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와의 불화

1

나쓰메 소세키는 신지식인이다. 당대에 국비장학생으로 영국 유학을 다녀온 재원이다. 영국 유학경험이 그를 지식인의 반열에 가지게 올려놓았다고 하기보다는 무엇보다 유학 생활 가운데서 느낀 무한한 고독감, 고립감이 그를 더 치열한 지성인으로 만들지 않았나 생각해본다. 멀리서만 바라보았던 선진국인 영국, 하지만 정작 영국 땅에 발을 들여놓았을 때부터 느꼈던 심각한 괴리감은 그를 정신병까지 몰고가서 유학을 보낸 고국에서 걱정을 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2

소세키의 태풍에서 주인공 도야는 다카야나기 군에게 이렇게 말한다.

 

당신은 당신만 외톨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나 나 역시 외톨이입니다. 외톨이는 숭고한 사람입니다.”

....

숭고? 왜 그렇지요?”

그걸 이해하지 못한다면 도저히 외톨이로는 살아갈 수 없습니다. 당신은 다른 사람보다 높은 곳에 살고 있다고 자신하지만 사람들이 그곳을 인정해주지 않기 때문에 외톨이가 된 거지요? 그러나 다른 사람이 인정해줄 만한 곳이라면 그들도 올라설 수 있는 곳입니다. 게이샤나 인력거군이 자신과 동등한 사람이라고 생각해버리기 때문에 상대가 자신을 업신여길 때 화가 치민다거나 번민하는 것입니다. 만일 그들과 동등하다면 창작을 해봤자 역시 동등한 창작밖에 나오지 않습니다. 그들과 동등하지 않기 때문에 훌륭한 인격을 발휘한 작품이 나옵니다. 훌륭한 인격을 발휘한 작품을 쓰지 못한다면 그들로부터 업신여김을 당하는 것은 어떤 면에서 당연한 일이지요.....”

...(중략)...

“...훌륭한 작품을 써서 후세에 전하고 싶은 것이 당신의 희망인 듯해서 이야기한 것입니다.”

선생님께서는 어떠신지 가르쳐주십시오.”

난 이름처럼 미덥지 못한 것은 아무래도 상관없습니다. 다만 스스로 만족을 얻으려고 세상을 위해 일하는 것뿐입니다. 그 결과가 악명이 되든, 오명이 되든, 아니면 광기가 되든 할 수 없습니다. 그저 이렇게 일을 하지 않으면 만족할 수 없기 때문에 일하는 것일 뿐입니다. 이렇게 일하지 않으면 만족하지 못하는 것을 보면 이것이 바로 내가 걸어야 할 길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인간에게 자신의 길을 따라가는 것 말고는 달리 방법이 없습니다. 인간은 길의 동물이기 때문에 길을 좇는 것이 가장 존엄하다 생각합니다. 길을 좇는 사람은 신 역시 피해야 합니다. 이와사키의 담 같은 건 아무것도 아니지요. 하하하하.”(139-140p)

 

 

 

 

3

이 작품에서 등장한 도야 시라이는 당대의 지식인이지만 외톨이 신세이다. 소세키의 분신과도 같은 인물로 비쳐진다. 소세키의 목소리를 도야의 연설을 통해 드러내준다. 소세키가 얼마나 어마어마한 지성을 소유한 인물인지는 도야의 목소리를 통해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소세키의 태풍은 그의 타 작품들에 비해 덜 익히는 작품이다. 이 작품의 스토리는 흥미로운 것이 별로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도야 시라이, 다카야나기 군, 나카노 군. 이 세 명의 캐릭터가 주된 스토리를 이어간다. 흥미를 위해서라면 독서가 힘들겠지만, 소세키의 지성의 면목을 보고 싶다면 추천한다.

 

 

 

 

4

소세키는 일본의 메이지유신 이후 일본의 급변하는 시대의 분위기에 대한 불안을 느꼈다.

 

오늘의 우리는 과거를 갖지 않은 개화 속에 살고 있습니다....기준으로 따를 만한 과거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메이지 40년은 전례가 없는 40년입니다...전례가 없는 사회에 태어난 사람만큼 자유로운 사람은 없어요. 나는 여러분이 이런 전례 없는 사회에 태어난 것을 깊이 축하하는 사람입니다....전례 없는 사회에 태어났다는 것은 스스로 전례를 만들어내지 않으면 안 된다는 의미예요. 속박이 없는 자유를 향유하는 사람은 이미 자유를 위해 속박을 당하고 있는 겁니다. 이 자유를 어떻게 능숙하게 사용할까 하는 문제는 여러분의 권리이자 동시에 큰 책임입니다. 여러분! 위대한 이상을 갖지 못한 사람의 자유는 타락입니다.”(179-180p)

 

 

 

 

5

영국식을 고취하며 위세를 부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가엾은 일입니다....모든 이상은 자신의 혼입니다. 내부에서 나오지 않으면 안 돼요. 노예의 두뇌에 웅대한 이상이 자리잡을 수 없습니다. 서양의 이상에 압도되어 눈이 먼 일본인은 어떤 의미에서 모두 노예입니다. 노예로 만족할 뿐 아니라 앞다투어 노예가 되려고 하는 사람에게 어떤 이상이 발효할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 이상은 여러분의 내면에서 나와야 합니다. 여러분의 학문이나 식견이 여러분의 피가 되고, 육체가 되고, 마침내 여러분의 혼이 되었을 때 여러분의 이상은 완성되는 것입니다. 벼락치기로는 어떤 일도 되지 않습니다.”(183p)

 

 

 

 

6

노예 이야길 하니 요근래 읽었던 조정래의 천년의 질문의 내용이 생각난다. 인간은 첫 번째 종교의 노예, 두 번째 권력의 노예, 세 번째 황금의 노예로 전락하였고, 이제 우리 시대에는 네 번째로 스마트폰의 노예로 추락하고 있다고 말했다(1, 33p의 내용을 편집함).

 

    

 

 

7

작가 소세키는 도야에 대해 이렇게 평한다.

 

백지가 인격이 되어, 그 바깥으로 넘쳐 흐르고 뛰어오르는 문장이 있다면 바로 도야의 문장이다. 그럼에도 세상은 변함없이 귀족, 거상, 박사, 학사의 세상이다. 부속품이 본체를 밟아 뭉개는 그런 세상이다. 도야의 문장은 세상에 발표되는 족족 몰살당한다. 아내는 돈이 되지 않는 문장을 도락문장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도락문장을 쓰는 사람은 의지가 없는 사람이라고 말한다.’(65p)

 

소세키는 신자유주의의 태풍 앞에 흔들리는 시대에 대해 염려한 지성인의 면모를 보여준다. 그 작품이 바로 태풍이다.

 

흰 나비, 흰 꽃에

조그만 나비, 조그만 꽃에

흩어져 있네, 흩어져 있네

기나긴 근심은, 긴 머리카락에

어두운 근심은, 검은 머리카락에

흩어져 있네, 흩어져 있네

부질없이, 부는 태풍

부질없이, 사는가 속세에

흰 나비도, 검은 머리카락도

흩어져 있네, 흩어져 있네.(109p)

 

 

 

 

8

소세키가 느꼈던 시대와의 불화, 그리고 시대로부터 느꼈던 불안은 그의 작품 행인에서 보여준다. 하지만, 그 시대에 대한 불안이 소세키 자신에게 얼마나 지독했는지는 이 작품의 등장인물의 구도, 그들의 이야기를 통해 드러난다. 형인 이치로가 동생 지로에게 질투를 느낀다. 왜냐구? 지로의 형수이자, 자신의 아내인 오나오가 동생가 썸을 타서 불륜의 관계가 있다는 의처증 증세를 보이기 때문이다.

 

네가 나오의 정조를 시험해 봐다오.”(행인, 129p)

 

팩트 없는factless 추측과 상상으로 조합된 자신만의 서사에 형 이치로의 정신은 끊임없이 추락하고 아내와 동생으로부터 거리를 두게 된다. 형 이치로가 느끼는 개인의 불안은 거기서 멈추지 않고 전인류적으로 확장되어진다.

 

자네가 말하는 불안은 인간 전체의 불안이지. 유독 자네 혼자만 괴로워하는게 아니라고 깨달으면 그만 아닌가? 결국 그렇게 유전해나가는게 우리들 운명이니까.”

 

인간의 불안은 과학의 발전에서 비롯되네. 앞서가기만 하고 멈출 줄 모르는 과학이 일찍이 우리에게 멈추도록 허락한 적이 없네. 도보에서, 인력거로, 인력거에서 마차로, 마차에서 기차로, 기차에서 자동차, 그 다음엔 비행선, 그 다음엔 비행기, 아무리 가봐도 쉬게 내버려두지 않아. 어디까지 끌려갈지 알 수 없는 일이지. 참으로 두렵다네.”(행인,327p)

(윌리엄 포크너의 에 대한 페이퍼에서 소세키의 불안을 말했었다. 재인용한다.)

 

소세키는 100여년 전에 이미 인간 본유의 불안을 감지했다. 그래서 그의 작품전집에 씌여 있는 백년이 지난 지금 우리의 이야기라는 말이 적절하다고 할 수 있다. 소세키는 위대하구나! 

    

 

 

9

시대와의 불화라고 하니 한 사람이 떠오른다. 이 양반은 유대인이었다. 그는 나치가 자신의 책을 금서로 지정하고 압박해오자 1934년 런던으로 피신해 영국 시민권을 획득했고, 이후 유럽을 떠나 브라질로 망명했다. 바로 슈테판 츠바이크이다. 하지만 히틀러의 인해 생긴 전쟁의 군화발로 짓밟힌 자신의 정신적 고향인 유럽의 자멸을 바라보며 츠바이크는 우울증을 겪는다. 지독한 시대와의 불화를 느꼈던 지식인이 바로 스테판 츠바이크였다. 츠바이크는 1942자유의지와 맑은 정신으로먼저 세상을 떠난다는 유서를 남기고 부인과 함께 약물 과다복용으로 동반자살했다.

 

츠바이크는 죽기 일 년도 안 되는 시점인 1941년에 체스 이야기를 출간한다. 영어, 프랑스어, 스페인어, 라틴어에 능통했던 츠바이크의 영민함은 이 작품에서 더 빛을 발한다. ‘히틀러가 1938년 오스트리아를 합병한 시기에 빈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로 설정하고 있다. 이로써 틀이야기의 심리전이 단순히 체스 대결자들 사이의 심리전으로만 읽히지 않고 시대적, 역사적 심리전의 의미를 내포하게 된다’(154p)고 해설자는 말하고 있다. 이 짧은 단편소설을 통해 자신의 심경과 시대의 우울을 그려내는 스테판 츠바이크! 조금만 더 버텼더라면 히틀러가 괴멸하는 것을 눈으로 목도할 수 있었을 텐데...츠바이크의 천재성, 그의 존재를 그렇게 사라지게 만든 것이 다름 아닌 시대와의 불화였다는 것!

 

 

    

 

 

 독서가의 책임 

 

10

누구보다 많이 알고 배우고 익히고 사유하는 사람이라면 자신의 세계에서만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곁에 있는 사람들, 더 나아가서 자신의 살고 있는 시대까지 사유가 확장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게 바로 지식인이고, 지성인이다. 그게 바로 소세키같은, 츠바이크 같은 지성인이 지향해야 할 바른 자세이자 태도가 아닐까? 시대에 대해 고민하고 비판하면서 대안을 찾고 나아가는 지성인의 책임이 느껴진다. 더 많이 읽고, 더 많은 지식을 체득했다면, 더 많은 사색과 사고가 그 사람에게 주어지는 셈인데, 어쩌면 그것은 신약성경의 사도 바울이 말한 빚진 자라는 개념으로 적용될 수도 있겠다.

 

헬라인이나 야만인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진 자’(로마서 114)

 

우리가 누린 지성의 향연은 그냥 우리의 말 잔치로 끝나버리는 하나의 도구, 악세사리가 아닌 우리가 디디고 있는 세상이란 공동체의 그라운드에서 빚진 자의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 읽으면 읽을수록 느껴지는 것은 이런 지적 부담감이다. 내가 과연 받은 만큼 다른 이에게 영향력을 미치고 있으며 시대에 대한 책임을 자각하고 있는가? 그래서 두렵고 떨리는 독서이기도 하다.

 


댓글(13) 먼댓글(0) 좋아요(4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레삭매냐 2019-10-31 13:1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나쓰메 소세키 작가 전반을 아우르는
영롱한 글쓰기에 그만 감탄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시대와 불화한 츠바이크까지 지평을
넓혀 주셨네요. 엄지 척 !

카알벨루치 2019-10-31 15:57   좋아요 0 | URL
ㅋㅋ넘 지나친 칭찬 아닙니까!!! ㅎㅎ감사하네요 따뜻한 격려 덕분에 또 열씨미 읽고 쓸 에너지가 팍팍 생깁니다 레삭매냐님도 건필하소서!^^

coolcat329 2019-10-31 16: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참 잘 읽었습니다. 조금만 더 버텨보지...이 부분은 너무나도 공감이...

카알벨루치 2019-10-31 17:31   좋아요 1 | URL
그러게 말입니다 츠바이크의 운명은 너무 안타깝게 느껴집니다 하지만 그 아쉬움이 또 독자들에게 어필하는지도 모르지만 한 개인의 인생사로 보면 너무 비극적입니다...댓글 감사합니다 ^^

stella.K 2019-10-31 20: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우, 어제의 카알님은 어디 가시고 이런 우아한 한편의 문학 논문을 다 쓰셨습니까?
깍쟁이십니다.흥!ㅎㅎㅎㅎ
근데 카알님 혹시 유튜브 운영 안 하시나요? 하시면 좋을 것 같은데...ㅎ

카알벨루치 2019-10-31 20:23   좋아요 0 | URL
스텔라님 꼭 만나야할 분은 또 만나는겁니까 이러면서 ㅋㅋ 글을 뭘 쓸까 고민을 하다가 무언가 차오르면 글을 쓰는 것도 좋은 방법인데 글을 쓰면 글읽는게 주춤해지네요 두가지 동시에는 잘 못하는 인간인가 봅니다 유튜브요? ㅎㅎㅎㅎ제가 진짜 하고싶으면 하겠지요 근데 아직은....글쓰는 시간도 없는데 그거 만들고 편집하고 영상만드는거 진짜 ‘노가다’인데 과연 그게 나을지...제가 유튜브하면 기타치면서 노래나 늘 할 듯 합니다 그리고 곧 유뷰브채널 사라지는 소리가 들리겠죠 사사삭 ㅋㅋㅋ

근데 요즈음은 자전적 스토리 안 쓰시는가요? ㅎㅎ웬 뒷북입니다 ㅋ

2019-10-31 20: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10-31 21: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11-01 19: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syo 2019-11-01 15: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역시..... 카알님도 카알님 실력도 어디 안 가시네.....👍

카알벨루치 2019-11-01 15:30   좋아요 0 | URL
실력은 무씬~잘 지내죠? 오늘도 화이팅^^

cyrus 2019-11-01 18:0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만약 츠바이크가 자살하지 않고 히틀러의 패망을 지켜봤다고 해도 전후에 일어나게 될 새로운 ‘시대와의 불화’를 감당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프리모 레비처럼 말이죠.

카알벨루치 2019-11-01 18:25   좋아요 0 | URL
아 그 생각도 할 수 있겠군요 역쉬 시루스박사님~츠바이크는 츠바이크니깐...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란 노래의 가사중에 "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구나"란 가사가 있다. 
김진영은 자신의 작은 골방에서 이 글을 썼다고 했다. '이별'에 대한 지독한(?) 성찰의 성격을 볼 때 그는 이 글을 아마 젊은 20대에 적었을까?아니면 30대에? '사랑과 이별'에 대한 진지한 탐색은 불혹을 넘고 나이가 더 들어서도 물론 가능하겠지만, 그의 글의 느낌은 그의 글 쓴 시기와 배경을 추측해보게 된다. 

  '난 너를 영원히 사랑해.'
  '난 널 죽도록 사랑해.'

  이별을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젊은 시절의 나는 사랑하는 연인에게 그렇게 고백했고 맹세했더랬다. 그런 다짐과 맹세를 철없는 나이엔 하지만, 철이 들면 현실을 더 직시하게 된다. 사랑하고 이별하고, 또 사랑하고 이별하고...모든 것이 끝이 있다는 것을.
  사랑...이별....회자정리...
  영화 <엽기적인 그녀>에서 그런 대사가 기억에 남았다. '꼭 만나야할 사람에게 신은 우연이란 다리를 놔준다'고.
  하지만, 대부분 그 사람도 결국 이별을 하게된다.






 김수미의 먹방 프로그램을 우연히 보게 되었다. 거기에 5년 전에 암으로 아내를 떠나보낸, 세 남자아이의 아빠가 손님으로 등장했다. 막내가 1살일 때, 아내인 엄마가 죽었다는데. 아이는 엄마에 대한 추억도, 기억도 없는 채. '새 엄마'가 있었음 좋겠다고 이야기했다. 사연을 듣다가 눈물이 터졌다. 막내에겐 '엄마'란 단어가 '만질 수도, 느낄 수도, 맡을 수도, 볼 수도 없는' 그런 형이상학적인 그 무엇이 아닐까? 먹방 프로그램 보다가 눈물을 흘리다니...








  '이별'이라고 하는데, 난 '죽음이라는 이별'을 생각해본다. 김진영은 고인이 되었다. 사후에 책들이, 그의 글들이 수면 위에 떠오른 듯 싶다. 요즘 글쓰기가 안 된다. 그냥 게을러진 같기도 하고. impulse가 생기지 않는 듯 하기도 하고. 영감의 부재...







  부재...이별....상황과 관계의 '사이'에 존재하지 않는 현상.



"부재의 힘이 모든 것의 기원이다"
-마르그리트 뒤라스 <연인>


"그것 때문에, 오로지 그것때문에, 우리는 살아 있는 것이리라"
-T.S.엘리엇 <황무지>



  상처는 남지만 그 상처는 또 다른 재생의 힘을 부가하는 듯. 그래서 삶이 있으면 죽음이 있고, 사랑이 있으면 이별이 있는 것이 아닐까? 부재가 있기에, 존재가 있고, 탄생이 있고, 잉태가 있고, 출발이 있는 것이 아닐까? 부재의 힘이라...



'처음에는 이별이 너무 힘들었어....잠에서 깨어나면 이별이 내 곁에 함께 누워있곤 했어. 나는 이별을 아파하는데, 이별은 그런 나를 아파하는 것 같았어. 나를 위안해 주는 것 같았어. 마치 자기만은 나를 잊지 않겠다는 것처럼. 결코 나를 떠나지 않겠다는 것처럼. 그러다보니 이별과 함께 사는 일이 편해졌어. 그 사이에 이별과 정이 든걸까? 이제는 이별과 잘 살 수 있을 것 같아. 정말 이별이 끝나면 몹시 아플 것 같아."(K의 말)


"사랑과는 이별을 해도 이별과는 이별을 할 수 없는 걸까?"


칼 하인츠 보러: "이별은 존재의 원풍경이다. 우리는 이별과 더불어 태어나서 이별과 더불어 살아간다."(86-87p)






  내가 좋아하는 황동규 시인의 시이다.
  

<더 쨍한 사랑 노래>

 그대 기척 어느덧 지표에 휘발하고

 저녁 하늘

 바다 가까이 바다 냄새 맡을 때쯤

 바다 홀연히 사라진 강물처럼

 황당하게 나는 흐른다.

 하구였나 싶은 곳에 뻘이 드러나고

 바람도 없는데 도요새 몇 마리

 비칠대며 걸어다닌다.

 저어새 하나 엷은 석양 물에 두 발목 담그고

 무연히 서 있다.

 흘러온 반대편이 그래도 가야 할 곳,

 수평선 있는 쪽이 바다였던가?

 혹 수평선도 지평선도 여느 금도 없는 곳?





시에서 드러내놓고 보여주는 것은 없는데, 보여주는 풍경으로 모든 분위기를 압도하고 있다. '그대 기척 어느덧 지표에 휘발하고...' 그대와의 이별을 '그대 기척 어느덧...휘발하고...'이렇게 표현했다. 그리고 자연의 무한한 풍광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대명사 '하늘', '바다', 그리고 '하구', '뻘'...그리고 거기에 날아드는 피조물 '도요새'....
이별의 분위기를 은근히 압도하는 시가 더없이 가슴에 내려앉는다.







  어쩌다 발견한 천양희 시인의 시이다.
  

 <별이 사라진다>

 나는 1초에 16번 숨쉬는데

 별은 1초에 79개씩 사라진다

 내 심장은 하루에 10만 번 뛰는데

 별은 1초에 79개씩 사라진다

 죽을 때 빠져나가는 내 무게는 21그램인데

 별은 1초에 79개씩 사라진다

 나는 1분에 0.5리터 공기를 마시는데

 별은 1초에 79개씩 사라진다

 내 심성은 7년마다 한 번씩 바뀌는데

 별은 1초에 79개씩 사라진다

 나는 하루에 12번 웃는데

 별은 1초에 79개씩 사라진다



 별은 세상에 마음이 없어 사라지고

 세상에 마음이 있어 사람들은 무섭게 모여든다




'별은 1초에 79개씩 사라진다'...시인 안도현은 사리사욕이 없기에, 흔적 없이 사라져가는 별과 속세에 아직도 미련이 많은 인간들은 '무섭게 모여'드는 인간의 욕망을 대조하여 보여줬다고 말한다.(『이 시를 그때 읽었더라면』, 안도현 엮음. 150-151p) 자신의 존재의 사라짐과 부재에 대해 자연스러운 별을 보면서 존경이 일어난다. 이별에 대해, 부재에 대해 초연해질 수 있는 인생이 얼마나 될까? 자신의 존재의 부재 앞에, 독배를 마시기 전에도 의연함을 잃지 않았던 소크라테스 같은 위인이 얼마나 될까? 



7

  "사건들이 두서없이 일어나는 삶 속에서는 행복도 엇갈리면서 찾아온다. 즉 내가 그것이 꼭 있었으면 하는 그때에는 나를 찾아오지 않는 것, 그것이 행복인 것이다."(150p)



  내가 있어야 할 존재의 자리나 내가 꼭 유지하고 싶은 상황과 환경속에서의 그 무언가가 부재한다는 것, 그 순간의 시간과 공간에 부재한다는 것은 우리가 우리 인생 자체를 통제할 수 없음 보여준다. 내 인생이라고 해도 운명을 좌지우지 하는 것은 내 통제력 너머의 일이란 생각, 그것이 내가 크리스천이기도 한 이유이다.








  시인 김언희의 시다

 <한점 해봐, 언니>

 한점 해봐, 언니, 고등어회는 여기가 아니고는 못 먹어, 산 놈도 썩거든, 퍼덩퍼덩 살아 있어도 썩는 게 고등어야, 언니, 살이 깊어 그래, 사람도 그렇더라, 언니, 두 눈을 시퍼렇게 뜨고 있어도 썩는 게 사람이더라, 나도 내 살 썩는 냄새에 미쳐, 언니, 이불 속 내 가랑이 냄새에 미쳐, 마스크 속 내 입 냄새에 아주 미쳐, 그 냄샐 잊으려고 남의 살에 살을 섞어도 봤어, 이 살 저 살 냄새만 맡아도 살 것 같던 살이 냄새만 맡아도 돌 것 같은 살이 되는 건 금세 금방이더라, 온 김에 에 맛이나 한번 봐, 봐, 지금 딱 한철이야, 언니, 지금 아니 평생 먹기 힘들어, 왜 그러고 섰어, 언니, 여태 설탕만 먹고 살았어? 
 


 많은 생각을 하게끔 하는 시이다. 이렇게라도 기억속에 저장해두고 싶은 시이다. 그러고 보니 '고등어 회'는 한번도 못 먹어 본 것 같다. 괜히 고등어회가 먹고 싶다...








Epilogue...

<이별의 푸가>라고 했는데, '푸가'란 단어의 정의를 찾아봤는데, 너무 어렵게 느껴진다. 한국 말인데 해독이 안 된다. 아마도 음악의 문법이 들어가 있어 더 어렵게 느껴진 듯하다.사람은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보고자 한다는데, 내 뇌의 셧트가 '푸가'란 단어 앞에 차단막을 쳐서 더 이상 알고싶지 않은 게으름을 피우는 듯 싶다. 이러면서도 나는 더 알고자 하지 않는다. 난 언제나 문법을 힘들어했다. 국어든, 수학이든, 영어이든, 음악이든...'법'이란 로직한 언어 앞에 내가 무력해지는 느낌이기도 하고. 아무튼, 불능의 언어해독이다...


난 푸가란 단어와 이별하고 싶다...ㅋ


우리는 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구나...



댓글(6) 먼댓글(0) 좋아요(3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stella.K 2019-10-30 15: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러게요. 요즘 뜸하신 것 같더라구요.
그런 때가 있는 거죠. 저도 그런데요 뭐.ㅎ
얼마 전 김탁환 소설가가 TV에 나와 김진영의 책을 극찬하던데
저도 함 읽어보고 싶더군요.
그런데 정말 저도 푸가에 대해선 무슨 뜻인지 알려고 하지도 않았네요.
오늘은 이별하지만 내일은 만나지요.
만나는 순간 이별인가요?ㅋ .

카알벨루치 2019-10-30 15:33   좋아요 1 | URL
가득차면 흘러넘치겠지요 전 그걸 믿습니다 쓰지 않고서는 못 견디는 그것 ㅎㅎㅎㅎ 가을날 감기조심하소서!

이 책은 이별에 대한 해부학 같은 느낌입니다 뜨거운 사랑 이후 이별이 찾아온 이의 마음의 환부를 잘 드러내주네요!

카알벨루치 2019-10-30 17:26   좋아요 0 | URL
근데 꼭 그런것은 아니더군요 작가들은 정기적으로 의무적으로 쓰기를 강조하더군요 스텔라님처럼 말입니다 ㅋ

stella.K 2019-10-30 18:02   좋아요 1 | URL
ㅎㅎㅎ 그건 맞아요. 하지만 전 빼주세요.
전 열심히 쓰지도 않는답니다.ㅠㅠ


oren 2019-10-30 16: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푸가 형식의 음악 얘기를 들으니 문득 칼 세이건이 ‘보이저 우주비행계획‘ 때 실어 보낸 금제 음악 생각이 나네요.

그때 만들어진 골든디스크에 실린 27곡의 음악 중에는 베토벤의 후기 현악 사중주 가운데 한 곡도 빠지지 않았는데, 그의 선택기준은 ‘적어도 몇 곡은 우주의 고독을 표현하는 것이어야 한다‘는 생각과 ‘추상적인 구조를 지닌 곡들도 선택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고 하네요.

* * *

˝지구 생물에게는 단 한 가지의 생물학만으로 충분하다. 생물학을 음악에 비유해 볼 때, 지구 생물학은 단성부, 그리고 단일 주제 형식의 음악만을 우리에게 들려준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수천 광년 떨어진 저 먼 곳의 생명은 우리에게 어떤 형식의 음악을 들려줄 준비를 해 놓고 있을까 무척 궁금하다. 풀피리 하나로 연주되는 지구 생명의 이 외로운 음악 하나가 우리가 우주에서 기대할 수 있는 유일한 음악일까? 우주 생물이 들려줄 음악은 외로운 풀피리 소리가 아니라 푸가일 가능성이 높다. 우리는 우주 음악에서 화음과 불협화음이 교차하는 다성부 대위법 양식의 작품을 기대한다. 10억 개의 성부로 이루어진 은하 생명의 푸가를 듣는다면, 지구의 생물학자들은 그 화려함과 장엄함에 정신을 잃고 말 것이다.”
- 칼 세이건

☞ https://blog.aladin.co.kr/oren/6529278

카알벨루치 2019-10-30 17:25   좋아요 1 | URL
일단 다양한 성부 정도로 이해하겠습니다 그렇게 따지니 김진영의 <이별의 푸가>가 다 다채롭게 느껴집니다 이별에 대해서 깊고 넓게 조망! 20대였더라면 더 구구절절 다가왔을 그의 책의 내용이 지금은 조금 비껴간 느낌이 들더군요 제 감성이 드라이해졌는지도 모를 일이죠

오렌님의 정성스런 댓글에 감사인사 넙쭉 드립니다 ㅎ
 

1
김광균의 <은수저>란 시다

산이 저문다
노을이 잠긴다
저녁밥상에 애기가 없다
애기 앉던 방석에 한 쌍의 은수저
은수저 끝에 눈물이 고인다
(37p)

‘저녁밥상에 애기가 없다’는 현실은 ‘한 쌍의 은수저’로 그리고 그것은 ‘은수저 끝에 눈물’로 도드라진다 애기가 없은 슬픔이 느껴진다 문득 이기주의 <글의 품격>에서 본 이야기가 생각난다 헤밍웨이에게 누군가가 6단어로 구성된 소설을 쓴다면 당신의 필력을 인정하겠다고 했다 그러자 헤밍웨이는 이렇게 썼다고 한다

For sale: Baby shoes. Never worn.

어떻게 이런 글을 쓸 수 있단 말인가? 김광균 보다 더 압축시킨 아이를 잃은 상실의 슬픔이 느껴진다 ‘한번도 신지 않은 아이의 신발’을 덩그러니 내놓은 그 풍경, 그 샷이 주는 슬픔의 미는 어떠한가!

역시 헤밍웨이의 “빙산이론(생략이론)”을 더듬어 볼 수 있는 글이다 어떻게 보면 우리의 삶 자체, 나의 삶이 다른 이에게 보여지는 것은 삶의 전부가 아니라 파편일 수 있다 소위 ‘빙산의 일각’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내’가 ‘너’일 수 없기에 우리는 서로를 온전히, 타인을 100% 판독하고 이해하는 것을 불가능한 것이 아닐까? 우린 우리의 눈으로 ‘타인의 삶의 빙산의 일각’을 보면서 판단한다 그럴 수 밖에 없는 현실이고 노릇이다



2
이윤기가 말한다
‘나는 이미 많은 정보를 내 기억의 창고에다 우겨넣었다 더 우겨넣는 수고가 망설여진다 그래서 가만히 기다리면서 구정물이 맑아질 때를 기다리는 일이 자주 일어난다 자주 나 자신에게 묻는다 더 알아야 하는가? 우겨넣은 짓 이제 그만하고 가만히 되새김질해 볼 때가 된 것 같은데, 아닌가?’(68p)

이미 고인이 된 작가가 스스로 질문하는 내용이다 “더 알아야 하는가?” 구약성경 전도서의 저자, 솔로몬 왕은 이런 말을 했다

‘내 아들아 또 이것들로부터 경계를 받으라 많은 책을 짓는 것은 끝이 없고 많이 공부하는 것은 몸을 피곤하게 하느니라’(전도서 12:12)

배움에는 끝이 없고 이 세상엔 수많은 공부의 요소들이 있다 수많은 책들이 존재한다 자연의 풍광도 공부의 요소가 될 수 있겠다 자연은 언제나 우리에게 팔색조보다 더한 풍경을 보여주지 않는가! 100년이란 시간 안에 우리가 읽을 수 있는 책이 얼마일까? limit가 없는 것이리라 이윤기는 ‘우겨넣는 수고가 망설여진다’고 했다 나는 아직 조금 시간이 있으니 더 우겨넣는 수고가 있어야겠다 근데 오늘 이 페이퍼는 정말 읽기를 쉬기 위한 pause time이다 계속 우겨넣음 머리에 쥐가 날 듯 해서다



3
그리스로마 신화학자로 알려진 그가, 딸(번역가이다)의 말을 빌면 이윤기는 늘 ‘소설가’로 불려지고 싶어했다고 한다 도서관에 꽂힌 1000쪽이 넘는 이윤기의 우람한 양장본 소설책이 떠오른다 목차를 보고 책쪽수를 보고 얼른 덮었다는 기억이 있다 우린 이윤기를 소설가보다는 그리스로마학자로 잘 알고 있다 거기서 대박을 터트렸으니.
근데 이윤기가 그리스로마 신화의 전문가가 된 것은 순전히 우연이었다고 한다

‘터키의 흐린 주점에서, 나의 흑해를 건너야 한다고 결심하지 않았으면 나는 어찌 되었을꼬! 나의 신화책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좌절해있는 젊은이들을 위해서 쓴다 흑해는 누구에게나 존재한다 그 흑해를 건너야 한다’(81p)

인생의 기회는 한 순간에 포착되는 듯 하다 나는 얼마나 많은 흑해를 피하였던가? 지금은 그 흑해를 건너고 있는가? 그렇다고 자위해 본다


4
‘어머니는 한 번도 날 무시하지 않았다(151p)’

‘지진아였던 내가 지금은 작가가 되었다 때로는 전세계를 누비기도 한다 내 분야에서는 실수도 별로 없다 어머니가 나를 무시하고 능멸했다면 나는 진작에 자멸했을 것이다 내 아들 딸도 부모로부터 무시당하거나 능멸당한 적이 거의 없다 지금 잘 자라 있다 사람은 남으로부터 무시당하거나 능멸당한 경험이 없다면 남을 무시하거나 능멸하지 않는다는 게 내 생각이다’(154p)

나는?
그냥 이 대목이 울컥했다 이윤기가 학창시절에 학교 1년 쉰다고 했을 때도, 1년 쉬다 다시 학교간다고 했을 때도 이윤기의 어머니는 그를 있는 그대로 존중해줬다고 한다 근데 그건 정말 쉬운게 아닌 듯 하다 능멸당한다는 것은 존재가 쪼그라드는 경험이다 그 경험이 진짜 비극적인 체험이다
나는?
그리고 나는 자녀들에게 무시하지 않는 아버지인가? 자신이 없다 나도 그렇게 잘나지 않았고 잘 나게 커 온 것도 아닌데 이것도 트라우마이자 컴플렉스인 것 같다 괜히 애들에게 미안하다


5
“작가의 죽음은 생물학적 죽음 10년 뒤에 온다”

이 말은 프랑스 속담이다 작가가 죽은 뒤 10년이 지났는데도 책이 서점에, 서가에 꽂혀 있고 독자들에게 읽히고 있다면 그 작가는 죽은 것이 아니라 ‘살아있는’ 것 이란 의미이다 우리의 존재가 싸늘한 시체로 변한 후에도 영향력을 미치려면 과연 어떤 삶을 살아야하는가?


6
Stat rosa pristine nomine, nomina nuda tenemus.
지난 날의 장미는 이제 그 이름 뿐, 우리에게 남은 것은 그 덧 없는 이름뿐.(176p)


역시 흑해를 건너는 수많은 여행에서 온 이윤기의 ‘빙산의 일각’이 보여주는 풍광이 글로 스치고 가는 느낌이 멋쩍다 ‘우리에게 남은 것은 그 덧없는 이름뿐’일지라도 나의 삶은 그래도....감사한 것이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3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hnine 2019-10-18 07: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잘 읽었습니다.
이윤기 혹은 그의 작품이 카알벨루치님으로 하여금 이 페이퍼를 쓰시게 하였을까 잠시 궁금했습니다.
오늘도 좋은 하루 되세요.

카알벨루치 2019-10-18 08:45   좋아요 0 | URL
그리스로마신화를 2권읽다가 중도하차한 기억이 있네요 도서관에서 이윤기의 에세이라? 그래서 집어들었는데 의외로 생각할 꺼리가 많더군요 필사노트를 뒤지다가 기억을 더듬어 그냥 마음 가는대로 적었을 뿐입니다 원래 제가 무계획적인 것을 좋아라 해서요 댓글 감사합니다 님도 즐건 하루 되시길 바랍니다 ^^

oren 2019-10-23 14: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윤기 님이 했다는 저 말, ˝더 우겨넣는 수고가 망설여진다˝는 얘기를 접하니 문득 몽테뉴가 했던 말이 떠오릅니다. 그런데, 이윤기 님이나 움베르토 에코나 몽테뉴나 그 엄청난 ‘읽기와 쓰기‘를 했던 사람들이 하는 말은 평범한 일반 독자들에게는 너무나 동떨어진 얘기 같은 느낌도 많이 들긴 합니다. 흥미로운 글 잘 읽었습니다.^^

* * *

멈출 줄 모른다

사람은 어떤 일에서도 자기에게 필요한 정도에서 멈출 줄 모른다. 탐락이건 재산이건 권력이건, 그는 자기가 품어 안을 수 있는 이상의 것을 차지하려고 한다. 그의 탐욕은 절제가 불가능하다. 알고자 하는 욕심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그는 자기가 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이, 자기가 해야 할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일을 스스로를 위해 끌어 내며, 지식의 유용성을 그 재료가 있는 한 확대시킨다. ˝우리는 다른 모든 일에서와 마찬가지로 학문의 연구에도 무절제 때문에 고생한다.˝(세네카)

아그리콜라의 모친이 그 아들의 맹렬한 학문 연구 의욕을 억제하였다고 타키투스가 칭찬한 것은 옳은 일이다. 확고한 눈으로 보면, 학문은 다른 재물과 같이 인간이 타고난 고유의 약점과 허영이 많이 섞여 있는 값비싼 것이다.

카알벨루치 2019-10-23 13:29   좋아요 1 | URL
오렌님은 댓글로 너무 현란하게 달아주셔서 대댓글을 잘 달아야겠다는 부담감이 팍팍 느껴집니다 ㅎ앎에 대한 욕구, 지식욕도 탐욕적인 성향이 존재하는군요 참 허영이라는, 허세란 것은 경계가 없는 듯 하네요 가을날 즐거운 하루 보내십시오^^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1 알베르 카뮈는 윌리엄 포크너는 미국이 낳은 가장 위대한 작가이다라고 했고, 가브리엘 마르케스는 전 시대를 통틀어 가장 위대한 작가 중의 한 사람이다라고 포크너를 칭찬했다. 윌리엄 포크너는 노벨문학상 수상자이기도 하다. 노벨문학시상 연설에서 마크 트웨인은 문학의 지도에 미시시피 강을 그려놓았다면, 50년 후 윌리엄 포크너는 미시시피 주를 21세기 세계문학의 랜드마크로 창조해냈다고 격찬하기도 했다. 포크너는 아무튼 범접하기 힘든 경지의 작기임에는 틀림없다.

 

 

 

 

2 나의 사견을 밝히자면, 윌리엄 포크너는 미국인이라는 것이다. 미국인이란 말의 의미에는 미국이란 나라는 청교도적인 세계관이 기저에 깔려 있다는 말이다. 헤밍웨이가 태양은 다시 뜬다의 도입부에서 구약성경의 전도서의 구절을 인용한 것 또한 헤밍웨이가 미국인, 미국작가이기 때문이다. 한국 작가가 만약 기독교적인 철학적 바탕을 깔고 소설을 썼다면, 독자들이 접근하기가 훨씬 어려울 것이다. 왜냐하면 한국은 유교적인 세계관이 본능적으로 깔려 있기 때문이다. 포크너의 은 이런 기독교적인 창조의 가치관이 배여 있다고 볼 수 있다.

 

 

 

 

3 구약성경 창세기 1:27-28에 보면 이런 구절이 있다.

 

  ‘27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28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개역개정)

 

여호와 하나님은 인간, 최초의 인류 아담에게 땅을 정복하고 관리하라고 하셨다. 인간의 자연만물의 관리자, 정복자인 셈이다. 그런데, 여기 정복하라는 말엔 오해의 여지가 존재한다. 모든 자연 삼라만상 위에 군림하고 다스리는 말 그대로 정복자가 인간이란 느낌과 뉘앙스가 풍긴다. 하지만, 창세기의 이 구절에는 인간의 여호와 하나님께 받은 2가지의 책임이 깃들어 있다.

 

 

첫째, 개발과 계발의 책임이다. 자연 만물을 발전시키고, 문화를 창조하고, upgrade시키라는 말이다. 영어의 cultivate(경작하다, 농사짓다)란 동사에서 culture(문화)가 나왔다. 땅을 경작하는 농경생활의 최초의 인간, 아담과 이브에게서 문명이, 문화가 시작된다.

 

둘째, 보존의 책임이다. ‘정복하라는 의미에는 파괴시키고, 짓누르고, 억압하고, 무조건적인 군림의 의미가 다분하다. 하지만 인류가 으로부터 부여받은 정복은 보존의 책임이 존재한다. 이 말은 발전시키고, 개발시킨다는 명목하에 자연의 질서, 생태계의 뿌리까지 파괴해가는 인간의 개발은 조물주의 뜻과는 배치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런 측면에서 인간은 자연만물의 정복자라는 의미는 관리자란 의미가 더 가미되어져야 한다.

 

 

 

 

4 포크너는 에서 이런 기독교적인 철학 위에 인간의 책임을 지적한다.

 

성경에 보면 하느님께서 어떻게 땅을 창조하셨는지 쓰여 있습니다....인간과 그 자손들에게 땅을 이리저리 조각내 대대손손 영원히 침범할 수 없는 명의를 붙이라 하신 것이 아니라, 형제애를 바탕으로 익명하에 공동으로 땅을 보전하고 사용하라 하셨어요. 이에 대해 하느님께서 요구하신 유일한 사용료는 연민과 겸허, 관용과 인내, 그리고 땀 흘려 식량을 얻으려는 노력 뿐이었습니다.”(103p)

 

 

하지만 인간은 자연이 주는 모든 혜택, 땅이 주는 모든 유익에 감사하기 보다는 오히려 자연과 땅, 환경을 파괴하고 소유하고자 하는 불청객으로 전락하고 만다. 포크너는 여기 작품에서 숲 속의 수호신, 숲의 정령과도 같은 곰, 올드벤을 등장시킨다. 숲 속의 터줏대감처럼 든든히 지키고 있던 올드벤(), 종종 마을의 여러 이웃들의 가축과 재산에 해를 끼치는 곰이었다. 곰 사냥의 목적은 결국 성취된다. 십수년 동안 온 몸에 수십 발의 총알 자욱이 박혀있던 올드벤은 그렇게 죽는다. 포크너는 이 작품의 1, 2, 3, 5장에서 사냥이야기를 주로 다룬다. 인간은 자연을 사냥하고, 사냥하고, 사냥한다. 개발하고, 개발시키고, 발전에 발전을 거듭한다. 문득 100년 전의 일본의 인기 작가 나쓰메 소세키의 행인(行人)에서 피력한 대목이 생각난다.

 

자네가 말하는 불안은 인간 전체의 불안이지. 유독 자네 혼자만 괴로워하는게 아니라고 깨달으면 그만 아닌가? 결국 그렇게 유전해나가는게 우리들 운명이니까.”

 

인간의 불안은 과학의 발전에서 비롯되네. 앞서가기만 하고 멈출 줄 모르는 과학이 일찍이 우리에게 멈추도록 허락한 적이 없네. 도보에서, 인력거로, 인력거에서 마차로, 마차에서 기차로, 기차에서 자동차, 그 다음엔 비행선, 그 다음엔 비행기, 아무리 가봐도 쉬게 내버려두지 않아. 어디까지 끌려갈지 알 수 없는 일이지. 참으로 두렵다네.”(327p)

 

소세키는 100여전에 이미 인간 본유의 불안을 감지한 것이다. 계속되는 문화의 upgrade로 인해 인간은 덜 불안해야 하는데, 더 불안해 한다, 더 고독해진다.

     

 

 

5 마크 맨슨의 최신작 희망버리기 기술에서 이것을 진보의 역설이라 했다.

 

사람들은 사는 게 나아지면 나아질수록 더욱 불안해하고 더욱 자포자기한다.’(17p)

 

마크 맨슨은 설문조사 이야기를 한다. ‘1980년대 실시한 설문조사에 지난 6개월 동안 자신의 개인사를 몇 명이랑 상의했느냐고 했을 때, 가장 많이 나온 대답은 3명이었다. 2006년 다시 같은 설문조사를 했다. 가장 많은 대답은 ‘0’이었다’(18p)고 한다.

 

공짜 와이파이와 침대의 안락함에 젖은 오늘날의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만큼 엄청나게 엉망진창이 되고 있다는 말이다.’(21p)

    

다시 포크너의 책으로 넘어오자.

곰에게 soul이 있는가? 곰은 자연의 소울soul로 상징된다. 인간은 자연을 박해하고, 사냥하고, 단맛만 빼 먹고 방치하다가 폐기처분해버린다. 그런 문명의 본질을 포크너는 이 작품을 통해 지적한다.

 

 

 

6 포크너는 이 작품에서 두 사람(유형)의 캐릭터를 대조시킨다.

샘 파더스(아이작 매캐슬린) VS 벤 호겐벡

 

인간 또한 자연의 일부이자, 우주의 일부라고 생각하는 혼혈인 샘 파더스는 곰의 죽음과 함께 자신도 유명을 달리한다. 반대로, 올드벤의 최후를 칼질로 목숨을 끊어간 분 호겐벡에게는 곰은, 자연은 단지 정복의 대상으로만 영점조준된다. 아이작의 할아버지, 그리고 세대의 세대들 또한 그런 라이프스타일에 익숙하다. 마지막 장면에서 분 호겐백은 다람쥐들에게 총질을 하면서 소리친다.

 

여기서 꺼져! 만지지 마! 아무것도 만지지 마! 다 내거야!‘(205p)

 

분의 모습은 파괴적인 정복자, 욕망가의 표상이 된 인간의 초상화이다. 포크너는 이런 분의 모습을 통해 개발은 실컷 하지만, 정작 보존의 책임을 망각하고, 유기하는 인류를 향해 경종을 울린 셈이다. 작품 중에 아이작 매캐슬린은 할아버지의 탐욕에 의해 일군 유산을 상속받길 거절한다. 4장은 21살이 된 아이작과 친척형 매캐슬린 에드먼즈 사이의 대화가 심오하게 드러난다. 그런데, 4장에 대해 말이 많다. 사냥이야기의 이란 작품에 꼭 이야기가 필요하냐며 부류와 그 반대의 부류이다. 내가 생각건대 이 대목이 있어 작품이 더 궁극적인 가치에 도달하는 느낌이다.

 

 

 

 

7 앞에서 헤밍웨이 이야길 했는데, 그 작품 태양은 다시 뜬다의 첫 장에 실린 구약성경의 전도서 1:3-6이 박혀 있다.

 

3 해 아래에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사람에게 무엇이 유익한가

4 한 세대는 가고 한 세대는 오되 땅은 영원히 있도다

5 해는 뜨고 해는 지되 그 떴던 곳으로 빨리 돌아가고

6 바람은 남으로 불다가 북으로 돌아가며 이리 돌며 저리 돌아 바람은 그 불던 곳으로 돌아가고

여기 보면, 인간의 세대는 유한하지만, 땅은 영원하다고 이야기한다. 솔직히 그렇지 않은가! 땅은 죽지 않는다. 사양화 되거나 황폐해지긴 하겠지만. 허나 사람은 죽는다. 세대의 반복만 있을 뿐이다. 그런데, 인간은 그 땅을 소유하고자 한다. 과연 인간이 땅을 소유할 수 있을까? 유한한 존재가 무한한 땅을 소유할 수 있느냐 말이다.

 

 요즘 나는 그런 생각을 해본다. 우리가 이 땅에 살아가면서 우리가 과연 소유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 그것은 어떤 소유물의 실체나 물건이나 유형적인 것이 아니라 시간공간이란 생각이 든다. 우리가 얼마만큼의 돈을 소유할 수 있겠는가? 얼마나 큰 저택이나 집을 소유할 수 있는가? 그냥 백년 안팎의 시간과 내 몸을 뉘일 수 있는 공간만 소유하고 떠나가는 것이 아닐까? 아니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흘려보내는것이 아닐까? 그런 생각...흘러가는 것Flow...flow...flow   

    

 

8 미투운동이 대두되면서 권력의 갑질에 대해 여기저기서 이야기가 많다. 갑질? 정말 무서운 것이다. 문득 나는 그런 생각을 해본다. 어쩌면 인간은 자연을 향해 권력의 자리에 군림하여 자연이 가만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침묵하고 있다고 갑질(?)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개발(계발)보존의 쌍두마차가 제대로 달려야만 인간과 자연이란 이 우주공동체는 더 조화로울 수 있지 않을까? 공존공생(共存共生), 동거동락(同居同樂)의 처지에서 인류는 오히려 자연에게 갑질하는 권력의 횡포를 보여주는 것은 아닌가!

 

윌리엄 포크너는 이 작품을 통해 곰에게 갑질하는, 자연에게 갑질하는 인류의 초상화를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9 윌리엄 포크너의 소설이 읽히기가 힘든 이유는 아마도 포크너의 글이 스토리의 줄기만을 가지고 치고 나가는 스타일의 작품이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소설 속의 기억, 회상, 과거, 현재...등등. 이 모든 것이 복합적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번역자는 포크너의 영어 작품을 번역할 때 상당한 고충이 있었음을 피력한다. 결국 번역의 기준을 의미전달을 중시한 번역’(213p)으로 선택한 것이라고 밝혔다. 이 말은 포크너의 글이 주는 매력이 번역과정에 다소 거세되었을 가능성이 크다는 말이다. 그만큼 포크너의 언어가 대단하는 말이다. 이래서 text는 원전으로 읽어야 한다는 말인데. 영어실력도 실력이지만, 게으름 탓에 작품이라도 읽은 것이 어디냐며 스스로 위로해 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1

무라카미 하루키는 여행지를 관광하면서 일체의 메모나 사진을 찍지 않는다고 한다. 우리 같으면 인증샷을 얼마나 남기려고 애쓰는가? 우리는 마치 인증샷을 남기기 위해 태어난 사람처럼 찍고, 찍고, 찍고...하지만, 하루키는 다르다. 하루키는 집으로 돌아와 여행지에서 받은 느낌, 잔상들을 떠올리면서 후기식으로 글을 적는다고 한다. 오로지 자기의 감정, 그 때의 느낌을 오롯이 기억에 의존하여 여행일지, 여행일기를 쓰는 셈이다.

 

내가 이 책, 역사의 쓸모를 다 읽고 데스크에 앉아 내 마음에 가라앉은 것은 무엇일까? 하루키식으로 한번 돌아볼까? 기억의 잔상을 추적해 본다.

 

 

 

 

2

먼저, 최태성이란 저자의 매력을 들고 싶다. 무슨 임용시험, 자격시험, 공무원 시험은 이제 나하고는 거리가 있게 되었다. 그만큼 나이를 먹은 셈이다. 최태성이란 이름만 들어본 나는, 이 책의 뚜껑을 열면서 아하!’라는 감탄사를 연발케했다. 다소 대중적인 설민석보다 더 감동적인 역사 쌤이 있구나 싶었다. 설민석의 삼국지 1,2를 읽으면서 재미있고 흥미가 있었다. 중간에 삽화도 있고, 부연 설명도 괜찮았다. 이미 10권짜리 이문열의 삼국지를 재미있게 읽은 나로서도 <삼국지>는 여전히 흥미로운 소재이다. 나는 결혼 전에 이문열의 삼국지를 아내에게 선물하기도 했다. 물론, 아내는 아직 독서중이다. ㅎㅎ

 

 

   

 

3

설민석의 삼국지 1,2는 말 그대로, 삼국지 입문서로는 굿이다. 이현세의 <만화삼국지>도 너무 재미있게 보았는데, 설민석의 삼국지 1,2는 만화보다 쉽다고 하겠다. 쉽다는 말은 그만큼 압축되고 간단하고 수월하게 읽힌다는 말씀이다. 10권짜리 삼국지를 재독하려고 했을 때, 인상적인 대목이 어디 있던가 싶어 뒤적여 본다.

 

유비가 공부를 마치고 돌아온 길에 만난 한 허름한 노인이 이런 말을 날린다.

 

말이 많으면 마음이 빈다

 

, 어떻게 이런 심금 울리는 대사를 칠 수 있단 말인가? 또 하나 더 볼까?

 

 

유비가 또 다른 스승을 찾지 않고 집으로 가니 어머니가 왜 이리 일찍 왔느냐고 하자, 유비가 대꾸한 말이다.

 

글이 모자라서 이 나라가 이 지경이 되었는가?”

 

이 외에도 삼국지 군데군데 박혀 있는 주옥같은 명문장과 아포리즘은 가슴에 와 박힌다. 20대에 친구들과 함께 한 술자리에서 술잔이 넘치는 것을 보면서 술 잔이 넘친다는 것은 정이 넘친다는 뜻이라며 삼국지의 이야기를 언급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삼국지는 그만큼 수많은 보화들이 가득 찬 고전(古典)임에는 틀림없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설민석의 삼국지에서는 이런 맛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이다. 하지만, 아직도 기억에 남는 장면이 하나 있다.

 

# 

유비가 제갈공명을 찾아가는 대목이다. 제갈공명을 인재로 사용하려고 벼르고 벼르지만, 제갈공명이 만날 기회를 주질 않는다. 공명보다 스무 살이 어른인 유비의 공들이는 모습에 아우 관우와 장비가 불만을 토로한다. 또 다시 입이 튀어 나온 관우와 장비의 반응에도 아랑곳 없이 와룡산으로 향하는 유비였다. 고을에 도착한 유비는 말에서 내려 걸어가자고 한다.

 

여기서부터 걸어가자. 성의를 보여야지.”

아니 누가 본다고 벌써 그러시오? 여기서 그 집까지 가려면 거리가 얼만데?”

하늘이 보고 땅이 보질 않느냐? 진정한 성의란 남에게 보이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보이는 거다.”(설민석의 삼국지 1, 311p)

 

하늘이 알고, 땅이 알고, 내가 안다’. 정성을 다한다는 것은 다른 이가 알아주는 것보다 먼저 자기 자신에게 물어보는, 자기 자신이 알아주는게, 자기 자신에게 보이는 게 가장 최선이 되어야 한다는 대목이 나의 정곡을 찔렀다. 이 감동은 도대체 어쩔거냐?

 

    

 

4

이야기가 옆으로 샜다. 대중적인 설민석과는 또 다른 최태성의 깊이와 식견이 여기서 드러난다. 교사로 재직중에 웬 학원에서 입이 쩍 벌어질 정도의 연봉으로 스카웃 제의가 들어왔다. 저자는 고민했다고 한다. 당연히 고민해야지. 안 그런가? 먹고 살아야 하는데. 그런데, 그때 그에게 선택의 길을 제시한 역사의 인물은 독립운동가 이회영 선생이었다고 한다.

 

서른 살 청년 이회영이 물었다.

한 번의 젊은 나이를 어찌할 것인가

눈을 감는 순간 예순여섯 노인 이회영이 답했다.

예순여섯의 '일생'으로 답했다.’(40p)

 

저자는 역사를 통해 자신의 현실을 진단하고 선택을 내렸다. 그는 그 화려한 제의를 거절했다. 보이는 것 보다 보이지 않는, 자신만의 가치에 주사위를 던진 셈이다. 이 이야기가 심쿵했다. ‘최태성이란 저자가 솔직히 그냥 보이지 않았다.

 

 

 

5

둘째의 매력은, E.H.카는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란 이야기를 했다. 저자는 강의만 팔아먹는 장사꾼이 아니라, ‘역사적 사고를 하는 주체라는 점. 바로 역사적 사고란 단어가 기억에 남는다. 미국의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은 인기가 좋아서 연임 이후에 3선까지도 바라볼 수 있었다. 하지만 주위의 수많은 이들의 권유에도 불구하고 그는 사양한다. 거절한다.

 

정계를 떠나고자 하는 내 선택이 주의와 분별의 잣대를 비추어 바람직할 뿐 아니라 애국심의 잣대에 비추어서도 그릇되지 아니한 선택이라 믿는다.”(58p)

 

초대 대통령으로서 좋은 선례를 남긴 셈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초대 대통령 이승만은? 박정희 대통령은? , 대통령을 다 닮아가는 한국인인가? 어느 누구도 자신의 기득권과 안전장치를 내려놓은 이들이 드물다. 우리나라 사람이 미국 사람보다 욕심이 더 많은가? 아니다. 인간은 원래 욕심의 동물이고, 욕망의 존재이기 때문에 그렇다.

 

 

하지만, 역사 속의 소수의 인물들은 우리를 더 부끄럽게 만든다. 앞에서 이야기했던 보이지 않는, 드러나지 않았던 독립운동가 이회영은 나라가 기울어가는 망국의 조짐을 보고서 자신의 재산을 다 팔아 압록강을 건넌다. 이회영 가족이 조선 땅을 떠난 이유는 가족이 잘 먹고 잘 살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대의가 있는 곳에서 죽을지언정 구차히 생명을 도모하지 않겠다’(219p)는 가족회의의 결정에 따른 것이었다. 국외에서 독립운동기지를 건설하여 독립운동을 배후에서 도왔다. 지금 시세로 따지면, 이회영의 재산은 헐값으로 매매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무려 600억 원이 넘었다. 만주 땅에서 땅을 사고, 집을 짓고, 학교를 짓고, 인재를 양성하고 독립투사들을 지원했다. 또한 형제들이 직접 독립운동에 참여하기도 했다. 그런데 그 엄청난 액수의 자산이 3년 만에 바닥이 나버린다. 가족들 모두가 강냉이죽도 마음껏 먹지 못했다고 한다. 이회영의 가슴에는 오로지 식민지 해방의 꿈이 있었던 것이다.

    

 

6

역사적 사고

쓸모 없는 것, 쓸모 없어 보이는 것의 쓸모라...쓸모 없어 보이는 것들을 모아 책으로 만든 것이 일연의 <삼국유사>이다. 김부식의 <삼국사기>와는 너무나 다른 색깔의 야사집과 같은 <삼국유사>가 과연 정말 쓸모없는, 쓰잘데기 없는 기록인가? 그렇지 않다.

 

역사는 기록으로 승부한다. 저자는 쓰잘데기 없는 시시콜콜한 <조선왕조실록>이 남아있기에 지금도 TV와 드라마, 영화에서 끊임없이 회자되고 있지 않은가! 과연 인간의 삶, 인간의 역사는 버릴 것이 있을까? 그런 생각이 갑자기 들었다. 나라는 보잘 것 없는 인생이 기록화된다면, 과연 그것도 의미가 있고, 가치가 있을까? 그런 생각까지 뻗어간다. 내 자식들은 아비의 기록을 대하는 것에 의미가 없지 않겠지만, 후대의 사람들이 쓰잘데기 없는 1인의 기록이 역사라고 회자된다면? 역사는 기록이 있기에, 과거와 현재가 소통이 이뤄지는 것이 아닐까? 세종대왕의 한글 창제 이후 백성들이 글을 깨우치고, 남편을 먼저 보낸 한 여인의 피맺힌 절규의 글이 19984월 안동에서 발견된다. 무려 400년 전인 1586년에 쓰인 편지였다.

 

당신 늘 나에게 말하기를 둘이 머리 희어지도록

살다가 함께 죽자고 하셨지요.

그런데 어찌 나를 두고 당신 먼저 가십니까?

나와 어린아이는 누구의 말을 듣고

어떻게 살라고 당신 먼저 가십니까?

(중략)

당신을 향한 마음, 이승에서 잊을 수 없고

서러운 뜻도 끝이 없습니다.

내 마음 어디에 두고 자식 데리고 당신을 그리워하며

살 수 있을까 생각합니다.’(115p)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길 바라>라는 레이먼드 카버의 단편소설 제목처럼, ‘별 것 아닌 것이, 별 것 아닌 것이 아니더라는이야기이다.

 

 

 

7

나의 쓸모, 인생의 쓸모, 역사의 쓸모...

쓸데없어 보이는 내 인생의 쓸모를 역사적 선분 위에서 한번 생각해 준 작가에게 감사하고 싶다.

 

 


댓글(13) 먼댓글(0) 좋아요(5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레삭매냐 2019-09-22 19: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설 씨의 책들은 너무 가벼워서 패스
하렵니다.

정사 삼국지가 아니라 소설 연의라는
걸 밝혀 주어야 하는데 언제부터인가
소설이 역사를 대체하게 되었네요.

유비를 너무 빠ㄹ... 아니 추켜 세워서
2류 군벌을 한황실 부흥에 나선 춘추
대의를 받드는 영웅으로 격상시킨 게
바로 소설가라는 점이 역사의 아이러니
라고나 할가요.

그런 점에서 설 씨의 책과 일맥상통하
니 그렇게 비판적일 필요가 없겠구나
싶기도 하구요.

카알벨루치 2019-09-22 21:39   좋아요 1 | URL
설민석은 역사를 대중화시킨 한 사람 정도로 알아두면 되겠습니다 픽션인지 팩션인지 팩트인지는 언제나 독자의 몫인데 독자가 그걸 분별한 능력이 있어야한다는 전제가 깔리는데, 그게 쉽지 않은 것이 딜레마이기도 하고 원전을 대하지 못한 초보독서가에겐 흥미유발을 시킨다는 부분은 장점이라고 생각합니다...

syo 2019-09-22 20: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렇게 몇 권을 후루룩 엮어 내는 글은 정말 어떻게 하는 건지를 모르겠단 말이지요..... 호랑이님이나 사이러스님이나 카알님이나 참 부럽다.

카알벨루치 2019-09-22 21:40   좋아요 0 | URL
쓰다보니 그렇게 되는거지요 다 자기 스탈이 있으니 ^^어여 몸부터 회복시키세요 ㅎㅎㅎㅎ

페크(pek0501) 2019-09-23 13: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역사의 쓸모>를 사 두고서 못 읽었습니다. 오늘부터 읽기 시작하렵니다. ㅋ
저는 정비석의 <삼국지>를 읽었습니다. 다른 건 10권인데 이건 총 6권짜리라서 선택했죠.
너무 오래전에 읽은 거라 주옥 같은 아포리즘이 있는 줄 몰랐어요. 그땐 줄거리에 치중해서 읽었던 건지...

카버의 <대성당>으로 ‘별 것 아닌 것 같지만~‘을 읽었는데 표제작인 ‘대성당‘만큼 좋았습니다.
하루키, 역사란 무엇인가 등 모두 제가 알고 있는 책 이야기라서 댓글을 안 남길 수가 없네요.
흥미롭게 잘 읽었습니다.

카알벨루치 2019-09-23 23:15   좋아요 1 | URL
<삼국지>를 재독할려고 했을때 좋은 내용을 타이핑하면서 읽다가 중도에 하차했는데 ....그렇게 읽으니 음미할 꺼리가 더 있는 듯 합니다 세상에나 세상에나 세상엔 좋은 책이 왜 그리 많대요 ㅎㅎ

coolcat329 2019-09-23 13: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꼭 읽어봐야 겠습니다.글 잘 읽었습니다. 설민석의 책은 초딩 아이를 위해 샀는데 푹 빠져서 너무 재밌게 읽더군요 ㅎㅎ

카알벨루치 2019-09-23 23:16   좋아요 1 | URL
그냥 제겐 <역사의 쓸모>란 책이 너무 좋았네요 빌려 읽고 선물도 하고 했는데 다시 한권 사서 집에 구비해놓을 작정입니다 ^^

coolcat329 2019-09-24 11: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사야겠어요:)

이혜자 2019-09-29 13: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댓글 잘 읽고 갑니다~
깊이있는 독서들을 하시는 님들의 댓글에 리스펙 합니다

카알벨루치 2019-09-29 13:35   좋아요 0 | URL
방문 감사, 댓글도 감사드립니다 ^^

하하호호 2019-10-02 15: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님글 읽고서 <역사의 쓸모>를 샀습니다. 제 인생에서도 쓸모를 찾고 싶어서요. 감사합니다.

카알벨루치 2019-10-04 00:32   좋아요 0 | URL
후회하시지 않을겁니다 최태성작가한테 제한테 오히려 감사해야하겠네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