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관계 체제에 대한 국가의 개입 방식이 고독의 폭증 원인이라는 분석이 흥미롭다...

국가는 사회관계 체제가 지닌 통합력을 희생시켜가면서까지 이 체제에 계속해서 직접 개입해 영향력을 행사하려 했다. 그러면서 가장 중요한 사회관계 체제인 커플의 구조와 기능을 변화시켰다. 고독은 이 개입으로 생긴 결과라기보다는 이개입이 이루어진 방식으로 생긴 결과다. 국가는 관계를 늘리고 강화하는 대신 사람들을 뿔뿔이 흩어놓으려 했다. 개인을보호한다는 명목으로 말이다. 국가는 사람들 사이에 끊임없이 갈등을 불러일으켰고, 이로써 개인을 구원해주는 제삼자인 동시에, 사회관계를 해치거나 분열시키는 매개자로서 자리 잡게 되었다.
강화된 어머니-자녀 관계를 제외한 다른 모든 관계는 무언가 의심스러운 것이 되었다. 혼자 있는 것보다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게 더 위험한 일이라는 듯 말이다.
 요컨대 고독이 폭발적으로 증가한 가장 큰 이유는, 과거에 인간관계를 담당하던 사회 기관을 희생시키고 국가가 인간관계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제 국가는 잘못된 상황을 바로잡는 위대한 존재이자, 가까운 사람으로부터 받는 온갖 억압으로부터 개인을 해방해주는 존재로 나선다. 개인을 자신이 속한 집단으로부터 구원해주는 것이 국가의 역할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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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르케고르의 ‘죽음에 이르는 병‘의 사회학 버전 같다...

시카고대학교의 한 연구 집단은 혼자라고 느끼는 사람(미국인의 40퍼센트)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더 빨리 죽는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고독은 건강 면에서 담배만큼 중대하고 비만보다 더 심각한 위험인 것이다. 고독은 면역 체계를 약화시켜 관절염이나 당뇨로까지 발전할 수 있는 염증을 일으킨다. 고독은 숨은 쉬지만 죽은 것이나 다름없는 상태인 ‘우울증‘의 원인이기도 하다. 세계보건기구에 따르면 우울증을 겪는 프랑스인의 비율은 21퍼센트로, 미국(19.2퍼센트)을 앞서며 세계에서 가장 높다고 한다. 고독은 자살률과도 관련이 있다.
프랑스인 10만 명 중 14.7명이 자살한다(유럽 평균은 10만 명 중10.2명이다). 한편 고독은 자살하고 싶은 욕구에도 영향을 미친다. 프랑스에서 매년 22만 명이 자살을 기도한다. 더욱이 ‘지연된 자살‘의 두 형태, 즉 테러와 대량 살상 행위 - 유럽보다 미국에서 더 많이 보이는 행위 -까지 고려하면, 이미 어둡기 그지없는 상황은 더욱 암울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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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처럼 일찍 귀가하여 한숨 돌리는 차에 책장에서 ‘김현 문학전집‘의 <책읽기의 괴로움/살아있는 시들>(문학과지성사)을 빼든다. 같이 묶인 <살아있는 시들>(전2권, 홍성사)은 안 갖고 있지만 <책읽기의 괴로움>(민음사)은 애장본이다. 종로에 영풍문고가 개장할 때, 다른 서점들에서 구하지 못하던 이 책을 발견하고 쾌재를 불렀던 기억이 생생하다. 30년 전인가? 아무튼 그래서 내게는 ‘수프‘ 같은 책이다.

1984년에 나온 이 비평집에는 ‘김춘수에 대한 두 개의 글‘과 ‘김수영에 관한 두 개의 글‘이 포함돼 있다. 새삼 알게 된 건 김현 비평이 김춘수의 시와 궁합이 더 잘 맞는다는 것이다. ‘풀‘에 대한 자세한 분석(‘웃음의 체험‘)만 하더라도 뭔가 석연치가 않았었는데 지금이라면 그 이유를 좀더 분명히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아무튼 인용문은 그의 김수영론(‘반성과 야유‘)의 마지막 단락으로 김수영 시에 대한 이해가 왜 어려운가에 대한 해명으로도 읽힌다. 어제 김수영의 번역전집도 나와야 한다고 적었는데 김현의 앞선 주장을 거든 데 지나지 않다.

김수영은 1966년 내 시의 비밀은 내 번역을 보면 안다라고 말한 바있다. 나는 차라리 그의 비밀의 상당 부분은 그가 번역을 했건 안 했건 그가 읽은 것 속에 있다라고 말하고 싶다. 그가 무슨 책을, 어떻게 읽었는지를 알아보는 것은 그의 시를 이해하는 데 아주 필요하고 긴요한 일이다. 그 작업은 그러나 쉬운 일이 아니다. 그의 시·산문에 나오는 책·사람 이름의 목록이라도 만들고, 어떻게 그가 그 책이나 사람을 읽었는가를 알아야 한다. 그가 자유롭게 접근한 일본어·영어로 씌어진 책에 나는 그만큼 자유롭게 접근하지 못한다. 오래 전에 생트 뵈브는 브왈로를 평하면서, 그는 핀다로스를 헌신적으로 사랑했지만 그를 하나도 이해하지 못했다라고 쓴 바 있다. 내가 그런 평가의 대상이 되지나 않을까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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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는 왜 진실인가>에서 예상할 수 있는 내용은 아니지만 진화심리학 연구 성과로 참고할 만하다. ‘직업적 포부와 짝 구하기 모드‘. 한데 결과는 예상을 벗어나지 않는군. 우리가 다 알고 있는 ‘진화적 무의식‘을 지식의 영역으로 끌어낸 정도라고 봐아겠다.

짝 구하기 모드에서 유동적으로 변하는 심리적 특징에는 시간 할인 외에도 또 있다. 그것은 사람들의 직업적 포부에 관한 것이다. 아마 당신은 직업적 포부가 매순간 급격히 바뀐다고는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물론 시간의 흐름과 함께 어느 정도 바뀔 수는 있겠지만). 그러나 이런 생각과 달리 사람들의 직업적 포부는 실제로 ‘매순간‘ 바뀐다고 한다. 어느 연구에서 심리학자들이 남성들에게 자신의 커리어 플랜에 관한 설문지를작성하도록 했다. 어떤 남성들은 여성들과 함께 있는 장소에서 작성하도록 했고, 어떤 남성들은 남성들만 있는 장소에서 작성하도록 했다. 그 결과, 여성들과 함께 설문지를 작성한 남성들은 남성들만 있는 장소에서 작성한 이들보다 부의 축적을 주요 목표로 설정하는 성향이 더 크게 나타났다.(직업적 포부와 짝 구하기 모드에 관한 연구: Roney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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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영국이 사상가 존 러스킨의 독서론이다. <참깨와 백합>은 대중강연집으로 마르셀 프루스트가 프랑스어로 옮기고 붙인 글이 ‘독서에 대하여‘다. 러스킨에 대한 오마주라고 할 수 있다. 독서인이라면 두 사람의 독서론에 공감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인간의 최고 지혜를 캐내는 방식도 이와 같습니다. 좋은 책을 만나면 스스로에게 이런 질문을 해야 합니다. ‘오스트레일리아의 광부처럼 노동할 의향은 있는가? 곡괭이와 삽은 잘 정돈되어 있고 내 몸의 상태는 좋은가? 소매를 팔꿈치까지 걷어 올렸는가? 호흡은 정상인가? 기분은 괜찮은가?‘ 지루할 수도 있는 위험을 무릅쓰고 조금만 더 이 비유로 말해 보겠습니다. 매우 유용하거든요. 여러분이 찾는 금속은 저자의 정신 또는 사상입니다. 저자의 언어는 광석이므로, 그것을 부수고 용해해야 정신에 도달합니다. 곡괭이는 여러분의 노력이며 재기와 학식입니다. 용광로는 사고하는 여러분의 영혼이지요. 여러분에게 이런 연장과 불꽃이 없다면 어느 저자이건 그의 사상에 도달하기를 바라지 마십시오. 가장 날카롭고 가장 정교한 끌질을 하고 가장 끈기 있는 용해 작업을 거치고서야 겨우 금속 한 조각을 얻는 경우가 허다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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