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인슈타인 관련서를 여럿 구입했다. 관심은 아인슈타인의 시대, 그리고 아인슈타인과 대중의 관계에 있다. 아인슈타인은 20세기를 대표하는 인물이다. 동시에 20세기는 대중의, 혹은 인민의 세기였다. 그런데 이 둘 사이에는 접점이 없다. 아인슈타인의 이론과 대중의 언어 사이에 놓인 간극 때문이다. 그렇게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사상가(이론가)가 대중의 존경을 받은 첫 역사적 사례가 아닐까(20세기에 대한 이해에 필수적인 증상이다). 그래서 관심을 갖는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아인슈타인의 이론은 완전히 수수께끼다. 아인슈타인을 향한 대중의 태도는 마크 트웨인이 수학관련서의 저자를 대하는 태도와 같다. 말하자면, 단 한 줄도 이해할 수 없는 책을 쓴 사람에게 느끼는 감정 같은 것이다. 아인슈타인이 위대해 보이는 것은, 그의 혁명적 발견을 대중의 언어로는 도저히 옮길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범인의 경지를 훌쩍 넘어선 사고의 소유자에게 우리는 경외의 감정을 느낀다. 그의 추론을 이해하고 결론을 검증할 능력이 있는 소수만이 그의 업적이 지닌 가치를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 P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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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을 먹고 무력한 기분으로 읽은 한 대목.

어떤 사람들에게 인생의 종말이 가까워졌다는 예상은, 좋은 기운이든 아니든 원기를 왕성하게 해주며, 그들을 열정적인 활동 속으로 빠져들게 한다. 그들은 자신의 사업이나 작품에 의하여 영원해지고자 하는 순진한 희망을 품고, 그 작업을 완결하기 위해 혼신의 힘을 기울인다. 단 한 순간도 잃어버릴 수 없다.
동일한 관점에서 다른 이들은 ‘이게 다 무슨 소용이람‘ 하는 생각에 빠져든다. 통찰력은 정체되어 있고, 무력하다는 사실은 반박의 여지가 없으므로.
- P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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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의 뇌와 여성의 뇌 사이에 차이가 있다거나 없다거나 주장하는 책들이 여럿 나와있는데 뇌 백과사전의 설명은 이렇다. 아직 만족스럽지 않다...

성별에 따른 뇌의 차이를 살펴본 연구들은 논란이 많다. 일부에서는 성별에 따른 뇌의 차이가 생물학적인 요인이 아니라 문화적인 요인에 결정된다고 확신한다. 하지만 많은 연구에서 여성과 남성의 뇌는 해부학적으로 다르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양쪽 대뇌반구를 연결하는 뇌량과 앞맞교차는 여성에서 더 크다. 여성이 감정을 더 잘 알아차리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을지도모른다. 감정적인 오른쪽 뇌가 분석적인 왼쪽 뇌에 더 잘 연결되는 것이다. 또한 어쩌면 이런 이유로 감정이 더 쉽게 생각과 말로 전환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연결되는 영역이 서로 다름을 보여주는 영상 연구는 문화적인 영향을 받을 수도 있지만성별에 따른 전형적인 차이를 보여주는 것일 수도 있다.
- P1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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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권의 세계사를 동시에 읽는다. 서순의 <불안한 승리>는 장기 19세기(1789-1914)의 후반부이자, 관점을 달리하면 장기 20세기(1860-2010)의 초반부를 다룬다. 대략 어림해보니 이번 겨울에 최소한 3000쪽은 읽어야 할 것 같다. 서순의 책만 해도 1000쪽이 넘으니...

이 책에서 내가 염두에 둔 목표는 자본주의 초기의 몇몇 단계를 재검토하는 게 아니라 19세기 후반기와 대전쟁[Great War. 당대 사람들이 1차대전을 일컬은 표현. 옮긴이] 사이의 시기를 연구하는 것이다. 이 시기에 자본주의는 승리를 거두고 전 세계에서 받아들여지게 됐으며, 대다수 반대자들도 자본주의가 불가피하며 어쩌면 심지어 바람직한 체제일지 모른다고 인정했다. 여기서 나는 엘리트들이 산업자본주의의 도전에 어떻게 대응했는지, 그리고 어떻게 해서 민족 공동체 의식, 또는 애국심을 창조하거나 국가를 활용해서 자본주의를 규제하거나 새로운 영토를 정복함으로써 반체제 세력을 최소한도로 유지하는 한편 산업 발전을 달성할 수 있었는지를 검토할 것이다.
- P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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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스터턴의 말˝이란 제목이 붙여졌어도 되었을 책이다. <찰스 디킨스>에서 따온 대목. 강의에 참고하려고 구하긴 했는데, 언제 읽어볼지는 모르겠다. 번역되면 좋겠다(다행히 두꺼운 책은 아니다)...

어떤 의미에서 슬픔과 비관은 정반대다. 슬픔은 무언가에 가치를 두어서 생기지만, 비관은 그 무엇에도 가치를 두지 않아서 생기기 때문이다. 실제로, 모질고 잔인한 일을 많이 겪고도 누구보다 세상을 낙관하는 시인들을 자주 보지 않는가. 오랜 고통에서 벗어난 그들은 늘 인생을 낙관한다. 가끔은 그 정도가 지나쳐 역겨울 지경이다.
- P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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