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지구를 구한다는 거짓말 - 환경을 생각하는 당신이 들어보지 못한 기후과학 이야기
스티븐 E. 쿠닌 지음, 박설영 옮김, 박석순 감수 / 한국경제신문 / 2022년 7월
평점 :
어제 뉴스로는 크름 반도와 러시아를 연결하는 크름 대교가 폭파당했다. 우크라이나는 전면에서 자기들이 공격했다고 나서지는 않았으나 크름 반도에서 끝나지 않을 것이라며 공언했다. 게다가 젤렌스키는 유럽과 미국에게 러시아의 핵공격을 막기 위해 러시아의 핵무기 기지들을 선제타격해 달라며 요구했다. 미국에게 사거리 340km의 러시아 본토를 공격할 미사일을 지원해 주기도 요구하면서 말이다. 이 뉴스는 유투브의 뉴스 전문 채널들 마다 대서특필 되었으나 정작 공영언론은 입을 다물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우크라이나 장병들이 러시아에 귀속되어 버린 지역에 대한 공격 명령을 받으며 살아있는 모든 것을 사살하라는 명령에 따를 수 없다고 민간인을 살상하기 위한 전투가 아니지 않냐고 공개 항변하는 영상까지도 공영언론에서는 방송되지 않고 있다. 다분히 우방국에 대한 그리고 현재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지원을 하는 국가들의 정당성을 위해 언론이 자체적으로 입단속을 하는 분위기다. 상식적인 지도자라면 러시아 핵기지에 대한 선제타격 자체가 종말적인 전쟁의 효시가 됨을 알 것이고 상식적인 군대라면 자국 영토를 수복하기 위해서라는 명분으로 자국 국민을 무제한 살상할 명령을 장병들에게 내리지 않을 것이다.
세계가 가고 있는 방향이 어디인지 모르겠는 이런 사례는 이 시기에 더없이 많이 등장하고 있다. 미국과 캐나다의 대형식량창고와 대형 식량 생산시설들 수십여 곳이 화재와 사고로 파괴되었는데 최근에는 프랑스의 식량 유통의 허브가 되고 있는 식량 시설이 파괴되었다. 이곳은 유럽 전체로 식량이 유통되는 유통 거점이라고 한다. 향후 식량 대란이 일어난다면 미국, 캐나다, 유럽의 다수 인구는 식량 보급에 있어 상당히 난처한 상황 아니 생존에 지장을 받는 상황에 처할 수도 있을 것이다. 식량 문제만이 아니라 유럽의 에너지 대란도 이미 언론에서 누차 지적되는 상황이다. 이미 스위스에서는 겨울철 난방온도 지침을 어기면 최대 징역 3년 형에 처하겠다고 법안을 제정했다. 보일러 돌린다고 징역 사는 세상이 된 것이다. 에너지 위기라 적극적 대응을 한다기에 지나치고 과한 처사가 아닐까 싶지만 이런 이해가 쉽지 않은 제도적 행동을 취하는 국가는 스위스만이 아니다. 네덜란드에서는 탄소 배출을 감소시키겠다는 명분으로 소, 돼지, 닭 등 전체 가축의 30%를 죽여 없앨 계획이라고 한다. 시행 시점에는 목축장 감소를 위한 축산업자의 토지를 몰수하거나 강제 매각을 병행하겠다고 공표했다. 기후위기라는 어젠다를 실행하는 과정에 있어 민주사회인지 공산사회인지 모를 정책까지도 통용되는 것이다. 기후위기 어젠다는 개인의 정신까지도 사로잡아 스웨덴의 한 과학자는 ‘기후위기를 막기 위해 대중이 인육을 섭취하는 것을 고려해야 한다’는 발언까지 일삼아 언론이 인터뷰까지 거쳤다. 기후위기설을 공개 비판하기 위한 넌센스로 생각했는데 해당 인터뷰를 보면 사뭇 진지하기까지 하다. 한국에서도 기후위기라는 어젠다는 종교계까지 파고들어 스님들이 시위하고 수녀님들이 촛불을 들게 만들고 있다. 하지만 기후위기설은 종교도 진리도 아니며 과학적 데이터로 비판하는 과학자들도 적지 않은 논쟁적인 주제일 뿐이다.
기후위기설이 종교나 진리 마냥 절대과학화 된 데는 정치계와 기업들의 지원이 컸다. 그도 그럴 것이 탄소세나 탄소배출권은 현재 선진국들의 지위를 유지하고 개도국들의 개발을 제한하여 변동의 여지가 적은 안정적인 세계상을 구축할 수 있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조만간 시행된다는 탄소발자국 추적이라는 제도를 보자해도 각국의 환경과 개발수준과 필요부분과 생활양식이 다른 데도 불구하고 시행된다면 일상생활 전반을 추적당하게 된다. 주거, 교통, 업무, 여가, 생활용품 소비, 식사 등등 모든 분야에서의 탄소발자국을 추적해야 할테니 365일 매일의 하루하루 전체를 누구나가 공개하는 생활이 펼쳐질 것이다. 더욱이 이러한 탄소 소비에 대하여 일종의 과세를 한다면 어떻게 될까? 작게 보면 우리의 소비 즉 일상은 제한 당할 수밖에 없고 넓게 보면 생활의 양식이 소유에서 공유로 완전히 교체되어 버릴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자동차에 탄소세를 과도히 부과하고 주유를 할 때마다, 자동차를 수리할 때마다, 주차 과실마다 등등에 과세의 비중이 더 커진다면 대개의 경우 소유한 자동차에 대한 애정도와는 상관없이 우리는 전기 자동차로 바꾸게 될 것이고 소유자에게 더한 과세가 된다면 우리는 자동차를 소유하는게 아니라 렌트가 일상이 될 것이다. 그리고 그건 집 등 다른 소유물에 대해서도 마찬가지가 될 것이다. 이런 여파는 우리의 외식문화도 바꿀 수 있고 대중예술을 감상하는 양식도 바꾸게 될 여지가 있다. 탄소세는 결국 인류의 삶의 방식을 전면적으로 재편할 수 있는 것이다. 이걸 억측이라고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들에게 묻고 싶다 그렇다면 다보스 포럼의 ‘당신은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당신은 행복할 것입니다’란 슬로건은 도대체 무엇이겠냐고.
문화의 재편이자 경제의 양식이 전면적으로 전환되는 도구로 기후위기설은 이용될 수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기후위기설 즉 과거의 지구온난화설을 있는 그대로 믿지 못했다. 그 과정에 기후위기설을 내세우는 기후협의체들의 주장에 전면 반박하는 과학자들이 거대한 숫자인 것도 알게 되었다. 하지만 정작 국내에 소개되는 반기후위기설에 대한 책들이 없었기에 궁금증을 풀 수 없었다. 그러다 국내에 [불편한 사실], [종말론적 환경주의], [지구를 구한다는 거짓말] 등의 저작들이 출간된 것을 알고 본서를 읽게 되었다.
본서의 저자 스티븐 E.쿠닌씨의 약력 중 특이한 것은 오바마 행정부에서 에너지부 과학차관을 지내며 기후 연구 프로그램과 에너지 기술 전략을 담당했었다는 것이다. 기후위기설을 주장하는 선봉장이던 사람이 [지구를 구한다는 거짓말] 같은 반기후위기설을 설파하게 된 이유는, 무엇보다 저자가 기후위기설을 주장하는 데이터의 조작에 가까운 보정으로 근거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인간이 다른 요인들보다 기후에 영향을 미친다는 과학적 근거를 찾을 수 없었다는 데 있다.
본서를 읽다 보면 이런 미흡한 근거, 조작된 근거로 그동안 기후위기설을 신성불가침의 영역으로 받들어 올린 것인가 하는 의문까지 든다. 해수면 상승, 강수량과 강설량 변화, 가뭄 증가, 토네이도, 사이클론, 하리케인의 발생빈도 등의 데이터를 제시하며 얼마나 기후가 급격히 변화한다는 주장이 (기후위기설을 납득하기에) 무가치한가를 보여주기도 한다. 데이터의 기준점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것을 단지 최근 10~20년 사이의 데이터만으로 기후변화가 급격히 나빠진다고 주장하는 데 이용되고 게다가 그러한 데이터도 보정을 거쳐 주장되고 있다. 본서를 읽으면 기후위기설을 유포하는 기후협의체에서 허위의 정보들을 유포하고 있기도 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IPCC(정부간 기후협의체) 등은 기후모델의 몇십 개 변수를 조정해 훨씬 더 많은 기후시스템에서 관찰된 특징을 일치시키기도 한다. 한마디로 우리가 보는 데이터는 조작되고 있는 것이다. 세계적인 기후모델 사용자 15인이 공동집필한 논문에서도 이러한 ‘보정’에 투명성이 결여되어 있는 이유(즉 조작하고 대중에게 알리지 않는 이유)를, 보정한다고 설명하면 기후위기설의 타당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주장에 힘을 실어 주는 꼴이 될까 봐 염려되어서라고 했다. 이렇게 논쟁의 여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불가침의 영역이 되어버린 절대 과학이 ‘기후위기설’이다. 여기에는 정치적 윤리만이 있지, 과학적 윤리는 찾아볼 수 없는 것이다. 애초에 지구 온난화를 막기 위해 섭씨 2도의 기온 상승을 막아야 한다고 주장한 과학자에게 저자가 왜 1.5도도 아니고 2.5도도 아닌 2도냐고 묻자 해당 과학자는 그게 정치인들이 기억하기 쉬운 숫자라서 그렇다고 대답했다고 한다. 애초에 정치적 의도로 이용할 목적이었고 정치적 의도로 이용되고 있는 것이 기후위기설이라는 말이다.
저자는 과거 이러한 기후위기설의 어설픈 면과 투명하지 않은 면을 바로잡으려 레드팀 검증이라는 안을 제안했다고 한다. 블루팀과 레드팀이 각각 제시하는 기후위기에 대한 데이터를 서로가 검증하는 제도였다. 물론 이 안은 정치인들로부터 거절당했다. 검증이라는 명분으로 기후위기라는 어젠다에 문제를 제기하는 자체를 막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대중에게 전문적인 과학정보를 좀더 구체화하여 전달하는 노빔이라는 단체도 배격당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정치적인 이유로 검증도 대중에게 구체적이고 상세히 이해할 수 있게 설명하는 과정도 배격되고 있는 것이다. 대중에게 요구되는 사안은 “기후 위기는 심각하다.” “지금 당장 바로 모두와 모든 국가가 대응해 하루 빨리 해결해야 할 사안이다.”라는 강력한 밈을 뇌리에 새겨넣는 것 이상은 없다는 걸 깨닫게 된다. 인류적 차원의 답정너가 기후위기설이었던 거다.
이 리뷰의 서두에 언급한 사례들만 돌아보아도 앞으로의 세상의 변화는 불가역적일 것이다. 우리가 보고 있는 많은 문제들은 결국 우리의 일상과 문화 전체를 바꿀 것이다. 하지만 변화할 것이란 것을 알고 있다 해도 그것에 저항하거나 막을 수 있을 여지는 없어 보인다. 그렇다고 해도 알고 있어야 한다. 변화가 어떠한 과정으로 이루어졌는지. 언젠가 이 모든 과정이 다시 시작하려 할 때 그것을 막을 대안이 마련되기 위해서라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