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의 칭찬에 고무되어, 오늘은 좀 더 그럴싸한 것을 해보기로 결심했다.
나의 눈에 들어온 것은 꿀 카스테라! 그런데 카스테라는 계란 흰자가 3개들어가는데 노른자는 6개가 들어간다. 그리고 냉장고에는 계란이 다섯 개만 있었다. 또 다시 슈퍼로 총총총~ 핫케이크 가루를 지난 번에는 500g을 샀는데 이번엔 업그레이드 해서 1kg으로 고르고, 우유도 2개 고르고, 계란도 한 판 바구니에 담았다. 크림치즈를 사고 싶었는데 없다고 하시네. 이 슈퍼는 유통기한이 짧은 녀석들은 대체로 취급하지 않나 보다. 이건 제과점 가면 파나??? 그나저나 영수증을 보고 또 파르르~ 너무 비싸, 너무 비싸....;;;;;;
집에 와서 손 많이 가는 카스테라보다 간단해 보이는 미숫가루 머랭을 먼저 만들기로 했다. 요기에는 계란 흰자만 3개 들어가니 꿀 카스테라와 계란 짝도 맞다.
사진에서 보면 매우 걸쭉한 상태가 되어서 짤주머니에 담아 짜내는데, 나는 짤주머니도 없지만 설탕 대신 허니 파우더를 써서 그런지 무척 묽었다. 사실 요 일주일 동안 해본 모든 반죽이 다 질었다. 그래서 프라이팬에 한 숟가락씩 옮겼지만 나중에 모두 합체가 되어서 빈대떡처럼 되어버리는 게 아닌가. 그래서 결국 뒤집은 다음에 뒤집개로 잘랐다. 그래서 이런 모양이 나왔다.
웃기게 생겼지만... 맛은 좋았다. ㅎㅎㅎ 미숫가루로 만든 거라서 영양도 좋아 보이고, 비교적 손도 덜 간 편이다. 엄니가 세 쪽, 내가 두쪽, 나중에 온 세현군이 두쪽을 먹었다. 늦게 오는 사람은 먹을 차례가 오지 않는다.
미숫가루 머랭의 나름(!) 성공에 어깨가 들썩이며 꿀 카스테라에 도전했다. 견본은 이렇게 생겼다.
얼마나 아름다운 자태이던가! 나는 시키는 대로 충실히 반죽을 만들었다. 물론, 체를 두 번 치라고 했는데 귀찮아서 한 번 치기는 했지만 그것 때문에 내 빵이 제대로 안 나온 것 같지는 않다. 시키는 대로 안 한 게 더 있기는 하다. 다른 때는 '박력분'이라고 재료에 나오는데 이 녀석은 '우리 밀가루'로 나오지 뭔가. 혼란이 왔다. 그건 또 뭐지??? 우리밀가루는 박력분인가, 중력분인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쿠키나 케이크는 박력분, 빵은 중력분을 쓴단다. 우리집 곰표 중력분의 사용 예시는 부침개, 수제비, 칼국수, 만두였다. 그 중력분이 '우리밀가루'가 되는 건지 알 수가 없다. 검색을 더 해보니 카스테라는 박력분으로 만든다는 얘기도 심심찮게 나온다. 그래, 부드러운 빵이니 케이크 만든다 생각하고 박력분을 쓰자! 결심했다.
그리하여 열심히 반죽을 만들어서 오븐토스터를 살짝 예열하고, 어제의 그 스테인리스 그릇에 담아 15분으로 설정해 두었다. 그리고 설거지를 하려고 앞치마를 두르고 수세미를 몇 번 돌렸을 즈음 갑자기 타는 냄새가 나지 뭔가! 급 당황하여 돌아보니 새까맣게 표면이 탔다. 오븐 토스터 가동한지 5분 정도밖에 지나지 않은 시점이다. 급 패닉 상태!
안쪽은 당연히 하나도 안 익었고, 재료를 버리기 아까워서 위쪽의 탄 부분만 걷어냈다. 처참하게 개수대로 떨어진 빵의 윗가죽 부분이다.
다시 한 번 오븐토스터를 돌렸다. 이번엔 5분으로 설정. 설거지도 못하고 내내 지켜봤다. 위쪽만 또 노랗게 익어가는 것이 아닌가. 어제는 밥통에서 실패해서 오븐토스터로 옮겼지만 오늘은 그 반대다. 오븐토스터에서 실패해서 밥통으로 옮기기로 결심했다.
문제는 또 밥통이다. 어제 취사 5분 만에 보온으로 돌아가는 밥통 때문에 오븐토스터로 옮기지 않았던가. 그래서 지난 주말에 처음 시도했던 우리집 식혜 만들기용 커다란 밥통을 다시 꺼내기로 결심했다. 이제 쓸일 없어질 것 같아서 베란다로 옮겨진 녀석. 그런데 복병이 있다. 우리집 베란다는 아주 좁고 기다란데, 밥통과 문 사이에 건조대가 있고 거기에 빨래가 한 가득. 빨래 다 걷기 전에는 건너편으로 지나갈 수가 없다. 아, 가지가지 장벽도 많다. 그래서 어제 나한테 '밥통같으니!' 욕을 집어 먹은 작은 보온밥통으로 대체하기로 했다.
일단 하나 가득 차 있는 밥을 다른 냄비로 이사시키고 버터를 바른 뒤 안쪽은 설익고 위쪽은 타기 직전인 카스테라 반죽을 옮겼다. 나름의 순환을 위해 마구 휘저어서 조금 섞어 주었지만 비쥬얼만 더 흉해질 뿐.
취사 버튼을 누르고 다시 설거지에 돌입. 이번에도 5분 만에 보온으로 넘어간다. 아씨, 나더러 어쩌라는 겨!
그래서 집게로 고정시켜서 강제로 '취사' 상태로 만들었다. 다시 설거지에 돌입. 10분이 채 안 되어서 또 타는 냄새 작렬!
오, 갓!!
밥통을 열었을 때의 모습이 저랬다. 나는 고구마 에일리언이 나를 노려보는 줄 알았다. 누구냐, 넌!
쟁반에다 엎으니 요모습!
엄마 보시기 전에 얼른 다시 뒤집었다.
누가 너를 꿀 카스테라로 여기겠니. 내가 만들었지만 참 한심하게 생겼구나...ㅜ.ㅜ
부엌의 탄내가 장난이 아니다. 엄니가 심각하게 물으셨다.
"밀가루 아직도 많이 남았니?"
큰언니는 출근하면서 내게 그런 말을 했었지. 너 잘 때 밀가루 몰래 버리고 오겠다고...
그렇지만 말이다. 저래 보여도... 맛은 있었단 말이다...ㅜ.ㅜ
휴우... 재료의 힘이랄까.
그러자 울 둘째 언니가 그런 말을 하였지.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고....;;;;;
훌쩍... 뭐가 문제인지 모르겠다. 어제는 괜찮았던 오븐토스터가 오늘은 왜 그리 빨리 태워먹었는지... 혹시 꿀 때문인가? 꿀 성분이 금방 타버리게 되어 있나? 어제의 초콜릿처럼???
오븐토스터도 안 되고, 밥통도 안 되고... 이러다 나 밥통까지 사는 거 아니야?
알라딘에서 하루 특가로 쿠쿠를 팔면 맘이 동할지도 모르겠다.
오늘 하루 특가로 설정된 1000피스 퍼즐은 내가 제안한 게 채택된 거다. 고무되어서 몇 개 더 추천했는데 그 후 메일을 안 읽더라는....;;;; 밥솥도 추천 메일을 보내야 하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