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두서의 초상화에 관련된 의문점이 풀렸다고 야단법석입니다.
이 기사를 접하면서 같은 길을 걷는 사람으로서 답답함을 금할길이 없습니다.
아랫글은 배혜경님의 서재에 이와 관련된 기사에 밑글을 단 내용입니다.
사족 한가지만 달자면...
미술사학계에서 불화나 초상화 등의 제작과정에 임해보신 분들이 없이 단순히 작품 가지고 연구를 했기에 일어나는 해프닝입니다.
아마도 불화나 초상화를 직접 제작하셨던 분이라면 이 문제에 이렇게 어렵게 답을 구하지 않게 될것입니다. 문제는 실제 불화나 초상화를 그리신분들이 정상적인 학문을 이행할수 없어 체계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입지를 갖추지 않았기에 이 문제에 접할 수 있는 여지가 없어 방관하는 형태라는 점입니다.
이 세상에 아무리 뛰어난 화가도 밑그림 없이 바로 원그림을 그리지 못합니다. 밑그림은 일단은 바탕이되는 한지나 명주 바탕에 유탄으로 그려지게 됩니다. 대충 그려지지만 초본이 되기까지 기본적인 윤곽을 잡게 되는 것이며 그 유탄으로 그린 초본을 바탕으로 정밀하게 밑그림을 그리며 그 밑그림을 초본(草本)이라고 하며 초본을 바닥에 놓고 다시 원그림의 형태를 본뜨게 됩니다(이렇게 하여 초본을 남기는 경우도 있고 초본에 바로 채색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모 티비의 문화재 관련 프로그램에서 가끔 이러한 밑그림이 나오는 것을 보신 경험이 있으실 것입니다. 이런 밑그림은 원그림의 바탕이 되었으니 당연히 원그림과 거의 흡사하되 채색만 되지 않은 것입니다. 지금도 초상화나 불화를 분리하다보면 밑그림을 아래에 배접하고 윗그림을 그린 형태를 많이 보게 됩니다.
이러한 제작 과정을 사실은 미술사학자들이 잘 모르고 있기에 이번과 같은 일들이 발생을 하는 것입니다. 제작과정을 알면 밑그림에 당연히 귀와 옷깃이 그려졌으리라는 것은 다 아는 사실인데 말입니다.
이러한 문제로 갑론을박 하였던 자체도 학자로서는 창피하게 생각을 해야하는 일입니다. 갑론을박 이전에 제작과정을 알려고 노력하였더라면 답을 알수 있었을텐데 말입니다.
지금도 학자들은 불화를 그리거나 초상화를 그리는 분들을 인정하려 하지 않고 있으며 특히 불화나 단청에 대해서는 학문 자체로 인정하려 하지 않는 경향이 강합니다. 말 그대로 기능인이라는 것이 이유겠지만 불화나 회화, 초상화에 있어 전반적으로 제작과정을알지 못하면 이번 윤두서 초상화 같은 웃지 못할 일들이 마치 새롭게 발견하는양 발표가 되는 것입니다.
한가지 안타까운것은...불화사나 초상화원들이 학문의 길로 들어서야 한다는 점입니다. 그들은 기술을 익히느라 공부할 틈이 없어 학위는 물론, 제대로된 학문의 길로 접어들 기회가 없기에 이런 문제를 소명할 수 있음에도 그 기회를 갖지 못하는 것입니다. 요즘은 학문을 먼저 한 다음에 불화나 초상화에 입문하여 체계를 갖추어 나가지만 이는 근래의 일로 이들이 나중에 학문의 중심권에 서게 되면 이러한 논쟁은 그 종지부를 고하게 될것이라는 생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