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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를 사랑할 때 내가 사랑하는 그는 누구인가?
카트린 벵사이드.장이브 를루프 지음, 박명숙 옮김 / 열림원 / 2025년 1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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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림원 으로부터 #도서제공 을 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yolimwon
이 책을 선택하게 된 이유는 “정신분석학과 철학, 신학, 사상의 시선을 통해 결핍과 욕망이 아닌 온전한 사랑, 투사와 전이가 아닌 순수한 연결이 가능한지 배우고 헤아리는 시간이 되리라 기대되었기 때문”이다.
다만 쉬운 서술인 것 같으면서도 철학적 내용에서는 철학 기반이 없는 나에겐 상당히 독해 난이도가 버거운 책이었다. 물론 쉽게 이해할 수는 있는 책이기도 하지만 이걸 마음에 와닿는 감상이 아니라 머리로 이해하기 위한 접근을 한다면 다른 분들도 이해하기 쉽지만은 않을 것이다. 까닭에 제민이(제미나이)에게 ‘본서의 내용에서 철학 부분을 구체적이며 체계적으로 철학자와 철학 이론을 제시하며 설명해주기를’ 부탁해 이해에 도움을 구했다.
본서의 특색은 첫째, 저자들의 경력을 들어야 할 것 같다. “심리치료사이자 정신과 의사”인 저자와 “사제이자 철학, 신학 및 심리학” 박사인 저자가 공저한 저작이다. 둘째, 주제인 사랑이 크리스천의 주제인 그 사랑이기보다 남녀의 사랑이다. “이성 간 사랑에 대한 주제를 심리와 철학과 신학적으로 접근해 풀어나간 영성 에세이”이다.
느낌 면에서의 감상부터 전하자면 첫째, 신부님이나 수녀님 또는 스님께서 쓰신 “사랑을 주제로 한 영성서와 같은 서술”이라 느껴진다. 둘째, 남녀의 사랑에서 시작하지만 사제가 쓰신 저작이다 보니 예수님의 말씀과 같은 “신앙적 차원의 감상을 가진 서술”을 하고 계시기도 하다.
이성 면에서의 감상은 첫째, “철학적인 부분이 납득하기 쉽게 서술”되었다는 것이다. (물론 제미나이로 다시 철학 부분에 대한 이해를 더 듣고 확신하게 되기도 했지만) 본서 자체만으로도 이론적인 면을 “이성으로 이해하기보다 마음에 와닿는 느낌과 이해”로는 충분히 감상이 깊었다.
이 책 이전에도 성경을 읽으며 창세기 1장과 2장에서 기록된 남녀 창조의 기록이 차이가 있다는 걸 인식했었고 그 내용을 여러 번 포스팅하기도 했었다. 본서에서는 ‘릴리트’라고 언급된 ‘릴리스’ 에 대한 유대교 전설 같은 이야기는 중학생 때 처음 알게 되었고 [끝없는 사랑 이야기 101]이라는 제목으로 [한잎 소설 6~8]회에 걸쳐 소제목 항목인 [실락원 S1 Ep.1~Ep.3]에서 아담과 릴리스의 이야기를 소재로 웹소설을 쓰기도 했다.('네이버 웹소설'과 '조아라'에 있어요) 그리고 그리스 신화를 비롯한 서양 신화들 전반에서 “남녀가 한 몸에서 둘로 분리되었다는 신화적 상징”이 있다는 것도 이해하고 있었다. 다만 본서는 이 신화적 이야기를 시작으로 “남녀가 ‘결핍’을 느끼며 서로를 원하는 과정”과 “타자를 완전히 이해할 수 없으면서 소유하려 하고 자신의 연장선으로 보며 끌리는 과정”을 설명하며 전개된다. 저자의 설명에서 결핍에 대한 대목이 일반적인 영적 스승들이 주장하는 그 결핍을 인식하는 자체가 영적 결핍이란 식의 서술이 아니라, “결핍을 통해 세상과 자기 내면을 인식하게 되고 성장한다”는 “철학(플라톤)이기만 한 것이 아닌 심리학적 접근”이라 상당히 부담 없고 거북하지 않다는 감상을 남기기도 했다.
저자는 “상대를 완전히 이해하거나 소유하는 건 불가능하며 그 다름을 인정”하는 것, “내가 아닌 깊은 타자라는 걸 인정하면서 진정한 사랑이 시작된다”는 이야기(에마뉘엘 레비나스의 ‘타자성 철학’)를 한다. “하나가 되려면 둘이어야 하며 둘일 때 비로소 하나가 된다”는 식에 저자의 서술에 “‘하나가 되어야 한다. 하나이고 싶다’는 마음으로 사랑에 임했던 20대 초의 내 모습이 떠오르며 참 무리한 바람으로 사랑에 과한 기대를 했었구나” 하는 회한과 자기 이해에 이르기도 했다.
“상대에게 욕망을 충족하려고만 하거나 나의 바람이나 야망, 본능만을 투영할 때” “상대를 물건으로 취급하는 것”이니 “상대가 나를 충족시켜주는 대상이라는 관점을 버려야 진정한 ‘너’로 이해하는 시작”(마르틴 부버의 ‘관계의 철학’)이란 걸 깨닫게도 되었다.
“진정한 사랑”에 대한 정의를 저자는 “나를 소모하는 게 아니라 나의 생명과 존재를 고양시키는 것”(바뤼흐 스피노자의 ‘기쁨의 철학’)으로 설명하는데 이 역시 기존의 영성서들이 나를 포기하라거나 나란 없다거나 사랑하는 이를 신적으로 여기며 헌신하면서 영적 성장을 찾으라는 식의 억지스런 주장과는 달라 깊이 다가왔다.
심리학적 정신분석학적 면면을 보면 54쪽쯤이었나 ‘오르가슴’을 이야기하는 장이 있는데 53쪽에서 “서로를 만나 사랑에 빠지는 과정이 욕망하는 상태에서 비욕망 상태로 이행하게” 한다며 “일종의 죽음”이라는 말을 하는데 거기서 더 나아가 “최종 쾌락인 ‘오르가슴’이 무질서에서 질서로 복원한다”고 언급하고 있기도 하다. 이를테면 “존재하는 자체가 ‘엔트로피’ 상태로 나아가는 것이니 서로를 찾는 과정도 무질서를 향하는 과정” 중에 있는 것인데 “오르가슴은 그런 무질서(산만, 분산)로 향하는 엔트로피 상태를 질서(몰입, 집중)로 되돌리려 애쓰는 과정”이라 말하는 것으로 다가왔다. 저자는 “바람직한 충동은 죽어버린 충동”이라고 했는데 어렵다 싶은 이 말의 의미를 나는 “바람직한 충동은 충족된 충동” 다시 말해 이미 “충족되어버린 충동”, 반드시 “충족되어야 할 대상”인 거라 그리 이해했다.
그리고 저자는 “우물에서 예수님과 여성이 만난 요한복음 속 장면”을 통해 “신학적 차원에서 사랑에 관해 설명”하기도 한다. 과거에는 기독교인이었으나 현재는 탈 기독교 한 사람으로서 이야기하자면 난 저자의 설명에 대해 일부 견해가 다르다. “생명수” 이야기와 예수님에 대한 신앙을 이어가는데 “나는 유대인들 문화에 관한 저작을 읽고 든 감상이나 유대 신앙체계를 이해하고 나서는 예수님이 메시아가 아니라는 감상”을 갖게 되었다. “유대의 신앙체계에서는 원죄론이 없다.” “실낙원은 내가 보아도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생육하고 번성해야 할 인류가 진행했어야 할 여정의 시작”이 되는 바였다. 유대 문화에서는 “지혜의 열매를 먹은 것이 대대손손 뼈와 피로 이어지며 씻지 못할 죄가 될 정도의 죄가 아니다”라는 말이다. 구약에서도 “사람은 언제 어느 순간이나 죄를 짓는다는 식의 문장”이 등장하며 예수님도 “마음으로 짓는 죄도 죄”라고 말했다. “죄는 예수님 믿는다고 벗어날 수 있는 게 아니다.” 늘 죄 짓도록 만들어져 있기에 죄를 짓지 않기 위해 “늘 스스로 성찰하며 깨어서 살아가야 하는 게 인간의 숙명”인 것이다. “죄는 누가 대속해서 사라지는 차원의 것이 아니”며 애초에 “유대교에서 죄는 길을 잃은 것으로 해석”되기에 “스스로 성찰하고 되돌아보며 헤아려서 옳은 길을 찾아가면 되는 게 죄와 인간 사이 관계”에 실상인 것이다. 그리고 예수님의 “누구도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천국에 이를 수 없다”는 말씀은 “네 안에(너희 사이에) 천국이 있다”는 말씀과 함께 해석해야 할 것이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나”는 “자기 자신”인 것이다. 그렇기에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내 안에 있는 천국에 이르지 못하며,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나와 나의 합인 우리) 서로의 사이에서 천국을 구현할 수 없는 것이다”.
본서는 “철학을 기본으로 심리학과 신학을 더해 머리만이 아닌 가슴까지 총체적인 차원에서 사랑을 풀어내”고 있다. “사실 가슴만이 아니라 오르가슴까지 최종적인 쾌락까지 논하기에 영과 육 모든 차원에서의 사랑을 논하고 있다”고 볼 수 있는 책이다. 그렇다고 “사랑을 우상화하고 동경하게 하는 접근도 아니고 사랑의 과정이 성장으로 이르게 하는 전개”이기에 “사랑 때문에 자기 자신을 잃어가고 있는 이들과 타자를 통제하고 강요하며 사랑하고 있다고 합리화하는 사람들에게 꽤 큰 깨우침을 줄 만한 저작”이 아닌가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