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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에 죽음은 있는가 - 생명의 본질에 다가가는 일주일 동안의 사색
이나가키 히데히로 지음, 이소온 옮김 / 북멘토(도서출판) / 2026년 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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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멘토 출판사로부터 #도서지원 을 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 독서 동기
인간 중심 사고로 인식하는 죽음이란 프레임으로 식물의 죽음을 관찰할 수밖에 없는 게 인간의 한계이긴 하다. 하지만 그 관찰 속에서 죽음이 번성과 배려일 수 있다는 식물 중심 사고로 헤아려보게 되고 다른 통찰을 얻으며 인간 자신을 성찰하게 되는 건 인간의 한계를 인간 스스로가 초월할 수도 있다는 긍정적 결론으로 이끌지 않나 싶다. 더 나은 인간세계를 만드는 길은 식물도 동물도 외계도 인간을 넘은 시야로 바라볼 수 있을 때 가능할 것이기에 이 책과의 만남이 기대되었다.
+ 본서 빛깔
: 저술 성격
저자는 시즈오카 대학 농학부 교수로서 식물생태학을 가르치는 식물학자다. 본서는 대학 강의를 하며 학생들로부터 온 이메일 질문에 대한 저자의 대답을 전하는 방식으로 저술되었다.
본서의 부제는 [생명의 본질에 다가가는 일주일 동안의 사색]인데 전체 7장으로 월요일 질문으로부터 시작해 일요일의 질문까지에 대한 각 대답을 전하기까지의 사색을 담고 있다.
이 사색과 대답의 여정은 식물학자로서 식물에 대한 학술만을 전하는 게 아니라 그 과정에 다른 동물과의 비교, 별과 지구 탄생의 여정, 원소의 구성까지 논하기도 하며 생태학을 근간으로 한 깊음과 아우름을 담은 생태철학으로 전달하고 있다.
저술의 성격은 분명 전문적 학술을 바탕으로 하지만 에세이풍인 건 분명하다. 출판사도 생태철학 에세이로 분류하고 있다.
: 저작 내용
월요일의 이메일 질문은 “식물은 왜 움직이지 않는 걸까요?”라는 뚱딴지같아 보이는 질문이다. 이에 관한 설명을 하며 저자는 독립영양생물과 종속영양생물을 논하면서 광합성만으로 존재 가능한 식물이기에 굳이 움직일 필요가 없음을 피력한다. 대답에서 “왜 동물은 꼭 움직여야만 하는 걸까요?”라는 반문을 하며 끝맺는다.
하지만 이에 대해 나로서는 저자와 다른 관점이다. 해바라기는 해가 뜰 때부터 해가 질 때까지 해를 따라 고개를 돌린다. 그리고 아침이 되면 다시 해를 향하려 밤사이 고개를 해가 뜰 방향으로 돌린다. 그리고 그 유명한 명작 [나무 수업]을 근거하자면, 한 그루의 나무에서 열매가 떨어져 싹이 나면 어미라고 할 수 있는 나무는 자기 새끼 나무랄 수 있을 새싹들이 잘 자라라고 햇볕을 잘 받게 하기위해 자기 가지를 다른 방향으로 튼다. 이 모든 과정은 인간의 속도로는 굉장히 느리게 이어지기에 사람은 나무가 움직인다는 걸 간과하는 게 아닌가 싶다. 그리고 우리는 일상에서도 덩굴나무나 식용식물의 덩굴이 다른 나무 또는 지지대를 향해 덩굴을 뻗어 덩굴을 말아 올리는 걸 흔히 목격한다. 그런데도 식물학자가 식물은 움직이지 않는다니 의아한 결론이다.
수요일엔 풀과 나무의 차이를 묻는 질문에 답하고 있다. 풀은 보다 확실한 유전자 전달을 위해 1년이라는 짧은 생을 선택했지만 그것은 진화의 과정에서 보다 효율적인 삶의 양식 종족 보존을 찾는 여정에서 다양화가 일어난 것이지 무엇이 낫고 나쁘다고 볼 수 없다고 한다. 풀과 나무의 차이는커녕 식물과 동물, 더 나아가 식물과 인간의 차이도 없다는 게 저자의 답변이다.
목요일 “벚꽃길의 벚꽃은 모두 몇 그루인가요?”라는 질문에 저자는 삽목이라는 나무의 일부를 잘라 땅에 심는 방식을 전하며 식물은 둘이 된다 해도 하나일 수 있다고 전한다. 내 생각에는 인간의 유전자 복제가 기술적으로 3D 프린팅으로도 가능하다면 식물의 삽목에 의한 생의 영속성 같은 영속성을 지니게 된다고 볼 수도 있지 않나 싶다. 로버트 패틴슨이 주연한 봉준호 감독의 영화 [미키 17]처럼 말이다. 접목에 대해서 저자는 키메라를 논하기도 한다. 이를테면 사람 유전자로 쥐의 등에 사람의 귀를 생성하게 한 것, 돼지 장기를 사람 유전자로 생성하게 해 사람에게 이식한다는 등의 매드싸이언티스트의 아이디어 같은 요즘 유전학과 의학의 발상도 키메라를 연상케 하지 않나 싶다.
금요일 “나무는 살아있나요?”라는 질문에 저자는 나무의 나이테를 이야기하며 나무의 내부에는 죽은 세포들로 이뤄져 나무테가 형성된다며 죽음과 삶이 공존하는 게 살아있는 것인지 모른다는 메시지를 전하기도 한다.
토요일엔 “식물은 죽나요?”란 질문에 답하고 있다. 앞서 말한 삽목을 논하며 단세포 생물의 세포 분열에 의한 증식을 이야기하기도 하며 식물은 어쩌면 영생할지도 모른다는 말을 전하기도 한다. 이 과정에 의학자들이 암세포를 분리해 무한 증식하고 있는 영생 세포인 헬라 세포를 연구하는 이야기도 이어간다. 저자는 텔로미어가 세포 교체 시기마다 짧아지는 여정을 말하며 죽음의 불가피성을 이야기하기도 하는데 내 생각으로도 세포의 교체는 그 과정에서 유전자 손상을 일으키기에 완전한 세포로 세대 교체하는 번식도 진화 도상에서 나쁘지 않은 선택이지 않은가 싶다. 물론 랍스터와 같이 껍질을 벗으며 덩치만 키울 뿐 이론상 영생이 가능한 생물도 존재한다지만 우리가 랍스터가 아닌 다음에야 다음 세대를 보존하며 죽는 것이 나쁠 이유도 없지 않나 싶다. 한정된 유통기한 때문에 삶도 그 삶에서 함께 하는 사람도 소중할 수 있는 건지도 모르겠고 말이다.
그리고 일요일의 “식물은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나요?”란 질문에 저자는 별과 지구의 탄생을 서술하며 탄소가 등장하기까지의 여정을 이야기한다. 저자의 답변은 식물도 우리 인간도 별의 조각으로 이뤄져 있다는 것이다. 내 생각에는 빅뱅 이론에 양자 역학의 양자 얽힘을 적용한다면 사람은 모든 다른 사람과 그리고 우주의 모든 다른 생명체와 비생명체들과도 이어져 있는 것이다. 그러게 존 던은 [명상 17]에서 “누구든 완전한 섬이 아니다”라고 말한 것이 아닌가 싶다.
+ 감상 포인트
식물학과 동물학, 생태학을 통해 철학적 사유와 감상에 이를 수 있다. 근래까지 출간된 관련 분야 책들은 그런 깊이와 폭을 보여주고 있다. 본서도 사유의 폭을 넓히며 과학을 통한 철학적 사유를 안겨주는 책이다. 본서의 감상이 삶도 일상도 사람도 생명도 다르게 볼 기회를 안겨 줄 것이다.
그리고 비단 이 책만이 아니라 생물학 저작들과 과학 저작 전반에 대한 관점을 다시 가질 기회도 되어줄 것이다. 과학은 철학이다. 과학의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지 않더라도 알 수 있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