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일찍 귀가하여 한숨 돌리는 차에 책장에서 ‘김현 문학전집‘의 <책읽기의 괴로움/살아있는 시들>(문학과지성사)을 빼든다. 같이 묶인 <살아있는 시들>(전2권, 홍성사)은 안 갖고 있지만 <책읽기의 괴로움>(민음사)은 애장본이다. 종로에 영풍문고가 개장할 때, 다른 서점들에서 구하지 못하던 이 책을 발견하고 쾌재를 불렀던 기억이 생생하다. 30년 전인가? 아무튼 그래서 내게는 ‘수프‘ 같은 책이다.

1984년에 나온 이 비평집에는 ‘김춘수에 대한 두 개의 글‘과 ‘김수영에 관한 두 개의 글‘이 포함돼 있다. 새삼 알게 된 건 김현 비평이 김춘수의 시와 궁합이 더 잘 맞는다는 것이다. ‘풀‘에 대한 자세한 분석(‘웃음의 체험‘)만 하더라도 뭔가 석연치가 않았었는데 지금이라면 그 이유를 좀더 분명히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아무튼 인용문은 그의 김수영론(‘반성과 야유‘)의 마지막 단락으로 김수영 시에 대한 이해가 왜 어려운가에 대한 해명으로도 읽힌다. 어제 김수영의 번역전집도 나와야 한다고 적었는데 김현의 앞선 주장을 거든 데 지나지 않다.

김수영은 1966년 내 시의 비밀은 내 번역을 보면 안다라고 말한 바있다. 나는 차라리 그의 비밀의 상당 부분은 그가 번역을 했건 안 했건 그가 읽은 것 속에 있다라고 말하고 싶다. 그가 무슨 책을, 어떻게 읽었는지를 알아보는 것은 그의 시를 이해하는 데 아주 필요하고 긴요한 일이다. 그 작업은 그러나 쉬운 일이 아니다. 그의 시·산문에 나오는 책·사람 이름의 목록이라도 만들고, 어떻게 그가 그 책이나 사람을 읽었는가를 알아야 한다. 그가 자유롭게 접근한 일본어·영어로 씌어진 책에 나는 그만큼 자유롭게 접근하지 못한다. 오래 전에 생트 뵈브는 브왈로를 평하면서, 그는 핀다로스를 헌신적으로 사랑했지만 그를 하나도 이해하지 못했다라고 쓴 바 있다. 내가 그런 평가의 대상이 되지나 않을까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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