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사의 기본 - 백년 가게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오카무라 요시아키 지음, 김윤희 옮김 / 부키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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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좋은 가게가 있는 것이 아니다. 좋은 사람, 좋은 staff이 있는 가게가 있을 뿐이다.’, ‘사람이 빛나면 가게가 빛난다. 대박가게만들기는 사람 만들기, 그 자체이다.’(23p)

 

 

꽃과 벌의 관계를 생각해보자. 꽃이 자신에게 꿀과 향기가 없는 것은 안중에도 없고 찾아오는 벌이 없다고 투덜대고 불평한다. 문제는 찾아오지 않는 벌이 아니라 바로 꽃에게 있다는 사실이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꽃과 벌에 대한 관계를 생각해보았다.

 

 

 

2

홍보를 하지 않아도, 간판을 세우지 않아도, 할인을 하지 않아도, 음식 맛은 좀 부족해도, 네가 사랑받는 사람이 되면 사람들이 먼저 다가와 줄거야.’(26p)

 

저자는 서른 살이 될 때까지 자기가 좋아하는 일에 미쳐 지내다가 어머니가 운영하는 이 가게를 물려받게 되면서 생각의 전환을 가져오게 된다. 문제는 손님이 아니라, 바로 주인이다. 바로 사람이 문제인 것이다.

 

 

 

3

여러분 앞에 있는 사람은 바로 여러분 자신이다.”(49p)

 

인생은 언제나 사람과 사람 사이의 문제들이다. 내가 한 만큼 돌아온다. 일종의 메아리 법칙이다. 먼저 나를 돌아보고 타인을 돌아보아야 한다. 내 얼굴이 좋아야 다른 이의 얼굴도 좋은 것이다.

 

 

4

인맥은 만드는 것이 아니라 생기는 것’(74p)이다.

돈이 필요했다. 은행에는 신용이 저질이라 빌릴 수가 없었다(내가 굳이 이렇게 밝히는 것은 이 글을 읽는 이들 가운데 위로가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위로가 안 되면 어쩔 수 없고...). 그래서 결국 사람들에게 일일이 도움을 구해야 했다. 다행히 구해졌다. 하지만 그 과정은 손에 땀을 쥐게 했고 피를 말리게 하는 일이었다. 전화번호를 누를지 말지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손가락이 방황하고 표류하고 안절부절하는 모양새였다. 그러면서, 돈 빌리는 자와 돈 빌려주는 자의 마음을 한번 헤아려보는 시간이 되었다. 어머니가 자식인 나를 위해, 자식들을 위해 돈을 빌릴 때의 마음이 이런 마음이었구나! 생각하니 마음이 더 짠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그런 생각도 해 보았다. 돈을 빌리면서 그래도 세상이 아직 살만한 세상이구나!’ 그런 생각을 했다. 돈 때문에 글도 잘 못 쓰겠더라. 내가 지인들에게 돈을 빌리는 것을 보고서 아내가 내 인성을 극찬했다. 그런가 싶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돈이 뭔가 싶기도 하고. 눈 앞에 뵈는 게 없으니, 너무 절박하니 입이 떨어지더라는 것이다. 돈을 빌려주지 못했을 때, 거절당했을 때의 그 참담한 기분과 열패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안 당해 본 사람은 모를 일이다. 모두가 인생 공부이다. 나는 앞으로 잘 빌려주는 인간이 되어야겠다는.

 

 

 

5

저자는 음주 운전 교통사고를 당한 어린 아이의 소식을 들었다. 그는 사고당한 어린아이를 돕기 위해 매장 하나의 하루 매출을 전액 기부했다고 한다. 그는 술을 판매하는 장사꾼으로써 느끼는 부채감에서 직접적인 관계도 없는데 그렇게 행동했다고 한다.

 

 

 

6

사람 사는 세상에 모든 것은 결국 사람의 문제인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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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9-11-29 19: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누가 그런 말을 하더군요. 일본이 그렇게 백년 가게가 많은 건
그 나라의 특성상 그럴 수 밖에 없다고. 워낙에 상명하복의 문화다 보니
감히 딴 것을 생각할 수 없는 환경이어서 그렇다고.
우리나라는 3년 또는 5년안에 폐업률이 높긴한데 외국 사람들이 볼 땐
그게 또 활기로 보여지나 봐요. 낭만적으로.ㅎㅎ

카알벨루치 2019-11-29 20:10   좋아요 1 | URL
부모대에 워낙 잘된 가게이니 그런가보다 했는데 일본의 문화와 배경 탓도 있네요
부모의 뜻을 따라 자신의 길을 정하는게 쉽지 않은 결정이긴 합니다
리뷰도 밀리고 독서도 밀리고 글은 안 써지고 하루에 페이퍼 두개 올렸는데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

레삭매냐 2019-11-30 14: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사람의 문제라는 점에 공감합니다.

어젠가 예고를 하고 음주단속을
했는데도 2시간 만에 88건인가가
단속되었다고 하더군요.

사람의 문제가 맞습니다.

coolcat329 2019-11-30 15:46   좋아요 1 | URL
그것도 고속도로에서요! 윤창호 법 그새 잊은건가요ㅠㅠ이런 뉴스는 정말 화가 납니다.

카알벨루치 2019-11-30 21:11   좋아요 0 | URL
글을 써놓고도 참 부끄러워집니다
사람이 제일 중요하건만...아!

빵굽는건축가 2019-11-30 15: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기본은 사람에 있다는 것을 알게하는 좋은 리뷰군요. 고맙습니다

카알벨루치 2019-11-30 21:13   좋아요 1 | URL
앞에서도 이야기했지만 그냥 글 쓰고나서 얼굴이 확 달아오르네요
너무 솔직하게 써도 얼굴이 달아오르는데 너무 삶이 안 따라주는데 글이 앞서갈때 또한 그렇다고 봅니다 댓글 감사드립니다
저 책 읽으면서 제 자신을 또 돌아보았습니다 ^^
 
칼자국 소설의 첫 만남 10
김애란 지음, 정수지 그림 / 창비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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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식당을 운영했던 어머니에 대한 기억을 을 통해 기억하는 저자의 작품이다. 짧은 소설이지만 그림까지 있어 어머니에 대한 독자가 가진 저마다의 기억을 생각나게끔 하는 소설이다.

 

 

 

 

 

2

어머니는 좋은 어미다. 어머니는 좋은 여자다. 어머니는 좋은 칼이다. 어머니는 좋은 말이다.”(55p)

 

우리 어머니가 쓰던 칼은 어떤 칼이었던가?

어린 시절부터 자취를 하면서 부모님과 떨어져 지냈던 나, 주말에 잠시 얼굴을 뵙고 하룻밤 자고 주일이면 대구로 어김없이 올라와야 했던 기억이 난다. 대구행 버스에 오르면 언제나 내 손에 들려있던 어머니의 칼자국이 서린 반찬들, 때론 그 반찬통에서 김칫국물이 새어 나오기도 하고, 때론 과일주머니에서 과일이 버스바닥에 흩어져 낭패를 당한 경우도 있었다. 사춘기 소년인 나와 사춘기 소녀였던 여동생은 서로 그 반찬주머니를 들고 가지 않으려고 미루기도 했던 기억이 난다. 그땐 그랬다. 교통수단이 대중교통이 거진 대부분이었던 시절이었다. 어머니의 흔적이 다분했던, 직간접적인 칼자국이 배인 반찬들은 언제나 맛있었지만, 그걸 운반하는 책임은 피하고 싶었던 사춘기 소년의 경험이다.

 

 

 

 

3

부모님 곁에 늘 같이 생활하는 정상적인 부모가정, 자식들이 나는 늘 그리웠고 부러웠다. 매일 같은 공간에 숨을 쉬며 몸을 부대끼는 것이 때론 지루하고 보링boring한 일상일 수 있으나 나는 그 일상이 부러웠고 나는 자식을 낳으면 절대 떨어져 키우진 않으리라고 혼자서 다짐했었다. 부모님의 교육정책(?)에 의해 부리나케 대구로 전학오던 날, 난 흑백TV에서 재밌게 방영되고 있는 바야바였던가, 만화영화 딱따구리였던가 암튼 그걸 시청중이었다. 그런데 어머니가 갑자기 전학가야한다고 밤에 우린 무슨 피난을 가듯 대구행 버스에 올랐다. 너무 갑작스런 전학행에 난 학교애들과 인사도 못하고 떠나왔다. 그땐 너무 정신이 없었는데, 지금 돌아보니 이별을 준비하고 아쉬움과 아픔을 충분히 느꼈어야 하는데 나와 여동생의 정서에 보이지 않는 상처가 배인 것은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해본다.

우리 첫째 아이 전학시킬 때의 영상이 떠오른다. 나도 급하게 아이를 인사시키고는 전학을 시켰더랬는데, 우리 큰 아이의 마음에 보이지 않는 칼자국을 남긴 건 아닐까? 그런 생각...

 

어머니는 왜 그렇게 급작스럽게 전학을 서둘렀을까? 인사도 안 시키고 그렇게 움직이셨을까? 당시 학교에선 시골에서 도시로 넘어가는 전학생이 불어나는 관계로 우리가 전학하는 것에 대해 반대하고 미뤘던 것으로 기억한다. 어머니는 일단 행동파였기에 전학을 물리적으로 시키고 후에 서류나 시스템적인 부분을 해결하려고 했다. 내가 전학을 간 지 한참 후에 이전 학교에서 서류가 넘어왔다. 

 

 

 

 

 

 

4

시골에서 남들보다 더 교육 잘 시키고, 잘 키우고 싶은 마음에 어머니는 고된 농사일을 하기 위해 아침에 버스를 타고 시골에 가셨다가 해가 뉘엿뉘엿 지는 저녁이 되면 피곤한 육신을 이끌고 다시 대구행 버스에 몸을 실어 우리를 챙기셨다. 그땐 자가용이 없던 시절이었다.

나 같으면? 그렇게 할 수 있을까?

어머니의 교육정책과 돌봄과 케어로 인해 우리는 주욱 대구에서 주말 부모-자녀 관계를 유지했다. 오히려 그것이 장점이 되기도 했다. 부모님과 자주 뵙지 않으니 덜 다투게 되고 애틋함과 아쉬움의 감정의 여운이 남는다는 것, 근데 내가 부모가 되어 보니, 그게 아니다 싶다. 자식은 부모의 마음을 참 모르는구나, 참 몰랐구나 싶다. 얼마나 자식들이 보고 싶었을까? 내가 초등학교 5학년 때 전학을 갔었는데, 지금 우리 큰 애가 초등학교 4학년인데...진짜 성가시고 귀찮은 게 많고 손도 많이 타는 시기이긴 하지만, 어른들 말로 애들이 제일 예쁠 때라고...

자식을 떨어뜨려놓고 지낸 부모님의 마음...피곤하게 하루를 보냈어도 저녁에 온 가족의 얼굴을 볼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가! 물론 일상에서 우린 자주 눈치채지 못하고 무성의하게 보낼 때가 많다. 우린 무감각하기 짝이 없는 존재인지라...

 

 

 

 

 

5

이 작품 칼자국을 읽고 생각의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어머니의 마음에 새겨진 칼자국을 생각한다. 명절이 되면, 떠나려고 채비하는 장남인 나에게 어머니는,

 

하룻밤 더 자고 가지 그러냐?”

 

할머니도 벌써 갈라꼬 카나?”그렇게 대구하셨다.

그 말이 가슴에 내려앉아 생각을 하게끔 한다.

 

하룻밤 더 자고 가지 그러냐?”

 

부모 마음 따로, 자식 마음 따로이다. 부모는 자식을 품에 두고 싶어하지만, 자식은 머리가 굵어지면 부모의 품을 귀찮아하고 성가셔하고 멀리 두려고 한다. 내 자식들도 머리가 점점 굵어지면 나를 귀찮아하고 성가셔하고 받은 만큼 돌려준다는 식으로 칼자국(?)을 선물하진 않을까?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6

어머니가 내 준 밥상, 그 밥상은 어머니의 칼자국의 결과물이다.

어머니가 내놓은 모든 나의 교육적인 환경도 어머니의 결정에 의한 진로의 영향이기도 하다.

 

 

 

 

 

 

 

7

나는 애들이 많아 손이 많이 가야 하는 애들의 아버지이다. 머리가 쭈뼛쭈뼛 서고, 내 속에 이런 수많은 신경질과 스트레스와 분노와 짜증의 DNA가 다분한지 매일 매일 연신 놀라 자빠지는 유형의 인간 아빠이다. 나는 필시 철인이 아니었더란 말이다.ㅠㅠ 문득 내 어린 시절 부모님과 함께 보낸 시간의 부재不在로 인해 내겐 역할모델의 후유증이 존재하는 듯.

 

부모의 본을 보고 자녀가 배운다는 데 내겐 짤막짤막한 만남의 씬scene만 존재하지, 긴 일상의 장편필름film이 없는 게 아쉽다. 애들과 함께 지내지 못한 아버지와 어머니의 마음 한 구석이 뻥 뚫린, 아쉽고도 안타깝고도 아픔이 저민 그 가슴! 그렇게 한 평생 살아오셨고 최선을 다해 최고의 것을 자녀들에게 주기 위해 달려오셨기에 더 이상의 불평과 불만의 토로는 무의미하고 추잡한 짓이라고 타박해 본다. 난 그래도 애들과 함께 좋든, 싫든 생활할 수 있다는 것 자체에 감사할 수 있어야겠다 싶다.

 

나는 두렵고 떨린다. 나중에 우리 애들이 부모인 나를 원망하고 불평하진 않을지. 세상의 완벽한 부모가 어디에 있겠는가 마는. 그래도 이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하고, 그리고 이것이 내 한계의 마지노선이라고 생각하면서 오늘 하루도...

 

 

 

 

 

8

가족의 공유된 감정,

공유된 기억,

공유된 추억,

공유된 시간과 공간,

공유된 질감과 양감,

공유된 상처까지도(물론 이런 건 좀 빼고 싶지만).

함께함’(togetherness)이 큰 축복이라는 것을 새삼 느낀다.

 

 

 

 

 

9

작품 가운데, 어머니가 식당에서 갑작스럽게 쓰러졌다. 그리고 그렇게 떠나셨다. 장례식을 마친 후 어머니가 운영하시던 식당 부엌에 들어선 작가의 눈에 들어온 풍경, 설거지 꺼리가 이만큼 쌓여있는데, 딸의 눈에 들어온 것이 있었다.

 

칼은 도마 위에 비스듬히 누워 있다....갑자기 참을 수 없는 식욕이 밀려왔다. 뭔가 베어먹고 싶은 욕구, 내장을 적시고 싶은 욕구....’(77p)

 

그렇게 딸은 사과 아주 맛있게 베어먹는다. 씹는다.

 

 

 

 

 

10

어제 도서관에 앉아 리뷰를 짧게 메모하고 넘어가려고 앉았는데, 생각이 담쟁이 덩쿨처럼 세월과 기억의 담을 타고 들어와 글이 이렇게 길어져 버렸다. 이것만 쓰고 가야할 것 같다. 도서관 문이 곧 닫을 시간이다....

 

부엌의 칼을 볼때마다 김애란의 소설이 생각난다. 그리고 어머니가 생각이 난다. 이런 소설이 좋은 소설이 아닌가! 일상의 한 편련에 의미를 부여하게끔 하는 소설 말이다...그래서 나는 소설을 읽는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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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9-11-15 12: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김애란 작가, 글 잘 쓰죠? 그의 단편 소설을 읽고 단박에 재능을 알아봤어요.

가장 아름다운 낱말이 ‘어머니‘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가장 슬픈 낱말이기도 한 것 같아요.
자식과 부모가 떨어져 있으면 애틋한 건 맞지만 한 집에서 사는 게 좋은 것 같더라고요.
큰애가 몇 년 저와 떨어져 살았는데 그래서인지 독립적인 여성이 된 것 같아 어떤 면에선 섭섭하더라고요.
뭐든 자기 혼자 결정을 하더라고요. 그게 습관이 된 듯해요. ㅋ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카알벨루치 2019-11-15 13:58   좋아요 0 | URL
부모와 자녀의 관계가 그렇네여 섭섭하셨다는 말이 남 말 같지 않습니다 적당한 때에 놓아주는 지혜도 필요한데 말입니다 ㅎㅎ

레삭매냐 2019-11-15 13: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냥 문득... 김숨 작가의 <국수>라는 소설집 생각이 나네요.

카알벨루치 2019-11-15 13:58   좋아요 0 | URL
김숨 작가는 <흐르는 편지>를 너무 슬프게 읽었네요 ㅎㅎ읽고싶은 작가가 왜 이리 많지요 ㅎ

2019-11-15 13: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11-15 13: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북프리쿠키 2019-11-17 20: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이고 어무이란 말만 입밖에 내뱉어도
뭉클해집니다. 전 이 책 자신이 없습니다. ㅠ

카알벨루치 2019-11-19 20:51   좋아요 0 | URL
어머니란 존재는 언제나 그런 것 같습니다! ㅎㅎ어무이~어무이~ㅋㅋ

transient-guest 2019-11-20 09: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무리 애를 써도 부모님께 받은 걸 다 갚는 날은 오지 않을 것 같아요. 매일 제가 나이를 느끼는 몇 배로 계속 연세가 들어가시는 걸 보는 것이 너무 맘이 안 좋습니다. 그저 주어진 시간만큼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생각 밖에 못하네요.

카알벨루치 2019-11-20 10:24   좋아요 1 | URL
그러게요 부모님을 세월의 무게가 요즘 더 찐하게 느껴집니다 예전에는 늘 크게 보였던 부모님의 어깨가 왜 그렇게 왜소해보이는지...그 은혜를 힘입어 자식인 우리가 이만큼 왔나봅니다 ^^
 
갱부 현암사 나쓰메 소세키 소설 전집 6
나쓰메 소세키 지음, 송태욱 옮김 / 현암사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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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9034월에 나쓰메 소세키(당시 36)는 제1고등학교 강사와 도쿄제국대학 영문과 교수를 겸하게 된다. 그리고 5개월 후인 9월에 제1고등학교의 제자인 후지무라 미사오가 게곤 폭포에서 자살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이 사건으로 인해 다시 신경쇠약증세가 악화된다. 또한 아내와의 불화로 임신중인 부인과 별거에 들어가게 된다. 나쓰메 소세키는 어릴 적부터 곁에 있던 사람들의 죽음을 무수히 목도해왔지만, 교편을 잡은 첫 해에 자신의 제자의 자살 사건은 충격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5년이란 시간이 지났다. 1908(당시 41) 1~4월까지 아사히 신문에 갱부를 연재한다.

 

 

 

 

 

2.

인간이 동물과 다른 점은 멘탈시뮬레이션이 가능하다는 이야기를 어느 책에서 본 적이 있다. 제자의 죽음 이후의 소세키의 가슴 속에는 말할 수 없는 상처의 응어리가 깊게 남아 있었다. 작가 장정일은 이 작품을 이렇게 표현했다.

 

게곤 폭포에서 자살한 소세키의 제일고등학교 제자 후지무라 마사오의 번민에 대한 석명”(321p)

 

닛코의 산속에 있는 게콘 폭포는 높이가 100미터를 훌쩍 넘어 보는 이로 하여금 그 웅대함에 감탄을 금치 못한다고 한다. 소세키가 가르친 제1고등학교는 도쿄제국대학 진학을 위한 예비문(교양학부)이었다. 후지무라 마사오는 이 폭포에서 투신자살 직전에 바위 위의 나무에다 <암두지감>이란 글을 남겼다.

 

막막한 하늘과 땅

아스라한 과거와 현재.

보잘 것 없는 내가 이 신비를 풀어보고자 했지만

호레이쇼(햄릿의 친구)의 철학으로는 아무것도 풀 수가 없다.

세상의 진실은 오직 한 마디,

불가해라!

풀리지 않는 번민 끝에 죽음을 결정했으니

절벽 위에 서서도 가슴 속엔 아무런 불안이 없다.

이제야 깨닫게 된 것은

커다란 비관과 커다란 낙관이 서로 같다는 것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나 영화 글루미선데이gloomy Sunday(노래도 있다)의 이야기처럼 자살은 또 다른 자살을 불러왔다. 후지무라 마사오의 유서의 후폭풍도 거셌다. 숱한 이들이 이 폭포에서 자살을 했고, 후에 이 게콘 폭포는 자살의 명소가 되었다. 소세키는 제자의 죽음 이후 5년의 깊은 사색과 성찰이 이 작품에 녹아나 있다고 볼 수 있다. 작중의 주인공은 소설 같지 않다’, ‘소설이 아니다라고 했지만,

 

정리되지 않은 사실을 사실 그대로 기록할 뿐이다. 소설처럼 만든 것이 아니기 때문에 소설처럼 재미있지는 않다. 그 대신 소설보다 신비하다. 모든 운명이 각색한 자연스러운 사실은 인간의 구상으로 만들어낸 소설보다 더 불규칙적이다. 그러므로 신비하다. 나는 늘 이렇게 생각하고 있다.’(147p)

 

 

이 작품은 unique한 교양소설이다.

 

 

 

 

3.

일단 이 정도의 결심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이는 나중에 그때의 심리 상태를 해부해본 것일 뿐이다. 당시에는 그저 어두운 곳으로 가면 된다. 어떻게든 어두운 곳으로 가지 않으면 안 된다며 오로지 어두운 곳을 목표로 걸었을 뿐이다. 지금 생각하면 빙충이 같은 짓이었지만, 어떤 경우가 되면 우리는 죽음을 목표로 나아가는 것이 최소한의 위로가 된다는 것을 납득하게 된다. 다만 목표로 하는 죽음은 반드시 멀리 있어야만 한다는 것도 사실이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너무 가까우면 위로가 되지 못하는 것은 죽음의 운명이다.’(22p)

 

주인공은 정확하게 밝히진 않지만 19세의 젊은이가 느끼는 격한 감정으로 인해 가출을 하게 된다. 그리고서 자살을 결정하다가 생을 포기한 자의 마지막 선택으로 광부가 되기로 한다. 그것은 대단한 과정이 아니었고 우연한 결과였다. 인생은 누가 누가 그렇게 표현하지 않았던가!(누군지 알았다. 사르트르였다!) 

 

인생은 B(birth 출생)D(death 죽음) 사이의 C(choice 선택)의 문제라고.

 

주인공은 BD 사이에서 D로 가기 전에 또 다른 C를 취한다.

 

애석하게 당시의 내게는 자신을 연구하겠다는 마음이 전혀 없었다. 그저 분해서, 괴로워서, 슬퍼서, 화가 나서, 그리고 딱해서, 미안해서, 세상이 싫어져서, 인간임을 다 버리지 못해서, 안절부절 못해서’(44-45p) 그는 가출을 했고, 또 다른 C를 선택한다. 돈벌이를 위해 그는 갱부가 된 것이 아니었다. 그는 D를 선택하기 전에 우연찮게 조조란 인물이 그에게 던진 한 마디,

임자, 일할 생각 없나?”(85p)

 

그 말에 꽂혀 선택한 것이 바로 갱부였다. 과연 그 허약해 빠진 19세의 가출청년이 과연 갱부가 될 수 있을까?

 

 

 

 

 

4.

돌아가고 싶어도 돌아갈 곳이 없습니다.”

집이 없습니다. 갱부가 되지 못하면 구걸이라도 할 수밖에 없습니다.”(158p)

 

온실 속의 화초처럼 19년 동안 자라온 주인공이 죽음을 결심했다가 또 다른 선택지인 갱도로 들어섰을 때, 거기엔 막다른 장소였고 특별한 시간이 존재하는 곳이었다. 우리가 정말 돌아갈 집이 없는 노숙자가 아닌 다음에야, 다들 come backhome이 있다. 주인공은 상실의 시대의 젊은이들처럼 돌아가고 싶어도 돌아갈 곳이 없다는 말을 하면서 갱부를 선택하지만, 그 선택으로 그는 돌아갈 곳을 찾게 된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피 끓는 청춘의 시절에는 다들 자신의 개인적인 마음의 상처와 데미지가 너무나 크게 느껴지는 나머지(실제로 대단히 크고 심각한 경우도 종종 있긴 하지만) D(death)를 선택하기도 하지만, 소세키는 제자의 죽음을 사유하면서 D가 아닌 C(choice)를 선택할 것으로 말해주는 듯 하다. 1만명이 넘는 탄광촌에 수많은 노동자들, 하루에도 몇 번의 장례식이 치러지는 그 곳, 먹는 쌀, 안남미-막부 말기부터 메이지 시대 이후에 걸쳐 중국이나 동남아시아에서 수입된 쌀의 속칭, ‘벽토라고 불렸는데, 이 수입쌀은 일본인의 미각에 맞지 않았다고 한다-, 불편하고 더럽고 추잡한 잠자리, 끊임없이 몸을 휘감는 빈대와 벌레, 그리고 섟일래야 섟일 수 없을 것만 같은 관계들...

 

평소의 흰밥도 신물이 날 정도로 먹고 싶지만, 그보다는 빈대가 없는 이부자리에 들어가고 싶다. 30분이라도 좋으니 푹 자보고 싶다. 그런 뒤라면 할복이라도 하겠다.’(304p)

 

 

 

 

 

5.

어때, 여기서 지옥의 입구야. 들어갈 수 있겠어?”(211p)

 

갱부 하쓰 씨가 갱도에 들어가기 전에 주인공에게 한 말이다. 삶이 죽음을 선택하고 싶을 만큼 고통스럽고 지옥 같다고 할지라도, 갱도에서 일하는 갱부들의 일상을 경험하면서 주인공은 변해가고 성장해간다. 물론 작품이 그것을 구체적으로 언급하진 않는다.

 

구약성경 욥기를 읽다가 문득 갱도를 발견하고 기뻐했다.

 

그저 사람이 사는 곳에서 멀리 떠나 갱도를 깊이 뚫고 발길이 닿지 않는 곳 사람이 없는 곳에 매달려 흔들리느니라’(욥기 284)

 

갱부는 사람이 사는 곳과 멀리 떨어진 곳, 발길이 닿지 않는 곳, 깊이 뚫린 갱도에서 하루를 보내는 사람들이다. 그 지옥 같은 장소와 시간의 하루...그곳에서 존버하는 인생이 바로 갱부였다.

 

 

 

 

6.

D(death)가 아닌 C(choice)를 선택하는 자, 그 자가 또 다른 의미의 갱부가 아닐까? 문득 인간실격을 썼던 다자이 오사무의 생애가 생각이 난다. 끊임없이 D를 선택하려다가 실패하고, 실패하고, 결국 39세에 다섯 번째 D시도를 강물에서 투신 자살로 마무리했던 다자이 오사무! 하지만, 우리는 삶이 지옥 같은, 하데스 같은 고통과 고난이 있다손 치더라도 D가 아닌 C를 선택하는 자가 되었음 좋겠다. ‘살아남은 자의 슬픔이 있겠지만, ‘살아남은 자의 희열또한 있기에. 호흡이 있기에 존재의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닌가!

 

 

 

 

 

 

7. Epilogue...

나는 작품을 읽으면서 문득 문득 소세키의 건강을 생각했다. 몸도 안 좋은 양반이 갱도 속에서 들어갔나, 어떻게 들어갔을까? 어떻게 이렇게 디테일하게, 사실적으로 묘사할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했더랬다. 마치 내가 그 현장에서 직접 보고 듣고 느끼는 느낌이 들었다. 무슨 체험현장도 아닌데, 어떻게 이렇게 리얼할 수 있나 싶을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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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1-14 14: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11-14 22: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19-11-14 15: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저는 나쓰메 소세키를 언제쯤 읽게될까요.
읽을 책이 너무 많다는 건 행복한 불행 같아요. 언제나 멋진 글을 쓰는 카알님.ㅠ

카알벨루치 2019-11-14 22:05   좋아요 0 | URL
마음만 먹으면 됩니다 ㅋㅋㅋㅋㅋㅋㅋ제가 <전쟁과 평화>에 대한 마음과 비슷할 듯 합니다 톨스토이 먼저 읽을 줄 알았는데 도끼를 먼저 읽다니...독서도 그런 것 같습니다 언젠가 만나야할 책은 꼭 만나겠지요 ㅎㅎ

페크(pek0501) 2019-11-15 12: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작가의 <도련님>이란 소설을 좋아합니다. 감동이 있으면서도 코믹하죠.
언제 전집을 사서 읽고 싶단 생각을 했었던 작가였어요.

카알벨루치 2019-11-15 16:04   좋아요 0 | URL
현암사 전집이 참 마음에 드는데 전 <산시로>와 <풀베개>만 구입했습니다 나머진 빌려서 읽어야겠죠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는 사야할 것 같습니다 너무 두꺼워서 ㅎㅎ

북프리쿠키 2019-11-17 20: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갱부 요고 은근 명품입디다^^;

카알벨루치 2019-11-17 21:20   좋아요 1 | URL
어찌 이런 작품을 썼나 싶네요 ㅎ
 
부끄러움 비채 모던 앤 클래식 문학 Modern & Classic
아니 에르노 지음, 이재룡 옮김 / 비채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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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에르노의 글쓰기의 동기, impulse의 핵심에는 “부끄러움”이 있다 타인의 시선, 편견, 판단, 비난, 욕설, 평가, 저주 등. 이 모든 타인의 것에 대한 자기 자신의 벌거벗은, 나체화된 수치심의 실체를 직면하고자 그녀는 글을 쓴 것이다 그 느낌은 어떤 것일까?

박완서의 <박완서의 말>을 보면 박완서는 40세에 소설을 쓰기 시작한다 그녀는 소설은 자기만의 자전적 스토리에다 상상력을 부과한 그 어떤 것이라고 정의하는 듯 했다 일단 나를 그렇게 이해했고 받아들였다 자기 이야기, 스토리는 nonfiction인데, 상상력이 결합되면 faction이 될 것이고, 더하면 fiction이 될 것이다 아니 에르노의 “벌거벗은 글쓰기”는 nonfiction인 셈이다 “부끄러움”을 글쓰기로 승화시킨 그녀의 매력은 타의추종을 불허하는 듯 하다 그래서 그녀가 커보인다 그녀의 말을 들어보자


“책이 나온 뒤에는 다시는 책에 대해 말도 꺼낼 수 없고 타인의 시선이 견딜 수 없게 되는 그런 책, 나는 항상 그런 책을 쓰고 싶다는 역망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열 두 살에 느꼈던 부끄러움의 발치에라도 따라가려면 어떤 책을 써야 할까?”(138p)

“내게 글쓰기는 헌신이었다 나는 글을 쓰면서 많은 것을 잃었다 하지만 글쓰기가 없다면, 실존은 공허하다 만일 책을 쓰지 않았다면 죄책감을 느꼈을 것이다”(21p)


비천하고 가난하며 우울하고 엉망진창인 가정환경과 가정사, “내가 열 두살 때쯤 아버지가 어머니를 죽이려고 했었어” 라는 고백으로 시작하며 자신의 수치와 부끄러운 과거를 까발리는 것은 그녀의 상처에 상처를 덧대는 작업이지만, 진정한 치유와 회복은 정면승부이기에 그녀의 그런 일생의 용기가 진짜 크게 느껴진다 작가는 다들 용기가 있는 사람들이다


용기있는 자만이 글을 쓸 수 있다??!!
내게도 벌거벗는 용기가 있기를. I hope s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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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19-10-08 21: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양반은 자신이 경험한 것만
쓴다고 하던데 말이죠.

암튼 특이한 작가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카알벨루치 2019-10-09 08:05   좋아요 0 | URL
세상엔 다르디 다른 사람이 너무나 많으니 작가군도 다양하다 다양한거 아니겠습니까? 모든이로부터 자유한다는게 가능할까 싶기도 하고, 하지만 글쓰기는 또 다르겠다 싶기도 하고 그렇네요~

cyrus 2019-10-09 07: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요즘은 상대방의 부끄러운 점을 약점으로 삼아 괴롭히는 사람들이 많아졌어요. 그래서 남들 앞에 부끄러움을 고백하는 게 어려워지는 것 같아요.

카알벨루치 2019-10-09 08:14   좋아요 0 | URL
정말 그래요 자기의 약점이나 부끄러움을 공유하는것은 공감이기도 하고 관계가 더 깊어질수 있는 단계인데 그걸 역이용하는 심리가 인간에겐 있네요 도끼가 그런 이야길하는데 인용은 안할랍니다 ㅎㅎ
 
태양은 다시 뜬다
어니스트 헤밍웨이 지음, 이한중 옮김 / 한겨레출판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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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인이 아닌 청년 헤밍웨이가 쓴 작품

1 헤밍웨이가 27살에 쓴 『태양은 다시 뜬다』는 출판하자말자 문단의 주목을 받게 된다 27살? 도대체 그 나이에 어떻게 이런 작품을 쓸 수 있단 말인가? 헤밍웨이의 아버지는 의사였고, 어머니는 음악가였다. 『노인과 바다』에서 보여준 낚시군 산티아고의 모습에서 헤밍웨이가 첼로를 켜는 모습을 상상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어릴적 그는 첼로를 배우기도 했다고 한다. 헤밍웨이는 어릴적부터 낚시를 좋아했고, 이 작품에서도 낚시이야기는 빠지지 않는다. 


젊을 때부터 '영문학'에 두각을 나타낸 그는 당대의 문인들, 에즈라 파운드, 피츠 제랄드, 거트루드 스타인 등과 교류하면서 문학적 감수성을 키웠고 결국 이 작품이 등장하게 되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도, 폴 오스터였던가? 수많은 이들에겐 스승이 있었고, 도제식 교육과 배움이 있었다. 고등학교를 자퇴한 윌리엄 포크너처럼, 헤밍웨이도 대학의 시스템교육을 거절하기도 했다. 천재적 문학적 영민함은 시스템의 온실 속에서 자라는 것이 아니라 야생에서 자라나는 듯 하다. 하지만 우리 대한민국은 여전히 학벌과 학력을 잣대로 삼는 듯하다. 과연 그 시스템에서, 그 학력의 프로필에서 천재가 탄생할 수 있을까? 그건 모를 일이다.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헤밍웨이는 전쟁에 참여한다. 몇 개월후 그는 다리를 다친다. 그 병상체험과 전쟁체험이 그를 더 원숙하게 만든 게 아닐까? '충격을 먹으면 성숙한다'는 일개의 우스갯소리처럼 그는 생사의 경계를 넘나들면서 삶을 배워갔던것이다. 기자출신의 작가여서 그런지 문체가 간결하다고나 할까? 아무튼.




2 문체 이야기가 나오니 헤밍웨이의 '빙산이론'(iceberg theory) 즉, '생략이론'(omssion theory)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가 없다. 본질과 중심과 핵을 숨기고 '빙산의 일각'만을보여주는 이런 문체와 글은 에즈라 파운드의 영향이거나 에즈라 파운드가 심취했던 일본 하이쿠의 영향이란 이야기도 있다. <빙산이론>에는 당연히 수많은 메타포metaphor와 상징, 은유가 등장할 수 밖에 없다. 등장인물 제이크의 성불구자 모습을 빗댄 술자리에서의 친구들과의 농담과 대화 가운데 단순함을 넘어선 수많은 상징과 의미들이 포함되어 있다. 





3 헤밍웨이하면 <Lost Generation>을 빼놓을 수가 없다. 전쟁이후의 거대한 상실감은 주인공, 등장인물들의 끊임없는 방황과 방탕과 표류를 보여준다. 20대의 대한민국 청춘들의 방황처럼은 아니더라도, 그들은 끊임없이 표류하고 표류한다. 대표적인 인물로 여주인공 브렛을 들 수 있다. 한 남자와 헤어지고 이 남자, 저 남자로 옮겨다니면서 대단한 남성편력을 보여주는 청춘녀, 브렛...어디에서고 안정감을 얻지 못하는 브렛, 심지어 19살(브렛은 32살)의 젊고 매력적인 투우사 로메오에게 한 눈에 반하는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사랑에 올인하고, 감정에 올인하는 거기에서도 그녀의 만족은 찾아볼 수 없다. 브렛을 둘러싼 애정구도는 삼각, 사각, 이중, 삼중 그물망처럼 퍼져 있는 것도 이해할 수가 없다. 자신의 심리적 안식처이자 피난처는 제이크이지만, 제이크는 성불구자이다.  

"난 마이크에게 돌아갈거야!"(332p)

그 마이크는 로메오 앞에서 술취해 생쑈(?)를 벌인 친구였건만, 과연 브렛은 마이크에게 온전한 안정감을 누릴 수 있을까? 여전히 불안하다. 그래서 lost generation인 것이다. 




4 이 청춘남녀들이 여행길에 오른 길은 산티아고 순례길이다.예수 그리스도의 12제자 중 하나인 야고보 성인의 유해가 안장된 전설때문에 유명해진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Satiago de Compostela)'로 가는 길이고, 산티아고는 중세 때부터 로마, 예루살렘과 함께 기독교의 3대 순례지가 되었다. 산티아고는 '성 야고보'의 변형이고, 콤포스텔라는 '별의 들판'이란 뜻을 가지고 있다. 제이크는 Jacob의 애칭이며, Jacob은 야곱, 야곱의 야고보와 어원이 같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제이크는 비극적인 사랑으로 괴로워하는 모습을 드러낸다. 그는 이탈리아 전선에서 큰 부상을 입어 성불구가 된다. 병원에서 간호하던 여인과 사랑에 빠지지만 맺어질 수 없는 관계로 전락한다. lost generation은 1차 세계대전 후의 상황의 세대를 지칭하기도 지만, 더 확대시키면 전 인류를 상징하기도 한다. '잃어버린 세대', '방황하고 표류하는 세대', 절대성과 유의미와 최고선, 가치를 상실한, 삶과 죽음 사이의 불안하기 짝이 없는 인류 세대를 지칭하기에 이 작품이 시간이 훨씬 지났지만 지금도 그 적용점이 존재하고 독자들의 사랑과 관심을 계속 받는 게 아닐까 싶다.


'사르트르(Jean Paul Sartre)는 현대사회에서 삶의 모든 주체는 인간이라고 주장하였으며, 까뮈(Albert Camus) 역시 현대사회에서 ()을 믿는 것은 현세의 아름다움에 대한 모욕이며 죄악이라고 주장하였다. 헤밍웨이는 대부분의 작품 속에서 신(God)의 부재(不在)나 죽음을 다루고 있고, 포오크너 역시 신은 아직 존재하되 너무 늙어 인간에게 더 이상 아무런 힘도 행사할 수 없다고 주장하여 사실상 신(God)의 존재를 무시하고 있다.'(본인의『소리와 분노』paper에서) 




5 제이크는 어쩌면 훼밍웨이의 종교에 대한 맘을 담은 캐릭터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사랑하고 품고 용납하지만, 성불구자인 제이크....헤밍웨이는 청교도신도인 어머니의 신앙교육을 업악적으로 견디며 커왔기에, 종교는 그에게 커다란 짐이었다(이전에 헤밍웨이에 대한 나의 글을 참조하시길!). 어머니가 온전하고 경건한 신자였다면, 억압적인 것이 아니라 친절하고 포용적이었더라면 그의 남편인 아버지가 권총자살로 이어지지 않았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더욱 비극적인 것은 헤밍웨이의 집안에서 아버지, 헤밍웨이, 자신, 큰 여동생, 남동생 그리고 손녀에 이르기까지 4대에 걸쳐 5명이 자살하는 비운을 겪었다. 그의 가족, 집안사가 말 그대로 'lost generation'이 되버린 셈이다.




6 『노인과 바다』의 주인공, 산티아고 노인과 이 작품에서 등장하는 '산티아고 순례길'...헤밍웨이는 끊임없이 길을 찾아 헤매는 구도자, 순례자의 모습이 역력하다. 노벨문학상 조차 수상한 그가, 그토록 낚시와 사냥과 투우를 즐기면서 열정적인 삶을 살며, 수많은 여인과 결혼하고 이혼을 거듭한 천재작가는 아픈 몸과 우울증으로 자신의 애장하던 엽총으로 자신을 쏴 버린다.


"한 세대는 가고, 또 한 세대가 오건만, 땅은 영원히 그대로다, 태양은 다시 뜨고 다시 지며, 뜬 곳으로 서둘러 돌아간다 바람은 남으로 갔다가 북으로 돌이키며, 빙빙 돌고 돌아 그 가던 길로 돌아온다. 모든 강은 바다로 흐르지만 바다는 넘치지 않으며 강물이 비롯된 곳으로 돌아간다"(구약성경 전도서 1:4-7)




7 문득 나쓰메 소세키의 『산시로』의 유명한 대사가 떠오른다.

"스트레이 십, 스트레이 십stray sheep..."

Lost Generation은 'Stray sheep'인 셈이다. 하지만 작품의 제목은 <The Sun also Rises>인데, 제목이 너무나 희망적이었다는 생각이다. 아마 헤밍웨이가 27살의 피끓는 청춘에 탈고해낸 수작이라서 더 그런 것이 아닐까?

 

하지만, 
'태양은 다시 뜬다'...그것은 사실이고 진실임에는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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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9-10-02 17: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J. D. 샐린저가 헤밍웨이의 영향을 받은 거로 알고 있어요. 그래서 샐린저의 문장도 ‘빙산의 일각’ 같은 느낌이 들어요. 특히 샐린저의 단편에 있는 문장들이 그래요. ^^

카알벨루치 2019-10-02 17:56   좋아요 0 | URL
그게 일반독자의 눈에 안 보이는데. 전문가가 “빙산이론”이라 하니 그런갑다 싶고...참 문학의 샘물은 파도 파도 끝이 없나 봅니다~

소피아 2019-10-02 23: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북칭구^^

카알벨루치 2019-10-02 23:14   좋아요 0 | URL
네 반갑습니다 소피아님 즐독, 열독, 광독(?)하소서! 휴일 잘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