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부제: 아직 사랑할 시간은 남았다!

 

 

키에르케고르가 말한 이 말을 나는 한때 좋아했었다.

 

젊음이란 무엇이냐? 꿈이다.

사랑이란 무엇이냐? 꿈의 내용이다.”

 

 

 

  젊은 나날의 우리 세대(90년대 학번)의 이야기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와 함께 시작되었다. 당시만 해도 지독히 파격적이고 외설적인 내용들이 담긴 하루키의 글은 나를 비롯한 청춘들에게 과대 흡입을 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내가 이 책을 두 번이나 읽었으니 말이다. 나는 하루키의 소설과 박일문과 이인화의 소설을 두 번 읽은 것으로 기억한다. 포스트모더니즘이 문화현상으로도, 그리고 글로써도 나타난 시기가 아닌가 개인적으로 생각해본다. 그때 남긴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의 리뷰는 하단에 링크를 걸어둔다.

 

    

 

 

윤리란 무엇인가? 도덕이란 무엇인가?

  극단적인 이야기를 한번 해 보자. 고우영의 십팔사략<춘추시대> 2권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일찍이 제환공의 딸 제강은 진나라 군주에게 시집을 갔는데, 군주가 죽고 그 아들 진 헌공이 대를 이었다. 아들은 아직도 젊고 아름다운 제강을 자기 아내로 삼아버린다. 제강은 진 헌공의 아들을 낳으니 이름은 신생(申生)이라 했다. 후에 융족에게서 끌려온 미녀 여희는 매서운 여자였다. 여성편력이 대단했던 진 헌공은 여희의 치맛폭에서 헤어나오지 못한다.

신생의 고뇌가 시작된다.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한 여자를 깔았다. 그녀는 내 할머니인가, 어머니인가? 나는 처음부터 이상하게 생겨난 생명. 하늘의 섭리를 벗어나 태어난 놈...’

 

신생은 결국 여희의 모함에 의해 궁지에 몰리자 어차피 이상하게 생겨났던 목숨...’이라면서 미련없이 자결하고 만다(십팔사략 2<춘추시대>, 74p).

 

 

신생에게 자신의 존재 자체가 반도덕적이고, 비도덕적인 출생이었다. 자기의 정체성 자체를 흔드는 문제였다. 여희의 모함도 모함이었지만, 자신의 윤리적인 공백이 더 큰 존재의 문제였다.

 

    

상실의 시대는 와타나베의 대단한 여성편력을 보여준다. 그리고 거기서 발생하는 상처와 생채기, 젊은 청춘이 보여주는 상처다발로 인해 가슴 가득히 안은 채, 마지막 대사가 뇌리에 남는다. 신생이 느꼈을 법한 질문과는 또 다른 질문이라고 보고 싶다.

 

'당신, 지금 어디 있어요?'

 

라는 미도리의 물음에 그는

 

'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라고 대구한다.

 

이 질문은 일종의 윤리적, 도덕적 딜레마 가운데 방황하는 청춘을 향한 질문이다.

 

 

 

 

시바타 쇼가 보여주는 것은?

 『그래도 우리의 나날의 시바타 쇼의 분위기도 그런 분위기이다. 하루키는 청춘들의 딜레마와 고뇌에 대해 질문만을 던졌다. 시바타 쇼도 마찬가지이다. 당시 학생운동이란 이름으로 모인 청춘들은 성에 대한 자유로움이 있었다. 섹스에 대한 모더니즘을 포스트모더니즘으로 바뀌면서 전통적이고 보수적인 연애관은 폐기처분 된 지 오래다. 이 책의 배경이 1950년대의 이야기이지만 그런 분위기가 흘러나온다. 물론 작품에는'남자와 손만 잡아도 처녀성을 잃어버렸다'고 이야기하는 미야티사란  인간도 있긴 하다. 아무튼 욕망이 있으면 섹스를 하면 되는 것이고 그게 용인되는 청춘! 주인공 오하시와 세쓰코는 약혼관계였다. 요즈음은 약혼이 거의 없지만, 예전에는 약혼이 결혼으로 가는 과정이었던 시기가 있었다. 이 시대도 그러했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 나오는 청춘들은 청춘이기에 좌충우돌의 역사를 펼치고 있다. 욕망, 섹스, 사랑, 현실, 취업, 적응, 연애, 결혼, 그리고 죽음...남자 주인공 오하시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와타나베만큼 여성편력이 심하다. 하지만, 다소곳한 세쓰코와 약혼을 하고 별일 없는 한 평범한 가정을 이룰 예정이었다. 소박한 가정을 이룰 수 있는 여지가 충분한, 집안에서 지원하고 후원하는 애정관계였다. 하지만, 사달이 난다. 무엇이 문제인가? 그것은 바로 심도있는 정신적이고 심층적인 부분으로 작가는 들어간다.

 

 

 

포스트모더니즘의 후손들의 상처

  김광석의 노래 중에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이란 곡이 있다. 너무 아프고 상처받은 이는 그 상처가 사랑을 뒤덮어버리는 경우가 있다. 그때는 치유해야 한다. 그 상처를 어떻게 치유하는가? 그 상처는 사람으로부터 받은 상처이지만, 사람으로부터 받은 상처 또한 또 다른 사람으로부터 상처가 치유될 수 있다. 그게 우리가 사는 인간세계이다. 그런데, 그 상처의 최고점은 아마도 죽음이 아닐까 싶은데. 오하시는 대학때 연극그룹에 있을 때 사에코와 섹스파트너로 지냈다. 그러다가, 그들 그룹이 MT를 갔다. 거기서 사에코와 냉기서린 방에서 섹스를 한 오하시, 그를 본 또 다른 여자, 유코! 유코가 오하시를 짝사랑했다는 흔적은 찾아보기 힘들다. 단지 여자로서 누군가로부터 탐닉받고 싶어 소유받고 싶은 열정이 넘쳤던 유코는 오하시와 두 번의 섹스를 한다. 어젯밤 잔 여자와 다른 오늘의 여자, 유코! 그런데 유코와 오하시가 먼저 MT장소를 빠져나올 때 엊그제 오하시의 배위에 있었던 사에코는 1년 후배 구니에다의 팔짱을 끼고 있었다. 청춘이란 것이 얼마나 탈도덕적인가! 이런 말 하는 것 자체가 포스트모너니즘에 어울리지 않는다. 안 그런가!

 

 

   

 

<사람에 대한 예의>는 있어야 하지 않는가!

  엄정화가 출연한 영화 <결혼은 미친 짓이다>를 보고서 얼마나 충격을 받았던가! 처음 소개팅한 남녀가 그날 바로 침대까지 직진했다. 하지만, 그 충격 이후로 우리 시대의 성윤리는 아우토반이다. 거칠 것이 없다.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에 진리가 어디 있으며, 윤리적인 잣대가 무엇이 필요하단 말인가! 우린 그런 시대를 살고 있다. 시바탸 쇼가 그리는 시대도 그러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남녀가 몸을 섟고 애정행위를 가진 후에 대처법이 필요하다. 클럽에서 만나 원나잇을 한 남남이라면 몰라도, 거사를 치른 후 그 다음날 얼굴을 자주 봐야할 상대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인간에 대한 예의>, <사람에 대한 예의>이다. 그리고 <상처에 대한 예의>가 필요하다. 육체를 섟는다는 것은 영혼의 가장 깊숙한 곳을 터치하는 것인데, 그 다음날 안면몰수하고 생까는 것은 상대를 능멸하는 행위이며, 모욕하는 처사이다. 그런데, 주인공 오하시가 그러했다. 유코와 꼴려서 자긴 했는데, 그 이후에 행동이 부재중이었다. 이게 가장 큰 상처이다. ‘소통의 부재’, ‘소통의 단절감이 영혼에게 가장 큰 데미지를 주는 것이다. 이거 심각한 죄악이다. 심각한 상처이다. 그런데, 웬걸...유코가 임신을 해버렸네. 유코는 오하시란 인간에 대해 과대평가나 기대를 하진 않는다. 그리고 낙태를 한다. 그리고....수면제를 먹고 강의실에서 자살을 한다....죽음이다.

 

    

 

 

유코의 치유할 수 없는 상처

  유서 비슷한 편지를 유코는 남긴다.

 

, 가엾은 엄마. 당신 딸의 결혼식을 보지 못하다니. 딸의 결혼식 대신 장례식을 봐야 하다니....나는 내가 한 일을 조금도 후회하지 않아. 다시 태어난다 해도 한번 더 같은 일생을 살 거야.(128p)’

 

 

  유코는 사랑하지도 않은 남자와 자고, 임신하고, 낙태하고 그리고 자살한다. 그런데, ‘다시 태어난다 해도똑같이 살거다라고 한다. 이런! 이게 젊음인가! 청춘인가! 청춘의 불끈불끈한 에너지는 하고 싶은 것은 무조건 해야 되는 사춘기라서 그런걸까!

 

 

 

오하시의 상처, 거대한 상실감은 존재를 뒤덮고...

나의 공허함은 일시적이거나 상황에 의한 것이 아니라 나 자신과 동의어라는 것을 알았다(133p).

 

어떤 노력도 내 공허함을 메울 수 없다는 것, 공허함을 공허함으로 그대로 내버려둘 수 밖에 없다는 것을 나는 깨달았다. 그리고 나는 세쓰고와 약혼했다.’

 

 오하시는 공허감이 나 자신과 동의어라는 것을 깨닫는다. 채울 수 없는 공허감, 이전에 원나잇 하고 난 후 느끼는 공허감과는 질적으로 다른 묵직한 공허감이 자신이 되어버렸다. 영혼이 공허감으로 갑옷으로 휩싸여버렸다.

 

 

 

상처의 과거를 가진 영혼을 만난 세쓰코

  사람으로 인한 상처, 또 다른 사람으로 인한 사랑으로 치유될 수 있다고 앞에서 이야기했다. 하지만, 유코는 자살했다. 그 죽음의 그림자가 오하시를 휘감고 있다. 그것이 오하시의 영혼의 깊은 우울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현모양처와 같은 세쓰코를 만났지만, 세쓰코는 오하시를 떠나면서 이런 편지를 남겼다.

 

 

‘....당신의 부드러움 속에는 언제나 당신이 남기고 온 과거가 느껴졌어. 그걸 시기했던 건 아냐. 하지만 그래도 역시 그런 과거 없었던 양 당신에게 사랑받고 싶었어. 처음인 것처럼 당신에게 사랑받고 싶었어. 아마 여자는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의 손이라도 첫 경험을 전혀 두려움 없이 맞을 수는 없을 거야.

 

그런 행복한 날이 계속되는데 어째서 그렇게 무거운 피로가 내 안에 가라앉고 있었을까?

 

  사람에게 과거는 더할 나위 없이 소중한 것이야. 그걸 부정한다는 건 그 안에서 태어나 자란 현재의 자신을 모두 부정하는 거라 생각해. 하지만 사람에게는 그럼에도 과거를 부정하지 않으면 안 될 때가 있어. 그러지 않으면 미래를 잃어버릴 수 있다는 생각은 해 본적 없어?(177p)’

 

 

 

영혼의 피로는 제거되어야 하는 것

  인간이 인간을 사랑한다는 것은 그냥 되어지는 것이 아니다. SoulSoul이 부딪히는 것이다. 그런데, 오하시의 해결되지 않은 상처, 치유되지 않은 상처, 그로 인한 영혼의 피로도가 세쓰코의 영혼에 무거운 피로로 가라안고 있었던 것이다. 겉으로 보기엔 아무런 문제없는 커플이었으나, 한 영혼이 가진 과거가, 자살이라는 죽음의 영혼의 상흔이 오하시를, 그리고 그 옆에 있는 세쓰코를 누른다. 세쓰코는 늘 이상하고도 뚱딴지같은 소릴 한다. 진정하고 순수한 사랑을 하고자 한다면, 자신의 영혼을 둘러싸고 있던 피로의 각질을 벗고 다른 이를 만나야 한다. 시간이 필요하고, 세월이 필요하고, 작업이 필요하고, 수술이 필요하고, 회복이 필요하고, 위로가 필요한데, 시간은 우리를 기다려주지 않는다. 그리고 우리는 섣불리 또 다른 영혼을 만나 사랑을 하려고 벼른다.

 

 

 

드디어 터져버린 세쓰코의 영혼

  소설 초반에 세쓰코는 자꾸 이상한 말을 해댄다.

 

“...내가 당신을 위해 밥을 짓고, 당신이 내가 지은 밥을 먹는 것, 그건 좋아. 다만 왜 내가 당신을 위해 밥을 지어야 하는지 왜 당신이 내가 만든 밥을 먹는지, 그 두 가지의 왜가 같은 건지, 뭐가 먼지 몰라서 불안할 때가 있다는 거였어.”(25p)

 

두 가지 왜가 너무 따로따로면 아무래도 싫어.”(26p)

 

세쓰코의 이런 생뚱맞은 질문이 왜 터져 나왔는지 오하시가 가져온 H전집, 그리고 그 H전집의 원래 주인이었던 대학 선배, 사노-사노는 공산주의 이데올로기에서 자신이 빠져나왔다며, 자신을 나는 배신자다!’라고 했다. 그는 자살했다-에게서 오하시가 경험한 공허감의 그림자를 세쓰코는 만나게 된다. 사노의 편지를 읽게 되면서 그녀의 내면의 질문들은 더 오리무중이 된다.

 

 

나 불안해. 우리 이제 곧 결혼할거야. 지금도 거의 결혼한 거나 다름없지만. 그런데 부부란 이런 걸까? 이래도 되는 걸까? 우린 뭐랄까. 너무 가난해서 이대로라면 이내 지쳐 버릴거야. 언젠가 미치도록 지칠 것 같은 기분이 들어.”(105p)

 

사노 씨처럼.”

 

 

 

한 영혼을 소외케하는 인간의 인격적인 결점

  세쓰코의 오하시에 대한 절망은 이 부분이 가장 심각하다. 하지만, 세쓰코와 오하시가 학교 들어가기 전, 유년시절에도 소꿉친구로 지냈다. 하지만, 거기서도 오하시는 벽돌쌓기를 하면서 세쓰코에게 배려하지 못하는 인격을 드러내준다.

 

조용히 좀 해. 내 것까지 무너지잖아.”하더니 높이 솟아 있는 당신 탑 쪽으로 돌아섰어. ...함께 놀고 있는 나를 까맣게 잊어버리고서 말이야. 당신은 일단 나무토막 쌓기를 시작하면 자신이 얼마만큼 높이 쌓을 수 있을지. 오로지 그 생각에만 몰두해서 애초에 나와 함께 놀고 있다는 가장 중요한 사실 따위 생각하려고 하지 않았어(180p).

 

 

 

시바탸 쇼의 상실의 시대를 관통해가는 자아 탐색의 길

  우리가 옆에 있는 사람을 고독하게 만들고, 소외케하는 것은 어쩌면 대단한 것이 아닌지도 모른다. 우리의 존재의 결핍에서 터져 나오는 것들이 사랑하는 사람을 찌르게 만든다. 물론 인간은 모두가 완벽할 수 없다. 모두가 상처투성이다. 모두가 완벽한 부모와 가정에서 자랄 수 없었다. 모두가 결핍을 가진 채 사랑을 하게 된다. 하루키의 제목처럼 <상실의 시대>일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바탸 쇼는 오하시와 다시 만나기 위해 헤어지는 것을 선택한 세쓰코를 통해 <자아 탐색의 길>을 보여준다.

 

하지만 마음이 시키는 대로 따르는 것 말고 내가 무얼 할 수 있을까....당신은 내 청춘이었다는 것! 아무리 괴롭고 답답한 날들이었어도 당신은 내 청춘이었어. 내가 지금 당신을 떠나는 것은 오로지 당신과 만나기 위해서야. 그렇지 않다면 왜 이런 편지를 쓰겠어(190p).’

 

 

세쓰코는 오하시를 다시 만나기를 기대하는 의미가 담겨 있지만, 오하시는 오히려 다시 만날 가능성이 없는 것처럼 생각하며 소설은 끝이 난다. 또 다시 만나기 위해서란 목표는 정말, 정말, 정말 중요하지 않다. ‘자아탐색은 진정한 홀로서기를 위한 길이기 때문에 더 그러한 것이다.

 

 

나는 무언가를 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무언가를 찾기 위해 가는 거야....그리고 나는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필요로 하는 거야. 나는 그 사람들에게 미천한 지식을 전달하는 일을 하면서 한번은 무너져버린 나 자신을 다시 꼿꼿하게 세워보려고 해....사람의 마음 속에 그렇게 자신조차 모르는 은밀한 소망이 몰래 자라고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인간의 숙명이 아닐까.’

 

 

 

 

상실의 시대, 상실의 세대에 대한 반성

‘H전집...나야말로 은근히 세쓰코와 헤어지기를, 세쓰코가 새로운 출발을 하기를 바랐던 건 아니었을까.

아니, 그게 나 혼자뿐이었을까....내게 내 의지와 무관하게 H전집을 사게 한 그 오한은, 과연 나 혼자의 것이었을까. 그것을 느낀 나의 것이자, H전집의 소유자였던 사노의 것이자, 나아가서는 동시대를 산 노세의 것이고, A의 것이고, 소네의 것이며, 나아가서는 죽은 유코와 다코, 구니에다, 다마코, 또 이름도 잊어버린 그 몇 명의 여자들의 것이지 않았을까. 우리와 같은 시대를 산 사람들 모두의 것이지 않았을까....마음 깊숙한 바람, 혹은 원한, 시끄럽게 떠들어낸 아우성이 아니었을까? 그 바람 혹은 원한이야말로 내게 H전집을 들게 하고, 세쓰코가 자신의 세대에서 벗어나려 하는 행위를 불러일으킨 것이 아니었을까. 그리고 만약 한 사람의 행위가 자신의 의지로 결정되는 것처럼 보여도 사실은 그토록 많은 사람들의 바람, 혹은 원한을 짊어진 것이라면.....’

 

 

 

 

그래, 아직 우리에겐 사랑할 시간은 남았다

이 방에서 지내는 것도 앞으로 하루 이틀이다. 그러나 그걸로 됐다. 우리는 날마다 모든 것과 이별한다. 그럼으로써 우리의 시야는 더욱 자유로워질 것이다.

비가 오는 날이면 세쓰코의 상처 자리가 아프진 않을지. 아프다면 따뜻하게 안아주고 싶은데......’

 

 

  상처를 발견하고, 상처를 치유하고, 또 다른 상처를 기다리고, 그리고, 사랑할 준비를 한다. 영혼의 피로를 발견하고, 그 피로를 풀어헤치고, 또 다른 피로를 맞이할 준비를 한다. 또 다른 영혼을 사랑할 준비를 한다.

그래도, 우리의 나날이기에...

 

 

 

 

 

 

상실의 시대에 대한 저의 리뷰

-상실은 또 다른 상실을 낳고

http://blog.aladin.co.kr/karl21/3187115

 

 

 

 

  *요 근래 쓴 <메멘토모리, 그래도 우리의 나날들>이란 페이퍼와 주제가 비슷한 느낌이 들지만, 완연히 다른 색깔이다. 원래 같이 이야기하려고 했는데 너무 길어져 시바탸 쇼 책은 따로 페이퍼를 쓰게 되었다. 아무쪼록 즐겁게 읽어주시면 감사하겠다. 이웃님 scott님의 격려성 댓글이 이 페이퍼를 더 묵직하게 만든 계기가 되었다. 여기서 묵직하단 말은 내용은 잘 모르겠고, 길이가 더 길어졌다는 말이다 ㅎㅎ이웃님들, 모두 즐거운 설 연휴되십시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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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2-02 11: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레삭매냐 2019-02-02 11: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하루키는 이제 맛탱이가 간 느낌이... 20세기 작가로 기억해야 하나 봅니다.

시바타 료도 너무 늦게 나와서 순치된 현 일본세대와 상이하다는 느낌입니다.

카알벨루치 2019-02-02 12:48   좋아요 0 | URL
시바타 쇼가 뒤늦게 나온게 약간의 어불성설함이 있지만 신형철이 이 책을 추천한 이유는 아마 인간 본질에 대한 깊은 탐구가 있어서 그런것 아닐까 싶네요 암튼 전 읽으면서 많은 생각을 했답니다 ^^명절연휴 첫날 즐겁게 하루를~

후애(厚愛) 2019-02-02 16: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카알벨루치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그리고 설연휴 즐겁고 행복하게 보내시길~

카알벨루치 2019-02-02 17:22   좋아요 0 | URL
후애님 즐건 설 명절 되십시오 ^^☕️

2019-02-02 18: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scott 2019-02-03 20: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카알벨루치님의 리뷰 이렇게 심층적이고 입체적이게 쓰셨다니 감탄감탄 이책 출간이 너무 늦은게 아닌가 라는 생각을 했는데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보다 먼저 읽었어야 했나봐요. 몇주전 하루키가 새단편을 뉴요커지에 발표했는데(‘cream‘)해변의 카프카랑 스토리가 비슷하더군요 자신이 쌓아놓은 이야기 장벽안에서 비슷한 스토리들을(제목만 바꿔서) 찍어내고 있는데 70대에 접어든 하루키에게 전작을 뛰어넘는 작품을 기대한다는건 이제는 무리인것 같습니다.

카알벨루치 2019-02-03 20:34   좋아요 1 | URL
하루키는 포스트모더니즘의 갑옷을 입어서 그런가 싶기도 해요 모더니즘의 뿌리가 중요하다고 전 생각합니다 순전히 제 생각! 순간 훅하는 것은 있는데 여운이나 깊이가 떨어질수도 ㅎㅎ 혼자 생각입니다 그래도 전 하루키 좋아합니다 제 청춘이니 ㅎㅎ

카알벨루치 2019-02-03 21:00   좋아요 1 | URL
스콧님의 격려가 컸어요 진짜입니다 ^^ㅎㅎㅎ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메멘토 모리

 

목숨은 태어날 때부터

죽음의 기저귀를 타고 나온다.

아무리 부드러운 포대기로 감싸도

수의의 까칠한 촉감은 감출 수가 없어.

잠투정을 하는 아이의 이유를 아는가.

 

한밤에 눈을 뜨면

어머니 숨소리를 엿듣던

긴 겨울밤

어머니 손 움켜잡던

내 작은 다섯 손가락.

 

애들은 미꾸라지 잡으러 냇가로 가고

애들은 새둥지 따러 산으로 가고

나 혼자 굴렁쇠를 굴리던 보리밭 길

 

여섯 살배기 아이의 뺨에 무슨 연유로

눈물이 흘렀는가.

너무 대낮이 눈부셨는가.

너무 조용해 귀가 멍멍했는가.

 

굴렁쇠를 굴리다 흐르던 눈물

무엇을 보았는가.

메멘토 모리

 

훗날에야 알았네.

메멘토 모리

 

 

이어령 교수의 저서에 나오는 시이다. 메멘토Memento기억하다, 생각하다이고, 모리Mori죽음을 가리키는 말이다. 메멘토 모리는 죽음을 생각하라’, ‘죽는다는 걸 생각하며 살라는 의미이다. 여섯 살 짜리 아이의 볼에 흐르는 눈물, 굴렁쇠를 굴리다 흘리는 눈물...이 모든 것이 모리Mori’(죽음)에 대한 기억(메모리아memoria) ’때문이라고 이야기한다. 죽음을 기억한다는 것이, 죽음을 유념해둔다는 것이 과연 쉬운 일인가!

 

    

 

 

철학자 김진영의 <메멘토 모리>

아침의 피아노는 불치병으로 죽어가는 한 철학자의 마지막을 담은 글이다. 김진영 철학자의 애도일기(1952-2018)이다. 죽어가는 철학자, 한 인간...인간은 누구나가 다 시한부 인생이다. 소설가 하일지는 죽음에 대해서, 20대는 20km, 30대는 30km, 40대는 40km....죽음을 향해 간다고 이야기했다. 다들 죽음은 언제나 우리의 생애 내포된, 내재된 그림자와 같은 것이다. 그러나 사람은 단지 끝이 어딘지 모를 뿐이기에 잠시 망각하며 살아가는 것뿐이 아닐까? 이 책은 북튜브 김겨울의 소개로 인해 읽게 된 책이다. 한 철학자의 종말로 치닫는 가운데 발견한 일상의 위대함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일상을 지켜야 한다. 일상이 길이다.’(99p)

 

소리가 있다.

   사이사이로 지나가는 소리,

   살아있는 소리,

   일상의 소리.’(179p)

 

‘TV를 본다. 모두들 모든 것들이 영원히 살 것처럼 살아간다.’(77p)

 

환자의 삶을 산다는 것-그건 세상과 인생을 너무 열심히 구경한다는 것이다. 소풍을 끝내야 하는 천상병의 아이처럼. 고통을 열정으로 받아들였던 니체처럼.’(255p)

 

    

-아침에 눈을 뜰 때 피아노 소리가 들린다면, 시한부 인생이라고 자각한 자신에게 얼마나 큰 환희로 다가올까? 우린 그 환희를 자각하지 못하지만, 작가는 그 '아침의 피아노'소리의 일상에 환호하며 글을 적고 있다.

 

 

죽음을 예정해 두고 환자의 삶을 산다는 것은 마치 이방인처럼, 외계인처럼, 인생의 관객이나 구경꾼처럼 느껴지는 삶이라고 저자는 말해준다. 그 삶들 가운데 저자는 자신이 붙들 수 있는 남아 있는 일상들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다시금 되새겨 준다. 이 책은 여백이 많다. 시집보다도 더 많은 여백을 할애하고 있다. 고통이 심해질수록 후반부에는 백지로 남겨둔 것도 있다. 그만큼 한 사람의 자연인이 죽어가는 과정을 그대로 드러내 주고 있어 가슴이 먹먹하기도 하다.

 

지금 나의 신체는 지나간 옛 신체들의 앨범이다.’(195p)

 

 

철학자답게 철학하며 사유하며 죽음에 대해 생각하고 있다.

문득 자라투스트라의 한 문장: “인간은 가을의 무화과다. 인간은 무르익어 죽는다. 온 세상이 가을이고 하늘은 맑으며 오후의 시간이다.” 무륵익는다는 것은 소멸하고 소멸하는 것은 모두가 무르익었다. 니체는 그 순간을 조용한 순간(Der Stille Stunde)’라고 불렀다....난숙한 무화과의 순간에 도착하기 위해 평생을 사는가.‘(112p)

 

우리는 모두 특별한 것들이다.

   그래서 빛난다.

   그래서 가엾다.

   그래서 귀하고 귀하다(199p).’

 

나는 살만큼 생을 누린 것이다.’(17p)

 

살아 있는 동안 삶이다.

내게는 이 삶에 성실한 책무가 있다. 그걸 자주 잊는다.’(24p)

 

철학자 자신은 육체적인 위기 이후, 자신이 이제껏 정신적인 것들로만 살아왔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정신을 담고, 정신을 유지해가는 것은 육체이다. ‘이제 나의 정신적인 것은 스스로 증명해야 한다. 자기가 진짜인지 가짜인지를....’(29p)

 

 

꺼져가는 육체에 대한 한 가닥의 희망을 안고 매일 매일 버티지만, 결국 그 죽음의 문에 들어간 철학자 김진영이다. 그는 프루스트의 글을 두 번 인용한다.

 

우리가 모든 것을 잃어버렸다고 여기는 그때 우리를 구출하는 순간이 찾아온다. 우리가 그토록 찾았던 그 문을 우리는 우연히 두드리게 되고 그러면 마침내 문이 열리는 것이다.”-마르셀 프루스트 <되찾은 시간>(231p)

 

 

그의 희망적인 문장은 몸무게를 달아본다. 자꾸 마른다. 자꾸 가벼워진다. 나중에 나는 날아오르게 될까.’(251p)라고 적어주고 있다. 그리고, 그는 2018년 어느 한 날에 마지막 문장을 남긴다.

 

내 마음은 편안하다.’(279p)

 

그리고서 생을 마감한다.

 

죽어가면서 글을 남긴다는 것, 얼마나 비통한 심정일까? 실은 우리 모두가 다 죽어가면서 글을 남기는 셈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나는 언제 죽을지 모를 뿐이지 글을 남기고 있다. 다만 그 시기가 조금 더 당겨질지 조금 더 유보될지의 차이일 뿐이다. 우리가 죽음에 대한 준비를 할 수 있을까?

 

 

 

구약성경의 모세의 <메멘토 모리>

아침에 성경을 읽는데, 이 구절이 눈에 들어왔다.

이스라엘의 지도자, 이집트의 구출작전의 지도자였던 모세에게 하나님께서 죽음에 대한 소식을 미리 주지시키는 대목이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네가 죽을 기한이 가까웠으니 여호수아를 불러서 함께 회막으로 나아오라...’(신명기 3114)

 

모세는 출애굽EXODUS의 위대한 영도자였지만, 그의 미션은 여기에서 끝이 난다. 그는 결국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고자 했지만 들어가지 못했다. 여호와 하나님은 모세에게 죽음에 대한 준비를 하라고 하신다. 그러면서 모세 다음의 지도자, 다음 세대 여호수아를 준비시키신다. 자신의 모든 사명을 마무리해야 한다. 모세의 적극적이고도 긴급한 메멘토 모리의 불씨가 당겨진 셈이다. 참고로, 모세는 불치병이나 질병에 걸리지 않았다. 그는 굉장히 건강한 채 120살의 생애를 살다가 떠났다. 너무 건강했지만, 그도 죽음의 문 앞에서 어찌할 수 없는 인간이었다.

우리의 일생의 마지막, 끝도 이러한 준비가 주어진다면 좋을까? 나쁠까?

 

    

 -내가 사랑하는 <메모성경>책이다.

 

폴 칼라니티의 <메멘토 모리>

암에 걸린 30대의 젊은 의사이자 남편 폴 칼라니티의 애도일기인 셈이다. 화려한 명성과 전도유망한, 기대되는 의료계의 귀재, 하지만 그는 36살에 사랑하는 아내 케이티와 자신의 분신인 딸을 남겨두고 삶을 마감할 수밖에 없었다. 철학자 김진영 보다 더 이른 나이에 생을 마감했다. 그의 책의 서문에 실린 글이다.

 

 

죽음 속에서 삶이 무엇인지 찾으려 하는 자는

그것이 한때 숨결이었던 바람이란 걸 알게 된다.

새로운 이름은 아직 알려지지 않았고,

오래된 이름은 이미 사라졌다.

세월은 육신을 쓰러뜨리지만, 영혼은 죽지 않는다.

독자여! 생전에 서둘러

영원으로 발길을 들여놓으라.

-브루크 폴크 그레빌 남작 <카엘리카 소네트 83>

 

숨결이 바람이 될 때...

 

    

 

메멘토 모리, 그래도 우리의 나날

 

철학자 김진영은 죽기 직전까지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삶에 대한 사랑, 사람에 대한 사랑...죽음이란 거대한 괴물 앞에서 인간은 한없이 나약해질 수 밖에 없다.

 

나도 모르게 내 손에 잡히는 책 한권을 넣는다. 슈베르트 평전과 뮐러의 시<겨울나그네>. 왈칵 솟으려는 눈물을 겨우 참는다. 그래 나는 깊이 병들어도 사랑의 주체다. 울 것 없다. 그러면 됐으니까.(아침의 피아노, 106p)’

    

그래, 미워한다는 것, 그 또한 사랑이고 생이리라.’(아침의 피아노, 107p)

 

그는 시종일관 사랑에 대한 이야길 한다. 삶은 사랑이다.

폴 칼라니티도. 와이프 루시 칼라니티도 의사이다. 육체에 대해서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두 사람이기에, 그들은 그 죽음이란 대적 앞에서 또 하나의 무기를 집어든다. 그것은 김진영 철학자가 이야기한 바로 <사랑>이다.

 

 

불치의 병을 헤쳐나가는 방법은 서로 깊이 사랑하는 것이다(숨결이 바람이 될 때, 254p)’.

 

칼라니티 부부는 불치병을 사랑으로 이겨내고자 했지만, 암은 그 부부를 육체적으로 갈라놓았다. 하지만, 그들의 사랑은 칼라니티의 분신인 딸과 함께 아내인 루시 칼라니티에게도 수놓고 있다. 남편은 재혼을 하라고 했지만...

 

 

살아간다는 것은 끊임없는 메멘토 모리의 연속이고, 반복이지만, 그대로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사랑이리라!

 

 

에밀리 디킨스는 이런 시를 남겼다.

 

 

당신은 제게 두 가지 아름다운 유산을 남기셨습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도 뜻하셨다면

만족하실 그런 사랑의 유산을,

 

당신은 바다처럼 광대한

고통을 남기셨습니다.

영원과 시간 사이에,

당신의 의식과 나 사이에.

 

 

 

 

 

 

 

메멘토 모리, 그래도 우리의 나날들

메멘토 모리,

그래도 우리의 사랑할 수 있는 나날들이 있음에

그래도 우리가 사랑해야 할 나날들이 있음에 감사하자!

박일문의 소설제목들로 마무리를 했음 좋겠다.

'살아남은 자의 슬픔', 그것은 죽음이다. 메멘토 모리.

하지만 '아직 사랑할 시간은 남았다'...

    

 

*.페이퍼 쓰기 전에는 시바타 쇼의 <그래도 우리의 나날>이란 소설에 대한 이야기도 같이 하면서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는데, 그냥 시바타 쇼에 대한 이야기를 따로 할 수 있음 하겠다. 단지 시바탸 쇼의 소설제목이 너무 마음에 와닿아 제목으로 잡아 보았다. 시바탸 쇼에 대해 잠깐 언급하면, <상실의 시대에 대한 반성>정도라고 할까? 무라카미 하루키를 읽는 느낌이 들었다. 분위기는 조금 다르지만. 신형철이 왜 추천했는지 알 것 같기도 하다. 언제 시간이 나면 시바탸 쇼의 이 작품에 대해서도 페이퍼를 쓰고 싶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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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1-27 23: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1-28 00: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서니데이 2019-01-27 23: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시바타 쇼의 책은 제목이 참 좋지요.
그러고보니, 일본어의 주말(週末)과 종말(終末)의 발음이 같습니다.
주말 잘 지내셨나요, 하고 인사를 드리려다 이 글에 나오는 메멘토 모리를 떠올리니 두 가지가 같이 생각났어요.
끝은 또 다른 시작이고, 시작은 언젠가 끝을 만나면서 계속 이어지겠지요.
한 사람의 삶은 끝은 언젠가 꼭 찾아오지만, 다른 누군가로 계속 이어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잘 읽었습니다.
카알벨루치님, 따뜻한 밤 되세요.^^


카알벨루치 2019-01-28 00:20   좋아요 1 | URL
일본어 전공하셨어요? 오갱끼데스까!!!ㅋㅋ댓글 감사해요~손 이미지가 메멘토! 메멘토 손 서니데이님 ㅎ

서니데이 2019-01-28 00:24   좋아요 1 | URL
앗. 아니예요.
조금 배워서 히라가나 살짝 읽는 정도예요. 인사도 조금 알고요.^^;
카알벨루치님, 오야스미나사이. 좋은밤되세요.^^

카알벨루치 2019-01-28 00:26   좋아요 1 | URL
외국어를 배우는분들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푹 주무세요 명절 전에 감기같은 거 걸리지 마시고 굿나잇!

겨울호랑이 2019-01-28 04: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메멘토 모리‘라는 말은 초대 기독교 공동체에서 인삿말로 썼다는 말을 들었던 생각이 나네요. 항상 죽음을 생각한다면 우리의 삶이 조금은 겸손해지지 않을까 생각하게 됩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카알벨루치 2019-01-28 06:34   좋아요 1 | URL
겨울호랑이님 감사합니다 죽음앞에 장사없는데 더 겸손, 더 자숙하는 인생이 되어야겠습니다 즐건 한주 되십시오^^

syo 2019-01-28 09: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메멘토 모리‘만큼 어려운 일이 없는 것 같아요. 무슨 말인지도 알고 왜 그래야 되는지도 다 이해하겠지만, 막상 실천하기란 어렵잖아요. 인간이란 게, 꼭 죽음 가까이 가 보는 건 아니더라도 최소한 죽음 냄새 정도는 맡고 나야 ‘메멘토 모리‘ 비슷하게라도 살 수 있는 것 같아요......

카알벨루치 2019-01-28 18:11   좋아요 0 | URL
가장 어려운 명제입니다 ㅎㅎ 열심히 살면 열심히 사랑하면 되는거죠 뭐~ 내 댓글 쓰는데 댓글 알람 왔네 ㅋㅋㅋ

페크(pek0501) 2019-01-28 13: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메모성경 - 2624쪽의 책은 저로선 엄두가 나지 않을 것 같습니다만, 이거 한 권 가지면 책 부자가 될 듯하네요.
여백이 있어서 좋고요.

카알벨루치 2019-01-28 18:10   좋아요 1 | URL
내 나이만큼 성경읽어볼라고 노력중인 1인인데 일년에 얼마 못 읽고 있습니다 성경은 애정이 팍팍 갑니다 한번 읽고 놔두는 책이 아니라서요 이 책 닳아서 너덜너덜해지면 새걸로 바꿔야할까 싶네요 페크님 감사요^^

stella.K 2019-01-28 14: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런 책들도 좀 읽어줘야 할 텐데 읽을 자신이 없으니...
사는데까지 잘 살다가 미련 없이 가자.
근데 막상 죽는다고 생각하면.ㅠㅠ

카알벨루치 2019-01-28 18:08   좋아요 0 | URL
그냥 빌려서 읽음 후닥 읽고 여운은 길게 남고 좋아요~ㅎㅎ아직 사랑할 시간은 남았으니 파이팅!

cyrus 2019-01-28 17: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가 죽기 직전에 무슨 책을 읽고 있을까요? 아마도 무슨 책을 읽어야할지 망설이다가 세상을 떠날 수도 있겠어요. 아니면 책 읽다가 잠이 와서 눈을 감았는데, 그게 더 이상 깨어날 수 없는 깊은 잠일 수도 있고요.

카알벨루치 2019-01-28 18:07   좋아요 1 | URL
만물박사 시루스 님 다운 멘트입니다 얼릉 장가도 가셔야죠 ㅎㅎ

scott 2019-01-28 19: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카알벨루치님의 시바타 쇼 리뷰 읽고 싶어집니다. 장바구니에 넣다 뻈다 하고 있음 ㅎㅎ

카알벨루치 2019-01-28 22:24   좋아요 1 | URL
제 리뷰를 기다리신다는 분이 계시다니 그럴만한 위인이 아닌데 암튼 감사합니다 ㅎㅎ힘이됩니다 스콧님^^

서니데이 2019-01-30 12: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카알벨루치님, 점심 맛있게 드시고, 좋은 하루 즐겁게 보내세요.
메멘토 모리를 생각하면, 매일 매일 좋은 일들 많이 찾기를 바라는 마음이 되네요.^^

카알벨루치 2019-01-30 13:00   좋아요 1 | URL
감사해요 서니데이님~맛점하시고 건강이 최고 ^^

프레이야 2019-02-05 13: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좋은 페이퍼를 이제 보네요. 인연 고마워요 ^^ 아침의피아노 담아갑니다

카알벨루치 2019-02-05 13:29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도움이 되시길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Prologue...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19살 때 읽었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작년에 다시 한번 더 읽었다. 카뮈에 대해 내가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모순과 부조리의 작가로 알려진 그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 무엇일까 싶어 카뮈의 이방인을 필사를 해보자 싶었다. 내 마음에 다가온 문장들과 생각들...결국 몇 페이지 필사하다가 말았다. 애초부터 통째로 필사할 생각은 없었으니 포기는 빨랐다. 그런데, 그때 느낀 카뮈의 문장의 느낌이 남달랐다. 역시 필사는 작가의 문장을 더 돋보이게 하는 듯하다. 필사는 되새김질의 좋은 방편인 듯 하다. 그리고 카뮈의 문장이 훅 훅 나를 치고 있었다. 카뮈의 이방인은 이렇게 시작한다.

 

오늘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어쩌면 어제였는지도 모른다. 양로원에서 온 전보를 받았다. <모친 사망, 내일 장례식. 조의를 표함>

이것만으로는 아무것도 알 수 없다. 어제였는지도 모르겠다.’

 

어머니는 죽었고 장례식이 발생했는데, 카뮈는 이것만으로는 아무것도 알 수 없다고 말한다. 현실과 실존에 대한 고민? 카뮈가 실존주의자여서 더 그러했을 것이다. 어머니가 죽었다는데, 이것만으로는 아무것도 알 수 없다, 는 이런 식의 문장을 날리다니....

 

거기서 밤을 샌 뒤 내일 저녁이면 돌아올 수 있으리라. 사장에게 이틀만 휴가를 달라고 했다. 이유가 이유인지라 그는 거절하지 못했다. 하지만 썩 내키지 않는 듯 했다. 그래서 나는 이런 말까지 했다.

 

제 탓이 아니쟎아요.”(7p)’

   

    *내가 재독한 카뮈는 <별글클래식 버전>이다.

   

    

1

무심한 아들 같으니라고. 카뮈의 무신경한 이런 태도는 끝까지 계속되는데, 그것은 특별히 어머니에서만 아니라 아랍인을 총질하여 살인하는 행위에 대해서 그러하다. 모순과 부조리의 작가, 알베르 카뮈! 내가 그 대가를 이렇다 저렇다 할 순 없지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카뮈는 카뮈의 메시지답게 죽었다는 사실이다. 어떻게 노벨문학상을 수상하러 가는 길에 교통사고를 당하여 죽는단 말인가! 이런 인생이 얼마나 부조리한가! 카뮈는 자신의 작품을 자신의 죽음의 마지막을 통해서도 보여주었다. 마치, 생떽쥐페리가 비행기 타고 비행하던 중에 유유히 사라진 것처럼 말이다.

 

내가 여기서 보고 싶은 대목은 카뮈가 제 탓이 아니잖아요.”라고 할 수 밖에 없었던 그 상황이다. 사장이 얼마나 눈치를 줬으면, 모친 장례식 가는데 카뮈가 저런 식으로 둘러댔을 것이냐는 것이다. 기업과 직장내의 갑을관계는 카뮈에게도 있었나 보다. ‘제 탓이 아니잖아요.’얼마나 미꾸라지처럼 잘 치고 빠지는, 그러나 어머니가 들었다면 아들이 그런 말을 하다니, 정말 도저히 참을 수 없는 멘트이다.

 

 

 

 

2

황정은의 아무도 아닌을 읽으면, 갑을 관계에서 벌어지는 여러 가지 형태의 상처와 모멸감과 아픔을 순도 깊게 드러내 주고 있다.

 

왜 사람들이 황정은, 황정은 하는지 알 것 같았다. 몇 해 전에 故人이 되신 정미경 작가의 단편집, 김애란 작가의 단편집과는 또 다른 맛이 있는 작가이다. 정미경은 화려한 문체에서 주는 델리키트한 그물이라면, 김애란은 복서의 묵직하고 매운 한 방, 황정은은? 찌르는 가시같은 아픔이라고나 할까? 비유가 적절했는지 모르겠다.

 

이 소설은 총 8편의 단편소설이 묶여져 있다. 이 모든 소설들은 하나의 관통된 메시지를 작가는 아주 친절하게 제일 앞 장에 적어주고 있다.

 

<아무도 아닌>, 을 사람들은 자꾸 <아무것도 아닌>, 으로 읽는다

 

 

 

3

Episode-2: 양의 미래

주인공은 서점 계산대 직원이다. 담배를 사러 온 여학생에게 주민증을 까보라고 했을 때, 여학생은 서점 밖에 있는 건장한 남자들의 심부름이라고 둘러대면서 아구는 맞아들어가지만, 여학생 진주의 인생이 꼬이게 된다. 그 아저씨들과 얼켜 인신매매당해 실종사건이 벌어진다.

 

내가 그녀를 마지막으로 목격한 사람이었다.

    비정한 목격자.

    보호가 필요한 소녀를 보호해주지 않은 어른.

    나는 그게 되었다.’(56p)

 

서점직원이지만, 하루종일 지하에서 일한다고 햇빛도 받아보지 못하는 주인공 나에게 진주 엄마가 찾아온다. 그리고 매일 서점주위를 떠나지 않는다. 진주가 마지막으로 목격된 곳이기에, 경찰도 물론 주인공을 찾아온다.

 

아줌마 어쩌라고요. 내가 얼마나 바쁜지 알아요? ....아무도 나를 신경쓰지 않는데 내가 왜 누구를 써야 해? 진주요. 아줌마 딸, 그 애가 누군데요? 아무도 아니고요, 나한테 아무도 아니라고요.”59p)

 

주인공에게 무슨 책임이 있는가? 아저씨들과 진주가 대화 나누는 장면이 석연찮았지만, 주인공이 나설 분위기는 아니었다. 그리고 그녀는 그 곳을 떠났다.

 

‘..그리고 가끔 아주 가끔, 밤이 너무 조용할 때 진주에 관한 기사를 찾아본다....유골이라도 찾아냈다는 소식을 밤새, 당시의 모든 키워드를 동원해서 찾아다닌다. 나는 이런 이야기를 어디에서고 해본 적이 없다.’(62p)

 

살면서 우리는 언제나 무해한 사람, 무해한 인간, 무취한 인간, 무공해의 인간으로 살고자 한다. <아무도 아닌> 형태로 살아가고자 하지만, 한 마리의 길을 잃은 양인 진주의 미래에 어쩔 수 없는 형태로 얼키었다. 그것은 주인공의 인생에 계속 떠오를 수 있는 기억의 화두인 셈이다.

 

    

 

4

Episode-3: 상류엔 맹금류

곗돈 떼어먹고 달아난 계원 때문에 시장내에서 신용을 잃어 빚덤탱이 독박을 쓰게 된 제희 가족, 빚 때문에 도저히 희망이 보이지 않아 제희 엄마는 아버지더러 도망가자고 하지만, 아버지는 첫째, 자기 잘못도 아닌데 도망치는 것은 또 다른 범죄와 같고, 둘째, 그런 줄행랑의 처사가 아이들 보기에 부끄럽기에 그런 부끄러운 부모가 되기 싫다는 이 2가지 이유로 거절한다. 하지만, 부모의 빚은 고스란히 다섯 딸에게 유전 되어진다. 이거 마치, 미미 여사의 화차에서 나오는 빚의 대물림되는 유전자DNA인 셈이다. 무서운 DNA이다.

그런 가정사를 안고 있는 제희와 제희 부모가 제희 남친과 함께 수목원에 가게 된다. 소풍이라고는 하지만, 그런 느낌보다는 너무 더웠고 제희는 다리까지 다쳐 그날 내내 다리를 절었다. 그들이 소풍이랍시고 돗자리를 펴고 점심을 먹었던 자리에 주인공 남친은 너무 더럽고 불결해서 밥 먹고 싶어하지 않았던 자리였다. 아니나 다를까. 나중에 밥을 먹고 돌아오는 길에 본 팻말을 통해 이렇게 말한다.

 

저 물이다. 짐승들 똥물이라고요.’(86p)

더럽기 짝이 없는 그 물에 아버지는 세수를 하고 손을 씻고 제희네는 그 똥물 곁에서 밥을 먹었다. 그런데, 주인공은 제희와 헤어지고 다른 여자가 결혼해서 살고 있다. 그런데, 자꾸 왜 제희와 같이 하지 못했을까? 왜 제희 부모님이 그 똥물이 자욱한 그 자리에 점심 먹자고 돗자리를 폈을 때, 흔쾌히 수용하지 못했을까를 후회하고 있다.

 

지금은 <아무도 아닌>이 되어버린 제희와의 연관된 추억을 떠올리는 주인공에게 우리가 느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우리가 느끼는 모든 바운드리 내에서 펼쳐지는 마지노선이 있다. 물리적, 경제적, 심리적, 정서적, 정신적 마지노선이 있다. 그 마지노선을 넘으면 무언가 큰 일이 날 것 같고, 무언가 큰 사건 사고가 날 것만 같은 정신적인 배수진이 우리에게 있는 듯 하다. 그것이 그토록 중요한 것인가? 사람이 살아가면서 느끼는 모든 색깔, 색소, 냄새, 악취, 풍경 등등이 그토록 중요한 것인가? 존재보다 더 중요한 것인가?

 

 

 

5

Episode-5: 누가

아래층과 윗층 사이에서 벌어진 층간 소음공해에 대한 이야기이다. 윗층은 아래층에 대해 무신경하게 소음을 털어버린다. 카드회사직원이 여자는 위층이 아무도 아닌자신을 아무것도 아닌것처럼 대해버리는 것에 미칠 지경이다.

마지막의 대사가 훅 감긴다.

 

아랫층이야, 씨발년아!”(135p)

 

아무도 아닌우리를 아무것도 아닌것처럼 대하는 인간들에게 사이다같은 발언이다. 속이 빵 뚫린다. 나는 어릴 때부터 잘 참는 습관을 가졌다. 할아버지를 참는 아버지를 보면서, 나도 그렇게 참으면서 살았다. 하지만, 참는 것이 종국적인 미덕은 아닌 것이다. 그렇다고 터트리는 것이 최대의 미덕도 아니다. 하지만, 한번 씩 치고 빠지는 것이 필요한 시대이다. 나에게 아무것도 아닌것처럼 대하는 인간들에게 한번 욕해보자!

 

아랫층이야, 씨발놈아!”

아랫층이야, 씨발년아!”

 

 

6

Episode-6: 누구도 가본 적이 없는

유럽여행 중에 아내를 잃어버렸다. 14년 전에 계곡에서 수영을 하는중에 딸을 잃은 부부였다. 여행을 하는데, 한국에서 들려온 소식은 IMF사태였다. 아내는 현금도, 카드도, 그리고 가장 중요한 외국어를 못 하는데...

 

그녀가 내리기도 전에 기차가 그냥 가 버렸다.

   아이 로스트..., , 미스드...로스트...’(161p)

 

도서관에 갔다가 문득 누구도 가본 적이 없는주인공 46살의 남편을 생각해보았다. 과연 그 아내는 어떻게 되었을까? 말이 안 된다는 것은 소통이 안 된다는 것이고, 소통이 안 되면 두려움이 갑절이나 될 터인데...길을 잃어버린 그녀는 그 외국인들에게 아무도 아닌대상에서 아무것도 아닌대상으로 전락하는 방랑자가 되는 것은 아닐까?

 

 

 

7

Episode-7: 웃는 남자

아버지는 목수였다. 그리고 아버지의 목공소 직원은 3살 먹은 딸, 혜지의 아버지였다. 그런데, 혜지 아저씨의 은색티코가 덤프트럭 꽁무니에 처박혀버린 교통사고. 사고와중에도 혜지 아저씨가 제일 먼저 내뱉은 연락처는 목공소 번호였다. 그런데, 주인공의 아버지는 혜지 아저씨가 유언할 수 있는 시간도, 공간도, 여백도 남기지 못하고 닥치라고 다그쳤다’.

 

그 때는 그냥 아무 생각이 ....없었다고 내 아버지는 말했고 그건 아마 사실일 거라고 생각했다. 아무 생각이 없었을 것이다. 그는 그냥 하던대로 했겠지. 말하자면 패턴 같은 것이겠지. 결정적일 때 한 발짝 비켜서는 인간은 그 다음 순간에도 비켜서고...그렇지 않을까. 나도 모르게 직조해내는 패턴의 연속, 연속, 연속.(184p)’

 

무더위가 작열하던 여름에 버스를 탔다. 버스를 탈 찰나에 벤치에 앉아 있던 노인이 더위로 인해 쓰러져버린다. ! 쿵이 아니고 하고 부딪혀 쓰러진 노인...멀어져 가는 주인공과 버스...노인은?

 

 

몇 년 전이었다. 출근길에 바쁘게 움직이는데 집 앞에 웬 노인이 쓰러져 있었다. 이마에는 쬐금 피를 흘렸던 것으로 기억한다. 겨울이라 바닥이 미끄러웠던지 넘어지신 모양이었다. 나는 그분의 핸드폰으로 자녀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주변에 행인 분이 오셔서 도움을 주셔서 나의 도리는 다했다 싶어 인사를 하고 헤어졌다. 출근길이라 바빴다. 그때 성경에 나오는 <강도 만난 이웃>에 대한 이야기가 생각이 난다. 강도 만나 내버려 두면 죽을 수밖에 없는 그 이웃에게 진정한 이웃은 사마리아 인이었다. 우리는 누구나가 다 자신만의 가치와 기준을 가지고 살아간다. 그 가치의 기준에 위배되지 않기 위해 아등바등 산다. 다시 그 상황으로 돌아간다면 내가 그 상황을 다 총체적으로 책임지고 그 이웃을 위할 수 있을까?

 

 

얼마전에 故人이 되신 철학자 김진영의 아침의 피아노에 쓰인 글이다.

 

나를 위해 쓰려고 하면 나 자신은 너무나 보잘 것 없는 존재라고. 그러나 남을 위해 쓰려고 할 때 나의 존재는 그 무엇보다 귀한 것이 된다고.’(40p)

 

그렇게 살아갈 수만 있다면...

 

   

 

 

8

Episode-8: 복경

백화점에는 희한한 고객들이 있는가 보다. 속옷을 교환하기 위해 가져왔다. 그런데, 입어본 흔적이 있어 보인다. ! 겨울에 이불을 구매했다. 그런데, 여름이 되어 이불을 환불하고자 한다. 이불에는 사용한 냄새가 자욱한 그 이불, 자기들은 한참 후에 뜯어보니 이런 이불이었다고. 고객용화장실에서 핸드백을 두고 왔으니 좀전에 상품을 구매한 점원에게 전화를 해서 지하주차장에 갖다달라고 한다. 우아! 세상에 개념상실한 인간들이 참 많구나! 이럴 때 사이다 한마디!

 

아래층이야, 씨발년야!”

그런데, 고객을 응대하는 직원들은 그러면 안 된다. 잘 나가고 최고의 Best 매니저는 고객들에게 받은 스트레스를 백화점 근처 상가에 가서 매장직원을 꼬투리잡아 노골적으로 갈군다. 거기서 스트레스를 푼다. 그걸 그 매니저는 <도게자>라는 인간의 심리로 해석한다. ‘무릎을 꿇고 머리를 숙이는 자세를 도게자라고 해’(201p) ...고객이 원하는 것은 사과하는 게 아니라 무릎을 확실히 꿇고 머리를 확실히 숙이는 자세를 원한다는 말이다. 이런 개 같은 갑질이 어디 있는가! 이런 썩어문드러질 갑질을 황정은이란 작가는 캐치해서 보여주고 있다. 다소 자전적인 느낌이 들어 비애감마저 느껴진다.

 

게다가 자기야. 나는 무시당하는 쪽도 나쁘다고 생각해. 자존감을 가지고 자신을 귀하게 여겨야지. 존귀한 사람은 아무에게도 무시당하지 않는다. 스스로를 귀하게 여길 줄 모르는 사람이나 진정으로 당하는 거야 무시를.”(202p)

 

진짜 그럴까? 최고로 잘 나가는 매니저가 주인공에게 해주는 조언이다.

 

“...사람이 날 때부터 존귀하다면 그것을 스스로 알아채게 되는 때는 언제일까요? 어떻게 그렇게 되는 것일까요? 학습되는 것입니까? 스스로 귀하다는 것은...자존, 존귀, 귀하다는 것은, , 그것은 존, 존나 귀하다는 의미입니까. 내가 존귀합니까. 나는 그냥 있었는데요. 언제나 여기저기에 있었는데요. 이렇게 그냥 있어도 존귀할 수 있습니까. 존귀하는 것, 그것은...아무래도 상태는 아니지 않아? 정태(靜態)가 아니고 동태(動態)가 아닙니까? 가만히 있어도 존나 귀하다면 그것은 일단 인간은 아니라는 생각이 드는데요....왜냐하면 인간은 똥을 싸는 데에도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생물이니까 병원비와 생활비도 벌어야 하고 그렇지 않습니까. 당신은 어떻습니가. 괜찮습니까. 자존하고 있습니까. 제대로 존귀합니까. 존나 귀합니까. 누구에게 그것을 배웠습니까.(203p)”

 

  전체적인 이야기가 8번째, <복경>에서 퍼즐이 완성되는 듯 하다. 그런 면에서 8개 스토리 중에 하나를 뽑으라면, 단연 <복경>이다. 

 

 

9

딸이 자신의 집안과는 대조적인 준재벌에 해당하는 가문과 결혼했는데, 딸에 눈에 비친 사위의 가문은, 집안이 쌓은 경제적인 성루가 무너지지 않도록 관리하는데 혈안이 되어 있는 것을 보면서, 다름과 차이를 느꼈다는 김형석교수의 이야기가 생각이 난다.

    

물리적으로, 경제적으로, 환경적으로, 심리적으로 <아랫층>에 산다는 트라우마와 콤플렉스를 가진 이들은 자신의 자존, 존귀를 지킬 수 있을까? 자신도 존나게 귀하다는 것을 지킬 수 있을까?

 

8개의 단편이야기,아무도 아닌이란 단편소설집 전체에 흐르는 그 중후한 비애감에 대해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문장이다.

 

내가 여기 틀어박혔다는 것을 아는 이 누구인가

아무도 나를 구하러 오지 않을 것이다.

아무도 나를 구하러 오지 않을 것이므로 나는 내 발로 걸어나가야 할 것이다.”(185p)

 

 

     

Epilogue...

 

근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위의 문장보다 더 좋은, 더 나은 문장이 있다. 카뮈식의,

 

제 탓이 아니쟎아요.”

 

이 문장은 너무 친절하고 배려심이 강한 문장이다. 하지만, 적절하다. 그러나, 이 문장은 너무 갑갑하다. 더 빳빳한 힘이 낼름거리는 문장이 필요하다.

 

 

 

 

 

 

      

아래층이야, 씨발년야!”

 

아래층이야, 씨발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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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1-23 09: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1-23 09: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카알벨루치 2019-01-23 09:57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밤에 적은 글, 아침되면 후회되는데 오늘 글은 마지막 욕설 문장땜에 너무 얼굴이 화끈거립니다 평소에 이런 모습이 없으니 여기서라도 한 마디 할까해서 했는데 역쉬나 어색하긴 어색합니다 그래도 참으면 병나니...ㅋㅋ

oren 2019-01-23 13: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카뮈의 『이방인』과 황정은의 『아무도 아닌』을 함께 맛깔나게 버무려 주시니 글이 아주 재미있네요. 이방인의 뫼르소가 했던 말이나 아래층에 사는 사람이 했던 막말이나, 말이라는 게 그걸 어떻게 표현하느냐에 따라 한순간에 모든 사태를 완전히 뒤바꿔 놓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새감 느끼게 되네요. 오래 전에 『이방인』에 대한 리뷰를 쓸 때 인용했던 쇼펜하우어의 글을 재미삼아(!) 덧붙여 봅니다.^^
* * *
대적하는 자에게 그대는 무어라고 중얼거리는가?

누가 공격하면 공격을 받은 사람은 지금부터 말하려고 하는 명예 회복의 절차에 따라 자기 손으로 되찾지 않으면, 그 명예를 영원히 잃어버리게 된다. 그러나 이 절차는 아무래도 그 생명, 자유, 재산, 마음의 평정 등에 위험이 닥칠 것을 각오해야 한다. 그러므로 어떤 남자의 행위가 성실하고 고귀하며, 심성이 순결하고, 두뇌가 대단히 뛰어나 있다고 하더라도, 그를 비방하는 것이 다른 사람(이 사람은 그저 지금까지 이 명예의 법칙을 어긴 일이 없으면 되고, 그 외에는 보잘것없는 인간 쓰레기건 어리석기 짝이 없는 짐승 같은 자이건, 게으름뱅이, 도박꾼, 빚쟁이라도 무방하다)의 마음에 들기만 하면 곧 명예를 잃게 된다.

그리고 이와 같은 일을 즐기는 자는 대개 앞에서 말한 부류의 인간일 것이다. 그리고 세네카가, ˝경멸해도 싼 놈팡이일수록 그 혓바닥이 고약하다˝라고 한 것도 적절한 표현이다. 그뿐만 아니라 이런 인간이야말로 처음에 말한 바와 같은 사람을 만나면 감정이 상하는 모양이다. 됨됨이가 상반된 사람은 서로 미워하게 마련이며, 볼품없는 자가 뛰어난 사람을 은근히 경멸하는 것은 흔한 일이다. 이와 비슷하게 괴테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대적하는 자에게 그대는 무어라고 중얼거리는가?
그대와 같이 성품이 뛰어난 자는
영원히 그들의 눈에 난 가시로다.
어찌 이들이 그대의 벗이 되랴!
《서동시집》

- 쇼펜하우어, 『삶의 예지』, ‘명예에 대하여‘ 中에서

카알벨루치 2019-01-23 13:07   좋아요 1 | URL
굿뜨 👍👍👍오렌님의 모든 댓글은 찰지고 꽉 찹니다 정성이 너무 들어 있어서 너무 감사하네요 ^^

oren 2019-01-25 17:2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카알벨루치 님이 쓰신 이 글을 읽고 제 머릿속에 떠오른 ‘아주 오래된 이야기‘가 하나 있어서 그걸 먼댓글 형식으로 이어붙이려 했는데, 그만 연결이 잘 안 되네요.(아마도 먼댓글 형식을 막아 놓은 게 아닌가 싶네요.)
그래서 하는 수 없이 제가 쓴 글의 ‘댓글창‘에 그런 사연을 밝혀 놓았습니다. 아무쪼록 양해하시기 바랍니다.

서니데이 2019-01-25 19: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손글씨로 쓰신 노트의 사진이 좋아보입니다.
읽기에는 워드로 타이핑 된 것들이 좋지만, 보기에는 손글씨가 멋있어요.^^
카알벨루치님, 따뜻하고 좋은 금요일 저녁시간 보내세요.^^

카알벨루치 2019-01-25 19:30   좋아요 1 | URL
디아벨 차원에서 그렇게 하고 있는데, 손글씨로 쓴 내용은 종종 들추어보면서 음미하는 재미가 있네요

워드로친걸 또 다시 들추는 경우는 극히 드문데 종이에 쓴건 들추면 되니깐 또 보게 되는 유익이 있습니다 시간의 품이 좀 든다는 게 단점이지만...허나 시간의 품이 들지 않으면 효과가 있는 게 있는가 싶기도 합니다 즐건 불금 되세요^^

coolcat329 2019-08-21 13: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다시봐도...글씨,제 글씨체였음 좋겠습니다. 제가 너무너무 좋아하는 글씨입니다. 황정은의 책을 한 권도 안읽어봤는데 읽어봐야겠습니다. 글 잘 읽었습니다.

카알벨루치 2019-08-21 15:05   좋아요 1 | URL
언제 오셨대요? 글씨체가 보기 싫지 않아서 다행입니다 ^^댓글 감사해요~황정은의 책, 좋습니다 ㅎㅎ
 

 

영화 ‘헬렌 어브 트로이’, ‘트로이의 헬렌’은 영화 ‘트로이’-브래드 피트 주연-와 같이 등장한 영화이다. 마치 ‘트로이’의 아류작 비슷하게 등장한 것이 그 영화를 그늘지게 한다. 영화 ‘트로이’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은 당연히 ‘헬렌 어브 트로이’에 대한 무게비중은 감소시켰다. 마치 트로이의 사생아 같은 격이 되어버린 영화, <헬렌 어브 트로이>…. 하지만 관객들은 영화에 대해 정확하게 평가한다. ‘트로이’ 보다 ‘헬렌 어브 트로이’가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것은 사실이다.



  내가 이 영화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요 근래 칼라판으로 아주 화려하게 수놓은 700페이지를 넘는 양의 책을 한 권 구입하였는데 그 책 이름은 바로 ‘사람이 알아야 할 모든 것_교양 Bildung’이다. 이 책은 출판사 ‘들녁’에서 기획작품으로 내어놓은 특별판 이었다. 원래 3만원 정도했던 책이었는데 2004년도 판에서는 사진과 그림을 수록하여 종이재질은 아주 고급용지로 하여 책의 부피를 부풀리면서 가격이 5만 2천원으로 껑충 뛰어버렸다. 이 책을 서점에서 보고는 살까? 말까? 대단히 고민했었다. 5만 2천원 책을 그것도 현금 박치기로 산다는 것은 내게 쉬운 일만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돈을 제일 많이 쓰는 곳이 바로 ‘책’이라는 영역이기에 결국 사고 말았다.



그 책에 보면 오늘날의 시대가 많은 부분에서 풍부하고 풍성하여 흘러 넘치는 것 같지만 막상 돌아보면 ‘기본’이 결여된, ‘교양’이 무너진 현실이라고 꼬집고 있다. 그렇기에 그런 제목의 책이 나온 것이 아니겠는가? <교양>말이다. 그 전에 나는 ‘이.마트’에서 ‘사람이 알아야 할 모든 것_책’(저자는 ‘크리스티아네 취른트’이다)을 이미 구입했었다(참고로, 이마트는 OK Cashbag적립이 대단히 짠데, 유독 책을 구입하면 10%나 적립시켜 준다. 솔직히 이 10퍼센트 적립이 컸다).



디트리히 슈바니츠가 쓴 ‘교양’을 보면 유럽의 역사가 <두 문화, 두 민족, 두 텍스트>로 출발했다고 이야기한다. 그것은 헬레니즘 문화와 히브리즘 문화이다. 헬레니즘 문화는 신화적인 작가, 호메로스가 쓴 이야기, ‘그리스가 트로이를 포위한 사건에 관한 ‘일리아스ilias’(트로이는 그리스어로 일리온Ilion이다). 그리고 지략에 뛰어난 오디세우스가 파괴된 트로이에서 자신의 아내 페넬로페가 있는 고국으로 귀환하는 도중에 길을 잃고 헤매게 되는 과정을 묘사한 ‘오디세이아Odyssey’라는 양대 서사시이다’. 내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이 내용과 영화의 내용이 오버랩 되었던 것이다. 이윤기의 ‘그리스.로마 신화’를 읽다가 만 나로선, 아직도 이러한 신화적인 이야기들에 대해선 생소한 느낌이 많이 드는데,



‘헬렌 오브 트로이’를 보면서 책을 우연찮게 동시에 읽게 된 타이밍이라 책의 내용과 영화의 내용을 대비할 수 있어 좋았다. 그리스.로마신화를 잠시 소개하면, 그리스 신들이 사는 하늘(판테온)에는 여러 갈래의 부족집단이 있으며, 상호간의 결혼관계가 하도 복잡해 전체적인 조망이 불가능할 정도다. 그러니깐 수많은 개별적인 신화들은 하나의 가족 전설의 일부분인 셈이다.



우라노스Uranos가 ‘어머니 대지(大地)’라는 별명을 가진 모친 가이아Gaea와 근친상간을 함으로써 그 전설은 시작된다. 여기에서 세 명의 외눈박이 거인 족 키클롭스Cyclops가 태어났으며, 그 다음에 열두 명의 티탄Titan이 태어났다. 이 외눈박이 거인족들이 반역하자 우라노스는 이 거인족들을 타르타로스(Tartaros. 지하세계. 일종의 편안한 연옥)로 내던졌다. 가이아는 막내아들 크로노스(Kronos. ‘시간’이라는 뜻)에게 낫을 주어 우라노스의 생식기를 자르게 했다. 크로노스가 생식기를 잘라 바다에 던지자, 핏물 거품 속에서 아프로디테(Aphrodite. ‘거품에서 태어난 사랑의 여신’이라는 뜻)가 솟아 올랐다. 크로노스는 자신의 누이 레아Rhea와 결혼했고 부친의 왕위를 계승했다. 하지만 크로노스 역시 자녀들에 의해 권좌에서 축출되리라는 예언을 들었다. 그는 그 예언의 실현을 막기 위해 자식들, 즉 헤스티아Hestia, 데메테르Demeter, 헤라Hera, 하데스Hades, 포세이돈Poseidon을 모두 잡아먹었다. 그의 아내 레아는 점점 그 행동이 부질없는 짓이라고 여겨 셋째 아들 제우스Zeus를 크레타 섬에 숨겨두었다….



이 제우스는 여성편력이 대단했는데 테미스, 레다, 세멜레와 간통을 한다. 제우스와 레다 사이에서 딸이 미녀 헬레네Helene이다. 영화 ‘헬렌 어브 트로이’는 이러한 신화적인 배경을 깔고 보면 흥미가 더해진다. 아트레우스Atreus 가문에서는 아가멤논Agamemnon과 메넬라오스Menelaos가 태어난다. 아가멤논은 탄탈로스Tantalos의 딸 클리템네스트라Clytaimnestra와 결혼했다. 그의 동생 메넬라오스는 레다의 딸인 미녀 헬레네와 결혼했다. 아프로디테는 그 두 여인의 정숙하지 못한 결혼생활이 인간들에게 재앙을 불러 오도록 그 운명을 미리 정해놓았다…. 영화에서는 헬렌이 클리템네스트라의 동생으로 나온다. 그리고 메넬라오스가 헬렌과 결혼하는 것도 인위적으로 각색했다. 트로이이의 왕, 프리아모스Priamos에게는 두 왕자 헥토르Hector와 파리스Paris가 있었다. 파리스는 영화에서 헬렌과 운명적인 사랑을 나누게 된다. 이것은 아프로디테가 지워진 운명이기도 했다.



이것에 대해 좀 더 이야기하자면,
이 목동(파리스를 지칭한다. 그는 비극적인 운명에 대한 꿈 때문에 트로이의 왕가에서 죽이라는 명령을 받았으나 총사령관은 그 아기를 살려주었고 잘 키워 목동이 된다)은 인물도 수려하고 가축을 감정할 때는 뇌물에 흔들리지 않고 단호한 판정을 내렸으므로 사람들의 눈에 띄었다. 그래서 제우스는 그를 세 여신, 즉 아테나와 헤라, 그리고 아프로디테가 출연하는 미인 선발대회의 심사위원으로 임명하기에 이르렀고, 가장 아름다운 여신에게 사과 하나를 상으로 건네주라고 시켰다. 아프로디테가 그를 만나서 만일 자기에게 사과를 주면 미녀 헬레네와 결혼할 수 있게 해주겠다고 매수하자, 파리스는 아프로디테에게 사과를 주었다. 여기에 실망한 아테나와 헤라는 트로이를 파괴하기로 결심했다….



아가멤논이 자신의 딸 이피게네이아Iphigeneia를 제물로 바쳐 죽이는 장면은 신화에서는 없는 장면이다. 영화는 딸을 죽임으로 함대가 출항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하지만 신화에서는 ‘신들은 그녀를 타브리즈Tabriz로 데려갔다. 그런데도 함대는 출항할 수 있었다’고 기술하고 있다. 그리스인들은 트로이를 10년 동안이나 포위하고 있었다. ‘일리아스’의 이야기는 바로 이 10년째 되는 해부터 시작한다. 그러면서 그 유명한 ‘트로이의 목마’가 여기서 등장한다. 영화는 이러한 모든 그리스의 이야기를 조합하여 각색하였고 그것을 ‘트로이의 헬렌’으로 포커스를 모은다. 한 여자로 인해 벌어진 역사는 수많은 살상과 전쟁과 폐허를 남기고 종말을 지우게 된다. 관객의 입장에서 파리스와 헬렌의 사랑이 계속되기를 바랬지만, 그러한 기대도 무너진다. 모든 것을 거머쥔, 트로이를 거머쥐고 헬렌을 동생인 메넬라오스 앞에서 강간하면서 야심 찬 욕망을 모두 채운 듯 했으나 그는 딸을 잃은 어미인 클리템네스트라, 즉 자신의 아내에게 칼로 난자 당하여 목욕탕에서 죽음을 맞이한다.



영화와 신화의 대조점을 찾아보면서 영화를 보면 흥미를 더하겠으나 영화의 완성도나 전개나 스토리 구성 등을 두고 볼 때 점수를 후하게 주고 싶은 맘은 없다. 내가 ‘사람이 알아야 할 모든 것_교양’이란 책을 그 즈음에 읽지 않았더라면 이 영화는 내 기억 속에 그리 오래 남을 여지가 없어 보이는 영화이다.



다시 한 번 느끼는 것이지만 그리스의 문화는 참으로 대단하며 탁월하며 심오하나 복잡하다. 하지만 흥미진진한 것만은 사실이다. 오죽하면 내가 새벽까지 영화 보고 이렇게 책을 참고해가면 글을 쓰겠는가?

…2004-07-08 새벽에
Written By karl21


참고도서
-디트리히 슈바니츠, 사람이 알아야 할 모든 것_교양(서울: 들녁,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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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1-21 09: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1-21 10: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oren 2019-01-21 17: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글을 읽으니, 영화 <트로이>를 개봉관에서 흥미롭게 본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게 떠오르네요. 그런데 이와 비슷한 영화인 <헬렌 오브 트로이>가 엄연히 따로 있는 줄은 미처 상상도 하질 못했네요. 암튼 카알벨루치 님의 글 덕분에 유익한 정보 하나 얻어 갑니다.^^

그런데, 지금으로부터 무려(!) 14년 전에 쓰셨던 이 글에 대해, 전혀 시의적절하지 못한 중뿔난 댓글을 좀 달아도 좋을런지 모르겠군요. 어쨌든 제가 아는 ‘신화의 내용‘과는 약간 다르게 설명하신 부분들이 몇몇 눈에 띄어서요.(절대로 테클은 아니니 널리 이해해 주시리라 믿습니다...)

* * *

영화에서는 헬렌이 클리템네스트라의 동생으로 나온다.
---> 헬레네와 클뤼타임네스트라(천병희 선생님 번역본의 표기)는 그리스 신화에서 엄연히 ‘자매지간‘이 맞습니다. 그것도 쌍둥이 자매였지요. 그들 둘 사이의 관계가 자주 언급되지 않아서 특별히 눈에 띄는 자매는 아닙니다만... 그런데, 아이스퀼로스의 『아가멤논』과 같은 작품에서는 ‘언니, 동생‘ 하면서 두 사람이 ‘친자매 관계‘인 점을 자주 보여줍니다. 레다의 딸들이지요. 아리아드네의 실‘을 이용해서 ‘미노스의 궁전‘에 사는 괴물 미노타우루스를 죽였던 아테네의 영웅 테세우스가 젊어서 한 때 ‘헬레네 납치극‘을 벌인 적도 있었지요. 납치 사건이 일어나자 헬레네의 쌍둥이 동생인 카스토르와 폴뤼데우케스가 그녀를 구출했고, 이 두 형제는 별이 되어 지금도 ‘쌍둥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지요.

아가멤논이 자신의 딸 이피게네이아Iphigeneia를 제물로 바쳐 죽이는 장면은 신화에서는 없는 장면이다.
---> ‘이피게네이아‘는 아가멤논의 딸이 맞고, 트로이 원정을 떠나는 그리스 함대의 출항이 늦어지는 이유 또한 ‘이피게네이아를 제물로 바쳐야 하는 일‘ 때문에 빚어진 게 맞습니다. 이 유명한 스토리는 <일리아스>에도 상세히 나오지요. 그녀는 희생제의에 바쳐져 장작더미 위에서 불태워지지만, 신들의 도움으로 머나먼 타우리케로 가서 ‘여사제‘가 되고, 훗날 남동생 오레스테스와 여동생 엘렉트라 때문에 다시 그곳을 탈출해서 그리스로 되돌아 오게 되지요. 이 이야기는 에우리피데스의 비극 <타우리케의 이피게네이아>와 <아울리스의 이피게네이아>에도 담겨 있습니다.

그는 딸을 잃은 어미인 클리템네스트라, 즉 자신의 아내에게 칼로 난자 당하여 목욕탕에서 죽음을 맞이한다.
---> 이 부분은 사실과 부합하는 맞는 얘기이긴 한데, 약간의 보충 설명이 필요한 듯해서 적어 봅니다.
아가멤논이 ‘트로이 전쟁‘에 참전해 있는 동안에 아내인 클뤼타임네스트라는 아이기스토스라는 외간 남자와 부정을 저지른 이른바 ‘불륜녀‘였지요. 아이기스토스는 아가멤논에게 복수를 하기 위해 트로이 전쟁에 참여하지 않고 일부러 아테네에 남아 있었고요. 이 사람이 바로 (이 글에서도 언급해 주신) 튀에스테스의 아들이었지요. 아트레우스 가문과 튀에스테스 가문은 뿌리깊은 원수지간이었고요.

바로 이 사건 때문에, 아버지 아가멤논을 잃은 자식들인 오레스테스와 엘렉트라는 멀리 도망을 치고, ‘아버지의 원수‘를 갚기 위해 결국 친모인 클뤼타임네스트라를 죽입니다. 그 이야기를 담은 그리스 비극이 아이스퀼로스의 <오레스테이아>(3부작)이고요. 이 이야기는 에우리피데스의 <엘렉트라>와 <오레스테스>에도 거듭 다뤄질 정도로, 고대 그리스 신화 가운데서도 핵심을 이루는 ‘테마‘여서 (주제넘긴 하지만) 길게 주절주절 덧붙여 봤습니다.

트로이 전쟁이 끝난 뒤에 헬레네가 어떤 경로를 통해 그리스로 귀국했는가에 대해서는 ‘두 가지 설‘이 있는데, 이집트를 경유해서 귀국했다는 설을 담은 이야기는 에우리피데스의 비극 『헬레네』에도 나오고, ‘역사의 아버지‘라 불리는 헤로도토스가 쓴 『역사』에도 나오는데, 저는 그 이야기가 너무 흥미로워서 글로도 아주 길게(!) 써 본 적이 있었습니다. 시간 나시면 한번 읽어 보시길 바랄께요.^^ http://blog.aladin.co.kr/oren/6972956

카알벨루치 2019-01-21 17:44   좋아요 1 | URL
제가 하도 오래전에 적은건데 디트리히 슈바니츠의 책을 참조한 것으로 기억됩니다 원전이 아닌 개인적인 해석이 들어간 <교양>책이라 내용이 다를 수도 있겠네요

그리스 신화는 너무 짬뽕되어서 제가 일일이 기억하지 못한 부분과 오해된 부분이 있을 수도 있겠습니다 오렌님의 정성스런 댓글에 제 입에 터져 나온 첫 마디는 “오 마이 갓”입니다 ㅎㅎ

정성이 묻은 댓글로 인해 감사한 마음 가득입니다 그리스 신화에 대해서도 많은 정보 오렌님을 통해 참고하겠습니다 요즘 포스팅이 잘 안되서 옛날에 적은 글 올려봤습니다 부족한 부분 널리 양해하소서! 감사합니다 ㅎ
 

 

  Prologue... 

  아무것도 아니야?

우리가 흔히 지인들의 표정을 보고 질문을 던진다.

 

무슨 일 있니? 얼굴이 왜 그래? 힘든 일이라도 있어?”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상대방은 아무것도 아니야라고 대답한다. 하지만, 아무것도 아니야라는 대답이 아무것도 아닐 수가 없다’. 여기서 아무것도 아닌 것은 <아무것도가 아니라 모든 것>이 될 수 있다.

 

 

    

 

아무것도 아니면서도 모든 것인 성지(聖地), 예루살렘

올랜드 블룸이 주연하고, 리들리 스콧이 주연한 영화 <Kingdom of heaven>은 십자군 전쟁이야기를 다룬다. 이 영화에서 마지막 대목에서 주인공 발리앙(올랜도 블룸)이 이슬람군의 살라딘 장군에게 질문을 한다.

 

당신에게 예루살렘은 무엇이냐?”

 

살라딘이 대답한다.

 

“Nothing.”

 

살라딘은 이슬람군의 성지인 예루살렘을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한다. 곧 이어 등을 돌려 다시 한 마디 더한다. 두 손을 주먹 쥐어 부딪히면서 덧붙인다.

 

“Everything!”

 

살라딘에게 예루살렘은 아무것도 아니면서도 모든 것인 장소이자 바로 성지인 것이다. 모든 전쟁이 그러한 질문을 내포하고 있듯이, 영화 <킹덤 오브 헤븐>은 이 전쟁의 대의명분이 감싸고 있는 본질적인 질문, ‘이 전쟁은 누구를 위한 전쟁인가?’란 질문을 던진다. 십자군 전쟁에 대한 관심이 생겨 시오노 나나미의 <십자군전쟁>을 중고로 삼만원 구입하여 모셔두고 있다(부디 올해 안에 읽기를....^^) 내가 여기서 이 영화에 대한 이야기보다는 살라딘이 남긴 말에 의미를 두고 싶다.

 

    

 

    <아무것도 아니면서 모든 것인 나>

“It's nothing, it's everything, it's me.”

 

    

 

아무것도 아니면서 모든 것이 되어버린 이데올로기

조정래의 태백산맥을 읽고 있다. 이 소설이 다루고 이는 시대를 흔히 민족사의 매몰시대’, ‘현대사의 실종시대라고 한다. 코에 걸면 코걸이이고, 귀에 걸면 귀걸이가 되던 시대였다. 소위 빨갱이라고 불리는 좌익 이데올로기에 의해 흡수되기 전, 등장인물 중 염상진은 지주인, 김범우의 부친에게 찾아가 자신에 입에 풀칠을 할 수 있도록 박토라도 빌려달라고 한다. 염상진의 태도에 김범우의 부친은 젊은이의 패기와 담백함에 흠모되어 그의 부탁을 들어준다. 염상진도 빌려준 농지에 대해 황송할 만큼 고마워한다. 하지만, 시대가 바뀌었다. 가난에 쩔어 살았던 염상진은 공산주의 이데올로기에 빠져든다. 그리고서 이전의 은인이었던 지주, 김범우의 부친도 인민재판에 세운다. 다행스럽게도 덕이 많았던 김범우의 부친은 목숨을 부지했다. 하지만,

 

염상진은 아버지의 목숨을 부지시키기는 했지만 아버지의 정신은 무참히 살해하고 말았다. 아버지는 자신의 목숨을 살려준 염상진에게 결코 고마워할 것 같지가 않았다.’(1권, 165p)

 

이념은 그렇게 사람과 사람 사이를 갈라놓았다. 아무것도 아닌 이념은 어떤 이들에겐 모든 것이 되어버렸다. 김범우의 부친은 이 일로 인해 얼마 후에 죽는다.

 

 

아무것도 아닌 이념과 사상과 이데올로기가 모든 것이 되어 버린 것이다.

   

 

시인 최승호의 시집에 <아무것도 아니면서 모든 것인 나>라는 제목의 시는 없다. 하지만 그 특별한 메시지는 시에 녹아나 있다. 한번 읽었지만, 시집 제목만 기억이 또렷하지, 시는 기억이 나질 않는다.

 

 

아무것도 아니면서 모든 것<>, 그리고 <>

이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사람은 우리 자신이다. 우리는 아무것도 아니지만, 가장 중요한, 모든 것은 바로 나 자신이다. 그렇지 않은가?

 

 

하지만, 시인 최승호의 접근은 사람과 사람 사이, 나와 너의 사이에서 아무것도 아니면서 모든 것인 나라는 관점이 적용된다는 말이다. ‘아무것도 아니면서 모든 것인 나아무것도 아니면서 모든 것인 너가 되는 것이다. 우리는 아무것도 아니면서 모든 것인 나라는 존재가 아무것도 아니면서 모든 것인 너와 관계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사람은 자신을 모든 것인 나라고 생각하며, 상대방에 대해 아무것도 아닌 너라고 대하는 경우가 자주 있다. 최승호 시인은 이것은 단순히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만이 아니라 나라는 자신, 존재와 관계된 사물과 사람과 모든 것들이, 심지어 내 안에 머무는 세포와 조직과 뼈와 오장육부와 육체, 더 나아가 신()과의 관계에까지도 확대적용될 수 있는 부분이다. 시집이 옆에 있다면 들추어도 보고 싶은데, 빌려서 읽었던 지라 더 이야기하지 못함을 이해해주길 바라.

 

 

 

나는 여기서 우리가 사람을 대할 때, ‘아무것도 아니면서 모든 것인 나아무것도 아니면서 모든 것인 너가 만난다는 것을 기억해뒀음 한다. 우리는 아무리 고령화사회를 산다 하지만, 100년이란 경계선에서 얼추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면서 우리는 생을 마감하게 될 것이다. 한 번밖에 없는 인생이기에 더욱 소중한 나, 하지만, 저 너머에 나와는 또 다른 나라는 존재가 아무것도 아니면서도 모든 것인 상태로존재하고 있다는 것이다.

 

 

    

 

아무것도 아니면서 모든 것인 <우리나라>

   김형석 교수가 쓴 왜 우리는 기독교가 필요한가에 보면, 종로에서 세무사를 하던 최 선생 이야기가 나온다. 세무사의 일을 보던 최 선생은, 우리나라 마라톤을 개척했던 손기정 옹(2002년 별세)의 일화를 들려주었다. 손기정 옹이 오셔서는 최근에 상을 하나 받아 상금이 약간 생겼다. 그 상금을 쓰기 전에 세금을 먼저 내야겠다는 생각으로 왔다며 납세 절차를 밟고자 했다. 최선생 왈,

 

 

 

선생님은 연세도 높으시고 직업이 있는 것도 아니시니 신고 안 해도 괜찮습니다.”

 

내가 지금까지 한평생 사는 동안 대한민국이 주는 혜택을 얼마나 많이 받았는데, 공자 돈이 생겼을 때 세금 좀 내고 가면 내 마음이 편할 것 아닌가. 날 좀 도와주게.”

 

 

 

최 선생이 세금을 계산해서 그 내역을 내밀었다. 손기정 옹은 왜 이것밖에 안 되냐면서, 좀 더 많이 내는 방법도 있지 않느냐고, 그렇게 계산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래서 그가 많이 내는 쪽으로 계산해서 내역을 보여드렸더니, 그제야 그만하면 됐다고 기쁜 얼굴로 만족하셨다고 한다.

 

 

 

최 선생은 김형석 교수에게 이렇게 이야기했다.

 

선생님, 사실 저는 지금까지 한 번도 제가 나라에서 주는 혜택을 받으며 살고 있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그 어른이 와서 그런 얘기를 하고 가시니까, 나라 없는 때에 사신 분들은 우리하고 생각이 다르구나 싶었습니다.”

 

그러더니 저한테도 일제강점기를 사셨으니 그런 생각을 하느냐고 묻더군요. 그래서 제가

 

 

 

나는 해방 후 2년을 북쪽에 있다가 나왔습니다. 그때 대한민국이 나를 받아주지 않았다면, 내가 대한민국의 품으로 오지 못했다면 지금쯤 내가 세계 어디에서 떠돌이 생활을 했을지 모릅니다. 그때 대한민국이 날 받아줬으니까 내가 지금 이렇게 사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비록 대한민국을 위해서 도움을 주지는 못해도 그 사실을 잊을 수는 없습니다.”

 

라고 이야기했습니다.

 

 

 

 

나는 이 대목을 대하면서, 참 우리 세대는 조국을 잃어 본, 나라를 잃어 본 경험이 없기때문에 나라와 국가의 소중함을 모르고 살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손기정 옹 같은 분이나, 김형석 교수는 대한민국의 소중함을 아시는 분들이시다. 나라와 국가는 어쩌면 너무나 우리에겐 당연하게 존재하는 배경인 셈이다. 너무나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것이기 때문에 감사함이 없을 수 있겠다. 하지만, 대한민국은 아무것도 아니지만 모든 것인 나의 나라인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해봤다.

 

 

 

아무것도 아니지만 모든 것인 인생,

   

 

한번씩 소통전문가 김창옥씨의 <포프리쇼>를 본다. 김창옥 교수가 영화배우를 하고 싶어한다. 그래서 알게 된 영화감독이 그의 강의를 들으러 왔다. 강의를 진행하던 중에 김교수가 영화감독에게 어떻게 해서 영화감독이 되었고 영화감독을 하고 있느냐고. 무언가 대단한 비전과 이야기가 튀어나올 것을 기대했다. 하지만, 답은 의외로 단순했다.

 

먹고 살기 위해서!”

    

 

김 교수가 이 의외의 대답을 해석을 잘했다고 생각한다. ‘먹고 살기 위해서란 말은 <생존>을 위해서 일을 한다는 말이고, 그 생존과 생계를 위해 감독을 한다는 말이다. 그 단순명쾌한 대답에 김창옥 교수는 <가장 기초적이고 먹고 살기 위한 일이 가장 숭고한 일이고, 거룩한 일이다>라고 했다. 근데, 그 말이 내게 굉장히 울림 있게 다가왔다. ‘밥 먹고 살기 위해서우린 살아가지만, 삶은 여전히 경이로운 것이란 말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쳐주신 주기도문에서 먹고 사는 문제까지 아주 중요하게 거론했다고 생각한다.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Give us today our daily bread

 

 

 

먹고 사는 것은 위대한 일이다. 거룩하고 경이로운 일이다.

내가 그로테스크한 대의명분과 진리라고 생각하는 것들을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하면서 하는 그 무엇도 나름 위대하겠지만, 가장 위대한 것은 아무것도 아닌 것들이다. 왜냐하면 아무것도 아닌 것이 모든 것이기 때문이다. 아무것도 아니게 느껴지며, 별볼일 없게 느껴지는 먹고 사는 삶이 가장 위대하고 존엄한 사명이 아닐까 싶다.

 

 

 

삶은 한 번밖에 없는 인생이다. 그 인생의 큰 그림의 퍼즐을 맞추기 위해 우리는 지금도 하루의 퍼즐을 끼우고 있는 셈이다.

 

 

 

 

  Epilogue...  

오늘 하루,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모든 것인 나의 하루>이다!

  

 

 

인제 저녁을 먹어야겠다.

애들이 좋아하는 돈가스로 식사를 해야겠다.

(여기까지 읽어주신 모든 이웃분들과 방문객들에게 경이를 표합니다. 그대는 제겐 아무것도 아니지만, 모든 것인 너이기 때문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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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9-01-06 19: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러게 말입니다. 나라를 좀 사랑하고 살아야 할 텐데
얼마나 사랑하고 사는지 모르겠습니다.ㅠ
김형석 교수님은 참 감동이더군요. 사시는 모습이.
타고난 선비란 생각이 들더군요.^^

카알벨루치 2019-01-06 20:57   좋아요 1 | URL
김형석교수님 진짜 감동입니다 오래오래 사셔야할텐데 건강하셔야할텐데...

2019-01-06 20: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1-06 20: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페크(pek0501) 2019-01-07 11: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캬~~ 이 글을 읽고 나서 저절로 나온 나의 감탄 소리.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굿 데이...

카알벨루치 2019-01-07 12:09   좋아요 0 | URL
페크님의 칭찬에 몸둘바를 모르겠어요 감사해요 오늘도 즐거운 월요일 되십시오 ^^

뒷북소녀 2019-01-07 12: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캬!!!! 마지막 문장, 정말 멋지네요.
아무것도 아니지만, 모든 것인 ‘저‘도 포함되는거죠?ㅋㅋㅋ

카알벨루치 2019-01-07 15:26   좋아요 0 | URL
맞습니다 “아무것도 아니지만 모든 것인 너’ 맞습니다^^ㅋ당연히 포함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