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목
김금숙 지음, 박완서 원작 / 한겨레출판 / 2019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박완서의 첫 작품 <나목>이 김금숙의 만화로 다시 태어났다 김금숙의 시선과 해석을 덧입혀 6.25전쟁 70주년을 앞두고 출간되었다 고 박수근화백을 소재로 이야기가 펼쳐지는데 전쟁을 지나오면서 고통당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로 봐도 무방하겠다 이런 만화 절대적으로 환영하는 바이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3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북프리쿠키 2020-09-12 19: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심히 땡기는 책입니다.ㅠ

카알벨루치 2020-09-12 19:32   좋아요 1 | URL
도서관에서 쓰윽 빌려봐보심은 ㅎㅎ소장각????ㅋㅋ

북프리쿠키 2020-09-12 19:39   좋아요 1 | URL
도서관에 있을라나요.
검색해볼께요^^

카알벨루치 2020-09-13 14:36   좋아요 0 | URL
도서관에 없을수도~전 희망도서로 신청해서 봤던 기억이...즐건 하루 되십시오!
 

 

1

김애란은 나보다 젊은 작가였다. 80년대생이었다. 신은 참으로 불공평하구나! 젊은 작가가 이렇게 글을 잘 쓰다니 그런 생각이다. 젊은작가 수상작품집을 두어권 읽었는데, 나는 이제 젊은 작가에 들어갈 수가 없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그만큼 세월은 구약성경의 표현처럼 장사의 쏜 화살처럼스피드하게 흘러가는구나 싶다.

 

 

    

 

2

스티븐 킹의 유혹하는 글쓰기에 보면 그는 형용사부사의 사용을 굉장히 배제하거나 꺼린다. 주어와 동사로 모든 문장을 완벽하게 기술할 수 있는 단문, 간결함, simplicity를 추구했다. 거추장스럽거나 아니면 군더더기가 많이 장식된 문장과 단어를 극도로 자제한다는 의미이다. 그러고 보면, 우리가 쓰는 문장에는 얼마나 많은 수사여구와 부연설명하는 품사들이 많은가 그런 생각을 해보게 된다. 문득 우리의 삶을 생각해볼 때, ‘존재를 주어라고 하고, ‘(살아냄)’을 술어라고 했을 때, 그 안에 들어가는 수많은 품사들과 단어들을 생각해보게 된다. 주어와 술어 사이에 등장하는 무수한 컨텐츠들...‘존재와 삶(인생)’이라는 카테고리 안에는 수많은 것들이 들어가거나 빠지거나 삽입되거나 추가되거나 삭제되고 생략되기도 한다. , 명예, 권력, 직업, 결혼, 자녀, 승진, 실직, 이혼, 파산, 연애, 인간관계 등. 작가 김애란은 스티븐 킹이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 부사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이 말을 바라보는 느낌.

부사는 마음을 닮은 품사다.’(89p)

 

주어와 술어, 주어와 동사 사이에 들어가는 부사에 대해 애정을 듬뿍 담은 김애란의 말들이 흥미롭다. 품사 가운데 애정을 유독 가진 품사가 내게 있을까? 언어에 대해 많은 생각과 사유가 있었던 작가이기에 그런 고백을 한 것이 아닐까?

 

 

 

 

3

글을 쓸수록 아는게 많아질 줄 알았는데 쥐게 된 답보다 늘어난 질문이 많다. 세상 많은 고통은 사실 무수한 질문에서 비롯된다는 걸, 그 당연한 사실을, 글 쓰는 주제에 이제야 깨달아간다. 나는 요즘 당연한 것들에 잘 놀란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러려 한다.’(124p)

 

우리가 일생을 살면서 얼마나 많은 책을 읽을 수 있을까? 만권을 읽을 수 있을까? 강안독서의 저자가 그런 이야길 했던가! 독서노트의 메모가 어디있는지 찾을 수가 없다. 요즘 글을 쓰는 것도 힘든데, 이것 찾고 저것 찾고 할라믄 오히려 글쓰기의 줄기가 휘어지고 시들어질 듯 해 그냥 내버려 두련다. 아무리 많은 책을 쓰고, 아무리 많은 책을 읽는다 하더라도 우리는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할 뿐이기에 우리의 한계와 유한함을 날마다 인식하며 무지의 지를 소유하고 유지해야 더 겸손해지지 않을까 싶다. 나의 무지의 지를 유지할 때 일상은 언제나 순전한 깨달음으로 경이롭지 않을까 싶다.

 

    

 

 

4

누군가의 문장을 읽는다는 건 그 문장 안에 살아오는 거라 생각한 적이 있다. 문장 안에 시선이 머물 때 그 머묾잠시 산다라는 말과 같을테니까. ‘살아 있는 사람이 사는 동안 읽는 글이니 그렇고, 글에 담긴 시간을 함께 살아 낸거니 그럴거다.’(141p)

 

김애란은 자신이 읽은 문장이 아닌 산 문장이란 표현을 쓴다. 우리가 독서를 하며 글자를 읽고 판독하는 것은 단순한 to read의 의미가 아니라 to live의 의미라고 저자는 해석한다. to read가 아니라 정말 to live의 독서가 된다는 것은 그 작품속에 녹아나는 체험일 때 가능할 것이 아닐까? 우린 독서를 하면서 잠깐 그 문장과 단어와 그 텍스트가 뿜어져내는 모든 배경background 속에서 잠시 머물다가 빠져 나온다. 단순한 읽는 행동이지만, 단지 간접적인 체험 행위에 불과하지만, 그 독서가 머묾의 체험이 되어진다는 말. 몇 십분, 몇 시간을 투자하여 잠시 다른 세계와 다른 시공간에 머물다가 오는 행위는 독서만한 것이 있을까? 멀티미디어도 그런 역할을 하겠지만, 거기에 상상력의 부재’, ‘상상력의 결여가 있음을 기억하자. 독서만이, 텍스트를 읽는 것만이 상상력을 키워주는 행위임을. 그냥 좋은 문장이라 몇 마디 한다는게 글의 행방이 묘연해지고 표류하는 느낌이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오늘은 이렇게라도 글을 적어야겠다 싶어 노트북을 펼친 것이니 이해해주길 바라!

 

 

 

 

5

인간의 심연을 도 들여다 볼 수 없는 골짜기’(161p)’

 

라고 김애란은 표현한다. 이 표현이 참 좋다. ‘신도 들여다 볼 수 없는 골짜기가 바로 인간의 심연이라는 것이다. 사람의 마음은 갈래가 여러 갈래라서 어떻게 표현하기가, 형언하기가 힘든 공간이다. 그 마음에 천사가 존재하기도 하고, 악마가 존재하기도 한다. 죄와 벌이 공존하는 곳이기도 하다. 그 마음은 세계를 일으킬 수도 있고 세계를 무너지게 만들 수도 있다. ‘신도 들여다 볼 수 없는이란 말에 인간 고유의 고독하고 외롭고 혼자서 사수할 수 있는 깊은 갱도가 존재한다고 볼 수 있다. 정신적, 영적인 갱도 말이다. 하지만 그 골짜기 안에 너무 고립되어 있으면 인간은 정말 헤어나올 수 없는 존재가 되고 만다.

 

어쩌다 읽게 된 30억 빚을 진 내가 살아가는 이유에서 저자 박종혁은 이런 이야길 한다. 그는 38세에 30억 빚을 진 인물이다. 20대부터 자동차딜러로 사업을 확장하다가 모자쇼핑사업도 망하고, 대리운전에... 산전수전을 다 겪은 인물이다. 삶을 포기하고 싶었던 때도 있었지만, 그는 여전히 빚을 갚고자 일하는 평범한 인물이다. 그는 책을 많이 읽어서 글을 쓴 인물이 아니다. 그냥 자신의 삶의 생채기를 있는 그대로 토해낸 글이라 더 공감이 간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진정한 친구 단 한명만 사귀어도 그 인생은 성공한 것이라고 한다. 그동안 나는 내가 친했다고 생각한 사람이 나에게 등을 돌리기도 모자라 비난하는 것을 경험했다. 반면 생각지도 못한 사람들이 내게 힘을 주고 용기를 주었다. 연이어 발생한 상황들 속에서 많은 사람들이 걸러졌다. 그리고 사람들에 의해 마음이 닫히고 열리기를 여러 번 반복했다. 지금 내 주위에는 나를 살아가게 해주는, 어쩌면 생명의 은인이라고도 말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

나는 내가 벌인 일이니 빚을 갚고 살아가는 것은 나 혼자만의 문제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내가 수습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고통의 시간을 나 홀로 살아가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람들이 건네는 따뜻한 말 한 마디가 살아가는 동력이 되고, 그 파급력은 생각보다 컸다.’(박종혁, 224p)

    

신도 들여다볼 수 없는 골짜기라는 말을 생각해보니 문득 카프카의 변신이 떠오른다. 그 작품의 주인공 그레고르는 가족을 위해 뼈빠지게 고생하면서 돈을 벌었지만 결국 흉물스러운 괴물, 벌레로 변해버렸다. 김종원의 사색이 자본이다라는 책에 보면 이런 이야기를 한다.

 

독일어로 벌레(Ungeziefer)라는 단어는 기생충이라는 의미이다. 그레고르가 벌레로 변해 일을 할 수 없게 되자, 가족에게 없애야 할 기생충 취급을 당했다. 작가인 카프카 역시 그레고르와 닮은 삶을 살았다. 그는 나이가 들어도 자립하지 못한 채, 부모에게 얹혀 세상과 고립되어 살았다. 실제로 어떤 사람들은 그와 아버지의 관계가 마치 주인과 노예를 보는 것 같았다고 말할 정도로 그는 기생충 같은 삶을 살았다. 결국 변신 후에 가족에게 학대받는 그레고르의 일생은 작가인 카프카의 인생과 닮아 있다.

그가 작품을 통해 세상에 하고 싶었던 말은 대체 무엇이었을까? 그 답을 구하기 위해서는 역으로 카프카를 살게 한 것이 무엇이었는지 떠올려보면 된다. 바로 상처다. 그가 위대한 작가로 성장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 안에 빛나는 상처가 되었기 때문이다. 어디에도 속할 수 없는 고통 그리고 가족 안에서도 언제나 고독했던 삶이 그를 괴롭혔지만, 그는 자신의 상처를 받아들이며 비로소 성장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는 글쓰기라는 도구로 자신의 상처와 세상의 모든 상처를 연결시켰다. 세상에 상처 없는 사색은 없다. 그는 자신의 글로 세상에 이런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이다.

 

상처를 숨기지 말고, 세상에 당당하게 내보이라. 사람은 상처를 통해 성장하는 거니까. 사색이란 결국 나의 상처와 세상의 상처를 통해 이뤄지는 거니까.”(김종원, 191-192p)

 

작품의 주인공 그레고르는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하지만, 작가 카프카는 변신의 그레고르를 세상에 표현해냄으로 상처를 덜어낸 결과가 된 셈이다. ‘신도 들여다볼 수 없는 골짜기에는 과연 무엇이 있을까? 상처가 아닐까? 남에게 내보일 수 없는, 도저히 끄집어낼 수 없는 상처! 하지만, 그 상처는 끄집어내는to drag 것이 중요한 것이다. 이걸 앞에서 이야기한 텍스틀 읽는 것은 머묾’, ‘잠시 산다는 말로 이해했는데, 조금 더 확대하자면, to readto live가 되고, to live는 다시 to drag가 되어야 한다는 걸로 나아갈 수 있겠다. 내가 독서를 통해 작품을 읽으면서 잠시 간접적인 경험과 체험을 통해 그 작품 속에 머물지만, 잠시 머묾은 내가 망각했고 잊혀졌던 모든 상처와 트라우마와 콤플렉스와 신조차 건드릴 수 없는 골짜기를 체크하고 드래그해내는 것이다. 그게 굉장히 중요한 것 같다. 우리가 독서를 하면서 그런 경험 있지 않은가! 저자의 체험이나 작가의 작품을 통해 내가 경험한 그 어떤 무언가가 교집합처럼 만났을 때 우리의 영혼에 미세한 울림의 신호가 온다. 그리고 그게 더 나아가면 to drag의 순간(momentum)이 되는 것이다.

 

김종원의 상처를 숨기지 말고, 세상에 당당하게 내보이라. 사람은 상처를 통해 성장하는 거니까. 사색이란 결국 나의 상처와 세상의 상처를 통해 이뤄지는 거니까.” 이 말은 참 공감되는 대목이다. 쉽지 않은 것이지만, 인생은 그런 쉽지 않은 과제task를 해결하면 또 나아갈 수 있고, 해소되면 전진할 수 있고 그런 것이 아닐까!

 

 

 

 

6

한때 크고 좋은 말들을 가져다 아무 때고 헤프게 쓰는 정치인들을 보며 언어약탈자라 생각한 적이 있다.’(263p)

 

언어약탈자’...진짜 멋진 말이다. 정치인들이 자신의 규모와 행태를 지지하고 정당화하고 합리화하기 위해 언어를 사용하는데 그게 언어약탈자의 작태로 드러날 수 있다는 것이다. 정치인들 뿐만 아니라 우리도 언어의 정치적으로 이용하여 언어를 욕되게 하진 않는지. 뭐 언어숭배자가는 아니지만. 그런 생각...주절주절 해 본다.

 

 

‘‘이해란 타인 안으로 들어가 그의 내면과 만나고, 영혼을 훤히 들여다보는 일이 아니라, 타인의 몸 바깥에 선 자신의 무지를 겸손하게 인정하고, 그 차이를 통렬하게 실감해나가는 과정일지 몰랐다. 그렇게 조금씩 바깥의 폭을 좁혀가며 으로 만드는 일이 아닐까 싶었다. 그리고 그 이해가, 경청이, 공감이 아슬아슬한 이 기울기를 풀어야 하는 우리가 할 일이며...그 때 우리가 누군가의 얘기를 듣는다는 건 수동적인 행위를 넘어 용기와 노력을 필요로 하는 일이 될 것이다....누군가의 고통에 공감하는 것과 불행을 구경하는 것을 구분하고, 악수와 약탈을 구별해야 하는 까닭도 그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김애란, 269p)

 

 

 

 

7

김애란이 영화 <서편제>이야길 하면서 이런 이야기를 한다.

‘...눈먼 송화가 산간 벽지에 들어가 매일 <심청가>를 연습하는 장면을 보자 얕은 탄식이 나왔다.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데, 아무도 청하지 않는데, 스스로 어떤 수준에 도달하고자 하는 수준을 포기하지 않는 모습이 마음 아팠다. 어쩌면 거기에 문학의 앞날이 조금은 겹쳐 보여 그랬는지도 모른다.’(272-273p)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데, 아무도 청하지 않는데, 스스로 어떤 수준에 도달하고자 하는 수준을 포기하지 않는 모습’...그런 모습이 인생에게 필요하다. 김애란이 이야기한 문학의 앞날도 그러하지만, ‘우리 인생의 앞날도 그러해야 하리라. 나를 비롯한 요즘 세대와 시대가 너무나 얄팍한 명성과 인기에 목매어 정말 진득한 깊이를 가지지 못한다면, ‘신도 들여다 볼 수 없는 골짜기의 상처, 나의 상처는 끄집어낼 수 없는 것이다. 언제나 그 골짜기는 깊이 내려가야만 도달할 수 있는곳이기에 얄팍함으로 어림도 없는 것이다. 우리의 상처가 우리가 영광이 되려면 말이다.

 

 

    

 

8

페터 한트케의 긴 이별 짧은 편지를 오랫동안 읽었다. 쉽게 읽히는 글은 아니었다. 분량이 길어서가 아니라 스토리의 전개나 문체가 그러했다. 아마도 이런 스탈의 글에 익숙하지 않아서 그럴 것이다. 페터 한트케의 작품을 읽고 작품해설을 읽으면서 그의 일생을 들여다보면서 그의 문학적인 스타일에 조금은 공감하게 되었다. 페터 한트케는 1942년 오스트리아 작은 마을에서 아들을 낳았다. 당시 2차 세계대전 당시 한트케의 어머니는 경리장교와 사랑에 빠져 페터 한트케를 가졌지만, 그는 이미 유부남이었다. 젠장! 사생아를 낳게 할 수는 없다는 집안의 강력한 반대에 부딪힌 어머니, 그러던 중에 그녀에게 강한 연민의 정을 느낀 하사관 브루노 한트케가 그 모든 조건을 감수하면서 그녀와 결혼식을 올린다. 이런 가정배경이 페터 한트케의 예사롭지 않은 운명을 예견했다. 아니나 다를까 1971년 페터 한트케의 어머니는 51살에 자살하고 만다. 불행했던 결혼생활과 인생살이의 어머니, 페터 한트케도 그러한 음울한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그의 작품은 스토리라인이나 컨텐츠에 집중하기 보다는 문학의 존재 근거는 언어 그 자체이지 사물이나 대상에 대한 인식에 있지 않다.”(페터 한트케, 206p)고 했다. 한트케의 초기 사상적 토대였던 러시아 형식주의, 언어의 관계성에 주목한 프랑스 구조주의, 언어의 유희성을 강조한 비트겐슈타인의 언어철학이 있다. 세계대전의 큰 재앙은 철학사와 역사에도 큰 영향을 미쳤고 의미찾기 보다는 오히려 형식’, ‘언어그자체에 집중하는 분위기는 철학뿐 아니라 페터 한트케 개인 가정사에도 영향을 미쳤던 것은 분명하다. 순전한 내 생각이고 내 해석일 뿐이다. 하지만, 그 페터 한트케의 신도 들여다 볼 수 없는 골짜기가 그를 2019년 노벨문학상 수상작가가 될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상을 받기 위해 글을 쓴 것이 아니라 자신의 상처를 to drag하려고 몸부린 친 결과가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해본다. 과연 상처가 영광이 될 수 있도록 처음부터 글을 쓴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야기가 길어졌다. 최근에 읽은 책들 내용을 기억하다가 보니 이것저것 끄적였다. 내 상처가 영광이 되진 않더라도, 내가 살아가고 숨을 쉬기 위해서라도 글쓰기는 계속 되어야할 것 같다. 여러분도 그렇게 살고 쓰기를 바라. 마침내는 ...상처가 영광이 되길 바라~

 


댓글(2) 먼댓글(0) 좋아요(5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희선 2020-02-02 00: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김애란은 일찍 작가가 됐지요 그래서 여전히 젊은 작가에 들어가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우연히 저는 김애란을 일찍 알고 첫 소설집도 만났지만, 그렇게 잘 읽지는 못했습니다 지금도 한국 소설, 단편은 어렵습니다 한동안 안 보다가 몇해 전부터 보기는 하는데... 언제쯤 알지... 꼭 다 알아야 하는 건 아니겠지요 뭔가 느끼기라도 하면 되지 않을까 싶어요

오랜만에 글 쓰셨네요 설은 잘 쇠셨는지... 남은 주말 편안하게 보내세요


희선

카알벨루치 2020-02-02 08:57   좋아요 0 | URL
따뚯한 환대가 너무 감사합니다...안부도 물어주시고 고맙습니다 ^^
 

 

 

장자연의 7장의 유서를 제대로 목격한 유족들과 증인들은 오히려 침묵을 지키고 있다. 왜냐하면 고인의 명예를 위해서였다.

 

후배: 왜 고 장자연 자살 사건을 덮으려 하는지 밝혀지면 전쟁이라도 일어납니까? 개지랄한 놈들을 밝혀서 죄값을 물어야 우라통이 가라앉은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김대오: 장자연의 명예는?

 

후배: 제대로 수사해서 밝혀야 고인의 명예가 조금이라도~~죽은 사람만 불쌍합니다.

 

김대오: 명예는 개뿔. 유족이 원하지 않으면 아닌 겁니다.’(25p)

 

 

하지만, 웬 뚱딴지같은 자칭 증인(?)이란 작자가 등장하여 미꾸라지 한 마리가 온 나라를 휘저어 버린꼴이다. 우리나라가 이토록 유리멘탈이었나? 우리의 눈이 어두었던 것이다. 하나의 거짓말을 포장하려면 또 다른 거짓말이 필요한 것이고 그 무수한 거짓말에 농락당한 나라의 참담한 꼴이라니....그리고, '진영논리'의 위험성을 보았다. 책을 보면서 혀를 찼다!  

그리고 이 사건을 가지고 책을 쓴 서민교수가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이 책을 읽고 난후 성경을 보다가 이 구절이 눈에 들어왔다

 

잠언 14:34이다.

 

공의는 나라를 영화롭게 하고

죄는 백성을 욕되게 하느니라

 

 

 

조정래가 쓴 책 천년의 질문에 보면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우리 손자가 공부허고 있으믄 내가 말해.

아가공부 많이 헌 것들이 다 도둑놈 되드라.

맴 공부해야 쓴다. 사람 공부해야 쓴다. 그러코 말해.

착실허니 살고, 넘 속이지 말고

니 심으로 땀 흘림서 벌어 묵어라와

내 속에 든 것 지킴서 살아야 써.

사람은 속 깊은 것으로 허는 짓이 달라지는 벱잉께.

지 맴을 잘 지켜야제.

돈 지킬라고 애쓰덜 말아라잉.

아이고, 이쁜 내 강아지!!’(382p)


댓글(5) 먼댓글(0) 좋아요(3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행복을 주는 도서관 2019-12-18 14: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정래는 언제 바른 생각을 가질까?
만년의 질문이다.

서니데이 2019-12-18 19: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읽으면서 알게 된 사람이었어요.
지금은 뉴스에 거의 나오지 않고 있는데, 어떻게 되고 있을지 모르겠네요.
카알벨루치님, 따뜻하고 좋은 저녁시간 되세요.^^

카알벨루치 2019-12-19 08:05   좋아요 1 | URL
떳떳하게 조사받으면 좋겠구만 아니면 평생 도망다녀야 할 처지겠죠 캐나다시민권을 줄리 만무하고...간만입니다 서니데이님 늘 행복하소서!

뒷북소녀 2019-12-23 14: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대단하시네요... 이 사건으로 책까지 쓰시고.

카알벨루치 2019-12-23 15:54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참고목록을 보니 수많은 인터넷사이트와 뉴스, 인터뷰, 유튜브 등등 엄청나게 파헤치신 듯 해서 더 대단했습니다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1

아마존에서 12년 동안 근무한 저자가 아마존에서 피부로 느낀 경험들과 생각들을 책으로 펴냈다. ‘성별, 인종, 나이, 장애유무, 결혼 유무 등으로 절대 차별하지 않는’(136p) 아마존에는 매일 약 5,000장의 이력서를 받는 것으로 추정(215p)된다. 하지만, 거기에서 12년 동안 살아남은 것이 절대적으로 대단한 것은 아니라고 솔직하게 고백한다.

 

 

 

2

아마존의 문은 능력있는 자들에게 언제나 열려 있다’(245p)는 말에는 바보 같은 질문을 수없이 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우리나라는 얼마나 질문하기가 힘든 교육시스템을 가지고 있었던가! 자유로운 대화와 토론이 요즈음은 조금 나아졌는지 모르지만, 서구식 교육제도를 따라 갈려면 아직도 많이 소원한 것은 현실이다.

 

 

 

3

우리나라의 업무평가는 시간의 양으로 측정되어지는 경우가 많다. 마치 예비군이나 민방위 훈련시간처럼 말이다. 하지만, 아마존은 시간의 양이 아닌 질로 승부한다. 어찌하든지 궁댕이를 의자에 붙이고 오래 앉아 있는 근무시간의 양이 아니라, 그 사람의 적합한 역량과 능력으로 평가받는 곳이라고 한다. 그러기에 능력이 있는 자는 언제든지 등용되지만, 능력이 떨어지는 자는 언제든지 잘릴 수 있는 곳이다.

 

 

 

 

4

내가 가장 놀랬던 부분은 바로 아마존이란 회사를 규정짓는 대목이다.

아마존은 과연 어떤 회사인가? 나는 아마존을 그냥 세계적인 인터넷 북스토어, 온라인 서점 정도로만 생각했지만, 아마존과 베조스회장은 아마존을 규정짓기를 소프트웨어 회사라는 대목이 인상적이었다. 세계의 판도와 트렌드를 읽고 단순히 물건을 파는 차원이 아닌 알고리즘을 끊임없이 분석하고 연구하는 소프트웨어 회사가 바로 아마존이란 사실!

 

우리가 되려고 하는 것은 완전히 새로운 것입니다. 아마존이 무엇이 될 지를 설명하는 단어는 아직 존재하지 않습니다.”-제프 베조스 회장(324p)

 

 

 

 

5

아마존의 경영철학은 거꾸로 소비자로부터 시작하라’(106p)는 말을 한다.
언젠가 스마트폰 차량거치대를 산 적이 있다. 이미 다른 상품을 구매한 경험이 있지만, 부실하기 그지 없었다. 아마도 부실한 지갑 탓을 하며, 내가 싼 것을 선호해서 그런 것일 수도 있다. 아니나 다를까 공동구매로 구매한 이 몇 만원 짜리 거치대를 사용하기도 전에 방향을 틀다가 부러져버린 것이 아닌가! 그래서 구매후기에 너무 약하게 만든 것이 아니냐고 리뷰를 달았다. 그리고 통화를 했지만 교환해 주고자 하는 의지는 없어 보였다. 젠장! 나는 그 다음날 다시 사이트를 방문했다. 그런데, 내 리뷰는 이미 지워져 있었다. 제품을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리뷰를 올렸을 뿐인데. 나의 악평리뷰(?)가 자기들에겐 손해가 되겠지...! 이런 식으로 고객을 응대하다니! 나는 그 사이트 뿐만 아니라 그 앱 자체를 지워버렸다. 진짜 너무 한 것 아닌가! 만약 아마존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아마존이라면 분명히 교환해줬을 것이다(배송료가 더 나오겠지만...). 아마존은 리뷰달기를 처음으로 시도했다고 한다. 리뷰달기는 고객의 솔직한 반응을 올리는 곳이기에 악평이 달리기 쉽다. 하지만, 아마존은 리뷰달기의 단점을 그대로 노출했다고 한다.

 

 

 

 

6

한 명의 고객에게 베푼 호의가 백명의 고객을 데리고 온다(124p)

 

물론 대기업과 중소기업, 약소기업의 차이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고객을 대하고 사람을 대하는 태도는 그 CEO의 마인드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겠는가! 내가 구입했던 그 곳은 나는 두 번 다시 쳐다보지 않을 것이다. 나같은 사람만 있으면 그 양반들 부자될 것이다. 나는 끝까지 물고 늘어져 받을 것 받아내고 그런 스타일이 아닌지라.

 

 

 

 

7

물론 이 책은 아마존은 무조건 옳다고 하지 않는다. 아마존도 빠듯한 일반 직장생활의 스타일과 다를 바 없다. 다른 점이 있다면 일하는 방식, 소통하는 방식...뭐 그런 점이 남다르다는 것? 저자 자신처럼 12년씩 오랫동안 근무하는 사람은 찾아 보기 힘들다고 한다. 능력이 너무 없어서 못 나가는 사람도 있지만, 능력이 없는데 그렇게 오랫동안 버티는 것도 말이 되지 않는다. 저자는 사내의 이직제도를 잘 활용했다. 아바존은 부메랑(회사를 나갔다가 다시 돌아오는)제도를 장려한다고 한다. 과연 우리나라 같으면 그럴 수 있을까? 괘씸죄를 걸어 넘어지지 않을까? 내 생각이다.

 

 

 

 

8

이 책의 저자는 지금 아마존에서 나와 개인사업을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그가 아마존에서 받은 아마존DNA’는 자신의 인생에 큰 획을 그었다고 말한다.

 

궁극적으로 내가 아마존에서 받은 선물은 자유다!”(322p)

 

저자는 고정적인 수입과 안정된 직장인 아마존에서 자신의 인생의 새로운 설계를 그렸다. 그래서 모든 모험은 안전한 땅에서 시작된다.”는 말을 한다.

 

 

 

9

오랜 시간 동안의 아마존 직장생활을 하면서 저자는 질문한다.

 

당신은 진정 행복하신가요?”

 

우린 직장생활을 하면서 날마다 질문한다.

 

나는 지금 과연 행복한가?”

 

저자가 앞에서 이야기한 아마존이 자신에게 준 선물은 자유라고 했는데, 아마존의 12년이 있었기에 지금 자신은 진정으로 행복할 수 있다고 말하는 듯 하다. 고통스럽고 무미건조하고 힘겨운 축적된 시간의 양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의 자신이 진정한 자유와 행복을 누릴 수 있다고. 나는 약 20년 정도 조직생활을 한 것 같은데, 그 시간대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은 별로 없지만(물론 사람 일은 자신의 계획과 의지대로 다 되란 법은 없다는 것이 현실이지만), 그 시간의 양이 없었다면 지금의 내 마음, 지금의 내 자신이 존재할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해 본다. 무엇이든 공짜로, 그저 주어지는 법은 없는 모양이다.

 

 

 

    

10

사람마다 받아들이는 태도에 따라서 책도 느낌이 다른가 보다.

나는 황농문 교수의 몰입을 읽으면서 두 가지를 생각했다.

첫째는 역설인데, 제목은몰입인데, 진짜 몰입 안 되게 쓴 책이라는 생각이다. 아뿔사! 둘째는 감사인데, 서울대 교수님이 쓴 책이 이렇게 재미없을 수가 있구나! 다행히 그래도 세상은 공평하구나! 다행이다! 라고 하면서 어설픈(?) 위로와 안도감을 순간 느꼈다는 사실이다. 물론 우스갯소리이다.(서울대 출신분들 너무 노여워하지 마시길 바라) 어, 근데 이책이 '2008년도 올해의 책'이었다니! 아...

사람마다 받아들이는 마음의 그릇이 다른 모양이라 그렇다는 것이다.

 

저자는 몰입에서 아주 중요한 말을 인용한다. 가슴에 남는다.

 

내가 지금 하는 일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다.”(284p)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1

   오늘 손흥민이 UFEA의 챔피언스리그 조별리그 B, 즈베즈다와의 원정경기에서 2골을 넣었다. 4-0의 토트넘의 완승이었다. 그런데, 첫 번째 골을 넣은 후 특이한 세레머니를 했다. 그 세레머니는 지난번 에버튼과의 경기에서 손흥민의 백태클로 인해 오른쪽 발목이 골절되어 부상을 입은 안드레 고메스에게 보낸 제스쳐였다. 축구선수에게 부상은 악재임에 틀림없다. 예전에 엄청난 기대를 모았던 이청용은 부상이후 수술을 잘 마쳤지만, 예전의 기량을 완전히 회복하지 못했다. 부상은 운동선수에겐 절망적인 것이다. 내가 여기서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손흥민이 자신의 경기중의 태클로 인해 부상을 입은 고메스에 대한 사과와 미안함이 상대에게 전해졌다는 것이다. 축구선수는 세레머니를 통해서 자신의 마음을 이렇게 전달할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손흥민이 골 세레머니를 그렇게 했다는 것은 그의 머릿속에 고메스에 대한 엄청난 미안함이 가득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2

   간만에 영화를 보았다. 설경구와 조진웅이 주연한 <퍼펙트맨>이었다. 이 영화를 다 보고 난 후의 느낌은 예전에 보았던 더스틴 호프만과 톰 크루즈 주연의<레인맨>과 잭 니콜슨이 주연한 <버킷리스트>를 짬뽕해놓은 느낌이었다. 하지만, 유쾌하고도 감동적으로 감상했다. 접근이 비록 이미테이션의 느낌이 있더라도 결과는 좋았다는 말이다.

    

특별히, 내가 이 코믹하면서도 감동적인 이 <퍼펙트맨>에서 보았던 용서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용서이야기이다.

 

 

    

 

 

3

   영화를 보시지 않은 분들은 영화에 대한 대목을 넘어가시면 좋겠다. 스포주의!

첫 번째 용서의 이야기이다.

교통사고가 났다. 그 사고로 아내와 딸이 죽었다. 남편은 불구자가 되었다. 휠체어신세를 지면서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다. 마지막으로 자신의 가정을 갈기갈기 찢어놓은 그 운전자, 석현을 만나고 싶어했다. 장수(설경구)는 석현(윤상화)이 사과하기를 바랬다.

 

 

두 번째 용서의 이야기이다.

딸이 재벌 2세에게 강간을 당했다. 그런데 법정에서 피의자는 무죄선고를 받는다. 딸은 1년 후 자살을 한다. 석현의 딸이었다. 석현은 당시 피의자를 변호했던 변호사였던 장수를 용서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의도치 않게 한 가족을 몰살시키는 결과를 초래한다. 하지만, 지금 석현과 장수는 서로에게 용서의 악수를 내밀고 있다.

 

 

딸에게 치명적인 범죄를 저지른 강간범을 옹호하고 변호하는 변호사의 차를 분노로 두 눈이 뒤집혀 들이받았던 석현, 석현으로 인해 자신의 아내와 딸을 먼저 보내고 자신은 휠체어에서 전신마비의 불구자로 평생 살아야 하는 시한부 환자, 장수! 상처를 주었고, 상처를 받았고, 또 상처를 주었고, 또 상처를 받았다. ‘---’, ‘상처-상처-damage-damage’

이런 구도로 흘러간다.

 

 

세 번째 용서의 이야기이다.

영기(조진웅)20여년을 깡패 짓을 했다. 하지만, 죽을 날이 얼마 남지 않은 장수(설경구)를 만나면서 그 비릿한 세계에 마침표를 찍기로 결심한다. 자신이 공금횡령한 빚 7억을 갚지 못해 몸으로 때운다. 깡패집단의 보스, 범도(허준호)는 영기와 대국(진선규)이 조직세계에서 배신한 것에 대한 댓가로 영기의 다리를 절게 만들고 갚지 못한 빚 7억은 퇴직금으로 퉁치자고 한다. 영기는 죽을 뻔한 고비를 넘기고 다리를 절룩거린다. 나는 그 영기를 보면서 구약성경에 나오는 야곱이란 인물과 오버랩되었다. 야곱Jacob도 환도뼈가 위골되어 다리를 절었다고 한다.

 

내가 본 영화에서 추려낸 3가지의 용서이야기이다. 그런데, 세 번째는 그렇다치더라도, 첫 번째, 두 번째 용서의 장면, 서로에게 피해자이면서도 동시에 피의자인 장수와 석현의 만남은 이 영화가 코믹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코 끝이 찡해오는 감동이 있었다. 이 장면이 왜 탄생하게 되었는가? 바로 장수(설경구)가 시한부 환자이기 때문에 죽기 전에 꼭 그 친구(석현)를 만나고 싶어했다는 대목이다. 우리가 죽음 앞에 섰을 때 인생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되돌아보게 되지 않겠는가! 장수는 영기의 도움을 통해 석현을 만나면서 통곡과 화해의 장소가 마련된다는 점이 너무 탁월하다. 이 장면은 또 한번 더 보고 싶다.

 

 

 

 

4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을 읽었다. 민음사판에서 번역자는 작품해설에서 이렇게 이야기한다(죄와 벌』의 스포도 주의! 책임지지 않음).

 

라스콜니코프의 몽상과 환멸-<변증법 대신에 삶이 도래했다>’

 

   라스콜니코프의 도끼 살인의 동기는 여러 가지로 추려볼 수 있는데, 그것은 단순히 개인적인 원한에 의한 것이 아니었다. 사회적인 악, 암적인 존재였던 전당포의 노파(고리대금업자)를 정의라는 이상적인 몽상에 의해 살해한 것이다. 그리고 그 곁에 있다가 애꿎게 죽은 리자베타는? 노파는 정의의 이름으로 심판했다고 하지만, 리자베타는 왜? 목격자였기 때문에 죽인 것 뿐이었다. 안 그래도 극빈자의 형편 가운데 우울증을 앓던 라스콜니코프는 점점 더 신경질적인 우울증으로 점철된다. 살인에 대한 논문까지 썼던 엘리트, 라스콜니코프의 이상적인 행동인 살인은 분명히 죄이다. 그렇다면, 그 죄에 대한 심판의 값인 벌은? 라스콜니코프의 살인 후에 훔친 돈이나 보석들을 일체 사용하지 않았다는 점과 평소에 극빈자의 신세이면서도 선행을 베푼 점, 정신적인 우울증을 앓고 있던 광기가 있었다는 점을 고려해 다소 경미한 8년형의 2급 유형수라는 형벌에 처해지는 라스콜니코프! 하지만, 라스콜니코프가 자신의 살인에 대한 정직한 반성이나 회개의 몸짓은 보이지 않는다. 그는 법정에서 솔직하고 정직하게, 변명하지 않고 거짓 증언하지 않았을 뿐이다. 라스콜니코프의 이념, 이상, 이론은 살인이란 행위로 인해 현실에 부딪히고 벌이란 제2급 유형수란 결과를 가져오게 되는데, 거기에 싹튼 것이 소냐를 통한 희망과 재생과 회복의 삶이 도래한 셈이다.

 

 

 

 

5

   어떻게 보면, 라스콜니코프에게 <죄와 벌>이란 공식이 적용되는 것 보다는 오히려 라스콜니코프의 여동생 두네치카를 집요하게 사랑하고 집착했던 스토커 스비드리가일로프가 아닐까 싶다. 스비드리가일로프는 자신의 모든 채무에서 벗어나게 해준 여인과 결혼을 계약적으로 하지만, 자신의 아내인 마르파 페트로브나에게 환멸을 느낀다. 결국 그녀를 세상이 모르게 살해하고 자신의 궁극적인 희망과도 같은 두네치카를 오빠의 살인사건의 약점을 책잡아 자신의 손아귀에 넣으려고 잔머리를 굴린다. 인간이 얼마나 치밀하고 조잡한 존재인지를 도스토예프스키는 이 작품의 인물들을 통해 보여준다. 스비드리가일로프도 그렇지만, 루쥔도 마찬가지이다. 자신의 계획대로 따라와 줄 것을 요구하지만, 두네치카는 권총을 겨누며 꽁꽁 잠겨있는 방문을 나가게 해달라고, 열어달라고 한다. 스비드리가일로프는 끝까지 고집을 피운다. 그러다가 두네치카의 권총을 발사된다. 다행이 스비드리가일로프는 두네치카의 총에 맞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결국 두네치카가 던져버린 그 총을 가지고 혼자 자살하고 만다. 스비드리가일로프의 죄와 벌인 셈이다.

 

 

  

  

 

6

   용서에 대한 이야기를 하니, 오늘 알라딘 메일 뉴스레터에서 본 제러드 다이아몬드가 생각난다. 재미있게 읽은 대변동에서는 개인과 국가의 굵직한 두 가지의 뼈대를 가지고 이야기한다. 알고 보니, 개인적인 차원은 저자의 아내가 임상치료사인 관계로, 국가적인 차원에서는 제러드 다이아몬드가 여러 나라에서 체험한 경험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엮을 수 있었던 모양이다.

 

용서는 개인 차원에서 뿐만 아니라 국가적인 차원에서 필요하다. 세계대전의 주범이었던 독일을 폴란드가 회개하지 않는 나치라고 혐호하는 데는 충분한 이유가 있었다. 폴란드는 2차 세계대전 당시 백분율로 가장 많은 인구를 잃은 나라였다. 또한 나치의 대형 강제수용소들이 있었던 곳이기도 했다. 1970127일 독일의 총리 빌리 브란트는

 

‘19434월과 5월 나치의 점령에 항의한 유대인 폭동이 일어난 바르샤바 게토를 일부러 찾아갔다. 그러고는 폴란드 군중 앞에 자진해서 무릎을 꿇었고, 나치에게 수백만 명이 희생된 사실을 인정하며 히틀러 독재와 제2차 세계대전의 용서를 구했다. 독일인을 끝없이 불신했던 폴란드인조차 브란트의 행동을 계획하지 않은 진실한 마음에서 우러난 것으로 인정했다. 치밀하게 계획하고 감정이 전혀 개입되지 않은 요즘의 외교에서 비추어보면 바르샤바 게토에서 무릎을 꿇은 브란트의 행동은 가해국의 지도자가 큰 고통을 당한 피해국의 국민에게 보낸 진심 어린 사과로 여기기에 충분했다. 미국 대통령이 베트남 국민에게, 일본 총리가 한국인과 중국인에게, 스탈린이 폴란드인과 우크라이나인에게, 드골이 알제리인에게 무릎을 꿇고 사과한 적이 있었던가?’(대변동, 293-294p)

    

 -사진출처: 네이버지식백과

 

제러드 다이아몬드는 빌리 브란트의 이러한 외교적인 행보로 인해 서독은 그에 대한 보상을 받았다고 말한다.

 

마침내 미국과 서유럽권은 서독을 민주국가로서 신뢰할 만한 동맹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결론을 내렸고, 소련과 동유럽권은 서독을 주요한 무역 상대국으로 평가하며 더는 군사적으로 영토를 위협할 국가로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대변동, 295p)

 

독일의 이러한 정직하고도 소탈한 면은 드문 예이다. 국가와 국가 간에 잘못과 실수가 없을 수가 없다. 하지만, 정말 진정성 있는 접근과 태도는 외교관계에 마음의 문을 열게 만든다.

 

 

 

 

7

   하지만, 일본의 경우는 독일과는 대조적으로, 아직도 자신들의 자세를 바꾸지 않고 있다. 우리나라 국민이 대노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메이지 시대 일본에서도 통합 이념의 필요성은 1890년 황제의 교육교서에 대해 널리 유포된 1891년의 해석에서 명확히 표현되었다. “일본은(...) 작은 나라이다. 다른 나라를 무도하게 삼키려는 나라가 많기 때문에 우리는 전 세계를 적으로 보아야 한다(...) 따라서 진실한 일본 국민이라면 사회적 의무감을 가져야 마땅하다. 사회적 의무감은 자신의 목숨을 먼지처럼 가볍게 생각하며 힘차게 전진하고, 국가를 위해 자신을 기꺼이 희생하는 정신을 뜻한다(...)우리가 국민을 하나로 통합하지 못한다면 요새를 짓고 전함을 건조하는 것으로도 충분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국민을 하나로 통합한다면 백만의 가공된 적도 우리를 해치지 못할 것이다.”’(대변동,157p)

 

메이지 정부는 이런 노력은 역사적으로 사무라이 정신’, ‘활복’, ‘가미가제 특공대’, ‘바카 조종사’(일반 전투기나 글라이더에 폭탄을 싣고 적함에 충돌해 자살한 부대), ‘가이텐 선원’(일본 선박이 발사한 어뢰를 타고 조종하며 적함을 향해 돌진한 부대) 등으로 드러났다. 그들은 대단한 우월한 자존심은 결국 침략전쟁으로 드러났다. 제러드 다이아몬드는 중국과 한국과의 관계에서 드러난 지독하고 심각한 감정에 대해 일본인의 사과하지 않는 꼰대의 기질을 싱가포르 초대 초리로 일했던 예리한 관찰자 리콴유(1923-2015)의 평가를 통해 말한다.

 

독일인과 달리 일본인은 정화과정을 거치지 않았고, 자신들의 체제에 독소를 제거하지 않았다. 그들은 젊은이에게 자신들이 범한 잘못을 가르치지 않았다. 하시모토 류타로(일본 총리)1997년 제2차 세계대전 종전 52주년 기념식에서 깊은 유감을 표명했고, 같은 해 9월 베이징을 방문해서는 충심의 회한이란 표현을 사용했다. 그러나 하시모토는 중국이나 한국이 일본 지도자에게 원하는 사과를 하지는 않았다. 나는 일본인이 왜 과거를 인정하고 사과한 후 미래로 나아가려 하지 않는지 이해할 수 없다...사과한다는 것은 결국 자신들이 과거에 악한 짓을 저질렀다는 걸 인정하는 것이다. 유감이나 회한을 표명하는 것은 현재의 주관적인 감정을 표현하는 것 뿐이다. 그들은 난징에서 대학살이 있었다는 것을 부인했다. 또 한국과 필리핀, 네덜란드 등 여러나라의 여성을 납치하거나 강제로 끌고 가 전선에서 일본 병사들을 위한 위안부로 삼았다는 사실도 부인했다. 게다가 만주에서는 한국과 중국, 몽골과 러시아 등 여러 국적의 포로를 대상으로 잔혹한 생물 실험을 시행했다는 사실도 부인했다. 경우맏 반박할 수 없는 증거가 일본인의 손으로 쓴 기록에서 발견된 후에야 마지못해 인정했다. 이 때문에 일본의 장래 의도를 의심할 수 밖에 없다. 현재의 태도는 미래의 행동을 짐작하게 해주는 지표이다. 일본이 과거를 부끄럽게 생각한다면, 과거의 잘못을 되풀이할 가능성도 거의 없지 않겠는가.”(대변동,388-389p)

 

    

 

8

   서구의 침략에 상처입은 일본의 자존심은 다음 세대의 교육에 영향을 미쳤다. 그리하여 군국주의나 제국주의의 면모를 드러냈다. 일본인의 교육은 자신들의 세계대전이나 수많은 전쟁에서의 보여준 일본인의 치부를 숨긴다. 일본인의 교육은 자신이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자신들의 교육이 얼마나 부분적이고, 편파적인지를 알지 못한 채 살아갈 수 밖에 없다. 제러드 다이아몬드는 자신이 강의했던 캘리포니아대학의 일본 유학생들에게 들은 이야기를 적고 있다.

 

그들의 푸념에 따르면 일본 학교의 역사 시간에는 제2차 세계 대전을 거의 다루지 않는다(“수천년의 일본 역사에서 그 전쟁의 기간은 기껏해야 수년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침략자로서 일본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는 거의 혹은 전혀 언급하지 않고, 수백만의 다른 민족과 역시 수백만에 달하는 일본 군인과 민간인의 죽음에 대한 책임도 외면한 채 두발의 원자폭탄으로 약 12만 명의 일본인이 죽었다며 일본을 피해자로 묘사하는 데 급급하며, 오히려 미국이 일본을 자극해 전쟁에 끌어들였다고 비난한다.’(대변동, 389p)

 

일본 유학생들은 캠퍼스의 학생모임에서 중국인 학생이나 한국인 학생을 만나 일본이 전쟁 기간에 저지른 만행에 대해 처음으로 듣고, 그 때문에 아시아의 여러 국가가 일본에 대해서 아직도 증오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는 것을 알면 충격을 먹는다고 저자는 이야기한다.

 

 

 

 

9

   누구에게나, 어느 국가에게나 문제나 실수가 있을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일본은 이전에 루스 베네딕트가 쓴 국화와 칼이란 저서에서 보여주듯이, 말 그대로 국화와 칼이란 이중적인 이미지를 담고 있다는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겉으로는 굉장히 친절하고 부드러운 국화의 이미지이지만, 속으로는 을 갈고 있는 일본인만이 가진 독특한 민족성을 루스 베네딕트가 지적한 것은 아닐까? 이런 생각을 20대에 했더랬다. 물론, 지금도 크게 변한 것은 없지만. 관계란 것은 인간과 인간의 개인 대 개인의 관계도 중요하지만, 이제는 국가 대 국가의 관계도 중요한 것이 아니겠는가!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 속의 라스콜니코프는 마지막 장면에서 자신의 죄에 대해 고백한다.

 

"바로 제가 그때 관리 미망인인 노파와 그 여동생 리자베타를 도끼로 살해하고 금품을 훔쳤습니다."

 

우리가 어릴적부터 들어왔던 명언 중에 그런 명언이 있지 않았나!

 

 

"Honesty is the best policy!"

 

 

 

10

   손흥민 이야기를 했고, 영화 <퍼펙트맨>이야길 했고, 도끼의 <죄와 벌>이야기, 그리고 제러드 다이아몬드의 <대변동>까지 이야기를 했다. 너무 길어졌다. 솔직히 오늘 글을 쓰려고 데스크탑에 앉았는데, 한글이 에러가 나서 다시 깔고 하는데 나의 인내심이 극에 달했다. 우리 집은 독특한 구조라 서재에 보일러를 안 트는데, 추위도 나의 인내심을 계속 갉아먹었다. 그래도, 이렇게 글을 마무리하게 돼서 만족한다. 또 다시 돌아보면 얼마나 많은 오타와 미문장과 불완전이 드러날지 모를 일이지만, 더 쓰다가는 내 멘탈이 붕괴될지도 모를 일이나 이만 쓰기로 한다. 이런 내 자신과 내 글에 대해서도 용서가 필요해!’아닌가?

   

그러고 보니 최근에 읽은 책 제목이 갑자기 생각이 난다!

 

Something needs to change!

 


댓글(7) 먼댓글(0) 좋아요(4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stella.K 2019-11-07 18: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손흥민은 어쩌면 축구도 잘하고 인간성도 좋은지. 기특하고 자랑스럽더군요.
저는 오래 전 <죄와벌>을 열린책판으로 읽었는데
얼마전 박균호님 소개도 있고 해서 동서문화사판으로 읽어보고 싶더군요.

카알벨루치 2019-11-07 18:33   좋아요 1 | URL
손흥민더러 인성좋다고 축구관계자들까지 이야기하더군요 기분좋아지는 축구선수 국민동생 흥민이입니다 ㅎㅎ<죄와 벌> 은 인제 읽네요 알라딘 와서 예전 같으면 엄두도 못 낼 접근불가한 책도 읽고 이렇게 또 알라딘빠가 되어가나봅미다

카알벨루치 2019-11-07 18:35   좋아요 0 | URL
근데 댓글이 줄여보이네요 나만 그런가? 잘린 듯한 느낌...터치해도 안 보이는...금방 알라딘 칭찬했는데 이거 머임???ㅜㅜ

2019-11-07 22: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11-07 22: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뒷북소녀 2019-11-08 20: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소개해주신 작품 중 두 작품이나 읽었는데...
어떻게 이렇게 연결시킬 수가 있는거죠.
퍼펙트맨은 그래서 어떻게 됐는지 궁금하네요.
사과했는지, 용서 받았는지.

2019-11-08 23:37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