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요 때문에 (연쇄)살인과 대량학살에 관한 책들을 들춰보게 됐다. '살인'에 국한하자면, 이 분야의 책들은 처음 찾아보게 됐는데, 내가 마지막으로 기억하는 책이 콜린 윌슨의 <잔혹>이나 <살인의 심리> 같은 책들이니까 좀 오래 묵긴 했다. 도서관에서 '살인'이란 검색어로 뜨는 책들 가운데 몇 권에 관심이 갔지만 모두 대출중이었다.

 

 

 

 

그 책들이란 게 브라이언 이니스의 <프로파일링>(휴먼&북스, 2005)이나 <살인의 현장>(휴먼&북스, 2006) 같은 것이었는데 <모든 살인은 증거를 남긴다>(휴먼&북스, 2005)와 함께 '범의학과 과학수사 시리즈'를 구성하고 있었다. 한데, 모두 대출중. <살인의 현장>은 원서('Body in question')마저 대출중이었다.

책값이 좀 비싸긴 하지만, 지난 7월에 나온 이 책의 알라딘 세일즈 포인트가 그다지 높지 않은 걸로 보아 대중적이지는 않은 이 책에는 일부 매니아 독자층이 있는 듯하고, 그들은 아마도 CSI 시리즈의 매니아층 일부와 겹치지 않을까, 라는 게 나의 추정이다. 하는 수없이 방향을 틀어서 로버트 레슬러의 <살인자들과의 인터뷰>(바다출판사, 2004)를 대출할까 했더니 이마저도 이미 대출중. 나는 간신히 이 책의 구판인 (미래사, 1994)을 '꿩 대신 닭'으로 대출했다. 하지만, 구내서점에 가서 비교해보니까 분량에서 너무 차이가 나는지라(바다출판사판은 435쪽, 미래사판은 268쪽이다) <살인자들과의 인터뷰>는 아예 구입을 했다(원저의 제목과는 무관한 국역본의 제목은 물론 '뱀파이어와의 인터뷰'를 본딴 것이리라).

알라딘의 소개에 따르면, "1994년 출간되었던 의 개정증보판이다"이라고 하는데, 똑같이 1992년에 나온 원저를 대본으로 하고 있으므로 '개정증보판'이란 표현은 국역본에만 해당한다. 그러니까 짐작엔 미래사판이 축약번역판인 모양이다. 한데, 이 '축약본'의 서두에도 들어가 있는 10페이지의 사진자료들이 '개정증보판'에는 왜 빠진 것인지? 더불어, '개정증보판'에는 "33년의 경찰 재직 기간 동안 시카고의 거리에서 여러 괴물들과 싸웠던 내 절친한 친구이자 처남에게 바칩니다"란 헌사도 빠져 있다(처남이 유감스러워하지 않을까?). 게다가 저자의 '감사의 말'까지.

물론 '축약본'도 문제점이 없지는 않다. "괴물과 싸우는 사람은 그 싸움 속에서 스스로도 괴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우리가 괴물의 심연을 들여다봤다면, 그 심연 또한 우리를 들여다볼 테니까..."라는 에피그라프가 빠져 있는 것이다.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로 인용한 것이면서 책의 원제를 따온 대목이기도 한. 요컨대, 94년의 초판에서 2004년의 개정판에 이르는 과정에서 우리가 잃은 것은 '처남'이요, 얻은 것은 '괴물'이 되겠다.  

로버트 레슬러(1937- )의 이 저명한 책에 대해서 내가 숙지하지 못한 것은 개정판이 지난 2004년, 그러니까 '당신이 없는 사이에' 출간된 사정과 무관하지 않겠다. 뒤늦게 알아보니 이 '전설적인' FBI 수사관이 ‘연쇄살인범(Serial Killer)'이나 ‘범죄자 프로파일링(Criminal Profiling)’ 같은 말을 처음 창안한 사람이다(그러니까 그는 '연쇄살인범'의 '아버지'이자 '프로파일링'의 '대부'이다). <양들의 침묵>, <한니발>의 작가 토머스 해리스 또한 그 소설들을 쓰기 전에 로버트 레슬러에게 경험담을 실제로 듣고 참고했다고 하니까 더 말할 것도 없다. 재작년의 한 리뷰기사를 읽어본다.

 

 

 

 

경향신문(04. 08. 21) 유영철은 그때 무슨 생각을 했을까? 

연쇄살인범 유영철이 구속기소된 시점에서 ‘살인자들과의 인터뷰’라는 책이 나왔다. 저자는 ‘연쇄살인범(Serial Killer)’이라는 말을 처음 만든 미국 연방수사국(FBI) 심리분석관 로버트 레슬러. 그는 범죄 현장 조사·감식을 통해 범인의 프로필을 추적하는 수사기법인 ‘범죄자 프로파일링(Criminal Profiling·범인상 추정)’을 처음 창안한 사람이기도 하다.

레슬러는 엽기적 살인이 발생한 현장 분석에서부터 시작해 교도소에 수감된 살인마들과의 면담을 통해 살인자들의 공통점과 범죄 심리를 해부하고 있다. 그는 1,488차례 방화하고 하룻밤에 6명의 여성을 살인한 데이비드 버코위츠, 마음에 둔 여인이 사랑을 받아주지 않자 마구 흉기를 휘두른 뒤 토막낸 듀안 샘플즈, 살해한 뒤 시체를 욕보이는 시간(屍姦)을 저지른 연쇄살인마의 대명사 ‘데드 번디’ 등 수십명을 인터뷰했다.

‘괴물과 싸우는 사람은 그 과정에서 자신도 괴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우리가 심연을 들여다보면, 심연 또한 우리를 들여다본다.’ 레슬러는 인터뷰 과정에서 니체의 이 말을 유념하며 냉철한 이성을 통해 ‘괴물’들의 심연을 들여다봤다. 그 결과 연쇄살인마들은 통념처럼 가난한 결손 가정 출신이 아니며 오히려 중산층 이상 출신들이 많았고, 또 80~90%가 어린 시절 ‘냉담한 어머니’ 밑에서 자랐고 신체적·정신적 학대를 당했으며 성적 도착증세를 보이고 있다는 사실을 밝혀낸다.

연쇄살인범들은 환상에 사로잡혀 있으며, 그들의 ‘충족되지 않은 경험’이 그 환상의 일부가 되어 다음 살인을 부추긴다. 저자는 연쇄살인범이라는 용어의 뒤에 숨어 있는 뜻은 진짜 이런 것이라고 말한다. ‘인육을 먹었다’는 등 유영철의 진술 하나하나가 신문 지면을 장식하고 있는 이 때에 나온 이 책은 유영철의 심리를 간접적으로나마 짐작해 볼 수 있는 근거를 제공한다. 제목은 자극적이지만 엽기적 호기심을 충족시키는 책은 아니다. 최근에야 범죄 프로파일링을 시도한 한국 경찰의 과학수사 관계자들에게 일독을 권하고 싶다.(김종목 기자)

06. 11. 21.

P.S. 레슬러의 책으론 <살인자들과의 인터뷰> 외에 <범죄분류입문>, <이성 살인: 패턴과 동기> 등의 공저가 있다. <인터뷰>에 대한 반응으로 보아 나머지 책들도 소개됨 직하다...

 

 

 

 

P.S.2. <살인자들과의 인터뷰>와 같이 읽어볼 만한 책으로 물만두님이 추천해주신 <마인드 헌터>(비채, 2006). 소설인 줄 알고 있었는데, 역시나 FBI의 베테랑 수사관이었던 존 더글러스의 회고록이라고 한다. <마음의 사냥꾼>은 그 구판이다. 내친 김에 떠올리게 된 책은 '경제학자' 에르네스트 만델의 <즐거운 살인>(시울, 2001). '범죄소설의 사회사'가 부제인데, 보관함에 넣어놓은 채 몇 년이 지난 듯하다.

그리고, '어느 살인자의 이야기' <향수>(열린책들, 2006). 나는 아주 오래전 초판 번역으로 읽었는데(기억에 하룻밤에 읽은 책이다), 최근에 영화화되어 곧 개봉한다는 얘기가 들린다. 연쇄살인범을 다룬 영화들에 특별한 흥미를 갖고 있지는 않지만(나는 <텍사스 살인마> 같은 영화를 취향상 보지 않는다) <향수>의 경우는 이야기도 되새겨볼 겸 한번 보고 싶다. 비록 나의 관심은 이런 픽션이 아니라 논픽션에 더 가 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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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6-11-21 20:08   좋아요 0 | URL
비교해서 볼 책으로 다시 출판된 마인드 헌터를 알려드립니다^^;;

로쟈 2006-11-21 20:10   좋아요 0 | URL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소설인 줄 알았는데, 회고록이군요.^^

짱꿀라 2006-11-22 00:56   좋아요 0 | URL
좋은 책 소개 감사해요. 살인자들과의 인터뷰 1년전에 본 것 같은데 너무 재미있게 봤거든요.

로쟈 2006-11-22 09:48   좋아요 0 | URL
이미 읽으셨다면, 이 '소개'는 잉여적인 것인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