느껴지네요. ㅎㅎ

로쟈 2006-12-09 22:11   좋아요 0 | URL
그게 너무 잘 생겨도 정이 안 간다는 얘기가 있으니까요...

맑음 2006-12-09 22:12   좋아요 0 | URL
발행인이나 편집자, 서점주인들은 일로써 읽는 책 말고 스스로 즐거워 읽는 책이 한 달에 몇 권이나 될까 평소 궁금했었는데, 재미있는 기사네요.^ㅅ^ 로쟈님, 한 달에 15만원이면 적은 건 가요? 전 꼼꼼하게 책 한 권 읽는 데 3일 거려요. 그럼 일주일에 2권, 한달이면 8권. 책 한 권이 이만원 안팎이면 8권에 15만원이라는 계산이 나오는군요. 전 가난해서 도서관에서 대부분 대출해 읽지만요.^^; 언제더라, 조유식 대표님 문장 하나 하나 음미하면서 정독형이라는 글 읽은 기억이 어렴풋이 나네요.*^^*

로쟈 2006-12-09 22:52   좋아요 0 | URL
맞습니다. 정독할 수 있는 책은 몇 권 되지 않지요. 하지만 모든 책을 정독할 필요는 없을 뿐더러 사실 모든 책을 읽을 필요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한달에 15만원은 많은 액수가 아니지요. 최소한 수입의 10%는 돼야 하지 않을까요?..

맑음 2006-12-10 00:38   좋아요 0 | URL
책 뿐만 아니라 영화, 미술관, 공연 등 다른 문화 매체에 응수하는 것 까지 포함해서 전 수입의 10%p라고 보고 있습니다.^^ 가계부 작성해보면 10%p도 꽤 클 껄요. 일로써 읽는 책(관련 분야나 학습으로써 책읽기)말고 순수하게 "아~ 책이 고프다."란 강한 호기심으로 읽는 책은 한 달에 몇 권 되세요? 같은 직장에 동료들과 비교해서요. 이건 순전히 저의 호기심이 어린 질문이니, 실례라면 말씀 안 해주셔도 괜찮아요.^^ 전 발행인이나 편집자들은 자기네 출판사에서 내는 책 외엔(일로써 책 읽기), 거의 안 읽을 것 같은데 로쟈님 생각은 어떠신지요???

로쟈 2006-12-10 01:19   좋아요 0 | URL
제 경우에 의무로 읽어야 하는 책이 없는 건 아니지만 그런 경우에도 상당 부분 자발적인 의지를 포함하고 있어서(제가 좀 게을러서 억지로 무슨 일을 하진 않습니다) '강한 호기심으로 읽는 책'이 구별되지는 않습니다. 그냥 많은 책을 '보고' 몇 권을 '읽습니다'. 사실 읽고 떠들거나 끄적거리는 게 직업이기도 해서 '일'과 분리하기가 어렵네요. 단, 교양과학서들을 읽을 때는 '휴식'이란 느낌을 좀더 많이 갖습니다.^^

맑음 2006-12-11 19:35   좋아요 0 | URL
그럼 로쟈님에게 다른 장르의 책들은 늘 구매대상이라 보면 되고 "교양과학서"들이 어떻냐에 따라 구입할 책목록에 많이 올라올 수도 적게 올라올 수도 있겠네요. 아무튼 답변 감사드립니다.^ㅅ^

로쟈 2006-12-11 21:49   좋아요 0 | URL
그게 저로선 '교양과학서'를 쓸 일이 없다는 생각 때문인 거 같습니다. 구경하고 경탄하면 되는 세계에서, '편안함'을 느낀다고 할까요...
 

'오래된 새책'이란 카테고리를 새로 만든다.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지만 요즘 부쩍 과거에 출간됐던 책들의 재판, 개정판, 수정판 등이 자주 눈에 띄기 때문이다. '오래된 새책'이란 표현은 물론 '오래된 미래'를 떠올려주기도 하지만 종종 들르는 '북데일리'의 카테고리였기도 하다. '세계의 책'과 함께 나란히 빌어온 셈이 됐는데, 정작 북데일리에서는 사이트를 개편하면서 이들 카테고리를 '명퇴'시킨 듯하다. 그럼 '오래된 새책'은 '나대로의' 카테고리에서 '나만의' 카테고리로 지위가 격상되는 건가?

가장 먼저 다룰 책은 <번역의 윤리>를 구하러 구내서점에 들렀다가 발견한 레이코프와 존슨의 '출세작' <삶으로서의 은유>(서광사, 2006) 수정판이다. '수정판'이란 표현을 썼지만, 흔히 '개정판'이라고 부르는 것인데, 지난 95년에 나온 국역본 초판에 비해서 표지가 훨씬 화사해졌고 하드카바도 장정도 바뀌었다. 내용이야 그대로 보전된 부분이 더 많겠지만 형식은 '대폭' 수정된 것이라 하겠다.   

 

 

 

 

레이코프(/존슨)은 흔히 촘스키언어학에 반기를 든 '인지언어학'의 대표적인 학자들로 지목된다. 그들의 책을 다 읽어볼 기회는 없었지만 우연찮게도 다 사모아둔 처지인지라 이 '수정본'에도 관심이 간다. 개인적으로 <도덕의 정치>나 <코끼리는 생각하지마> 같은 정치평론쪽 책들을 나올 때마다 소개한 기억이 있는데, 이번에도 비껴가지는 못하겠다.  

Cover Image

사실 이 책과의 인연은 국역본이 나오기 전에 원저 'Metaphors we live by'(1980)를 사둔 시점으로 올라간다(왼쪽 표지). 제목을 직역하면 '우리가 달고 사는 은유들' 정도 될까? 대학가 서점에서 마스터본으로 샀던 듯한데 대학원에서 문체론 강의를 들을 때 부분적으로 참조했던 기억이 있다(기말 리포트를 쓰면서는 참조하지 않았지만). 국역본은 그 이후에 출간됐다. 찾아보니까 수정판은 2003년에 출간됐다(오른쪽 표지). 약간 증면이 됐지만 대차는 아니고 본문의 사례들에 어떤 변화가 있는 건지는 모르겠다. 여하튼 지난번 국역본이 절판된 상태인지라 새로 나온 책에 대해선 반가워할 이유가 충분하겠다. 

단, 이 페이퍼에 혹 자극을 받아서(내가 '약간의 영향력'을 발휘하는 탓에) 책을 사보시려는 분은 '삶으로서의 은유'라는 다소 '철학적인' 제목이 붙어 있기는 하지만, 기본적으로 '언어학' 책이라는 점을 유념하면 되겠다. 참고삼아, 목차와 제1장의 원문을 옮겨놓는다. 그리고 <코끼리는 생각하지마>에서 자세히 얘기되는 레이코프의 '프레임론'을 응용하고 있는 최근의 칼럼기사 하나도 같이. 내가 붙인다면 '이문열은 생각하지마'가 칼럼의 주제이다.  

Preface
Acknowledgments
1. Concepts We Live Bye
2. The Systematicity of Metaphorical Concepts
3. Metaphorical Systematicity: Highlighting and Hiding
4. Orientational Metaphors
5. Metaphor and Cultural Coherence
6. Ontological Metaphors
7. Personification
8. Metonymy
9. Challenges to Metaphorical Coherence
10. Some Further Examples
11. The Partial Nature of Metaphorical Structuring
12. How Is Our Conceptual System Grounded?
13. The Grounding of Structural Metaphors
14. Causation: Partly Emergent and Partly Metaphorical
15. The Coherent Structuring of Experience
16. Metaphorical Coherence
17. Complex Coherences across Metaphors
18. Some Consequences for Theories of Conceptual Structure
19. Definition and Understanding
20. How Metaphor Can Give Meaning to Form
21. New Meaning
22. The Creation of Similarity
23. Metaphor, Truth, and Action
24. Truth
25. The Myths of Objectivism and Subjectivism
26. The Myth of Objectivism in Western Philosophy and Linguistics
27. How Metaphor Reveals the Limitations of the Myth of Objectivism
28. Some Inadequacies of the Myth of Subjectivism
29. The Experientialist Alternative: Giving New Meaning to the Old Myths
30. Understanding
Afterword
References  

CONCEPTS WE LIVE BY

Metaphor is for most people device of the poetic imagination and the rhetorical flourish--a matter of extraordinary rather than ordinary language. Moreover, metaphor is typically viewed as characteristic of language alone, a matter of words rather than thought or action. For this reason, most people think they can get along perfectly well without metaphor. We have found,on the contrary, that metaphor is pervasive in everyday life, not just in language but in thought and action. Our ordinary conceptual system, in terms of which we both think and act, is fundamentally metaphorical in nature.

The concepts that govern our thought are not just matters of the intellect. They also govern our everyday functioning, down to the most mundane details. Our concepts structure what we perceive, how we get around in the world, and how we relate to other people. Our conceptual system thus plays a central role in defining our everyday realities. If we are right in suggesting that our conceptual system is largely metaphorical, then the way we thinks what we experience, and what we do every day is very much a matter of metaphor.

But our conceptual system is not something we are normally aware of. in most of the little things we do every day, we simply think and act more or less automatically along certain lines. Just what these lines are is by no means obvious. One way to find out is by looking at language. Since communication is based on the same conceptual system that we use in thinking and acting, language is an important source of evidence for what that system is like.

Primarily on the basis of linguistic evidence, we have found that most of our ordinary conceptual system is metaphorical in nature. And we have found a way to begin to identify in detail just what the metaphors are halt structure how we perceive, how we think, and what we do.

To give some idea of what it could mean for a concept to be metaphorical and for such a concept to structure an everyday activity, let us start with the concept ARGUMENT and the conceptual metaphor ARGUMENT IS WAR. This metaphor is reflected in our everyday language by a wide variety of expressions:

ARGUMENT IS WAR

Your claims are indefensible.

He attacked every weak point in my argument.

His criticisms were right on target.

I demolished his argument.

I've never won an argument with him.


you disagree? Okay, shoot!

If you use that strategy, he'll wipe you out.

He shot down all of my arguments.

It is important to see that we don't just talk about arguments in terms of

It is important to see that we don't just talk about arguments in terms of war. We can actually win or lose arguments. We see the person we are arguing with as an opponent. We attack his positions and we defend our own. We gain and lose ground. We plan and use strategies. If we find a position indefensible, we can abandon it and take a new line of attack. Many of the things we do in arguing are partially structured by the concept of war. Though there is no physical battle, there is a verbal battle, and the structure of an argument--attack, defense, counter-attack, etc.---reflects this. It is in this sense that the ARGUMENT IS WAR metaphor is one that we live by in this culture; its structures the actions we perform in arguing. Try to imagine a culture where arguments are not viewed in terms of war, where no one wins or loses, where there is no sense of attacking or defending, gaining or losing ground. Imagine a culture where an argument is viewed as a dance, the participants are seen as performers, and the goal is to perform in a balanced and aesthetically pleasing way. In such a culture, people would view arguments differently, experience them differently, carry them out differently, and talk about them differently. But we would probably not view them as arguing at all: they would simply be doing something different. It would seem strange even to call what they were doing "arguing." In perhaps the most neutral way of describing this difference between their culture and ours would be to say that we have a discourse form structured in terms of battle and they have one structured in terms of dance. This is an example of what it means for a metaphorical concept, namely, ARGUMENT IS WAR, to structure (at least in part) what we do and how we understand what we are doing when we argue. The essence of metaphor is understanding and experiencing one kind of thing in terms of another.. It is not that arguments are a subspecies of war. Arguments and wars are different kinds of things--verbal discourse and armed conflict--and the actions performed are different kinds of actions. But ARGUMENT is partially structured, understood, performed, and talked about in terms of WAR. The concept is metaphorically structured, the activity is metaphorically structured, and, consequently, the language is metaphorically structured.

Moreover, this is the ordinary way of having an argument and talking about one. The normal way for us to talk about attacking a position is to use the words "attack a position." Our conventional ways of talking about arguments presuppose a metaphor we are hardly ever conscious of. The metaphors not merely in the words we use--it is in our very concept of an argument. The language of argument is not poetic, fanciful, or rhetorical; it is literal. We talk about arguments that way because we conceive of them that way--and we act according to the way we conceive of things.

The most important claim we have made so far is that metaphor is not just a matter of language, that is, of mere words. We shall argue that, on the contrary, human thought processes are largely metaphorical. This is what we mean when we say that the human conceptual system is metaphorically structured and defined. Metaphors as linguistic expressions are possible precisely because there are metaphors in a person's conceptual system. Therefore, whenever in this book we speak of metaphors, such as ARGUMENT IS WAR, it should be understood that metaphor means metaphorical concept.

한겨레(06. 12. 08) 정치언어의 은유와 상징적 폭력

‘구원, 해방 그리고 문제 해결’이라는 강연의 제목부터가 의미심장했다. 한달 전 미국 로스앤젤레스 강연에서 언급한 ‘종말론’이 국내 언론에서 이미 문제가 되었고, 마침 한국의 정치 민주화 과정에서 지식인의 역할에 대한 책을 준비 중이었던 필자는 이문열씨의 강연에 궁금증이 한층 올라 있었다.

발언 요지는 다음과 같다. 한국 사회가 전반적으로 일종의 종말론적 상황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그 중에서 대표적인 예가 정통성도 정당성도 없는 정권이 분배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사회주의 정책을 펼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로마제국과 항쟁한 유대민족의 투쟁사가 수많은 인명 피해를 초래한 무모한 전쟁이었다고 평가한다. 물론 로마제국은 오늘날의 미국을 은유하고 있다.

2006년 11월29일 버클리대학 한국학연구소에서 행해진 이문열씨의 강연은 나에게 엄청난 충격이었다. 우선 이씨는 정치학의 초보 문법마저 무시하고 있다. 현 정부의 분배정책을 비판하려 했다면 ‘사회민주주의’(social-democracy)라는 용어가 적절하다. 그런데 최저생계를 위협받는 사람에게 기초생활을 보장하고, 산업재해를 당한 사람에게 보험금을 지원하는 복지국가를 만들자는 것이 바로 사회민주주의의 기본이념이다. 이것을 종말론적으로 생각한다는 것인가? 오늘날 유일한 강대국으로 군림하고 있는 미국의 힘은 세계체제를 무대로 작동하는 자본주의의 축적논리에 기반하고 있다. 이것은 군사력을 통한 로마제국의 팽창과는 질적으로 다른 것이다. 또한 미국과의 자유무역협정을 반대하는 것은 우리의 생존을 위한 것이지, 무모하게 항쟁하다가 희생당하겠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인지과학의 연구 성과를 통해서 보면, 보통사람들이 세상사를 이해하고 정치적 판단을 내릴 때는 일정한 언어적 프레임이 작동한다. 이러한 프레임은 일상적인 삶의 체험이나 정치를 표현하는 언어적 은유를 통해서 결정된다. 예컨대 한국전쟁을 경험한 사람은 ‘빨갱이’라는 프레임을 통해서 사회주의를 이해하기 쉽다. 또 이라크를 ‘악의 국가’라고 표현하는 것은 미국의 대외전쟁을 정당화하는 전형적인 은유다. 이것은 언어적 고정관념이라고 할 수 있으며, 개인들의 이성적 사고를 방해하는 요인이다.

정치적 입장이 다른 것을 용인할 수는 있다. 그러나 입장 차이를 정치문법의 무지와 혼동할 수는 없다. 또 무분별한 정치적 은유가 정당화되어서도 안 된다. 이러한 맥락에서 이씨는 한국민을 향해 상징적 폭력을 행사하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 한국 사회는 극심한 가치관의 혼동에 싸여 있다. 이것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정치를 표현하는 언어가 더욱 정교하고 세련되게 변화되어야 한다. 이제는 정말이지 한국 정치판에서 ‘빨갱이’니 ‘좌파’니 하는 해묵은 언어적 유희가 사라져야 한다. 우리 정치는 오랜 희생 끝에 민주화를 이루었다. 이제는 그 내용을 채워가는 과제가 남겨져 있다. 이제부터가 중요하다. 생각의 차이를 극복하고 미래에 대한 합의를 만들어가야 한다. 그런데 미래에 대한 비전은 언어로부터 출발한다. 그렇기 때문에 언어 사용의 관습이 바뀌어야만 하는 것이다. 즉, 언어의 민주화가 절실히 필요하며, 이것이 오늘날 지식인의 책무다.

한국의 대표적인 문필가요, 지식인을 자처하는 그가 이러한 언어의 민주화에 역행하고 있다는 것은 충격이 아닐 수 없다. 더구나 강연 내용이 이번에 출간한 소설의 내용이라고 하니 걱정이 앞선다. 그는 2300만부의 소설을 판매한 베스트셀러 작가가 아닌가!(홍성민/동아대 정치학과 교수, 미 버클리대 방문학자)

06. 12. 0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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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신간들 가운데 가장 묵직한 책은 며칠전 소개한 제바스티안 브란트의 <바보배>(안티쿠스)와 함께 역사학자 필립 아리에스(1914-1984) 등이 편집한 <사생활의 역사>(새물결, 2006)를 들 수 있을 것이다. 이번에 두 권이 마저 나와서 전체 5권이 완간된 이 책은 올해 완간된 벤야민의 <아케이드 프로젝트>와 함께 '사건'이라 할 만한, 새물결출판사의 역작이다.

 

 

 

지난 2002년에 나온 1,3,4권 중에서 나는 한권을 갖고 있는데 당장은 눈길이 닿지 않는다(출판사 할인판매시 30% 할인 가격으로 구입했던 기억이 있다). <아동의 탄생>이나 <죽음 앞의 인간>이 아리에스의 대표작인 것으로 보이지만 그의 제안으로 기획됐다는 <사생활의 역사>가 갖는 의의도 간과될 수는 없겠다. 책을 당장 곁에다 둘 형편은 아니어서 리뷰기사를 하나 옮겨놓는다. 사회학자 김종엽 교수의 글인데, 나름대로 의미가 없지 않은 건 (내 기억에) 필립 아리에스란 이름을 처음 접한 것이 그의 <웃음의 해석학, 행복의 정치학>(한나래, 1994)에서였기 때문이다. 그게 어느덧 12년 전 이야기다. 결자해지 차원에서라도 아리에스에 관한 해설은 그의 몫으로 돌리는 게 낫겠다.  

경향신문(06. 12. 09) 公과 私 영역, 분리와 융합의 역사

‘사생활의 역사’는 어린이와 죽음에 대한 연구를 통해 역사학을 혁신한 필립 아리에스의 제안으로 시작되었으며, 아날학파의 노장 및 신진 모두의 역량이 투입돼 프랑스에서 1985년에 출간되었다. 모두 다섯 권으로 된 1권(로마제국~11세기)과 3권(르네상스~계몽주의), 4권(프랑스 혁명~1차 세계대전)이 2002년에 먼저 우리말로 번역되었는데, 이때 각종 매체의 서평들은 부부의 침실과 귀족의 일기장과 집안 하녀들의 생활 같은 영역에 대한 핍진한 연구에 경이감을 표현했다. 그리고 그것이 어떻게 가능하고 의의는 무엇인지를 알리는 데 역점을 두었다.

이번에 2권(중세~르네상스)과 5권(1차 세계대전~현대)이 나옴으로써 마침내 완역됐는데, 더 이상 사생활 속으로 역사적 시선을 투과시키는 것의 중요성과 의미를 해설할 필요는 없어진 듯하다. 먼저 번역된 ‘사생활의 역사’가 제법 널리 읽힌 데다가 우리나라 역사에 대해서도 이 책과 같은 시도가 이미 꽤 이뤄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생활의 역사’ 전체에 대한 논평보다는 이번에 새로 번역된 것들을 중심으로 논의하는 것이 나을 것 같은데, 필자가 보기에 두 책 중 2권보다 5권이 더 적합해 보인다. 2권을 읽으려는 독자는 이미 이전 번역을 읽고 그 결락 부분을 채우려는 독자일 것이고, 그런 독자에게 책의 의의를 논하는 것은 불필요해 보인다. 이에 비해 5권은 이미 ‘사생활의 역사’를 읽어본 독자에게도 새로울 뿐 아니라 읽어본 적이 없는 독자가 ‘사생활의 역사’에 접근해 보려 할 때도 제일 먼저 읽기를 권하고 싶은 책이다. 독서의 쉽고도 좋은 길은 역시 자기가 속한 시대와 사회에 대한 관심으로부터 출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제5권은 흔히 사생활이라 불릴 만한 것인 섹스와 자신의 육체에 대한 태도나 가족생활뿐 아니라 노동과정의 변화와 제1, 2차 세계대전, 그리고 대도시의 형성사가 다뤄진다. 그렇게 되는 이유는 사생활의 역사가 친밀한 인간관계의 영역, 그리고 개인의 자기관계를 다루는 것 못지않게, 아니 그런 역사를 다루기 위해서도 사생활의 영역을 규정하는 공·사의 분리선과 변동을 그려내야 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제1차 세계대전은 규모나 전개 양상 모든 면에서 인류사에서 완전히 새로운 전쟁이었다. 그리고 이런 전쟁은 개인의 사생활을 바꿀 뿐 아니라 군인의 참호 생활이라는 새로운 종류의 사생활을 만들어냈다. 그렇기 때문에 사생활의 역사를 추구하는 한 전쟁에 대한 분석을 피할 수 없다. 같은 논리의 연장선에서 20세기에 대두한 집단수용소는 수용소 안에서의 삶이라는 새로운 사생활을 야기했기에 분석되어야 할 대상이 된다.

이렇게 공적 구조의 변화가 사생활의 변화와 적응 그리고 새로운 창출을 야기할 뿐 아니라 사생활의 변화가 공적 구조의 변화와 개입을 유발하기도 한다. 20세기는 이혼과 동거가 폭증하고 임신과 섹스가 역사상 어느 때보다 인간의 의지에 의해 조절된 시대이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여기에 병원과 법률이라는 공적 장치가 끊임없이 개입해 들어온다. 결국 가족생활의 주도권이 국가와 개인에 의해서 분점되고 개인은 그 여분의 주도권마저 의사와 교사 그리고 양육 전문가와 심리치료사 같은 각종 전문가 집단에 양도해야 한다. 그리하여 가족은 오로지 감정생활이라는 단 하나의 줄에 매달려 나부끼게 된다.

그리하여 제5권은 사적 영역의 역사이자 그 자리에서 바라본 공적 영역의 역사가 되는데, 책장을 계속 넘겨보면 이 책의 저자들이 좀더 야심적임을 알게 된다. 문화적 다양성을 다룬 제3부는 종교와 내면생활의 변화(‘가톨릭 신자들: 상상과 죄’), 정치적 정체성(‘공산주의자 되기?-하나의 존재방식’), 인종적 정체성(‘유대인으로 살아가기’와 ‘이민자로 살아가기’)을 다룸으로써 20세기가 만들어낸 특유한 자아 정체성의 궤적을 범례적으로 다룬다. 그리고 제4부는 미국·스웨덴·이탈리아·독일의 사생활을 분석함으로써 사생활의 비교사회학의 토대를 놓고 있다. 이렇게 해서 ‘사생활의 역사’는 한 권의 훌륭한 20세기 서양사에까지 근접해 간다.

하지만 이 정도라면 이 책의 의의는 서구인의 삶 그리고 사생활이라는 소재에 대한 관음증적 호기심을 격조 있게 충족시켜주는 것에 그칠 수 있는데, 그렇지 않은 이유 가운데 두 가지 정도를 꼽고 싶다. 우선 이 책을 읽으면서(특히 제4부) 우리의 사생활이 의외로 서구인의 삶과 가까우면서 또한 다르다는 것을 시종일관 깨닫게 된다. 우리 사생활의 어떤 측면은 미국·프랑스·이탈리아·독일과 닮았고 심지어 스웨덴과도 유사한 데가 있지만 동시에 이 모든 사례와 다르다. 공시성과 역사적·문화적 차이를 매개로 한 공시성의 다양한 조합, 변화에 대한 민감함과 어떤 끈덕진 지속을 모두 실감하게 되는데, 이런 독서 경험을 통해 자기 성찰의 길이 열린다는 점이 소중하다고 생각된다.

다음으로 이 책의 독서가 주는 각별한 기쁨의 원천은 사생활이라는 소재에서 오는 재미이기보다는 사유를 촉구하는 힘을 가진 역사학적 통찰을 담은 문장들에서 오기 때문이다. 몇 가지 예를 들고 싶지만 지면이 허락지 않아 아쉽다. 하지만 우선 읽기 바란다. 읽게 되면 밑줄을 긋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리라 장담할 수 있다.(김종엽|한신대교수·사회학)
 
06. 12. 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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