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한국벽화고분 - 한국문화예술대계 1
김원용 지음 / 일지사 / 1980년 5월
평점 :
절판
중국이 동북공정이라는 이름으로 한반도의 역사를 송두리째 바꾸려는 역사왜곡 시도행위가 노골적이고 직접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북한지역을 제외한 중국 집안의 환도산성과 장군총은 물론이고 광개토대왕비 마저도 정비라는 명목으로 보호각을 설치하고 중국의 변방 속국이었던 고구려라는 안내판으로 한반도에서 가장 강성했던 고구려의 세력을 축소시킴은 물론, 그 역사마저도 저들의 역사속에 집어 담으려는 얕은 수작을 부리고 있다.
이 책은 한국미술사학계의 원로였던 고 김원룡 선생이 1980년에 저술한 책이다. 이 책이 나오기 이전의 1930~40년대에 일본 학자에 의한 고구려 고분 연구가 있었으며, 1974년에는 북한의 고구려 고분 발굴에 의한 발표논문이 그리고 1978년에는 김병모교수의 고분 벽화중 말각조정벽화에 대한 고찰이 '역사학보'에 보고되기도 하였으나 체계적으로 정리하여 단행본으로 출간된것은 이 책이 처음일 것이다. 그런데 저자는 책의 제목을 "벽화고분"이라고 하여 현재 사용되고 있는 "고분벽화"라는 용어와는 거꾸로 쓰고 있다. 벽화고분이냐 고분벽화냐 하는 문제는 그리 중요한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있으나 고분에 그려진 벽화라는 개념에서 본다면 "고분벽화"라고 쓰는것이 타당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사실, 1992년에야 중국과의 수교가 체결된 관계로 그 이전의 연구는 직접 현지를 방문하고 연구했던 것이 아니라 일본 학자의 연구보고서를 참조하였기에 실질적인 고분벽화를 다루는데는 많은 제약이 따랐음에도 김원룡 선생은 관련 도서 대부분을 탐독하여 나름대로의 미술사학적접근을 시도하였다고 본다.
실제 중국의 고구려 고분벽화가 생생하게 우리 나라에 전달된것은 1992년 중국과 수교후 조선일보사의 특별취재진에 의한 고구려 고분벽화 특별전인 "아...고구려"展이었다. 조선일보의 특별 취재팀은 1500년간 무관심속에 놓여있던 고구려의 어두운 고분속에 담긴 찬란한 벽화를 세상속으로 들고 나왔다. 더군다나 해방이후 남북분단이라는 현실속에서 미진할 수 밖에 없었고 가물가물 우리의 의식속에서 촛농이 녹듯 사라져 가는 고구려에 대한 인식을 되살려준 "아...고구려"전은 학계는 물론이고 그 찬란한 벽화를 사진으로 관람했던 수많은 사람들이 고구려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할 수 있었다.(조선일보사 刊 "집안 고구려 고분벽화" 1993 참조바람) 한편으로는 조선일보사의 특별 취재진에 의한 고분벽화의 자세한 소개이후에는 사실 이 책은 '장님 코끼리 만지는' 겉핥기식의 연구로 비하될 소지도 다분히 가지고 있다. 그러나 직접 보지 않고 간접 자료를 참고로 하였음에도 저자는 상당한 깊이의 연구를 하였음을 알 수 있어 책이 갖는 가치를 결코 폄하하거나 한쪽으로 치워 버리지 못게 하였다. 물론, 실물에 가장 근접하는 다량의 자료가 새로 전파되어 조금더 사실에 접근할 수 있지만 저자는 벽화와 관련된 다양한 연구 논문들을 접하면서 나름대로의 연구 성과를 보이고 있다. 저자도 서문에서 토로하고 있듯이 편년이나 성격파악등이 뼈대에 불과하며 저자의 책이 고분벽화 연구의 문제 제기적 구실을 하여 줄것을 당부하고 있다. 물론 이 책의 도판으로 사용된 대부분의 사진도 흑백으로 구성되어 있다.
저자는 중국과 북한에 남아 있는 고분 벽화 자료를 정리하면서 고구려 벽화가 갖는 역사적 배경이나 발생, 분포, 고분의 구조등 기본적인 내용을 서술하고 있으며 고구려 고분에 그려진 벽화의 기법과 벽화 내용, 그리고 더 나아가 저자 나름대로의 편년을 추론하고 있다. 지금의 각종 연구서와는 많은 차이가 있음을 부인할 수 없으나 당시의 한정된 자료에 의한 연구로는 상당히 자세한 분석으로 저자가 고분벽화에 접근하고자 하는 노력의 흔적을 남기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 저자는 그 수가 극히 적은 백제고분의 벽화를 나름대로 정리하고 있다. 저자는 백제인의 형성을 고구려에서 내려 온 사람들이라고 규정하여 고구려의 영향이 많이 나타나고 있음을 논하고 있는데 고분 벽화의 성격이 중국 남조시대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 설명하여 고구려 또는 중국의 영향을 받은것에 대한 연구가 필요함을 은연중에 강조하고 있다.
저자인 고 김원룡 박사는 무녕왕릉의 졸속발굴을 평생을 두고 후회하셨던 분이다. 뿐만아니라 송산리 고분군에 대한 현재의 발국 조사와 같이 세심한 조사가 이루어졌더라면 비록 박락이 심하다 하더라도 백제의 고분 벽화를 지금보다는 좀 더 상세하게 접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을텐데 하는 아쉬움도 남는다. 그러나 그나마 백제의 고분 벽화는 자료가 남아 있어 후대의 연구가들이 연구할 수 있으나 고신라는 적석목곽분 형식이라는 이유에서인지 영주군 순흥면 태장리의 고분벽화 이외에는 뚜렷한 벽화를 남긴것이 없다. 가야도 극히 일부의 벽화를 남겼으나 자료로 삼기에는 부족한 실정이다. 신라나 가야가 뚜렷한 벽화를 남기지 않은것에 반해 신라의 문화를 계승했을 것으로 판단되는 고려시대에는 그래도 제법 많은 고분벽화를 남기고 있어 남북한의 고분에서 벽화를 접할 수 있으며 이 책에는 다루지 못했지만 몇 년전 태풍 '사오마이'로 인해 노출된 경남 밀양시 청도면 고법리의 朴翊(고려말~조선초 :1332~1398)의 석실묘에서는 거창 둔마리 고분이나 파주 서곡리의 고려 고분과는 달리 거의 완벽한 상태의 고려벽화를 발견하기도 하였다.
고 김원룡 박사가 이 책을 저술한 이후에도 많은 고분벽화가 발견 되기도 하였고, 또 부여의 능산리 고분이나 무녕왕릉 처럼 우연치 않은 발견을 통하여 우리는 더욱 새로운 고분 벽화를 접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므로써 고분 벽화에 대한 더욱 많은 연구를 통하여 더욱 새로운 기법이나 형태등을 밝혀낼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이 책이 비록 25년전에 출간이 되었고 그 내용이 작금의 연구 결과와는 많이 다르다고 해서 이 책의 가치가 낮아지지 않음을 이야기 하고 싶다. 한편으로는 이 책이 갖는 의미를 우리 나라의 고분 벽화 연구의 과정으로 삼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나마 부족한 자료로 상세하게 접근하려는 저자의 의지가 가득 담겨있는 우리 나라 최초의 고분벽화 연구서로서의 의미를 부여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