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사람을 얻는 힘 : 인간력
다사카 히로시 지음, 장은주 옮김 / 북플레저 / 2026년 3월
평점 :
#사람을얻는힘인간력 #다사카히로시 #인간력 #인생이야기를만들어내는힘 #인생의해석력 #인간수양 #구도 #자기계발 #인간관계 @_book_pleaser
#북플레저 로부터 #도서지원 을 받아 자유롭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 독서 동기
삶을 누구와 살아가느냐의 문제라 평하리만치 인간은 관계에서 의미를 찾는 존재다. 그런 인간에게 더 나은 관계를 만드는 결정력은 기술이 아닌 인간력에 있다고 말해 주는 본서는 삶과 그 삶을 알아가는 사람이란 존재 자체의 소명을 말해 주는 책인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관계와 삶과 사람과 나를 더 알아가게 해줄 책이리라 기대되기에 다가섰다.
+ 본서 빛깔
: 저작 성격
본서의 원제는 [人間を磨く NINGEN WO MIGAKU]로 우리말로 옮기면 “인간을 닦는다”이다. 제목 자체에서 알 수 있듯 저자는 인간관계를 수양과 구도(求道)에 대한 관점으로 보고 있다. 인간관계를 수양의 기회로 삼으라는 게 본서를 관통하는 주제이다. 방법론에 있어서도 타인을 이해하고 포용하는 마음가짐을 기르는데 주안점을 둔다.
: 저술 내용
“죽는 순간까지 인간을 수양하여 인격을 완성한다.” 프롤로그에서 저자는 이 말을 주제로 언급한다. ‘인간을 수양한다’는 건 자기 계발이나 지식이나 기술을 쌓는 일이 아니라고 “삶의 경험을 통해 연마해 나가는 과정”이라며 말이다. 마음을 들여다보는 날의 중요성을 자각시키며 “마음은 뱀, 전갈과 같다.”는 당대의 고승이 남긴 말을 전한다. 저자는 ‘멋진 인생’을 “스스로를 다잡고 성장해 나가며 주위 사람들과 진실한 관계를 맺어 가는 것”으로 정의한다. 본서에서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건 “‘의미있는 인생’을 살아가는 법”에 관한 것이다.
저자가 전하는 방법론으로 기억에 남는 건 “마음속 작은 자아를 억누르려 애쓰지 않고 판단하지 않으면서 조용히 바라보는 힘을 키우라”는 대목과 “하나의 이상적인 인격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 다양한 인격을 키워서 상황에 맞게 적절히 사용하는 사람을 목표로 한다”는 구절이 가장 먼저 다가왔다.
저자는 무아를 이야기하지 않고 마음을 궁구하고 들어가면 만나는 소소하게 자각되는 미세 자아를 논하고 있다. 이 작은 자아를 거울로 여기고 닦고 또 닦으라는 것이다. 닦을 거울도 없다는 선시랄까 게송도 있지만 살아가며 닦을 것도 없는 경지 속에 한결같이 머무를 수 있을 사람은 드물다는 걸 늘 깨닫게 된다. 크게 깨닫고 경계를 넘어선 사람이 되고자 하더라도 항상 성찰하지 않고는 그런 경지는 멀고 먼 것이니 말이다. 그리고 다채로운 페르소나를 우리는 늘 바꿔 쓰며 살아간다. 때에 맞고 상대에 맞는 페르소나가 아니라면 이는 개인적으로도 관계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큰 문제가 된다. 가끔 자녀에게 성폭력범의 가면을 쓴다거나 가족에게 강력범죄자의 가면을 쓰는 자들도 뉴스를 통해 흔히 보게 된다. 남녀 할 것 없이 교사나 교수가 성범죄자의 가면을 쓰거나 의사나 판사가 역시 그러는 경우마저 뉴스를 통해 보게 된다. 상대에 맞는 때에 맞는 가면을 바로 쓸 수 있는 사람이 진정한 어른이 아닐까 싶다.
그러나 관계에서의 마음가짐을 거듭 이야기하는 저자의 이야기가 듣기에 포근한 느낌이고 자성어린 말들로는 느껴지기는 했지만 “모든 원인은 나에게 있는 걸 깨닫게 되었다”는 저자의 깨우침은 그저 자신의 삶에서 자기에게 한정된 경로상의 하나에서 들어선 자성이지 일반화할 문제는 아니란 생각도 들었다.
오래오래 전 첫사랑인 그녀가 어느 밤 어린 시절 이야기를 했다. 중학 시절 부모님과 떨어져 친척 집에 머물며 통학했다고 한다. 그런데 밤마다 사촌 오빠라는 인간이 방으로 찾아 들어 추행했다는 것이다. 그 말에 난 그 사촌 오빠라는 인간에게 죽이고 싶을 만큼 분노를 느꼈다. 그녀가 일 키우지 말라고 가족들도 친척들도 아무도 모르는 데 네가 그러면 모든 게 무너진다고. 그녀의 그 말에 참을 수밖에 없었다. 이 이야기는 친구들에게도 이 세월이 흐르도록 말한 적이 없다. 이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과연 모든 원인이 자신에게 있기만 한 것이냐는 말을 하고 싶어서다. 사촌 오빠만이 아니라 부모든 친척이든 이웃이든 우연히 마주친 인간이든 그리고 피해자가 여성이든 남성이든 어린이든 청소년이든 성인이든 어떤 사건이 있었다고 모든 게 다 자신이 불러들이거나 일어나길 원해서 발생하는 게 아니다. 세상일은 의도치 않고도 원하지 않아도 겪게 되고야 마는 일들이 더 많다. 하지만 대부분에 사람들은 원인이 자신에게 있다고 믿어야만 안정을 찾는 것 같다. 세상 대다수 일들에 통제권이 자신에게 전혀 없다는 걸 인정하고 싶어 하지 않는 것 같이 말이다. 해석에 대한 것 말고는 전혀 통제권이 없는 일들도 우리 삶의 시절들에는 많지 않은가?
그리고 저자는 자기혐오와 타자 불안에 관한 이야기를 한다. 타자 불안에 관한 이야기는 그다지 주목되지 않았지만 자기혐오는 저자의 이야기에 반론이 일었다. 타인에 대한 비판과 타인의 가치관이나 주장 또는 선택에 반론이 이는 순간에 자기 내면의 어둠을 보게 되고 자기혐오에 빠진다는 주장에 일말의 동의도 들지 않았다. 저자는 아마도 자기방어 기제 가운데 투사의 예를 전하려 한 것 같으나 투사의 경우가 아니더라도 공감 가지 않는 이들도 즐비한 것이 세상이다. 물론 살아가다 보면 나의 내면에 억압하고 있던 욕망이나 바람을 누군가 거리낌 없이 행할 때 상대를 악마화하거나 적대시하게 되는 경우의 수도 없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세상 모든 이들의 행동이 당신의 어두운 면을 미러링해 주는 건 아니다. 이 시절에 재정적 이윤 추구를 목적으로 성인을 또는 어린이마저 납치해 장기를 적출하는 사례를 중국을 비롯해 그리 추정되는 실종을 겪는 이 나라의 많은 사례들을 보며 분노하는 어른 중에서 자신의 내면에 남의 장기를 적출해 부자 되자고 마음먹는 사람은 없다. 자기 자녀나 자기 조카나, 친구의 어린 자녀가 그런 상황에 놓이는 상황을 떠올리며 분노하는 경우가 훨씬 많을 것이다. 누군가나 무언가에 대해 비판하거나 분노한다고 자기 내면의 어둠을 투사해 그렇다는 견해는 정신분석학을 이상하게 대입하는 경우가 아닌가 싶다.
+ 감상 포인트
저자는 살아간다는 건 사람과 함께인 것이기에 인생은 사람과의 관계를 통해 수양해 나아가는 것이라는 관점을 지닌 사람이다. 그에게는 삶은 관계이고 관계는 수양의 길이다. 관계를 화두로 삼은 사람이란 감상이 들었다.
이 시대까지 대부분의 한국 남자들은 사랑이 화두였다. 여성들이 남자를 평가의 대상으로 삼으며 남자의 도덕성이나 가치관에 또는 사람에 대한 태도에 문제를 짚게 될 때 “어! 너 그런 놈이야! 너는 낙제! 아웃이야! 저 남자는 80점이니까 저 남자로 갈아탄다!”라고 할 때, 대부분의 한국 남성들은 자신이 사귀는 여성에게서 도덕성이나 가치관, 태도에서 문제를 발견하면 그런 면을 바꿔주고 나서 헤어지겠다는 선택을 해 왔다.
한국 여성들이 “여자는 좋은 남자를 만나면 딸이 되고 나쁜 남자를 만나면 엄마가 된다”고 이야기하며 남자를 채점하는 길을 걸을 때, 그녀들이 말하는 그 아빠가 되고 지지자가 되고 격려자가 되는 길을 선택해 온 것이 남자들이다. 이런 사회현상 덕에 남자는 성장했으나 되려 요즘 젊은 세대의 여성들을 보면 이런 여성이 선호하고 남성이 선택한 여정이 장기화되며 여성의 성장과 가치관에 악영향을 초래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목도하고 말았다.
몇 해 전 인간극장이었나 그와 유사한 프로그램에서 우연히 살림 안 하는 전업주부가 나오는 이야기를 보았다. 그 방송에서 등장한 여성은 과거 정상체중보다 다소 적은 체중에 평범한 얼굴로 보이지만 주위 남자들로부터 대시가 끊이지 않던 인기녀였다고 한다. 그런데 자신에게 대시하던 남자들 가운데 인품이 나은 남자와 결혼하고는 전혀 외모도 살림도 안 하면서 낮 동안에는 소파에 누워 스낵을 몇 봉지씩 먹으면서 누워서 보내다가 남편이 퇴근해서 남편이 요리까지 마쳐서 식사를 대령해서 주면 먹고 다시 누워서 TV를 보다 잠을 자고 남편이 출근하면 늦게 일어나서 또 소파에 누워 하루 온종일 지내다가 친구들에게서 연락이 오면 예전 체중보다 두 배가 넘는 체중이 되어선 “내가 옛날에 남자들한테 인기가 끝짱이던 거 기억하지?” 같은 옛날에 있던 금송아지 같은 이야기나 떠들다가 다시 집에 들어와 누워서 보내는 날들이 지속되는 것이었다. 말이 전업주부이지 전혀 가사를 돌보지도 않고 청소, 요리, 설거지, 빨래 등 모든 가사도 남편이 돌보고 있었다.
아마도 그 남편 입장에서는 방송국에서 와서 촬영도 하면 아내가 살림하는 시늉이라도 할 줄 알았던 모양이다. 그럼 그걸 기회로 결혼 생활에 변화가 있으리라고 기대하고 말이다, 하지만 그 아내 입장에서는 자기가 몸매도 불어났고 외모도 변했다지만 그런데도 이렇게 사랑받고 사는 남다른 여자라는 모습을 전국에 자랑하고 싶었던 게 아닌가 싶다. 내가 이 이야기를 하는 건, 남성은 한국 사회에서 여성을 모든 면에서 만족시켜야 하고 언제나 지지자가 되어야 하고 여성이 문제나 변해야 할 바가 있다면 격려하고 변할 여지를 일깨우고 인도해야 한다는 불문율 같은 걸 안고 살아갈 때 이 자체가 남성에게 과도한 부담이면서도 자신의 인격과 삶에 대한 마음가짐과 사람에 대한 태도를 변화시키며 총체적으로 성장하는 계기가 되었다는 것이다. 반면에 여성은 그런 수혜를 당연한 바로 여기며 자존감만 충만해져서 남성을 평가하고 채점하는 지위를 만끽하는 동안 전인적 성장의 길에서 멀어지며 앞서 예를 든 살림도 하지 않는 전업주부처럼 최악의 인생 노선까지 가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는 것이다.
나는 딸이 없지만 딸이 있다면 말해 주고 싶다.
“너를 사랑하는 남자의 딸이 되려 하지 말아라. 네가 딸이게 만드는 그 남자는 너를 지지하고 격려하고 인도하는 삶의 여정에서 인격적 성숙을 이루게 되겠지만 그 과정에서 너는 재생 불능의 쓰레기가 되고 만다. 여성은 엄마가 되지 않고 딸이어야만 한다는 관점이 너를 도태시키는 거야! 그러니 그 남자의 엄마가 되고 싶지 않다면 그의 딸이 되고자 하는 바람도 버려라. 의지해서 도태되지 말고 지지하고 격려하고 인도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라.”
위와 같은 이런 말을 전하고 싶다. 물론 남자가 여성의 부족한 면을 보는 그 눈도 어린 시절의 치기어린 관점이 작용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 시절의 그런 치기는 그 시절에 이룰 수 있는 성장의 길로 인도한다. 그리고 남성이 모두 이런 길을 통해 성장할 때 그 길에서 성장의 디딤돌이 된 여성은 마음의 안정과 자존감을 얻는 대신 받는 존재이자 도움받는 것만 당연하게 여기는 존재로 타락하고 만다. 이해받고 지지받고 인도받는 게 좋은 것 같겠지만 남녀가 똑같이 미숙한 시절에 누군가를 이해하고 포용하고 격려하고 힘이 되려 노력하면서 남성들이 이루는 성장을 대부분에 한국 여성들은 놓치고 있다. 받는 게 좋은 게 아니라 주는 게 성장하는 길이다. 늘 부족함을 느끼는 사람은 아무리 부를 쌓아도 인색하고 굶주리고 목말라 한다. 반면에 주려고 노력하고 무엇이던 더더더 주고만 싶어 더욱 탐색하고 배우고 이 길을 어찌 전할까 숙고하는 사람은 결국 주는 과정에서 한층 더 성숙해진다. 딸이 있다면 성숙할 길을 걷게 하고 싶다.
본서는 성숙을 논하지 않는다. 본서의 한국어 제목은 ‘얻는 힘’이라는 표현과 ‘인간력’이라는 표현을 제목에 더하고 있지만 진정한 여정은 닦아 나아가는 길 그 자체에 있다. 길을 걸으면 그 길이 된다. 물론 자신 안에서 자신이 바라는 바와는 정반대의 어둠을 보게 되는 경우도 있지만 중도에 수명을 다하거나 비명횡사하는 암담한 경우가 아니라면 오랜 세월 원하는 길을 걷다 보면 어느새 그 길과 자신이 다르지 않은 상태에 있음을 깨닫게 된다. 사랑의 길을 걸으려다 보면 사랑 그 자체가 되어 있는 자신을 발견하는 순간이 있다.
누군가를 향해 진심을 다하고 누군가를 더 나은 존재로 인도하고자 거듭 노력하던 순간에도 그 또는 그녀가 진심과 노력에 거짓과 폭력, 또는 되돌릴 수 없는 기만과 범죄로 대응해 오면서 전혀 양심의 가책마저 느끼지 않으며 뻔뻔하다는 말로도 다 못 할 사람이라는 걸 깨닫는 순간도 있다. 저 사람의 죄가 드러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저 사람의 모략에 내가 누명을 쓰고 오명을 써야 하고 세상 어디에도 하소연할 수 없는 상황도 살다 보면 만나게 된다. 하지만 그런 상황에서도 자신은 자신을 알 수 있지 않나? “내가 얼마나 나다운 나를 지키며 나다운 내가 되었는지” 깨달을 수 있다. 성숙이 아니라 “다시 나로 돌아가는 것 그것이 살아가며 걷는 길”이 아닌가 싶다.
그런 길에 대해 다소나마 조언을 전해주는 책이 본서다. 저자는 이 책에 매운맛보다는 순한 맛 세상을 담고자 했다. 지나치게 밝은 세상 속 같고 맑은 사람들 사이에서 나를 다시 하는 여정 같기도 하지만 세상의 다채로운 풍경의 길 가운데 하나를 엿보게 하는 의미도 큰 책이 아닌가 싶다. 아마도 이 길이 걸어보고 싶을 분들도 많을 듯하다. 자신이 바라던 길인지 알아보고자 하는 독자라면 선 듯 선택하셔도 좋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