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뉴스까지 모두 두 차례의 남북 해군함정간의 교신 내용불능관련 내용이 있었습니다. 첫번째는 지금까지 북측으로부터도 아무런 항의가 없는것으로 보아서는 남북 합의후 공통주파수로 위급상황을 해결하자던 내용에 대해 북한측이 응하지 않았던 것으로 판단이 됩니다. 두 번째 0.7마일 남하에 따르는 호출시 응답이 없어서 2발의 함포를 발사했다는 내용은 하루가 채 지나기도 전에 거짓으로 판명이 되었는데, 이러한 사실은 다른 정보기관에서의 조사와 북측의 항의에 의하여 알려지게 된 것입니다.

 북측은 중국어선의 도피에 의한 남하를 사전에 우리 해군에게 통보를 했음을 알려왔고 이에 응신이 없는 우리 해군에 대해 항의를 하는 내용이었고 이는 우리 해군이 발표한 내용과는 사뭇 다른 내용이었기에 문제가 될 수 밖에 없는 것이며, 이러한 사실은 또 다른 정보기관에서 감청을 통했는지 확인이 된 사실입니다. 만약, 북측이 우리 함정에게 먼저 교신을 했음에도 우리 함정이 이 교신 내용을 놓쳐서 일어난 일이라면 이는 이만저만 심각한 상황이 아닐것입니다.

 기실, 서해는 동해보다 수심이 낮고 해안선도 굴곡이 심하여 남북 모두의 접근이 용이한 반면 동해는 해안선이 단순하여 쉽게 노출이 된다는 단점이 있어 남북의 함정이 서해에 집결해 있는 형태이며, 특히 수심이 낮은 서해에서의 꽃게잡이를 비롯한 어로형태와 어장 형성이 NNL인근이라서 지난번 두 차례의 교전이 있을 수 있는 상황은 늘 존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장성급 회담에서 이러한 우발적인 사태를 사전에 방지할 수 있는 조치로 국제공통주파수의 사용이 합의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동안 서해에서 발생되었던 두 차례의 교전은 우리 해군으로서는 한번의 영광과 한번의 치욕을 안겨준 일이 되었던 것입니다.

 이번 사태에서 들어난 몇 가지 문제점은 그냥 넘어갈 수 없는 일입니다. 그 첫번째는 교신을 못한 이유입니다. 현재까지는 북한측이 교신을 한것은 분명한데 우리 해군의 응신이 있었느냐는 문제입니다. 통상 주파수대에서 들리는 모든 소리는 단 하나라도 놓치지 않으려고 노력을 하며 또 놓쳐서도 안되는 것인데 남북 합의에 의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하게 된 주파수 관리는 다른 어느 주파수보다 민감하게 관리를 해야함에도 그러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다행히 평시에 일어난 일이기에 망정이지 전시라면 우리 아군끼리의 교신도 무시하는 상황이 발생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주파수의 감청은 단 한 순간도 근무자가 자리를 떠나있지 않는 관례에 비추어 이런 일이 발생할 가능성은 극히 적은데 무슨 이유에선지 아직 우리 해군의 조치에 대해서는 명확하게 밝혀진것이 없는 실정입니다.

 두 번째는 허위보고 입니다. 평시 작전권은 합참이 가지고 있으며 특히 NNL부근에서의 모든 상황은 바로 합참 지통실로 보고가 되도록 되어있는데 그 과정에서 해당 함정인지, 또는 해군의 작전계통에서인지 고의 또는 과실로 보고를 누락했다면 이는 중대한 과실로 관련자는 당연히 처벌을 받아야 합니다. "제 7일"이라는 소설은 당시 냉전상태에 있던 미국과 소련의 핵무기 관련자의 실수에 의하여 서로간의 보복적 핵 공격으로 지구가 명망을 하는 내용인데 이번의 사태는 바로 이 소설을 생각하게 합니다. 그만큼 중요한 위치에 있는 근무자는 사명감을 필요로 한다고 할것입니다.

 지금까지 대북협상에서 주도적 역할을 해 왔던것은 우리측이었습니다. 그러나 주도적 역할만 중요한것이 아니라 합의 된 약속에 대한 이행과 이에 대한 올바른 설명은 비록 심각한 실수라도 재발 방지를 위한 조치 약속과 사과로 해결을 할 수 있는 일이됩니다만, 자신들의 일순간의 안위를 목적으로 허위보고나 은폐를 하려고 한다면 이는 국가를 지키는 막강 해군이기를 스스로 포기하는 일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동안 주도적으로 이끌어 왔던 남북장성급 회담의 합의 내용이 우리 해군에 의하여 무시가 되었다면 우리는 북측에 뭐라고 옹색하게 변명을 해야할지가 걱정이 됩니다. 그러나 분명한것은 우리측이 실수를 했다면 이에 대해 북측에 정확하게 밝히고 사과를 해야 할것입니다. 또한 이에 따른 해군 관련자는 당연히 엄중 문책을 하여야 할것입니다. 비록 주적개념에 대하여 국방백서에서 북한을 제외한다고는 하지만 아직까지 우리 국군이 존재하는 이유는 바로 서로의 총뿌리를 겨누고 있는 북한임을 망각할 수는 없습니다. 설령 주적개념에서 북한이 빠진다 한들 그들과 서로 겨누고 있는 총구를 돌릴수는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정치 논리에 의하여 주적개념을 국방백서에서 삭제할 수는 있어도 현실적으로 우리의 안보가 되는 굳건한 국토방위의 임무를 스스로 포기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이번 사태를 바라보면서 어쩌면 저렇게도 눈가리고 아옹~ 식인지 한심하기 그지없습니다. 각종 무기체계의 발달로 이제는 어떤 사태를 숨길 수 없는 처지가 되어 버렸음에도 단 한순간의 추궁이 두려워서 허위 보고를 하였다면 그 보고 단계가 어디인가를 떠나서 이는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는 어리석음이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진정, 나라를 위하여 최전선의 해상에서 임무를 수행한다면 스스로의 잘못ㄹ에 대한 깊은 반성과 각성만이 국민으로부터 진정으로 사랑받는 대한 해군...그리고 대한의 국군이 되는 길이라 하겠습니다.

                               < 如       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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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산 2004-07-17 00: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뉴스에 보니 국방부에는 비상이 걸렸다죠.
자세한 내용은 모르겠지만, 걱정스럽고 황당한 뉴스였습니다.
 

<조선일보 2004년 7월 15일자 사설> 입니다

대통령 소속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가 간첩죄 등으로 실형을 살았던 3명을 직원으로 채용해 ‘조사관’으로 활동하게 한 사실이 밝혀졌다. 이 중 한 명은 북한 간첩에 포섭돼 군사기밀을 북한에 넘겨주고 공작금을 받는 등의 활동을 하다 93년 검거돼 4년간 징역을 살았고, 다른 한 명은 반국가단체인 남한사회주의노동자연맹(사노맹)의 연락 총책으로 활동하다 90년 체포돼 8년간 복역했다.

과거 민주화운동과 관련된 의문사를 규명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의문사위에 왜 간첩 출신이 조사관으로 활동해야 하는지 도무지 그 까닭을 이해할 수 없다. 더욱 이상한 것은 이런 사실이 밝혀지자 “모두 사면·복권돼서 법률적으로 문제가 없다”고 강변하는 의문사위의 태도다. 법률적 하자가 없다고 해서 누구나 아무 자리에나 앉을 수 있는 게 아니다. 더구나 의문사위가 다루는 문제들은 사회적 논란의 가능성이 많은 것들이고 그만큼 위원이나 조사관들은 균형감을 갖추어야 한다. 순수하게 민주화 운동을 했던 사람들도 많은데 의문사위가 굳이 간첩 출신이나 반국가단체에서 활동한 사람을 채용한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한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의문사위는 최근 간첩과 빨치산 출신을 민주화 운동에 기여한 것으로 인정하고 “전향한 장기수들도 북으로 보내야 한다”는 의견을 내 많은 국민들로부터 의혹의 시선을 받고 있다. 그 전에는 의문사위의 전문위원이 노동자 대회에서 화염병을 운반하다 파면되는 일이 있었고, 직원들이 대통령 탄핵소추를 규탄하는 성명을 내기도 해 노골적으로 정치적 성향을 드러냈다. 여기에다 이번엔 간첩 출신이 아예 조사관으로 활동하고 있는 사실까지 드러났으니 의문사위의 정체성과 활동 목적에 대한 의혹이 더욱 커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런 판인데도 여당은 의문사위의 지위를 더욱 강화하고 활동 범위도 넓히는 새로운 법률을 준비하고 있다. 과연 의문사위가 계속 존속해야 하는지도 엄밀하게 검토해 봐야겠지만, 존속되더라도 의문사위는 스스로 국민들로부터 받고 있는 ‘의문’과 ‘의혹’부터 말끔히 해소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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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번 간첩 활동을 했던 사람을 민주화 운동을 했던 사람으로 분류를 했던 의문사위....그 말에 일제 때 일본 총독부의 세금 추징에 이런 저런 핑계로 세금을 내지 않았던 사람들은 모두 독립군으로 인정을 해야 할것이 아니냐는 반론을 본적이 있는데, 간첩이란 그 임무 자체가 국익에 반하는 활동을 하고 있기에 당연히 피의자로써 국가가 다스리고 벌을 하는 것일겁니다. 만약, 간첩활동을 하다가 잡혀서 옥살이를 하면서 똑같이 투쟁을 하며 양심적으로 전향을 하지 않을경우 모두 민주인사로 인정을 해야 한다는 이상한 결론에 도달하게 되는데...그렇다면 근본적으로 의문사위원회에서는 간첩을 인정하지 말자는 이야기가 됩니다. 한상범교수(개인적으로는 그가 인디애너 주립대학에 다닐 때부터 그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들었었습니다)를 비롯한 의문사위원회의 구성은 대통령의 직속기관이라 대통령이 임명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정상적인 사회활동보다는 반정부 활동을 위주로 했던 사람들이 대부분인데 이러한 인적 구성요소가 어처구니 없는 결과를 도출해 내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일부에서는 죄에 대한 나름대로의 형을 살고 나왔는데 그것이 무슨 선발의 장애가 되는가고 물었는데 그 말에도 수긍이 가지 않는것은 아닙니다만, 총기를 가지고 난동을 부렸던 사람에게는 총기를 손에 쥐지 않게 하는것이 옳은것이고, 지나가는 행인을 물어버려 말썽이 났던 강아지는 당연히 목에 개줄을 매어야 하는것인데, 사람을 물었던 개에게 어쩌다 한번 그런것인데 뭐하러 목줄까지 매느냐...한다면 누가 그말에 동의를 할까요?  더구나 간첩혐의도 아닌 간첩으로 활동했던 사람이 의문사위원회의 조사관으로 활동을 했다는 것은 조금 이상한 활동이라고 여겨집니다. 세상이 바뀌어서 좌파정권이 들어서면서 그런 모험도 아무런 거리낌이 없이 행할 수 있게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더 중요한것은 타인의 사고를 전혀 무시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뚜렷한 주관이나 줏대를 가지고 추진하는 일이라 하더라도 이 세상은 어느 일파의 손아귀속에 다 넣고 주무락거릴수는 없는 것인데 구성하고 있는 인적 성분이나 이런 모든것들이 너무 한 쪽으로 치우쳐 있음은 유감이 아닐 수 없습니다.  조사건, 평가건 객관적인 중립의 입장에서 진행이 되어야 하는것은 어린아이들도 아는 일임에도 눈가리고 아웅하는 작태가 한심스러울 따름입니다. 백악관의 대 이라크 전쟁이 잘못된 정보에 의한 잘못된 전쟁이라고 최종 결론을 내린 미 상원의 발표가 그렇게 믿음직스러워 보일 수가 없었습니다. 왜? 남의 나라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서는 부러워 해야만 하면서도 국내의 제반 업무처리는 바로 그들의 국민인 우리가 올바르게 믿고 이해할 수 있도록 해주지 못하는지 답답하기만 합니다. 무엇보다 어디에고 치우침이 없는 일 처리야 말로 나중에 "의문사위원회의 의문에 대한 위원회"를 만드는 일을 없애는 것이라 할것입니다.

                             < 如       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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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7-16 16: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일본 나라국립박물관의 선임 연구관(큐레이터)인 稻本선생에게서 e-mail이 왔습니다. 금년 7월 10일부터 신라의 황금 문화재를 중심으로 특별전을 개최한다는 것입니다. 최근에 알라딘에서 구입한 도서중 <황금의 나라 신라>라는 책을 읽고 있는데 때맞춰 일본에서 특별전으로 "황금의 나라 신라"라는 주제로 전시회를 한다니 책에 나온 많은 문화재를 접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하겠습니다.

 신라의 무덤에서 출토된 금을 이용한 장신구는 머리에 쓰는 왕관부터 신발에 이르기까지 온통 금으로 장식이 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물론, 죽은 임금에 대한 부장의 성격이 강하며 실제 생활에서 사용되었을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신라 전반에 걸쳐 황금장식은 커다란 유행을 이루고 있었음이 분명하며, 이러한 장식을 세공할 수 있는 황금문화의 장인들이 많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만든 사람은 이 세상을 떠났고 남은것은 아름다운 금 세공품들뿐입니다. 전 세계의 무덤을 통틀어 경주만큼 많은 귀걸이가 출토되는곳도 없다 할 정도로 신라의 귀걸이는 그 숫자 뿐만 아니라 그 세공기술 또한 최고조의 공예기술이 담겨져 있습니다.

 이러한 신라의 유물이 일본에서 특별전으로 열린다니 당연히 구미가 당깁니다. 이번에 17일 나라국립박물관에 들려서 신라의 금 공예기술이 뽐내는 아름다움을 딸과 함께 감상 할 기회를 갖기로 했습니다. 나라는 백제의 영향과 더불어 신라의 문화가 많이 유입되었으며 특히 일본 황실의 보물창고라고 할 수 있는 "정창원"이 나라 박물관 인근인 동대사의 뒷편에 자리잡고 있으며, 정창원에는 임진왜란때 수탈해간 우리 문화재를 비롯하여 일제 강점기때 수탈해갔던 수많은 우리의 문화재를 소장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문화재는 어떤 이유에서인지 전면 공개를 꺼리며 매년 야금야금 조금씩 특별전이라는 형식을 빌어 나라국립박물관에서 전시를 하는 것입니다.

 나라는 우리 나라 경주와 유사한 일본의 고도로 경주시와는 자매결연 도시이며 매년 국립경주박물관과 인적 교류의 일환으로 학예연구원 1명씩을 상호 파견하여 두 박물관의 유물에 대해 연구토록 하고 있습니다. 이번 전시회도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경주박물관에 있는 다량의 신라 유물이 함께 전시가 되지 않을까 생각을 해 봅니다. 또 한편으로는 일본이 보유하고 있는 신라의 금공예 제품이 어떤것인가에 대한 관심입니다. 일본 당국도 신라의 금 공예기술을 인정하기에 특별전의 명칭을 <황금의 나라 신라>라고 한것 같습니다.

 이웃나라 일본...문화적으로는 우리 한반도의 영향을 많이 받았음에도 구태어 대륙으로부터의 유입이라고 주장하는 그들...그러나 문화적 측면에서의 우수성을 그들도 부인하지 못하고 있으며, 매년 정창원의 유물을 공개하는 과정에서 뛰어난 한반도의 문화적 소산물인 유물을 전시하며 그 미적 감각과 예술미에 감탄을 하고 있는데 이는 바로 삼국시대의 빛나는 문화를 그들도 묵시적으로 인정을 하는것이라 하겠습니다.

 이번 여행에서는 제가 읽고있던 <황금의 나라 신라>라는 책을 몇 권 가지고 가서 선물로 전해주려고 합니다. 아무리 그들이 연구를 했다한들 국내 학자의 연구성과만한 결과를 얻기는 어려웠을 것입니다. 물론, 특별전에 따르는 도록도 있겠지만, 그 도록이야 일본에서 수박 겉핥기 정도의 안내문에 그치지 않을 것이기에 신라의 황금을 다룬 <황금의 나라 신라>는 그들에게는 좋은 참고 도서가 될것을 확신합니다. 1400여년이 지난 지금 일본에서 열리고 있는 <황금의 나라 신라>展.... 일본의 나라국립박물관 특별전시실은 그 위대한 신라황금의 반짝거림으로 가득할것입니다.

                                                                           < 如       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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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산 2004-07-14 23: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 '황금의 나라 신라'를 서점에서..... 그림만 휘리릭, 보았어요. ^^;;

두심이 2004-07-20 11: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좋은 여행이셨겠습니다. 후기도 자세히 좀 알려주세요..궁금해요.

2004-07-20 11: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수수께끼 2004-07-20 11: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직 나라국립박물관을 못 다녀왔습니다. 이번주에는 가려고 하는데 항공편에 여유가 없어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나중에 스캐닝해서 도록 일부를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새페이퍼쓰기>는 지금 저 윗쪽에 <마이페이퍼 관리>와 함께 보이는데 저만 보이는것이 아니라 다른 님들께서도 보이는 모양이지요? 다른분이 이곳에 쓰실수 있다면 <마이페이퍼>가 아닌 <공용페이퍼>가 될텐데....저도 조금 궁금하군요...

수수께끼 2004-07-20 11: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만약, 제 <마이페이퍼>를 열어보시는 분들께서도 위에 말씀드린대로 <새페이퍼쓰기>가 보인다면 문제가 있군요. 다른분들의 <마이페이퍼>에는 <새페이퍼쓰기>와 <마이페이퍼관리>가 보이지 않던데...제것만 다른분들에게 공개가 된것인지...그것도 저에게만 주는 특권이라면 여러님들...이곳의 제 페이퍼에 많은 글들 올려주세요~~

민동기 2004-07-21 02: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상하게 수수께끼님의 마이페이퍼에만 새페이퍼쓰기가 보이는군요. 제가 쓸 수 있는지 한번 시도를 해 보겠습니다.

민동기 2004-07-21 02: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수께끼님 마이페이퍼에 제가 글을 쓰고 왔는데 저장이 되었답니다. 이상한 현상이군요

두심이 2004-07-21 18: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수께끼님! 왼쪽에 페이퍼관리에 들어가셔서 글쓰기 권한허용을 안해놓으시면 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수수께끼 2004-07-21 20: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녜...두심님 말씀처럼 했습니다. 저는 그렇게 하면 코멘트를 쓰지 못하게 만드는 것으로 알고...하하하...이제는 괜찮을 겁니다...고맙습니다 ^^~
 


 < 註 : 알라딘에서 이 책을 찾았지만 알라딘에는 없는 책인것 같습니다. 원래 "마이리뷰"에 올리려고 하였는데 알라딘에서의 검색이 불가능하여 이곳에 옮깁니다.>

 중이 된다는 것은 '텅 빈 절집'을 채우는 일이랍니다. 출가하는 것은 마음을 '텅텅 비우기 위함'이니 당연히 '텅 빈' 절집을 찾는 것일겝니다. 이 책은 이렇게 '텅 빈' 빈 자리에 살그머니 들어 앉아 빈 곳을 채우는 삶을 살아가는 스님들의 마음이 담겨있는 책입니다.

 '먹물들이기' 또는 '중물들이기'란 인간으로 태어나서 또 다른 빈 공간을 찾는 스님되는 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마음을 비워야 득도를 하기에 어쩌면 이 책은 명경지수 같은 맑은 마음이 담긴 거울같은 이야기로 가득찼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책의 표지에서도 알 수 있듯이 책의 표지를 장식하는 것들은 상단 1/4에 지나지 않습니다. 물론, 이 책이 해인사 승가대학에서 편집을 했기에 의도적으로 '빈 공간', 또는 '텅 텅 빈자리'임을 애써 강조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이 책속의 빈 공간에는 모두 64편의 수필과 시가 담겨 있습니다. 그리고 가끔 몇 장을 넘기다 보면 사찰의 여러 모습이 흑백사진으로 담겨 있습니다. 그런데, 그 사진 마저도 엄숙합니다. 아마도 수행승의 힘든 모습이 느껴지는 사진이기에 그렇게 가슴속에 와 닿는것이 아닐까요?

 왜? 험난하다면 험난하고, 재미있다면 재미 있는 인간 세상을 떠나 '텅 텅 빈 공간'에 안주하려고 할까요? 아니, 안주가 아니라 새로운 고행의 삶을 새롭게 시작하려 할까요?  그리고 미지의 세계에 첫 발을 내딛는 그들의 마음은 어떤 설레임과 기대감으로 가득 차 있을까요?  부처님의 가르침에 충실할것을 맹세하는 상강례를 치루고 간경을 하는 스님들의 마음속은 정말 거울 처럼 맑은 마음일까요?

 그러나 스님들은 그렇지 않음을 이야기 합니다. 인간이기에...인간의 굴레를 쉬이 벗어나지 못하기에 겪는 종교적, 정신적 갈등을 살짜기 속삭이고 있습니다. 안거에 들어가 면벽수도하는 기간이 얼마나 고되고 힘들었으면 부처님 몰래 손가락 셈으로 해제일을 꼽았겠을까요? 그리고는 그런 행위의 약싹빠름에 스스로를 질책합니다. 그들은 '텅 빈 공간'에 속세의 욕심으로 가득한 마음속을 '텅 텅 비우기'위해서 이곳에 왔음에 어리석은 스스로의 짧은 생각에 웃음 짓는지도 모릅니다.

  젊은 그들이기에 만남도 있고 이별도 있습니다.  애써 수많은 얼굴들을 지우려 한다해도 다 지울수는 없습니다. 인간 세상의 연결고리는 그렇게도 모질고 끈질긴 모양입니다. 그런 와중에 고뇌하고 번뇌하며 '먹물들이기'를 게을리 하지 않는 스님들의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오죽 마음을 씻기를 바랐으면 절간을 건너는 다리 조차도 마음을 씻는다는 뜻의 '洗心橋'라고 했을까요?

 산문을 들어서고 깨달음을 얻는다는 마음이 설 때면 그들은 산문을 나섭니다. 산문을 들어 선 모든 사람들이 깨달음의 길을 떠나지는 않습니다. 그중에는 많은 사람들이 '먹물들이기'를 마치지 못하고 산문을 나서고야 맙니다. 그만큼 '먹물들이기'는 힘든 일입니다. 이런 '먹물들이기'의 과정도 간간히 들려 줍니다. 늘 산중에만 있기에 그들은 자연을 품을 줄 알게 됩니다. 그 속에는 소나무도 있고, 올챙이도 있고, 참새도 있고, 다람쥐나 청설모도 있습니다. '먹물들이는 사람'들에게는 이들 모두가 친구이며 동반자인 셈입니다. 이들은 인생 전부를 진리를 탐구하는것에 투자하는 일종의 투기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 투기꾼이 속내를 살그머니 들어내고 있습니다.

 제대로 된 '먹물들이기'를 마치면 눈 마저도 투명합니다. 늘 맑기에 거짓으로 사물을 보지 못하며 가식을 부릴 수 없다는 스님의 말씀처럼 이 책 속에서는 가식을 찾을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이들은 이 책을 출간하며 글이 성글다(서투르다)고 했지만 투명한 마음으로 쓴 글이기에 그 성금마저도 찾아볼 수 없는것 같습니다. 지금 이 시간에도 '먹물들이기'에 열중하고 있는 산중 사찰의 스님네들에게서 어서 빨리 커다란 솥 속에서 김이 모락거리며 먹물이 제대로 들기를 기원해 봅니다.

                                                                            < 如      村 >

     * 이 책은 해인사 승가대학 수다라편집실에서 편집하고 부흥기획 출판부에서 1994년에 초판을 발행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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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바레인과의 평가전에서 첫 골은 "이동국"선수의 발에서 나왔습니다. 한동안 이동국은 월드컵 대표선수에서도 탈락되는 아픔을 지닌 비운의 축구선수였고, 히딩크 감독의 눈밖에 난 미운 오리새끼였습니다. 그가 입대할 당시에는 국가대표 상비군이었습니다. 운동선수가 군에 입대를 하면 국가대표에 선발이 되어 있는 경우에는 훈련소에는 잠시만 들렀다가 바로 훈련에 소집이 되도록 되어 있어 작년 3월에 군에 입대후 7월까지 논산훈련소에서 잠시 머물다가 바로 대표팀에 합류했었는데 최종 명단에 끼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히딩크 이후에 열심히 하여 대표팀에서 불러주기만을 학수고대 했었는데 불행하게 발등뼈를 다치게 되었던 것입니다.

 발등이 다 나은 다음인 작년 11월 이동국은 논산훈련소에 입소하였고 금년 1월초에 이제야 제대로 된 군인으로 우화를 한 셈입니다. 운동선수들은 국익이 우선되는 경우에는 먼저 대표팀의 소임을 마치고 훈련소는 나중에 가서 훈련을 마치게 되는데 이동국이 바로 이런 경우에 해당이 되는 셈입니다. 그런 이동국이 이번 본프레레 감독의 황태자로 일찌감치 새로 감독을 맡은 본프레레의 눈에 띄인 것인데 훈련소에 다녀오기 전의 이동국과 훈련소를 다녀온 이동국은 많이 달라져 있었습니다. 뛰어다니며 운동장을 휘젓는 모습도 훈련소 입소전의 상대 골문에서 어슬렁거리다 찬스가 나면 골을 날리는 그런 모습이 아니라 수비에도 저극적으로 가담하는...이제는 팀을 위한 행동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사실, 이동국의 경기 모습을 보노라면 천부적인 선수구나!...라는 감탄사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만큼 이동국 선수의 축구에 대한 감각은 뛰어났습니다. 올림픽팀의 조재진도 상무가 발굴한 보배였지만 이동국 선수는 버림받은 보석이었던 셈입니다. 이 두 선수 이외에도 많은 선수가 있지만 이들이 버틴 상무는 용병이 한 명도 없이 프로축구의 중위권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동국 선수는 한 때는 많은 여성팬을 몰고 다니는 귀공자였습니다. 생긴것은 얼마나 잘 생겼나요? 키도 크지만 얼굴은 탤런트 못지 않게 잘 생겼으니 그의 경기하는 모습을 보기 위한 여성팬은 늘 바글바글 하답니다. 그러나 제 입장에서는 이동국도 한 사람의 건장한 국방의무를 짊어진 장정일 따름이며 달리 보이지 않습니다. 그런 이동국 선수가 가까이 있다는 것을 알게된 제 딸이 이동국 선수의 싸인을 받아달라고 해서 몇 장 받아다 준적이 있었습니다만, 제 개인적으로는 운동 선수에 대한 커다란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편이기에 누가 운동을 잘하기에 그 선수만을 유달리 아낀다거나 편애하지는 않습니다.

 이동국 선수는 그의 게으름 만큼이나 사생활이 문란했었습니다. 바로 이런 점이 운동 선수로서 갖추어야할 가장 선행되는 덕목을 위반했다고 판단한 히딩크는 과감하게 이동국 선수를 잘라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다른 선수와는 달리 병역 혜택을 받지 못하고 군 입대를 해야 했던 이동국 선수는 입대 초반에는 그의 의지처럼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었습니다. 대표 상비군에 들어가서도 히딩크가 떠났기에 잘만 하면 주전 자리를 꿰찰수 있었으련만 예의 그 게으름이 그를 더 이상의 선수로 만들어 주지 못했고, 최종 엔트리에 그의 이름은 들어있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훈련소를 마치고 다시 복귀한 이동국 선수는 분명 달라져 있었습니다. "군대가면 사람된다"는 말과 "군대가서 사람 버렸다는 말"이 공존한다지만  이동국 선수는 사람이 아닌 축구선수로 거듭 태어 난 것입니다. 급기야 그는 지난 6월 29일 국가대표로 소집이 되었고 연이어 부동의 공격수로 좋은 활약을 보이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그에게서는 황태자의 모습은 보기 어렵습니다. 군복을 입은 한사람의 군인으로서 거대한 국방조직의 일원으로서의 착실한 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제가 보기에는 과거의 끈기없는 이동국 선수가 아니기에 대표팀에서 오랫동안 장수할 것 같습니다. 적어도 본프레레 감독이 제대로 보았고, 그가 지금 감독의 사랑을 한 몸에 가득 받는 황태자일지라도 이제 더 이상 그에게서 거만함을 찾아보기는 어려울것 같습니다.

 이동국선수가 국내에서 열심히 활동하는 동안 광주 상무팀은 자매도시인 중국의 광주시가 주최하는 4개국 초청 국제축구대회에서 우승을 하였습니다. 결승전은 광주시팀(중국의 꽝쪼우)과 치루었는데 2:0이라는 스코어를 기록하였습니다. 이제 이동국 선수는 당분간은 소속팀인 상무팀에서의 활동은 어려울것 같고 그만큼 상무팀의 전력은 공격의 핵이 빠졌으니 꾸려나가기 힘들겠지만 국가를 위한 대표팀 발탁은 개인의 영광이며 상무팀의 경사이기에 나머지 선수들로 빈 공백을 메워 나가야 할것입니다.

 모처럼 제 2의 축구인생을 시작하는 이동국 선수...모두가 바라던 국가 대표팀의 주 공격수로서 감독의 총애를 받는다는 이유로 "황태자"라는 별명을 얻었으니 최선을 다해서 올림픽에서도 좋은 결과가 나오기를 기대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 如       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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