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재앙의 지리학 - 기후붕괴를 수출하는 부유한 국가들의 실체
로리 파슨스 지음, 추선영 옮김 / 오월의봄 / 2024년 9월
평점 :
이 책의 원제는 [Carbon Colonialism]으로 ‘탄소 식민주의’라는 정의가 이 시대를 제대로 고발하고 본서의 방향성을 직시하도록 해주는 제목이다. 도대체 [재앙의 지리학]이라는 한국어 제목으로의 변경이 왜 필요했는지 잘 모르겠다. 저자 로리 파슨스는 로열홀러웨이런던 대학에서 인문지리학 분야를 가르치고 있다고 하며 기후변화가 세계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는 다양한 프로젝트에서 선임연구원으로 활동하고 있다고 한다. 책의 색깔을 짧게 짚어보자면 300쪽의 책이라고는 하지만 판형이 작고 분량이 많지 않아 기후위기와 함께 세계 불평등을 함께 조망한 작은 에세이집 같은 느낌이다. 정보 전달을 목적하고 문제의식을 가지고 전하는 책이지만 전체적으로 기후위기로 야기되는 문제를 전하는 칼럼이나 세상 이야기를 전하는 에세이 느낌을 많이 준다.
본문을 읽으며 느껴진 부분이 없지는 않으나 나로서는 늘 주지해오던 사실들을 언급한 책이다 보니 에필로그에서 정리해 주는 이야기가 더 인상적이었다. 앞서 말했듯 에세이풍으로 다가오다 보니 문제적 대목에서 오히려 문제로 인식되어야 할 대목들이 세상 이야기 중 하나로 느껴지며 지나치게 되는 부분들이 있다. 그러다 보니 되려 에필로그가 더 인상적으로 남는 경향이 생겼다. 다른 분들이 처음으로 독서하실 때는 에필로그부터 먼저 읽고 본문으로 들어서는 것도 좋을 것 같다고 말씀드리고 싶다.
저자는 에필로그에서 ‘환경에 대한 여섯 가지 신화’라는 주제로 본서를 정리하고 있는데 “첫 번째 신화: 기후변화가 더 많은 자연재해를 유발한다?” “두 번째 신화: 소비를 통해 기후붕괴에서 벗어날 수 있다?” “세 번째 신화: 환경주의자들은 넷제로를 위해 싸운다?” “네 번째: 국경 안보를 강화해 수십억 명의 기후 이주민을 가로막아야 한다?” “다섯 번째: 지속가능성은 국내에서부터 시작된다?” “여섯 번째 기후과학은 정치와 무관한 합의다?”까지로 정리하고 있다.
본서의 본문에서 가장 주지되는 것은 ‘다섯 번째’와 ‘여섯 번째’이기도 한데 그 중 가장 먼저 주목되는 것은 공급망이 다변화되어있는 현실에서 자국의 탄소배출이 줄어든다고 해서 전 세계적인 탄소배출의 규모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느 나라던 국내에서의 기업의 탄소배출을 제재하면 그 기업은 타 국가로 생산시설을 확충해 탄소배출을 이어가던가 해당 기업이 다수의 국가에서 탄소배출을 가중해 버리는 것이 가장 큰 문제이다. ‘두 번째 신화’도 여기서 깨질 수밖에 없는 게 국가나 개인이 탄소배출을 줄이고 환경문제에 기여하기 위한 계획을 수립한다고 해도 그 의도와는 달리 공급망이 다변화된 현실에서 한 국가가 생산했다는 라벨이 붙은 제품에서 이미 여러 국가의 원재료들이 소모되었으며 그 여러 국가의 원재료가 생산되는 과정에서의 환경파괴와 인적 피해 그리고 탄소배출을 제한할 여지는 거의 없다는 것이 저자가 주목하도록 하는 바다. 이미 배터리 관련 도서와 환경 문제에 관한 다른 책에서 언급되어있는 사례가 떠오르기도 했는데 그 책들에 의하면 탄소배출을 줄이고자 전기차 생산이 장려되어 해당 부품인 배터리의 원재료가 되는 리튬 생산지인 콩고에서 어린이가 노동현장에서 혹사당하고 중금속에 중독되어 폐인이 되거나 죽어가는 상황들이 언급되고 있다. 이걸 불가피하다고 할 수 있을 사람이 몇이나 되겠나 싶기만 하다. 한 국가의 자국내 탄소감소와 그 지속만 생각해서는 답이 나오지 않는 구조라는 말이다.
‘여섯 번째’인 기후과학이 정치와 무관하지 않다는 저자의 문제 제기도 공감 가지만 나로서는 저자와의 방향성은 다르다. 저자는 루퍼트 머독이나 일부 언론의 기후위기와 환경주의를 비난하고 기후위기설이 개발을 저지하는 작용을 한다는 그들의 주장을 언급하며, 환경주의와 기후위기에 대한 국제적 합의가 도전받는다는 식의 주장을 펼친다. 하지만 나로서는 세계경제포럼이나 빌더버그 회의 등 초극부층들과 정치가들의 국제적인 연대로 볼 때 또 이미 이들 사이에서는 기후위기를 연구하는 학자들을 후원하고 세계적으로 기후위기설을 보편화하며 추구하는 그들만의 계획이 있다고 본다. 이 계획에 대한 저항을 저지하려는 의도로 그들 내부에서 소규모의 문제 제기를 의도적으로 불러일으키고 있다고 짐작된다. 기후위기설은 이미 전 세계 대중에게 보편적 상식이 되었으며 이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는 전문학자들이 노벨상 수상자거나 전문가 중의 전문가라고 해도 대중이 비웃는 분위기까지 연출되고 있는 지경이다. 기후위기설을 극대화하려고 UNEP 국제연합 환경계획국의 최종지도층이 데이터를 조작하고 가짜뉴스를 퍼트린 것이 사실로 밝혀져도 또 미국 정부에서 기후환경분야 해당 부서에서 활동하던 이들이 돌연 데이터 조작 사례를 고백하고 고발해 봤자 이미 대중은 기후위기설을 정설로 보고 이런 사례를 꽁트로 치부해버리는 지경이다. 본서의 저자가 주장하는 방향과는 다르지만 분명 기후과학은 정치적인 것이라는 말이다.
그리고 ‘세 번째 신화’ 환경주의자들이 넷제로를 위해 싸운다는 말의 허위성을 지적하는 저자의 말에 첨언하자면 환경주의자를 자처하는 이들 가운데 기업과 초극부층들은 환경문제를 제기하며 탄소배출을 극단적으로 하는 전세기를 타고 국제회의 등에 참여하는 형국이다. 이들의 주장은 허위일 뿐이라는 말이다. 넷제로를 주장하며 혁신하려는 제도와 기술들은 새로운 시기의 파괴적 혁신이 되어 막대하디 막대한 부를 창출하는 기반이 된다. 세계미래보고서 시리즈의 저자인 박영숙님의 이 분야 저작 가운데 하나인 [기후재난과의 전쟁]에서도 기후위기설을 기반으로 한 넷제로를 완성하기 위해 개발되고 있거나 적용을 앞둔 이미 개발된 기술들을 언급하고 있는데 이 모든 기술과 제품의 혁신은 초극부층의 새로운 시장이 되는 것이다. 이 변혁의 끝에 대중의 절대다수가 AI의 발전으로 시장에서 도태된다고 해도 초극부층 그들만의 사이에서 새로운 변혁으로 인한 그들만의 경제가 이어질 것이다. (도태된 다수의 인류는 CBDC나 다른 형식의 디지털코인으로 사용화폐의 용도 제한이나 사용기한이라는 제재를 겪고 15분 도시제와 탄소 발자국 추적으로 전방위적인 자유를 제한당하면 살아가게 될 것이다. 인류 대다수가 실업자가 된 상황에 그 인류의 생존을 극부층이 감당하려 할 이유가 없다. 인구가 현재와 같이 지속될 가망은 없으며 살아남은 인구도 생존방식을 제한당할 것이다. 이 일련의 과정은 기후위기설이라는 거대 규모의 작은 거짓으로부터 출발하는 것이다.)
앞서 말한 ‘여섯 번째’ 주장과 취지에서 보자면 초극부층이 정치가들을 후원해서 당선시키는 전 세계적인 취지에서 자신들의 경제적 이윤을 보장하는 파괴적 혁신을 위해 제도의 성립 등에 영향을 끼치지 않을 이유가 없다. 그리고 자신들의 번영과 존속을 위해 다수가 방해된다면 문제의 싹을 처리할 것은 자명하다.
‘첫 번째’와 ‘세 번째’ 저자의 주장은 사실 기후위기로 해안선이 높아지고 각국이 바다로 침식할 거라는 과거부터 주장되어오던 환경주의자들의 주장과는 다르게 가장 큰 피해자가 될거라던 도서 지역의 국가들이 현재 기후위기설의 수혜로 관광대국이 된 마당이고 환경주의자들의 경고대로라면 이미 침몰했어야 할 시기임에도 불구하고 각국은 어떠한 피해도 입은 전적이 없다. 일부 토네이도나 태풍의 피해나 지진의 피해가 언급되기도 하는데 한반도의 삼국시대 기록만 보더라도 2천 년 전부터 환경 피해가 막심하던 시기가 있었으며 이런 시기는 주기적으로 반복되고 있다. 거대한 규모의 하나의 주기로 보아도 될 문제라는 말이다. 지금보다 환경이 더 혹독하고 기후의 변화가 극심하던 시기에도 인류는 살아왔다. 그 시기들에 탄소가 현재 농도보다 높을 때도 기후가 낮았던 시기가 있었고 탄소가 현재보다 낮을 때도 현재보다 기후가 높았던 시기가 있었음을 과학이 증거하고 있다. 탄소가 결코 기후변화 원인의 전부가 아니라는 말이다. 기후위기란 없다. 기후가 재앙인 것이 아니라 기후위기설을 보편적 상식으로 조작해내는 인간들이 진정한 재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