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정한 물리학 - 거대한 우주와 물질의 기원을 탐구하고 싶을 때
해리 클리프 지음, 박병철 옮김 / 다산사이언스(다산북스) / 2022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물리학이나 우주론에 대한 관심은 깊지만 전공자가 아니다보니 그 깊이나 대강을 파악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대중과학서라 해도 그에 등장하는 입자들에 관해 이해하고 기억하기도 녹녹한 일은 아닙니다. 전문가가 이 정도면 이해하겠지 짐작하는 정도와 비전공자의 이해수준이 일치하는 경우의 수가 꼭 맞아 떨어지는 경우만이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물론 근래의 과학자들의 배려와 평이하게 서술하는 필력이 그 어느시절보다 나아진 것만은 수긍할 도리밖에 없을 겁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간혹 이해가 더딘 것은 우주와 물리학과의 경계에서 이입이 쉽지않은 그 외계어들 때문이기도 할 것입니다. 아무리 좋게 보자해도 비전공인에게 물리학 분야의 전문적인 이야기는 외계어일 수밖에 없을테니까 말입니다. 


대중과학서들을 읽고도 입자란 무엇인가를 되돌아보면 모호하고 혼란스럽기만 한 건 과학자들의 배려와 참을만큼 참으면서 서술하는 자제력에도 불구하고 비전공자들에겐 그 세계가 외계와도 다를 바 없기 때문일 겁니다. 그런 단정에도 출간해준 [다정한 물리학]은 오로지 입자에 포커스를 맞춘 집중도와 저자 해리 클리프님의 수준 높은 필력에 구미가 당겼기 때문입니다. 본서의 소개글에서는 해리 클리프님의 본 저작에 대해 [빌브라이슨의 유머와 미치오 카쿠의 현장감, 칼 세이건의 유려한 설명이 한 권에 집약되어 있다]고 묘사하고 있습니다. 과학에 관심은 많지만 이해에 깊은 자신감은 없는 분들이라면 제가 왜 본서에 특히나 유혹 당했는지를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카피 문구일 겁니다. 


본서를 읽으면서 본서에 대한 기대는 충분히 충족되었다는 소감이 가장 앞서 말씀드리고 싶은 부분입니다. 저자는 기존의 우주와 양자물리학 또 입자에 대한 저작들을 소개하는 대중과학서들을 저술한 이론 물리학자들과는 다르게, 이론을 실제 검증한달까 구현해낸달까 하는 실험 물리학자입니다. 본서가 서술되며 세계 각지의 연구소 일화들과 실험 결과들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입자에 대해 초창기의 과학자들이 실험을 통해 발견해내던 과정과 이론을 근거해 검증을 거치며 발견해낸 과정을 옛날 이야기 전하듯 전하기도 하고, 현재의 여러 연구소들에 대한 설명과 함께 그 실험 과정과 결과를 이야기 하는 대목에서는 문외한이 정말 현장감이란 것을 다소나마 느끼는 것 같은 착각을 주기도 합니다. 


저자는 너무도 평이하면서도 재치있고 유쾌한 서술을 하고 있는데 무엇보다 저자의 쉬운 서술의 정점은 입자의 발견과 우주의 창조 대목을 사과파이를 만들기 위한 여정으로 소개하는 입담입니다. 칼 세이건이 사과파이를 만들기 위해서는 우선 우주 부터 창조해야 한다고 했던 발언을 근거 삼아 본서의 영어 원제가 정해졌다고 합니다. 『How to make an apple pie from scratch』 라는 제목답게 저자는 서두부터 사과파이를 만들다 태우는 장면을 보여주며 다시 사과파이를 만들기 위해 입자를 발견하는 서술을 하고 우주를 창조하기 위한 여정을 서술합니다. 그리고 저자는 각장의 말미마다 우주 창조와 입자발견을 위한 레시피마저 제시하고 있습니다. 저자의 유쾌한 입담을 따라가다보면 이미 알고 있던 옛날 이야기들을 다시 듣듯는 하다가 어느새 우주창조를 위한 레시피에 몰입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체 14장 중 10장 쯤에 이르러서는 외계여행을 하고 있다는 것을 자각하게 되기도 하지만 말입니다.


그런 외계인데도 불구하고 이토록 몰입도 높은 흡인력으로 서술해나간 저자는 가히 수퍼히어로 수준의 필력이라고 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본서에서 등장한 그 숱한 외계어 속에서 힉스입자는 그나마 언론에도 대서 특필된 이력이 있는 면식범이 아닌가 싶습니다. 힉스입자가 실험 물리학자들을 그토록 괴롭혀 God damn particle 이라 불리다가 힉스입자에 대해 최초 저술한 과학자의 언급을 출판사에서 언어순화를 거치며 God particle 이 되어 현재 신의 입자라는 별칭을 갖게 된 것도 흥미로왔습니다. 힉스 입자가 실험 물리학자들에게는 최근까지의 가장 큰 화두였지만 저자의 소소한 언급만을 보아도 앞으로는 스팔레론이라는 존재가 가장 큰 실험 물리학계의 주제가 될 것 같기도 했습니다.


그간 과거의 독서로 알고 있었는데 세월이 지나 잊게된 입자와 힘에 대한 정의들을 다시 되새길 수 있는 기회가 되어 가장 좋았으며 본서는 그 어느 저작보다도 이해도와 몰입도가 높게 쉽게 서술되어 있는 면이 가장 인상 깊었습니다. 본서의 여정 중 인상 깊은 대목들도 물론 적지 않지만 그러한 부분들을 서술할 정도의 쓰기실력을 갖추지 못하다보니 책의 내용에 대한 설명에는 미안한 맘이 드네요. 하지만 본서의 성격에 대한 부분은 충분히 짐작 가능한 리뷰였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리뷰를 보시면서 본서에 대해 프리뷰해 보고자 하실 분이 계실런지 모르겠지만 본서는 본서 자체를 읽을 때에야 본서의 성격을 가장 잘 알 수 있을 정도로 본문 자체가 생동감있고 유쾌하면서도 흡인력 있습니다. 입자의 특성이 궁금하다거나 우주 창조 시기의 대목에 관심이 있는 물리학 비전공자 분들께는 꼭 한 번 읽어보실 만한 책이라고 권해드리고 싶네요.


그리고 한가지 더.. 이 책을 완독하고나면 진짜 사과파이를 만들 수 있게 될 거라는 건 저자의 유쾌한 익살 덕분이 아닌가 합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