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두서의 초상화에 관련된 의문점이 풀렸다고 야단법석입니다.

이 기사를 접하면서 같은 길을 걷는 사람으로서 답답함을 금할길이 없습니다.

아랫글은 배혜경님의 서재에 이와 관련된 기사에 밑글을 단 내용입니다.

사족 한가지만 달자면...
미술사학계에서 불화나 초상화 등의 제작과정에 임해보신 분들이 없이 단순히 작품 가지고 연구를 했기에 일어나는 해프닝입니다.
아마도 불화나 초상화를 직접 제작하셨던 분이라면 이 문제에 이렇게 어렵게 답을 구하지 않게 될것입니다. 문제는 실제 불화나 초상화를 그리신분들이 정상적인 학문을 이행할수 없어 체계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입지를 갖추지 않았기에 이 문제에 접할 수 있는 여지가 없어 방관하는 형태라는 점입니다.

이 세상에 아무리 뛰어난 화가도 밑그림 없이 바로 원그림을 그리지 못합니다. 밑그림은 일단은 바탕이되는 한지나 명주 바탕에 유탄으로 그려지게 됩니다. 대충 그려지지만 초본이 되기까지 기본적인 윤곽을 잡게 되는 것이며 그 유탄으로 그린 초본을 바탕으로 정밀하게 밑그림을 그리며 그 밑그림을 초본(草本)이라고 하며 초본을 바닥에 놓고 다시 원그림의 형태를 본뜨게 됩니다(이렇게 하여 초본을 남기는 경우도 있고 초본에 바로 채색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모 티비의 문화재 관련 프로그램에서 가끔 이러한 밑그림이 나오는 것을 보신 경험이 있으실 것입니다. 이런 밑그림은 원그림의 바탕이 되었으니 당연히 원그림과 거의 흡사하되 채색만 되지 않은 것입니다. 지금도 초상화나 불화를 분리하다보면 밑그림을 아래에 배접하고 윗그림을 그린 형태를 많이 보게 됩니다.


이러한 제작 과정을 사실은 미술사학자들이 잘 모르고 있기에 이번과 같은 일들이 발생을 하는 것입니다. 제작과정을 알면 밑그림에 당연히 귀와 옷깃이 그려졌으리라는 것은 다 아는 사실인데 말입니다.
이러한 문제로 갑론을박 하였던 자체도 학자로서는 창피하게 생각을 해야하는 일입니다. 갑론을박 이전에 제작과정을 알려고 노력하였더라면 답을 알수 있었을텐데 말입니다.


지금도 학자들은 불화를 그리거나 초상화를 그리는 분들을 인정하려 하지 않고 있으며 특히 불화나 단청에 대해서는 학문 자체로 인정하려 하지 않는 경향이 강합니다. 말 그대로 기능인이라는 것이 이유겠지만 불화나 회화, 초상화에 있어 전반적으로 제작과정을알지 못하면 이번 윤두서 초상화 같은 웃지 못할 일들이 마치 새롭게 발견하는양 발표가 되는 것입니다.

한가지 안타까운것은...불화사나 초상화원들이 학문의 길로 들어서야 한다는 점입니다. 그들은 기술을 익히느라 공부할 틈이 없어 학위는 물론, 제대로된 학문의 길로 접어들 기회가 없기에 이런 문제를 소명할 수 있음에도 그 기회를 갖지 못하는 것입니다. 요즘은 학문을 먼저 한 다음에 불화나 초상화에 입문하여 체계를 갖추어 나가지만 이는 근래의 일로 이들이 나중에 학문의 중심권에 서게 되면 이러한 논쟁은 그 종지부를 고하게 될것이라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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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산 2006-08-10 14: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역시...

진권호 2007-09-18 13: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우~~~~~~~
 

오랫동안 알라딘에 들리지 못했었습니다.

이런저런 이유로 들리지 못함이 죄송스러울 따름입니다.

이번에 이사를 마치고 새롭게 시작을 하려고 합니다. 그동안 어수선했던 분위기와 주변사정으로 알라딘을 떠나 있었으나 이제는 조금 더 알라딘과 가깝게 지내야 할것 같습니다.

이사하면서 정리해야 할 책들이 많아 버리기도 많이 버렸습니다만 일부는 필요로 하시는 분들께 드리기도 했고 또 제가 소장하고 싶은 책들도 있었습니다만 도저히 공간상의 문제로 이제는 어쩔 수 없이 방출을 해야 할 처지에 있는 일부 도서들을 필요로 하는 분들께 보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일단 골라낸 도서는 1991년 이후의 신춘문예 당선작품집과 창비신서의 시 관련 도서들...그리고 년도별로 발표된 시 중에서 선정한 좋은 시모음 등....주로 시와 관련된 도서이며 일부는 소설관련 도서도 있습니다. 책의 상태는 제가 워낙 아끼고 깔끔하게 관리한지라 거의 새 책 수준으로 보시면 됩니다.

일단은 댓글을 달아 주시는 분께 우선 택배로 배송토록 하겠으며 택배는 수취인 부담으로 하겠습니다. 수취인 부담이라 다소 죄송스럽기도 하지만 작은 부담을 감수하실 수 있으시다면 댓글로 의사를 알려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아울러 문학관련 도서들도 정리가 끝나면 추가로 발송토록 하겠습니다.

월간 "에쎄이" 과월호도 상당량이 있습니다. 필요로 하시는 분들께서 댓글로 달아주시면 발송토록 하겠습니다. 책을 정리하며 변색된 책들은 차마 드릴수 없어 그냥 버릴수 밖에 없었습니다만 이번에는 매우 깨끗한 책들로 보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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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립간 2006-07-16 16: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반갑습니다. 돌아오신 것 환영합니다.

프레이야 2006-07-16 17: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수께끼님 다시 오셔서 반갑습니다.. ^^

가을산 2006-07-16 19: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서 오세요! 정말 반갑습니다.

반딧불,, 2006-07-17 14: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게 얼마만이신지. 잘 다녀오셨는지요?

조선인 2006-07-17 22: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수께끼님, 반가와요. 그동안 무소식이 희소식이었던 거죠?

수수께끼 2006-07-18 00: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반갑습니다...^^*~
바람처럼...휘리릭~ 허공처럼 여유있게...너풀너풀 했나봅니다.
이사도 하고....정리도 하느라고 여유가 없었습니다.
가급적 자주 뵙도록 하겠습니다....

2006-07-20 00: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가을산 2006-08-09 17: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수께끼님........."알라딘과 더 가깝게 지내겠다"면서요오~

흠, 흠, 요즘 날이 무척 덥지요?
그리고... 혹시 책 정리하시다가 소설이나 시가 아닌 서적, 문화나 공예, 예술, 사회 관련 서적 있으시면 제게 보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물론 우송료는 제가 부담할게요.
대신에 필요한 서적 있으시면 말씀하세요. 보내 드릴게요.

수수께끼 2006-08-10 11: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람구두님...
1. 탈 냉전시대의 문학(고려원)
-소설선집1, 2편, 시선집
2. '96신춘문예 당선시집(문학세계사)
3. 1955~1998 신춘문예당선 우수시 100선(문예마당)
4. 1999년 신춘문예 낙선작품집(도서출판 선우)
5. 한국 현대시 해설(미래문화사)
6. 지금, 어디까지 와 있는가?(시인 정성채 글모음)
이렇게 보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주소를 남겨 주시기 바랍니다. 이사한지 1달이 넘었음에도 아직도 다 정리를 못하고 있습니다. 책장에 꽂는 책은 꽂으면서 정리를 할 수 있는데 아직 방바닥에 싸여 있는 책은 정리를 하면서 드리고 있기에 마치 결호가 있는것 처럼 년도를 건너띠기도 하지만 단행본과 같은 의미도 있으니 읽으시는데는 문제가 없을 것입니다.

가을산님...
말씀하신 책들은 너무 범위가 넓어요^^*~
일반 재미있는 책들과 시사성 있는 책들(예를 들어 홍준표의 브레이크 없는 자동자, 김홍신의 대통령 정신차리소 등등)이라면 가능하신지요?
끄응....문화나 공예, 예술 관련도서는 제 전공 관련으로 껴안고 살아야 하는데...ㅠㅠ
하지만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동안 무슨 책을 이리 많이 껴안고 살아왔는지...
방안 하나 가득 헌 책방의 창고를 연상시키듯 정리되지 않은 책으로 가득하여 아직도 제 방을 사용하지 못하는 처지입니다. 가장 큰 이유는 저의 게으름에 있지만요..정리되는대로 다른분께서 보실수 있는 도서는 보낼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가을산 2006-08-10 16: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부담 갖지 마시구요.... 갈 곳 없는 책이 모이면 보내주세요. ^^

진권호 2007-09-18 13: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카카
 

ㅇ 한동안의 침잠을 마치고 알라딘으로의 귀환을 준비하던 4월 30일...

선생님의 사망 소식을 전해 들은것은 아침 7시경이었습니다.  그동안 대장암과 투병중이시던 선생님을 S의료원에서 며칠을 뵌지가 바로 어제인데 운명하셨다는 연락을 받고는 망연자실 할수밖에 없었습니다. 더구나 전화를 받는 순간에 저는 골프장에 있었기에 단걸음에 달려 갈 처지도 되지 못했기에 당연히 스코어는 엉망이 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아직 하실 일이 많은데 미술사학계의 아까운분이 타계를 하신것입니다.

ㅇ 저의 직접적인 스승은 아니셨지만 석조물 분야를 같이 연구하는 입장이었기에 조사나 답사는 물론이고 운동을 모시고 다니는 등 직접 제자의 입장보다도 더 절친한 사이였던 선생님은 2년 정도를 암치료로 고생을 하셨습니다.

 처음에는 소화가 안된다고 소화제를 상용하시다가 검사 결과 경미한 대장암으로 밝혀져 6차례의 치료를 받으시는 동안 그 무성했던 머리가 다 빠지는 바람에 남에게 민머리를 보이기가 민망하시다고 모자를 눌러 쓰고 조사와 답사를 다니시던 선생님... 이제 2년만 있으면 정년이기에 그동안 집필했던 원고의 개정판을 서두르시며 병상에서도 노트북을 놓지 않으셨던 선생님으로 제자에게 조차 옥고를 맡기지 않으시려는 나름의 배려로 그 어느 누구도 선생님의 개정판이 어떻게 진행이 되는줄을 알지 못했었습니다.

ㅇ 선생님을 찾아뵈려해도 어떻게 연락이 잘못 전달되어 찾아오는 것을 반기지 않으시며 조용히 지내시겠다는 말씀이 있었다하여 추석이나 신정에도 궁금해 하면서도 찾아뵙기는 커녕 전화도 받기를 꺼리신다기에 손가락만 조금 꼼지락거리면 통화가 가능함에도 차마 불편하신데 마음쓰이는 행동을 할까봐 그 쉬운 전화도 한통 못드리고 있던차에 설날에는 야단을 맞을 각오로 선생님댁 인근에 가서야 전화를 드렸습니다. 뭐하러 왔느냐는 말씀과 더불어 집 근처까지 왔으니 들어오라는 말씀을 듣고서야 선생님 댁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또 한번의 암 치료가 얼마나 힘이 드시는지 "약이 너무 독해서 몸이 휘지는군요..."라는 말씀으로 첫 마디를 여시고는 금방 나오려는 저를 붙잡고는 한참을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한국의 석탑 연구"는 오래전에 박사학위 논문을 엮은 책으로 사진도 흑백이며 다양함이 결여되어 새롭게 개정판을 내시겠다면서 제게 사진 원고를 부탁하셨는데 이제 거의 완성이 되어가니 어서 몸이 완쾌되면 출판을 하시자는 말씀이 계셨습니다. 몸이 불편하심에도 "한국 불교미술 연구"라는 전문서를 집필하셨고 또 2권의 개정판을 위하여 늘 노트북과 함께하시는 선생님께 엄포 비슷하게 "선생님...몸이 완쾌되시기 전까지는 제발 노트북을 놓으시지요..."라는 말씀을 드렸더니 "원고는 안보는데 이메일이 온것은 확인을 해야지.."라면서 선생님의 행위를 합법화 하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ㅇ 선생님께서 병원에 재입원 했다는 연락을 받은것은 4월 25일이었습니다. 그것도 단순한 입원이 아니라 의식이 있을 때 볼 사람들은 만나뵈라는 연락을 말입니다. S병원의 입원실에 들어가 선생님을 뵙는 순간 숨이 멎을것만 같았습니다. 설날 뵐때만 하더라도 이제는 치료도 끝나고 회복중이니 완전 회복이 되면 저와 함께 조하를 하러 다니자고 말씀하셨었는데 병원에서 뵙는 선생님은  너무도 야윈 모습으로 손과 발에는 부종으로 퉁퉁 부어있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야 괜찮다고들 말했지만 제가 보기에는 매우 위독함을 느길 수 있었습니다. 말기 암환자의 상태가 손발의 부종에 이어 폐부종...그리고 마지막으로는 복수가 고이는것이 그 진행 단계이기에 상당히 위독한 상태라는것을 알수 있었습니다.

ㅇ 선생님께서는 반은 혼수상태로 당신 스스로가 정신을 차리려고 무척 애를 쓰는 모습이셨습니다. 가끔은 혼절 상태로..또 어느때는 바짝 정신을 집중하시려는 모습이 너무도 가슴을 아프게 했습니다. 평생 남에게 싫은 말씀이라고는 하지 않으셨던 선생님께서 모 교수에게 "인간이 되라!"고 대갈일성을 하셨습니다. 그 교수는 평소에 후계자 처럼 여겼던 처지였으나 그동안 가슴속에 담고 있던 속내를 털어버리고 싶으셨던것 같았습니다. 얼마나 한이 맺혔으면 그런 말씀을 하게 되셨는지는 나중에 제게 속내를 털어놓으시면서 그 내막을 자세히 알 수 있었습니다. 흔히들 대학원 석박사 시험에서도 선발 위원은 자신의 후학을 고르는 과정에서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는 대상자를 선호하기에 선생님께서도 누구를 선발하자는 말슴을 하시지만 다른 교수가  다른 대상자를 선발하자고 하면 아무 말씀을 하지 않으시며 그렇게 하라고 하시는 분이었습니다. 심지어는 박사과정에 응시하는 대상자중 석사과정에서 애지중지 하였던 제자로 꼭 뽑아주고 싶어도 다른 교수들이 동의하지 않으면 어쩔 수 없이 뽑지 못할 정도로 다른 분들에게 부담을 주는 일을 하지 않으셨습니다.

ㅇ 가물거리는 의식으로 저를 병상앞으로 부르신 선생님은 속내를 말씀하시기 시작했습니다. 그동안 찾아오는 사람이 없어 스스로가 세상을 잘못 살아온 것이 아닌가에 대하여 많은 생각을 하셨다는 말씀이었습니다. 결국은 중간에서 누군가가 병중이신 선생님을 위한답시고 문병이나 전화를 자제해 달라는것이 선생님을 외톨이로 만들게 되어버린 것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세상에... 어느 누구도 그런 사정을 모르고는 선생님께서 찾아오는것을 싫어한다고 오해하고 있었으니 말입니다.  설날 무식하게 선생님 댁을 찾아간 제가 유일한 방문자였다는 말씀과 그 때 찾아줘서 얼마나 고마왔는지 모르겠더라는 말씀.....옆에서 병간하시던 사모님도 그런 사실을 최근에야 아시게 되었던 모양입니다. 두 분 모두가 자신들의 삶이 잘못되어 찾아오는 사람이 없엇던 것으로 알고 계실 정도였으니 말 한 마디가 가져다 주는 결과가 이렇게나 사람을 한이 맺히게 할 수 있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되었습니다.

ㅇ 선생님의 한 많은 말씀을 더 이상 들을 수 없었습니다. 설움이 복받침은 둘째이며 사모님께서 선생님의 안정이 우선이라는 말씀에 눈물만 흘리며 선생님의 말씀을 더 들을 수가 없었습니다. 노 학자의 눈에서는 어느덧 굵은 눈물이 흘러 내리고 있었고....누가 이렇게 가슴속에 깊은 상처를 남기게 되었는지....

 ㅇ 영안실에는 많은 분들이 다녀가셨습니다. 특히 미술사학계의 1세대이신 황수영 박사님께서 90을 바라보는 노구를 이끌고 선생님의 영정에 예를 갖추시며 "스승보다 먼저가는 제자가 어디있느냐..."고 통곡을 하실때는 모두의 눈시울이 뜨거워 졌습니다. 자신의 애제자중 한사람인 고 장충식 선생의 영정앞에서 그런 말씀을 하시는 노학자의 가슴이 얼마나 미어 터지겠습니까?

 선생님의 장례는 5일장으로 치뤄졌습니다. 영결식을 끝내고 마지막으로 학교 박물관으로 가서 평소 고인이 열정을 바쳤던 유물 가운데서 노제를 지냈습니다. 원래 선생님은 출가한 스님이었는데 군승을 거쳐 환속하여 학문에 들어서셨던 분으로 그 어떤 미술사학자보다 경학에 밝으신 분으로 불교미술사학에 있어서는 독보적인 존재이셨습니다. 불교미술에 있어서의 표현 방식은 불경에 근거한것이 대부분으로 경전을 모르면 불교미술을 논하기가 어려움에도 불경에 대한 완벽한 해석을 통하여 불교미술을 분석하셨던 선생님의 능력은 앞으로 그 누구도 쉽게 갖추기 힘들 것이라고 생각 합니다. 64세 라는 나이는 아직도 할일이 많은 나이임에도 너무 일찍 우리 곁을 떠나가셨습니다. 두 권의 개정판 작업도 이제는 남은 사람들의 몫이 되고야 말았습니다. 자신의 책에 대한 교정 조차도 다른 사람에게 폐를 끼쳐서는 안된다고 수 십번을 들여다 보셨던 선생님의 옥고도 이제는 후학들이 교정을 봐야 할것입니다.

ㅇ 선생님...

선생님께서 정신이 혼미해져 계시는 동안 나라에서는 또 다시 선생님을 문화재위원으로 재임명 하였답니다. 그만큼 선생님은 우리 문화재에 있어서는 필요하신 분이신데 그 막중한 사명을 누가 이루라고 훌쩍 떠나버리셨는지요?  그 어느 누가 노력한들 선생님만큼 불교미술의 해박함을 가질 수 있겠습니까?  누가 선생님이 하신것 처럼 전시중인 고구려 유물에 대하여 가짜라는 명확한 논리를 펼 수 있겠습니까?  저희가 아무리 발버둥 친다한들 선생님의 반만큼이나 하겠습니까? 그게 걱정이 되셔서 병중에도 노트북을 껴앉고 계셨었나요? 이제는 편히 쉬시기 바랍니다. 못다한것은 후학들이 최선을 다해 마무리 짓겠습니다. 선생님께서 마무리 지으시는것에는 훨씬 미치지 못하겠지만 최선을 다해서 마무리 짓겠습니다.

이제는 편히 쉬시기 바랍니다. 속세에서의 연은 다음 세대에 다시 맺으면 됩니다. 그 동안만이라도 모든것을 다 잊어버리시고 편히 쉬시기 바랍니다.  살아생전 선생님께 최선을 다하지 못함을 용서해 주시기 바랍니다.

선생님......고이 잠드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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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 2005-05-09 09: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호랑녀 2005-05-09 15: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진권호 2007-09-18 13: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어느날...문득

어디론가 떠나고 싶었습니다.

아무도 모르는 사람들로만 가득한 곳으로 훌쩍 떠나 "나"라는 존재를 잊고 싶었습니다.

잊는다기 보다는 아무도 모르는 곳에 숨고 싶었습니다. 그리고는 꼭꼭 숨었었습니다.

........

떠났던 자리에 다시 앉는 어색함이 멍애가 아니기를 바라면서

먼 길을 돌아온 긴 여정이었기에 모든 것이 낯설게만 느껴집니다.

애초...6개월이라는 시한을 스스로 정했기에 그 스스로의 약속을 지키기 위함이지만

무엇보다 숨결이 그리웠습니다.

아름다운 사람들이 머무는 아름다운 곳의 숨결이.....

그리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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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립간 2005-05-02 07: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돌아오셔서 반갑습니다. 좋은 시간 되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가을산 2005-05-02 08: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반갑습니다. 건강하신가요?

조선인 2005-05-02 09: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여행이셨던 거죠? 돌아올만큼?

수수께끼 2005-05-09 03: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러가지로 죄송합니다.
늘 가까운 길만을 찾던 입장에서 먼 길을 돌아가는 여유를 가지고 싶었습니다.
그 먼 길은 단순한 목적의 길이 아니라 이리저리 고개를 기웃거리며 세상을 보고 담을 수 있는 아름다운 길임을 깨달았습니다.
그 아름다움속에 자연인으로 순행하는법을 깨달았습니다.
너무도 큰 사람을 잃었습니다. 그 만큼 마음도 잃은것이 많은것 같습니다.
그러나 선생님의 큰 마음을 이제는 제가 채워 나가도록 하겠습니다.

. 2005-05-11 23: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선생님,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반가운데 왜 눈물이 나려 하는지...
 

  오랜 공직생활을 마무리하기로 결심을 한 다음의 마음상태는 한마디로 공황 그 자체라고 말하고 싶었습니다. 사실, 한 직장에서 거의 30년 가까이 근무를 할 수 있었다는 것은 요즘의 세태에서는 흔하게 일어날 수 없는 일이기에 이제 진로를 바꾼다는 생각을 하게 되니 그간의 주마등처럼 떠오르는 생각들이 머릿속을 쉽게 떠날것 같지 않았습니다. 한편으로보면 30년 가까운 직장생활을 할 수 있었음은 저에게는 지옥일수도 있는 일이었으며 반대로 생각하면 그 동안 머물 수 있게 해 준 직장이 고맙기도 한 일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온갖 풍파도에 휩쓸리지 않고 꿋꿋하게 외길을 걸어온것은 나름대로의 철학을 정립시킬수 있었던 교훈의 시간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막상...떠나기로 결심을 하고 서류를 작성하는 순간은 약간의 망설임도 있었던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서류를 작성하여 제출을 하고 나니 그 동안의 모든것이 저로부터 떨어져 나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고, 알게 모르게 제가 받아야 했던 중압감에서의 해방이라는 마음이 서서히 가슴속에 번져 나가기 시작하였습니다. 결심을 하고나니 마음이 그렇게 편해질 수 없으며 직위와 직책이 감당해야 했던 그 모든것에서의 해방감은 차라리 희열이라고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동안 알게 모르게 직장에서의 기대에 부응해야 된다는 책임감이 얼마나 가슴을 짓누르고 있었는지는 있을때는 모르지만 벗어나고 나면은 너무도 확연하게 드러나 보입니다. 그런 한편으로는 30년 가까운 세월의 때가 잔뜩 껴있는...아니...제 발자취와 제 젊은 시절의 청춘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뒤를 돌아보면서 정말로 내가 내 청춘을 보람있게 쏟아부었나? 라는 의문을 갖게 합니다. 아직 그에 대한 해답을 얻는다는것은 너무 섣부른 욕심인지 모르겠지만 이유야 어찌되었건 세월만큼은 그 속에 머물고 있었음을 부인하기 어렵습니다.

  무거운 물건을 운반하기 위해 들고 가며 낑낑거리다가 목적지에 다다라 그 물건을 내려 놓고나면 물건을 들었던 팔은 물론이고 온 몸이 해방이 된 느낌임을 잘 아실겁니다. 아마 저도 그런 느낌이 아닌가 합니다. 그러나 그 여운은 무척이나 크더군요.  그래서 계획을 세운것이 "마음비우기를 위한 여행"이었습니다.  처음 계획은 어떤 특정한 목적이 있다기보다는 그저 나로부터의 탈출을 위한 여행이었기에 저 혼자 떠나려고 했었는데 계획을 바꾸어 집사람과 떠나기로 하였습니다. 물론, 제 여행계획의 의미가 반감이 될것을 각오하고 말입니다.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이 곁에 있다 하더라도 스스로만의 마음비우기에 동참한다는 것은 길벗이 있어 좋은 반면 마음비우기라는 본래의 목적을 달성하기에는 어렵다고 생각을 합니다. 여행은 짧지도 길지도 않게 잡았습니다. 다만, 우리나라의 외곽을 전부 돌아볼 생각으로 동쪽의 강릉에서부터 남해안을 돌고 서해안을 돌아 돌아오는 여정으로 말입니다.

  뭐...한 두번 다녀본 길이 아니었지만, 우리 나라의 변화는 저도 놀랄 정도였습니다. 어느 사이에 길이 닦이고 또 넓어졌는지...자동차 여행을 하기에는 도시만 피한다면 더없이 편안하게 여행을 할 수 있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겨울 바다를 보고...부산의 야경을 감상하고...펄쩍거리는 회와 지나가는 지방의 특산물을 식사메뉴로 정하고....배고프면 먹고 피곤하면 자고....콘도에서도 먹고 싶으면 해 먹고, 게으름을 피우고 싶으면 나름대로 게으름도 피우고....그리고 주변의 문화재를 지날라치면 가까이 다가가서 느끼며 사진으로 담기도 하고....이렇게 우리 나라를 둘러싸고 있는 바다를 따라 소위 "마음비우기"를 다녀왔습니다.  서울은 춥다고 난리임에도 남쪽에는 바다를 스치는 바람이 살랑이는 봄바람처럼 가볍게만 느껴졌습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같은 느낌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은 커다란 행복입니다. 동해바다의 출렁이는 물결을 보면서 남아시아의 해일을 생각하고 대왕암과 감은사지에서 1300여년전의 신라의 모습을 상상하며, 공업도시 울산의 희뿌연 공기속에서의 질식할것 같은 숨쉬기...그리고 항보 부산의 달맞이 고개의 환상적인 간판들....  남도 3백리길의 젓줄인 섬진강변의 풍광과 화엄사의 사자탑....우리 산하의 숨은 비경을 보며 느끼는 감정이 합일점을 찾는다는 것이 쉬운일임이 아님에도 부부라는 이름이 그 모든것을 가능하게 해 주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목포의 홍어회와 유달산의 노적봉...그리고 낮으막한 유달산이 목포를 감싸안고 있는 아름다움도 모두 같이 느끼며 전라도 산과 경상도 산이 주는 느낌이 다름을 이야기 할 수 있었습니다.

 제게는 이번 여행이 예행연습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이제부터 8월말 까지는 여타의 직장도 마다하고 무조건 쉬기로 했습니다. 남들은 직장 걱정이 한창이고 저희 나이에 쫒겨나는 일이 다반사임에도 그나마 제 경우는 오라는 곳이 여러 곳이 있어 오히려 골라가야 하는 형편이다보니 미리 8월 말 까지는 푹 쉴것이라고 공지까지 해야할 지경이니 이것도 복에 겨운 소리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쉬는 동안 그동안 못했던 발표논문도 몇 편 써야하겠고...또 몇 가지 글도 써야하고...이제는 "새로운 마음 채우기"라는 주제로 여행도 해볼 요량이니 나름대로 제 시간이 필요할것 같습니다. "마음 배우기" 여행이라고 다녀왔지만 아직 제대로 비워지지는 않았나 봅니다. 아무래도 그냥 비운다는 마음으로는 안되고 비운 마음에 다른것으로 채워야 여행이 종착점을 찾게될것 같습니다.

  30년 가까운 기간동안 제 마음에 쌓인 세월의 때를 벗어버린다는 일을 상상하기 힘드실겁니다만, 아무리 다른 사람이 이해를 할 수 있다고 해도 제 느낌만이야 하겠습니까? 허전함속의 공허함....그리고 시원함과 섭섭함, 새로운 기대감 등등 오미자차처럼 다양한 맛이 한데 어우러진 저 나름대로의 맛이 담겨있는것 같습니다. 그래도 "마음 비우기"를 통해서 어느 정도는 마음을 비울 수 있었던것 같습니다. 부족하지만 이번 여행은 이렇게 눈꼽만큼의 마음비우기로 만족을 하겠습니다. 어쩌면 새로운것이 들어 차면 자동적으로 마음이 비워지지나 않을런지요....  늘상 그래왔듯이 늘 새로운것을 찾는다면 비워야할 마음속에 저절로 새로운 것이 들어앉아 비워야 할 것들을 쫒아내지나 않을런지요.....

                                                                           < 如       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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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leinsusun 2005-01-09 1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30년...30년...30년...30년을 한 직장에서 일을 하셨고, 또 그 곳을 떠나시고, 마음 비우기 여행을 하셨군요. 여행스케치를 읽으니 좋은 시간 보내신 것 같아요. 우와...8월말까지 쉬신다구요? 마음채우기 여행도 떠나시구요. 그 아름다운 방학을 아주아주 행복하게 보내시길...주위에서 빨리 일하러 오라고 졸라도 꼭 일정대로 즐거운 휴가를 보내세요.축하드립니다.

호랑녀 2005-01-09 17: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쉬운 결정은 아니셨겠지만, 축하드립니다. 오시라는 곳이 많으시다니, 그동안도 참 열심히 사셨구나 싶네요. 재충전하시는 것도 멋지구요. ^^

가을산 2005-01-09 19: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정말 30년을 정리한 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 같습니다.

멋진 정리와 멋진 새출발을 하시기 바랍니다.

가끔 여행담도 올려 주시구요.

비연 2005-01-10 00: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의미있는 여행이셨네요...30년을 한 직장에서 일하시다니 그 심정이 어떤 것일지 상상조차 안되지만...많이 애쓰셨구요. 앞으로 더욱 멋진 생활 하시길 바랍니다...

마립간 2005-01-10 15: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위로, 격려, 아니면 새로운 삶에 대한 축하 등... 뭐라고 말씀을 드려야겠는데, 뭐라 해야 좋은 말이 될지 잘 모르겠습니다. 저에게도 언젠가 닥칠일이지만 미리 상상하고 싶지 않네요. 그리고 여행을 가족과 같이 가신 것은 잘 하셨다고 말씀드리고 싶고 수수께끼님의 신분때문에 한번 만나뵙고 싶다는 이야기를 쉽게 하지 못했는데, 기회가 되면 한번 뵙고 싶습니다.

수수께끼 2005-01-10 22: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말씀 해주신 여러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마립간님 말씀처럼 언젠가는 만나뵐 날도 있지 않을까 생각을 합니다. 아직은 구속에서의 해방인지...아니면 실업자의 배부름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30년간의 때를 한거번에 벗을수는 없겠지만 그저 한동안은 모든것을 다 잊고 사진 정리작업과 독서 등등 시간에 ?겨 하지 못하고 있었던 일들을 하고자 합니다.

. 2005-01-12 01: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수께끼님, 먼 길 여행을 다녀오셨군요. 그 시원섭섭함을 제가 어떻게 다 헤아릴수 있겠냐만은 상상은 충분히 됩니다. 몇달간 푹 쉬시면서 좋은 시간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