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모 데우스 시대의 데이터교

노아 유발 하라리는 그의 저서 호모 데우스에서 인류가 새롭게 신봉할 종교로 데이터교를 이야기한다. 데이터교도들은 만물인터넷 Internet-of-All-Things’이라 불리는 새롭고 훨씬 더 효율적인 데이터 처리 시스템을 선호한다. 이제 호모 사피엔스는 사라지고 데이터교가 인류를 장악할 것이라는 진단을 내놓는다. 데이터교의 최고의 가치는 정보의 흐름이다.

 

 

 

 

데이터교의 생명-정보data의 흐름

데이터교도들의 첫 번째 계명은 가능한 한 많은 매체와 연결해 가능한 한 많은 정보를 생산하고 소비함으로써 데이터 흐름을 극대화하라는 것이다. 두 번째 계명은 연결되기를 원치 않는 이단까지 포함해 모든 것을 시스템에 연결하라는 것이다. 여기서 모든 것은 단지 인간만을 뜻하지 않는다. 말 그대로 모든 을 뜻한다...데이터교도들은 가장 큰 죄악은 데이터의 흐름을 차단하는 것이다. 정보가 흐르지 않는 것이야말로 죽음이 아니겠는가? 따라서 데이터교는 정보의 자유를 최고선으로 친다(523p).

 

 

 

 

만물인터넷으로 데이터를 접속하는 신인류

우리의 몸은 물론이거니와 자동차, 부엌의 냉장고, 닭장의 닭과 정글의 나무까지 모든 것이 만물인터넷에 연결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문득 Factfulness란 책의 내용이 떠오른다. 우리가 소위 세상인류를 구분 지을 때 부자와 빈자, 라는 극단적인 기준으로 그룹핑grouping한다. 하지만, 저자는 인류를 4단계로 구분 짓는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고 물을 길으러 가야 하는 아주 극빈층, 전기는 들어오고 하루에 4달러를 버는 그 다음단계, 전기에 냉장고까지 갖추고 하루에 16달러를 버는 그 위의 단계, 마지막으로 1,2,3 그룹이 갖추지 못한 모든 것을 갖춘 그룹은 4번째 그룹으로 최상위 그룹으로 친다는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우리는 최상위 그룹에 속해 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데이터교도들의 관점에서 보면, ‘만물인터넷을 사용 할 수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4번째 그룹 위에 5번째 그룹을 새롭게 생성할 수 있겠다 싶다.

 

    

 

 

데이터의 가장 큰 힘은 바로 공유의 힘

만물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는 수많은 인류, 우리는 데이터교에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 하지만 이 데이터교에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공유이다.

 

2013111일 자신의 아파트에서 자살한 26세의 미국인 해커 애런 스위츠란 인물이 있다. 그는 데이터교의 첫 순교자이다. 무슨 말인가? 그는 스위스의 보기 드문 천재였고, 그가 접속한 수많은 수십만 편의 과학 논문을 이용로를 받지 않고 모든 사람이 무료로 읽을 수 있도록 인터넷에 올릴 작정이었다. 그는 놀라운 정보와 과학적 데이터를 공유하고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스위스는 그를 체포하고 재판을 받게 된다. 유죄 판결을 받고 죄수의 운명이 되자, 그는 스스로 목을 매고 만다. 이 사건에 대해 분노한 해커들은 스위스 정부를 압박했다. 스위스의 비극에 대해 정부는 사과를 했고, 지금은 대부분의 모든 데이터를 무료로 이용할 수 있게 해놓았다고 한다. 미국인 해커 애런 스위츠가 싸운 것은 바로 정보의 자유’, ‘데이터의 자유였다. 그것은 곧 공유란 광대한 만물인터넷에 들어가는 것을 말한다.

 

 

 

경험하면 기록하고, 기록하면 업로드하고, 업로드하면 공유하라?

하라리는 이렇게 말한다.

 

사람들은 스스로 데이터 흐름의 일부가 되기를 바란다. 설령 그것이 자신의 사생활, 자율, 개인성을 포기하는 것을 의미한다 해도 상관없다...위키피디아를 만든 사람이 누구인가? 우리 모두이다. 개인은 점점 누구도 진정으로 이해하지 못하는 거대 시스템 안의 작은 칩이 되어가고 있다...자기만의 일기장에 일기를 쓰는 것(이전 세대들이 흔히 했던 인본주의적 관습)은 요즘 많은 젊은이들에게는 완전히 쓸데없는 짓으로 보인다. 아무도 읽을 수 없는 것을 왜 쓰는가? 새로운 모토는 이렇게 말한다.’

 

경험하면 기록하라. 기록하면 업로드하라. 업로드하면 공유하라.”(529-530p)

 

 

 

 

공유의 힘이다

우리는 인류가 경험한 모든 소소하고 시시하고 조잡한 기억들과 체험들을 공유하면서 거대한 데이터교가 탄생하게 되었다. 네이버의 지식백과를 예를 들지 않더라도, 구글에서 단어 하나만 검색하더라도, 다음지도에서 지구상의 한 지점을 찍어 그 지역의 도로사정이나 환경을 직접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다. 이렇게 내가 예를 들지만, 지금의 만물인터넷의 진보속도는 엄청나서 내가 이렇게 기록한 것도 out of date가 될 수도 있겠다 싶다. 모든 것을 공유하게 되니 이 정보의 양과 공유의 사이즈는 어마무시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이 공유의 힘이 호모 데우스 시대에 언제나 생산적인 영향력만을 발휘할지, 아니면 파괴적인 효과를 가져올지는 사용하는 유저에 따라, 환경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예를 들어, 가수 J의 단톡방 동영상 공유사건만을 보더라도 그렇다. 우리의 개개인의 사소한 역사의 기록물이 이제는 세계의 무대에 언제든지 공유될 수 있는 것은 굉장히 파워풀하면서도 악마적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또 다른 사건인, 아버지 K의 추문으로 인해 자살을 한 딸의 이야기, 요근래의 한 사건만을 보더라도 그러하다. 아버지의 추악한 행위에 대한 판결 유무를 떠나서 한 인간이 그렇게 공유되어진 결과물로 인해 자살을 하는 비극은 어쩌하겠는가! 이런 일화를 깊게 생각하지 않았음 한다. 내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공유의 힘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

 

 

내가 이 페이퍼를 오랫동안 생각을 했는데, 미루다 미루다 이제야 쓰게 되었다. 누가 알아줄 것도 아닌데, 나 혼자서 이러고 있다. 재독철학자 한병철은 그의 저서 투명사회에서 이런 이야길 한다.

 

    

 

 

투명사회의 투명성의 정체는?

오늘날 사회 시스템은 모든 사회적 과정을 조작 가능하고 신속하게 만들기 이해서 투명성을 강요한다...이러한 시스템의 강제로 투명사회는 곧 획일적 사회가 된다. 바로 이 점에 투명사회의 전체주의적 특성이 있다.’“획일화를 표현하는 새 단어: 투명성.”(15p)

 

 

내가 이 내용을 처음 접했을 때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긍정사회(투명사회)를 지배하는 것은더 이상 어떤 사건도 일어나지 않는 하나의 구조 속에 놓인 정보의 투명성과 외설성이다. 투명성에 대한 강박은 인간마저 평준화하여 시스템의 기능적 요소로 만든다. 이런 점에서 투명성은 폭력이다.’(16p)

 

 

 

 

투명성이 폭력이 될 수도 있다

우리는 인터넷 필드에서 수 많은 정보들에 대해 평가를 내린다. ‘좋아요싫어요로 구분 짓는다. 페이스북은 싫어요버튼을 만들자는 의견도 있었지만, 일관되게 그 정책은 반대한다. 한병철 교수는 이것은 투명사회는 일차적으로 긍정사회이기 때문에 싫어요란 부정성, 부정적인 커뮤니케이션은 장애가 된다고 말한다. ‘좋아요싫어요보다 더 빠르게 후속 커뮤니케이션을 유발하는 것이다. 거부에 담긴 부정성은 무엇보다도 경제적인 측면에서 효용성이 없다. 문득 아버지 K의 동영상이 뉴스에 보도되자 자살한 딸의 이야기에서 투명성은 폭력이다란 점을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그 동영상에 대해 싫어요라고 버튼을 누르지 않아도 그 동영상의 공유 자체가 자살이란 싫어요로 대두된 것이다. 애석할 따름이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투명성이 주는 긍정성 VS 진리가 주는 부정성

투명성과 진리는 같은 것이 아니다. 진리는 다른 모든 것을 거짓이라고 선언함으로써 스스로를 정립하고 관철한다. 그 점에서 진리는 부정성이다. 정보의 증가와 축적만으로 진리가 성립하는 것은 아니다. 정보에는 방향, 즉 의미가 없다. 진리의 부정성이 결여됨으로 인해 긍정적인 것이 마구 증식하고 다량화한다. 과다 정보와 과다 커뮤니케이션은 바로 진리의 결핍, 존재의 결핍을 드러낼 뿐이다. 더 많은 정보, 더 많은 커뮤니케이션은 전체의 근본적인 불명료함을 제거하지 못한다. 더 많은 정보와 커뮤니케이션에 의해 불명료함은 오히려 더욱 첨예화된다(26-27p).’

 

 

    

 

투명사회의 기괴한 라디오

존 치버의 단편소설집 기괴한 라디오를 보면, <기괴한 라디오>의 이야기가 너무나 인상적으로 다가온다. <기괴한 라디오>의 스토리는 단순하다. 한 가정에서 라디오가 고장이 났다. 그래서 남편은 아내를 위해 제법 비싼 라디오를 거금을 들여 하나 장만한다. 그런데, 그 라디오가 보통 평범한 라디오가 아니라 옆집, 이웃집의 모든 사정들을 들을 수 있는 라디오인 셈이다. ‘훔쳐듣기가 되는 기괴한 라디오인 셈이다. ‘몰래카메라가 아니라 몰래녹음기정도 될까? 이웃집의 사생활을 우연찮게 염탐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부부의 감정과 기분의 동선을 읽을 수 있다. 하지만, 이런 부분은 현대사회에서는 너무나 흔하디 흔한 스토리이다. 세계에서 가장 CCTV가 많은 나라가 우리나라고 하던데. 확인이 필요한 부분이다. 우리는 수많은 우리의 동선을 염탐당하고 있고, 기록되어 저장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몰래카메라를 다룬 영화 <웰컴 홈>의 이야기가 떠오른다. 휴가를 떠난 두 연인, 새로운 재출발을 위해 휴가 온 연인에게 비추고 있는 수많은 몰래카메라들...일종의 기괴한 카메라가 되겠다.

 

    

 

 

존 치버는 <기괴한 라디오>35세 때 잡지에 게재한다. 그렇다면 그 때가 1947년이란 말인데, 그때 존 치버는 이 기괴한 이야기, <기괴한 라디오>를 글로 썼다는 것은 충격으로 다가온다. 현대사회는 공유사회이다. ‘공유의 힘을 통해 투명사회를 강조한다. 그런데, 존 치버는 1940년대에 이런 생각을 했다는 것 자체가 역시 문학가의 저력과 통찰을 엿볼 수 있다. 이래서 나는 존 치버를 좋아한다. <기괴한 라디오>는 현대사회의 무수히 공유되고 흩어져있는 정보의 흐름’, ‘데이터의 자유가 과연 우리에게 어떤 결과와 영향력을 주는지 물음표를 던져 준다.

 

 

'교외의 체호프'라 불리는 존 치버는 66(1978)<존 치버의 단편선집>으로 퓰리처상과 전미비평가협회상, 전미 도서상을 받았다.

 

 

 

 

투명사회에서 불투명성을 주는 의미

엠제이 드마코가 쓴 부의 추월차선에서 부의 추월차선의 첫 번째로 명성을 들고 있다. 가장 빠른 시간 내에 자신의 이름을 퍼트리는 것이다. 오늘날은 투명사회이니, 만물인터넷이 수많은 인터넷 유저들에게 돈방석을 앉게 만들었다. 그것도 쉽게 되는 것은 아니지만, 예전보다 더 빠르게 자신의 이름을 확장시키는 좋은 도구가 바로 데이터 사회인 것은 확실하다.

 

 

서행차선을 벗어나는 방법: 비밀의 출구

첫째, 명성이다. 명성을 얻으면 내재가치의 수학적 한계를 깨뜨릴 수 있다. 서행차선을 벗어난 사람들은 대부분 유명인으로서 문화계 곳곳에 얼굴을 알린 경우가 많다. 이들은 운동선수, 가수, 뮤지션, 배우 또는 연예인이다. 서행차선이 지닌 약점을 극복하고 싶다면 유명해지면 된다. 왜냐고? 명성이나 악명 모두 내재가치를 높이는 요인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당신과 당신이 제공하는 가치를 매우 높은 가격에 사려 할 것이다.

불행하게도 부자고 되고자 하는 사람들 대부분은 추월차선을 통해서가 아니라 서행차선에 저항하는 방식으로 그 길을 찾으려 한다...

서행차선의 한계를 극복하는 또 다른 방법은 스스로를 없어서는 안 될 존재로 부각시켜 가치를 끌어올리는 것이다. 수백 명의 군중이 당신을 원하게 만들면, 수백만 달러를 벌게 될 것이다... 특별한 재능이 특별한 수입을 부른다.’(128-129p)

    

당연한 소리인가? 당연한 소리이지만, 저자의 이야기는 심지가 굵다. 나는 이런 사회의 트렌드를 거부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더 많은 자유가 우리에게 주어졌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만큼 그 자유가 우리에게 제약과 한계를 쥐어줄 것도 틀림없다. 이런 공유의 힘이 적절하게 잘 사용되길 바랄 뿐이다. 부의 추월차선이 책은 사업을 구상하고 새로운 자영업을 시도하는 이들에게 놀라운 통찰력과 혜안을 제공해준다고 생각한다. 단순히 자기계발서로 일축하며 폄하하는 우는 범하지 않기를 바란다.

 

 

 

 

 

Epilogue...

마지막으로, 한병철의 이야기로 마무리하고 싶다.

인간의 영혼은 분명 타자의 시선을 받지 않은 채 자기 혼자 있을 수 있는 공간을 필요로 한다. 불투과성은 영혼의 본질에 속한다. 영혼의 내부를 훤히 비춘다면, 영혼은 불타버릴 것이며 특별한 종류의 소진 상태에 빠지고 말 것이다. 오직 기계만이 투명하다. 즉흥성과 우발성, 자유처럼 삶을 이루는 본질적 요소들은 투명성을 용납하지 않는다.’(16p)

 

페터 한트케는 이런 말을 남겼다.

 

다른 사람들이 나에 대해 알지 못하는 것, 나는 그것으로 살아간다.”

 

 

투명사회를 살아가는 우리가 가끔은 기괴한 라디오를 끄고 살아가는 것도 좋을 법하다. 유발 노아 하라리의 호모데우스미래의 역사에 대해 비관하지도 낙관하지도 않고 그거 보여줄 뿐이라고 옮긴이 김명주는 밝히고 있다. 호모데우스 시대에 투명성, 데이터라는 기괴한 라디오는 그것을 사용하는 인간의 자질, 인격, 그리고 책임이 뒤따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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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9-04-18 18:0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기록에 대한 유발 하라리의 말에 저는 ‘피드백’을 추가하고 싶어요. 경험, 기록, 업로드, 공유, 그 다음은 피드백입니다. <팩트풀니스>에 보면 지식은 시간이 지나면 낡아지기 때문에 새로운 지식을 업데이트해야 한다는 내용이 있어요. 저는 새로운 지식을 공부하는 것도 피드백의 첫 번째 단계라고 생각하고, 두 번째는 자신의 오류를 받아들이면서 고치는 것입니다. 당연히 피드백한 내용도 공유해야죠. ^^

카알벨루치 2019-04-18 18:48   좋아요 0 | URL
피드백, 좋은 생각인 듯 합니다 ^^

stella.K 2019-04-19 14:0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싫어요는 반대하는데 좋아요 하나만 있는 것도 좀 갑갑하긴 하더군요.
슬프거나 안 좋은 내용에 좋아요를 누르면 물론 동감이란 의미긴 하지만
오히려 조롱하는 것 같기도 해 좀 그렇더군요. 차라리 예전에 공감이 훨씬 낫지 않나 싶기도 해요.

존 치버의 책 읽고 싶긴 하네요.
근데 전 꼭 이 작가의 이름을 오역해서 읽고 싶어져요.
존 버치로.ㅎㅎ

카알벨루치 2019-04-18 21:01   좋아요 1 | URL
유튜브나 다른 뉴스 같은 곳에는 ‘싫어요’가 있더군요! 비난이나 비판이 건설적이지 않다면 그걸 기록으로 남길때 부정적인 영향은 어쩔수 없는 듯 합니다 존 버치 ㅋㅋ서부영화 주인공 이름 같군요 ^^

북프리쿠키 2019-04-20 09: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카알벨루치님의 포스팅은 늘 좋아요♡

카알벨루치 2019-04-20 10:03   좋아요 1 | URL
여기서 이러심 안 되와요^^ 주말 행복하게 보내십시오 ~🙆‍♀️

서니데이 2019-04-21 22: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카알벨루치님, 즐거운 주말 보내셨나요.
오늘 부활절이었는데, 맛있는 계란 드셨는지요.
한주일 사이 날씨가 많이 달라졌습니다. 더운 봄날 같아요.
빠른 속도로 주말이 지나고 일요일 밤이 되었습니다.
내일부터 시작되는 한 주, 좋은 일들로 가득한 시간 되시면 좋겠습니다.
편안한 밤 되세요.^^

카알벨루치 2019-04-21 22:26   좋아요 1 | URL
아프지 마시고 늘 건강하게 출첵하시는 알라디녀 ^^ 화이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