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오늘은 이병률의 시로 시작하자
저녁을 단련함
매일 한 차례씩 같은 시간에 모기에 물린다면
우리는 모기를 힘들어하지 않을뿐더러
그 작은 모기에게 사자처럼 굴지도 않을 것이다
꼿꼿하게 앉아도 되는 저녁이므로
지나치게 균형을 잃을 필요는 없을 것이다
매일 한 차례씩
알람을 맞춰놓고 같은 시간에 모기에 물린다면
먹고 사는 일에 다짐 따윈 필요 없을지도 모른다
남은 저녁은 좀더 단정히 피가 통할 것이며
맨발의 급소들도 순해질 수 있겠다
봉합이 필요할 시간에
모기에 물리자고 팔뚝을 내놓는다면
시간의 딱지들은 도톰해질 것이다
저녁의 바닥을 향해 서 있는 것 모두를
진창이라 여기지 않아도 되겠다
서서히 가려우므로 괜찮아진다
하물며 최선도 지나간다
피하느니
제법 지나갈 것이다
2
여름철의 모기는 어둠이 깔리는 저녁에 기승을 부린다. 우리가 당하는 고통과 환난과 상처를 '모기'로 상징화해보자. 정한 시간, 정한 타임에, 정기적으로 그 모기가 우리를 공격한다면, 우리는 '내구성'이 굉장히 견고해질 것이다. '시간의 딱지들이 도톰하게 쌓여서' 피하기보다는 '제법 지나갈 것이다'라는 생각으로 태연해지고 그냥 그러려니 하는 태도를 가지게 될 것이다. 우리가 모기한테 갑자기 물릴 때를 생각해보라. 1연에 나타나는 것처럼 '그 작은 모기에게 사자처럼 굴'면서 버럭 화를 내고 신경질부리지 않을 것이다. 늘 정해진 시, 분, 초에 그 놈이 왔기 때문이다. 어제 왔던 그 놈, 오늘 온 그 놈, 내일 올 그 놈...계속 반복되겠지만, 선로에 놓인 철길처럼 평행선으로 그렇게 갈 수도 있겠다. 우리 인생의 고통이라는 것, 아픔이라는 것이 훨훨 떠나버렸음 좋겠다 싶은데, 그 놈은 늘 평행선으로 같이 달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3
류승룡이 지은 <징비록>에 등장한 이야기이다. 100년의 혼란과 혼돈으로 점철된 일본을 포르투갈산 조총으로 평정한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이제 조선을 정복하고 명나라를 치고자 하는 거대한 정복의 꿈을 꿈꾼다. 그러면서 먼저 조선의 상황과 형편이 어떠한지 스파이를 보내어 조선의 내부를 들여다 보게 한다.
스파이는 돌아가서 충격적인 보고를 한다.
'조선에는 군대가 없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조선은 200년동안 평안했기 때문이다. 200년동안 무탈 편안했다. 전쟁의 흔적이 존재하지 않은 곳이었다.
두번째 스파이의 충격적인 보고는,
'조선에는 백성의 절반이 노비입니다!
그런 나라가 또 없다 싶었겠다 싶다. 임진왜란은 이렇게 약해빠지고 기고만장한, 군대도 없는 조선이 늘 무시하기만 했던 일본에 의해 침략을 당하게 되는 사건이다.
4
문제는 '200년동안 지속된 평안'때문이었다!!!
너무나 무탈했기 때문이었다. 정기적인 모기가 자극했더라면 이런 탈은 없었을 것이다. 무탈이 지속되면 편안해지고, 편안해지면 게을러지고, 게을러지면 체제와 시스템의 매너리즘에 빠지게 된다. 조선이 그러했다.
또 하나 일본이 전쟁중에 충격받은 사건은 바로,
"선조의 도망치는 속도였다"
나라의 왕이란 작자가 백성이 거주하는 삶의 터전이자 보금자리인 성을 너무나 쉽게 버렸다. 아무리 적이 쳐들어왔다고 해도 성을 그렇게 버리고 가는 인간은 일본인의 눈에 충격적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버리고 도망치는 것도 너무나 빨랐다는 말씀! 백성의 안전과 안위는 안중에도 없고 자기 목숨, 자기 안전만을 최고를 여기면서 도망치는 이런 작자가 왕이었다. 그런데, 뭐 이런 선조의 모습을 지금 우리나라의 많은 정치인들의 DNA에서도 잘 드러난다. 200년 동안 무탈하게 지냈던 왕조사에서 생전 처음으로 전쟁의 난리를 겪었으니 도망치는 게 너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5
우리는 '만사형통'이란 말을 좋아한다. 만사형통이란 말은 무탈과 동일한 의미이다. 너무나 평안하고 너무나 편안한 라이프스타일을 사람들은 선호한다. 하지만, 그것이 오히려 저주가 될 수도 있다. 조선의 임진왜란의 경우를 보라.
저녁에 출현하는 모기로 인한 시인의 마음을 <저녁을 단련함>으로 이병률은 표현했다. '모기가 출현하는 저녁', 이를테면 우리 삶에 자주 혹은 가끔, 아니면 불현듯 다가오는 고통의 손길에 너무 사자처럼 포효하면서 놀라지 말고 떨지 말고 자빠지지 말고 까무러치지 말고 단련되면 그것이 오히려 우리 인생에 '묘약'이 될 수도 있다. 무탈하고 편안하기만 하면, 주저앉게 되고 거기서 '삶의 비만'이 올 수 있다. 임진왜란 당시의 '조선의 비만'을 떠올리면 더 리얼하게 다가올 것이다.
6
이병률의 시, 마지막에서
"피하느니
제법 지나갈 것이다"
이렇게 말한다.
뭐 모기를 피한다고 피할 수 있는가? 우리의 생의 고통과 상처와 위기를 피한다고 피할 수 있는가? 시인은 이렇게 자신의 처세를 노래하는 것이 가슴에 다가와서 몇 자 적었다.
"피하느니
제법 지나갈 것이다"
...제법 지나갈 것이다...좋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