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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주목하는 작가의 소설집이 출간됐다. 정미경의 <내 아들의 연인>(문학동네, 2008). 표제작 외에 몇 작품을 읽은 기억이 있는데, 특히 '내 아들의 연인'은 소위 '대한민국 1%'의 내면에 대한 섬세한 묘사가 특출한 작품이었다. 평론가 김형중의 평을 빌면, "'내 아들의 연인'은 유한계급에 속하는 중년 부인을 화자로 등장시켜 계급간 단절의 강고함을 다룬다. 계급은 경제의 산물일 뿐만 아니라 부르디외 식으로 표현해 문화적 ‘구별짓기’의 산물이기도 하다는 사실, 그리고 계급간 갈등이란 강자가 약자에 대해 베푸는 온정이나 약자가 강자에 대해 행사하는 투쟁만으로 해소될 수 있는 성질이 아니란 사실을 세심하게 보여준다. 19세기 영국 소설들의 예에 육박하는 섬세한 세부묘사와 심리묘사가 가히 압권이거니와, 손쉬운 온정주의와 도식적인 화해를 거부한 작가적 치열함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내가 바라는 건 이런 작품들을 더 많이 읽을 수 있었으면 하는 것이다.  

한국일보(08. 06. 14) 자본주의에 새겨진 계층의 골 선연히…

정미경(48ㆍ사진)씨가 2001년 늦깎이 소설가 등단 이후-1987년 신춘문예 희곡 부문에 당선됐지만 큰 활동 없이 가정주부로 살아왔다- 보여주는 활력은 대단하다. 2002년 오늘의작가상 수상작<장밋빛 인생>을 비롯한 두 편의 장편과 2004, 2006년 각각 출간한 소설집에 이어 이번에 세 번째 소설집을 펴냈다. 2006년 이상문학상 수상작 ‘밤이여 나뉘어라’와 같은 해 한국일보문학상과 황순원문학상 최종 후보에 올랐던 표제작을 비롯, 수록작 7편은 외적 후광 없이도 스스로 빛을 발하는 완성도를 갖췄다.

한국소설에서 드문 “유한계급의 삶의 세밀한 묘사”(평론가 김형중)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 화제가 됐던 표제작은 가난한 여자와 교제하는 아들의 연애를 지켜보는 상류층 여성의 복잡한 심사를 그리고 있다. 가족과 컨테이너에 산다는 아들의 애인을 직접 만나보고 호감을 품으면서도 그녀는 “어째 착 붙는 느낌이 오지 않”음을, 그 이물감이 단순히 “컨테이너 때문은 아니”란 점을 직감한다.
아들의 일기를 통해 두 연인의 관계가 점차 멀어지고 있음을 알아채면서 그녀는 아들의 마음을 이해하고 스스로도 “우울한 안도감”을 느낀다. “현이, 넌 걔의 가난이 싫은 거야. 간단한 얘기 복잡하게 하지 마라.” 끝내 빈부의 아비투스(습속) 차이를 극복 못하는 연애담에, 상류층의 삶의 감각을 보여주는 일상적 에피소드를 여러 겹 덧씌우면서 작가는 자본주의 사회에 아로새겨진 계층의 골을 선연히 보여준다.

물질사회 속 비틀린 관계의 양상은 ‘너를 사랑해’에서 더욱 극적으로 드러난다. 한 재력가의 개인 자산관리사로 고용된 ‘나’는 저조한 실적을 무마하려 7년을 사귀어온 애인 Y를 여동생 친구로 속여 ‘영감’(재력가의 별칭)에게 소개한다. 영감이 Y에게 호의를 품고 물량 공세를 퍼붓는 것은 바라던 바이지만, 영감의 구애에 점차 끌려들어가는 Y를 향한 나의 질투와 원망은 미처 예측 못한 감정이다. 분노와 무기력으로 참담해하는 ‘나’에게 Y가 말한다. “우린 꽤나 멀리 왔어. 돌아서면, 그 순간 우린 둘 다 소금기둥이 되는 거야.” 돈과 욕망을 연료로 폭주하는 영구기관에서 도로 내릴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다른 다섯 편은 욕망의 문제에 집중한다. ‘밤이여, 나뉘어라’는 의대 출신 영화감독 ‘나’와, 평생 그를 주눅들게 한 의사 친구 P의 이야기다. 주체 못할 재능과 욕망 속에 몰락해가는 P와, 그를 의식하며 꾸려온 자기 삶을 지키고자 친구의 추레한 모습을 기억에서 지우려 하는 ‘나’의 전도된 관계가 삶을 추동하는 욕망의 본질을 들춘다.

어긋난 욕망의 비극적 이중주는 ‘들소’와 ‘매미’에서도 들을 수 있다. ‘바람결에’는 한 불임부부의 거듭된 인공수정 시도가 정상가족 회복의 욕망에서, 파탄난 결혼생활을 기신기신 잇는 수단으로 전락해가는 과정을 묘파한다.

안정된 서사 구조, 미세한 정서를 포착해내는 문장이 정씨의 작품을 빛낸다. “계층이나 직업을 묘사할 때 입체감을 주려 디테일 리서치를 많이 한다”는 작가의 성실성은 의사, 영화감독, 조각가, 대학강사 등 작품집 속에 등장하는 다종한 전문직 종사자들의 생생한 모습을 통해 증명된다.(이훈성기자)

08. 06. 14.

P.S. 작가에 대한 간략한 소개는 http://blog.aladin.co.kr/mramor/994556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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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두부 2008-06-14 1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함 읽어볼께요..감솨!

로쟈 2008-06-14 16:21   좋아요 0 | URL
^^

다락방 2008-06-14 21: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신문에서 정미경의 이 소설집이 나왔다는 걸 알고(조선일보였어요 --)앗 정미경이로구나, 하면서 구매하려고 알라딘에 들어왔는데 로쟈님의 이 페이퍼가 있네요. 정미경은 제가 가장 좋아하는 국내 작가예요. 그녀의 모든 작품을 읽은 것 같은데(확실치는 않지만) 저는 특히 [장밋빛 인생] 과 [발칸의 장미를 내게 주었네]가 좋았어요. 로쟈님께서도 주목하시는 작가로군요!

로쟈 2008-06-15 11:04   좋아요 0 | URL
네, 안정감을 주는 작가입니다...

비로그인 2008-06-15 01: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미경의 소설집이 나왔군요. 저도 좋아하는 작가인데 기대가 되네요.

비로그인 2008-06-15 01: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rss에 추가해서 수시로 들르는 눈팅유저입니다.^^

로쟈 2008-06-15 11:04   좋아요 0 | URL
99%에 속하시군요.^^
 

주말 북리뷰에서 가장 인상적인 기사는 이번에 1주기를 맞는 권정생의 삶과 문학을 조명한 기사이다. 작년 5월 그의 죽음을 계기로 '권정생의 삶과 문학'(http://blog.aladin.co.kr/mramor/1119478)이란 페이퍼를 올려두기도 했는데, 어느새 1년이다. 비록 고인은 아프고 슬프고 외로운 삶을 살았지만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은 건 다행스럽다. 이달의 첫주문은 그의 책들로 할 작정이다. 

한겨레(08. 05. 03) 민들레 꽃씨로 돌아온 노란 그리움

이름 그대로 ‘정생’(正生)이었다. ‘바른 삶’이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이름값을 다하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바른 삶’을 ‘사랑하는 삶’이라고 고쳐 부를 수 있다면, 그 사랑은 자신이 닿을 수 없는 아득한 높이에 있었다. “사람이 사람을 사랑한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가를 나는 알고 있다. 고린도전서 13장에 사도 바울이 말한 대로라면 너무 어려워 도저히 사람을 사랑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특히 나와 같은 인간은 생전에 아무도 사랑해보지 못하고 죽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런 단호한 겸손 때문에 그는 ‘사랑이라는 진리에 가장 가까이 간 정신’이었다. 오는 17일은 바로 그 정신이 하늘로 간 지 꼭 1년이 되는 날이다.


아동문학가 권정생(1937~2007) 타계 1주기에 즈음해 그를 기리는 책들이 한꺼번에 나왔다. 아동문학 평론가 원종찬 인하대 교수가 엮은 <권정생의 삶과 문학>은 ‘기림’의 뜻에 가장 충실한 책이다. 고인을 추억하는 시들을 앞세운 이 책은 권정생 연구를 위해 참고가 될 만한 평론과 회고글들을 가려 뽑았다. 그런가 하면 <권정생-동화나라에 사는 종지기 아저씨>는 어린이들이 읽기 좋게 쓴 전기다. 가난과 고난의 참담한 생애를 보낸 뒤 아름다운 작품만 남기고 병고의 몸을 벗어버리기까지 70년 삶이 단출하게 담겼다.

<우리들의 하느님>은 1996년에 나왔던 고인의 첫 산문집에 그 뒤 쓴 두 편의 글을 보태 펴낸 개정증보판이다. 김종철 <녹색평론> 발행인은 “이제 우리는 더는 저 조탑리의 작고 어두운 골방으로부터 나오는 유례없이 부드럽고 간곡한, 그러면서도 더할 나위 없이 무서운 목소리를 듣는 행복을 누릴 수 없게 되었다”며 그 아쉬움을 조금이라도 달래려 이 증보판을 낸다고 책머리에 밝혔다. <랑랑별 때때롱>은 타계하기 넉 달 전에 연재를 마친 고인의 유작이다. <강아지 똥>에서부터 <몽실 언니>를 거쳐 40년 동안 이어진 권정생의 문학적 삶의 마침표에 해당하는 작품인 셈이다. 과학문명보다 훨씬 중요한 것이 생명에 대한 사랑임을 거듭 일깨우는 동화다.

권정생의 일생은 20세기의 모든 고통이 한데 집결한 것과도 같은 일생이었다. 부모는 먹고살려고 식민지를 떠나 제국의 수도 도쿄에서 밑바닥 삶을 살았다. 그 부모에게서 태어난 재일 조선인 2세가 어린 권정생에게 할당된 첫 번째 삶이었다. 1946년 귀국선을 타고 아버지의 고향 경북 안동으로 돌아왔으나, 해방된 조국이 안겨준 건 헐벗음과 굶주림뿐이었다. 하루 세끼 끼니를 때울 수 없었던 가족은 말 그대로 먹을 것을 찾아 안개처럼 이리저리 흘러다녔다. 한국전쟁 중에 가까스로 초등학교를 졸업한 권정생은 중학교에 갈 학비를 마련하려고 피란지 부산에서 점원생활을 시작했다. 하지만 5년의 극빈 생활이 그에게 남겨준 것은 늑막염에 폐결핵뿐이었다. 스무 살 청년의 생기를 파먹고 들어앉은 결핵은 평생토록 숙주의 몸을 떠나지 않고 창궐했다.

집으로 돌아왔으나, 가난의 냄새가 코를 찌르는 집은 결핵 환자에게 힘이 되기는커녕 남은 기운마저 빼앗았다. 슬픔과 눈물이 꼬막만한 오두막을 넘쳐 흘렀다. 결핵균이 폐를 뚫고 신장과 방광까지 덮쳤다. 병에 곯은 청년에게 유일한 위안은 교회에서 듣는 말씀이었다.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는 고통의 나날 속에 살아 있는 주검 같은 몸을 지탱해준 것이 교회였다. 64년, 겪은 것이라곤 오직 굶주림과 막노동뿐이었던 어머니가 68년의 삶을 등졌다. 동생이라도 장가를 보내야 하는데 병든 형이 지키고 있으면 누가 시집오겠느냐는 아버지의 한숨에 권정생은 이듬해 집을 떠났다. 석 달 동안 풍찬노숙보다도 못한 유랑걸식을 했다. 밥을 빌어먹고 거적때기를 덮고 자는 병자-거지에게 그 석 달은 “가장 혹독한 밑바닥 생활”이었다. 그러나 정신은 여기서 더 푸르게 살아났으니, 그는 뒷날 이때를 돌이켜보며 “일생에서 가장 보람 있었던 인생 체험”이었다고 썼다. “예수님의 40일간 금식 기도만큼 나에게 산 교훈을 일깨워준 기간이기도 했다.”(권정생, ‘오물덩이처럼 딩굴면서’)

아픈 몸으로 돌아와 보니 아버지가 몸져누웠다. 그해 겨울 아버지마저 영영 어머니 곁으로 떠났다. 결핵균이 홀로 남은 그 몸에 결정적 일격을 가했다. 신장 하나를 잘라내고 방광을 드러내는 대수술을 받았다. 의사는 남은 목숨이 2년이라고 했는데, 어쩐 일인지 2년이 지나고도 살아남았다. 죽음의 두려움을 잊으려고 몰두하기 시작한 것이 책 읽기와 글쓰기였다. 그 무렵 그는 이웃 일직교회 문간방에 종지기로 들어갔다. 새벽마다 종을 치고, 힘이 남으면 글을 썼다. 1969년 그의 첫 작품 <강아지 똥>이 제1회 기독교아동문학상 현상공모에 뽑혔다. 모두들 더럽다고 피하는 강아지 똥이 스스로 거름이 되어 민들레꽃을 피운다는 내용은 권정생 자신의 삶의 투영이었다. “‘돌이네 흰둥이가 누고 간 똥입니다’로 시작하는 이 짧은 동화는 한국 아동문학의 역사에 지울 수 없는 선을 그어놓았다.”(이현주, ‘동화작가 권정생과 강아지똥’)

82년 권정생은 16년 동안 살았던 교회 문간방을 떠나 작은 흙집으로 이사했다. 아픈 몸에서 활활 타오르는 창작열도 함께 흙집으로 이사했다. 84년 불후의 명작 <몽실 언니>가 태어났다. “절뚝거리며 걸을 때마다 몽실은 온몸이 기우뚱기우뚱했다. 그렇게 위태로운 걸음으로 몽실은 여태까지 걸어온 것이다. 불쌍한 동생들을 등에 업고 가파르고 메마른 고갯길을 넘고 또 넘어온 몽실이었다.”(권정생, <몽실 언니>) 다리를 절면서도 강인한 생명력으로 동생을 돌보는 몽실 언니는 둘로 나뉘어 불구가 된, 그러나 희망을 놓을 수 없는 한반도의 은유였다.

어린 것들, 아픈 것들을 언제나 애틋한 마음으로 감싸안았던 권정생은 이런 말을 남겼다. “역사는 잔인하지만 생명은 아름답다.” 그의 작품은 슬픔으로 가득 차 있지만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나의 동화는 슬프다. 그러나 절대 절망적인 것은 없다.” 무소유라는 말이 외려 사치스러울 정도로 완전한 가난 속에 산 그는 이렇게 말했다. “하루치 생활비 외에 넘치게 쓰는 것은 모두 부당한 것입니다. 내 몫 이상을 쓰는 것은 벌써 남의 것을 빼앗는 행위니까요.” 그는 생전에 인세로 들어온 돈을 꼬박꼬박 모아 모두 뒷세대에게 돌려주었다. 그가 남긴 마지막 말은 평생 모은 5000만원으로 옥수수를 사서 북한 어린이들에게 보내 달라는 것이었다.(고명섭기자)

권정생은 타계하기 2년 전, 그를 따르던 지인 정호경 신부의 권유로 유언장을 작성했다. 피고름 오줌을 쏟고 정신이 혼몽한 중에도 그는 자기 삶을 정리하는 글을 쓰면서 유머를 잃지 않았다. 그의 따뜻하고 겸허한 성품을 그대로 보여주는 유언장 전문을 싣는다.(고명섭기자)

유언장

내가 죽은 뒤에 다음 세 사람에게 부탁하노라.
1. 최완택 목사 민들레 교회
이 사람은 술을 마시고 돼지 죽통에 오줌을 눈 적은 있지만 심성이 착한 사람이다.
2. 정호경 신부 봉화군 명호면 비나리
이 사람은 잔소리가 심하지만 신부이고 정직하기 때문에 믿을 만하다.
3. 박연철 변호사
이 사람은 민주변호사로 알려졌지만 어려운 사람과 함께 살려고 애쓰는 보통사람이다. 우리 집에도 두세 번쯤 다녀갔다. 나는 대접 한 번 못했다.

위 세 사람은 내가 쓴 모든 저작물을 함께 잘 관리해 주기를 바란다. 내가 쓴 모든 책은 주로 어린이들이 사서 읽는 것이니 여기서 나오는 인세를 어린이에게 되돌려주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만약에 관리하기 귀찮으면 한겨레신문사에서 하고 있는 남북어린이 어깨동무에 맡기면 된다. 맡겨놓고 뒤에서 보살피면 될 것이다.

유언장이란 것은 아주 훌륭한 사람만 쓰는 줄 알았는데 나 같은 사람도 이렇게 유언을 한다는 게 쑥스럽다. 앞으로 언제 죽을지는 모르지만 좀 낭만적으로 죽었으면 좋겠다. 하지만 나도 전에 우리 집 개가 죽었을 때처럼 헐떡헐떡거리다가 숨이 꼴깍 넘어가겠지. 눈은 감은 듯 뜬 듯 하고 입은 멍청하게 반쯤 벌리고 바보같이 죽을 것이다. 요즘 와서 화를 잘 내는 걸 보니 천사처럼 죽는 것은 글렀다고 본다. 그러니 숨이 지는 대로 화장을 해서 여기저기 뿌려주기 바란다.

유언장치고는 형식도 제대로 못 갖추고 횡설수설했지만 이건 나 권정생이 쓴 것이 분명하다. 죽으면 아픈 것도 슬픈 것도 외로운 것도 끝이다. 웃는 것도 화내는 것도. 그러니 용감하게 죽겠다. 만약에 죽은 뒤 다시 환생을 할 수 있다면 건강한 남자로 태어나고 싶다. 태어나서 25살 때 22살이나 23살쯤 되는 아가씨와 연애를 하고 싶다. 벌벌 떨지 않고 잘할 것이다. 하지만 다시 환생했을 때도 세상엔 얼간이 같은 폭군 지도자가 있을 테고 여전히 전쟁을 할지 모른다. 그렇다면 환생은 생각해 봐서 그만둘 수도 있다.

2005년 5월1일 쓴 사람 권정생

여기까지가 기사다(세상엔 아직 얼간이들이 많은 것으로 보아 권졍생의 '환생'은 물 건너간 게 아닌가 싶다). 다른 자료들을 둘러보다 보니 이후에 남긴 편지도 눈에 띈다. 아마도 그가 남긴 마지막 글이 아니었을까 싶다. 

정호경 신부님.

마지막 글입니다. 제가 숨이 지거든 각각 적어놓은 대로 부탁 드립니다. 제 시체는 아랫마을 이태희 군에게 맡겨 주십시오. 화장해서 해찬이와 함께 뒷 산에 뿌려 달라고 해 주십시오.

지금 너무 고통스럽습니다. 3월 12일부터 갑자기 콩팥에서 피가 쏟아져 나왔습니다. 뭉퉁한 송곳으로 찌르는 듯한 통증이 계속되었습니다. 지난 날에도 가끔 피고물이 쏟아지고 늘 고통스러웠지만 이번에는 아주 다릅니다. 1초도 참기 힘들어 끝이 났으면 싶은데 그것도 마음대로 안됩니다. 하느님께 기도해 주세요. 제발 이 세상 너무도 아름다운 세상에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일은 없게 해 달라고요.

재작년 어린이날 몇 자 적어 놓은 글이 있으니 참고해 주세요. 제 예금통장 다 정리되면 나머지는 북측 굶주리는 아이들에게 보내 주세요. 제발 그만 싸우고, 그만 미워하고 따뜻하게 통일이 되어 함께 살도록 해 주십시오. 중동, 아프리카, 그리고 티벳 아이들은 앞으로 어떻게 하지요. 기도 많이 해 주세요. 안녕히 계십시오. 

2007년 3월 31일 오후 6시 10분 

08. 05. 04.

P.S. 어제는 아이의 체육대회가 있어서('운동회'란 말이 없어졌다!) 반나절 동안 운동장에 나가 있었다. 당초 김유정과 요네하라의 '유언'들까지 묶어서 세 사람의 유머에 대해 다루려고 했으나 여기저기 쑤시는 곳이 많아서 기사만을 옮겨놓는다. 이달 안으로 다룰 기회가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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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팀전 2008-05-04 15: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ㅜㅜ ..ㅜㅜ

로쟈 2008-05-04 18:48   좋아요 0 | URL
......

섬나무 2008-05-04 18: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루치 생활비 외에 넘치게 쓰는 것은 모두 부당하다는 선생님을 닮은 유언장이네요.
이오덕 선생님과 주고받은 짧은 편지글들이 있던데 어떤 심오한 이론이나 아름다운 문장들보다 가슴에 깊이 닿았습니다.
건강한 남자로의 환생을 잠깐 언급하는 부분이 가장 가슴 아픕니다.
환생할 유일한 이유일지도 모르겠네요.

로쟈 2008-05-04 18:05   좋아요 0 | URL
그런 태도를 초등학교 때부터 '주입'시켜야겠어요! 그럼 좀 나이지려나 싶기도 하고...

파란여우 2008-05-04 18: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난해 권샘님 댁을 갔었습니다.
안동시 일직면 조탑리 7번지...
일직교회가 저만치 보이는 얕으막한 동산 아래 아주아주 작은 집에요.
열평도 될까말까한 그 집 마당에 걸린 솥과 포도나무를 보고 한참 울먹였습니다.
모두 그 현장에 꼭 가보시길 권합니다.
그 이유는 가 보심 알게 되지요.
저는 권샘님 댁 갔다와서 한동안 글을 못썼습니다.

참고로 30여분 걸리는 의성의 사찰 '고운사'도 가 보세요.
권샘께서 즐겨 찾아가시던 곳입니다.
솔향이 그윽하니 좋습니다.

로쟈 2008-05-04 18:47   좋아요 0 | URL
사진으로만 본 곳이군요. 유택의 보존 여부를 놓고 말들이 좀 있었던 거 같은데 어떻게 됐나 모르겠습니다. 권정생 문학관이라도 꾸며지면 좋을 듯한데, 고인이 싫어하실 것 같기도 하네요...

Mephistopheles 2008-05-04 20: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월이...참 빨라요...
벌써 1주년이라니, 1년동안 기가막힌 일들이 참 많이도 일어나고 있기도 하고요.

로쟈 2008-05-04 20:40   좋아요 0 | URL
갈수록 가관인 것 같습니다.--;

마늘빵 2008-05-04 21: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쟈님 운동회 가서 열심히 뛰셨군요!

로쟈 2008-05-04 21:32   좋아요 0 | URL
그럴리가요! 사실 운동회랑은 별 관계가 없고, 아침에 어정쩡한 자세로 다림질을 한 시간 하는 바람에 그만... 워낙에 근육들을 잘 안 쓰는지라.--;

노이에자이트 2008-05-04 23: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며칠 전 홍성원,정공채 씨도 저 세상으로...

로쟈 2008-05-05 16:57   좋아요 0 | URL
아, 그렇지요...

프레이야 2008-05-05 11: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호경 신부에게 쓴, 권선생님의 마지막 글 앞에 먹먹해집니다.
여우님이 자세히 써 둔 주소대로 선생님의 집에 꼭 가봐야겠단 생각만
다시 합니다.... 한 시간동안 다림질을 하셨군요. ^^

로쟈 2008-05-05 16:58   좋아요 0 | URL
제가 잘하는 일이 별로 없습니다.^^;

순오기 2008-05-05 13: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작년 5월 17일 제가 '몽실언니' 리뷰를 올리고 난 두 시간 후에 그분이 돌아가셨습니다. 한동안 마음 붙이기가 힘들었던 기억이 나네요. 권정생님 같은 분을 또 만날 수 있을까요?
광주의 5.18뿐 아니라, 4년전 5월 18일에 돌아가신 시어머님 제사도 있고 5월은 제게 여러가지로 근신하게 하는 달이랍니다.

로쟈 2008-05-05 16:56   좋아요 0 | URL
그런 인연이 있으시군요.^^;
 

막간에 어제 읽은 한겨레21의 칼럼을 옮겨놓는다. 문학평론가 신형철이 읽은 시집 <배꼽> 얘기다. 보다 구체적으론 '이것이 날개다'란 시 얘기다. 한 장애인의 죽음을 소재로 한 시인데, 평론가와 마찬가지로 나도 이런 소재의 시를 좋아하지 않지만 시인의 (의도하지 않은?) 반어법은 기억해둘 만하다. "좋겠다, 죽어서…"

한겨레21(08.04. 24) 좋겠다, 죽어서…

‘장애인 차별금지 및 권리구제에 관한 법률’이 4월11일부터 시행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속으로 놀랐다. 이런 법이 여태 없었단 말인가. 실은 놀랄 자격도 없는 것이다. 언제 관심이나 있었던가. 나는 장애인이 아니다. 진심으로 다행이라 생각한다. 그저 가끔, 내가 갑자기 장애인이 되어도 그녀는 나를 사랑할까, 하는 철없는 생각이나 해본다. 드문 일이지만, 장애인들의 일상을 TV로 엿보면서 훌쩍거리기도 한다. 알량한 눈물이다. 그들의 삶이 아파서 흘리는 동정의 눈물은 내가 ‘정상’임을 안도하는 감사의 눈물과 은밀하게 뒤섞인다. 최근에 읽은 시 한 편 때문에 이런 서론이 필요했다.

문인수 시인의 다섯 번째 시집 <배꼽>(창비·2008)이 출간됐다. 1945년 출생, 1985년 등단. 등단도 늦었는데 무명의 시간도 길었다. 시인의 이름이 문단에 회자되기 시작한 게 불과 몇 년 안 된다. 그 몇 년 동안 이 시인은 어느 한 대목에서는 꼭 한 번 낮은 한숨을 쉬게 만드는 시들을 써냈다. 그 시들이 이번 시집에 고스란히 묶였다. 내키는 대로 아무 데나 펼쳐 읽다가 ‘이것이 날개다’라는 제목의 시에 걸려 넘어지고 말았다. 시를 읽는데, 기습처럼 눈물이 고여들어, 그 눈물이 잦아들 때까지 가만히 도사려야 했다. 문태준의 ‘가재미’ 이후 처음이었다.

“뇌성마비 중증 지체·언어장애인 마흔두살 라정식씨가 죽었다./ 자원봉사자 비장애인 그녀가 병원 영안실로 달려갔다./ 조문객이라곤 휠체어를 타고 온 망자의 남녀 친구들 여남은 명뿐이다./ 이들의 평균수명은 그 무슨 배려라도 해주는 것인 양 턱없이 짧다./ 마침, 같은 처지들끼리 감사의 기도를 끝내고/ 점심식사 중이다./ 떠먹여주는 사람 없으니 밥알이며 반찬, 국물이며 건더기가 온데 흩어지고 쏟아져 아수라장, 난장판이다.” 첫째 연이다. “그 무슨 배려라도 해주는 것인 양”을 제외한다면(이 구절, 참 야속하고 절묘하다) 죄다 덤덤한 진술로만 돼 있다. 시인이 이런 식으로 시치미 떼면 읽는 쪽이 외려 조마조마해진다.

“그녀는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이정은씨가 그녀를 보고 한껏 반기며 물었다./ #@%, 0%?$&*%ㅒ#@!$#*? (선생님, 저 죽을 때도 와주실 거죠?)/ 그녀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왈칵, 울음보를 터뜨렸다./ $#?&@\?%, *&#… (정식이 오빤 좋겠다, 죽어서…)” 둘째 연이다. 빈소의 아수라장 앞에서 자원봉사자 그녀의 마음이 이미 위태위태한데, 장애인 이정은씨가 힘겹게 말을 밀어내자 그녀는 끝내 운다. “좋겠다, 죽어서…” 아, 뭔가를 무너뜨리는 말이다. 뭔가를 쑤셔박는 말이다. 이 구절에서 아득했다. 너무 슬프면 그냥 화가 난다.

“입관돼 누운 정식씨는 뭐랄까, 오랜 세월 그리 심하게 몸을 비틀고 구기고 흔들어 이제 비로소 빠져나왔다, 다왔다, 싶은 모양이다. 이 고요한 얼굴,/ 일그러뜨리며 발버둥치며 가까스로 지금 막 펼친 안심, 창공이다.” 마지막 연이다. 이제야 시인이 끼어든다. 정식씨는 뇌성마비 장애인이었다. “몸을 비틀고 구기고 흔들어” 겨우 말했다. 몸에서 빠져나와 날아오르려 몸부림쳤던 일생이었는가. 그리 되어서 라정식씨의 얼굴은 이제 이토록 고요한가… 시인은 이렇게 이해해버렸고, 읽는 나도 수긍해버렸다. 그래야 망자의 영혼에 날개를 달아줄 수 있으니까.

천성이 모질어서인지 본래 이런 소재의 시를 좋아하지 않는다. 어떤 이들의 슬픈 삶을 한없이 슬픈 눈으로만 들여다보아서 기어이 영영 슬픈 삶으로 만들어버리는 시들이 거북했다. 사회적 약자를 재현하는 일은 그렇게 어렵다. 시의 의식이 동정의 눈물을 흘릴 때 시의 무의식이 감사의 눈물을 흘리는 사태를 힘껏 막아내야 하기 때문이다. 이 시는 어떤가. “좋겠다, 죽어서…”라는 아픈 말을 모질게도 옮겨놓았고, 그 말에 동의한다는 듯 시를 마무리했다. 이 덤덤한 듯 원숙한 기교 아래로 사무치는 진심이 저류한다. 시인이 끝내 절제한 그 문장을 경박한 내가 대신 써야겠다. “세상의 모든 정은씨, 살아서, 꼭 살아서 행복하십시오.”

08. 04.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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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팀전 2008-04-25 13: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 제가 지금 막 한겨레 21에서 이 글을 읽고 왔습니다.이런 우연이...

로쟈 2008-04-25 21:55   좋아요 0 | URL
동선이 비슷하군요.^^

마노아 2008-04-25 15: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제는 뇌성마비 장애가 있는 친구가 장애로 인한 비뚤어진 자세로 허리신경이 손상이 됐다고, 너무 아파 입원했다고 전화가 왔어요. 뭐라... 할 말이 없더라구요. 이 시를 보니, 참 먹먹하네요...

로쟈 2008-04-25 21:55   좋아요 0 | URL
그게 그렇습니다.--;

Joule 2008-04-25 20: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보고 있으면 마음이 불편하고 불안해서 장애인에 대해 저는 차별해요. 인간극장을 즐겨 보지만 그마저도 장애인이 나올 때는 아예 보지 않아요. 그래서 잘 써진 저 시와 기사를 읽으며 저는 또 안절부절해요. 내가 장애를 갖게 되어도 장애자를 가진 사람으로서의 나를 저는 잘 용납하지 못할 것 같기도 해요.

로쟈 2008-04-25 21:56   좋아요 0 | URL
여하튼 직시하기도 회피하기도 어려운 노릇입니다...
 

오랜만에 한국문학 신간 소개기사를 옮겨놓는다. 그동안 별로 읽을 시간도 없었지만 눈에 띄는 작품들도 드물었던 게 아닌가 싶다. 이번에 나온 책들은 젊은 작가들(이젠 30대까지는 모두 '젊은 작가'로 통칭된다)의 두번째 소설집이다. 동시대 젊은 작가들이 어디쯤 걸어가고 있는지 확인볼 수 있을 듯하다...

한국일보(08. 04. 25) 두 번째 소설집 낸 김중혁·손홍규

2000년대 초 등단해 개성적인 작품 세계로 호평받고 있는 소설가 김중혁(37), 손홍규(33)씨가 나란히 두 번째 소설집을 냈다.

■ '악기들의 도서관'
김중혁씨의 <악기들의 도서관>(문학동네 발행)엔 올해 김유정문학상 수상작 '엇박자D'를 비롯한 8편의 단편이 실렸다. "습관적ㆍ기계적으로 존재하는 작은 사물들에 훈김을 불어넣어"(소설가 이기호) 관습을 유쾌하게 깨뜨리는 작품들로 주목 받은 첫 소설집 <펭귄뉴스>(2006) 이후 꼭 2년 만이다.

전부 1인칭 시점으로 쓰여진 이번 수록작엔 피아니스트('자동피아노'), 기타리스트('나와 B'), 디제이('비닐광 시대'), 악기 가게 점원('악기들의 도서관') 등 음악과 관계된 인물들이 많이 등장한다. 김씨는 "시기상 가장 앞선 수록작 '자동피아노'를 발표하고 나서 음악 자체와 음악을 소설적으로 다루는 방식에 대한 호기심이 동했다"고 말했다.

'비닐광 시대'의 디제이는 어마한 음반을 수집한 한 남자의 레코드 창고에 감금된다. "음악을 알면 뭐 해? 음악을 느끼지는 않고, 그걸 잘라서 써먹을 생각만 하는데…"라고 악담을 퍼붓는 남자의 정체는 불법 음반을 제작ㆍ유통시키는 범법자다.

'악기들의 도서관'의 '나'는 자신이 맡아보는 악기점을 온갖 악기 소리의 샘플을 제공하는 도서관으로 만들고, '엇박자D'로 불리는 박자 감각 없는 친구는 음치들의 목소리를 조합해 감동적인 하모니를 만들어낸다.

스스로를 '레고 블록'이요, '문장과 생각과 철학을 리믹스하는 디제이'로 칭하는 김씨의 문학관에 비춰볼 때 의미심장하게 읽히는 작품들이다. 하지만 김씨는 자기 작품을 '메타 소설'로 읽는 시각에 대해 "흥미로운 독법이지만 그런 걸 의도하고 쓴 건 전혀 아니다"라고 손사래 친다.

'매뉴얼 제너레이션'의 주인공은 매뉴얼(기기 사용설명서) 작가이자 양질의 매뉴얼을 모은 잡지를 만드는 편집장. 잡동사니에 기발한 상상력을 보태 잘빠진 소설을 빚어내는 김씨의 장기가 십분 발휘된 작품이다. 세상의 모든 매뉴얼은 "머리 속에다 거대한 밑그림을 그려주"는가 여부에 따라 좋은 매뉴얼과 나쁜 매뉴얼로 나뉘며, 매뉴얼의 문장들은 "창작하는 것이 아니라 발굴하는" 것이라는 게 '나'의 신념이다.

김씨는 "머릿속에 새로운 공간과 동선을 완벽하게 그린 후에 비로소 쓰기 시작한다"며 "이 삼차원 공간을 이차원 텍스트로 정확히 묘사하는 걸 중시한다는 점에서 내 소설 쓰기는 좋은 매뉴얼 쓰기인 셈"이라 말했다. 정교하게 배치된 가상 공간, 간결하고 투명한 문장의 묘미가 여전한 김씨의 이번 작품집엔 첫 책에 없던 사람 냄새가 풍긴다. '사람-사물'의 관계를 천착하던 작가의 관심이 '사람-사람'의 관계에도 옮아간 까닭이다.

'엇박자D' '유리방패' '무방향 버스' '나와 B' 등의 작품엔 주목받지 못하는 존재들에 대한 작가의 온기어린 시선이 묻어난다. 일러스트 솜씨로도 정평을 얻고 있는 김씨가 직접 꾸민 '작가의 말' 코너가 독특하다.

■ '봉섭이 가라사대'
손홍규씨는 첫 소설집 <사람의 신화>(2005) 출간 이후 발표한 단편 10편을 <봉섭이 가라사대>(창비 발행)에 묶었다. 그가 장편 <귀신의 시대>를 발표한 시점(2006년)을 기준으로 이 소설집은 뚜렷한 결절을 맺는다.

2005-2006년 작품엔 반인반수적 존재들이 포진한다. '뱀이 눈을 뜬다'의 주인공은 다리에 뱀-뱀 머리가 그의 성기다-을 품고 살고, 표제작 속 소싸움꾼 '응삼'은 평생 소와 더불다가 얼굴마저 소를 닮게 된 인물이다. 비인간ㆍ비현실의 설정을 통해 손씨는 근대사회의 억압성을 들추거나, 거기에 균열을 낸다. '뱀-인간'의 다리에 뱀이 들어앉은 것은 아버지에 이어 도시 노동자가 된 그가 첫 해고를 당한 날 새끼발가락을 철문에 찧게 됐을 때다.

한 도시에 회자하는 '걸레 신화'는 동네 남학생들에게 윤간 당하고도 '요부' '걸레'라는 낙인을 얻은 '아영'이 일으킨 엉터리 기사이적의 결과다('상식적인 시절'). 이로써 가부장제ㆍ종교의 두 다리로 버티고 선 근대사회는 저를 농락한 여성을 전설처럼 기리는 맹한 체제임이 폭로된다.

2007년 이후 쓰여진 수록작 6편엔 이런 환상적 요소가 걷혔다. 물론 분신을 모티프 삼은 작품('도플갱어')이 있지만, 그조차도 인물과 배경에서 현실적 질감이 느껴진다. 손씨는 "우회하지 말고 좀더 직접적으로 현실과 대면하자는 생각이 점점 커졌다"고 말했다.

'테러리스트'라는 단어를 제목으로 공유하는 세 편의 연작은 복수를 테마로 한, 개인적 정체성에 관한 소사(小史)로 읽힌다. 80년 광주에서 죽은 아들에 대한 복수를 평생 도모하는 '박', 이혼한 부인에게 총을 쏘다 총기사고로 되레 제 팔만 잃은 박의 또다른 아들 '정수', 불알친구들과 '강간'을 계획하다가 흐지부지하는 '승준'-정수의 아들 여자친구의 동생-을 각각 중심인물 삼은 세 단편은 세대를 거듭할수록 하찮고 사소해지는 생의 감각을 묘파한다.

습작 시절의 열정과 고뇌를 엿보게 하는 자전적 소설 '매혹적인 결말'의 결구, "그래, 악마는 되지 말아야지. 매혹적인 결말을 찾다보면, 모든 결말은 매혹적이라는 걸 잊을 수도 있으니까."(70쪽)란 문장도 한결 담백해진 작풍 변화와 맞닿아있다. 하지만 독자를 힘껏 끌어당기는, 자유자재의 유머까지 가미된 서사의 힘만큼은 여전히 우뚝하다. 손씨가 취재에 들이는 공도 오롯이 느껴진다.

남북한 문체를 번갈아 구사하는 '도플갱어'를 쓸 땐 서울 광화문 북한자료센터에서 북한 주요 문예잡지 2년치를 한 글자도 안 빼고 읽었다고 한다. 그렇게 구성한 쫀쫀한 디테일 덕에 그의 소설은 환상조차 근육질이다.(이훈성기자)

08. 04.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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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신문에서 '대담비평'이란 특이한 형식의 리뷰를 옮겨온다(http://www.kyosu.net/news/articleView.html?idxno=15816). 대상이 된 책은 김윤식 교수의 <백철 연구>(소명출판, 2008)이고 대담자는 방민호, 임영봉 두 국문학 교수이다(책에 대한 소개는 http://blog.aladin.co.kr/mramor/1904342 참조). '문학제도'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는 터라 ''백철’이라는 문학제도의 이중성'이란 타이틀이 눈길을 끌었다.

 

교수신문(08. 03. 31) '백철’이라는 문학제도의 이중성과 ‘10년의 글쓰기’

임영봉 교수(이하 임): 머리말에서 김윤식 선생님은 이 책을 내는데 10년이 걸렸다는 언급을 하고 있어요. 백철의 경우, 그동안 연구대상으로 큰 관심을 끌지 못했다는 점과 부분적인 논의에 머물렀다는 사실을 염두에 둔다면  백철의 전생애를 대상으로 삼아 ‘전체상’을 복원한 이 책의 의미는 결코 작은 것이 아닙니다.

방민호 교수(이하 방): 전체가 684쪽에 이르는 상당히 두꺼운 책입니다. 1936년생이시니까 고희를 훌쩍 넘긴 연세에 이런 대작을 출판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하나의 경이입니다. 거기에는 그분 특유의 매일 글쓰기, 매일 원고지를 매워나가는 근면함과 성실성, 자료를 찾아나가는 집요한 의지 같은 게 작용한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임: 제 생각으로는 백철이란 존재는 김 선생님에게 특별한 의미를 가지고 있지 않았을까 합니다. 일전에 제가 <교수신문>에 김윤식 선생님의 연구방법론에 관한 짧은 글을 쓴 적이 있어요. 그때 저는 선배들의 학문적 업적을 비판적으로 계승해야 할 후학의 입장에서 김윤식 선생님의 문학사 연구에서 문제시되는 부분을 거론하면서 백철에 대한 논의방식을 사례로 제시했습니다. 그때 제가 말하고자 했던 내용의 핵심은 김 선생님의 백철에 대한 시각, ‘뿌리없는 지식인’이라는 판단이었죠. 물론 그런 판단은 얼마든지 가능하지만, 문제는 그 주장이 근거 있는 설명과 이해의 결과가 아니었고, 결과적으로 그런 판단은 선생님의 의도와 무관하게 백철에 관한 선입견 같은 것을 만들어냈다는 점입니다. 김윤식 선생님도 아마도 그런 문제를 의식하고 있었고 부채라고 해야 하나, 미진함 같은 것을 오랫동안 가지고 있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그런 부채의식이 이 책을 내는데 10년이라는 시간을 요구하지 않았을까요.



방: 김윤식 선생님은 크게 두 가지로 백철을 조명하신 것 같아요. 하나는 문학평론가로서 백철, 또 하나는 문학이론가로서 백철, 이렇게 두 가지로 딱 갈라져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해방전에는 문학평론가로서의 백철, 해방 이후에는 문학연구가, 이론가로서의 백철, 이렇게 언급하신 것 같아요. 비평가와 교수, 이렇게 나눠서 말씀하시는 거죠. 물론 일관돼 있죠. 백철의 비평정신이 뭐냐 이렇게 물었을때, 그의 정신이란, 끊임없는 개방성, ‘웰컴주의’다. 뭐가 들어와도 다 받아들이는 대수용으로서의 비평정신이라고 규정하신 것 같아요.

평론가였을때 마르크시즘도 받아들이지만, 대일협력기에는 대동아공영 수용하고, 해방후에는 뉴크리티시즘 수용으로 나타났다, 이렇게 보시는 것 같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대체 내가 백철을 연구해야 할까, 자문하셨게죠. 연구를 해야만 한다면, 연구의 당위성 같은 것이 있어야겠죠. 두 가지 아니었을까요. 제 생각입니다만, 그 하나가 아비찾기. 아버지 찾기란 뭐냐? 김윤식 선생님에겐 어떤, 나름대로의 계보학이 있는 것 같아요. 김윤식 교수에게 이르는 계보학 말입니다.

제가 볼 때, 김윤식 앞에 이어령이 있습니다. 이어령 앞에 백철, 백철 앞엔? 앞이라고할건 없지만, 임화가 있죠. 그런데 그 나름대로의 계보학적 구성을 위해서 백철을 연구한 거죠. 백철이 없으면 안되겠다, 임화 연구는 일찍 했잖습니까. 상당한 성과도 거두었구요. 그럼에도 왜 백철이 필요했을까요. 이어령을 거쳐 자신에게 이르는, 서구 보편주의, 개방주의, 서구의 모든 것을 수용해내는 성향을 설명하기가 불충분했기에 말이죠. 백철이라는 매개항을 설정하지 않으면, 서구 개방주의, 서구 것을 수요하는, 끊임없이 자기 것으로 만드는, 어떤 성향을 설명하기 어려웠던 것 아닐까요? 서구를 향해 모든 것을 열어제치는, 당신의 체질, 이어령과 김윤식으로 이어져온 비평의 어떤 성향을 설명해내기 위해서는, 그 앞에 백철을 둬야만, 마음의 안정을 느낄 수 있었지 않을까. 자기 비평정신의 아비찾기라는 의도가 있다, 이렇게 생각합니다.

다른 하나는, 아비 찾기에 나선 자신이 한국근대문학연구라는 하나의 문학장을 개척하고 만들어 온 분인데, 도대체 지금 한국현대문학 연구, 한국사회에서 한국문학연구라는게 어떤 위치를 점하고 있냐라고 했을때, 백철을 연구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백철이야말로 국어학, 고전문학, 현대문학으로 구성돼 있는 삼분법적인 ‘국어국문학’의 마지막 한 축을 세운 사람 아니겠는가, 그 백철을 이어서 당신 자신이 현대문학연구라는 분과를 스스로 성숙시키는 사람이란말이죠. 그렇기 때문에 하나는 아비찾기라면, 또 하나는, 이렇게 말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당신 스스로를 중심에 위치시키는, 한국현대문학연구의 중심적 전통으로 만드는 어떤 작용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임: 제 생각도 방 교수와 같습니다. 김윤식 교수가 이 책에서 보여주고 있는 백철에 대한 시각과 논의 방식은 이전과는 크게 다른 것인데 일단, 백철이라는 존재의 전모를 염두에 두고 긍정적 측면의 ‘의의’를 읽어내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저는 그것이, 백철이라는 대상을 온전하게 이해하고자 하는 김 선생님의 고심어린 태도로 느껴졌습니다. 그게 지금 방 교수가 설명한 이 책의 내용 그 자체인거죠. 이 책에서 비로소 백철이라는 존재는 그가 있어야 할 자리, 그러니까 우리 비평사의 중요한 전통 중 하나로 검토되면서 고유한 의미를 얻고 있습니다. 실은, 분단이후 남한 비평사를 문제 삼는다면 백철을 제외할 때 온전한 설명은 불가능해집니다. 김윤식 선생은 오랫동안 미뤄뒀던 작업을 한 셈이죠. 그의 이번 작업에 어떤 내적 동기가 작용했고 관점의 달라짐 같은 것이 있었는지 궁금하지만, 어쨌든 백철의 전모를 복원한 이 책을 통해, 해방 이후 우리 비평사의 연속성을 온전하게 이해하는 데 있어 중요한 기여를 한 것은 분명합니다.

방: 저는 일제말기에서 해방으로 넘어오는 과정에서 문제적인 비평가가 둘 있다고 생각합니다. 백철도 최재서도 문제적이었지만, 모두 1908년생이지만, 저는 임화와 김기림을 중요하게 이해해요. 각자가 맡은 역할이 달랐겠죠. 일제말기에 임화,김기림 둘다 자기 자신을 지켰죠. 임화는 자신을 지키면서 했던 일이, ‘조선개설신문학사’를 연재 집필했어요. 김기림은 뭐했냐 하면, 문학사 연구는 하지 않았지만, 대동아주의라든지, 동양의 경사 등에 대해 비판하면서, 즉 그게 태평양전쟁의 정신적 거점이었는데, 그걸 비판하면서, 서구 정신의 수혈 없이는 우리 문화가 나아갈 길이 없다고 하면서, 일제 말기를 견뎌냈단 말이죠. 이 두 입장은 각자 한 방향씩을 맡으면서 일제말기를 견뎌내는 중요한 비평적 지점이 됐습니다.

그러나 해방이 왔을 때, 임화는 주체성의 길을 따라 북으로 갔고, 김기림은 개방성의 길을 따라 서구정신의 수용이라는 개방성을 추구할 수 있는 곳인 남쪽에 남았습니다. 친일파들이 득실거리든말든. 그렇지만 둘 다 전쟁의 와중에 죽었죠. 그러니까 해방이후 중요한 비평적 거점이 상실돼 버린 거죠. 특히 남쪽에서는 무너졌다고 할 수 있어요. 최재서는 대일협력으로 기울었었기 때문에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침묵밖에 없었어요.그러면 누가 있냐, 역할을 한 사람이 백철이었던 거예요. 1940년대후반에는 『조선신문학사조사』를 썼고, 1950~60년대로 나아가서는 뉴크리티시즘을 했단 말이죠. 이게 굉장히 재미있는 부분입니다. 『조선신문학사조사』는 임화의 작업(조선개설신문학사)의 연장판이거든요. 임화가 쓴 조선신문학사의 후속판이 백철의 『조선신문학사조사』라는 거죠. 백철의 뉴크리티시즘 수용은 뭐냐? 남한 대학의 제도 안으로 비평이론을 수용해 온 것, 그건 김기림 식의 서구지향과 같은 것이죠.



임: 이번 저작에서 김 선생님이 보여주고 있는 백철에 대한 시각과 평가는 이전의 그것과는 달라졌는데 그 핵심은 비평사의 전통, 더 나아가자면 한국 문학사 전반의 흐름 가운데서 비평가 백철의 의의를 부여하고자 하는 데 놓여 있습니다. 이 점을 강조할 때 이 책의 무게 중심은 해방기에서 전후 1960년대에 이르는 시기의 백철에 치중돼 있는 것으로 볼 수 있겠죠. 『문학개론』으로부터  『조선신문학사조사』를 거쳐 르네 웰렉·오스틴 워렌의 『문학의 이론』의 번역에 이르는 과정에서 백철이 담당했던 역할과 의미를 적극적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거죠.

방: 그 부분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백철이라는 존재는, 제가 앞서 지적했던 부분을 연장하면, 임화, 김기림에서 불행하게 단절된 한국문학비평사의 두 줄기(주체성을 추구하는 줄기, 개방성을 추구하는 줄기)의 계승에서 존재의미가 있다는 것입니다. 해방이후 한국문학사의 전면에 나타난 백철이, 저 단절된 두 줄기 흐름을 신문학사조사와 뉴크리티시즘 소개·수용의 방식으로 계승한 것입니다. 무슨말이냐하면, 임 교수께서 지적했듯, 그 이후의 비평이라는 건, 백철이 건설해 놓은 것이었던 셈입니다. 대학에서 비평을 이론으로 배우고, 신비평을 배우는 것, 폐허가 된 나라에서 새로운 문학을 건설할 때, 신문학사조사(비평사), 뉴크리티시즘(이론)이 두 줄기 흐름의 연장선인 거죠. 그러니까, 김윤식 교수가 봤을때, 백철이란 존재는 기묘한 거죠. 앞에서 보면 별 게 없는데, 뒤에서 보면 다르단 말예요. 지금 융성하게 된 한국 현대문학연구라는 것, 대학 학문 분과로서 한국현대문학 연구라는, 학문이란 틀의 씨를 거대하게 뿌려서 기둥을 세우고 집을 지은 존재니까, 이런 백철을 어떤 식으로든 봐야 한다는 게 김윤식 교수의 생각 아니었을까요.

임: 백철에 대한 김 선생님의 평가에 있어 핵심이라 할 수 있는 부분을 방 교수가 잘 정리해주셨습니다. 그런 의미부여를 통해 백철이 비로소 제자리에 서게 됐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그러한 평가는 백철의 삶과 문학 전체를 검토의 대상으로 삼는 데서 가능했다고 볼 수 있어요. 그렇지만, 이 책 자체는 일종의 작가연구의 형식을 취하고 있는데, 큰 줄기에서 백철의 비평사적, 문학사적 위치는 확고히 자리매김해주셨지만, 이게 어떤 식이든지 ‘연구’라는 형태이고 보면 문제가 될 수 있는 부분이 있다는 거죠. 꼭 이 책만 그런 게 아니라 그동안 해오셨던 이광수, 임화, 염상섭 연구 등이 거의 동일한 방식의, 대상에 대한 접근과 해석 방식을 보여주고 있죠. 그런데 김 선생님이 해오신 작가연구의 경우, 그것을 뒷받침하고 있는 방법이랄까 원리의 타당성에 대해서는 항상 의문을 갖게 됩니다. 그의 작가연구는 내용의 구성과 서술 방식에 있어 그야말로 자기만의 특색을 보여줍니다. 그래서 많은 대목에서, 나중에 다시 이야기하겠지만, 객관적 시각에 선 연구라기보다는, 극단적으로 말한다면, 드라마를 쓰고 있는 작가를 떠올리게 만듭니다.

방: 임 교수님 말씀은, 엄밀한 작가연구, 학문적 연구로서 필요충분조건을 충분히 갖추기보다는 오히려 당신의 이야기, 당신이 늘 강조해오셨던 모종의 서사를 제시한 것 아닌가, 여러 가지 자료를 동원해서 당신의 이야기를 서술한 것이지, 설명과 논증으로 잘 뒷받침되는 그런 학문적 연구에서는 조금 거리가 있지 않을까 라는 거죠? 이 문제는 뒤에 연구 스타일 문제에서 재론하죠. 저는, 백철에 관한 묘사 등에서 몇가지 쟁점이 추출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하나는 백철을 가치평가하는 방식입니다. 백철이 왜 훌륭하냐. 왜냐하면, 웰컴주의 때문에 그렇게 된 거예요. 모든 것을 가감 없이 수용하는 이런 태도가 한국 현대문화사나 문학사의 어떤 운명을 보여준다는 거죠.

임: 그런 판단은 비평사, 더 나아가면 우리 문학사 전반의 조건 자체를 염두에 둔 결과로 볼 수 있겠죠. 이 책에서 백철이라는 한 개인의 삶은 그가 살았던 시대의 한계 속에서 조명됨으로써 자신의 생명을 얻고 있습니다.

방: 그것이 당신의 운명이고 백철의 운명이었다, 결국 그것은 한국근대의 운명이다, 모든 걸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식민지 지식인으로서 근대라는 놀라운, 밖에서 들어온 세계, 그걸 수용할 수밖에 없었던 한국근대문화나, 근대사의 아이러니라고 해야할까. 그걸 백철이 가장 철저하게, 전면적으로 드러내기 때문에, 백철의 긍정성을…

임: 김 선생님은 그것을 ‘순진성’이라는 용어를 통해 긍정하고 있는 거죠.

방: 그렇죠. 그렇게 봤을 때, 그 관점이 쟁점이 될 수 있죠. 정직성, 순진성으로 정리하신 대목이, 과연, 비평가의 또는 작가의 덕목이 될 수 있는가 따져볼 수 있겠죠. 그러한 가치평가가 삭제된 수용방식이 문제가 돼서, 한국현대문학연구의 난맥상이 지금까지 하나의 체질처럼 전개돼 왔던 것이 아닌가 합니다. 그랬을때, 그런 약점이 될만한 것을 강점으로, 역동적으로 서술한 것에서 하나의 발상 전환을 엿볼 수 있지만, 그 발상 전환은, 저 같은 근대주의자, 근대문학의 가장 기본적인 것은 문학의 깊이, 내면성에 있다고 보는 연구자들에겐 선뜻 동의하기 어려운 부분입니다. 이 경우 내면성은 자기 행위와 선택의 준거점으로서 사유의 깊이를 추구하고, 신중하게 선택하고, 동시에 그것을 글로 쓰고 드러내는 데로 이어집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 작가나 비평가가 어떤 인생을 살든, 글을 쓰든, A라는 지점에서 B라는 지점으로 나아갈 때, 그에 걸맞는 심사숙고가 필요하다는, 그렇게 해야만 비로소 그것을 담는 그릇으로서의 문학이 심오해질 수 있다는, 근대주의적 사고 방식에서 보면, 김윤식교수의 이런 발상법 전환은 다소 좀 당황스러운 것도 사실이지요.



임: 우리가 지금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문제점을 찾고 극복하기 위한 것인데 방 교수가 지적하고 있는 그런 부분들에 대해서는 비판적인 검토가 필요하겠죠. 김윤식 선생님의 이번 저작은, 전반적인 평가에 있어, 한국 현대문학사 가운데서 비평가 백철의 존재를 인정하고 독자적 의의를 부여하고 있지만, 그 밑바닥에는 실상 뚜렷한 비판적 의식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다른 각도에서 볼 때, 백철은 이 책의 마지막 장에 이르기까지 비판의 대상입니다. 그런 점을 강조하자면 백철을 바라보는 저자의 근본적 관점은 전혀 변하지 않았다고도 할 수 있겠죠. 이 책에서 저자는 백철이 가진 뿌리 없음과 깊이 없음, 시류에 편승하는 저널리즘 감각과 세속주의에 대해 일관된 비판적 시각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백철은 ‘줄 타는 광대다’라고까지 말하고 있습니다. 백철에 대한 비판적 시각의 일관성을 강조하자면, 이 책에서 김 선생님이 내리고 있는 결론은 논리의 모순이거나 비약적인 측면을 안고 있는 게 사실입니다.

방: 그러니까, 그게 재밌는 부분이예요. 서문 마지막 단락은 굉장히 재밌습니다. 왜 백철 쓰는 데 오래 걸렸냐? 이 질문에 답해야하는 상황인데, 그것은 저자의 글쓰기의 출발점에 놓인 모종의 자의식과 무관하지 않다고 말합니다. 자기 글쓰기의 출발점에 자의식이 놓여 있다, 그 자의식이란 뭐냐? 문학이란 삶에 앞선다는 명제, 문학이 앞선다는 것은 글쓴다는 것, 작품이 삶보다 앞선다는 것이거든요. 그러기에 자신만의 개성적 주체적 글쓰기에 임해야 한다, 이것이 글쓰기의 원점이자 자의식이었습니다. 이거 버리는데 10년이 걸린 거라는 거죠.

임: 그게 지금까지 백철을 바라보는 김윤식 선생님의 관점이었습니다. 여타의 글쓰기에서도 그러했지만 한국문학 연구라는 분야에 있어서도 김 선생님은 주체의 자리, 연구자의 문제의식을 항상 강조하셨어요. 김윤식 교수의 경우, 그런 의식이 개입되지 않은 연구행위는 거의 없어요. 그의 문제의식에 견줄 때 그동안 백철이라는 대상은 여러 가지 이유에서 미달했다고 볼 수 있겠죠. 방 교수가 지적한 것처럼 머리말의 마지막 구절은 중요한 의미를 품고 있습니다. 김 선생님에게 있어서는 백철에 대한 이해 또한 결국은 대상에 자신을 투입하는 데서 가능했던 것입니다. 백철이라는 흐린 거울이 모종의 계기에 의해 임화와는 다른 차원에서 그 자신을 비추어주는 새로운 거울로 떠오른 셈이죠.

방: 지금 쟁점이랄까, 쟁점될만한 부분을 언급했습니다. 하나 더 지적하기 전에, 이 책의 내용면에서 기존에 해명되지 않았던 새로운 부분이 있는지를 개괄해야 겠지요.

임: 가장 눈에 띈 부분은, 다른 연구자들도 단편적으로 언급한 바 있지만, 백철의 이념적 지주가 천도교라는 것입니다. 백철이라는 한 개인의 통일된 의식을 문제 삼을 때 이건 아주 중요한 문제라 할 수 있죠. 김 선생님은 백철의 정신적 기반을 천도교에 두고, 그것이 비평가 백철의 전생애에 걸쳐 작용하고 있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마르크스주의나 또 다른 근대 지향성과는 구별되는 백철만의 삶과 문학에 대한 선택이 그것으로부터 비롯되고 있다는 판단이죠.

방: 저도 그점이 새롭게 느껴졌어요. 천도교는 근대 한국 종교사상사에서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했었죠. 1920년대 전후, 30년대 와서도 말예요. 그런 흔적들이 이광수에게서도, 카프 계열과의 논쟁 속에서도 나타나는데, 실제로 비평가 개인의 차원에서 천도교라는 문제가 그렇게 잘 드러나거나, 천도교와의 조우, 사상적 거점으로서 천도교 문제를 발견하긴 어려운데, 백철의 정신적 거점을 천도교라는 뿌리와 관련해 설명해나가고, 특히 동경고사 시절까지 천도교 활동이 이어져왔다고 밝혀놓은 부분은 흥미로운 대목이라고 생각합니다.

임: 김 선생님은 이 천도교라는 요소로부터 백철의 본질을 이루고 있는 일련의 ‘모호성’을 해명해 나가고자 하고 있습니다. 몇몇 사례가 있긴 하지만 문인에게 천도교의 영향이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지는 분명치가 않습니다. 제가 생각하기에는 천도교로부터 백철이 가진 모호한 성격을 해석할 수 있는 실마리를 찾긴 했지만, 명확한 결론을 제시하지는 못한 것으로 보입니다. 예컨대, 김동리의 경우와 비교해 볼 수 있겠죠. 김동리 문학을 뒷받침하고 있는 유불선이라는 사상정서적 요소는 작품과 삶 전반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어요. 백철의 경우에는 그렇지 않다는 겁니다. 이 책에서 천도교 관련 논의는 백철의 의식 내부가 아니라 외부에서 맴돌고 있다는 한계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백철과 천도교의 관련성을 비평가로서 그의 글쓰기와 삶 속에서 증명해 보이는 일은 여전히 과제로 남아있다는 생각입니다.

방: 그건 비평가로서의 백철의 체질 때문 아닐까요. 이광수는 천도교와 관련된 자기사상의 궤적을 작품 등 어떤 형태의 기록에서든 다종다양하게 남겨 놓고 있거든요. 자기에게 다가오는 사상, 기독교든, 천도교든, 다이조 생명주의든, 모두 다양하게 곱씹어서 남겨놓았다는 거죠. 그런데 백철은 그야말로 저널리스트적인 요소가 매우 강하고, 객관성과 외연성에 치중한다더라도, 자기 내면의 가치로 환원해서 풍부하게 사유하고, 그걸 바탕으로 다른 지점으로 나아가는 비평가가 아니었습니다. 학생시절까지 천도교가 강한 영향을 미쳤음에도불구하고, 천도교의 제세구민같은 구호는 맑수즈의의 용어로 곧바로 번역돼서 나타나기 때문에, 김 교수께서도 혐의만 두고 주변만 맴돌뿐 딱히 ‘이것이다’ 촌철살인 방식으로 근거를 명징하게 드러내는 데 까지는 이를 수 없었던 것 같아요.

임: 백철의 모호한 성격을 염두에 둘 때, 그를 지탱하고 있는 정신적 기반의 핵심이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은 대단히 중요한 것이고, 따라서 후속 연구를 통해 새로운 해석의 실마리를 찾아나가야 하겠죠.

방: 그와 관련해서 백철이 귀국해 처음 주장한 게 농민문학론이었다는 점을 좀더 사유해볼 수 있지 않을까요. 제가 이론적으로 딱 근거를 댈 수 없지만, 천도교쪽에서는 노동자든 농민이든, 반상, 남녀, 노소를 차별하거나 구별하지 않아요. 천도교쪽에서는 이렇게 이미 선입견 없이 농민에 접근해 있었던 거죠. 마르크스주의에서는, 노동자의 연대 대상으로 농민이 있단 말이죠. 프롤레타리아 해방, 인민해방론에 입각해서 농민이 그 다음으로 나온단 말예요. 노동자문학, 조직의 문제로 나아가지 않고, 백철이 왜 농민문학으로 나아갔느냐는, 알게 모르게 천도교 영향 아니었나 생각할 수 있단 거죠. 노동자를 중시하지 않고도 농민문학을 이야기할 수 있고, 또 그것이 논의의 주변으로 새어나간다고도 생각하지 않는 바탕에는 천도교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하지 않았을까요? 물론 당시 농민문학이 시류적인 것이었다는 점도 있었겠지만 말예요.

임: 그동안의 백철 연구는 일본 유학에서 돌아온 시점으로부터 해방에 이르는 시기에 걸쳐 있었고, 그래서 백철의 출발점과 도달점은 제대로 거론조차 되지 못했던 셈입니다. 김 선생님의 이번 저작은 그 빈틈을 매우는 작업을 함으로써 백철 비평에 대한 전체상을 수립하고 새로운 평가까지 이끌어 낼 수 있었던 것이죠. 그런 측면들이 이 책이 가지는 중요한 의미가 되겠지요.

방: 덧붙이면, 하나의 작가연구라고 봤을때, 기존의 백철 연구가 충분히 축적해 놓지 못했던 성장, 수학과정, 사상의 형성과정을 비교적 소상하게 알 수 있게 해주는 자료적 가치가 상당하다는 거죠.

임: 유년기에 대한 부분도 흥미롭죠. 그 밖에도 흥미로운 구절은 많은데 백철의 삶의 행로, 특히 일본 유학시절과 북경에서의 환각체험, 네 번의 결혼 과정에 대한 이야기가 그렇죠. 당시 북경의 분위기를 비롯해, 동경고사를 중심으로 한 일본 지식층과 문화계의 흐름에 대한 감각은 당대를 이해하는 데 꼭 필요한 부분입니다. 그런 부분은 일본어 체험세대인 김윤식 선생님만이 가질 수 있는 당대적 감각 아닐까요? 그것은 저희 세대 연구자들이 갖지 못하고 있는 어떤 부분이죠.



방: 전쟁이후, 백철의 『문학의 이론』 번역 이후 활동을 정리한 부분도 비교적 새롭지 않던가요? 기존 논의에서 언급한 것이 있긴 하지만, 좀 더 집대성하셨더군요.

임: 이 책에서 김윤식 교수가 파악하고 있는 백철의 후반기 삶의 무게는 뉴크리티시즘의 도입에 놓여 있습니다. 김 선생님은 이 대목을 많은 자료와 설명을 곁들여 강조하시고 계신데요, 제가 보기에는 다소의 아쉬움이 남습니다. 역시, 해방 이후 백철 삶의 무게는 바로 그 부분에 걸쳐 있는데, 논의의 폭이 너무 제한된 것이 아니냐는 생각이 들어요. 백철은 타계하기 직전까지 글을 계속 썼어요. 물론 70년대 후반으로 넘어 올수록, 『진리와 현실』 같은 자전적 이야기를 펼쳤죠. 문단 회고담의 중간 중간에 평론을 집필하기도 했습니다. 아마도 김 선생님이 나름의 판단을 내렸다고 볼 수 있겠죠. 백철의 후반기 삶에서 의미 있는 부분은 ‘신비평’의 도입까지다, 이렇게 판단을 하신 거죠. 김 선생님의 이번 『백철 연구』는 뉴크리티시즘의 도입 과정과  『문학의 이론』에 대한 번역의 시점을 백철의 도달점으로 제시하고 있어요.

방: 사실 그런 것과 관련해서, 이 저술이 갖는 아쉬운 부분이 없지 않은데요. 전반적으로 백철이라는 대상을, 생애와 문학을 완성해보겠다는 의지와, 그 안에 이광수, 임화 연구 등등에서 보여줬던, 당대의 사회문화적 분위기나, 풍경 이런 것을 한 개인의 삶과 관련해서 응집해 보여주겠다는 똑같은 의도를 갖고 시작했지만, 제가 생각하기에는, 연로하시게 돼 그런지, 조금 반복적인 요소들이…

임: 그렇죠. 많은 대목에서 같은 이야기가 겹치거나 반복되고 있는 게 사실입니다.

방: 이전 저작에서 겹치는 부분이 상당수가 눈에 띄고, 논의가 이 단계에서는 좀 더 심화됐으면 하는 대목에서 충분히 심화되지 못하는 요소도 없잖아 있습니다. 예를들면, 『조선신문학사조사』나, 뉴크리티시즘 수용의 의미는, 사실 조금 더 심도있는 차원에서 논의될만한 것이고, 임화의 신문학사나, 백철의 사조사와 관련해서 깊이있게 조명할 수 있었을텐데, 호흡이 좀 짧아지신 거 같아요.

임: 앞부분은 유기적으로 상당히 촘촘한데 뒤로 갈수록 서술의 긴장감이 느슨해지고 구성이 허술해집니다. 빈틈이 많죠.

방: 그렇죠 빈틈. 잠깐 이 대목에서, 백철 선생의 1960~70년대 글쓰기에 관해 언급해주시는 게 어떨까요?

임: 앞서 말했듯이 이 시기의 백철은 자전적 이야기와 문단 회고담 류의 글쓰기를 전개했는데, 김 선생님의 이번 저작 또한 후기에 씌어진 그 글들에 크게 의존하고 있습니다. 당시에 백철이 썼던 글들은 1970년대의 시점에 서 있는 원로 백철에 의해 파악된 한국 문학사의 풍경이죠. 당시에도 많은 문인들이 있었고, 그 분들 나름대로 당대적 감각으로 한국 문학사의 과거와 현재를 이해하고 있었겠지만, 산전수전 다 겪은 백철의 눈으로 봤다는 게 중요한 것이죠. 백철의 눈을 통해서만 보이는 어떤 것이 있다면, 그것은 당대 문학사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일층 두텁고 풍요롭게 해줄 수 있지 않을까요. 그런 점에서 백철이 남긴 자전적 기록과 회고담들은 전체적으로 다시 정리, 검토될 필요가 있습니다.

제가 보니까, 이 책에서 언급되고 비평가로서의 백철의 삶은  『한국문학의 이론』(1964)에서 끝나고 있습니다. 그것으로 비평가로서 백철의 삶은 막을 내렸다고 판단하신 셈인데, 그 부분도 그렇게 마무리될 게 아니라, 이후의 평문까지 검토한 뒤 평가를 내려주는 게 적절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백철 연구’라는 제목을 염두에 둘 때, 더욱 그렇습니다. 그리고 김 선생님께서 그렇게 많은 작가연구를 해오셨지만, 원자료와 2차 자료 등 관련 서지들에 대한 정리는 거의 생략하는 경우가 많았어요. 이광수 연구는 예외적입니다만, 이번의 백철 연구에서도 그런 작업들까지 해주셨다면 후학들에게 더 큰 도움을 주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방: 그렇죠. 맞습니다. 저도 해방이후 백철의 작업이 새롭게 조명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김기림이 남쪽에 남아서 한 일이, 문학개론 쓰고, 과학개론 번역하고, 『시와 시론』 같은 책을 냈단 말이죠. 그게 백철이 한 일과 똑같은 거예요, 성격상. 그런가하면, 그 이후에 김동리도, 서정주도, 조연현도, 박목월도 그런 일 많이 했거든요. 일종의 교과서적 편찬작업을 많이 했습니다. 이것은 일종의 상식과 교양을 건설하는 과정이란 말이죠. 이런 디자인을 통해서 한국현대문학의 체질이 형성됐던 겁니다. 적어도, 제도권 대학 안에서 1960~70년대까지 강력한 영향을 미쳤던 거죠. 그렇다면 그게 뭐냐는 거죠. 나라 만들기 시절, 나라의 문학 만들기에 그쳐서는 안되고, 김윤식 선생님이 아직 다 해명하지 않은 부분이라고 간주하고, 우리가 좀더 해명해야 할 부분은, 바로 그런 여러 가지 저술작업들, 한국현대문학사의 새로운 디자인 작업들이 어떤 의미, 갈래를 치면서 한국문학사에서 해방이후 어떻게 전개됐냐는 문제는 검토해볼 만한 문제입니다.



또 하나는 『진리와 현실』에서 저도 그런 생각 했어요. 김윤식 선생께서도 많이 인용하셨는데, 한국문학연구에서 많이 결락된 부분 중 하나가, 자전·회고와 관련된 평전 연구가 전무하다는 겁니다. 1960~70년대가 되면, 김팔봉, 유진오, 백철, 서정주 등등 많은 사람들이 자서전을 씁니다. 이 오토바이오그래피가 한 나라 문학에서 굉장히 중요한 부분인데, 연구가 충분히 안 돼 있고, 안 돼 있다보니 비평적 성찰의 시선도 부재합니다. 그러다보니, 자서전 서술, 평전 쓰는 게 견강부회식이 되거나, 사실에 어긋나는 부분을 과장하거나 왜곡해놓고도 부끄럼없이 늘어놓는 경우도 많은 거죠. 그래서 백철의 『진리와 현실』 같은 작업은, 자서전으로서의 성격, 스타일, 그것이 기록하고자 했던 것은 무엇인지, 어떤 문학사적 기억을 창출해냈는지 등 1960~70년대와 관련해 논의해볼 만한 가치가 있죠. 앞으로 우리가 해명해야할 부분입니다.

임: 그런 연구는 다른 작업과 비교한다면 연구자들이 훨씬 즐겁고 흥미롭게 진행할 수 있는 일이겠죠.

방: 제가 더 말씀드렸으면 하는 쟁점은 이른바 등가성론이 이번 백철 연구에도 강하게 나타난난다는 것입니다. 김동리와 견주면서 ‘등가적이다’, 김동리가 말하는 ‘생의 구경적 형식’과 백철의 ‘웰컴주의’가 본질상 같다! 라고 보는 것, 과연 그렇게 볼 수 있을까요?

임: 김 선생님은 ‘이퀄’로 보고 있어요. 그러나 본질상 다르다고 하는 게 맞겠죠. 그게 어떻게 보면 김윤식 선생님이 가진 특유의 논법이라고 해야 하나, 관점에 해당하는 것이겠죠. 어떤 경우에 김 선생님은 대단히 거시적인 시각 위에 서서, 차별성을 삭제해 버립니다. 대상을 바라보는 그의 그런 관점과 접근 방식은 학술적 연구에서 문제가 될 수 있겠죠. 그 기원과 내부적 구조를 추적해보면 그 두 개는 확실히 차이를 가진 무엇으로 드러나는 게 아닐까요. 그런 측면에서 김 선생님은 다분히 주관적이죠. 다른 분들도 느끼시겠지만 김 선생님의 논의는 어떤 의미를 지나치게 ‘과장’하거나, 반대로 ‘축소’하기도 합니다. 그런 식의 판단은 분명, 객관성의 결여로 볼 수 있습니다.

방: 도대체 근대성의 형식으로서 같다라고 하는 것이, 문학연구에서 중요할까, 백철은 이렇게 다르고, 김동리는 이렇게 다르다고 하는 게 중요할까요. 차이의 철학이야말로 현대철학이 중요하게 다루는 문제입니다. 다른 걸 같다고 환원하는 것은 위험한 논리 아닌가요? ‘같다’라고 놓는 그 순간, 모든 개별성, 차이가 무화되면서 거대 카테고리의 위압 안에 갇혀 버리게 되는 것이, 김윤식 선생님의 연구 스타일의 중요 문제점 아닐까요?

임: 김윤식 선생님은 현장비평에서도 탁월하시지만, 가장 높은 고지는 문학사 연구에 있다고 볼 수 있겠죠. 그런 문제점은, 거시적 시각과 연속성에 의해 뒷받침되는 문학사 연구 자체에서 온 것일 수도 있고, 김 선생님 자체의 문제일 수도 있겠죠. 김 선생님이 가진 학자로서의 신념 같은 것 말입니다. 학자로서 김 선생님은 자기 관점 속에서 대상을 바라보면서, 대상을 자기화하거나 아니면 밖으로 밀어내버리는 동일화의 사유와 욕망을 강하게 드러내고 있습니다. 선생님 자신은 언제나 자각적 의식을 강조하고 계시지만 말입니다.

방: 김윤식 선생님의 강점은, 연구의 구체성에 있습니다. 사실들을 제시하고 분석하고, 이를 바탕으로 논의를 확대하는 것 말예요. 그런데 지향점은 동질성, 등가성에 가닿아 있더군요. 저는 백철 연구의 앞부분에서는, 다양한 자료를 풀어나가면서 흥미롭게 시선을 잡아끄는 것은 강점이고 능력인 반면, 후반부, 모든 것을 근대라는 사상 속에서 등가화하는 것은, 저자의 일종의 욕망, 의지에 해당하는 부분이라고 봅니다. 저는 우리가 취해야 할 부분은, 앞부분에서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물론, 뒷부분에서도 우리에게, 1970~80년대, 90년대까지만해도, 등가성의 원리에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지만, 지금은, 등가성에 기반하되, 이질성을 포섭하는 쪽으로 우리가 매진해가야 하는 것 아닌가 합니다.

임: 방 교수가 말씀하신 우리의 과제에는 김윤식 선생을 포함한 앞세대의 글쓰기와 학문적 성취를 창조적으로 계승하는 문제도 포함될 것입니다. 전후세대와 60년대 세대가 남긴 유산은 분명한 의미를 가지고 있어요. 생각하기에 따라, 그 높이는 우리가 전혀 도달할 수 없는 성질의 것으로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걸 지금 우리가 어떻게 생산적으로 가져올 것인가, 가끔 그런 생각을 하게 되고, 결론적으로 우리 시대에는 김윤식, 김현 같은 글쓰기와 연구 작업은 불가능하다는 판단에 이르게 됩니다. 국문학 연구의 후속세대, 오늘날의 한국문학 연구자들은 일단, 그런 작업을 펼칠 수 있는 정신적 자유를 확보할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해 있습니다. 앞세대들은 말 그대로 ‘화전민’을 자처했습니다. 그들은 갈아엎기를 기다리는 미개지의 한복판에 서있었던 세대들입니다. 앞세대가 가질 수 있었던 행운 중의 하나는 제도로부터도 비교적 자유로울 수 있었다는 점입니다. 반면에 지금의 연구자들은 학진으로 대변되는 제도에 점점 종속되고 있습니다. 『백철 연구』처럼 10년 동안, 연구의 대상을 마음에 담아두고 작업을 해나가는 일은 불가능해졌다고 보는 게 맞겠죠.

방: 한국문학은 연구도 그렇지만, 청년성을 면치 못하는 면이 있어요. 맨바닥에서 시작하면 항상 청년이예요. 자기 스스로를 청년이라고 사고하는 한, 김윤식 교수와 같은 체계화 작업을 하기 어려워요. 외부에서 들어온 새로운 이론에 눈을 뜨고, 자기에게 축적돼온 과거를 검토하지 않는 한, 청년문학, 청년문학연구로, 청년적인 상태에서 멈추겠죠. 그것은 한국현대문학연구가, 창작이나 다른 부문과 마찬가지로, 새로운 것에 턱없이 민감하고, 동시에 자기의 과거와 익숙한 것들을 충분히 반성적으로 성찰하는 시선이 부족하다는 걸 보여주죠. 반성적 성찰이란 것을 단순히 비판적으로 봐서는 곤란합니다. 청년은 윗세대를 비판적으로 보려는 걸 좋아해요. 그렇지만 비판적으로만 보았을때 충분한 사유는 생성되지 않죠. 비판하는 시선은 앞면에서만 보기 때문에 전체를 꿰뚫어볼 수 없어요. 성찰은 뒷면을 보는, 전체적 사고가 필요해요. 이런 전체적 사고가 부족할 때, 체계화, 전통의 현대화는 어려울 수밖에 없죠. 우리 현대문학연구는 아직 이 과제에 매달려 있는 거죠. 전쟁도, 이념대립 환경도 벗어났는데, 현대문학연구 체질이 이 정도에 머물고 있다는 것은 반성해야할 대목이 아닐까요?

임: 김윤식 선생의 다음 작업은 어떤 것이 될까요?

방: 글쎄, 생명과의 싸움 아닐까요?

임: 선생님이 그동안 해오신 문학사 연구의 방향과 진도를 떠올릴 때, 특히 이번 『백철 연구』를 염두에 둔다면, 다음 작가연구의 주인공은 ‘비평가 조연현’이 아닐까 하는 기대를 하게 됩니다. 김교수님이 지녔던 장점들을 계승하기에는 어려운 환경이 됐지만, 후학들의 노력이 더 요구되는 시점입니다.(녹취·정리= 최익현 편집국장)

08. 04. 04.

P.S. 사실 요즘엔 읽을 책은 물론이고 읽어야 할 리뷰들까지도 이젠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쏟아지고 있어서 '로쟈' 노릇도 임계점에 다다른 게 아닌가란 생각마저 든다. 하루에 댓 건은 카바를 해야 하지만 중과부적이다. 밥벌이도 아닌 일에 댓 시간씩 쏟아부을 수는 없지 않은가(그래봐야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일 테지만). 게다가 나도 뭘 좀 써야겠고. 어디 뻗을 자리를 찾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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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한알 2008-04-05 09: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기적인 생각인지 모르겠지만, 로쟈 노릇(?)을 계속 해주셨으면 좋겠네요. 너무 많은 도움이 되서요...몇 분이 팀을 구성하여 협업체제를 만드시거나, 일을 지원해줄 사람을 찾는 것 같은 방법으로 노력과 시간을 분담하는건 어떨까요?

로쟈 2008-04-05 12:25   좋아요 0 | URL
네, 여러 개인적인 사정들이 겹치니까 현재의 규모를 유지하기가 좀 버겁습니다. 쏟아지는 책들을 그냥 일람하는 것조차도 이젠 어렵구요. 관심있는 전공자들이 '품앗이'를 하거나 '당직제' 같은 걸 하면 어떨까란 생각마저 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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