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는가 - 가네코 후미코 옥중 수기
가네코 후미코 지음, 장현주 옮김 / 더스토리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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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박열을 아는가?

   영화 <박열>이 세상에 나오면서, 숨겨진 독립운동가였던 그에 대한 정보가 세상에 조금 드러난 셈이다. 이 책은 박열의 부인이자, 연인이었던 가네코 후미코의 이야기이다. 나는 이 책을 보고서, 박열과의 스토리가 궁금해서 영화를 찾아 보았다. 이 책은 박열과 만나기 전까지의 그의 연인, 가네코 후미코의 삶을 들여다 볼 수 있다. 영화에서 가네코 후미코는 굉장히 밝게 나온다. 긍정적이며 당차고 용감한 모습을 보여준다. 이 영화만을 본다면, 가네코 후미코의 아픔과 상처를 갸늠할 수 없을 것이다. 무엇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는가를 읽어본다면, 그녀가 왜 그렇게 밝아졌는지, 용감해졌는지, 씩씩해졌는지 이해와 공감을 할 수 있다. 그가 만난 연인, 박열 때문일 것이다.

        

 

 

나는 개새끼로소이다

가네코 후미코는 박열의 시 <나는 개새끼로소이다>를 읽고서 엄청난 충격과 전율을 느낀다.

 

 

그리고 인력거를 끄는 박열에게 소위 말하자면, 대시(?)를 하게 된다.

 

나는 개새끼로소이다 -박열

 

나는 개새끼로소이다

하늘을 보고 짖는

달을 보고 짖는

보잘 것 없는 나는

개새끼로소이다

높은 양반의 가랑이에서

뜨거운 것이 쏟아져

내가 목욕을 할 때

나도 그의 다리에다

뜨거운 줄기를 뿜어대는

나는 개새끼로소이다

 

1903년에 태어난 가네코 후미코, 1905년에 나쓰메 소세키는 <나는 고양이로다>(나는 고양이로소이다)를 발표했다. 박열은 일본인들의 베스트셀러 작가였던 나쓰메 소세키의 이 작품의 제목을 패러디해서 지은 듯 하다. 가네코 후미코가 왜 이 시에 꽂혔을까?

 

나는 그 시를 읽었다. 이 얼마나 힘있는 시인가. 한 줄 한 줄 내 마음을 강하게 잡아끌었다. 시를 다 읽고 나자 황홀한 지경이었다. 가슴에서 피가 요동쳤다. 어떤 강한 감동이 나의 생명을 고양시키는 듯 했다.’(302p)

 

그의 수기에는 이런 대목이 있다.

 

조선에 있을 때 나는 개와 나를 항상 연결해서 생각했다. 개와 내가 똑같이 학대당하고 똑같이 구박당하는 가장 가련한 형제처럼 여겨졌다.’(171p)

 

나는 개새끼로소이다라는 시에 꽂힐 수 밖에 없는 후미코였다. 당시 조선인들은 일본인에게 그런 대우를 받지 않았던가! 후미코는 일본인이었지만, 그의 인생 자체가 그런 대우를 받았기에 박열의 시에, 박열에게 자신의 인생을 올인한 것인지도 모른다.

 

 

 

 

무적자

아이가 태어났는데, 출생신고를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부모가 혼인 신고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가네코 후미코는 이른바 무적자인 셈이다. 그래서 보통 사람들이 누릴 수 있는 학교도 부탁에 부탁으로 겨우 다닐 수 있었다. 하지만, 지지리도 가난한 현실은 그녀의 문자, 학교, 배움에 대한 열정을 언제나 방해했다.

 

노트 한권과 연필 한 자루를 사 줄 때까지 2,3일이나 학교를 쉬어야만 했다.’(38p)

 

무적자라는 것을 가네코 후미코는 일본 땅을 떠나 친할머니와 함께 바다를 건넌 후에 알게 되었다.

 

넌 말이야, 설마 잊지는 않았겠지. 넌 무적자였어. 무적자는 말이야. 잘 들어. 무적자란 태어났어도 태어나지 않은 거야. 그러니까 학교에 갈 수도 없지. 가도 다른 사람들에게 바보 취급만 당해. 그런 널 내가 불쌍히 여겨 입적해준 거야.”(91p)

 

가네코의 친할머니의 입에 나온 말이었다. 상속녀로 데리고 간다고 했지만, 결국은 식모살이만 7년 동안 하고 다시 일본으로 돌려 보낸다.

 

하지만 내가 무적자였던 게 내 죄인가. 나는 내가 무적자였던 것도 몰랐다. 그것은 아버지와 어머니만 알고 있었고 그 책임도 두 사람이 져야 한다. 그런데, 학교는 내게 문을 닫았고 사람들은 나를 멸시했다.

나는 아무것도 몰랐다. 아는 거라곤 내가 태어났고 살아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렇다. 나는 내가 살아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고 있다. 아무리 친할머니가 태어났어도 태어나지 않은 거라고 말해도 나는 태어나서 살아 있다.’(92p)

 

절친 타미가 죽어가면서 가네코에게 남긴 유품까지도 친할머니란 작자는 이와시타 집안의 후계자로 정해진 사다코에게 줘버린다. 12-13살 어린이는 한창 놀 나이지만 친할머니는 가네코의 모든 자유와 시간을 억압하고 박탈해버린다. 어떻게 학교는 보내줬는지 의아할 정도이다.

 

왜 그렇게 억지로 데려가는 거죠? 당신은 아이가 중요한가요, 옷이 중요한가요? 아이는 옷 때문에 있는 게 아니에요. 아이를 위해 옷이 있는거죠. 그렇게 더럽혀서는 안 되는 옷이라면 함부로 입어도 되는 옷을 입히면 되잖아요. 어른은 자신의 체면이나 수고만을 위해 아이를 희생시키고 있어요. 어른은, 특히 어머니는 아이를 위험에서 지키고 아이의 천성을 살려주는 게 일입니다. 아이의 자유를 빼앗고 아이의 인격을 무시하는 것은 무서운 죄악이에요. 아이를 자유롭게 놀게 해 주세요. 자유롭게 자연에서 노는 일은 자연이 아이에게 준 유일한 특권이에요. 그렇게 했을 때 아이들은 무럭무럭 인간다운 인간으로 성장하는 거예요.”(119p)

 

 

한 끼도 먹지 못한 가네코, 그 소녀의 딱한 사정을 익히 아는 이웃집의 조선인 아줌마가 보리밥이라도 주려고 했지만, 가네코는 거절하고야 만다. 할머니와 집안 사람들이 다음과 같이 말할까 봐 두려웠던 것이다.

 

조선인의 집에서 밥이나 얻어 먹고 다니는 거지는 우리 집에 둘 수 없어.”(131p)

 

낮에 놀만큼 놀고 이제 날이 저물어 갈 곳이 없으니까 돌아와서 용서를 빌고 우는 소리를 늘어놓는 게 네 특기냐. 뭐야, 밥 한 그릇이라도 너한테 주는 집이 있었니? 우리도 마찬가지야. 너한테 줄 밥은 없어.....”(132p)

 

그 어린 소녀가 자살까지 생각했지만, 그녀는 결심한다.

 

내가 만약 여기서 죽는다면 친할머니와 고모는 나에 대해 뭐라고 할까. 어머니와 세상 사람들에게 내가 무엇 때문에 죽었다고 말할까. 어떤 거짓말을 해도 나는 이미 그렇지 않아요라고 해명할 수가 없다. 그렇게 생각하자 죽어서는 안 돼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 나와 마찬가지로 괴로움을 당하는 사람들과 함께 괴롭히는 사람들에게 복수해야 한다. 그렇다. 죽어서는 안 된다.’(137p)

 

 

 

조선에서의 7년의 식모살이

조금이라도 빨리 그 지옥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기차에서 나는 어서 나를 조선에서 다른 곳으로 데려다 달라고 부탁했다. ‘어디든 일각이라도 빨리라고 부탁했다. 그러나 실은 데려다달라고 할 곳은 없었다. 선택의 여지없이 나는 고슈의 시골로 돌아와야만 했다. 그렇지만 그곳이 나의 진정한 휴식처는 아니었다. 마을을 보고 큰 외삼촌을 보자, 한층 우울해졌다.’(161p)

 

나는 조선생활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런 불평을 하기가 싫었고 해봤자 믿지도 않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164p)

 

나는 이 책을 읽을 즈음에 나쓰메 소세키의 책들을 탐독하고 있었다. 소세키의 일생 또한 파란만장했다. 그런데, 가네코 후미코의 불행한 가정사는 더 했다. 소세키는 그래도 후미코 보다는 더 잘 먹지 않았을까 싶었다.

 

 

 

콩가루 집안에서 콩가루가 되어가는 후미코

가난에 찌든 환경도 문제였지만(요즈음은 화장실에 휴지를 쓰지만, 당시에는 종이가 귀해 대나무 쪼갠 것이나 나뭇가지를 젓가락 정도의 길이를 잘라 사용후 시냇물에 씻어 재사용했다고 한다), 가네코 후미코의 부모도 만만치 않았다. 아버지는 아버지대로 여성편력이 뛰어났고, 어머니는 어머니대로 남성편력이 탁월했다.

 

어머니는 여러 명의 남자와 관계를 맺고 동거했는데, 내가 조선에 간 후에도 역시 같은 일을 반복한 듯했다...내 어머니는 어디서 굴러먹은 개뼈다귀인지 모르는 남자와 눈이 맞아 집을 나가서 있는 대로 고생한 끝에 이 남자 저 남자 전전하다가 돌아왔다. 그런 어머니에게 아무런 문제 없는 집에서 혼담이 들어올 리가 없었다. 당연히 어머니가 갈 수 있는 곳이라고는 무슨 사정이 있는 사람일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사실이 그랬다. 그러나 분에 넘치게도 어머니는 그런 곳에서는 견딜 수 없다며 뛰쳐나왔다. 결국 어머니는 그렇게 참을성 없는 여자였다.’(166p)

 

그래도 의지했던 남동생이 있었지만, 남동생 나카무라()와도 헤어지게 된다. 여동생 하루코와도 헤어진다. 더 웃긴 사실은 아버지의 연인이, 바로 이모였다는 사실이다.

부모가 자식을 낳았으면 책임을 져야 하건만, 이모와 놀아나는 아버지도 아버지지만, 어머니는 딸의 행복(?)을 위해 유곽을 팔려는 계획까지 세웠다가 제대로 되지 않기도 했다. 가네코 후미코는 말한다.

 

여러분은 진정으로 아이들을 사랑하고 있나요? 당신들의 사랑은 본능적인 모성애가 있는 동안만 지속될 뿐, 나중에는 완전히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만 아이들을 사랑하는 척하지 않나요?라고. 그리고 우리 엄마처럼 진실로 아이들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행복을 위해 버리고 가면서, 갔다가 싫으면 다시 돌아와서 아이가 돌봐주기를 바라는 뻔뻔스러움으로 아이를 사랑하고 있지 않나요?”(71p)

 

후미코의 아버지는 후미코를 막내 외삼촌에게 시집보내려고 했다. 아무리 숟가락 하나의 부담을 던다고 하더라도 이런 막장 드라마는 아니지 않는가!

 

이 얼마나 끔찍한 일인가, 아버지는 나를 노예로 막내 외삼촌에게 판 것이다. 참으로 나에 대한 모욕이다. 아니, 아버지뿐만이 아니다. 불문에 들어간 막내 외삼촌 역시 이 얼마나 더러운 짐승인가...막내 외삼촌은 처녀의 육체를 탐하는 동물적인 욕망 때문에, 그렇다. 그저 그 동물적인 욕망 때문에 나를 사려고 한 것이다...치요 씨와 사귀며 정을 통하면서, 또 한편으로 나를 노리개로 삼으려 한 것이다...’(180-181p)

 

 

 

콩가루에서 탈출을 시도하다

17살의 봄, 가네코 후미코는 내일 도쿄로 가겠습니다란 말을 남기고 가족을 떠난다. 수중에 기차삯을 포함해 겨우 10엔이 있었다. 아버지란 작자는 우산 하나도 준비해주지 않았다.

 

안녕, 아버지여, 이모여, 남동생이여, 외할머니여, 지금까지 나와의 관계를 맺은 모든 것이여, 안녕, 안녕, 이제야말로 우리가 헤어질 때가 온 것이다.’(218p)

 

 

 

도쿄에서의 변화

도쿄에서 신문팔이, 가루비누, 행상, 식모살이, 식당 종업원 등을 하면서 어렵게 공부에 대한 열정을 불태우던 그녀는 조선인 아나키스트, 사회주의자들과 교류하면서 사회에 대해, 그리고 자기 자신에 대해 눈을 뜨게 된다.

 

처음에 온통 희망으로 불탔던 나는 고학을 해서 훌륭한 사람이 되는 것을 유일한 목표로 삼아왔다. 그러나 이제는 확실히 알고 있었다. 지금 세상에서는 고학 같은 것을 해도 훌륭한 인간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아니, 그뿐만이 아니다. 소위 말하는 훌륭한 인간일수록 별 볼일 없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훌륭하다는 말을 듣는 것에 무슨 가치가 있겠는가. 나는 다른 사람을 위해 사는 것이 아니다. 나 자신의 진정한 만족과 자유를 얻어야만 한다. 나는 나 자신이어야 한다.

나는 너무도 많은 사람들의 노예로 살아왔다. 너무도 많은 남자들의 노리개로 살아왔다. 나는 나 자신의 일을 해야만 한다. 그렇다. 나 자신의 일을 말이다. 그런데 나 자신의 일이란 무엇일까? 그것이 알고 싶다. 그것을 알아내어 실천하고 싶다.’(304-305p)

 

 

 

박열을 만나다

조선인 아나키스트 박 열을 만난 가네코 후미코는 자신의 인생의 진정한 반려자, 동지를 만나고 동거하기에 이른다. 그리고 옥중에서 혼인신고를 한다. 일본 법정에서 조선인 의복을 입고 재판을 받는다. 일본인인 그녀가 어떻게 자신의 조국을 배반하고 조선인의 입장에서 말하고 행동할 수 있는가? 그녀의 삶과 인생스토리를 알지 못한다면 함부로 비난하고 비판할 수 있을 것이다. 영화 <박열>에서 취조하는 장면이다. 일본 천황 폭탄 테러의 계획에 대해 심문하는 장면에서 가네코 후미코는 시종일관 박열과 모든 것을 함께 하려는 발언을 한다. 죽어도 같이 죽고 살아도 같이 살고자 하는 그녀의 열정이 드러난다. 후미코가 검사에게 박열은 뭐라고 하던가요?’라고 질문하자, 검사는 박열의 말을 쪽지에 적은대로  전해준다.

    

후미꼬에 관한 이야기를 내가 질문하면 그녀의 감정이 상할 수도 있으니 그녀의 주체적인 판단에 맡긴다.’(영화 대사 중에서)

나는 이 대목에서 굉장한 감동을 받았다. 후미코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잘 아는 박열이 그녀의 인격과 성격을 배려해서 말한 부분이다. 이 말에 후미코의 입가에 깊은 미소가 배여나온다.

 

저 사람은 마치 집 없는 들개 같아요. 그런데 왜 저렇게 도도하죠? 마치 태도가 왕자 같아요.’(308p)

 

그 사람 안에 작용하는 것은 무엇일까? 저렇게 힘있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 나는 그것을 찾고 싶었다. 그것을 내것으로 만들고 싶었다....그렇다. 내가 찾고 있는 것, 내가 하고 싶어 하는 일, 그것은 분명 그 사람 안에 존재한다. 그 사람이야말로 내가 찾고 있던 것이다. 그 사람이야말로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을 가지고 있다.’(309p)

 

이런 후미코가 박열을 처음 만난다.

 

나는 당신 안에서 내가 찾고 있던 것을 발견했어요. 당신과 함께 일할 수 있었으면 해요.”

 

저는 별 볼 일 없는 사람입니다. 그저 죽지 못해 사는 사람이죠.”(315p)

 

기다려주세요. 조금만 더요. 내가 학교를 졸업하면 바로 같이 살아요. 그때는 내가 언제나 당신 곁에 있을게요. 결코 당신을 병 따위로 힘들게 하지 않을 거예요. 죽는다면 같이 죽어요. 살아도 같이 살고 죽어도 같이 죽어요.”(320p)

 

가네코 후미코의 수기는 여기까지이다. ‘박과 나의 동거 생활에 대한 기록 외에 다른 것은 쓸 자유가 없었다고 후미코는 말한다.

 

 

 

23살의 꽃이 지다

1926727, 가네코 후미코는 우쓰노미아 형무소에서 스물셋의 한 여름에 이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1931년 후미코가 스스로 목매달아 죽은 지 5, 그녀가 죽은 7월에 형무소에서 4년 동안 썼던 수기가 한 권의 책으로 세상에 나왔다. 무엇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는가는 바로 가네코 후미코의 형무소에서 수기로 기록한 자서전이다.

 

1923년 간토대지진으로 일본은 극도의 혼란 속에 빠져든다. 일본 정부는 대지진에 대한 수습과 대책을 마련하기 보다 희생양을 찾기에 바빴다. 그 희생양이 바로 조센징이었다. 이때 표면적으로 드러난 숫자는 6천명의 조선인이 무참히 학살당했다. 그 와중에 천황 암살 시도 혐의로 박열과 가네코 후미코도 검거된다. 19263월 사형 선고를 받았다. 하지만, 3.1운동 트라우마가 있는 일본인들은 독립운동가의 사형집행의 후폭풍이 또한 거세어질 것을 예상했다. 그래서 천황의 자비, 은혜 어쩌구 저쩌구 하면서 무기징역으로 감형된다. 함께 죽기를 갈망했던 두 사람의 소원은 이루지 못했다.

 

또한 가네코 후미코의 죽음의 원인을 자살이라고 보편적으로 이야기하지만, 어떻게 보면 의문점이 없어 보이진 않는다.

 

    

 

그 유명한 박 열과 후미코의 사진

  이 사진은 박 열이 자신의 어머니에게 보내줄 유작이 될 뻔한 사진이었다. 내가 이 사진을 처음 봤을 때 도발적이라는 생각을 했다. 무려 100여년 전이었는데, 이런 포즈로 사진을 찍다니 말이다. 하지만, 가네코 후미코의 인생스토리와 박열의 영화를 감상하고 난 후 느끼는 감정은 남다르다. 그 두 사람의 화양연화’, 인생의 정점이 바로 이 사진을 찍을 때가 아니었나 싶다.

 

 

 

Epilogue...박 열의 뒷 이야기

21세에 투옥된 박 열은 222개월의 최장기 수감기록을 세우면서 44세의 나이에 해방과 함께 석방되었다. 박열과 가네코 후미코의 라이프스토리를 들여다 본 형무소 소장은 수많은 조선 동포들 앞에 서서 자신의 죄를 참회하는 연설을 했다. 이날 그는 자신의 아들을 박열의 양자로 바쳤고, 이름 또한 박정진으로 개명했다. 박열은 후에 월북하여 1974년 평양에서 72세에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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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19-09-11 17: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박열 영화의 영어 제목이 <식민지에서 온 무정부
주의자>네요.

일정 시대에 형무소에서 22년을 살고 나왔다니
정말 대단하네요.

그나저나 메리 추석~입니다.

카알벨루치 2019-09-11 17:59   좋아요 0 | URL
happy 추석 되시길 삼가 바랍니다 ㅎㅎㅎㅎ

서니데이 2019-09-11 18: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카알벨루치님, 즐거운 추석연휴 보내세요.^^

카알벨루치 2019-09-11 20:51   좋아요 1 | URL
네 서니데이님두 건강하시고 맛난거 많이 드세욧!^^

stella.K 2019-09-11 19: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영화 <박열>은 봤는데 영화가 뭔가 모르게 아쉽더군요.
영화에서 후미코를 알고 그녀에 관한 책이 있다는 건 알았는데
이 책은 처음 보는 것 같습니다.
사실 알고 보면 일제 시대는 그 시대 권력자들에게나 좋았지
이런 저런 이유로 우리나라에 이주해 온 일본인들이
꼭 행복했던 건 아니더군요.
특히 일제 말과 해방 이후엔 우리나라 사람들이 분노에 차서
그들도 못지 않게 힘든 세월을 살았더라구요.
물론 우리 민족이 당한 것에 비하면 덜할지 모르겠지만.

카알벨루치 2019-09-11 20:50   좋아요 0 | URL
이 책은 후미코의 옥중수기인데 후미코의 친할머니 쪽이 너무 하더군요 책읽고 영화보니 마음이 더 짠했습니다 명절 잘 보내세요 스텔라님^^

단발머리 2019-09-15 08: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박열도 박열이지만 정말 후미코의 삶은 너무 파란만장하네요. 그 시대에, 버림받은 여성으로 얼마나 살기 힘들었을까.... ㅠㅠ
카알벨루치 페이퍼로 일본인과 한국인 아웃사이더들의 사랑이 완전히 다른 코드로 읽히네요.
잘 읽고 갑니다!!
이제 교회 가야죠, 명절 지나 주일입니다^^

카알벨루치 2019-09-15 09:48   좋아요 0 | URL
한일관계가 어수선한 상황 가운데 공교롭게도 제가 일본작가의 책들을 읽게 되다니...ㅎㅎ예배 잘 드리고 오셔요~
 
산시로 현암사 나쓰메 소세키 소설 전집 7
나쓰메 소세키 지음, 송태욱 옮김 / 현암사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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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산시로는 소세키의 소설 중에서 특별히 그 후, 과 연결된다. 스토리 전개상 그렇게 볼 수 있다. 나는 산시로를 읽고, 을 읽고, 그 후를 읽었는데, 좀 더 흥미진진하게 보고자 하는 독자라면,

 

산시로-그 후-,

 

이런 순서로 읽으면 더 좋겠다 싶다.

 

 

 

2

8월 중순에 우연히 잡아 든 나쓰메 소세키의 산시로는 정말 경이적이었다. 100년 전의 일본작가가 어떻게 청춘의 아픔과 슬픔을 표현하는데, ‘스트레이 십stray sheep’이란 말로 대사를 쳐내는 게 압권이었다. 산시로는 갑 중에 갑이라고 생각한다. 구마모토 출신인 시골청년 산시로가 도쿄로 넘어와 생활하면서 도회인들을 만난다. 거기서 미네코를 만난다. 두 사람의 마음은 소위 썸을 타는 관계였다. 하지만, 미네코의 마음을 확 잡아채지 못하는 산시로...

 

마권으로 맞히는 것은 사람의 마음을 맞히는 것보다 어렵지 않은가요? 당신은 색인이 붙어 있는 사람의 마음조차 맞혀보려고 하지 않은 태평한 분인데 말이에요.”(225p)

 

미네코의 대화를 들어보면, 산시로가 미네코의 마음을 답답하게 만든다. 미네코는 산시로가 요지로에게 빌려 준 20엔 때문에 하숙비를 못 낼 처지가 생겼다. 하지만 요지로를 통해 미네코는 기꺼이 산시로에서 20엔이 아니라 30엔의 돈을 빌려준다. 남녀가 돈을 빌려준다는 것이 쉬운 일인가! 그런데, 미네코가 산시로에게 거금의 돈을 빌려준다. 30엔은 좀 과장해서 산시로의 가족이 반년은 먹고 살 수 있는 돈이기도 했다. 산시로와 미네코의 달달한 러브 스토리는 풍마우(風馬牛)로 마무리된다(풍마우: 발정기의 짐승도 찾아갈 수 없는 멀리 떨어진 거리, 서로 아무런 관계가 없음을 비유한 말, 사기제환공기에서 나오는 말). 작가 나쓰메 소세키는 풍마우란 단어를 사용했다. 어떻게 이런 말로 남녀관계를 묘사할 수 있을까?

 

 

3

산시로의 스토리는 대단한 스토리가 아니다. 하지만, 작품 전반에 드러나는 소세키의 문장과 재치가 너무나 탁월하다. 산시로가 미네코의 미래에 대한 소식을 듣게 되었다. 미네코의 마음이 이 문장에서 드러나는데, 이 문장이 구약성경에 나오는 구절을 인용하고 있다(다윗이 자신의 충직한 부하였던, 우리야의 아내 밧세바와 간음을 하고 난 후 나중에는 우리야는 죽이는 계획을 실행, 밧세바와 결혼까지 하게 된다. 여호와 하나님은 나단 선지자를 통해 죄를 지적한다. 다윗은 자신의 죄에 대해 참회하면서 적은 시편이다).

 

내 죄를 내가 알고 있사오며

내 잘못 항상 눈 앞에 아른거립니다.’(330p-성서(공동번역))

 

산시로를 떠나는 미네코의 마음이 걸려 있는

-스트레이 십! 스트레이 십!

 

미네코의 초상화인 <숲 속의 여인>의 그림제목이 맘에 들지 않는다면서 마지막으로 내뱉는 산시로의 말,

 

-‘스트레이 십! 스트레이 십!’...

 

이건 완전 영화의 한 장면 같지 않은가! 그런데, 이렇게 말하면 너무 작품의 느낌이 격하되는 것 같다. 무엇으로 표현할 수 없는 그 느낌! 현암사에서 소세키의 전집으로 나왔다. 개인적으로 너무 마음에 드는데, 디자인과 책이 주는 깔끔한 느낌이 작품과 너무 잘 맞아 떨어지는 듯 하다. 마음 같아선 당장 다 지르고 싶지만 참자!

 

 

 

4

나는 20대의 청춘에 얼마나 많은 방황을 했던가! 상처와 아픔과 슬픔을 나누면서 저돌적으로 살아왔던가! 하지만, 소세키가 보여주는 산시로의 방황은 정제되어 있다. 왜냐하면 작품의 초반부에 낯선 여인과의 잠자리를 같이 하고 난 후(말 그대로 그냥 잠자리였다!) 그 여인은 ‘23년간 지녀왔던 자신의 약점을 정곡으로 찔러 버린다.

 

당신은 참 배짱이 없는 분이로군요.”(24p)

 

산시로의 배짱 없음이 문제였을까? 미네코는 산시로도 아닌, 노노미야도 아닌 제 3의 인물에게로 가버린 것은 두 사람을 위한 배려였을까? 청춘의 계절에 해답을 찾을 수 없는, 해답을 찾기 위해 방황하는 젊은이들의 편린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100년 전에 이런 작품이 나올 수 있었다는 것!

그리고, 번역자는 상실의 시대의 와타나베와 산시로를 비교한다. 100년 전 욕망을 거세하며(?) 배짱이 없이 산 산시로의 상실과 돈 쥬앙과 같은 여성편력을 자랑하던 현대의 욕망가, 와타나베의 상실! 현대는 욕망이 증폭될대로 증폭된 시대이기도 하다.

 

산시로의 무채색의 투명하고 정갈한 느낌의 상실감에 더 많은 점수를 주고 싶다. 내가 20대가 아니어서 그럴까?

 

 

 

5

멀리 구름 걸린 하늘의 두견새

작품 가운데 멀리 구름 걸린 하늘의 두견새란 하이쿠가 등장한다. 띠지에 그 문구가 나와 있어 두견새가 뭘까 싶어 뒤져보니 네이버 박사가 이렇게 말하고 있다.

 

두견이는 대체로 그 울음소리가 구슬퍼서 한()이나 슬픔의 정서를 표출하는 시가문학의 소재로 자주 등장하였다

 

두견새가 가진 심상, 두견새의 슬픈 울음소리...일본에서나 우리나라에서나 그 소리의 느낌은 같은 동양권이니 더 하지 않을까 싶다. 배짱 없다고 지적받은 23세 청춘의 산시로의 깨진 심장소리가 들리는 듯 해 감동이 더 하다.

 

"스트레이 십! 스트레이 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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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랑비 속의 외침 - 2판
위화 지음, 최용만 옮김 / 푸른숲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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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우리는 유년시절을 보내면서 다양한 경험과 체험을 한다. 때로는 필요하고 시의적절한 경우case by case도 있고, 때로는 그 나이 때의 자아가 견뎌내기엔 너무 무겁고 버겁고 둔중한 damage를 받아들여야 하는 경우도 있다. 사랑하는 가족이나 친구들의 죽음을 목도하는 경우는 더할 나위 없는 충격이다. 무수한 충격, 총격에 버금가는 정서적, 정신적 충격에 거덜나지 않으면 좋으련만.

 

 

 

2

위화의 가랑비 속의 외침은 할아버지 손유원, 아버지 손광재, 그리고 주인공 손광림, 그리고 형제들, 친구들, 이웃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사건의 이야기들이다. 찢어지게 가난한 환경 속에서 숟가락 하나의 무게를 덜기 위해 6살 때 왕립강과 이수영 부부에게 입양된지 5년 만에 다시 고향 남문으로 돌아오면서 소설은 마무리된다. 엽기적인 조부, 엽기적인 친부, 엽기적인 이웃들, 그리고 엽기적인 양부의 행각은 치를 떨게 하지만, 이 모든 것이 위화의 기억을 관통한 이야기들이다.

 

 

 

3

주인공 손광림은 성장하면서 맞는 무수한 가랑비 속에 한 소년의 외침이 있듯이, 우리도 성장하면서 가랑비 속의 외침이 분명히 있었을 것이다.

 

 

 

4

광림과 소우의 우정의 한 컷은 감동적이다.

소우는 웬 아가씨를 성적인 충동, 욕구에 못 이겨 껴안고 도망친다. 그로 인해 학교에서 1년간 노동교육이란 처벌을 받게 된다. 1년이 지나 돌아온 후에 소우가 광림에게 한 여자를 껴안은 느낌친구 정량의 어깨를 안은 느낌과 비슷하다고 이야기했을 때 광림은 자신이 아닌 정량이라고 이야기해서 몹시 서운해한다. 하지만, 후에 소우는 이전의 이야기를 수정해서 다시 말한다.

 

사실 정량의 어깨가 아니라 네 어깨를 안을 때의 느낌이었어. 그때 그런 느낌이 들었어.”(147p)

 

광림과 소우의 따뜻한 우정이 한 shot이다.

 

 

 

5

마치 천명관의 고래를 보는 느낌이다. 고래는 잘 정리된 이야기라면, 가랑비 속의 외침은 주인공의 기억의 파편들을 흩어놓은 느낌이다. 하지만 우리의 기억도 집합된, 편집된 덩어리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파편들과 조각들이 얽히고 설킨 채 우리의 뇌 속, 기억 속 저편에 남아 있지 않는가! 그래서, 이야기의 파편들임에도 불구하고 잘 읽힌다. 작가 위화는 인생을 쓸 당시에는 <마태수난곡>을 들으면서 적었다고 하는데, 이 작품을 쓸 당시에는 다 쓰고 나서 음악을 생각했다고 한다.

 

위화, 이 사람 이야기꾼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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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 있는 나날 민음사 모던 클래식 34
가즈오 이시구로 지음, 송은경 옮김 / 민음사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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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1

가즈오 이시구로는 1954년에 일본에서 태어났다. 그는 5살 때 아버지(해양학자)의 진로에 따라 영국으로 이주했고 영국에서 철학과 문예창작을 공부했다. 특별히 이 남아 있는 나날1989년에 발표되어 부커상을 받아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또한 제임스 아이보리 감독의 영화로 제작되기도 했다. 1995년에는 문학적 공로를 인정받아 대영제국 훈장을, 1998년 프랑스 문예훈장을 받았고, 2010<타임스>가 선정한 “1945년 이후 영국의 가장 위대한 작가 50에 선정되었다고 한다.

2017소설의 위대한 정서적 힘을 통해 인간과 세계를 연결하고, 그 환상의 감각 아래 묻힌 심연을 발굴해 온 작가라는 평과 함께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그런데, 나는 왜 이 작품을 이제야 알았을까? 그래도 지금에서야 읽은 게 어디인가? 싶다.

 

 

 

2 뭣이 중헌디?-a

스티븐스는 위대한 영국 귀족인 달링턴 경의, 달링턴 홀의, 위대한 집사의 역할로 한평생 잘 달려왔다. 아버지도 품격있는 집사였고, 자기 또한 품격있는집사에 대한 자부심과 승리감이 가득했다. 달링턴 홀에서 유럽의 각국의 대사들과 정치가들이 은밀한 회동을 벌이는 모임을 준비하기 위해 철두철미하게 움직였던 집사, 스티븐스! 회담이 진행되는 그 바쁜 와중에 아버지가 뇌졸중로 쓰러지셨다. 아버지의 임종을 옆에 지켜야 할 아들의 입장이지만, 그럴 처지가 못 되었다. 스티븐스는 아버지도 집사였기에 아들의 그런 입장을 충분히 이해해 줄 거라고 믿었다. 스티븐스는 이 소설 속에서 달링턴 홀의 새로운 주인인 페러데이의 배려로 여행길을 떠나게 된다. 그러면서 인생을 회상하는데, 19233월의 그 회담이 자신의 인생의 전환점이었다’(91p)고 말한다.

 

무엇보다도 그 회담이 내가 집사로서 진정한 성년에 도달하게 된 계기가 되지 않았나 싶다

 

지금도 그날 저녁을 생각할 때면, 함께 떠오르는 가슴 아픈 기억들에도 불구하고 뿌듯한 성취감에 젖어 드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144p)

 

 

거기에는 아버지의 임종을 지키지 못한 아들의 모습이 있었다.

 

 

 

 

3 뭣이 중헌디?-b

스티븐스의 사랑? 함께 달링턴 홀을 섬겼던 총무, 켄턴 양(후에 벤 부인이 됨)은 집사로서 프로페셔날한 직업적인 면모를 공유했다. 그 가운데 두 사람 사이에 감정의 기운이 싹트지만. 스티븐스는 위대한 집사’, ‘직업적인 실존을 위해 자신의 사사로운 감정을 거세한 듯 절제한다. 이루어질 것만 같은 두 사람의 관계는 결국 아쉽고 안타깝게 마무리된다. 여자가 자신이 소개팅 or 선을 봤다면서 좋아하는 남자 앞에서 마음을 체크 해 볼 때, 남자가 그 순간 여자의 마음을 확 잡아채야 하는데. 스티븐스에게는 사랑의 품위보다 집사의 품위가 더 우선순위였나 보다. 그는 마음속으로 흠모하는 켄턴 양이 자신의 쉬는 시간에 집무실로 진군해 들어왔다고 굉장히 불쾌해한다. 보통 사랑하는 사람이 개인적으로 찾아왔을 때, 반가워하고 기뻐하고 감사하는 게 당연한 이치이지만, 스티븐스는 의외였다.

 

자기 직업에 자부심을 느끼는 집사라면, 그 옛날 <헤이스 소사이어티>가 명시한 자신의 지위에 상응하는 품위를 열망하는 집사라면, 남들 앞에서 결코 쉬지않는 법이다. 그때 들어온 사람이 켄턴 양이었던 생면부지의 인물이었든 그런 것은 하등 중요하지 않았다...그 때 켄턴 양이 불쑥 들어온 사건의 경우에 원칙의 차원, 아니 품위의 차원에서 중대한 문제가 되는 것은 그 때 내가 완벽한 본연의 역할 속에 사는 모습이 아니었다는 데 있다.’(207-208p)

 

 

 

 

4

달링턴 홀의 달링턴 나리를 평생 섬기면서 세계 각국의 내놓으라 하는 위인들과의 만남을 준비했던 위대한 집사’, 스티븐스! 세계대전 중에 윈스턴 처칠까지도 달링턴 홀에서 섬겼다고 고백한 스티븐스였다.

 

자신이 봉사해 온 세월을 돌아보며, 나는 위대한 신사에게 내 재능을 바쳤노라고, 그래서 그 신사를 통해 인류에 봉사했노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람만이 위대한 집사가 될 수 있다’(149p)

 

스티븐스는 여행 중에 만난 칼라일 박사와의 대화에서 품위에 대해

 

몇 마디로 설명하기는 힘들겠지만....., 결국 사람이 공중 앞에서 옷을 벗지 않는 것으로 귀착된다고 봅니다.”(260p)

 

라고 말한다. 스티븐스가 말한 직업적인 실존, 직업적인 프로페셔날리즘, 집사의 품위는 너무나 독보적이다. 스티븐스는 35년을 달링턴 경을 위해, 달링턴 홀을 서빙하는 것에 온 몸을 바쳤다. ‘내가 드려야 했던 최고의 것을 그분께 드렸지요’(298p) 스티븐스는 한결같은 충성심으로 달링턴 경을 섬겼고 그 35년간의 진액을 쏟는 직업적인 실존존재론적 실존을 압도한다. 거기서 그는 승리감과 보람과 성취를 자아도취적으로 느낀다. 하지만...그는 인생의 황혼 녁에 맞이하는 여행을 통해서 과거를 돌아보게 된다. 수십년 만에 만난 켄턴 양(벤 부인)은 노년에 이제 손주를 보게 될 기쁨을 이야기한다. 그러면서 묻는다.

 

당신은 어떤가요, 스티븐스 씨? 달링턴 홀로 돌아가면 당신에게 어떤 미래가 기다리고 있을까요?”

 

글쎄요.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공허함은 아닐겁니다, 벤 부인. 그런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마는 그럴 리가 없지요. 일 다음에 일, 그리고 또 일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죠.”(290p)

 

달링턴 경이 3년 전에 죽고, 미국인 패러데이가 달링턴 홀의 주인으로 바뀌면서 스티븐스 집사는 그 집과 함께 일괄 거래에 낀 한 품목으로서’(298p) 남게 된다. 스티븐스가 추구했던 위대한 집사로서 그는 성공했을지 모르나 작가가 스티븐스가 인생에서 놓친 부분들을 보여주면서 우리 인생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묘사해주는 듯 하다. 켄턴 양과의 사랑을 거세하면서 성취한 집사의 품격은 이제 노년에 접어든 스티븐스에게 점점 더 많은 실수들, 지극히 사소한 것들’(298p)이 치밀고 올라온다. 위대한 집사였던 아버지가 노년에 보여준 실수들처럼 그 또한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것이 아닌가! 세월을 비껴 가는 인생은 없지 않는가!

 

 

 

 

5 뭣이 중헌디?-c

35년을 달링턴 나리를 위해 헌신했다. 그 달링턴 경에 대해 스티븐스는 이렇게 말한다.

 

그 분에 대해 엉터리 소리를 해대는 사람들 대다수를 난쟁이로 만들어 버릴 만큼 도덕적으로 대단한 거인이셨다고, 마지막 순간까지도 그러셨던 분이라고 서슴없이 단언할 수 있다’(161p)

 

하지만, 스티븐스의 인생의 전환점이 되었던 19233월의 그 달링턴 홀에서의 회담은 1918년의 베르사유 조약이 독일 편에서는 엄청나게 가혹한 조항들이었기에 수정될 수 있게 각종 방안들을 논의하기 위한 자리였다. 스티븐스는 집사였기에, 주인인 달링턴 경의 모든 사업적인 결정, 직업적인 결정에 대해 따라갈 수밖에 없었지만, 그 결정들이 조심스러운 정치적인 사안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무관심한, 맹목적인 충성심’(250p)이었다는 데 도덕적인 책임을 물을 수 있다. 달링턴 경이 대부였던 젊은 카디널은 이런 스티븐스의 도덕적인 무감각과 무관심을 작품 중간에 지적한다. 달링턴 경이 주도하는 회담과 모임의 성격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 스티븐스는 시종일관 무관심하며 무신경하게 반응한다. 그가 살아온 방식이기도 했다.

 

하지만, 달링턴 경은 죽을 때 자신이 잘못 살았다고 이야기한다. 그는 자신의 명성과 명예가 전쟁 후에 끊임없이 추락하는 것을 경험한다. 그는 알게 모르게 히틀러의 사주받은 꼭두각시 노릇를 한 셈이었다. 그러나, 스티븐스는 이런 도덕적인 책임에 대해 비겁한 핑계를 대고 있다. 일례로, 달링턴 경이 달링턴 홀의 직원 중에 유대인들을 해고하라는 지시에 대해 스티븐스는 총무 켄턴 양의 완강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무조건 명령 복종만을 내세워 해고시킨다.

 

달링턴 경의 노력이 잘못되었을 뿐 아니라 어리석기까지 했음을 세월이 입증해 주었다고 해서, 어떤 면으로든 어떻게 내가 비난받아야 한단 말인가? 내가 그분을 모셔 온 세월을 통틀어, 증거를 저울질하고 나아갈 길을 판단한 것은 바로 그분 자신이었으며, 나는 다만 나 자신의 전문 분야에서 지극히 온당하게 움직였을 뿐이다. 그리고 가히 일등급이라 인정받을 만한 수준에서 내 능력 닿는 데까지 직무를 수행한 것 밖에 없다. 오늘날 나리의 삶과 업적이 안쓰러운 헛수고쯤으로 여겨진다 해도 내 탓이라고는 할 수 없다. 나에게도 응분의 가책이나 수치를 느끼라고 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앞뒤가 맞지 않는다.’(251-252p)

 

이 대목에서 번역가 김남주는 한나 아렌트가 지적한 악의 평범성에 대한 언급을 한다. ‘스티븐스가 위대한 집사였다면, 아이히만은 좋은 아버지, 자상한 남편, 성실한 직업인이었다’(308p)

 

 

 

 

6 하루 중 가장 좋은 때는 저녁

가족도, 사랑도 비켜 가고, 도덕성도 비켜 간 위대한 집사, 스티븐스에게 남은 것은 이제 황혼기의 남아 있는 나날뿐이다. 하지만, 몇 십년 만에 만난 옛 사랑 켄턴 양은 이런 말을 남긴다.

 

즐기며 살아야 합니다. 저녁은 하루 중에 가장 좋은 때요. 당신은 하루의 일을 끝냈어요. 이제는 다리를 쭉 뻗고 즐길 수 있어요. 내 생각은 그래요. 아니, 누구를 잡고 물어봐도 그렇게 말할 거요. 하루 중 가장 좋은 때는 저녁이라고.”(300p)

 

하루의 일과가 끝나는 저녁 타임은 보통 사람들에겐 농담과 우스갯소리를 하면서 하루를 마무리하는 자리이다. 그러기에 하루 일과가 마무리 되었다는 데서 오는 성취와 보람이 내려앉은 자리이기도 하다. 두 남녀 노인이 선창가에서 바라 본 풍경은 저녁을 즐기는 보통 사람들의 영상이었다. 거기에는 위대한 집사에게 빠져 있었던 그 무언가가 있었다. 그것을 작가 가즈오 이시구로는 농담의 기술’(302p)이라는 메타포를 등장시킨다.

 

 

 

 

7

직업의 현장에서 칼날 같은 집사의 삶을 살았던 스티븐스에게 노년에 맞는 달콤한 6일간의 여행은 인생에 있어 뭣이 중헌디?’(무엇이 가장 중요한가?)를 보여주면서 독자에게 똑같은 질문을 던지는 대목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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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19-08-23 09: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보통 사람들의 선악에 대한
통렬한 작가의 비판이라고 보지
않을 수가 없네요.

달링턴 경으로 대변되는 영국
지식인 혹은 귀족들의 독일에 대
한 유화정책이 결국 전대미문의
전쟁이라는 참혹한 결과를 가져
오고, 자기 국가마저 풍전등화의
위기로 내몰았으니 말입니다.

영화에서 보면 스티븐스 아저씨
가 여행길에 어느 여인숙인가에
머물게 되는데, 그 집의 전사한
아들의 방에 머물게 되죠.

정말 의미심장한 한 컷이었습니다.

카알벨루치 2019-08-23 17:04   좋아요 0 | URL
영국의 정치적 배경이 묻어있네요 영화도 한번 보고싶은 작품입니다 영화가 더 돋보인다는 이야기도 있던데 레삭매냐님 댓글이었던가요? ㅎㅎ
 
인간 실격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03
다자이 오사무 지음, 김춘미 옮김 / 민음사 / 200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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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인간실격은 다자이 오사무의 자전적 이야기이다. 나는 작가 다자이 오사무의 인생을 보면서 그 작가에 대해서 깊은 애정과 위로를 건네받았다.

 

 

 

2

다자이 오사무는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 별 어려움이 없이 살았던 인물이다. 대학에 들어가서 그는 공산주의, 마르크스주의를 만나게 된다. 그래서 작가 다자이 오사무는 부유하게 살아왔다는 것에 대한 죄책감을 가지게 된다. 한때는 공산주의 사상에 심취하여 열성적인 활동을 하기도 했다. 작가 다자이 오사무의 첫 번째 죄책감, guilt는 바로 부에 대한 부담감, 죄책감이었다.

 

 

 

3

두 번째 죄책감, guilt는 무엇이었는가? 다자이 오사무의 형이 국회의원을 나가야 하기에, 당시 보수 우익의 정권시절에 좌파사상에 심취해 있는 동생 다자이 오사무에게 너의 여성편력으로 인한 결혼도 인정해주고, 학비도 대줄 테니 의절하자는 내용이었다. 우익의 정치인으로 등장해야 하는데, 집안 핏줄에 좌익 사상을 가진 동생이 있다는 것을 정치무대에 나서는 형에는 굉장한 아킬레스 건으로 작용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다자이 오사무는 자신의 사상적인 견고함에 비해 생활력은 다소 약했나 보다. 다자이 오사무를 휘감고 있는 심약함은 작품 전반에 드러나고, 결국 그 심약함과 절박함은 자살로 이어진다. 그의 사상에 따라 자신을 투신했으면 그것으로 끝나면 좋았겠지만, 그의 마음속에는 일평생 부모님과 집안의 기대, 생가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자신에 대해 심적인 부담감이 굉장히 컸던 것을 볼 수 있다. 생가의 기대에 대한 죄책감이 두 번째 다자이 오사무의 guilt였다. 그는 심지어 대학을 졸업해야 할 시점에 좌익활동으로 인해 졸업을 하지 못한다는 것, 졸업을 하면 자신의 생활비를 벌어야 한다는 것 자체가 굉장히 큰 고통으로 다가왔다. 그 이유로 인해 한 차례의 자살시도를 하기도 했다.

 

 

 

4

세 번째 죄책감, guilt21살 때 동반자살을 시도했던 다나베 아쓰미(당시 19)와 같이 죽지 못했다는 현실 때문이었다. 사랑하는 연인은 죽었지만, 자신은 살아남았다는 데서 오는 좌절감과 자책감이 늘 그를 따라다녔다. 다나베 아쓰미의 가족의 시선, 더 나아가 자기 자신을 향한 매몰찬 시선이 그를 평생 따라 다녔던 것이다. 다자이 오사무는 39세에 죽기까지 다섯 번째의 자살시도를 했다. 결국 다섯 번째 자살시도는 강물에 투신함으로 이뤄졌고, 마흔이 되기도 전에 일생을 마쳤다.

 

 

 

5

다자이 오사무의 문학의 목적, 자신의 일생의 목적은 자기파멸이었다. 자신을 향한 죄책감과 자책감의 덩어리가 그를 계속적으로 자기파괴로 몰고 간다. 그의 작품을 읽은 독자들은 이 친구가 언젠가는 자살을 하겠구나하는 생각을 들게끔 만들었다고 평론가는 이야기한다. 아니나 다를까, 결국 그는 자살이란 도구로 자기파멸의 마침표를 찍고 만다.

 

인간실격이 그의 최후의 작품은 아니지만, 그의 인생과 문학의 최종적인 결론으로 보아도 무방하겠다. 작가 다자이 오사무를 둘러싸고 있는 인생의 큰 무거운 짐, 죄책의 이 세 가지 무게감이 결국 그를 그렇게 떠나게 만든 것이다.

 

 

 

6

우리는 왜 문학작품, 작품, 텍스트를 읽는가?

우리는 문학작품이나 다양한 매체의 이야기들을 접한다. 그들의 인생의 라이프스토리나 삶들을 바라보면서, 텍스트 위에 놓여진 구체적인 디테일한 상처와 아픔과 고통과 불행과 절망을 보면서 독자는 위로받고 공감하며 이해하게 된다.

 

 

 

 

7

우리는 어떤 경우에 공감하고 동감하며 위로받는가?

나보다 더 나은 사람, 더 대단한 사람을 만나서 위로받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우리 보다 더 못한 사람, 더 열악한 사람을 보면서 위로받고 공감받는 것이다. 당대의 일본의 문학의 분위기는 자살에 대해 우호적인 분위기가 팽배했다고 평론가는 이야기한다. 다자이 오사무가 자살했을 때 그의 비극적인 삶과 문학을 사람들이 보면서 혀를 차면서 욕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공감하고 동감했던 것이다. 다자이 오사무의 인생과 작품의 비극을 보면서 2차 세계대전후에 전쟁의 패배로 인한 전의를 상실하고 낙담한 일본의 젊은 세대들에게 큰 영향력을 행사했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자신의 젊은 시대를 버틸 수 있었던 것은 다자이 오사무 덕분이었다고 이야기할 정도였다. 그것은 바로 고통이 고통을, 슬픔이 슬픔을 이해하였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8

피츠제랄드의 위대한 개츠비의 유명한 문장을 기억하는가?

누군가를 비판하고자 할 때 모든 사람이 너처럼 좋은 환경에서 태어나지 않았음을 기억하렴이란 말...

 

 

 

9

작품의 마지막 장면의 내용을 잠깐 인용해보고자 한다.

 

진정한 폐인...

아무래도 폐인이란 단어는 희극 명사인 것 같습니다. 잠들려고 먹은 것이 설사약이고, 게다가 그 설사약의 이름은 헤노모틴(더운물을 넣어 몸을 따뜻하게 하는 통)이라니, 지금 저에게는 행복도 불행도 없습니다.

모든 것은 지나간다는 것.

제가 지금까지 아비규환으로 살아온 소위 인간의 세계에서 단 한 가지 진리처럼 느껴지는 것은 그것뿐입니다.

모든 것은 그저 지나갈 뿐입니다.

저는 올해로 스물일곱이 되었습니다. 백발이 눈에 띄게 늘어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마흔 살 이상으로 봅니다.’(136-138p)

 

10

다자이 오사무는 자신을 향하여 인간실격이란 과도로 자신을 내리찍었나 보다. 그의 가슴에 수많은 상처와 생채기를 보면서, 그의 비극적인 인생과 작품을 보면서 우리는 고통이 고통을, 슬픔이 슬픔을 위로하고 이해하는선물을 건네받는다.

비극이 주는 매력이 이런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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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9-07-28 16:3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요즘 다자이의 단편을 읽고 있는데...
<추억>이라고 그의 유년시절에 관한 내용인데
그의 집안이 굉장한 부자라는 것이 가늠되어집니다.
초등학교 시절에 표절도하고 악동짓을 좀 했더군요.
전에 그의 또 다른 단편을 읽었는데 어느 장교가 자신의 아내와
활복자살을 하는 내용인데 그게 아직도 잊혀지지가 않아요.
분명 대단한 작가긴 한데 읽기는 좀 꺼려지더군요. 좀 우울한 문장이라...

잘 지내시죠?^^

카알벨루치 2019-07-28 18:06   좋아요 1 | URL
삶이 우울하니 작품도 우울하고...작가의 삶이 어떻게 그렇게 힘겹고 아플수 있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요즘 계속 건필하고 계시죠? 약속 못 지켜드려 죄송합니다 ㅠㅠㅎㅎ

서니데이 2019-08-04 18: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다자이 오사무는 작가의 개인사가 소설같아요. 그 시기를 살던 사람들 중에서도 평범한 인생은 아니었을 것 같고요.
오늘 날씨가 많이 더운데 시원하게 보내고 계신가요.
카알벨루치님, 좋은 주말 보내세요.^^

카알벨루치 2019-08-04 19:28   좋아요 1 | URL
여름은 더워야하지만 좀 덥긴 더운 날이네요 애들이랑 물놀이했더니 체력방전된 여름오후의 어느날입니다 서니데이님 방문 감사드립니다 ^^

공쟝쟝 2019-08-19 18: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 이 책을 좋아하지 않는 데요, 문제는 이 책을 잡은 순간 끝까지 다 읽었던 기억이 나요. 보통은 정말 싫거나 못읽겠으면 시간아깝다 미련 없이 건너뛰고 읽거나 덮어버리는 데, 정말 싫어하면서도 끝까지 읽었다는 건 매료되었다는 뜻이겠지요..ㅋㅋ
그게 무얼까 언젠가는 다시 읽어서 찾아내고 싶은데, 읽고 난 뒤 한 사흘은 무기력했던 책이라 좀처럼 다시 잡고 싶지는 않아요. 인간실격, 그리고 다자이 오사무.. ㅎㅎ

카알벨루치 2019-08-20 18:51   좋아요 1 | URL
몰입과 흡입력이 대단한 것은 아마 저자의 자전적 스토리라서 더 그런 듯 합니다~쟝쟝님 스토리에 빠져드는 힘이 뛰어나서 3일을 힘들어하신 듯~지인이 저더러 이런 책 그만 보라고 하더군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