ㅇ 한동안의 침잠을 마치고 알라딘으로의 귀환을 준비하던 4월 30일...
선생님의 사망 소식을 전해 들은것은 아침 7시경이었습니다. 그동안 대장암과 투병중이시던 선생님을 S의료원에서 며칠을 뵌지가 바로 어제인데 운명하셨다는 연락을 받고는 망연자실 할수밖에 없었습니다. 더구나 전화를 받는 순간에 저는 골프장에 있었기에 단걸음에 달려 갈 처지도 되지 못했기에 당연히 스코어는 엉망이 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아직 하실 일이 많은데 미술사학계의 아까운분이 타계를 하신것입니다.
ㅇ 저의 직접적인 스승은 아니셨지만 석조물 분야를 같이 연구하는 입장이었기에 조사나 답사는 물론이고 운동을 모시고 다니는 등 직접 제자의 입장보다도 더 절친한 사이였던 선생님은 2년 정도를 암치료로 고생을 하셨습니다.
처음에는 소화가 안된다고 소화제를 상용하시다가 검사 결과 경미한 대장암으로 밝혀져 6차례의 치료를 받으시는 동안 그 무성했던 머리가 다 빠지는 바람에 남에게 민머리를 보이기가 민망하시다고 모자를 눌러 쓰고 조사와 답사를 다니시던 선생님... 이제 2년만 있으면 정년이기에 그동안 집필했던 원고의 개정판을 서두르시며 병상에서도 노트북을 놓지 않으셨던 선생님으로 제자에게 조차 옥고를 맡기지 않으시려는 나름의 배려로 그 어느 누구도 선생님의 개정판이 어떻게 진행이 되는줄을 알지 못했었습니다.
ㅇ 선생님을 찾아뵈려해도 어떻게 연락이 잘못 전달되어 찾아오는 것을 반기지 않으시며 조용히 지내시겠다는 말씀이 있었다하여 추석이나 신정에도 궁금해 하면서도 찾아뵙기는 커녕 전화도 받기를 꺼리신다기에 손가락만 조금 꼼지락거리면 통화가 가능함에도 차마 불편하신데 마음쓰이는 행동을 할까봐 그 쉬운 전화도 한통 못드리고 있던차에 설날에는 야단을 맞을 각오로 선생님댁 인근에 가서야 전화를 드렸습니다. 뭐하러 왔느냐는 말씀과 더불어 집 근처까지 왔으니 들어오라는 말씀을 듣고서야 선생님 댁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또 한번의 암 치료가 얼마나 힘이 드시는지 "약이 너무 독해서 몸이 휘지는군요..."라는 말씀으로 첫 마디를 여시고는 금방 나오려는 저를 붙잡고는 한참을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한국의 석탑 연구"는 오래전에 박사학위 논문을 엮은 책으로 사진도 흑백이며 다양함이 결여되어 새롭게 개정판을 내시겠다면서 제게 사진 원고를 부탁하셨는데 이제 거의 완성이 되어가니 어서 몸이 완쾌되면 출판을 하시자는 말씀이 계셨습니다. 몸이 불편하심에도 "한국 불교미술 연구"라는 전문서를 집필하셨고 또 2권의 개정판을 위하여 늘 노트북과 함께하시는 선생님께 엄포 비슷하게 "선생님...몸이 완쾌되시기 전까지는 제발 노트북을 놓으시지요..."라는 말씀을 드렸더니 "원고는 안보는데 이메일이 온것은 확인을 해야지.."라면서 선생님의 행위를 합법화 하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ㅇ 선생님께서 병원에 재입원 했다는 연락을 받은것은 4월 25일이었습니다. 그것도 단순한 입원이 아니라 의식이 있을 때 볼 사람들은 만나뵈라는 연락을 말입니다. S병원의 입원실에 들어가 선생님을 뵙는 순간 숨이 멎을것만 같았습니다. 설날 뵐때만 하더라도 이제는 치료도 끝나고 회복중이니 완전 회복이 되면 저와 함께 조하를 하러 다니자고 말씀하셨었는데 병원에서 뵙는 선생님은 너무도 야윈 모습으로 손과 발에는 부종으로 퉁퉁 부어있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야 괜찮다고들 말했지만 제가 보기에는 매우 위독함을 느길 수 있었습니다. 말기 암환자의 상태가 손발의 부종에 이어 폐부종...그리고 마지막으로는 복수가 고이는것이 그 진행 단계이기에 상당히 위독한 상태라는것을 알수 있었습니다.
ㅇ 선생님께서는 반은 혼수상태로 당신 스스로가 정신을 차리려고 무척 애를 쓰는 모습이셨습니다. 가끔은 혼절 상태로..또 어느때는 바짝 정신을 집중하시려는 모습이 너무도 가슴을 아프게 했습니다. 평생 남에게 싫은 말씀이라고는 하지 않으셨던 선생님께서 모 교수에게 "인간이 되라!"고 대갈일성을 하셨습니다. 그 교수는 평소에 후계자 처럼 여겼던 처지였으나 그동안 가슴속에 담고 있던 속내를 털어버리고 싶으셨던것 같았습니다. 얼마나 한이 맺혔으면 그런 말씀을 하게 되셨는지는 나중에 제게 속내를 털어놓으시면서 그 내막을 자세히 알 수 있었습니다. 흔히들 대학원 석박사 시험에서도 선발 위원은 자신의 후학을 고르는 과정에서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는 대상자를 선호하기에 선생님께서도 누구를 선발하자는 말슴을 하시지만 다른 교수가 다른 대상자를 선발하자고 하면 아무 말씀을 하지 않으시며 그렇게 하라고 하시는 분이었습니다. 심지어는 박사과정에 응시하는 대상자중 석사과정에서 애지중지 하였던 제자로 꼭 뽑아주고 싶어도 다른 교수들이 동의하지 않으면 어쩔 수 없이 뽑지 못할 정도로 다른 분들에게 부담을 주는 일을 하지 않으셨습니다.
ㅇ 가물거리는 의식으로 저를 병상앞으로 부르신 선생님은 속내를 말씀하시기 시작했습니다. 그동안 찾아오는 사람이 없어 스스로가 세상을 잘못 살아온 것이 아닌가에 대하여 많은 생각을 하셨다는 말씀이었습니다. 결국은 중간에서 누군가가 병중이신 선생님을 위한답시고 문병이나 전화를 자제해 달라는것이 선생님을 외톨이로 만들게 되어버린 것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세상에... 어느 누구도 그런 사정을 모르고는 선생님께서 찾아오는것을 싫어한다고 오해하고 있었으니 말입니다. 설날 무식하게 선생님 댁을 찾아간 제가 유일한 방문자였다는 말씀과 그 때 찾아줘서 얼마나 고마왔는지 모르겠더라는 말씀.....옆에서 병간하시던 사모님도 그런 사실을 최근에야 아시게 되었던 모양입니다. 두 분 모두가 자신들의 삶이 잘못되어 찾아오는 사람이 없엇던 것으로 알고 계실 정도였으니 말 한 마디가 가져다 주는 결과가 이렇게나 사람을 한이 맺히게 할 수 있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되었습니다.
ㅇ 선생님의 한 많은 말씀을 더 이상 들을 수 없었습니다. 설움이 복받침은 둘째이며 사모님께서 선생님의 안정이 우선이라는 말씀에 눈물만 흘리며 선생님의 말씀을 더 들을 수가 없었습니다. 노 학자의 눈에서는 어느덧 굵은 눈물이 흘러 내리고 있었고....누가 이렇게 가슴속에 깊은 상처를 남기게 되었는지....
ㅇ 영안실에는 많은 분들이 다녀가셨습니다. 특히 미술사학계의 1세대이신 황수영 박사님께서 90을 바라보는 노구를 이끌고 선생님의 영정에 예를 갖추시며 "스승보다 먼저가는 제자가 어디있느냐..."고 통곡을 하실때는 모두의 눈시울이 뜨거워 졌습니다. 자신의 애제자중 한사람인 고 장충식 선생의 영정앞에서 그런 말씀을 하시는 노학자의 가슴이 얼마나 미어 터지겠습니까?
선생님의 장례는 5일장으로 치뤄졌습니다. 영결식을 끝내고 마지막으로 학교 박물관으로 가서 평소 고인이 열정을 바쳤던 유물 가운데서 노제를 지냈습니다. 원래 선생님은 출가한 스님이었는데 군승을 거쳐 환속하여 학문에 들어서셨던 분으로 그 어떤 미술사학자보다 경학에 밝으신 분으로 불교미술사학에 있어서는 독보적인 존재이셨습니다. 불교미술에 있어서의 표현 방식은 불경에 근거한것이 대부분으로 경전을 모르면 불교미술을 논하기가 어려움에도 불경에 대한 완벽한 해석을 통하여 불교미술을 분석하셨던 선생님의 능력은 앞으로 그 누구도 쉽게 갖추기 힘들 것이라고 생각 합니다. 64세 라는 나이는 아직도 할일이 많은 나이임에도 너무 일찍 우리 곁을 떠나가셨습니다. 두 권의 개정판 작업도 이제는 남은 사람들의 몫이 되고야 말았습니다. 자신의 책에 대한 교정 조차도 다른 사람에게 폐를 끼쳐서는 안된다고 수 십번을 들여다 보셨던 선생님의 옥고도 이제는 후학들이 교정을 봐야 할것입니다.
ㅇ 선생님...
선생님께서 정신이 혼미해져 계시는 동안 나라에서는 또 다시 선생님을 문화재위원으로 재임명 하였답니다. 그만큼 선생님은 우리 문화재에 있어서는 필요하신 분이신데 그 막중한 사명을 누가 이루라고 훌쩍 떠나버리셨는지요? 그 어느 누가 노력한들 선생님만큼 불교미술의 해박함을 가질 수 있겠습니까? 누가 선생님이 하신것 처럼 전시중인 고구려 유물에 대하여 가짜라는 명확한 논리를 펼 수 있겠습니까? 저희가 아무리 발버둥 친다한들 선생님의 반만큼이나 하겠습니까? 그게 걱정이 되셔서 병중에도 노트북을 껴앉고 계셨었나요? 이제는 편히 쉬시기 바랍니다. 못다한것은 후학들이 최선을 다해 마무리 짓겠습니다. 선생님께서 마무리 지으시는것에는 훨씬 미치지 못하겠지만 최선을 다해서 마무리 짓겠습니다.
이제는 편히 쉬시기 바랍니다. 속세에서의 연은 다음 세대에 다시 맺으면 됩니다. 그 동안만이라도 모든것을 다 잊어버리시고 편히 쉬시기 바랍니다. 살아생전 선생님께 최선을 다하지 못함을 용서해 주시기 바랍니다.
선생님......고이 잠드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