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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잔혹사 - 약탈, 살인, 고문으로 얼룩진 과학과 의학의 역사
샘 킨 지음, 이충호 옮김 / 해나무 / 2024년 4월
평점 :
평소 인간의 편향성과 뇌의 기능적 영향으로 인한 특이성향 등에 관심이 많았다. 그러다 과학의 잔혹사라는 본서가 출간된 것을 알고 인간의 독특한 성향(인간성)으로 인해 야기된 문제들이다 싶어 관심이 갔다. 책 소개와 목차를 보고 더욱이 인간의 역사와 함께해 온 인간의 잔인성과 야만성, 그리고 자기기만과 자기 합리화가 어우러져 펼쳐진 이야기들이라 생각되어 관심이 깊어졌다.
저자가 샘 킨이라니까 다수의 독자들이 더 읽어볼 만한 책이라는 반응을 보이기에 누구지 싶어서 검색도 해봤다. 주기율표를 테마로 한 과학자들에 대한 이야기를 펼친 [사라진 스푼]과 뇌가 손상되거나 수술이나 사고 등으로 기능이 달라진 경우를 들어 뇌의 기능적 특이성을 다룬 [뇌과학자들], 기체의 화학적 특징과 그와 얽힌 일화들을 다룬 [카이사르의 마지막 숨], 천재와 장애 등을 가르는 유전자 이야기를 펼치고 있는 [바이올리니스트의 엄지] 등 과학을 대중적으로 서술하고 있는 베스트셀러들을 집필한 유명한 작가였다. 전공도 물리학과 영문학을 복수전공하고 미국 과학작가협회상을 특별수상하기도 했다고 하니 과학저작에 대해 믿고 선택할 만한 작가임에는 분명했다.
[과학 잔혹사]라는 본서는 과학과 의학 전반에 얽힌 잔혹하고 기만적이고 폭력적이며 야만적인 인간의 광기와도 같은 이야기들을 전하는 책으로 전문성과 서사 능력을 두루 갖춘 저자의 장점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는 책이다. 프롤로그부터 클레오파트라의 야만적인 의학적 실험들로 시작하는데 책의 내용 전반을 작가가 충격적인 전달이나 이것이 옳다고 하는 정의를 강조하기 위해 무겁게 서술하고 있거나 하지는 않다. 다만 담담히 각 시대에 따른 과학과 의학의 개가를 위해 과학자들과 의학자들이 무언가 중요한 것을 잊고 하나의 업무로서 진행해온 이야기들이 서술되어 있다. 물론 그 자체로도 이 시대에 범죄로 인식될 역사이지만 실제 미국의 핵폭탄 실험 정보들을 소련에 넘기려 한 간첩 행위나 흑인들의 매독을 치료하지 않고 진행시키면서 관찰한 사례, 해부용 시신을 만들기 위해 살인을 자행하는 사례, 남의 고고학적 발굴을 자신의 경력을 위해 훔쳐 가는 사례, 향정신성의약품 등 마약류를 검사하며 하지도 않은 검사를 했다고 거대한 횟수의 허위 보고를 한 사례 등은 명백한 범죄행위라고 보인다. 하지만 그보다 더 납득할 수 없는 경우를 이 책에서 보자면, 본서에서는 그대로 기록하지 않았고 케네디가 사람으로만 언급하고 있지만 실제 존 F. 케네디 대통령의 여동생을 그의 아버지 요청으로 뇌수술해서 폐인으로 만든 사례와 대중적인 쇼처럼 다수의 뇌를 절단해버린 사례, 지능지수가 160이 넘는 천재를 실험과 연구라는 명분으로 지속적으로 심리적 고문을 가해 연쇄 폭탄테러범이 되도록 만든 사례(흥미 위주의 방송들에서는 천재의 광기 어린 테러 사례로만 방송되었던 그 사건에 대한 원인 규명으로 다가왔다), 에디슨이 니콜라 테슬라의 교류 전기의 위험성을 강조하기 위해 동물들을 전기 처형하고 인간의 범죄에 대한 사형 방식에 교류전기를 사용하도록 한 사례 등에서는 범죄라기보다는 해당 과학자와 의학자, 관계자들의 금전욕과 성취욕과 명예욕, 무책임함과 잔인성, 야만성이 드러난 경우들이 아니었나 싶었다.
본서를 읽으면서 각 개인의 내재적 문제라고 여겨지던 부분들도 있었지만, 그 시대 상황에서는 당연했거나 별 거리낌 없이 자행될 수 있는 사안들도 있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각 시대 기준의 원칙들과 문화적으로 수긍되는 상식들을, 세월이 지나고 나서야 문제로 인식하는 경우들도 분명 있지 않나 싶다. 왜 사람들은 내가 겪고 싶지 않은 일은 상대에게 해선 안 된다는 단순하고 명징한 사실을 알지 못하고 살아왔던 걸까? 본서에서 짧게 언급된 2004년의 스테튼아일랜드의 장의사가 육군에 시신을 3만 달러를 받고 팔아 해당 국가의 육군이 시신의 다리에 방탄 신발을 신기고 지뢰의 성능 실험을 했다는 기록과 2010년대 후반 말라리아 백신 모스퀴릭스의 다양한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환자들에게 부작용이 있음을 고지하지도 않은 채 권장해서 대대적 피해사례가 나타난 경우, 그리고 본서에서는 등장하지 않지만 화이자사가 백신 보급 이전 임시 임상 실험에서 백신의 치명률이 3%인 것을 확인하고도 치명률 겨우 0.1%에 불과한 팬데믹 상황에 백신의 치명률을 숨기면서 대대적으로 보급한 사례 등도 이 과학과 의학의 잔혹사라는 게 20세기까지 이전 시대의 사건 사고가 아니라 우리가 맞이하고 있는 현재에서도 피할 수 없는 현실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게 했다. 아마도 가까운 미래에도 우리는 이런 잔혹성을 감당해야 할 것이다. 인간의 부정할 수 없는 특성이지 싶으니 말이다.
금전욕, 성취욕, 명예욕, 무책임함, 잔인성, 야만성과 광기만이 인간의 본성일 수는 없겠지만 이 책을 읽으며 새삼 인간의 속성 중 이런 면들은 부정할 수 없는 내재적 성향이구나 싶기도 했다. 그리고 본서의 부록에서도 일부 언급되고 있지만, AI가 개발되고 특이점을 앞둔 현재 인간이 감당해야 할 건 인간의 속성뿐만이 아니라 기계의 속성이기도 하리라는 생각이 든다. 과학의 발전으로 인간의 내재적 문제들이 해소되거나 완화되는 미래를 꿈꾸게 된 이들에게는 암울한 이야기이겠지만 말이다.
본서는 과학의 잔혹사가 과거부터 현재까지에 이르렀으며 그것은 인간에게 내재한 속성이 드러난 것이기에 미래는 인간의 속성과 기계의 속성을 모두 감당해야 하는 시대이겠구나 하는 감상이 드는 저작이기도 하다. 더 나아지고 보다 개선된 것 같겠지만 매 시대에는 그 시대에 인식 못 한 문제들을 안고 있었고 우리는 그에 대해 시간이 지나면서야 깨닫게 되는 것 같다. 무엇보다 본서는 우리가 인식 못 하는 현재의 문제들은 무엇일까를 돌아보게 해 주기에 읽어볼 필요가 있지 않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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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캣책곳간 블로그를 통해 해나무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리뷰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