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년이란 키워드
백년이라 하면 가브리엘 마르케스의 <백년의 고독>이 생각이 난다 마꼰도에서 벌어진 부엔디아 대령의 집안사에 스며내린 고독, 그 깊은 고독감의 극치는 이 책의 백미이다 제목도 <백년의 고독>, 어떻게 이름을 이렇게 잘 지을 수 있나? 안정효의 <백년동안의 고독>보다 훨씬 감칠맛 난다 마르케스의 백년이라 함은 백(100)이라는 숫자에 갇힌다기 보다 훨씬 더 길고 파란만장한 세월의 길이를 상징하는 숫자, 메타포라고 할 수 있겠다



김형석의 백년인생의 비결
김형석교수의 <백년을 살아보니>는 이런 마르케즈의 상징적인 백년이 아니라 말 그대로 “백세인생”을 사신 분의 에세이이다 고령화시대에 그래도 백세를 사셨다는 것은 대단한 것이다 그렇다고 그분이 장수를 위해 특별히 신경 쓴 것은 없다 그는 건강을 위해 운동을 하지 않았다 그는 일을 조금 더 하기 위해 운동을 했고 그게 매주 수영장에 3번씩 출입하여 수영을 하신다고 했다 이 포커스, 초점이 너무 매력적이다 “일을 조금 더 하기 위해서” 운동을 했다는 관점이다 물론 고령화시대에 고령자들의, 노인들의 무위고도 무시할 수 없는 노릇이고, 현실이다 그런데 그는 이제 100세에 닿았는데 아직도 그를 찾는 이가 있어 강연을 다니고 글을 쓰신다 연로하셔도 할 수 있는 일을 위해 자기관리, 자기건강을 챙기신 부분은 역시 대단하다 더 대단하신 것은 <그의 관점focus>이다




부의 요소는?
<부의 추월차선>은 저자가 30대에 람보르기니를 탄 여린시절의 로망과 꿈을 이뤘다고 호들갑을 떨면서 이야기가 시작되는 전형적인 자기계발서이다 하지만 점점 그는 부에는 ‘추월차선’과 ‘서행차선’이 있다는 이야기하는 대목이 흥미롭다 더 주목할만 한 것은 그가 부의 3가지 요소로 3F를 이야기하는데, 거기에 가족family(관계), 건강fitness(신체), 자유freedom(선택)들고 있다 근데 그는 람보르기니를 타지만 그게 행복의 근간이 되는 돈(재정)finance라는 단어는 사용하지 않는다 그에겐 부의 3요소는 바로 이런 것이다 그게 충격적이었다 반전의 매력! 부의 3요소에 ‘건강’이 있다는 것이 너무 놀랍지 않은가! 김형석교수는 그런 측면에서 부를 소유한 인물이다



백년을 살고자 하는 자는 이것을 기억하라!
이 책을 읽으면서 또 하나 강하게 다가온 것은 아무나 장수할 수 없는 것을 느꼈는데, 마르틴 루터는 “사람에게 가장 충격적인 사건은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이별)”이라고 한다 그것만큼 정신적인 데미지를 주는 사건은 없다 우린 모두가 장수하길 원하고 오래 살길 바란다 하지만 그 사람들은 소수일 것이다 왜냐고? 고령화시대인데? 무슨 이야길 하느냐고? 우리는 백세시대를 살면서 백년을 살면 앞에서 마르케스 이야길 했는데 말 그대로 “백년의 고독”을 감내해야 한다 저자 김형석 교수는 사랑하는 아내를 20년 동안 병간호했다 그리고 먼저 떠나보내셨다 그리고 북한에서 월남하면서 헤어진 친구들, 다시 만난 친구들, 어릴 적 친구들, 지식인들...빼놓을 수 없는 백년의 친구들이 다 먼저 세상을 떠났고 그들을 그리워하고 있다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고 버텨낼 내구성의 그릇이 준비되어야 100년을 살 수 있는 것이다 저자는 아내를 떠나 보내고 재혼을 권하는 주위의 분위기도 있었지만 홀로 지내고 계신다 그러면서 외로워하신다 ...백년의 고독이다...



숫자 백100보다 더 중요한 것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는 아픔과 슬픔을 추스리고 혼자서 내면을 케어하는 자는 곧 백년의 생애를 사는 셈이다 숫자 100이 주는 100년이라기 보다 그는 물리적, 시간적 격차를 껴안고 외로움과 고독과 싸워 버텨낸 영원한 인생이기 때문이다 저자 김형석은 그렇게 꽉꽉 채운 인생을 살고 있다고 나는 인생선배이신 그분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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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프리쿠키 2019-04-06 09: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개인의 인생 하나하나가 문학작품이네요 ㅎ
맞아요. 우리의 인생이 소중한 사람들을 떠나보내는 일들의 연속입니다.~ 백년동안의 고독은
읽는 내내 고독감을 느끼게 해주는 작품이었습니다 ^^;

카알벨루치 2019-04-07 00:31   좋아요 1 | URL
맞아요 개인의 삶도 기록도 다 역사가 됩니다 유시민이 그런 이야길 한것 같기도 합니다 아닌가? 요즘 집안정리에 서재정리까지 해서 정말 에너지가 소진된 상태입니다 다시 달려가야하는데 워밍업이 좀 필요한듯 합니다 북프리쿠키님 서재사진 또 보고싶은데 안볼래요 보믄 부럽고 부러우면 지는거니...서재정리하고 책 못 읽는건 누가 보상해주나요 정말 ㅡㅜ; 굿밤하소서!

북프리쿠키 2019-04-08 12:59   좋아요 1 | URL
서재정리 다 하시면 자랑해 주세요 ㅎㅎ
부러우면 지는 거니 저도 부러워하지 않겠습니다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1

저자 김민섭은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라는 책으로 우리에게 알려져 있다. 그는 망원동에서 어린 시절을 거의 보냈다. 그런 추억과 경험, 그리고 그 망원동이란 공간을 사회학적인 시선으로 가볍게 적은 아무튼, 망원동이란 책도 나왔다. 북튜버 김겨울이 김민섭에 대한 이야길 하는 것을 귀동냥으로 들었다. 지방대 시간강사로 8년을 지내면서 그는 교수라는 목표를 향해 살았던 사람이다. 하지만, 그는 자신을 대학에서는 교수도 아니고 학생도 아닌, 어느 중간에 위치한 경계인에 불과했다고 기술한다.

 

  

   

 

2

4대 보험도 적용되지 않는 시간강사, 그는 결국 가정의 생계를 위해 투잡을 뛴다. 맥도날드 알바를 하면서, 그는 대학에서는 4대 보험도 적용되지 않는 시간강사지만, 맥도날드에선 알바도 4대 보험이 적용되는 것을 보고서 충격을 받는다.

 

지식을 만드는 공간이 햄버거를 만드는 공간보다 사람을 더 위하지 못하는 것은 슬픈 일이다라는 문장은 맥도날드에서 13개월 동안 일을 하고서 스스로 내린 결론이다.(17p)

 

사실 내가 받은 첫 명절 선물은 멸치가 이닌 <악수><맥노날드 컵>이다. 대학보다도 택배물류센터와 맥도날드가 오히려 더 구성원들을 인간적으로, 말하자면 노동자로 대했다. 내가 아는 한, 대학은 가장 전근대적인 공간이다...’(199p)

 

 

 

 

3

저자는 결혼을 앞두고 대출을 받으러 은행엘 갔다. 은행에선 재직증명서가 필요하다고 했다. 대학본부에 가니, 당신은 재직증명서 발급 대상자가 아니라고 해서 대신 강의경력증명서를 발급해주었다고 한다. 그런데, 은행담당자가 그걸 보더니 이게 무엇이냐고 웃었다. 담당자는 웃지만, 당사자는 서글픈 현실에 울고 싶었다고 한다. 저자는 대학의 대리인간일 뿐이었다고 고배백한다.

 

 

명절연휴 기간에 택배물류 알바를 하면서 명절마다 그렇게 많은 선물들이 오가는 것을 보고서 또 충격을 받는다. 시간 강사하면서 제대로 된 선물 하나 받지 못한, 자신이 그토록 목 매달리며 지냈던 대학이란 곳을 가장 근대적이어야 할 공간이 가장 전근대적이란 말을 내뱉는다.

 

 

 

 

4

  지방대학 시간강사에서 대리기사가 되었다. 저자는 대학의 유령과 같은 시간강사에서 달리는 으로 변신한 것이다. 대리기사의 신분으로 주인의 운전석에 앉으면서 그는 몸은 행위가 통제하고 말이 통제되며 사유가 통제된다는 고백을 한다. 그는 우리 사회가 <대리사회>라는 정확한 진단을 내놓는다. 우리 모두 스스로 주체라고 믿지만 실은 거대한 타인의 운전석에 앉아 있는 대리인간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을(4p).‘

 

 

 

 

5

타인의 운전석과 다름없는 <을의 공간>은 우리 사회 곳곳에 존재한다. 차의 주인과 대리기사와 같은 역설의 관계 역시 우리 주변 어디에나 있다. 직장에서, 학교에서, 가정에서, 그 어디에서, 주체의 욕망은 쉽게도 타인을 잡아먹는다. 예컨대 의사결정권자는 언제나 자유롭게 회의 안건을 내고 소통하자고 하지만 그 누구도 화답하기는 쉽지 않다. 이미 상상과 수용 가능한 범위가 제한되어 있음을 모두가 안다. 거기에서 벗어나거나 반론을 내기라도 하면 곧 눈총이 쏟아진다. 소통은 주체가 된 이들의 논리를 확인하고 강요하는 수단이 된 지 오래다. 부하직원은 직장 상사에게 아이디어를 내지 않고, 학생은 교사의 의도에서 벗어난 답을 제출하지 않는다. 아이 역시 부모 앞에서 자신이 원하는 바를 털어놓지 않는다. 자신이 주체가 될 수 없음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우리는 어린 시절 부모와의 관계부터 시작해 교사, 직장 상사와의 관계에 이르기까지 <을의 공간>에서 순응하는 방법을 주로 배워왔다. 그렇게 이 사회는 거대한 타인의 운전석이 된다.’(35p)

 

 

 

 

6

십팔사략에서도 나오는 이야기인데, 이 책에서도 강태공의 이야기가 나온다. 강태공은 우리에게 유명한 낚시꾼이다. 강태공은 젊은 날 집안 일은 돌보지 않고 오로지 책만 읽었다. 그가 공부에 몰입하는 동안 아내는 모든 것을 감당해야 했다. 홍수가 왔지만, 책만 읽고 있는 강태공, 마당에 널어둔 곡식이 다 떠내려갔는데도 책만 보고 있는 남편 강태공을 보면서 아내는 강태공을 버린다. 떠난다. 강태공은 만류했지만, 아내는 더 이상 그런 삶을 살지 않겠다고 떠난다. 하지만, 강태공이 훗날 폭군 주왕을 몰아내고 공을 세워 제 나라의 제후가 되어 고향 땅을 밟았을 때, 낯익은 노파가 그 앞에 찾아왔다. 바로 자신의 옛 아내였다. 물동이를 가져와 물을 땅바닥에 들어부어놓고선 강태공은 유명한 말을 남긴다.

 

쏟아진 물은 다시 주워 담을 수 없다.”

 

  

  나는 이 이야기를 첨 대했을 때 강태공을 참아주지 못한 아내를 탓했다. 강태공의 입신양명 이후의 이 한 마디가 사이다 같은 발언이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생각해 볼 때 과연 생활고에 제대로 참여하지 않는 강태공에 대해 요즘 같으면 돌 맞을 짓은 분명하다. 저자는 허생전의 허생도 역시 허생은 글 읽기만 좋아하고, 그의 처가 남의 바느질품을 팔아서 입에 풀칠을 했다.”는 말을 언급한다.

 

 

 

 

7

  많은 이들이 강태공의 아내를 악처, 허생의 아내를 철없는 인물로 기억한다. 저자 김민섭은 시간강사를 하면서 생활고에 찌든 자신이 맥도날드 알바를 하다가 사회의 현실을 피부로 접하고 그는 결국 그 대학을 떠나면서 대리기사로 일을 하면서 글을 쓰는 노동자가 되었다. 그는 강태공이나 허생이 가정의 부부/가족을 함께 지고 가는 동반자의 관계가 아니라 남편이 아내를 대리인간으로 만들어버리는 현실을 지적하고 있다. 이러한 대리 사회의 풍조는 아이를 키울 때, 남편은 아내가, 아내는 남편이, 아니면 아이의 조부모(외조부모)에게 대리질’(?)을 시킨다. <대리>라는 이 컨셉이 우리 사회의 특징임을 보여준다.

 

  요즘 어느 시대 보다도 먹방, 먹거리가 인기소재로 텔레비전을 장식하고 있다. 일평생 동안 어쩌면 먹어보지도 못할 음식과 가보지도 못할 여행지와 풍경을 브라운과 액정화면을 통해 우리는 구경하면서 대리만족을 느낀다. 그 대리만족이 과연 우리의 보상심리를 해소시켜 주는가? 오히려 더 헛헛하게 만들어주는 것은 아닌지. 물론 그게 자본주의의 생리이긴 하지만 말이다. 그는 이런 표현을 쓴다.

 

대리사회의 개인은 죄인이 된다

 

 

 

 

8

대리사회에서 나도, 너도, 우리도 대리인간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우리는 모두가 한 사람의 대리운전 기사다. 자신이 그 차의 주인인 것처럼 도로를 질주한다. 하지만 조수석에는 이미 누군가 자리를 잡고 앉아 있다. 시동을 걸기 이전부터 거기에는 사람이 있었지만, 그것을 인식하기란 쉽지 않다. 그들의 욕망은 내비게이션을 통해 끊임없이 전달되고 개인의 의지는 통제되고 검열된다. 차를 멈추고 운전석에 잠시 내려, 그렇게 한발 물러서서 바라보면 어느 균열의 지점이 보일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액셀을 더 강하게 밟는 데만 힘을 쏟는다. 단속 카메라가 보이면 브레이크를 발고, 경로를 이탈했다는 경고음에 다시 도로로 올라오면서도, 자신이 주체라는 환상에 빠져 계속 운전대를 잡는다. 그렇게 대리사회의 욕망을 대리하는 대리인간이 된다.

 

대리사회의 괴물은 대리인간에게 물러서지 않는 주체가 되기를 강요한다. 주인 의식을 가지라고 끊임없이 주문하는 가운데, 정작 한 발 물러서서 자신을 주체로 재정비할 수 있는 시간을 봉쇄한다. 결국 개인은 주체로서 물러서는 법을 잊는다. 내가 그랬듯 밀려나고서야 자신이 어느 공간의 대리로서 살아왔음을 비로소 알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때는 너무 늦다. 밀려난 개인은 잉여나 패배자로 규정되고, 그 자리에는 새로운 대리인간이 들어선다. 이러한 이데올로기, 말하자면 우리 사회를 포위한 대리올리기의 서사에서 그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다.

 

그 누구도 가르쳐준 바 없지만, 결국 우리는 한 걸음 뒤로 물러서야 한다. 밀려나기는 쉽지만 스스로 물러서기는 어렵다. 그것은 공간의 주체만이 할 수 있는 행위이고 절대로 패배가 아니다. 그러고 나면 시스템의 균열이 보다 선명하게 보인다. 그 균열의 확장을 통해, 그동안 자신의 욕망을 대리시켜 온 대리사회의 괴물과 마주할 수 있다. 그때부터는 <사유하는 주체>가 된다. 여전히 행동과 언어는 통제될지라도, 정의로움을 판단하고 타인을 주체로서 일으키는 힘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무엇보다 자신에게 강요되는 천박한 욕망을 거부할 용기를 얻는다.

우리 모두는 경계에 있다. 다만, 한 걸음만 물러설 용기를 가지면 된다. 대리인간으로 밀려날 것인지, 스스로 물러서고 다시 나아오는 주체가 될 것인지, 우리는 선택해야 한다.’(251-252p)

 

 

 

 

9

그는 대학의 시간 강사의샌님에서 대리기사의거리의 아재로 변신하였다. 그는 이제 대리사회의 시스템 가운데 우리가 살지만 <사유하는 주체>로 살기를 부탁하는 듯 하다.

 

  

10

 김민섭 작가는 이 글을 거리에서 썼다고 했다.

거리에서 태어난 글이라 더 생동감이 넘치는 듯 하다.

대리운전사의 경험담을 털어놓다가 후반부에 사회학적인 통찰을 담아내는 저자의 필력이 감칠맛 난다.

이 책도 읽고 싶다.

이 사회는 거대한 타인의 운전석이다. 은밀하게 자리를 잡고 앉은 ‘대리사회의 괴물‘은 그 누구도 온전한 자기 자신으로서 행동하고, 발화하고, 사유하지 못하게 한다. 모두를 자신의 욕망을 대리 수행하는 ‘대리인간‘으로 만들어낸다. 그러면서 동시에 그들에게 주체라는 환상을 덧입힌다. 자신의 차에서 자신의 의지에 따라 운전하고 있다고 믿게 만드는 것이다(프롤로그 중에서)- P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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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19-03-23 18: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대리사회, 대리사회, 맨날 읽어봐야지 읽어봐야지 해놓고 안 읽는 대리사회야......아아.....
김민섭 작가님 좋아합니다. 저보다 겨우 몇살 형인데 인간의 격이 다르다는 느낌....-_ㅜ

카알벨루치 2019-03-23 19:46   좋아요 0 | URL
김민섭 작가, 묘한 매력이 있네요~ 격이 다르긴 뭐가 격이 다릅니까 쇼군은 쇼군만의 매력과 카리스마가 넘치는뎃! ^^

단발머리 2019-03-23 19: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 읽었을 때가 기억나네요. 맥도날드알바, 택배알바 하면서 저자의 충격도 기억나구요.
저같으면 강태공의 아내에게 감정이입되어서 강태공에게 한바탕하고 싶네요.
김민섭 작가 책, 읽고 싶어요~로 보내야겠어요^^

카알벨루치 2019-03-23 19:52   좋아요 0 | URL
막 달리는 야생마같은 느낌, 거기서 뿜어져 나오는 통찰이 참 대단하다 싶고요

그런데 저자가 대리운전을 하면서 차주인의 눈치를 보는 그 자리를 생각하니 마음 한구석이 씁쓸하고. 그런데 또 한편으로 우리 사회가 서로 서로의 눈치를 보고 배려하는 분위기가 되는게 갑-을 관계의 청산구도로 가는 것인데...그건 너무 형이상학적이고.

무엇보다도 모든 이에게 친절하고 배려할 줄 아는 마음 씀씀이가 필요한 듯 싶네요! ~

책과커피 2019-03-25 12: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김민섭작가의 글에 흥미를 느끼지 못했는데 이번 기회에 꼭!! 읽어 봐야겠어요. 좋을 리뷰 감사요~^^

희선 2019-04-02 01: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작가도 라디오 방송에 나왔을 때 들었어요 그때는 마지막에 말씀하신 《훈의 시대》 이야기 많이 했어요 대리 운전은 지금도 한다고 하더군요 훈이라는 거 별로 생각해 보지 않았는데 안 좋은 것도 많다는 걸 알았습니다


희선

카알벨루치 2019-04-02 08:31   좋아요 0 | URL
라디오를 많이 들으시나봐요 전 늘 음악만 듣는데 ~댓글 감사합니다 저도 <훈의 시대>읽고싶네요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0 ‘광야를 아는가?

그리스도인이라면 광야라는 단어는 너무나 익숙한 단어이지만, 신앙이 없는 비그리스도인이라면 광야라는 단어는 익숙치 않을 것이다. T.S.엘리엇의 유명한 시 <황무지>의 그 황무지와 같은 현실이 광야라고 볼 수 있겠다(이 계기를 통해 나는 또 대학 시절에 공부했던 영미시 책을 들추어보는 계기가 되었다. 말 그대로 들추어보기만 했다는.). 이 책을 읽은 독자들의 콤멘트가 앞에 적혀 있는데, 미국의 플로리다에 북상했던 허리케인으로 인해 삶의 터전에 풍지박산이 났을 때, 이 책을 만나 너무 감사했다는 내용도 있다. 광야라는 것은 인생을 살면서 누구나가 만나게 될 딜레마이고, 미궁이고, 늪과도 같은 고통의 터널, 절망의 덩어리라고 볼 수 있겠다.

 

 

 

 

 

1

하지만, 단말마적인 위로가 되는 것은 누구나가 다 광야를 만나게 된다는 것이다. 사람이라면, 누구나가 다 광야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쨍하고 해 뜰날이 있는 반면에, 고개를 떨구고 비통해하면서 맨홀 뚜껑 아래로 쳐박히는 날들이 또 점철되는 것이 인생인 것이다. 하지만, 그게 인생이기에.

 

용기를 내라. 당신은 혼자가 아니다.’

-작자 존 비비어의 아내, 리사 비비어의 말이다.

 

 

신앙을 가진 그리스도인이라면, 하나님의 존재를 떠올릴 수 있겠다. 광야에 대한 존 비비어의 이야기를 한 번 들추어볼까 한다. 이 책은 광야의 중요한 측면, 무엇이 광야이고, 무엇이 광야가 아닌지, 그리고 광야의 목적과 유익에 대해 다루고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감동 그 자체이다!

 

 

 

 

 

2

구약성경에 등장한 욥은 자신이 처한 딜레마에 대해 이렇게 고백했다.

그런데 내가 앞으로 가도 그가 아니 계시고 뒤로 가도 보이지 아니하며 그가 왼쪽에서 일하시나 내가 만날 수 없고 그가 오른쪽으로 돌이키시나 뵈올 수 없구나’-욥기 238-9

 

백만장자, 억만장자라고 볼 수 있는 욥이 하루 아침에 자신의 사랑하는 열명의 자녀들이 죽고, 가문이 풍지박산이 나고 자신의 몸조차 거덜나게 된 상황에서 그의 아내는 하나님을 저주하고 죽으라고 불평한다. 흔히 우리를 압도하는 아픔과 상처와 고통에 우리는 극단적인 선택을 생각해보기도 한다. 그러나, 욥은 버틴다. 불가사의한 믿음으로 버틴다.

 

 

 

 

 

3

욥에게 불어닥친 모든 환난은 신의 不在나 하나님의 실수가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저자는 <광야는 거부가 아닌 준비된 장소>라고 말한다. 광야는 형벌과 싦판의 결과가 아니다. 광야는 말 그대로 준비된 장소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깨서 거기로 부르셨다. 사람들은 광야에 머무르면 일단 탈출하고 싶어한다. 절망과 고통의 현장에서 벗어나고 싶어한다. 하지만, ‘광야는 탈출이 아니라 하나님께선 거기서 거주하고 머물기를 원하신다’. 그리고 거기서 찾아야 할 것은 더 나은 미래, 파랑새의 꿈, 성공의 신화, 신데렐라의 환상, 슈퍼스타의 드림dream이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이다. 욥은 그걸 찾았다.

 

23:10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

 

메마름과 황폐함을 평온하게 견뎌내는 것은 곧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사랑을 증거하는 것이다. 반면, 하나님이 달콤한 임재로 우리를 방문해 주시는 것은 곧 우리를 향한 그분의 사랑을 증거하는 것이다’-잔느 귀용

 

 

 

 

 

4

광야는 인생의 선배, 믿음의 선배들이 다 거쳤던 곳이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겪어야 할 터널이다. 성경에서 욥, 모세, 요셉, 다윗 왕, 세례요한, 사도바울, 그리고 밧모섬의 사도 요한...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이들의 광야를 거쳐 갔다. 이 말은 광야가 우연의 산물이 아니라 준비된 장소라는 것을 다시금 확인시켜주는 것이다. 그리고

 

광야의 가장 멋진 점은 하나님이 자신을 새롭게 나타내시는 곳이라는 점이다’(43p).

 

광야는 지치고 헐벗고 굶주리고 열악하고 불편하고 진절머리 나는 곳이지만, 광야가 황홀한 이유는 하나님에 대한 새로운 패러다임과 스펙트럼을 배우는 곳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광야에 떨어졌다고 해서 무신론자들이 이야기하는 것처럼 신이 죽었다거나, 하나님이 외출중이거나 하나님이 주무시거나 하지 않는 것이다.

 

내가 결코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13:5)

 

나는 이 구절을 굉장히 좋아하는데, 이 구절이 있는 텍스트의 맥락에 돈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는 점이 흥미롭다. 13:5의 전반부 구절을 보면

 

돈을 사랑하지 말고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알라 그가 친히 말씀하시기를이 나오고 내가 결코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고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고 나온다는 점이다. 나는 이 부분을 첨 대했을 때 충격을 받았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이 떨어지면, 돈이 소진되거나 은행잔고가 부족하면 깊은 나락으로 떨어지는 느낌이다. 그리고 현실은 변하지 않는데, 감정적으로 다운 다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성경은 내가 결코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너희를 떠나지도 아니하리라고 약속하신다. 그게 신앙의 강점이 아닐까 싶다. 우리는 광야에 대해 너무나 많은 이야기와 설교를 들어왔지만, 정작 ‘Mr.광야를 만나면 당혹스러워하고 어쩔 줄 몰라한다.

 

     

 

 

5

 

내가 하늘에 올라갈지라도 거기 계시며 스올에 내 자리를 펼지라도 거기 계시나이다”(시편 139:8)

 

대학 시절, 한때 신앙의 위기가 찾아왔었다. 써클 선배 중에 학교 수업도 빠지고 여행을 다니는 선배와 만났다. 신앙의 방랑을 하던 중이었다. 그는 나는 누구인가?’란 질문을 철학적인 질문을 하면서 방황하였던 것이다. 나도 부러웠다. 여행다니면서 존재론적, 실존주의적 질문들을 하는 것이 너무나 멋스러웠다. 신앙인의 가문에서 태어난 사람은 언제나 한 번씩 신앙의 탈선과 반기독교, 비기독교적 노선과 동선을 훔쳐본다. 거기에 뭔가 대단한 게 있는 듯 싶어서 말이다. 모든 것은 자기 선택이다. 그때 내가 참 마음에 다가왔던 CCM 찬양이 있는데, 그것은 시편 119편을 가사로 만든 곡이다.

 

내가 스올에 내 자리를 펼지라도 거기 계시나이다’...스올은 지옥, 하데스와 같은 곳이다. 내가 지옥의 저편, 죽음의 골짜기를 지난다 해도, 신의 부재와 하나님의 부재를 느끼는 그 절망의 구렁텅이에서조차도 하나님은 살아계시다는 것! 그래서 나는 노래를 좋아하고 찬양을 좋아한다. 광야에서 해야 할 일은? ‘지금 뭔가 할 필요가 없다단지, 여호와를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라는 안다면 노래가 나온다.

 

 

   

  *그런데, 종종 의문이 드는 것은 왜 나는 '성경마니아'라 되지 않는걸까 이다.  

내가 의도적으로 이렇게 성경을 올리는 이유가 있는데

...왜 빅데이터는 나를 <성경마니아>라 해주지 않는걸까! ㅋㅋ 별 쓸데없는 이야기 해본다. 

 

 

6

문득 예수님을 생각해보았다. 예수님의 생애 자체가 바로 광야, 그 자체가 아니었을까? ‘말씀이 육신이 되는당시의 영지주의자들은 영적인 것에 육적인 것이 섟이는 이 참담한 오류를 인정할 수가 없었지만, 성경은 그것을 예수님을 통해 보여줬다. 얼마나 불편하셨을까! 얼마나 답답하셨을까!

 

 

 

 

7

우리는 자주 기복(祈福)신앙의 노예가 되곤 한다.

 

하나님이 <주시거나 해 주실 수 있는> 것 때문에 그분을 찾는 것과, <그분 자체를 찾는 것>은 전혀 차원이 다르다’(60p)

 

우리는 하나님의 공급이 아닌 하나님 마음을 구해야 한다. 그것을 배우는 시간과 장소가 바로 광야이다. 한국교회가 하나님의 마음과 인격을 구하지 않고, 하나님의 공급만을 바라는 천박한 기복주의와 샤머니즘적인 종교로 전락하여서 사달이 난 것이다. 광야는 세속적인 것으로부터 정화되고 준비되어가는 곳이다.

 

 

8

내적 삶이 바로 서면 얼마나 많은 어려움이 저절로 해결되는지 모른다.

-A.W.토저(Tozer)

 

 

 

 

 

9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더 깊은 친밀감과 따뜻함의 관계, 교제의 관계를 원하신다. 하지만 사람들은 하나님을 이용하려고만 한다. 요즈음 저마다 SNS 왕국과 제국을 꿈꾼다. 허세와 인기를 추구하는 시대가 되었다. 존 비비어는 부부의 예를 들면서, 남편이 아내를 아이를 낳아주는 사람으로만 <이용>하는 것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를 말하면서 하나님과 그리스도인과의 관계에서 종종 이런 잘못된 복음, 비루한 제스처가 등장한다는 것을 꼬집는다.

 

네가 내 계명을 지키면 네가 나를 사랑한다는 사실이 증명된다는 뜻이 아니다. 나는 네가 나를 사랑하는지 아닌지 이미 알고 있다. 내 말의 뜻은 나와 사랑에 빠지면 내 계명을 지킬 수 있는 사람이 된다는 것이다.”(76p)

 

 

 

 

10

세례요한은 예수님의 사역을 준비시키는 역할을 했다. 그는 6개월을 사역하기 위해 30년을 준비하고 죽었다(순교했다). 그는 등 따시고 배부른 삶과는 거리가 멀었다. 광야, 그것도 빈 들에서 사역했고, 금식과 고행과 낙타털옷과 벌꿀을 먹으면서 수도자처럼 살다가 참 세상 재미없이 살다가 죽은 인생이다. 그는 6개월 반짝 사역하고 30년 준비하고 죽었다.

, 정말 얼마나 허망한가!

그런데, 문득 우리의 인생의 길이에서 사용되는 아라비아 숫자도 역시 숫자놀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 잖아요 라고 하면서 아이들의 성적의 숫자에 관여치 않겠다고 자주 다짐한다. 물론 잘 안 된다. SNS의 조회수, 좋아요 수, 유튜브의 시청시간, 할인율, 연봉, 사람모인 , 수수수...모든 것이 숫자놀음이다.

 

 

 

 

11

사람사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오래 살면 좋지만, 그 인생의 길이도 인간적인 패러다임이라는 생각. 하나님께서도 만약 그렇게 생각했다면, ‘세상에서 제일 큰 자라고 찬사를 보냈던 세례요한의 수명도 좀 길게 늘여 놓았어야 했다. 그런데, 그렇지 않았다. 단명했다.

    

 

  

 

 

 

 

 

 

 

 

최근에 읽은 그 바보청년 의사의 주인공, 안수현은 33년을 짧게 살다가 죽었다. 그가 죽은 이유는 잔디밭에 앉아서 봉변을 당한 것이다. 유행성 출혈이란다. 의사로서 수많은 환자들과 아픔을 당한 자들에게 책과 음반과 수고와 따뜻한 마음을 선물했던 그가 유행성 출혈로 들것에 실려 올 때 사람들이 얼마나 충격을 받았을까! 더 충격인 것은 그가 살아나지 못하고 죽었다는 것이다. 인간적으로 그의 생애는 너무 허망한 인생이다.

 

너무 많은 사람들에게 최고의 작품을 인정받기 위해 안달한다. 하지만 심원한 감동은 완벽한 사람보다는 오히려 연약함 가운데 삶의 아름다움을 잔잔히 보여주는 이들에게서 넉넉히 흘러나오지 않는가. 비움 가운데 더 큰 채움의 은혜가 임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종종 잊고 산다.

 

하나님이 우리를 어느 한 명 똑같은 사람이 없는 독특한 인격으로 창조하신 데는 각자에게 맡겨진 삶의 노래를 온몸으로 연주해보라는 뜻이 있다. 그것은 서로 누가 더 나은가를 가리는 경쟁의 문제가 아니다. 각 사람만이 고유하게 낼 수 있는 그 아름다운 소리, 그 숨겨진 멜로디를 누가 들려줄 것인가의 문제이다. 삶의 거창하지 않아도, 섬기는 일이 주목받지 않아도 된다. 너무 웅장한 곡은 쉬이 피곤해지기도 하는 법이다. 찬양 곡의 가사 한 구절이 이런 생각을 잘 요약해준다.’

 

저 높이 솟은 산이 되기 보다 여기 오름직한 동산이 되길...”

 

안수현의 에세이 내용이었다. 사람들은 다들 자기만의 영역에서 슈퍼스타를 꿈꾼다. 대박이 나면 좋겠다. 하지만, 인격과 바탕이 되지 않는 슈퍼스타는 결국 허망하게 허물어져 내린다. 근래의 연예계의 소식들은 그러한 세태를 반영해준다. 안수현은 인생 자체가 광야였고 결말도 광야였지만, 사람의 시각이 아닌 하나님의 시각에서 과연 어떤 평가와 결론을 내리실까!

 

 

 <꿈이 있는 자유 3집-아침묵상>이다.

 '소원'이 수록되어 있고, 내가 한때 애청했던 음반이다.

특별히 짧은 곡인 '아침묵상'이란 곡도 참 좋다.

 

12

세례요한은 30년을 준비하고 예수님보다 6개월 먼저 사역을 시작해 예수님과 바통 터치를 한 후 순교했다. 죽었다. 세례요한은 과연 낭비하는 인생이었는가! 세상의 시각에서 그렇게 생각한다. 세례 요한이나, 안수현 이나. 하지만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선 시간 낭비를 하실 분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광야라고 해서, 뺑뺑이 치는 광야라고 해서 시간 낭비가 아닌 것을 기억해야 한다.

 

존 비비어의 나이는 이제 60대이다. 나는 처음에 그의 프로필을 읽으면서 ‘79년에 출생했으면 나보다 훨씬 젊네, 그런데 이렇게 유명한 베스트셀러작가가 되었네! 인생은 참 불공평해! 나보다 나이도 어린 사람이...’라고 내심 부러워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79년에 대학생이었다는! 허허허....참 나도 무심하게 읽는다 싶다. 어쩔! 작가가 인생의 여정들을 뒤돌아보면서 시간낭비라고 생각했던 시간들이 결국 그 분의 마스터플랜에서 맞춰 일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경험을 실어 말해주는데, 감동적이다.

 

 

 

13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의 권위, ‘자신의 파워와 에너지와 힘과 능력과 감각으로승부를 내고자 한다. 그게 세속의 원리이고 법칙이다. 그런데, 하나님의 질서는 하나님의 권위로일하기를 원하신다는 것, 그것을 훈련시키는 곳이 바로 <광야>라는 사실이다. 모세가 40세가 되었을 때, 당시 최고의 잘 나가는 이집트 왕족의 교육을 받은 엘리트였지만, 하나님께서는 40년을 <광야에서>에서 굽게’(to dealy) 하셨다. 광야가 하는 일이 바로 굽는 일이다. 새로운 모세가 탄생한 것이다. 하나님은, 성경은 세상의 숫자의 스펙트럼에 갇히지 않는다. 광야의 본질은 준비이다. 광야는 새 포도주로의 변화를 위해 준비시키는 곳이다.

 

 

 

 

14

이사야는 이렇게 약속했다.

 

반드시 내가 광야에 길을 사막에 강을 내리니”(43:19)

 

도시나 광장이 아니라 광야이고 사막이다. 거기에 길과 강을 내신다 했다. 광야의 시온의 대로가 놓인다. 그 대로는 그냥 놓여지는 것이 아니라 고난의 풀무불을 통해서 놓여져야 한다. 왜냐하면 그 길은 거룩한 길로 놓여지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광야에서는 생각지도 못한 재난과 아픔과 더 깊게는 자신의 쓴 뿌리나 파괴적인 성향과 옛 자아를 만나게 된다. 거기서 우리는 내면의 영적 쓰레기들을 마주치게 된다. 이를테면, 분노 같은 것이다. 내가 이런 사람이 아닌데, 내가 화를 내고, 짜증을 내고, 분노하고, 스트레스를 받는 것을 보면서 내가 스스로 충격을 받는다. 거기서 우린 감정의 광야, 분노의 광야를 대면하게 된다. 저자는 그것을 또한 영적 이스마엘에 비유한다.

 

 

 

 

15

헬쓰 클럽에서 바벨을 들어본 사람들은 근육이 어떻게 팽창하는지 알 것이다. 저자는 헬쓰 클럽에서 다니면서 바벨을 65kg도 겨우 들었던 그가 100, 130, 150kg까지 들게 되었던 경험을 이야기하면서 영적 근육을 키우는 곳이 바로 영적 헬쓰클럽, 바로 광야라고 아주 흥미롭게 전한다. 근육의 힘을 키우면 물건 드는 것, 힘을 쓰는 것은 쉽다. 근육량이 그만큼 준비되었기 때문이다. 광야의 시험은 우리의 능력을 극대화시키는 것인데, 우리는 늘 뺑뺑이만 돌고 있다....

 

 

 

 

16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8:10)”

 

광야의 본질은 바로 이것을 제대로 재발견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기쁨은 우리를 강화시키는 영적인 힘이다(190p). 저자는 광야에서 생수의 강되신 성령을 추구해야 하는데, 그 생수는 여러 가지의 강들(복수)이며, 이것은 우리의 마음 깊은 곳에서 길러내야(to draw) 한다고 강조한다. 답답함과 갑갑함의 벽과 같은 현실 앞에서도 계속해서 여호와를 인하여 기뻐하는 것이 힘이란 사실을 계속 주지하며 영적 싸움의 기도를 계속하라고 촉구한다. 새포도주의 변화된 생수는 맛보기 위해 멈추지 말아야 한다는 것.

 

하나님은 언제나 시간을 최적으로 사용하시는 분이다(218p).’

 

 

 

 

17

예정(predestination)이란 말은 접두사 pre는 단순히 이전혹은 시작 전을 뜻하고, 어근 destination목적지결승선을 뜻한다. 이제 둘을 합치면 출발 전에 결승선을 정하는 것이란 의미가 된다. 그렇다면 에베소서 111절은 하나님이 인류를 창조하기 전에 인류를 향한 목적 혹은 목적지를 정하셨다는 뜻이다(230p).’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예정하신 것은 무엇인가? ‘출발 전에 결승선을 정한 그 무엇이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친밀함의 교제이다. 이 관계가 바탕이 되면 모든 것이 가능해진다. 그래서 '용기의 반대말은 두려움이 아니라, 낙심'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18

광야는 기다림의 시간이다. 광야는 여호와를 기뻐하며 기다리는 것이다.

광야의 본질은 <준비>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받은 통찰과 감동이 너무나 크다.

나의 광야 시간에 받을 은혜를 기대한다.

존 비비어 저자에게 감사의 메시지를 전하고 싶다. 읽으면서 눈시울이 자주 붉어졌다. 그리스도인들에게 강력 추천한다.

나의 광야 여행이 끝났기 때문에 이 책을 쓴 것은 아니다. 여전히 나는 아직 목적지에 ‘도착하지‘ 못했고 하나님이 나를 위해 예비하신 것을 모두 얻지도 못했다. 하지만 당신이 이 책을 통해 하나님이 예비하신 운명을 향해 꿋꿋이 나아갈 힘과 용기를 얻기를 간절히 원한다.- P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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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3-21 18: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3-21 18: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syo 2019-03-21 18: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카알님은 이런 글 쓰실 때 제일 폼이 납니다.....

카알벨루치 2019-03-21 18:46   좋아요 0 | URL
아 그런가요? 이런 댓글 과분한데 너무 좋네요 엔돌픈 500푸로 상승합니다 역쉬 님이 여기 계시니 내가 살아있는듯 ㅎㅎㅎㅎ쇼군 최고!!!

cyrus 2019-03-22 12: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광야’하면 이육사 시인의 시가 생각나네요. 학창시절에 그 시를 배운 적이 있는데, 제 기억으로는 국어 선생님이 시의 ‘광야’가 기독교적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고 언급했던 것 같습니다. ^^

카알벨루치 2019-03-22 16:07   좋아요 0 | URL
우리나라는 사막이나 광야가 없기에 광야란 단어가 어색하게 보이는데 기독교인들에겐 광야는 무척이나 친숙한 단어이죠 윤동주가 기독인이었다는건 확실한데 이육사가 그러했나 모르겠네요~

책과커피 2019-03-22 16: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열심히 작성했더니 오류가 뜨고는 사라졌어요...짜증!!!!! 오늘 그렇지 않아도 교장 때문에 광야같은 마음이었는데 카알벨루치님의 좋은 글에 위로받고 퇴근합니다. 금요철야가면 엄청 울것 같네요..ㅜㅜ 카알벨루치님 늘 좋은글 고마워요~ 행복한 주말되세요!!^^

카알벨루치 2019-03-22 16:57   좋아요 0 | URL
제 글이 위로가 되었다니 너무 감사하네요 이런 맛에 제가 글을 씁니다 주말 즐겁게 보내시길^^
 

대학 때였다
감수성이 제대로 영글기도 전이었다 난 한해 일찍 학교를 들어가기도 했지만 뭐든지 당시에는 서툴었다는 말이 다 어려운 아이였다 초등학교 때부터는 그림을 그렸고 중학때부터는 일기를 썼다 그래도 외부의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표현하는 것을 힘들어했다 그런데 교회에서는 사람들앞에서 밴드를 인도하고 멘트를 하는 것은 자연스럽게 업그레이드되어졌다 하지만 좋아하는 사람에게 표현을 하고 감정을 노출하는 것에 미숙했다





대학1년때 썸을 타는 후배 여자에게 있었다 하지만 당시 내가 몸담고 있는 써클은 연애에 대해, 그것도 신입생이 연애를 하는 것에 대해 나름대로 금기(?)시하는 묵언이 존재했었다 연애같은 건 알아서 하는 일이지 누가 누구에게 지시하고 가르치고 그런 대목이 아니라고 다들 생각하지만 당시의 우리 학교의 써클은 그런 ‘절제(?)’를 강조했던 것 같다 그래도 남모르게 연애하는 애들도 있었지만 작은 사회인 써클내에서 그런 썸과 연애 그리고 더 중요한 깨짐(이별)이 주는 후유증은 써클의 분위기를 힘들게 했기 때문이다




써클의 인원이 50-60정도 된 것으로 기억하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기우라고 생각하기도 하지만 당시 이성교제의 강의의 한 문구가 떠오른다


“Puppy love leads to dog’s life”


그땐 그랬다 문학이나 소설에선 사랑과 연애감정은 끊임없이 혹하는 대로 훅하는 문화적인 세뇌로 인해 우리는 끌리는 대로 움직이는 시대로 자연스럽게 넘어왔고 그게 포스트모던의 마력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룰이나 법칙이나 그런게 뭐가 필요한가 그냥 원하는대로, 꼴리는대로 살면 되는거지 그런 시대의 분위기이다 그런데 우리 써클은 그런 것을 경계했고 절제의 미덕을 후원했고 독려했다





당시 내가 키큰(거의 내 키를 따라 올라했다! 참고로 내 키는 176이다)작곡과 후배놈과 썸을 타는 중에 같은 클라스의 내 친구에게 연애에 대한 이야길 잠깐 했을때 이 친구가 ‘여자를 만나는 것은 수많은 감정노동(낭비)이 필요하다’ 는 조언을 날렸다 나의 감정에 침을 뱉어주는 멋진(?)친구!!!! 그리고서 연애를 대해 부정적 감정을 내비쳤다 그 친구도 그랬지만 당시 나의 조장(그룹을 지어 일주일마다 study를 했다, 공산주의 뭐 이런거 아님)은 나의 썸타는 연애에 대해 회의적이었다 젠장!!!




한달천하?

연애세포를 억지로 죽였고 나는 좋아하는 작곡가애와 부딪힐 때마다 얼굴표정을 어떻게 해야할지 고심해야 했다...아! 근데 이거 약간 소설 느낌 나는데...ㅎㅎ





나는 내게 “연애를 하는 것은 수많은 낭비가 수반된다” 는 감정낭비, 시간낭비, 돈낭비...등등. 나는 헤르만 헷세의 <지와 사랑>에 나오는 골드문트였고, 그 친구는 꼬옥 나르치스 같았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 친구가 이 책을 추천해준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제대로 기억나는 건 그 친구는 내게 <서양철학사>를 공부해야 학문의 기초를 제대로 닦을 수 있다면서 내게 서양철학사를 권했다





나는 그 나르치스 덕에 연애는 거절하고(젠장~)수업마치고 나선 도서관에 직행했다 거기서 정말 머리 터질정도로 철학사를 보는데 그게 뭔말인지도 모르고 우걱우걱 씹어 삼켰다 정말 그땐 철학의 철이 아니라 “ㅊ”도 모를 정도였다 그 ‘울며 겨자먹기’식 철학사 독서 덕에 내 머리가 조금 나아진지도 모르겠다(갑작스런 자기합리화는 뭔!!!)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 친구가 대학2년 마치고 군대갔다가 다시 학교로 돌아오지 않았다 난 4학년 1학기 마치고 군댈 갔는데도 학교로 돌아왔는데 말이다...그 나르치스는 지금 대한민국 어느 도시의 어디매선가 의사 노릇을 하고 있겠지! ....아뜩하다!



그때 내가 그 애와 연애를 했더라면 어땠을까! ㅎㅎㅎ



“나르치스와 골드문트”, 20대를 훑고 갔던 헤르만 헷세의 이 책을 생각하면 그 친구가 생각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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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북소녀 2019-03-04 20: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 이거 옛날 버전 제목이 <지와 사랑>이라는 걸 알고 충격 받았었더랬죠.ㅋ

카알벨루치 2019-03-04 21:23   좋아요 0 | URL
왜 충격을 받으셨어요? 궁금궁금~

oren 2019-03-04 21: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헤세의 『나르치스와 골드문트』에 정말 각별한 사연이 담겨 있었군요. 아주 흥미롭게 잘 읽었습니다.

저도 이 책에 얽힌 남다른(?) 사연이 쬐끔은 있어서 댓글로 끄적여 봅니다. 저는 이 책을 직장생활 초기에 읽었답니다. 입사 초기에는 직장 생활 익히느라 허구헌 날 술만 마시고 다녔던 기억밖에 없는데, 제가 어떻게 이런 책을 다 읽었을까 싶은 생각도 들긴 합니다. 그런데 마침 그 때는 ‘사무실마다 직접 돌아다니면서 책을 빌려주는 책 대여 아르바이트‘가 있었더랬습니다. 그때가 아마 1989년인가 그랬으니까 지금으로부터 딱 30년 전이구먼요. 저는 그때 여의도 한복판에 자리잡은 본사 건물에서도 꽤나 높은 층에서 근무하는 ‘나름 촉망받는 신입생‘이었던 듯해요.(기획부에서 ‘예산 담당 사원‘을 맡았는데, 온갖 수많은 예산 항목들을 연간 단위로 꼼꼼이 편성하고 분기 단위로 각각의 필요한 부서에 일일이 배정하고 하는 몹시 까다로운 일이었지요.)

하루 하루 아주 열심히 일하던 어느 날이었죠. 어떤 묘령의 매력적인 아가씨가 제 책상 옆으로 다가오더니 책가방을 불쑥 열면서 ‘마음에 드는 책이 있으면 빌려 보시라‘고 권유하더군요. 권당 대출료는 아마도 1,000원쯤 했던 듯해요. 그렇게 해서 한 권, 두 권 빌려보다가, 어느날엔가는 『나르치스와 골드문트』까지도 빌려 읽게 되었더랬지요. 그런 인연 때문에 어느 날 저녁엔가는 제게 책을 빌려주던 그 아가씨와 찐하게 술도 마셨던 기억이 나요. 아무튼 둘이서 인사불성이 되도록 마셨는데, 그 이후로는 어떻게 된 건지 자세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그런데, 하필 그 무렵에 <사내 독후감 대회>가 열렸답니다. 그래서 저는 그 책을 읽은 느낌을 200자 원고지에 몇십 장이나 뺴곡히 썼었더랬지요. 한자와 영어까지 섞어 넣어서 말이지요. 그랬더니 (그때 제가 다니던 회사의 직원수만 하더라도 물경 2,000명은 족히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덜컥 신입생인 저한테 ‘최우수상‘을 안겨 주지 뭐에요.

그 덕분에 저는 월례조회 시간에 사장님한테서 직접 표창장도 받고 부상으로 은수저 세트까지 받아서 부모님께 갖다 드릴 수 있었지요. 그때만 해도 저는 총각이었으니까요. 그런데 상을 받고 얼마 안 있으니 회사 사보에 제 글이 떡 실려 나오는게 아니겠어요. 그런데, 참으로 웃기는 게 ‘독후감‘이 얼마나 길었으면, 그걸 무려 월1회씩 나오는 사보에 장장 두 번에 걸쳐서 ‘연재‘가 되었다는 게 아니겠습니까. 어떻게 독후감 하나가 ‘연재 형식‘으로 실릴 수 있는지, 지금 생각해도 기가 막힐 노릇이었지요. 암튼 카알벨루치 님 덕분에 이 책에 얽힌 저의 추억담까지 들려드릴 수 있어서 너무 기쁘네요.^^

http://blog.aladin.co.kr/oren/5403834


카알벨루치 2019-03-04 21:22   좋아요 1 | URL
오렌님 참 대단하십니다 그때부터 책에 대한 깊이를 긴 글로 뿜어내셨네요 이 글도 쓸려고 쓴 게 아니고 어느날 제가 이 책의 2번째 마니아가 되었다길래 너무 부끄럽기도 하고 페이퍼엔 책에대한이야기도 없고(지금도 책에 대한 내용은 없지만 ㅠㅠ)그래서 생각나는대로 끄적인 사연입니다 책이 삶과 연결되는 추억이 좋아서 올린 글입니다 근데 그 때 받은 은수저는 잘 있습니까?ㅎㅎ

2019-03-04 22: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3-04 22: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9-03-05 12: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연애를 회의적으로 보는 사람들이 의외로 속으로 연애를 갈망합니다. 츤데레(겉으로는 사람을 까칠하게 대하지만, 속마음은 유순한 사람)의 유형에 가깝죠... ㅎㅎㅎㅎ

카알벨루치 2019-03-05 16:30   좋아요 0 | URL
괴테는 평생 연애를 했다고 하더군요 그당시 연애강의는 여자는 3학년정도, 남자는 군대갔다와서 하라는 제언을 했었죠 연애가 나쁜게 아니라 성숙도가 더해지면 그만큼 시행착오를 덜한다는 측면에서 그렇게 강의가 진행되었죠 모든게 다 장단점이 있습니다 ㅎ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페이퍼는 <초예측>의 6-8장의 내용을 다룬다.

 

  책을 읽으면서 느낀 것은 1-5장까지 줄기차게 '이민에 대한 중요성'을 전인류적으로 강조했는데, 정작 미국의 현실은 그 이민으로 인해, 다양성으로 인해 야기되는 갈등을 대면했다는 대목에서 모든 정책이 무조건 옳고, 무조건 정답이다라고는 볼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앤 윌리암스1)의 변()

 

   2016년 미국 대통령선거에서 대다수 언론과 유권자들이 힐러리 클린턴의 당선을 확신했다. 하지만 힐러리 클린턴이 아니라 도날드 트럼프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졌는가? 선거일을 불과 11일 앞두고 이메일 스캔들을 이유로 들 수 있지만, 이유는 단순하지 않고 복합적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조앤 윌리암스는 힐러리 클린턴의 패배 요인 중 하나가 바로 계급에 대한 무지때문이었다고 지적한다. ‘특히 트럼프를 강력하게 지지했던 백인 노동자 계급White Working Class, WWC이 큰 의미를 갖는다고 말한다. 이들은 어떤 사람들인가? 이들은 가족을 지키기 위해 그리고 국가의 번영을 위해 열심히 일했으나 아메리칸 드림을 이루지 못해 좌절한 사람들’(167p)이라고 말한다. 이들은 전체 미국인의 53%에 달하는 전형적인 중산층이다. 2016년의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승리의 요인 중 하나는 바로 이 백인 노동자 계급의 분노 때문이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이들은 평균적으로 가구당 연봉이 75000달러(8400만원)을 웃도는 전형적인 미국 중산층이다.

 

 

 

   개인적으로 미국 전 대통령인 버락 오바마가 대통령이 당선되었을 때, 진짜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미국이란 나라에 흑인이 대통령이 되었다는 것은 인종차별의 벽이 무너지고 평등한 나라가 되었다는 것을 상징해주는 듯 했다. 지금 오바마 대통령이 물러나고, 힐러리 클린턴이 아닌 도널드 트럼프(공화당)가 당선이 되었다는 것은 미국 사회의 보이지 않는 균열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것은 바로 노동자 계급과 전문직 사이에 상당히 깊은 골이 패여 있음을 보여준다.

 

그들에게 미국인이란 <나다운 나>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런 부류에 완벽하게 들어맞는 인물이고요. 투박하고 직설적인 그의 화법은 노동자 계급에게 높은 점수를 얻었습니다. 반면에 오바마 전 대통령의 말투는 엘리트 그 자체였지요. 상당히 계산되고 사려 깊은 말투에 논지까지 분명합니다.’(173p)

 

 

 

   오바마나 힐러리 클린턴도 역시 엘리트 출신이다. 우리는 미국의 아메리칸 드림을 익히 들어 알고 있다. 하지만, 이제 아메리칸 드림은 이미 신화가 되어 가고 있는 중이다. 민주당은 중산층의 몰락을 막지 못했다. 민주당의 관심은 오직 성차별, 인종차별, LGBTQ(성 소수자)문제를 해결하는 쪽으로 옮겨갔다. 엘리트 계층은 무엇이든 최첨단을 좋아했고 가족적이고 전통적인 가치를 중시하는 노동자 계급의 문화를 무시했다. 힐러리 클린턴은 이런 미국의 중산층 노동자의 계급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다. 힐러리 자신도 엘리트 출신이니. 저자는 만약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힐러리 클린턴이 아니라 버니 샌더스Bernie Sanders가 후보자로 지명받았다면 어땠을까? 라는 가정에 대해 버니 샌더스의 가난한 노동자 가정 출신으로 인해 경제적인 불안에 대한 접근이 더 현명하지 않았을까 라는 의견도 내놓는다. 힐러리 클린턴의 패배 요인은 40년 동안 태만했던 민주당의 책임이 크다. 또한 트럼프 당선을 유도한 러시아의 여론 개입도 한몫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가장 큰 문제점은 바로 힐러리 클린턴이 계급에 대해 무지했기에 패배했다고 지적한다.

 

 

 

   미국의 대선결과를 분석해보고 진단해보면, 초예측의 첫 번째 페이퍼에서 제러드 다이아몬드를 위시한 모든 석학들이 이민의 중요성을 주장했다고 밝혔다. 그런데, 지금 미국의 현실은 그 이민정책으로 인해 수많은 인종이 섟인 미국의 다양성이 오히려 혼돈을 초래했다는 점이 주요하다. 물론 다이아몬드는 이민이 주는 장단점, 단일성이든 다양성이든 각각 장단점이 있다고는 했다. 하지만, 그가 칭찬하는 미국이란 나라가 지금 산통을 겪고 있는 모양새이다. 과거에는 인종, 피부색, 젠더가 주요한 사안이었다면, 이제는 계급적 중요성이 트럼프 대통령 당선으로 인해 표면으로 드러났다는 점이다.

 

 

 

 

 

넬 페인터2)의 견해

   이런 부분에 대해 7장에서 넬 페인터오바마가 대통령에 당선되지 않았다면 트럼프가 역시 대통령이 되지 못했을 것”(188p) 단언한다. 이제껏 인종 차별은 백인에 의한 차별을 의미했다. 하지만 오바마가 대통령이 된 후로 오히려 백인이 차별받는다는 피해 의식이 생겼고 그 불만과 분노가 2016년도 대선에서 등장한 것이다. 이것은 백인의 불만, 백인의 민주주의, 백인의 힘white power이 대두된 것을 의미한다. 특권층 백인을 White Anglo-Saxon Protestant, WASP라고 하는데, 이 백인이라는 정체성도 역사적으로 굉장한 변화가 있어 왔다. 이 말은 백인 가운데서도 출신에 따라(이를테면, 튜턴족, 앵글로색슨족, 켈트족, 아일랜드계, 스코틀랜드계 등)우월과 열등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런 백인들이 2016-2017년에 우리가 희생자라는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는 말이다.

 

정체성 정치는 젠더, 인종, 민족 등의 정체성 때문에 차별과 억압을 받아온 집단이 스스로의 권리와 이익을 주장하는 것을 말합니다. 2016년까지 정체성 정치에서 정체서의 주체는 여성, 흑인, 소수민족, 장애인, 동성애자 등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백인까지 그 주체가 되었습니다.’(194p)

 

 

   

   백인 우월주의는 소수파이다. 하지만 2016년 미국대선의 결과는 미국사회가 커다란 균열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굉장히 평등을 강조하고 평등할 것만 같은 미국에서 차별의 차별이 발생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 부분은 이민문제와도 연결될 수 있다. 물론 목욕물이 더럽다고 목욕 후에 아기까지 버리는어리석음은 없어야 하겠지만, 수많은 이민자들과 다양한 혈통과 인종이 짬뽕된 나라인 미국의 내재되었던, 예견되었던 속앓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더 나아가 힐러리 클린턴의 패배의 요인 중에 힐러리가 여성이었기 때문에 패배했다는 지적도 있다. 미국도 미소지니misogyny(여성혐호)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점이다.

 

또한 페미니스트 사이에서도 세대 간 분열이 존재합니다. 저3)처럼 한물간페미니스트들은 모두 힐러리를 지지했으나, ‘신세대페미니스트들은 그러지 않았습니다. 힐러리에서 닮고 싶지 않았던 본인들의 엄마가 떠올랐기 때문이지요.’(201p)

 

 

 

   미국에는 알트라이트Alt-Right(스스로 대안 우파라 칭함, 온라인판 백인 우월주의)는 인터넷 SNS를 통해 활동한다. 이들은 현대과학기술을 이용한 백인 우월주의자들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알트라이트 세력을 강화시키는 점도 있다. 트럼프의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하라Make America Great Again”라고 한 말은 미국을 다시 희게 하라Make America White Again”라는 의미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는 말한다. 저자는 미국이 처한 현실이 너무나 비현실적이어서 남편과 함께 캐나에서 한 달 동안 요양을 할 정도였다고 고백한다.

 

미국은 우리보다 훨씬 더 앞서가고 있고 선진국이다. 그런 나라에서 벌어지는 현실를 보면서 여러 가지 생각들이 든다.

 

 

 

 

 

윌리암 페리4)의 북한의 핵문제에 대한 생각

   북한의 핵문제는 동북아시아의 미래를 좌우할 아주 중요한 문제이다. 북한의 김정은 위원장에게 가장 중요한, ‘다른 모든 것을 압도하는 최우선 과제는 바로 체제 유지’(212p)이다. ‘김씨 세습정권의 체제 유지가 가장 중요한 것이다. 전쟁만이 능사가 아니며, 우발적 핵전쟁은 언제나 가능하다. 저자는 핵무기에 대한 정치적 활동도 중요하지만, 교육, 즉 대중의 이해를 높이는 것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장기적 관점에서 교육을 통한 핵의 위험성을 일반 대중에게 주지시키는 것이다. 정치나 과학의 문외한이 나로서 이 핵의 위험성을 주지시킨다는 차원이 어떤 부분인지 구체적인 체감은 어렵겠다.

저자는 북한의 김정은은 가장 성공한 경영자’(223p)라는 표현을 쓴다. 포린 어페어스Foreign Affairs김정은 가장 성공한 CEO’라는 기사가 실렸다. 과연 김정은이 자신이 들고 있는 핵이라는 카드, 마지막 보루와 같은 그 카드를 내려놓는다는 것이 가능할까 싶다.

 

 

박항서 감독으로 인해 베트남 열풍이 불었고 많은 한국인들이 베트남을 찾는다고 한다. 특히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으로 인해 공항에서는 양말까지 벗어서 검사를 하는 수고(?)를 해야 한다고 근래에 베트남에 다녀온 지인의 말을 들었다. 이 회담을 통해 어떤 성과를 얻을 수 있을까? 솔직히 크게 기대를 하지 않는다. 하지만, 고집불통 꼰대처럼 귀 막고 자기 목소리만 높이는 것이 아니라 대화의 자리에 같이 앉는다는 것, 소통하려고 하는 몸짓이라도 보이는 것에 의미를 두고 싶다. 사람과 사람 사이도, 국가와 국가 사이도 역시 소통이 필요하다.

 

주:

1)캘리포니아 대학 헤이스팅스 로스쿨 교수, 학교신하 워크라이프 법률센터 설립자 겸 초대 소장이다.

 

2)프린스턴 대학교 명예 교수, 미국과학 아카데미 회원

 

3)저자도 여성이다.

4)클린턴 행정부 국방부 장관 역임, 현재 스탠퍼드 대학교 명예 교수로 재직중이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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