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잊은 너를 너무 잊고 싶어
너를 쓴다.

내가 잊고 싶은

너는 기대다.
희망이다.
사랑이다..

내 곁을 떠난 너를
나는 그리워... 하지않는다.

다만 너를 기억하고 싶지 않을뿐이다.
너를 원하고 싶지 않을뿐이다.
네게 더이상 연연하고 싶지 않을뿐이다.

네가 정말 없다면

나는 서글프지 않을 것이다.
나는 뒤척이지도
버둥거리지도 않을 것이다.
나는 아프지 않을 것이다.

네가 정말 없다면

나는 숨을 잃으며 자유를 얻겠지!

나는 더이상 고통도 괴로움도 잊은 채 말이다.

네가 내게 주던 것은 끝없는 갈망을 담보로 한
헛헛한 희망... 희망고문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희망이 아닌 두려움과 불안과
절망을 통해 너는 나를 미혹하게 한다.

그러니 나는 너를 잊을 것이다.
나는 너를 놓을 것이다.

한순간 잡을뻔했던 너의 손을 잃어야 나는
날아오를 것이니...

가라.
뒤돌아보기도 바라지 않는다.

너를 잃어야 나는
날아오를 것이니...

나는 더이상 잊은 너를 다시 잊고파 하기 싫다.
나는 더이상 잃은 너를 다시 잃고자 가슴을 헤치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가라.
뒤도 돌아보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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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10월 부터 올해 3월까지
32기 독자선정위원회 활동을 했습니다.

어제인 4월 6일까지가 마지막 3월 활동 마감일이었습니다. 이제는 글의 양식이나 분량과 상관없이 공감 클릭해도 되니까 홀가분한 기분입니다.

33기분들의 활동 응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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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2-04-07 11: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고생하셨습니다~! 독자선정위원회 활동이 쉽지 않았을거 같아요. 아무리 즐거워도 의무로 하는건 좀 힘들거란 생각이 듭니다 ^^

이하라 2022-04-07 12:24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처음엔 매일 읽고 클릭했는데 알고 보니까 앱에서 클릭하는 것도 합산하더라고요. 그래서 컴터로는 격일로 활동했어요. 처음엔 몰랐는데 6개월은 좀 긴 활동기간이었던 것 같아요.^^
 
[전자책] 1984 (한글+영문) 더클래식 세계문학 57
조지 오웰 지음, 정영수 옮김 / 더클래식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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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에 대한 리뷰는 이미 남겼다. 하지만 머리로 생각한 바는 일부 전한 것 같지만 이 소설에서 받은 깊은 인상이 자꾸만 아릿하게 남아 사라지지 않으니 다시 한번 리뷰를 남기면서 잊으려 한다. 

 

"전쟁은 평화, 자유는 구속, 무지는 힘" 이런 역설적인 구호를 일상으로 맞이한 시대가 이 소설의 시대적 배경이다. 저자 조지오웰이 1984년의 전체주의 세계를 가상하여 그린 이 시대 상황은 우리 세계와 다른 듯 또 닮아있는 듯한 착각을 주기도 한다. 보이는 것은 다르나 소설을 끝까지 읽고 보면 이 시대의 한면을 엿본듯 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세계는 오세아니아, 유라시아, 동아시아 세 개의 구획으로 나뉘어 한창 전쟁중이다. 주인공 윈스턴이 살고 있는 영국은 오세아니아에 속한 지역이다. 이 시대는 평화부가 전쟁을 관할하고, 풍부부가 배급량을 제한해 식량배급을 감소시키고, 진리부는 정보를 통제하여 대중심리통제를 하는 것만으로도 역설적인 시대라는 것을 충분히 증거하고 있다. 심지어 애정부라는 부서는 심문하고 고문하는 곳의 명칭이니 말이다.

 

윈스턴은 진리부의 공무원으로 보도 직전이나 출간 직전의 자료를 받아 교정한달까 통제한달까 하는 인물이다. 신조어를 만들어 보급시키는대에도 뛰어난 재능을 발휘하는 인물로 신조어를 만드는 자체로 그의 반골기질을 묘사하려 한 것이 아닌가 싶다. 그는 체제에 순응하고 있는 듯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반발의 여지를 품고 있다. 

 

빅브라더가 지켜보는 세상에서 그는 혁명을 꿈꾸고 있다. 혁명이 일어나길 바라고 그 혁명에서 작은 역할이라도 하고 싶어하는 인물이다. 그는 혁명단체 형제단이 존재한다는 소문을 듣고서 자신 역시 형제단의 일원이 되고자 꿈꾸고 있다. 그와 동시에 일상의 모든 바를 통제하는 통제사회인 그곳에서 무미건조한 결혼생활을 해봤던 그는 한 여자에 대한 흑심을 품기도 한다. 그녀를 강간하고 죽이려 공상하기도 하는데 어떤 까닭인지 그저 작가의 권능 때문인지, 줄리아라는 그녀는 그와의 관계를 계획하며 그에게 접근한다.

 

그 둘은 남녀의 연애마저도 통제하는 그 사회에서 언제 검거될지 모르는 상황 속의 짜릿한 밀회를 즐기기 시작한다. 그 과정에서 그는 오브라이언이라는 권력자가 정부에 반감을 지닌 은밀한 반역자라는 오해를 하고 그와 접촉하게 된다. 그는 오브라이언을 형제단원으로 착각해 반역의 의지를 드러낸다. 그리고 줄리아와의 밀회를 넘어 사랑을 느끼기 시작하던 그와 줄리아는 정권에 검거된다. 

 

이후부터 그가 애정부에 잡혀가 오브라이언으로부터 고문 받으며 그에게 세뇌랄까 사상교육이랄까를 받는 장면이 이 소설의 백미이다. 이에 대해서는 이전 리뷰와 카뮈의 [이방인] 리뷰에서 짧게 언급하고 있으니 본 리뷰에서 생략한다. 실존 자체를 위협 받으며 인격과 사고 마저도 제어 당하게 되는 그 과정은 너무도 이 소설을 인상 깊게 만드는 서술들이다. 자신의 감각과 정서, 사고 자체가 모조리 통제될 수 있음을 윈스턴은 알수 없었을 것이다.

 

2 더하기 2가 3도 되고 4도 되고 5도 될 수 있는 기만의 세계에서 그는 인지부조화를 겪다가 끝내 죽음의 순간에는 수긍하고야 말게 된다. 빅브라더를 깊이 사랑한다고까지 수긍하고서야 그는 죽고만다. 그가 절정에 위기의 순간 줄리아를 자기 대신 고문하라고 처절히도 비명지르는 그 인격 자체가 말살되는 부조리가 납득이 가지 않았는데, 삶에 대한 집착이 빅브라더에 대한 애정으로 치환되고마는 그 순간만큼은 수긍하게 되었다. 이 세계의 많은 이들이 삶에 대한 애정을 자신이 호응하는 정치가나 정치조직, 특정단체, 매체들에 대한 호감으로 치환하는 까닭을 알게 된 것만 같기도 했다.

 

윈스턴이란 인물은 존재 자체를 부정당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그 스스로 존재 방식과 존재 자체를 재정의하게 되었다. 그가 원하지 않고 그가 수긍할 수 없는 존재가 되는 것을 그 스스로 수긍하고 원하게 되고야 말게 된 것이다. 이런 정도의 극한의 부정을 그 누군들 감당하고 싶을까 싶었다. 빅토르 위고의 [웃는 남자]에서 그윈플레인은 자신의 출신을 알고나서 남루하게라도 받아지녔던 그 자신의 모든 것과... 그 남루함 속에서도 빛나던 사랑마저 잃고야 만다. 데아라는 그의 빛과 같은 소녀는 장님이었지만 그의 안에서 빛나는 진가를 알아주던 이였다. 데아도 죽고 그윈플레인도 죽었지만 그들의 사랑은 죽음으로나마 완성될 수 있는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그윈플레인을 보고 다시 윈스턴을 보니 1984에서의 윈스턴이 더 안스러웠다. 모든 것이 통제 당하는 사회에서 모든 것을 부정 당하고 사랑마저 혐오로서 끝나버렸으니 말이다.

 

카뮈의 [이방인]에서 뫼르소는 오해 받는 남자이다. 누구도 이해 받지 못할 곳이 세계라고 확장할 수는 없을 지 몰라도 분명 이렇게 이해가 아닌 오해로 점철되는 순간이 사람이 생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윈스턴처럼 부정 당하는 존재, 산산히 분해되고나서 완벽히 다른 무엇으로 프린팅 되는 존재가 되고 싶은 이가 있을까? 뫼르소에게서는 공감의 여지가 있지만 윈스턴에게서는 공감만큼이나 나는 결코 저렇게 되고 싶지 않다는 불안과 두려움이 앞섰다. 그러면서도 이 삶 속에서 과연 윈스턴과 같은 심문과 고문을 당하는 이가 없기만 할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게 나는 결코 아니기를 바라는 마음과 함께 말이다.

 

그리고 그들의 세계에 빅브라더는 실존하는 존재였을까? 형제단은 실체가 있는 단체였을까? 인지부조화 이후 윈스턴은 다시는 그런 생각 조차 하지 못했다. 없는 것도 있는 것이고 있는 것도 없는 것이다. "나는 왜 이런 부조리한 세계에 던져졌을까?" 윈스턴이 잠시 내게 빙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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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인드맵 독서법 마인드캐비닛 3
미소천사 한이 지음 / 부크크(bookk)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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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인드맵과 독서법이 연계된 매혹적인 주제라 선택한 책이다. 정보 전달의 비중만큼이나 수필적인 요소가 커서 다소 당황스러웠다. 마인드맵을 이미 알고 실적용하고 계신 분들에게는 실망스러울수도 있다. 첨부된 사진자료들은 다소 조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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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cmong 2023-08-05 20: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알라딘에도 서평 남기셨군요. 잘 했어요.
 
달라이 라마의 마지막 수업 - 내 삶의 방향키를 잃어버렸을 때
달라이 라마 지음, 소피아 스트릴르베 엮음, 임희근 옮김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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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출간을 처음 알고 나의 영혼이 그리도 기다렸던 책이구나 싶었습니다. 공감과 연민이란 주제로 달라이 라마의 가르침을 들을 수 있다면 정말이지 내 영혼이 길을 찾는 것만 같다고 여겨졌거든요.

 

팬데믹 이후 이리 길어지며 적응도 좀 되련만 정신도 감성도 피폐해져 가는 것만 같고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세상 메마름의 정점인듯 갑갑함이 이루 말로 다할 수 없을 지경이 되었습니다. 더불어 공감이나 연민의 심정도 더 힘을 잃은 것만 같았습니다. 

 

달라이 라마께서 설하신 불교 명상에 관한 저작으로 가르침을 처음 접해보았기에 그분이 전하는 명상에 대한 지식과 경험이 그분 가르침 전반에 대한 신뢰를 갖게 해주었었습니다. 하지만 쿤달리니 수행을 근간으로 하고, -위빳사나(사념처) 수행이 배제된- 아나빠나사띠(안반수의)만을 보조 수행으로 삼는 저의 수행은 정신과 지성에는 유익했으나 메마른 심경에 공감과 연민을 불러일으키는 기적은 경험하지 못한 듯했습니다. 그래서 공감과 연민 그 자체가 주제인 본서에 더더욱 관심이 갔습니다. 

 

하지만 읽고 보니 성인을 위한 말씀은 아니라는 생각이 다소 들었습니다. 말씀의 시작부터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젊은 친구들, 여러분은 이 세 번째 천 년(2001~3000년) 초에 태어났습니다.' 라고 독자 대상을 못 박으시면서 시작하시니까 더더욱 그렇게 느껴지네요. 본서는 달라이 라마께서 82세실 때 하신 연설이나 쓰신 저작이 바탕이 되니, 현재 89세이신 걸 감안 한다면 7년 전인 2015년에, 2001년 부터 그 이후 태어난 2015년 당시 초등생과 중학생을 대상으로 하신 말씀입니다. 

 

그래서 말씀이 쉬우면서도 명료하신 것 같기는 합니다. 다만 부연 설명이 필요하다 싶은 대목들에 대한 말씀이 없다시피 한 것이 단점이 아닌가 싶습니다.

 

아주 짧게나마 달라이 라마로 추대되신 시대의 상황과 이후 중국의 티베트 복속, 자신의 망명, 망명 이후 타국에서 티베트의 정치와 종교를 분리하려 노력하신 과정을 말씀하시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밖의 예로 드신 시대 상황들은 우리는 이러한 시대를 거쳐왔지만 여러분의 시대는 달리 만들어 마주할 수 있다는 여운을 남기시려는 말씀이기도 했다고 보입니다. 

 

'젊은 친구들, 여러분은 인류를 위해 품은 나의 희망입니다.'

 

달라이 라마께서 이 어린 학생들 이제는 젊은이가 되었을 이들에게 한 말씀입니다. 저는 기성세대가 난제만을 만들어대다가 그 해결은 다음 세대에게 떠넘기는 것은 무척이나 무책임하고 몰상식한 짓이라고 여기지만 이 말씀은 니들이 해결해라는 말씀보다는 후학에게 내일에 대한 기대와 희망을 거는 어르신의 말씀 정도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각 대륙의 젊은이들에게 아프리카 연합, 북미연합, 라틴아메리카연합, 아시아연합을 만들기를 권하며 그것을 새시대의 희망으로 보는 달라이 라마의 기대에는 자못 회의가 들기도 했습니다. 물론 달라이 라마께서 말씀하시는 세계 곳곳에서 지역사업을 하는 기구들이 더 활발히 통합되기를 바라는 이유는 압니다. 하지만 이제까지 세계 경제기구들이나 UN, 하다 못해 WHO에 까지 각국 정부나 정치경제인의 영향력이 행사되며, 기존의 체계에 어떠한 왜곡을 불러왔는지를 보아온 사람들에게는, 신세계질서라던가 그레이트 리셋의 과도기적인 연합들의 출현이 곱게만 보이지는 않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중반부에서는 자신의 어머니께서 자신의 연민 수행에 첫스승이였다며 여성의 힘에 대한 말씀을 하십니다. 여성이 감정이입이 더 잘 되고 수용적이라면서 여성이 세계를 주도해 나가면 세계가 달라지리라는 말씀도 하십니다.

 

'여성이 다스리는 나라들에는 전쟁, 폭력, 경제 및 사회적 불의가 덜할 것입니다.' 

 

과연 스페인이나 영국의 여왕들 시대에는 그러했던가요? 신라의 여왕들 시대에는 전쟁도 폭력도 사회적 불의도 덜했을까요? 여성이 자신의 가족들까지 희생하며 일으키는 살인과 보험사기 사건들을 사건사고 재현 드라마들에서 보았던 것이 기억났습니다. 미국에서 일어난 젊은 여성 금융사기범의 사례는 드라마로도 만들어졌습니다. 게다가 한국에서는 여성 단체들의 고위급 인사가 북한 지령을 받고 사드 반대 시위에 여성단체들이 대거 투입되기도 했던 전적이 있습니다. 북한의 자금과 지령을 받은 여러 시민 단체장들 중 분명 여성 단체의 고위급 인사가 포함되어 있었다는 뉴스를 보신 분들도 많을 겁니다.

 

여성이라서 다를 거다. 무슨 논리 입니까? 남성도 여성도 문제와 혜안의 비중이 비슷할 것입니다. 그냥 남녀를 가르지 않고 '젊은이들이여 깨어나 변화를 위해 일어서라'고 하는 정도가 맞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하지만 공감과 연민에 대한 말씀은 감상이 아리게 남습니다.

 

'분노의 대상에 대한 부정적 생각의 90%는 우리 자신의 정신적 투사로 이루어진다고 합니다... ... 이해한다는 것은 해방되어 평화롭게 행동한다는 뜻입니다. 합리적인 추론에 의거하면 분노와 그 분노의 결과인 공격성과 폭력을 줄이거나 배제할 수 있습니다.'

 

데이비드 흄처럼 원인과 결과로서 바라보지 않고 사건과 사건으로 단절해 본다거나, 인과론이나 목적론으로 보지 않고 비선형적인 인과를 가정한다면, 더 떠나서 결정론의 관점에서 본다면 세상 누구도 원망할 필요가 없으며 남 탓도 내 탓도 할 필요가 없을 거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이외의 합리적 추론이란 것으로는 오히려 원인을 찾기에 급급해 탓할 누군가를 찾거나 자신을 탓하며 한탄하는 경우 밖에는 없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달라이 라마께서는 입보리행론처럼 연민의 시작을 어머니의 사랑에서... 보다 자세하자면 어머니의 사랑에 대한 자녀된 입장의 심정에서 설명하시고 있습니다. 하지만 알프레드 애들러처럼 어머니와 관계가 원만하지 않은 사람이나 유년기에 버림 받아 어머니의 보살핌도 사랑도 못받은 사람들이 있다면 그들 내면에 자리잡은 어머니 원형에 비추어 세상 모두에게 자신을 사랑해준 어머니에게 갖을 심정을 가지라는 것은 지나친 무리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애들러가 말년에는 어머니에 대한 원망을 해소하였는지는 모르겠으나, 그와 비슷한 이들이 한창 어머니를 원망하던 시기에라면, 입보리행론의 가르침이나 달라이 라마처럼 일부 보편적인 사람들의 사적인 견해에 근거한 연민에 대한 해석은 수용 가능한 가르침인지 모르겠습니다. 

 

어머니라는 원형상 보다는 그저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해준 누군가를 연상하는 쪽이 각각의 입장의 대중들에게 더 납득하기 쉬울 예가 아닌가 합니다. 

 

하지만 연민과 공감의 마음이 진정으로 나를 사랑해 주고 보살펴준 누군가를 연상함으로써 발현된다면 그 마음이 다른이와 다른 모든 생명과 자연을 향하게 되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라 생각됩니다. 

 

달라이 라마께서는 연민과 공감을 환경과 자연 문제로 까지 확장하시는데 이는 가장 불교적인 메시지가 아닌가 싶었습니다. 중생은 산스끄리뜨어와 빨리어로 사뜨와라고 하는데 이것은 비단 사람만을 일컫는 것이 아니라 사유하고 감정을 지닌 모든 대상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인간도 동물도 외계인도 다른 차원의 존재들 이를테면 영혼이나 신까지도 사뜨와 입니다. 불교에서 연민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사유하고 감정을 지닌 모든 대상을 말합니다. 

 

그러하기에 인간의 탐욕만으로 자연을 훼손하여 인간의 이기심을 충족하며 뭇생명들을 죽이거나 그들의 터전을 빼앗으며 그들의 생존 자체를 위협하는 어떠한 행위도 결국 우리를 해치는 행위가 될 거라는 것을 이해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이타주의를 수용하기 위해 이기주의를 이용하신 탁월하신 전략이라고 생각되던 대목입니다.

 

그리고 이 책의 서두부터 젊은이들이라고 말씀하신 그 세대들에게 여러분은 최초의 인터넷 세대이니 그를 잘 수용해 선한 영향력을 사용하라는 관점의 말씀도 하십니다. 가짜뉴스에 깨어있고 타인을 위해 유익한 정보를 나누라고 말입니다. 

 

'여러분 각자의 행동 표현 반경은 전 세계입니다. 그 결과 여러분이 개인적 자유를 행사하는 데에는 지구 차원의 권리와 그만큼의 책임과 의무도 따르게 됩니다.'

 

사실을 말씀하심과 동시에 달라이 라마께서 새로운 세대에 대해 갖으시는 기대와 희망이 어찌 그리 큰지도 설명해주는 문장이 아닌가 싶었습니다. 

 

누구보다 2001년부터 그 이후 출생한 새로운 세대들에게 꼭 하시고 싶은 말씀은 '너희가 함께라는 것을 잊지 말아라. 함께 나아가라. 서로를 깨닫게 하라.'는 말씀이 아니셨을까 싶습니다. 

 

만약 본서가 대담집이였고 독서 대상이 초등생 중학생이 아니라 그 이상인 연령대였더라면 제가 갖은 이견들은 충분히 반박되었을 것이고 달라이 라마께서는 더더더 설득력있는 말씀을 남기셨을 겁니다. 출판사의 작명솜씨가 보통이 아니라 다소 기대 이상의 기대를 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초등 고학년 자녀나 조카, 중학생 자녀나 조카를 두신 분들이라면 선물하셔도 좋을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시대를 살아갈 세대들에게 전하고자 하는 달라이 라마의 메시지를 전달해주는 것도 우리 몫의 책임이 아닐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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