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박상영의 단편소설집이다. 단편 <알려지지 않은 예술가의 눈물과 자이툰 파스타>는 알고보니 이전에 작품집에서 보았던 내용이었다. 그래서 스킵! 어디까지가 연결되고 어디까지가 끊기는지 유심히 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지만, 마치 제리의 색다른 BL버전이라고 할까?  

    

 

2

   소라는 갑부집의 망나니같은 딸로 연기하지만, 실은 3년째 엄마 병수발을 들고 있는 여자이다. 그런 비밀을 문경 언니에게만 고백하고 살아왔는데, 문경 언니가 뒷통수를 친다. 군대에서 휴가나온 연하 남자친구(섹스파트너?) 태혁과 함께 식사를 하고 나오는 자리, 소라는 식욕억제제를 먹은 탓에 화장실에 간 사이에 문경 언니의 뒷담화를 우연히 듣게 된다.

 

‘“쟤 원래 저래. 남자에 죽고 못 살잖아.”

 

남자가 작은 목소리로 그렇긴 하지, 라고 대답했다. 더럽게도 방음이 안 되는 화장실이로군. 남자에 죽고 못 사는 여자가 누군지 웬지 알 것만 같았다. 대차게 문을 열고 나가 그 여자가 누구냐고 물어봐야 하나, 아니면 눈물이라도 찍어 삼겨야 하나, 어쩔까 고민하다가 속으로 삼십 초를 세고 화장실 문을 열었다. 식당 입구에는 아무도 없었다.

소라야. 너 그거 피해 의식이야. 사람들은 너한테 아무 관심이 없어.”

 

김이 나에게 자주 하는 말이었다. 사람들이 아니라 오빠가 나한테 전혀 관심이 없는 거겠지. 그렇게 시작된 싸움은 언제나 큰 일을 내고서야 끝났다.

 

식당 밖으로 나가자 문경 부부와 태혁의 뒷모습이 보였다. 멀뚱히 서 있는 태혁의 뒤에서 슬그머니 팔짱을 꼈다. 넓은 태혁의 어깨에 기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알게 뭐야. 추울 때 남자만한 건 없지. ‘남자에 죽고 못 사는 여자, 박소라라니. 꽤 그럴 듯한 로그라인인데? 다음 영화에 써먹어야겠어. 자꾸 웃음이 나왔다. ‘(111-112p)

 

 

 

 

3

모더니즘이 해체되고 포스트모더니즘 시대로 넘어오면서 모든 것이 본질이 해체되었다. 그 중 가장 중요한 것 중의 하나는 <관계>, 바로 <관계의 해체>가 아닐까 싶다. 소라와 같이 사는 김, 두 사람은 같이 동거는 하지만, 섹스는 따로 한다. 두 사람 모두 그걸 보이지 않게 인정하면서 그냥 그렇게 살아간다.

 

 

영화를 보다가 속이 좋지 않아 태혁이 먼저 호텔로 간 사이, 소라는 술에 만취되어 택시를 타고 가다가 무임승차, 폭행, 기사의 관자놀이에 남은 손톱만한 구두굽 자국의 폭행의 근거를 남긴다. 파출소에 태혁이 들어왔다.

 

‘“박소라씨 보호자 되십니까?”

, 그게 저...제가 보호자는 아닌데....”

두 분 어떤 관계이십니까

제 사촌동생이에요.”

 

....몸을 기댄 채 걷는 우리의 모습은 아무리 좋게 봐도 사촌처럼 보이지는 않을 것이다. 이모와 조카 같아 보이지 않으면 다행이려나. 이런 내 모습을 보면 김은 또 자의식 과잉이라고 욕을 할테지. 사람들은 네가 누구랑 있든 아무 신경도 안 써. 핸드폰 진동이 울렸다. 김의 문자였다. 역시 양반은 못 됐다.

-나 플랜트 관련 미팅이 있어서 울진에 왔어. 저녁 먹고 커피 한잔 하는 중, 바쁘지?

-. 오빠, 촬영 일정이 정신없네. 연락 못 해서 미안해.

-바빠서 그런 건데 뭐. 힘내 소라야, 보고 싶네.

-오빠도 힘내. 나도 보고 싶어

 

문자만 보면 우리는 서로를 몹시고 사랑하는, 평범하고, 정상적인 커플처럼 보인다. 서로에게 물건을 집어던지고, 소리를 지르고, 피 튀기게 싸우도 신고를 당하고, 서로를 제외한 다른 많은 사람들과 섹스를 하고, 함께 기르던 반려견을 잃어버린 존재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우리는 그 많은 추잡한 일들을 공유하면서도 정작 자신의 가장 내밀한 부분에 대해서는 절대로 말하지 않는다. 하긴 상대방에게 진실을 숨긴 채 다른 것들을 욕망하며 사는 우리의 관계야말로 지극히 일반적이고도 정상적인 커플의 모습일지도 모르겠다(122-123p).’

 

 

 

 

4

모든 것의 해체 이후에 남아 있는 것은 무엇인가? 박소라는 술만 마시면 맥도날드 햄버거가 그렇게 땡기는 인물이었다. 맥도날드를 아무리 찾아도 찾을 수가 없고, 술은 만취된 상태에서 모래사장을 걷다가 하이힐을 벗어버린다. 스타킹은 구멍이 났고, 자신의 핸드폰 액정은 산산조각났고, 태혁의 구형 핸드폰은 배터리가 죽어 있었다.

 

성치 못하고 쓸데 없는 것만 주렁주렁 달고 다니는 게 꼭 내 인생 같네.’(134p)

 

 

 

...이 헛헛함이여! 박소라, 왜 이렇게 불쌍해...

그러는 와중에, 그녀는 어쩐지 핸드폰이 켜져 있기만 하다면 내 처지에 대해 투명하고 담백하게 인스타 업로드를 할 생각을 한다. 그래도 생의 심각한 절망 가운데서도 누군가 자신의 허세를 바라봐주길 바라는, 관심주기를 바라는 현대인의 모습이다. 우리의 모습이다.

 

'나 #박소라

전직 #피팅모델이자 #사회운동가, 그리고 #영화감독.

이제는 #서른둘의 #파혼녀

네 시간 전에 있었던 곳은 #부산국제영화제

몸이 좋고 커야 할 것이 적당히 큰 군인의 #물주이자 #자살연습생. 말기 암에 걸린 엄마를 돌보는 #암수발녀. 조만간 #상주가 될 예정. 한때는 충실한 #약혼녀이자 #패리스 힐튼의 #반려인이었으나 지금은.

#'

 

 

 

 

5

  유튜브가, 동영상(디지털 플랫폼)이 현대인의 새로운 인기몰이를 하면서 유튜버들의 인기와 관심이 증폭되고 있다. 초딩애들의 꿈을 물으면, ‘1인 크리에이터란 직업에 대해 쉽지 않게 들을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그 직업은 사람들이 그를 바라봐 주어야 되는 직업이다. 모든 직업이 그렇지만. ‘구독좋아요가 돈이 되는 시대가 된 지는 오래다. 요근래 1인 크리에이터의 개인방송과 방송사 간의 갈등으로 인한 사건을 알게 되었다. 핵심은 뷰봇을 사용했느냐 하지 않았느냐이다. 뷰봇이란 말을 첨 들어봤다. 글을 쓰다가 한번 찾아 봤다.

 

viewer bot "viewer bot"의 음차, 줄임말. 인터넷 봇(인간의 행동을 흉내내도록 만들어진 응용 소프트웨어)의 일종으로, 개인 방송등 에서, 시청자수를 늘리도록 프로그래밍 된 인터넷 봇을 의미한다(출처: 네이버사전).

 

구독과 좋아요, 시청시간 등등이 돈이 되니, 이제 뷰봇이 등장하는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사람들이 봐주고, 시청해주고, 감상해주고, 리액션해주는 상품도, 컨텐츠도, 크리에이터도 살아남는다.

 

 

 

 

6

소라야. 너 그거 피해 의식이야. 사람들은 너한테 아무 관심이 없어.”

소라의 동거남, 김의 대답인데, ‘사람들은 너한테 아무 관심이 없어라는 문장이 남는다. 오프라인의 관계는 점점 잠식되어지고 온라인의 관계가 더 활성화되고 있다. 주인공 박소라는 인스타마니아이다. 삶의 혼돈과 혼란 가운데서도 여전히 그녀는 관심을 갈구하고, 관심의 시선을 받고 싶어한다. 동거남 김의 관심을 받지 못한 그녀가 자꾸 떠돈다는 느낌이 든다.

 

사람들은 너한테 아무 관심이 없어’....

 

그런데도, 그녀는 사람들의 헛헛한 관심을 받고자 핸드폰을 떠올리는 포노 사피엔스(‘포노 사피엔스에 대한 이야긴 제 리뷰를 참고하시길)이다. 포노 사피엔스에게 SNS는 필수이다. SNS에서 그녀는 해체된 관계를 보상하려고 하고 있다.

    

박소라의 모습을 보면서 현대인인 우리에게 어쩌면 영혼의 뷰봇이 필요한 것은 아닐까?

 

뷰봇이 필요해?!?!?

 

때로는 신경끄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마크 맨슨의신경끄기의 기술이란 제목이 떠오른다! 마크 맨슨도 몇 년동안 따라다녔던 스토커가 있었다고....

 

 

"남들로 하여금 말하게끔 내버려두어라. 그리고 너는 너의 길을 걸으라"

-단테의 <신곡>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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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태백산맥을 4개월하고 6일 만에 읽었다.

이렇게 오래 걸린 이유는 첫째, 나의 게으름 때문이며, 둘째, 나의 문어발식 독서습관 때문이다. 어쨌든 읽었다. 우리 현대사의 줄기를 알 수 있는 소설이다. 수많은 상을 탔고, 수많은 나라에서 번역되어 출판되고 있는 스테디셀러이다. 김훈이 말 한대로, 태백산맥』은 역사를 가동시키는 이데올로기의 힘을 읽을 수 있다. 조정래가 자신의 아들이 결혼할 며느리감을 데리고 왔을 때, 태백산맥을 필사하라고 이야기했다고 한다. 조정래의 아들도 필사로, 손자도 필사로 성장한 경우이다. 작가의 자손들은 좀 남다르다. 조정래도 분명히 원고지에 자필로 글을 썼으니. 필사가 얼마나 소중한 경험인지 체감한 장본인이지 않을까!

 

 

조정래는 이 작품 속에 등장하는 그 곳에서 태어나 자라고 숨쉬면서 생생한 디테일을 전하고 있다. 시오노 나나미는 로마인 이야기에서 신은 세부(細部)detail에 깃든다는 말을 했다. 1권과 8, 9, 10권은 따로 필사, 메모를 하지 않아 내용이 휘발되어버린 느낌이다. 물론 중요하게 여겨지는 쪽수는 전부 카메라로 찍어 개인카페에 올려놨지만, 과연 그걸 다시 들여다볼지는 의문이다.

 

    

 

2.

   해방이후의 대한민국의 상황, 그리고 6.25전쟁 그리고 휴전까지 구체적인 디테일이 살아 숨쉬는 조정래의 태백산맥이다. 이전에 언급했지만, 이데올로기는 형 염상진을 공산주의자로, 동생 염상구를 반공주의자로 만들어버렸다. 순전히 개인적인 형에 대한 동생의 콤플렉스로 시작되었지만, 그 정서적인 골은 이데올로기로 화하여 더 많은 비극들을 양산한다. 하지만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것을 10권에서 염상구의 행동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그 장면이 감동적이다.

 

요런 **겉은 **덜아, 살아서나 빨갱이제 죽어서도 빨갱이여! 당장에 못 띠내리겄어!....

그려, 그려, 니가 사람이다, 하먼, 느그 성인디. 그제야 마음을 놓은 호산댁은 솟구치는 서러움을 눈물로 쏟아내고 있었다. 워메, 워메, 아즘찬은거, 시동상이 인자 사람이시. 예상이 뒤집히자 죽산댁도 비로소 고마움과 서루움이 범벅된 눈물을 줄줄이 흘리고 있었다.’(10, 344-345p)

 

*망나니같은 염상구, 하는 짓도, 하는 생각도, 외서댁과의 관계나, 결혼도 희한한 방식으로 한 친구이지만, 마지막의 이 장면에 눈물이 핑 돌았다...

 

 

미국 사람 믿지 말고,

   쏘련한테 속지 말고,

   일본놈들 일어난다.

   조선사람 조심하세.’(2, 292p)

 

  당시 회자되던 노래같은 씨가 되는 문구이다. ‘조선사람 조심하세이 문장은 당시 해방 이후의 어수선한 상황을 드러내 준다. 같은 민족이 오히려 뒷통수를 후려치는 경우가 너무나 비일비재했기 때문이다.

 

    

 

 

 

3.

식민시대를 그리도 더럽고 치사하게 살아낸 자가 이제 또 똑같은 몸뚱어리, 똑같은 목구멍으로 무슨 행동을 하고 무슨 소리를 지껄여가며 학생들을 교육한다 할 것인가’(3, 25p)

 

  위의 문장은 당시의 교육상황을 대변해주는 말이다. 우리나라의 교육계에 얼마나 많은 친일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는지는 역사가 대변해준다.

 

이웃님 oren님의 말처럼, 태백산맥에서 특별히 기구한 운명에 처한 인물이 있는데, 바로 외서댁이다. 외서댁은 빨치산 강동기의 아내이다. 빨갱이짓하는 남편을 둔 가족들은 늘 불안과 두려움에 휩싸여 있었다. 하지만, 작품 속에 무당의 딸이었던 소화는 그러나, 좌익이라는 그 한가지 사실만으로 친근감이 가고, 바로 앞에 앉아 있는 가난하고 초라한 여자의 모습에서 자신을 발견’(3, 21p)하는 동질감을 느꼈다. 그녀는 빨치산 정하섭의 연인이었다.

이런 복잡한 와중에도 이자놀이를 해서 백성들의 피를 빨아먹는 허출세라는 인물도 참 밉상이다. 이름이 '허출세'가 뭔가! 이건 작가의 funny한 위트라고 볼 수 있겠다!

 

 

참말로 썩을 놈에 시상이시. 해방이 되면 배불르고 활개치는 시상이 올 줄 알았등마 갈수록 첩첩산중이랑께. 요리험한 시상일 바에야 일정때가 훨씬 나았제.’(3, 80p)

 

이 말은 200명의 계엄군이 마을에 출연하여 빨갱이 소탕작전을 벌일 때, 마을의 민심을 반영한 대목이다.

 

 

    

 

4.

김범우는 미국 oss요원 출신이었고 박두병 또한 그러했다. 전쟁은 모든 것을 허물어뜨렸다. 특별히 김범우가 전쟁으로 인해 한강다리가 폭파되서 한강을 도하할 때 그를 사모했던 송경희와 함께 동행하는 대목이 기억에 남는다. 김범우의 예상치 못한 동선이었다!!!  

 

    

 

5.

외서댁의 고백이다.

 

아직도 내가 몸 버리고 애까진 밴 줄을 모를까...알아서 날 죽이려들면 의당 그 손에 죽어얒. 이모 말대로 새끼를 낳자 마자 그놈한테 보냐야지. 젓빨려버리면 정 붙어 못 보내게 될테니까 생김부터 볼 필요가 없다. 그놈이 날 망친 원순데 그 새끼 생김은 왜 봐’(5, 231p)

 

 

-사회주의혁명의 극좌 박헌영

-권력장악만을 앞세운 극우의 이승만

-좌우합작을 앞세운 중도적 여운형

-민족자주를 앞세운 포용적 김구

(5, 220p)

        

 

 

6.

죽산댁의 아들 광조가 한 말이다. ‘엄니, 나 소원이 먼지 안가? 찰떡 한 가마니럴 묵는 것이여.’(6, 205p)

 

  공산주의가 탄생한 것도 인민의 배고픔과 가난을 해결하기 위해 시작된 것이다. 대한민국의 백성들은 가난과 배고픔으로 사투를 벌였다. ‘배고픔을 줄이기 위해 똥도 매일 누지 못하게 하는 빈궁 속에서 무껍질을 깎아낸다는 것은 상상도 안 되는 일이었다.(6, 207p)’

 

당연하지, 사람에겐 생계문제보다 더 중요한 문제는 없고. 이데올로기라는 것도 결국 그 해결책이니까.’(7, 148p)

 

 

  결국 이데올로기의 발현은 배고픔을 해결하기 위한 대안이었으나, 오히려 그 이데올로기에 의해 역사가 지어가는 과정이 얼마나 힘겨운가를 보여주는 작품이기도 하다.

 

 

쌀이야 바로 사람 목심이고 소금이야 간 아니냐 그 말이여.’(6, 48p)

 

   부자인 정현동은 200명이 먹을 수 있는 쌀이 나오는 논을 자신의 물욕을 위해 염전으로 바꾸고자 한다. 나라의 정책에 의해 편법을 쓰고자 한 것이다. 하지만, 배고픔과 가난에 찌들은 소작인은 정현동을 낫으로 살해해 버린다. 정현동의 죽음에 대해 그의 과한 돈 욕심을 꾸짖는 것이었다.(6, 48p)’고 콤멘트를 단다.

 

 

빼앗기며 사는 사람들과 빼앗기지 않고 사는 사람들과의 차이는 그처럼 현격했던 것이다.’(6, 89p)

 

 

손승호를 고문하던 형사의 고백은 우리나라의 경찰과 공직자들이 얼마나 많이 친일에 가담했는지를 드러내주는 대목이다.

 

 

내가 친일을 하고 싶어서 한 것이 아니다. 내 한 몸 버려 민족과 나라에 다소나마 이익이 될 수 있다면 나를 희생해도 좋다는 생각으로 나선 것이다. 이런 유명한 이광수 선생의 말씀은 니놈은 듣지도 못했어! 바로 그런 애국자들을 친일파다, 민족반역자다, 하고 물어뜯는 놈들은 다 빨갱이새끼들이야.’

 

 

   빨갱이새* VS 친일파, 라는 그룹핑으로 나라는 더 분열되고 혼돈스런 가운데 6.25전쟁이 터진 것이다. 손승호는 이번 전쟁은 사회주의 혁명을 통한 민족통일을 달성하려는 세력과 친일민족반역으로도 부족해서 다시 나라를 팔아먹고 있는 신식민주의자들과의 싸움이라는 것’(6, 298p)이라고 보는 반면에, 이학송은 이데올로기 대리전쟁이라는 판단이오’(6, 301p)라고 했다.

 

    

 

 

7.

 

6.25전쟁에 대해 이번 전쟁은 귀한 피 VS 천한 피의 싸움, 양반과 상것들과의 싸움이라고도 했고, ‘양효석은 공산당에 대한 증오심과 복수심과는 별개로 사람을 인정사정없이 잡아먹는 전쟁이라는 것 자체에 무서움을 느꼈다.’(7, 37p)

 

 

중국에서 공산주의자로 활동하다가 다시 북한군 인민군 고급군관으로 돌아온 김범우의 형, 김범준에게 아버지 김사용을 이런 말을 내뱉는다.

 

 

그래, 누가 더 옳은 지는 세월이 지내가봐야 알 일이다. 지금은 서로 총을 맞대 어지러운 세상이다. 사람이 권력을 지녔을 적에 그것을 여러 사람을 위해 쓰면 겸손해지고, 자기를 위해 쓰면 교만해지는 법이니라.’(7, 46p) 고 말했다.

      

 

  선임하사 현오봉의 심중생각이다. 한국전쟁에 미군이 개입함으로 공중에서 폭탄을 투하하는 것에 대해 상사가 내뱉는 말에 부하인 현오봉이 이런 생각을 한다.

 

선임하사는 예의바른 태도로 취해보였다. 그러나, 속으로는, 하 드런 놈, 외다리 게다짝 하나 붙였다고 나이도 새파란 ** *같이 놀고 있네. 이 새끼야. 사람 무더기로 죽이자고 폭탄 저리 쏟아붓는 게 뭐가 그리 근사하고 재미난 구경거리냐. 네 놈이 저쪽에 있다고 생각해 봐. 참 근사하기도 하겠다. 그러고 말야. 저 폭탄 속에서 죽어가고 있는게 따지고 보면 다 우리 동포야. 동포. 원 ***, 드러워서 못 참겠네. 그는 되는대로 욕질을 해대고 있었다.’(7, 165-166p)

 

    

  한국전에 참전한 미국군의 발언이 충격적이다. 우리나라는 가난했고 배고팠고 그러기에 더러울 수 밖에 없었다. ‘똥 냄새와 김치 냄새의 나라가 바로 우리 나라였다. ‘역시 한국에서 쓸만한 건 딱 한가지 뿐이야. 여자의 ** 빼놓으면 너무 미개하고 야만적이라서 정나미가 떨어져.’(7, 361p)

 

 전쟁은 사람은 원초적으로 만들고, 결국 전쟁은 인간의 욕망을 발가벗기게 만드는 듯 하다.

 

 

이런 분위기는 윤태호의 인천상륙작전에서도 드러난다. 우리나라는 배고팠고 가난했고 비위생적이었기에 선진국의 시선에선 그렇게 보일 수밖에 없었다.

 

    

   

8.9

  작품을 읽어가는데 브레이크가 다소 걸리면서 속도가 떨어졌다. 필사도, 메모도 흔적이 없구나. 빨치산은 지리산에서 나름대로 해방구를 찾아 헤매면서 토벌대와 잦은 전투를 벌인다.

 

 

 

 

10.

죽음이 추상적일 때 두려움은 생기고, 현실의 안위에 집착할 때 그것은 증폭되는 것이었다. 자각한 자의 죽음은 그것 자체가 행동이었다. 역사 또한 마찬가지이다. 자각하지 못한 자에게 역사는 존재하지 않으며, 자각을 기피하는 자에게 역사는 과거일 뿐이며, 자각한 자에게는 비로소 역사는 시간의 단위 구분이 필요 없는 생명체인 것이다. 역사는 시간도, 사건도, 기록도 아닌 것이다. 그것은 저 먼 옛날로부터 저 먼 뒷날에 걸쳐서 살아서 꿈틀거리는 생명체인 것이다. 올바른 쪽에 서고자 한 무수한 사람들의 목숨으로 엮어진 생명체, 그래서 역사는 관념도, 추상도, 과거도 아닌 것이다. 그것은 오로지 뚜렷한 실체인 것이다. 그러므로 역사는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크는 것이다.’(10, 294p)

 

 

역사는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크는 것이다

 

  커가고 있는 역사인데, 그 역사가운데 서 있는 역사인인 우리는 제대로 잘 커가고 있는 걸까!

 

 

 ...10권의 책을 뒤늦게서야 완독을 했다. 작가 조정래는 1943년에 태어나 1948년에 여순반란사건을 순천에서 겪은 장본인이다. 그리고 충남 논산에서 6.25전쟁을 겪는다. 그리고 1953년 작은 아버지들이 살고 있는 벌교로 이사를 한다. 벌교의 이야기는 작품에서 만나볼 수 있다. 그가 몸으로 익힌 모든 디테일, 구체성을 작품화시켰다. 우리 민족의 역사, 아픔과 상처의 궤적을 탁월하게 그려낸 작품이다.

 

 

 

 

 

  , 이제 예전에 계획했던 톨스토이의전쟁과 평화(4)으로 넘어갈 수 있을까? 이웃 시루스Cyrus 박사는 태백산맥을 넘어 시베리아 벌판으로 넘어가는 긴 대장정이라고 표현했던 것으로 어렴풋이 기억나는데. 장담은 못 하겠다. 누군가가 쓴 책 제목처럼 나는 미루기의 천재(?)’이기 때문이다. 하하하!

 

 

*조정래의 작품을 읽으면서, 윤태호의 인천상륙작전과 허영만의 ! 한강의 이야기가 많이 생각이 났다! ! 한강은 한 예술가의 삶을 통해 현대사를 보여주고 있다. 화가 강토, 그리고 일본인 야스코와의 관계는 참...허영만, 만화라면 사족을 못 쓰니...어쩌다 보니 이 책은 재독을 했구나!

 

 

 

 

 

 

 

 

 

 

 

 

 

 

 

 

 

 

 

 

 

 

 

 

 

 

 

 

 

 

*이 페이퍼는 어제 완성해서 업로드하려니 계속 오류가 나는 것이다. 알라딘의 문제인지, 후에는 내 구린 컴퓨터의 문제인지 그래서 컴퓨터에서 폰으로 옮겨 업로르를 했는데, 이것조차 안 되는 것이다. 그런데, 알고보니 글의 내용에 문제가 있었다. 작품속에 등장하는 수많은 원색적인 욕설과 원초적인 표현들이 필터링되어 나의 업로드를 금지시킨 듯 하다. 휴...AI 똑똑하네.문득 작가 조정래나 만화가 허영만이나 자신이 낳은 자식같은 작품 때문에 얼마나 숨졸이며 살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쓰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마음의 불', '열정의 다이너마이트'가 있었기에 이런 작품이 나올 수 있지 않았나 싶다. 멋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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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19-05-07 11: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카알벨루치님 「태백산맥」완독을 축하드립니다!

카알벨루치 2019-05-07 15:36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부끄럽네요 ㅎㅎ

2019-05-07 11: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5-07 15: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9-05-07 14: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태백산맥> 완독에 성공한 카알벨루치님의 독서 이력을 보면서 저는 확신을 했습니다. <태백산맥>을 정복했으니 <전쟁과 평화>도 수월하게 정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독서인으로서 카알벨루치님은 제대로 잘 커가고 있습니다.. ㅎㅎㅎㅎ

카알벨루치 2019-05-07 15:37   좋아요 0 | URL
시루스박사님의 칭찬이네요 ㅋㅋ후배한테 듣는 칭찬도 과히 나쁘진 않네요 ㅎㅎㅎ

oren 2019-05-07 17: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마침내 『태백산맥』을 무사히 완주하셨네요. 짙은 감동이 묻어나는 필사 노트와 후기까지도 잘 봤습니다. 이 작품을 완주한 기세를 살려서 곧바로(?)『전쟁과 평화』에 도전한다면 또다른 감동도 느끼실 수 있을 듯합니다.^^

저는 요즘 『로마 제국 쇠망사』를 읽고 있는데, 이 책도 생각보다는 진도가 술술 잘 나가고, 책 속에 등장하는 무수히 많은 등장인물들과 산과 강과 도시들을 훓고 다니는 재미가 여간 쏠쏠한 게 아니더군요.(낯선 지명이 나오면 ‘구글 어스‘를 자주 띄웁니다. 옛날 지명은 요즘에 바뀐 지명으로 재검색하기도 하고요.^^) 그런데, 기번 책의 유일한 단점이라면 낱권 한 권의 무게가 너무 무거워서 도무지 책을 들고 읽기가 너무 힘겹다는 사실이더군요. 궁금해서 이들 세 작품의 사양을 비교해 봤더니, 역시 기번의 책이 다른 작품에 비해 많이 무겁긴 하네요.

『태백산맥』(전10권)이 3,400쪽에 3,700g, 148×210mm.
『전쟁과 평화』(전4권, 민음사판)이 2,988쪽에 3,884g, 132×224mm.
『로마제국쇠망사』(전6권, 민음사판)이 4,150쪽에 6,225g, 152×228mm.

카알벨루치 2019-05-07 17:24   좋아요 1 | URL
오렌님 진짜 너무 센쓰가 왕입니다! 좋아요 백만개 누릅니다 ㅋㅋ무게까지~ 책이 너무 무거우면 팔목이 아파서 힘들죠 ㅋㅋ긴 댓글 늘 감사드립니다 ‘외서댁’ 대단합니다 ㅎㅎㅎㅎ

bookholic 2019-05-08 08: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태백산맥> 완독을 축하합니다. ^^
카알벨루치님의 독서 노트를 보면서 늘 궁금한 것이 있는데요.
저런 꼼꼼한 메모가 어찌 가능한 것인지요?
카알벨루치님의 독서 노트들은 귀한 보물입니다.
즐거운 하루 되십시오~~~ ^^

카알벨루치 2019-05-08 09:00   좋아요 2 | URL
쓰다가 말다가 게을러서 늘 그래요~필사왕이신 분이 그런 얘길하시면 안되지요 저 노트 커피 쏟아서 우들우들(?)해져서 글쓰고싶은 맘이 뚝떨어져버렸네요~<태백산맥>완독은 북홀릭님 덕분이기도 합니다 댓글 감사하고 오늘도 즐거운 일상이 되세요 ^^

북프리쿠키 2019-05-08 09: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묵직한 돌처럼 가슴을 누르는 작품이었습니다.
열심히 공부하면서 책 읽는 모습에 또 한번 저의 허술한 독서를 돌아보게하네요 흐~~
늘 응원합니다.^^

카알벨루치 2019-05-08 09:46   좋아요 1 | URL
제가 더 허술합니다에 한 표! 북프리쿠키님 자주 뵈서 너무 좋네요 인제 서재정리같은거 하지 마세용 ㅎㅎㅎㅎ

coolcat329 2019-05-17 09: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완독 멋지세요. 독서노트도 인상적이고 무엇보다 글씨체가 딱 제가 좋아하는 스타일이라...^^;;

카알벨루치 2019-05-17 09:59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과찬의 말씀! 힘이 납니다 덕분에 필사노트 다시 들고왔는데 또 쓸지는....ㅎㅎㅎㅎ

뒷북소녀 2019-05-23 12: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와, 정말 대단하세요. 시간이야 얼마나 걸렸든... 완독한게 중요한 거잖아요.
그리고 카알벨루치체... 너무 매력적이에요.
저도 올해 5월까지 토지 완독이 목표였는데... 아무래도 물 건너 간 것 같아요.

카알벨루치 2019-05-23 14:27   좋아요 0 | URL
저보다 더 대단하신 분이 뒷북소녀님이시군요 전에 <전쟁과 평화>도 완독하시지 않았나요? ~<태백산맥>완독후 며칠동안 책이 잘 안잡히더군요 ㅎㅎ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0

존 쿠시가 마이클 K,추락』라는 작품으로 한 작가에게 두 번 주지 않는데, 이 룰을 깨고 두 번씩이나 맨부커상을 수상했다고 한다. 또한 노벨문학상까지 거머쥔 작가인지 이 책을 통해서 알게 되었다. 참으로 세상은 넓고 작가들과 그들이 펼쳐놓은 세계는 무한하구나 싶다.

 

 

 

 

1

야만인이 고안해 낸 십자가 처형법

기독교의 예수님께서 달리신 십자가는 당시 알려진 세계의 변두리에 살던 야만인들barbarians”에 의하여 고안되었다. 뒤에 희랍인과 로마인에게 받아들여진 것으로 보인다. 아마 이것은 지금까지 행해졌던 모든 처형 방법 중에서 가장 잔인한 방법일 것이다. 왜냐하면 이것은 사람이 극도의 고통을 느낄 때까지 죽음을 늦추기 때문이다. 거기에 달린 사람은 여러 날 동안을 죽지 못하고 고통을 당할 수도 있었다. 로마인이 이 처형 방법을 택했을 때에도, 그들은 살인, 반란, 혹은 무장 강도의 죄를 범한 범죄자, 그중에서도 노예나 외국인 혹은 사람 취급을 못 받는 사람들(nonpersons)에게만 이 형벌을 가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유대인들은 로마의 장군 바루스(Varus)가 주전 4세기에 자기네 동족 2,000명을 십자가에 못박았을 때에 크게 분노했으며, 예루살렘을 약탈할 때에 장군 티투스(Titus)는 그 도시에서 도망치는 사람들은 너무나 많이 십자가에 못박았기 때문에 십자가를 세워 놓을 만한 공간도....사람을 달 십자가도찾을 수가 없었다.

 

 

로마 시민들은 극단적인 국가 반역죄를 제외하고는, 십자가형에서 면제되었다. 키케로가 행한 연설에서 십자가를 “crudelissimum taeterrimumque supplicium, 가장 잔인하고 혐오스러운 형벌이라고 비난했었다. 조금 더 내려가서 그는 이렇게 선언했다. ”로마 시민을 결박하는 것은 범죄이고, 그에게 매질을 하는 것은 가증한 것이고, 그를 죽이는 것은 거의 살인이나 마찬가지이다. 그러면 로마 시민을 십자가에 못박는 것은 무엇인가? 그렇게도 끔찍한 행동을 묘사할 수 있는 적절한 말은 존재하지 않는다.

 

 

 

 

2

살인죄로 고발된 고참 원로원 의원 가이우스 라비리우스(Gaius Rabirius)를 키케로가 주전 63년에 변호해서 성공한 적이 있는데, 그때에 그가 한 말은 더욱 분명하다. “십자가라는 단어는 로마 시민에게서 뿐만 아니라, 그들의 생각, 그들의 눈과 그들의 귀에서까지도 멀리 사라져야 한다. 왜냐하면 이 일(즉 십자가 처형 절차)의 실제적인 발생 혹은 그것을 견디는 것뿐만 아니라, 그것을 당할 수 있다는 사실, 그 예상, 아니 그것을 단순히 상상하는 것까지도 로마 시민과 자유인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일이기 때문이다.

 

   

  -십자가 처형틀에 대한 전방위적 접근을 다룬 존 스토트의 역작이다

 

십자가 처형법은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그 이상의 극혐의 살인도구, 처형도구였다. 이것은 존 쿠시의 야만인을 기다리며에서 나오는 소위 말하자면, <야만인>에 의해서 고안되어졌다는 것이다. 물론 존 쿠시의 야만인과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처형당할 때의 야만인과 다른 그룹이겠지만, 존 쿠시가 말하는 야만인의 범주에는 모두 포함된다고 볼 수 있겠다.

 

 

 

 

3

누가 야만인인가?

 

존 쿠시의 야만인을 기다리며의 소설의 첫문장은 이렇게 시작된다.

 

 

나는 그런 걸 본 적이 없다.”(7p)

 

 

앞에서 이야기한 예수의 십자가 처형도 전무후무한 일이지만, 존 쿠시의 소설에서 등장하는 야만인을 고문하며 다루는 방식에 대해 주인공의 입을 빌어 나는 그런 걸 본 적이 없다고 표현한다. 이 한 문장을 통해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고문의 방식이 극혐이라는 사실이다. ‘한가로운 변경에서 은퇴할 날을 기다리며 소일하고 있는, 제국을 위해 봉사하는 책임감 있는 시골 치안판사이자 관리인 주인공의 이야기는 소위 말하는 <야만인>이란 존재가 누구인가를 질문한다. 소위 문명인이라고 하는 제국의 사람들은 야만인 히스테리를 가지고 있다. 야만인들이 갑자가 쳐들어와 자기의 아내와 딸들을 강간하고 불을 지르고 곡식을 수탈해가며 때론 홍수까지 동원하여 삶의 터전을 쑥대밭으로 만들지는 않을까, 목숨을 빼앗아가진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가득한 소위 문명인들이다. ‘야만인 히스테리를 가진 문명인들은 군대와 경찰을 동원해 야만인 소탕작전을 쉼 없이 지속시킨다. 우리는 문명인이기에, 야만인에 대한 그 어떤 형벌도 가능하다는 입장에서 야만인에게 격렬한 고통과 죽음과 수치와 부끄러움과 분노를 선물해준다. 존 쿠시는 제국의 사람들이 야만인들을 죽인 시체의 풍경을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시체가 반듯이 누워 있다. 시체의 배와 음부 그리고 사타구니까지 화살처럼 수북한 음모가 흑빛과 금빛으로 번들거린다. 내가 손을 뻗어 털을 만지려 하자, 그것이 꿈틀거리기 시작한다. 그건 털이 아니라 서로를 타고 다닥다닥 붙어 있는 벌들이다. 꿀에 젖어 끈적끈적한 벌들이 사타구니에서 나와 날개를 파닥거린다.’(26p)

 

 

아이는 죽어 어머니의 옷자락 속에 있다고 한다. 여자는 아이를 내놓으려 하지 않는다. 우리는 강제로 아이의 시체를 빼앗을 수밖에 없다.’(37p)

 

 

 

 

4

자신들의 살 길을 찾기 위해 떠돌아다니며 유목민을 생활을 하는 문명인들이 이야기하는 야만인의 행태는 전설적으로 과장되었고 소문 또한 야만스럽게조작되기도 했다. 그들은 제국주의자들이 자기들의 땅에 정착지가 더 이상 확신되기를 바라지 않을 뿐이지만, 제국주의자들은 제국의 안보를 염려하며 그들을 혐오하고 경계한다. 하지만 야만인이라고 불리는 그들은 아직도 우리를 잠시 머무는 방문객으로 생각’(87p)하고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호수의 염분이 점점 많아지면서 무기물이 증가하고 생태계가 파괴되는 것을 우려하면서 자신의 생계와 부족의 미래를 걱정하는 자연동화적이며, 자연친화적인 그들이 야만인일까? 아니면 유목민들에겐 이방인에 불과한 제국주의자들이 살인무기를 들고 협박하며 고문하고 소탕해가는 그들이 더 야만스러운가? 작가 존 쿠시는 야만인을 기다리며이 작품을 통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제국이라는 이름으로, 집단과 시스템이란 이름으로 자행한 수많은 인류의 폭력에 대해 은근히 고발하고 있다.

 

 

 

 

5

권력과 힘을 가진 시스템이나 메카니즘은 언제난 을 찾는데 몰두한다. 자신이 소유한 그 모든 것으로 단죄할 수 있는 말이다. 일종의 희생양 콤플렉스이다. ‘적이라는 희생양이 있어야 내가 소유하고 있고 누리고 있는 것이 온전한 보호감과 하나됨과 안전감을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적을 내부에서 찾지 못하면, 결국 외부에서 찾아야만 한다. 이런 구조의 프레임은 굉장히 고무적이긴 하나 서글프고 아픈 현실이다. ‘을 외부에 두면, 내부가 하나가 될 수 있다. 마치 침략을 스스럼없이 감당했던 일본의 임진왜란이 좋은 예이다. 국론을 통일시키기 위해서 희생양이 바로 조선이 된 것이다. 제국주의, 전체주의, 파시즘, 권력 메카니즘, 독재자들의 횡포는 언제나 이런 노선을 띠고 있다. 제국이 자행한 모든 비극적인 행위는 그들이 만들어놓은 카테고리에 ’(상대편)을 지목하고, 그들을야만인이라고 언도한 후 융단폭격을 퍼부은 셈이 된다. 인류가 걸어온 전쟁과 수탈과 파괴의 역사가 그러했다.

 

 

 

야만인들이 강둑을 은폐물로 사용하니, 강둑이 깨끗해지면 그쪽을 방어하기가 한결 쉬워질 거라고 누군가가 결정한 모양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덤불에 불을 질렀다. 불은 북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낮은 계곡 전체로 번졌다. 나는 이전에 들불이 난 것을 본 적이 있다. 갈대밭이 순식간에 타고, 포플러 나무는 횃불처럼 타오른다. 영양, 토끼, 고양이같이 잽싼 동물들은 도망친다. 수 많은 새들이 질겁하여 날아간다. 모든 게 다 타버린다. 그러나 강변에는 불모지가 너무 많이 불길이 번지는 일이 거의 없다. 그렇다면 이번 경우에는, 사람들이 강변을 따라 불이 계속 번지도록 하고 있다는 말이 된다. 이 사람들은 땅에 아무것도 없게 되면, 바람이 땅을 따먹기 시작하고 결국 그곳이 사막화되리라는 건 개의치 않는다. 이렇게 원정대는 땅을 유린하고 우리의 재산을 못쓰게 만들며 야만인들을 섬멸할 작전을 준비하고 있다.’(136p)

 

 

 

 

6

땅을 불모지로 만들어 사막화시키고 자연생태계를 파괴시키는 문명이란 이름의 제국주의자들이 더 야만스럽지 않는가? 그러나 우리는 언제나 상대를 향해 야만인이란 단어를 사용한다. 이전에 이웃분 페크pek님 의 글 중에 그런 글을 보았다. 우리가 <자연보호>란 말을 쓴다는 것이 과연 타당한가? 자연을 파괴해가면서 자연을 통해 온갖 누릴 것을 다 누리고 있는 인간이 어찌 자연을 보호하려는생각을 하는지, 오히려 자연이 인간을 보호하는’<인간보호>가 더 적절한 말이 아닌가?

 

야만인들이다!”(170p)

 

3제국의 사람들, 군대와 군중들이 외치는 말이다. 하지만, 과연 누가 누구더러 야만인들이다라고 외칠 수 있단 말인가! 예수께서 요한복음 8장에서 하신 메시지가 떠오른다.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돌로 치라”(요한복음 8:7)

 

 

 

 

 

 

7

짐승에게도 망치를 사용해서는 안 되는 거다! 짐승에게도!”(176p)

 

 

제국의 졸 대령과 군인들은 망치를 사용할 줄 아는 호모 파베르Homo faber의 문명인인가? 망치를 사람에게도 사용하는 야만인인가?

 

 

대령, 적은 바로 당신이야!...당신이 적이란 말이야! 당신이 전쟁을 했고, 당신이 그들에게 필요한 모든 순교자들을 만들어줬소. 그것도 지금 시작된 게 아니고. 당신이 더럽고 야만스러운 짓을 이곳에서 처음으로 시작했던 일 년전부터 이미 시작된 거요! 역사가 내 말을 증명해 줄거요!”

말도 안 되는 소리. 역사는 없을 거요. 이건 너무 사소한 일이거든.”(188p)

 

 

어린 소녀를 자유롭게 해준 대가로 오히려 죄수의 처지가 되어버린 치안 판사는 그들을 향해, 그리고 오늘의 우리들에게도 격렬하게 외치고 있다.

 

 

사람들이다!”(177p)

 

 

 

 

8

과연, 누가 야만인이란 말인가?

 

제국은 역사의 시간을 만들어냈다. 제국은 부드럽게 반복되는 순환적인 계절의 시간이 아니라 흥망성쇠와 시작과 끝, 그리고 파국이라는 들쭉날쭉한 시간 개념에 의존하고 있다. 제국은 역사 속에 존재하고, 역사에 반해 음모를 꾸미도록 운명지어져 있다. 제국의 속마음에는 오직 한 가지 생각만 있을 뿐이다. 어떻게 하면 끝장나지 않고, 어떻게 하면 죽지 않고, 어떻게 하면 제국의 시대를 연장할 수 있는가 하는 생각. 제국은 낮에는 적들을 쫓아다닌다. 제국은 교활하고 무자비하다. 제국은 사냥개들을 이곳저곳에 파견한다. 밤이 되면, 제국은 재앙에 대한 상상을 먹고 산다. 도시가 약탈당하고, 사람들이 강간당하고, 죽은 사람의 뼈가 산처럼 쌓이고, 드넓은 땅이 황폐해질지도 모른다는 상상 말이다. 말도 안 되는 미친 상상이지만 전염성이 강하다.’(219-220p)

 

 

존 쿠시는 작품에 깊게 배인 제국주의가 자행한 야만인들을 향한 토끼몰이에 대해 말하고 있다.

 

 

너와 내가 잠을 자고 있는 밤사이에 끔찍한 일들이 진행되고 있다고? 자칼은 토끼의 내장을 찢어발기지만, 세상은 계속 굴러간다.’(41p)

 

 

일종의 중개인, 양의 탈을 쓴 제국의 자칼!’(121p)

 

 

존 쿠시가 우리에게 하고픈 주옥같은 메시지가 군데군데 박혀 있다. 이것이 문학의 매력이요 백미일 것이다.

 

우리 안에 죄악이 있다면, 우리는 그걸 우리 자신에게 가해야 한다.”

다른 사람들에게 그럴 게 아니란 말이다.”(241p)

 

 

 

9

모순과 역설의 치안 판사, 그리고 우리

주인공인 치안 판사는 대단히 도덕적이고 윤리적이지도 않다. 그는 공직자이면서도 그 마을의 여러 여자들과 잠자리를 같이하고 그것이 작은 마을에 소문나지 않을 수 없는 처지였다.

 

부엌에서 치안판사의 침대까지는 열여섯 계단밖에 안 돼.”(56p)

 

치안판사는 고문으로 인해 아버지의 죽음을 목격하고 그 자리에서 실명까지 가게 되고 몸이 불편한 한 야만인 여자 소녀를 데리고 같이 살게 된다. 그가 그녀에게 끌린 것은 그녀가 당한 고문의 상처와 흔적 때문이었다.

 

내가 그녀에게 끌린 것은 그녀의 몸에 난 상처 때문이었는데, 그 상처가 충분히 깊지 않다는 걸 알고 실망했던 것일까? 너무 많거나 너무 적은 걸까? 내가 원하는 건 그녀일까, 아니면 그녀의 몸에 배어 있는 역사의 자취들일까?’(108p)

 

 

문명이 야만인들이 가진 미덕들을 타락시키고 그들을 종속적인 존재로 만든다면, 나는 문명에 반대한다고 결론을 내렸다. 나는 이러한 입장에서 행정업무를 수행했다.(지금은 야만인 여자와 잠자리를 같이하는 내가 이런 말을 하다니!)’(66p)

 

나는 역사에 바깥에서 살고 싶었다. 제국이 백성들에게 강요하는, 아니 사라져버린 백성들에게좌 강요하는 역사의 바깥에 살고 싶었다. 나는 야만인들에게 제국의 역사를 강요하는 걸 원치 않았다. 이것이 치욕의 원인이라고 내가 어떻게 믿을 수 있을까?”(254p)

 

나는 바보가 된 기분으로 그곳을 떠난다. 오래전에 길을 잃었지만 어디로 통하는지 모르는 길을 따라 계속 걸어가는 사람처럼.’(256p)

 

 

 

 

10

치안판사는 늙고 추하고 더러운 욕정에 휩싸인 퇴화해가는 인간이다. 그가 야만인 어린 소녀늘 데리고 산다는 것 자체부터가 더티dirty하고 추한 것이다. 플레이보이 잡지 사장이 몇십 년이나 어린 여자들과 사는 것이 대단해 보이긴 하지만, 보편적인 관점에선 용납하기가 힘든 풍경이 아닌가! 인간의 욕망은 언제가 그렇게 추하다. 존 쿠시는 늙은 치안 판사의 입을 빌어 인류라는, 국가라는, 민족이라는 제국주의의 비극과 참상을 고발한다. 또한 이 늙은이와 야만인 어린 소녀라는 구도를 통해 새로운 관계개선을 하려고 하는 현재의 문명사회, 제국, 인류 문명의 현재를 그려주고 있다.

 

 

 

 

나는 이 작품이 거시적으론 인류 전체까지 나아갈 수 있지만, 미시적으론 개인의 내면까지도 추적하며 탐색해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내 곁에 있는 사람이나 사랑하는 사람, 지인들과 관계에서도 상대를 적이나, 야만인으로 치부하기도 한다. 새로운 희생양을 찾기도 하는 개인이란 제국(제국주의)’가 우리 내면에 있는지도 모르겠다. . 그 야만인이 외부가 아니라 '나我라는 제국'의 내부에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우리 안에 죄악이 있다면, 우리는 그걸 우리 자신에게 가해야 한다.”

다른 사람들에게 그럴 게 아니란 말이다.”(241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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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프리쿠키 2019-05-04 10: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문학동네 신간은 중고로 구입하는 저에게 그림의 떡이네요.
표지그림과 제목이 넘나 땡깁니다^^

카알벨루치 2019-05-04 13:14   좋아요 1 | URL
줄 그은 제 책 드릴까요? ㅋㅋ

북프리쿠키 2019-05-04 13:17   좋아요 2 | URL
저야 책상태는 별로 따지지 않습니다만, 중고로 나올때까지 기다리며 모으는 재미 또한 쏠쏠합니다. ㅋㅋㅋ

카알벨루치 2019-05-04 13:20   좋아요 0 | URL
저의 흔적과 체취를 싫어하시는 군요 ㅋㅋㅋ신간 나오고 얼마 지나야 중고판매가 가능한가요?

뒷북소녀 2019-05-23 12:56   좋아요 1 | URL
인내심과 스피드가 대단하시네요.ㅋㅋ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1

포노 사피엔스라는 이 용어는 2015<이코노미스트The Economist>특집 기사에 처음 등장한 단어이다. 저자는 이 용어가 나오기 전에 스마트 신인류Neo-Smart_Human’이란 말을 썼다고 한다. 스마트폰이 어떻게 세상을 혁명적으로 바꾸는 지에 대해 저자 최재붕 교수는 아주 시원하게 그리고 명쾌하게 이야기해 준다.

 

 

 

 

2

2007년 스티브 잡스는 아이폰을 출시했다. 자신이 만들어놓은 아이폰이 현재의 포노 사피엔스로 이어질 운명을 잡스 자신조차도 예측하지 못했을 것이다. 2022년까지 전 세계의 80%가 스마트폰을 쓸 것으로 예상된다. 거리에서나, 카페에서나, 어디를 가든지 사람들은 스마트폰을 들고 다닌다. 스마트폰은 이제 우리의 몸의 일부가 되어버렸다. 스마트폰을 잃어버린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무언가 삶의 커다란 균열이나 중심을 잃어버린 듯 했을 것이다. 앞으로는 더 할 것이다. 애지중지하는 스마트폰을 휴대하고 다니는 젊은 세대들을 향해 기성세대는 혀를 찬다. 게임에 몰두하며 관계에 소홀해지고 이를테면, 폐쇄적인 라이프스타일을 구가하는 현 세대에 대한 우려에서 비롯된다. 하지만, 저자는 이런 기성세대의 이런 구태의연한 패러다임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한다. 책을 읽으면서 스마프폰을 든 인류, 포노 사피엔스의 단계로 들어서게 되면서 탈권위 시대로 들어섰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조직과 권위의 갑질, 꼰대의 폭력과 착취는 더 이상 포노 사피엔스에겐 어울리지 않는 과거의 유물인 되는 셈이다.

 

 

 

 

3

  미국에서 우버 택시가 붐을 일으켰다. 곧 망할 회사로 여겨진 회사, 택시회사를 게임방식으로 변형한 아이템을 탑재하여 사업을 시작했다. 2010년 기준에 스마트폰을 사용자 수는 고객이 될 가능성의 인구수에 1/10에 불과했다. 그 당시만 해도 스마트폰을 사용한 지 불과 2년이었다. 어플과 신용카드까지 연계해서 사용해야 하는 불편함(?)이 있었다. 이런 측면 때문에 기존 택시장과 경쟁이 안 된다는 예측이었다. 하지만 우버의 방식, 택시타기를 게임판으로 만드는 이 스타일이 시장을 점유하기 시작했다.

 

 

  네델란드의 역사가 요한 하위징아는 인간을 유희를 즐기는 인류, 즉 호모 루덴스(Homo Ludens)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여기서 유희는 단순히 논다가 아니라 정신적인 창조활동을 가리킨다.

 

 

 

  재미에 대한 본능적인 욕구가 있는 인간, 호모 루덴스가 우버사업에 손을 들어주기 시작했다. 3년 만에 기존 택시업자들이 들고 일어났다. 결국 소송까지 갔지만, 2014년 미국 연방대법원은 이 소송에서 우버의 방식은 소비자 입장에서는 필요한 혁신으로 봐야 하고 그래서 합법이다라는 결론을 내려버렸다. 저자는 미국 연방대법원의 판결에 대해 잘못된 결정이었다. 적어도 우리 문명의 기준으로 보았을 때, 명백한 사회 파괴행위였습니다’(64p)라고 한다. 우버의 이야기는 우리나라 카카오 택시사건을 떠올려준다. 라이센스도 없는 택시(?)운전사가 카풀로 운영한다는 카카오의 발상을 기존의 택시업계에서는 반발했고 분신자살하기까지 하는 생존권 사투까지 이어졌다. 그리고 보류되었다. 하지만, 과연 언제까지 미룰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저자는 카카오택시 사건을 예로 들었지만, 아직 우리나라가 포노 사피엔스로 가는 디지털 플랫폼을 옷으로 갈아입을 제도적인, 시스템적인 장치가 부족하다는 지적을 한다. 중국과 비교해보자. 중국은 2012년에 이미 우버 서비스를 전격 허용했다. 중국은 공산주의 국가이기에 정부가 지령을 내리면 복종할 수 밖에 없는 시스템이다. 중국 공산당은 오늘부터 택시는 폰으로 불러 타고 요금도 폰으로 결제하라는 포노 사피엔스의 메시지를 전달한다. 우리는 불편해서 잘 쓰지 않는 QR코드 인식방식으로 15억 인구가 일사불란하게 사용하기 시작했다. 우리보다 벌써 7년 전에 말이다. 우리나라는 현금 결제를 선호한다. 수수료 탓이다. 하지만, 그들은 현금 결제가 아닌 오로지 스마트폰으로 결제만 가능하다. 이것이 무엇을 말하는가? ‘지금 15억의 인구가 사용하는 수천 억개의 데이터가 매일매일 쌓이고 알리바바, 텐센트, 바이두 같은 기업들이 이 데이터를 모아 혁신을 거듭하며 디지털 소비 문명의 플랫폼을 튼튼하게 구축하고 있는(249p)’ 실정이다. 우리나라 대통령이 중국의 서민 식당에 가서 우리 돈 4천원 정도의 현금을 냈더니, 스마트폰으로 결제하면 안 되냐고 했다고 해서 충격을 받았다는 일화가 있다. 중국은 우리보다 앞선 디지털 플랫폼의 옷을 입고 있다는 말이다

 

 

알리바바의 마윈은 이렇게 말한다.

 

데이터 테크롤로지가 중국의 미래다.”(266p)

 

     

 

4

노아 유발 하라리가 호모 데우스에서 이야기했던 데이터교는 이미 중국인, 중국인의 기업인들의 심장에 깊이 박힌 듯하다. 그걸 가능했던 패러다임은 바로 포노 사피엔스이다. 우리나라에서 2017년에 처음 선 보인 카카오뱅크에 대해 금융계의 시선은 시큰둥했다. 하지만, 1년 만에 680만명의 고객을 확보했다. 어떻게 그게 가능한가? 카카오뱅크는 굉장히 쉽다. 공인인증서 어쩌구 저쩌구 하는 거 진짜 싫다. 나는 공인인증서 트라우마가 있다. 공인인증서 받고 저장하고 옮기고 하는 것에 시간을 소모하는 것을 굉장히 싫어한다. 왜냐? 나만 그런가? 잘 안 되더라. 카카오뱅크는 포노 사피엔스에 적합한 모델이다. 그래서 저자는 ‘Best Service is No Service’라는 말을 사용한다. 리처드 도킨스는 그의 저서 이기적 유전자에서 meme’을 문화유전자라고 정의하고 생물학적인 유전자 DNA와 비교하여 설명하였다고 한다. 그런 측면에서 포노 사피엔스는 새로운 문화적 유전자meme이다.

 

    

 

 

5

내가 20-30대에만 해도 소니 노트북이 각광을 받았다. 가격이 쎄다. 하지만 디자인이 탁월해 많은 젊은이들이 선호했다. 마치 지금의 애플처럼 말이다. 그러나 지금 소니는 사라졌다. 2011년 모토로라가 매각을 했고, 2013년 노키아Nokia, 2016년 샤프Sharp, 도시바, JVC, 산요Sanyo 등 거대한 IT기업들이 붕괴했다. 그 태풍의 중심에 애플의 아이폰, 포노 사피엔스의 등장 때문이었다고 볼 수 있다. ‘포노 사피엔스의 등장을 우리가 막을 수 있는가! 그것은 대세이다. 기업들이 그런 선견지명이 없었기에 그들의 몰락은 불가피했던 것이다. 저자는 개인과 기업, 그리고 국가에도 이 디지털 플랫폼으로 변화, 문명의 전환은 위기이지만, 동시에 절대적인 기회가 될 수 있음을 주장한다.

 

 

 

 

6

포노 사피엔스의 문화적 유전자는 데이터에 의한, 데이터를 위한, 데이터의 비즈니스, 고객이 왕인 비즈니스라고 할 수 있다(134p). 이 말은 기업이 아무리 광고하고 마케팅해도 이제 손 안에 스마트폰을 든 신인류는 자기들이 직접 고르고 선택해서 주문하는 ‘on demand의 시대가 된 것이다. ‘소비자가 왕인 시대이다. 수많은 선택지가 스마트폰 안에 들어있고 소비자는 스마트한 선택을 하게 된 셈이다. 그 예로 방탄소년단BTS’의 예를 든다. 마케팅이나 광고가 거의 없었던 BTS는 빌보드200 차트 1위를 무려 두 번이나 차지한다. SNS상의 인기가 대단했던 BTS의 추세에 대해 큰 기대를 하지 않았던 미국 음악 비즈니스업계였다. 빌보드의 역사는 단순히 SNS,상의 인기만으로는 쉽게 허물 수 없는 거대한 성벽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BTS는 그 거대한 성벽을 허물어버렸다. 단숨에. 그 뒤에는 유튜브의 뮤직비디오가 있었다. 아무런 오프라인 활동없이 메이저 차트를 점령해버렸다. 그것도 3개월 사이 두 번씩이나 말이다. 물론 BTS 뒤에는 그들의 팬클럽인 ARMY의 열정이 있었다. 중요한 것은 이제 모든 컨턴츠를 선택하는 것은 소비자의 몫으로 넘어왔다는 이야기이다. 소비자의 팬덤이 이제 시장을 좌지우지하게 되는 케이스가 바로 BTS의 경우이다.

 

 

    

 

7

언젠가 조정래와 그의 손자 조재면이 기록한대화를 읽은 적이 있다. 할아버지와 손자의 주고 받기 식의 논술 글모음이다. 그때 손자 조재면이 고딩이었는데, 청소년들이 게임을 막는 셧다운제에 대해 분노한 것을 보았다. 아이들의 게임중독을 막아보자는, 예방하자는 의미이다. 하지만, 디지털 플랫폼의 변화와 현재의 추세와 트렌드를 볼 때, 과연 이런 정책은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든다. 앞에서도 카카오택시 이야기를 했지만, 아직도 우리나라는 포노 사이엔스로 진화하는 데 시원하지 못한 부분이 있는 듯하다. 전세계에서 가장 많은 스마트폰이 팔리고 소유한 나라일 것 같은데 말이다.

 

 

 

 

8

요즘 배틀 그라운드를 한 번씩 하는데, 참 잘 만든 게임인 듯 하다. 그런데, 아이들이 유튜브를 보는 것을 옆에서 봤는데, 배틀그라운드의 게임스토리를 가지고 동영상을 만들어 유튜브에 게재한 것이었다. 그건 좀 신선한 충격이었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게임의 캐릭터와 액션과 설정을 직접 재현하는 것이다. 게임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그 동영상을 보면서 웃을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어릴 적 티비나 영화를 보고 그 무언가를 흉내 내듯이, 아이들이 이제 우리에게 익숙했던 매체가 아닌 그들에게 더 익숙한 매체인 스마트기기에서 본 컨텐츠와 게임스토리를 따라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부모인 우리가 아이들이 스마트폰을 가지고 게임만 한다고 늘 지겹고도 반복된 잔소리와 폭언만을 해서 될 것인가?(제 이야기입니다) 이런 생각을 해 보았다. 아이들이 스마트기기를 가지고 노는 것에 대해 이 책을 읽으면서 조금 더 관대해지기로 했다. 왜냐하면,‘포노 사피엔스시대가 되었기 때문이다. '포노 사피엔스'는 문화적 유전자이다.

 

 

 

 

9

저자 최재붕 교수는 <세바시>강의에서 아주 신선하게 강의로 접했는데, 책으로 또 다시 접하니 역시 흥미롭다. 내가 <세바시>와 함께 가끔 보는 <포프리쇼>에서 포프리 기업의 사장이 했던 강의가 생각난다. 3 수험생을 둔 엄마의 고민상담이었다. 아이가 게임만 한다고, 학교 갔다오면 컴퓨터만 한다고. ‘공부는 언제 하느냐?’고 하면 엄마가 없을 때, 안 볼 때 공부하거든’. 이라고 대구한다고 한다. 그런데 강의자가 대안을 내놓는다. 아이가 좋아하는 그 게임을 배워보라고 조언한다. 아이가 왜 그토록 그 게임을 좋아하는지 직접 배워서 해보기를 권한다. 그렇게 아이에게 다가가면 아이의 마음이 열릴 수도 있다는 것이다. 남자들은 원래 게임을 좋아한다. 나도 한 때는 PC방에서 살았던(?) 적이 있다. 나이들어서도 게임하느냐고 핀잔을 준다면, 난 그 사람이랑 말 안 할란다. 젠장! 인간은 호모 루덴스가 아닌가! 하하하! 스마트폰, 새롭게 다가온 인류의 신문명, 디지털 플랫폼에 대해 두렵거나 혐호감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에 대해 적극적인 대응을 통해 기회를 삼는다면, 오히려 다음세대와의 더 나은 소통의 창구가 될 수도 있다.

 

 

 

 

10

포노 사피엔스, 역시 위기는 기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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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19-04-25 14: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포스팅을 카알벨루치 님 자제분들이 좋아하겠군요. 앞으로 게임할 때마다 잔소리와 폭언을 듣지 않을테니까요? ㅋㅋㅋㅋ

카알벨루치 2019-04-25 16:21   좋아요 0 | URL
역사는 돌고 도네여 엄니한테 잔소리 엄청 들었는뎈 ㅋㅋㅋㅋ

단발머리 2019-04-25 16: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 이 책 서점에 서서 앞부분만 읽었봤는데 흥미로운 지점이 여러군데 있었어요.

소니 노트북 이야기 읽으면서 저는, 집에 굴러다니는 캠코더랑 사진기를 생각했어요. 첨 나왔을 때 개인 카메라 생겨서 다들 얼마나 들떴었는지... 제가 너무 옛날이야기 했나봐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옛날 이야기 from 옛날 사람 ㅋㅋㅋㅋㅋㅋㅋ

카알벨루치 2019-04-25 17:26   좋아요 0 | URL
카메라도 소니 많이 사용했죠~옛날 사람이니 옛날 생각하지요 ㅎㅎ다 자기 시대를 살아갈 뿐인데, 나이가 들어간다는 게 인정을 받고 존경을 받는 분위기가 되었음 좋겠습니다! ㅎㅎㅎㅎ

레삭매냐 2019-04-25 17: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스맛트 폰이 처음 나왔을 때만 하더라도
모바일이 대세가 될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지나친 중독이 좀 걱정되긴 하지만,
신세대에 어울리는 새로운 디바이스의 출현
그리고 후발적인 성격의 마인드셋이 추격
하는 기세가 참 경이롭다는 생각이네요.

카알벨루치 2019-04-25 17:25   좋아요 0 | URL
진짜 <포노 사피엔스>세상은 좀 기대됩니다 다음세대의 역량도 기대되는데 단지 걱정이 되는 건 멘탈과 영혼의 건강함을 해칠까 조금 우려되긴 합니다만 이전세대에서 볼 수 없는 요소들이 많이 터질 듯 합니다 ㅎㅎ

북프리쿠키 2019-04-25 22: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포노 사피엔스의 미래가 새로운 방식의 지배시스템을 구축하는데 쓰인다면 제일 속수무책인 사람이 바로 접니다 ㅋㅋ

카알벨루치 2019-04-25 23:46   좋아요 0 | URL
구체적으로 이야기해주세요 스무고개입니깡깡 ㅋㅋ

AgalmA 2019-04-28 01: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요즘 아이들 장래희망 직업 순위에서 유튜버가 상위권인 것을 보면, 포노 사피엔스 문화는 이미 왔는데 말씀처럼 제도권이 뒷받침을 잘 못하고 있는 거 같아요. 디지털 플랫폼을 잘 캐치한 중국을 보고도 이러나 싶은데.... 그게 경제 기반에서 재벌 중심이듯 디지털 플랫폼에서도 그런 특혜를 주고 눈치를 봐서 그런 거 아닐까 생각도 한답니다.
 

  

    

호모 데우스 시대의 데이터교

노아 유발 하라리는 그의 저서 호모 데우스에서 인류가 새롭게 신봉할 종교로 데이터교를 이야기한다. 데이터교도들은 만물인터넷 Internet-of-All-Things’이라 불리는 새롭고 훨씬 더 효율적인 데이터 처리 시스템을 선호한다. 이제 호모 사피엔스는 사라지고 데이터교가 인류를 장악할 것이라는 진단을 내놓는다. 데이터교의 최고의 가치는 정보의 흐름이다.

 

 

 

 

데이터교의 생명-정보data의 흐름

데이터교도들의 첫 번째 계명은 가능한 한 많은 매체와 연결해 가능한 한 많은 정보를 생산하고 소비함으로써 데이터 흐름을 극대화하라는 것이다. 두 번째 계명은 연결되기를 원치 않는 이단까지 포함해 모든 것을 시스템에 연결하라는 것이다. 여기서 모든 것은 단지 인간만을 뜻하지 않는다. 말 그대로 모든 을 뜻한다...데이터교도들은 가장 큰 죄악은 데이터의 흐름을 차단하는 것이다. 정보가 흐르지 않는 것이야말로 죽음이 아니겠는가? 따라서 데이터교는 정보의 자유를 최고선으로 친다(523p).

 

 

 

 

만물인터넷으로 데이터를 접속하는 신인류

우리의 몸은 물론이거니와 자동차, 부엌의 냉장고, 닭장의 닭과 정글의 나무까지 모든 것이 만물인터넷에 연결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문득 Factfulness란 책의 내용이 떠오른다. 우리가 소위 세상인류를 구분 지을 때 부자와 빈자, 라는 극단적인 기준으로 그룹핑grouping한다. 하지만, 저자는 인류를 4단계로 구분 짓는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고 물을 길으러 가야 하는 아주 극빈층, 전기는 들어오고 하루에 4달러를 버는 그 다음단계, 전기에 냉장고까지 갖추고 하루에 16달러를 버는 그 위의 단계, 마지막으로 1,2,3 그룹이 갖추지 못한 모든 것을 갖춘 그룹은 4번째 그룹으로 최상위 그룹으로 친다는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우리는 최상위 그룹에 속해 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데이터교도들의 관점에서 보면, ‘만물인터넷을 사용 할 수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4번째 그룹 위에 5번째 그룹을 새롭게 생성할 수 있겠다 싶다.

 

    

 

 

데이터의 가장 큰 힘은 바로 공유의 힘

만물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는 수많은 인류, 우리는 데이터교에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 하지만 이 데이터교에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공유이다.

 

2013111일 자신의 아파트에서 자살한 26세의 미국인 해커 애런 스위츠란 인물이 있다. 그는 데이터교의 첫 순교자이다. 무슨 말인가? 그는 스위스의 보기 드문 천재였고, 그가 접속한 수많은 수십만 편의 과학 논문을 이용로를 받지 않고 모든 사람이 무료로 읽을 수 있도록 인터넷에 올릴 작정이었다. 그는 놀라운 정보와 과학적 데이터를 공유하고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스위스는 그를 체포하고 재판을 받게 된다. 유죄 판결을 받고 죄수의 운명이 되자, 그는 스스로 목을 매고 만다. 이 사건에 대해 분노한 해커들은 스위스 정부를 압박했다. 스위스의 비극에 대해 정부는 사과를 했고, 지금은 대부분의 모든 데이터를 무료로 이용할 수 있게 해놓았다고 한다. 미국인 해커 애런 스위츠가 싸운 것은 바로 정보의 자유’, ‘데이터의 자유였다. 그것은 곧 공유란 광대한 만물인터넷에 들어가는 것을 말한다.

 

 

 

경험하면 기록하고, 기록하면 업로드하고, 업로드하면 공유하라?

하라리는 이렇게 말한다.

 

사람들은 스스로 데이터 흐름의 일부가 되기를 바란다. 설령 그것이 자신의 사생활, 자율, 개인성을 포기하는 것을 의미한다 해도 상관없다...위키피디아를 만든 사람이 누구인가? 우리 모두이다. 개인은 점점 누구도 진정으로 이해하지 못하는 거대 시스템 안의 작은 칩이 되어가고 있다...자기만의 일기장에 일기를 쓰는 것(이전 세대들이 흔히 했던 인본주의적 관습)은 요즘 많은 젊은이들에게는 완전히 쓸데없는 짓으로 보인다. 아무도 읽을 수 없는 것을 왜 쓰는가? 새로운 모토는 이렇게 말한다.’

 

경험하면 기록하라. 기록하면 업로드하라. 업로드하면 공유하라.”(529-530p)

 

 

 

 

공유의 힘이다

우리는 인류가 경험한 모든 소소하고 시시하고 조잡한 기억들과 체험들을 공유하면서 거대한 데이터교가 탄생하게 되었다. 네이버의 지식백과를 예를 들지 않더라도, 구글에서 단어 하나만 검색하더라도, 다음지도에서 지구상의 한 지점을 찍어 그 지역의 도로사정이나 환경을 직접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다. 이렇게 내가 예를 들지만, 지금의 만물인터넷의 진보속도는 엄청나서 내가 이렇게 기록한 것도 out of date가 될 수도 있겠다 싶다. 모든 것을 공유하게 되니 이 정보의 양과 공유의 사이즈는 어마무시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이 공유의 힘이 호모 데우스 시대에 언제나 생산적인 영향력만을 발휘할지, 아니면 파괴적인 효과를 가져올지는 사용하는 유저에 따라, 환경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예를 들어, 가수 J의 단톡방 동영상 공유사건만을 보더라도 그렇다. 우리의 개개인의 사소한 역사의 기록물이 이제는 세계의 무대에 언제든지 공유될 수 있는 것은 굉장히 파워풀하면서도 악마적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또 다른 사건인, 아버지 K의 추문으로 인해 자살을 한 딸의 이야기, 요근래의 한 사건만을 보더라도 그러하다. 아버지의 추악한 행위에 대한 판결 유무를 떠나서 한 인간이 그렇게 공유되어진 결과물로 인해 자살을 하는 비극은 어쩌하겠는가! 이런 일화를 깊게 생각하지 않았음 한다. 내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공유의 힘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

 

 

내가 이 페이퍼를 오랫동안 생각을 했는데, 미루다 미루다 이제야 쓰게 되었다. 누가 알아줄 것도 아닌데, 나 혼자서 이러고 있다. 재독철학자 한병철은 그의 저서 투명사회에서 이런 이야길 한다.

 

    

 

 

투명사회의 투명성의 정체는?

오늘날 사회 시스템은 모든 사회적 과정을 조작 가능하고 신속하게 만들기 이해서 투명성을 강요한다...이러한 시스템의 강제로 투명사회는 곧 획일적 사회가 된다. 바로 이 점에 투명사회의 전체주의적 특성이 있다.’“획일화를 표현하는 새 단어: 투명성.”(15p)

 

 

내가 이 내용을 처음 접했을 때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긍정사회(투명사회)를 지배하는 것은더 이상 어떤 사건도 일어나지 않는 하나의 구조 속에 놓인 정보의 투명성과 외설성이다. 투명성에 대한 강박은 인간마저 평준화하여 시스템의 기능적 요소로 만든다. 이런 점에서 투명성은 폭력이다.’(16p)

 

 

 

 

투명성이 폭력이 될 수도 있다

우리는 인터넷 필드에서 수 많은 정보들에 대해 평가를 내린다. ‘좋아요싫어요로 구분 짓는다. 페이스북은 싫어요버튼을 만들자는 의견도 있었지만, 일관되게 그 정책은 반대한다. 한병철 교수는 이것은 투명사회는 일차적으로 긍정사회이기 때문에 싫어요란 부정성, 부정적인 커뮤니케이션은 장애가 된다고 말한다. ‘좋아요싫어요보다 더 빠르게 후속 커뮤니케이션을 유발하는 것이다. 거부에 담긴 부정성은 무엇보다도 경제적인 측면에서 효용성이 없다. 문득 아버지 K의 동영상이 뉴스에 보도되자 자살한 딸의 이야기에서 투명성은 폭력이다란 점을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그 동영상에 대해 싫어요라고 버튼을 누르지 않아도 그 동영상의 공유 자체가 자살이란 싫어요로 대두된 것이다. 애석할 따름이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투명성이 주는 긍정성 VS 진리가 주는 부정성

투명성과 진리는 같은 것이 아니다. 진리는 다른 모든 것을 거짓이라고 선언함으로써 스스로를 정립하고 관철한다. 그 점에서 진리는 부정성이다. 정보의 증가와 축적만으로 진리가 성립하는 것은 아니다. 정보에는 방향, 즉 의미가 없다. 진리의 부정성이 결여됨으로 인해 긍정적인 것이 마구 증식하고 다량화한다. 과다 정보와 과다 커뮤니케이션은 바로 진리의 결핍, 존재의 결핍을 드러낼 뿐이다. 더 많은 정보, 더 많은 커뮤니케이션은 전체의 근본적인 불명료함을 제거하지 못한다. 더 많은 정보와 커뮤니케이션에 의해 불명료함은 오히려 더욱 첨예화된다(26-27p).’

 

 

    

 

투명사회의 기괴한 라디오

존 치버의 단편소설집 기괴한 라디오를 보면, <기괴한 라디오>의 이야기가 너무나 인상적으로 다가온다. <기괴한 라디오>의 스토리는 단순하다. 한 가정에서 라디오가 고장이 났다. 그래서 남편은 아내를 위해 제법 비싼 라디오를 거금을 들여 하나 장만한다. 그런데, 그 라디오가 보통 평범한 라디오가 아니라 옆집, 이웃집의 모든 사정들을 들을 수 있는 라디오인 셈이다. ‘훔쳐듣기가 되는 기괴한 라디오인 셈이다. ‘몰래카메라가 아니라 몰래녹음기정도 될까? 이웃집의 사생활을 우연찮게 염탐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부부의 감정과 기분의 동선을 읽을 수 있다. 하지만, 이런 부분은 현대사회에서는 너무나 흔하디 흔한 스토리이다. 세계에서 가장 CCTV가 많은 나라가 우리나라고 하던데. 확인이 필요한 부분이다. 우리는 수많은 우리의 동선을 염탐당하고 있고, 기록되어 저장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몰래카메라를 다룬 영화 <웰컴 홈>의 이야기가 떠오른다. 휴가를 떠난 두 연인, 새로운 재출발을 위해 휴가 온 연인에게 비추고 있는 수많은 몰래카메라들...일종의 기괴한 카메라가 되겠다.

 

    

 

 

존 치버는 <기괴한 라디오>35세 때 잡지에 게재한다. 그렇다면 그 때가 1947년이란 말인데, 그때 존 치버는 이 기괴한 이야기, <기괴한 라디오>를 글로 썼다는 것은 충격으로 다가온다. 현대사회는 공유사회이다. ‘공유의 힘을 통해 투명사회를 강조한다. 그런데, 존 치버는 1940년대에 이런 생각을 했다는 것 자체가 역시 문학가의 저력과 통찰을 엿볼 수 있다. 이래서 나는 존 치버를 좋아한다. <기괴한 라디오>는 현대사회의 무수히 공유되고 흩어져있는 정보의 흐름’, ‘데이터의 자유가 과연 우리에게 어떤 결과와 영향력을 주는지 물음표를 던져 준다.

 

 

'교외의 체호프'라 불리는 존 치버는 66(1978)<존 치버의 단편선집>으로 퓰리처상과 전미비평가협회상, 전미 도서상을 받았다.

 

 

 

 

투명사회에서 불투명성을 주는 의미

엠제이 드마코가 쓴 부의 추월차선에서 부의 추월차선의 첫 번째로 명성을 들고 있다. 가장 빠른 시간 내에 자신의 이름을 퍼트리는 것이다. 오늘날은 투명사회이니, 만물인터넷이 수많은 인터넷 유저들에게 돈방석을 앉게 만들었다. 그것도 쉽게 되는 것은 아니지만, 예전보다 더 빠르게 자신의 이름을 확장시키는 좋은 도구가 바로 데이터 사회인 것은 확실하다.

 

 

서행차선을 벗어나는 방법: 비밀의 출구

첫째, 명성이다. 명성을 얻으면 내재가치의 수학적 한계를 깨뜨릴 수 있다. 서행차선을 벗어난 사람들은 대부분 유명인으로서 문화계 곳곳에 얼굴을 알린 경우가 많다. 이들은 운동선수, 가수, 뮤지션, 배우 또는 연예인이다. 서행차선이 지닌 약점을 극복하고 싶다면 유명해지면 된다. 왜냐고? 명성이나 악명 모두 내재가치를 높이는 요인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당신과 당신이 제공하는 가치를 매우 높은 가격에 사려 할 것이다.

불행하게도 부자고 되고자 하는 사람들 대부분은 추월차선을 통해서가 아니라 서행차선에 저항하는 방식으로 그 길을 찾으려 한다...

서행차선의 한계를 극복하는 또 다른 방법은 스스로를 없어서는 안 될 존재로 부각시켜 가치를 끌어올리는 것이다. 수백 명의 군중이 당신을 원하게 만들면, 수백만 달러를 벌게 될 것이다... 특별한 재능이 특별한 수입을 부른다.’(128-129p)

    

당연한 소리인가? 당연한 소리이지만, 저자의 이야기는 심지가 굵다. 나는 이런 사회의 트렌드를 거부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더 많은 자유가 우리에게 주어졌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만큼 그 자유가 우리에게 제약과 한계를 쥐어줄 것도 틀림없다. 이런 공유의 힘이 적절하게 잘 사용되길 바랄 뿐이다. 부의 추월차선이 책은 사업을 구상하고 새로운 자영업을 시도하는 이들에게 놀라운 통찰력과 혜안을 제공해준다고 생각한다. 단순히 자기계발서로 일축하며 폄하하는 우는 범하지 않기를 바란다.

 

 

 

 

 

Epilogue...

마지막으로, 한병철의 이야기로 마무리하고 싶다.

인간의 영혼은 분명 타자의 시선을 받지 않은 채 자기 혼자 있을 수 있는 공간을 필요로 한다. 불투과성은 영혼의 본질에 속한다. 영혼의 내부를 훤히 비춘다면, 영혼은 불타버릴 것이며 특별한 종류의 소진 상태에 빠지고 말 것이다. 오직 기계만이 투명하다. 즉흥성과 우발성, 자유처럼 삶을 이루는 본질적 요소들은 투명성을 용납하지 않는다.’(16p)

 

페터 한트케는 이런 말을 남겼다.

 

다른 사람들이 나에 대해 알지 못하는 것, 나는 그것으로 살아간다.”

 

 

투명사회를 살아가는 우리가 가끔은 기괴한 라디오를 끄고 살아가는 것도 좋을 법하다. 유발 노아 하라리의 호모데우스미래의 역사에 대해 비관하지도 낙관하지도 않고 그거 보여줄 뿐이라고 옮긴이 김명주는 밝히고 있다. 호모데우스 시대에 투명성, 데이터라는 기괴한 라디오는 그것을 사용하는 인간의 자질, 인격, 그리고 책임이 뒤따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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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9-04-18 18:0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기록에 대한 유발 하라리의 말에 저는 ‘피드백’을 추가하고 싶어요. 경험, 기록, 업로드, 공유, 그 다음은 피드백입니다. <팩트풀니스>에 보면 지식은 시간이 지나면 낡아지기 때문에 새로운 지식을 업데이트해야 한다는 내용이 있어요. 저는 새로운 지식을 공부하는 것도 피드백의 첫 번째 단계라고 생각하고, 두 번째는 자신의 오류를 받아들이면서 고치는 것입니다. 당연히 피드백한 내용도 공유해야죠. ^^

카알벨루치 2019-04-18 18:48   좋아요 0 | URL
피드백, 좋은 생각인 듯 합니다 ^^

stella.K 2019-04-19 14:0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싫어요는 반대하는데 좋아요 하나만 있는 것도 좀 갑갑하긴 하더군요.
슬프거나 안 좋은 내용에 좋아요를 누르면 물론 동감이란 의미긴 하지만
오히려 조롱하는 것 같기도 해 좀 그렇더군요. 차라리 예전에 공감이 훨씬 낫지 않나 싶기도 해요.

존 치버의 책 읽고 싶긴 하네요.
근데 전 꼭 이 작가의 이름을 오역해서 읽고 싶어져요.
존 버치로.ㅎㅎ

카알벨루치 2019-04-18 21:01   좋아요 1 | URL
유튜브나 다른 뉴스 같은 곳에는 ‘싫어요’가 있더군요! 비난이나 비판이 건설적이지 않다면 그걸 기록으로 남길때 부정적인 영향은 어쩔수 없는 듯 합니다 존 버치 ㅋㅋ서부영화 주인공 이름 같군요 ^^

북프리쿠키 2019-04-20 09: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카알벨루치님의 포스팅은 늘 좋아요♡

카알벨루치 2019-04-20 10:03   좋아요 1 | URL
여기서 이러심 안 되와요^^ 주말 행복하게 보내십시오 ~🙆‍♀️

서니데이 2019-04-21 22: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카알벨루치님, 즐거운 주말 보내셨나요.
오늘 부활절이었는데, 맛있는 계란 드셨는지요.
한주일 사이 날씨가 많이 달라졌습니다. 더운 봄날 같아요.
빠른 속도로 주말이 지나고 일요일 밤이 되었습니다.
내일부터 시작되는 한 주, 좋은 일들로 가득한 시간 되시면 좋겠습니다.
편안한 밤 되세요.^^

카알벨루치 2019-04-21 22:26   좋아요 1 | URL
아프지 마시고 늘 건강하게 출첵하시는 알라디녀 ^^ 화이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