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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어디에서 왔니 - 탄생 ㅣ 한국인 이야기
이어령 지음 / 파람북 / 2020년 2월
평점 :
한국인 이야기라는 주제로 고인이 되신 이어령 선생께서 연작을 쓰신 것이 [너 어디에서 왔니], [너 누구니], [너 어떻게 살래], [너 어디로 가니] 다. 이 책 [너 어디에서 왔니]는 한국인의 탄생을 다룬 책이기도 한데 한국인의 탄생과 양육과 성장기를 다룬 보다 더 원형적인 웅장히도 거대한 이야기로 다가왔다. 물론 이건 완독하고 난 감상이지 읽으면서는 소소한 삶과 삶의 이면 이야기들이다.
한국인이 임신하고 출산하고(난 출산이란 말을 좋아하지 않는다. 조선 시대에 쓰이던 생산이란 표현이 일제 시대 일제가 제품이 만들어지는 걸 생산이라고 하며 인간은 出 나오고 産 낳는데 기계는 되려 生 태어나고 産 낳는, 어의가 이상하게 뒤바뀐 기괴한 언어 세계가 되어버린 게 어이없다) 태어나고 아기를 돌보고 돌봄을 받고 자라는 과정을 돌아보는 이야기가 본서이다.
본서에서는 꼬부랑 할머니 이야기로 이야기를 여는데 이를테면 신기하고 재미난 이야기, 가벼우면서 흥미로운 이야기로서 본서의 내용을 보아주길 바라시는 마음이 담기지 않았나 싶다. 하나의 민족의 개개인이 탄생하고 성장하는 이야기, 아기를 갖고 낳고 돌보는 이야기는 무겁다고 보면 한없이 무겁지만 일상이라고 보자면 한없이 가까운 이야기가 아닌가? 이어령 선생께서는 이런 이야기가 무겁기보다는 가깝게 느껴지기를 의도하시고 집필하셨던 게 아닐까 싶다. 하지만 꼬부랑 할머니 이야기의 실제는 꼬부랑 할머니가 자신이 눈 똥을 꼬부랑 강아지가 먹으려 하자 꼬부랑 강아지를 꼬부랑 지팡이로 내리치는 똥 같은 이야기라는 현실도 알고 가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것이 이어령 선생의 말씀이다. 희화된 이야기의 이면에 진짜 현실을 담아낸 ‘인생은 아름다워’란 영화처럼 희화할 수 있다 해도 처참한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본서의 서술은 시종 경쾌함을 유지한다.
태명을 짓는 관습은 한국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 전 세계 어디를 보아도 태명짓기의 시작은 한국이라고 언급된다고 하는데 우리도 이런 문화가 대중화된 건 2001년인가 2007년부터라고 한다. 아기에게 말을 거는 독특한 문화는 태교라는 아시아 전체의 문화유산이라고 보기에는 한국의 독특함이 담겨있다. 아기에게 말을 거는 문화에 과학적인 이유가 담긴 것은 아기들이 옹알이, 영어 발음으로는 배블링을 시작할 때 프랑스 아기들은 ‘바바’라고 하는데 나이지리아 아기들은 ‘아바 아바’로 자음+모음의 결합이냐 자음+모음+자음의 결합이냐는 차이를 불러오기도 하며 아기들의 울음 소리를 들어봐도 프랑스 아기들은 상승조로 울고 독일 아기들의 울음은 하강조라고 한다. 태내에서부터 부모의 억양과 발음 특성을 배워 세상에 나오면서부터 울음소리가 다르며 옹알이도 자기 나라 말에 맞게 한다는 것이다. 민족 정체성이라는 게 생각보다 훨씬 근원적이구나 싶기도 했다.
이 책에서 가장 눈길이 갔던 이야기는 서양 아기들은 스와들링이라고 낳고부터 거의 1년을 보자기에 꽁꽁 쟁여 묶어서 돌보는데 우리 아기들은 그렇게 억압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 대목에서 나로서 생각되는 것이 그렇게 생애의 최초 시기에 억압받는 서양 아기들은 자라며 이후 자신의 의지로 선택하며 사는 삶을 달게도 부여되는데 비해 동양 아기들은 자라서 성인이 되는 동안 생애 대부분의 선택 특히나 학업과 대학 및 진로 선택 그리고 결혼에 이르기까지 생의 선택안 중 대부분에서 전혀 자유롭지 못하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가정마다 가풍이 다르긴 하지만 한국 드라마의 가장 큰 주제나 소재 하나가 부모의 자식 결혼 반대이지 않은가? 그리고 청소년 드라마들에서 학업 스트레스, 대학 선택 문제, 진로 문제에서 부모가 개입하지 않는 경우는 본 적도 없다. 반면 서양 드라마와 영화들에서 이런 문제는 소재로도 사용되지 않는 주제들이다. 스와들링 잠시 당하고 자신의 삶을 일생 자신이 선택하는 서양인의 삶과 이 시대에 한국 사람들의 삶을 비교하면 의식하지 못할 정도로 제한되어온 선택의 폭을 자각하게 한다. 이런 문제를 자기 비판적 차원에서 언급하는 학자들은 없으며 이어령 선생 또한 본서에서 크게 주목하지 않았다.
그리고 아기를 업어 키우는 문화는 일본과 아메리카 인디언 외에는 없다는 일본 보건학자의 말을 언급하시면서 스와들링 하는 유럽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나라와 민족들이 업어 키운다는 말씀도 하신다. 업어 키우며 접촉이 지속되는 경우를 연구한 심리학 연구에 의하면(과거 유럽 고아원 환경을 배경으로 한 연구이다) 아기를 업기도 하고 어루만지기도 하는 접촉이 잦으면 아기의 성장 발육과 면역력 형성에 유익했으며 이런 접촉이 완전히 단절되는 경우 심지어는 다시 접촉의 기회가 생긴 아주 오랜 기간까지도 아기의 성장이 중단된 경우도 보고되었다고 한다. 접촉이 완전히 차단되면 심지어는 아기가 사망하기도 한다.
그리고 돌잡이라는 게 우리 문화의 되게 독특한 면이기도 한데 1500년대의 기록에 의해도 아기가 태어난지 1년째 돌잡이를 했으며 그건 오래된 예로부터의 전통이라고 언급되고 있기도 하단다. 무언가 잡는 것을 생의 선택과 연결 짓는 것은 참 독특한 전통이라고 생각되기도 했다.
본서는 분량이 꽤 되고 여러 이야기를 담은 책이지만 한국인만의 무의식이라고 생각되는 면은 그리 많지 않았고 해석하기 나름이라는 생각이 들 때도 꽤 있었다. 한국인만의 정체성을 찾는다는 것도 그리 쉬운 여정이 아니라는 생각도 든다. 한국인을 이해하고 싶다거나 한국인만의 무의식을 알고 싶다는 취지라면 민담이 주제인 책들이 더 낫지 않을까 생각도 했지만, 본서에서 보듯 민간의 일상으로 민족 정체성을 이해한다는 건 민담만으로는 부족할 듯도 하다. 우리의 일상을 눈여겨본 학자들의 강의로 다가서는 것도 좋으리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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