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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난 술꾼 - 임범 에세이
임범 지음 / 자음과모음 / 2011년 11월
평점 :
스무 페이지 정도 읽으며 '뭐, 이런 시시껄렁한 얘기를 하나.' 싶었다.
중간쯤 읽으면서는 큭큭 웃음도 나고 책을 덮으면서는 묘하게 끌려서 좋았다.
자신과 가까이 있는 술꾼들의 매력을, 자기방식으로 잘도 풀어내서 즐거웠다.
나는, 방배동에서 작은 술집을 한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만 한다. 빨간 날은 쉰다.
가게 영업시간도 여섯시간 정도만 한다.(누군간 뻥이라고 할 것이다. 그래, 다섯시간 쯤.)
소주도 호프도 막걸리도 없다. 그래서 단골들 위주다.
7080 이라는 말은 촌스러워하지만 올드팝을 튼다. 12시가 넘으면 가요도 가끔 틀고..
주로 남자들이 많다. 넥타이 부대들이 많고.
그들은 접대를 하러 오기도 하고, 회식을 하러 오기도 한다.
친구들 끼리도 온다. 연령대가 높아 안구정화되는 옵하들은 없다.
그들이 얘기한다. 대한민국 사회를 파기도 하고, 종교 얘기도 하고(술자리에서 꼭 하더라.),
골프 얘기도 하고, 그런 저런 얘기를 조금하다가 음악 얘기를 하면 바로 애들이 되버린다.
말투도 바뀐다. 그때 그시절로 돌아가버린 듯하다.
가게 한켠에 옛 콘서트에 관한 포스터가 붙여 있다. 그 자리에 앉는 사람은 꼭 싸운다.
자기 기억이 맞다면 이런 공연은 없다, 있다로. 다들 스마트폰은 들고 다니면서 검색하며
싸우는 사람은 없다. '남자는 철들면 죽어.' 하는 남편 말이 맞다.
가게를 하며 남자들이 조금 이해가 됐다. 샐러리맨들의 비애랄까.
나도 직장생활을 했었지만 그렇게 리얼하게 겪지는 않았다.
늙어가는 아빠에게 안쓰러움이 느껴졌다.
내가 아는 술꾼, 남편 친구다.
자기하고 싶은 일을 하는 사람이 많지 않듯, 이 친구도 성향과는 다른 일을 한다.
일자리로 술 마시는 날이 많아 견디기가 버거워 보인다.
안좋게 마신 날은 집앞 학교운동장에서 양복차림에 구두로, 달리기를 몇바퀴해야
좀 살 것 같다고 했다. 그래도 안되면 남편한테 전화한다. 보고 싶다고.
가끔 잘 참아내고는 다음날 전화가 오기도 한다. 나, 잘했지? 하며.
지난 주말엔 둘이 술마시고 길에서 달리기 시합하다가 넘어져서 친구가 손바닥이
까졌다. 몸은 달리고 있는데, 다리가 안 움직이더란다. 으이그.
셋이 가끔 만나 술마시면 꼭 다음날 지장있게 마신다. 둘은 안헤어지려고 하고,
나는 맨날 혼내고. 그래도 요즘은 착해져서 말을 잘듣는다.
술은 역시 좋은 사람과 만나 마시는 게 최고의 안주인 것 같다.
내일 이시간쯤, 한량을 소망하는 남편과 한량하면 잘 해낼 자신이 있다고 우기는 그 친구와
제주 앞바다에서 소주를 기울이고 있을 것이다. 여행가는 게 아니고 술판 바꿔 마시려는 심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