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발 조용히 좀 해요
레이먼드 카버 지음, 손성경 옮김 / 문학동네 / 200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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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레이먼드 카버의 <제발 좀 조용히 해요>22개의 이야기가 담긴 단편소설집이다. 카버는 단편소설의 대명사인 체호프의 이름이 늘 그에게 따라 다닌다. 존 치버(‘교외의 체호프’)와 함께 미국의 체호프라고 불릴 만 하다. 그의 생애를 보면 1973(35)에는 존 치버와 함께 아래층, 위층에 살았다는 것은 참으로 행운이라 할 수 있다. 아래층 치버, 위층 카버! 어찌 이런 일이!

 

 

 

2

작가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기에 체호프를 비롯하여 스승이었던 존 가드너, 셔우드 앤더슨, 작가이자 편집자인 고든 리시, 그리고 존 치버까지 무수한 문인들이 그를 단편소설의 거목으로 만들었던 것이 아닐까 싶다. 레이먼드 카버를 흔히 헤밍웨이 이후 가장 영향력있는 소설가라고 이야기한 대목에서 그에게서 어네스트 헤밍웨이의 영향력을 빼놓을 수 없다. 아마도 그것은 헤밍웨이로 대별되는 빙산이론”(생략이론)이 카버에게선 미니멀리즘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그의 멘토이기도 했던 존 가드너는 25개의 단어로 말할 것을 15개의 단어로, 15개의 단어를 5개의 단어로 압축할 수 있다면 그것이 더 낫다는 식의 조언은 카버에게 많은 영향력을 미친 셈이다. 그러기에 카버의 단편들은 압축적이며, 함축적이고 상징적이기도 하면서도 심플하다. 이것이 카버의 미니멀리즘이다. 하지만 카버의 이야기의 소재는 광활한 우주 저편의 현실과는 동떨어진 환상적인 소재가 아니라 가장 단순하고 가장 평범하기 때문에 가장 끔찍한”(426p)은 가져오는데 그건 바로 우리의 일상에서이다. 일상에서 삶에서 가져오는 흔하디 흔한 소재와 그 안에 숨겨둔 메시지의 검이 독자를 찌른다. 그것이 카버의 단편의 백미라고 할 수 있다.

 

 

 

3

카버는 19세에 멋도 모르는 나이에 메리언과 결혼을 해서 두 아이의 아빠가 된 책임감에 생계에 늘 시달리면서 생활고의 압박감 가운데서 글을 썼다. 그가 거했던 가정과 아내, 그리고 아이들이 그의 글의 소재이다. 그렇다고 그가 전적으로 자전적인 소설가란 말은 아니다. “가족이란 보따리에서 이야기를 풀어낸다는 말이다.

 

 

 

 

4

, 이제 카버의 단편이야기들로 구체적으로 들어가 보자.

22개의 단편에 대한 이야기를 다 할 수는 없을 것이고 내가 느낀 것만 적고 싶다. 그것은 바로 마음의 잡초에 대한 화두이다. 우리는 가정이란 울타리 안에서 부부와 자녀들과 관계를 맺고 이웃과 관계를 맺으면서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경제적으로 관계를 맺고 살아간다. 잡초란 것은 가만히 놔두어도 잘 자란다. 장마 때는 잡초는 아무런 터치를 하지 않아도 쑥쑥 자라는 것이 잡초의 생리이다. 우리의 사람의 마음 속에도 이런 잡초가 자란다. 그 잡초를 미리 잘라내지 않으면 혹독한 고통을 맛보게 마련이다. 레이먼드 카버의 날카로운 시각은 이런 가정 안에 나타난 마음의 잡초를 그려내고 있다. 하지만, 마음의 잡초는 보이지 않는다. 마음에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소하고도 대수롭지 않게 여겨질 정도의 것들이다. 하지만, 그 잡초 자신은 땅에 기생하다가 나중에는 기세를 등에 업고 땅을 장악하는 힘이 있다. 가족, 가정의 터전 위에도 마음의 잡초는 기생하는 듯, 위태위태하게 생명력을 유지하지만 후에는 가정을 장악하여 압도하고 초토화시키는 것이다.

 

 

 

 

 

5

단편 <이웃 사람들>에서는 이웃 사람이 맡겨두고 간 열쇠로 이웃집을 허락도 없이 문을 따고 들어갔다가 열쇠를 두고 문을 잠가 버린 가족이야기가 나온다. 어처구니 없는 상황이다. 이웃집에 대한 열렬한 호기심이 그들의 마음의 잡초였다. <제리와 몰리와 샘>에서 아빠이자 남편인 앨은 애완견 수지를 거추장스런 존재라고 여기고 가족들 몰래 버리기 위해 집을 나선다. 그는 수지를 속시원하게 버리고 집으로 돌와왔을 때 집안은 완전 난리법석이었다. 수지가 오줌을 싸고 집안 이곳 저곳에 흉터를 남긴 것 뿐만 아니라 자신에겐 성가신 존재였지만, 아내와 자식들에겐 사랑스런 소중한 존재였던 것이다. 단순히 개를 버린 행위만이 문제가 아니라 앨에겐 가정에서 자신이 보지 못하는 자기 안의 마음의 잡초를 보지 못했던 것이다. <제발 조용히 좀 해요>에서는 남편 랠프는 아내 매리언의 몇 년전의 부정한 행위에 대해 추궁하기 시작한다. 행복하고 평범해보였던 가정에 균열이 서서히 보이기 시작한다. 랠프는 계속 물어대자 아내는 몇 년 전 이웃집 앤더슨 부부와 지인들과의 술자리에서 우연히 술에 취해 앤더슨과 함께 하는 시간을 가졌고 거기에서 그 사람이 우리 한번 할까요. 그러더라구요.”(393p) 이 사태로 인해 남편 랠프는 밖에서 표류하며 방황하며 밤을 새고 들어와 욕실로 들어간다. 아내가 머라고 머라고 한다. 이 가정에 심겨진 마음의 잡초로 인해 랠프는 매리언에게 제발 조용히 좀 해요.”라고 말한다.

 

 

 

 

6

우리는 매일 매일 마음의 잡초를 쳐내야 새로워질 수 있다. 잡초는 땅에 기생해서 나중에는 땅을 잠식해 들어간다.

 

구약성경에 이런 구절이 있다. 아가서 2장 15절에 있는 구절이다.

"우리를 위하여 여우 곧 포도원을 허는 작은 여우를 잡으라 우리의 포도원에 꽃이 피었음이라"

 

 

 커버는 이 마음의 잡초를 보여준다. 꽃이 핀 포도원을 허는 작은 여우를 세밀하게 그려준다.하지만 대안은 없다. 보여줄 뿐이다. 문학은 대안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다. 문학은 보여줄 뿐이다. 압축하고, 축소하고, 작게하고, 상징화해서 이야기를 소설이란 식탁에 내놓는다. 그래서 레이먼드 카버의 이 작품은 별 다섯 개가 아깝지 않은 작품이다.

 

 

 

 

7

근데 카버도 참 힘들게 살았구나 싶다. 파산도 두 번, 결혼도 두 번, 별거생활, 알코올 중독, 중독치료차 병원에 입원에, 39세에 금주를 결심하고 살고, 전처의 친척들과의 복잡한 관계들로부터 피하기도 하고, 폐출혈, 폐절제수술 그리고 암, 방사선치료, 19888, 50세에 죽었다니 말이다. 그것도 잠결에 죽었다는데 두 번째 부인인 테스의 마음이 참 아팠겠다 싶다. 레이몬드 카버도 평생 가난과 혈투를 벌이며 글을 썼다는 것이 느껴지는데, 그의 마음의 독소, 그의 마음의 잡초를 제거하기 위해, 아니면 잊기 위해 그는 알코올중독자가 되어 버린 셈이다. 그것이 그의 인생을 단명하게 만든 셈이기도 하다. 그는 사망하기 한 달 전에 인터뷰에서 내가 작가 말고 다른 것으로 불리는 것은 상상할 수 없다. 그게 아니라면 시인 정도”(438p)라는 묘비명에 가까운 말을 남겼다고 한다. 그에게 시간이 더 있었더라면 더 많은 단편들과 소설들, 그리고 시를 독자인 우리들은 음미해 볼 수 있었을텐데 안타까운 마음이 인다. “아메리칸 체호프레이먼드 카버는 소설을 통해 우리에게 수 많은 마음의 잡초를 보여주었고, 자신 또한 인간적인, 그 누구보다도 인간적인 존재였음을 여실히 보여주고 떠났던 것이다.

 

    

 

 

8

오늘따라 그의 생애가 더욱 내게 위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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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0-01-11 19: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 마음의 잡초! 카버도 카버지만 카알님의 리뷰가 압권이네요.
게다가 성경 말씀 인용도 완벽하고.
이달의 리뷰로 점쳐 봅니다.^^

카알벨루치 2020-01-11 19:44   좋아요 1 | URL
예언자 나셨네요 ㅎㅎ잘지내시죠? 요즘 삶이 힘드네요 문학이 줄 수 있는 위로가 이런 것이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감사합니다 스텔라님 새해복많이 받으소서! 새해 인사도 이걸로 퉁치는걸로 ㅎㅎ

페크(pek0501) 2020-01-12 13: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의 죽음이 안타깝네요. 좋은 글을 오래 쓰기 위해선 건강 관리에도 힘써야겠습니다. 알코올 중독에 빠지는 일도 없어야 하겠고요.

카알벨루치 님, 새해에 좋은 일 가득하시길...
더불어 건필을 기원합니다.

카알벨루치 2020-01-14 21:15   좋아요 0 | URL
제가 페크님께 건필을 부탁받는게 아니라 제가 페크님께 건필을 부탁해야하겠습니다 글보다 삶이 더 빛나시길 기도합니다~

희선 2020-01-13 00: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얼마전에 레이먼드 카버가 살았던 곳을 찾아가는 글을 봤어요 거기에서도 여러 소설을 이야기하기는 했는데... 잘 해 보고 싶지만 잘 안 되는 마음, 조금 알 것도 같습니다 그래도 카버는 소설이나 시를 남겼네요 더 쓰지 못한 건 아쉽지만... 마음이 잡초, 어쩐지 저한테도 그런 게 있는 듯합니다 잘라내고 싶지만 잘라내지 못하는...


희선

카알벨루치 2020-01-14 21:14   좋아요 1 | URL
방문 감사합니다 잘 안되는 것, 삶의 문제는 바로 저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
 
빨강 머리 여인
오르한 파묵 지음, 이난아 옮김 / 민음사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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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읽은 지는 꽤 됐는데, 이제야 리뷰를 적는다고 하니 기억이 되살아날지 의문이다.

 

오르한 파묵은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동침하고, 스핑크스의 수수께기를 푼 서양의 오이디푸스 신화와 동양의 뤼스템(아버지)과 쉬흐랍(아들)의 페르시아 고전이야기를 작품의 현실에 녹아내어 스토리를 만들어냈다. 그는 문학성, 예술성, 그리고 대중성까지 고루 갖춘 스토리텔러로 다시 나타났던 것이다.

 

아버지 없는 아들에게 그러하듯 아무도 아들 없는 아버지를 따스하게 껴안지 않는다.’-페르도우시, 왕서

 

 

 

 

2

우물 파는 실력자 마흐무트 우스타, 그의 10대 조수 젬, 젬에겐 마르크스주의자였던 아버지는 어디로 사라졌는지 소식을 알 수 없었다. 젬은 왼괴렌에서 아버지를 대체할만한 부성애를 느낀 마흐무트 우스타를 만난다.

 

조수를 믿지 못하면 우물 파는 명수가 될 수 없단다. 명수는 지상에 있는 아이가 모든 것을 옳고, 반듯하게, 제시간에, 주의 깊게 한다는 것을 확신해야 일에 열중할 수 있지. 살아남으려면 우물 파는 사람은 아들을 믿는 것처럼 조수를 믿어야만 한다. 나의 스승이 누구였는지 알아?”

 

나의 스승은 나의 아버지였어. 너도 유능한 조수가 되고 싶으면 내 아들이 되어야 한다.”

 

마흐무트 우스타에 의하면 스승인 명수와 조수 사이에 갖는 관계의 비밀은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와 비슷하다는 것이다. 모든 스승은 아버지처럼 조수를 사랑하고, 보호하고, 가르칠 책임이 있다. 왜냐하면 그 일이 조수에게 유산으로 남기 때문이다.

(65p)

 

 

명수와 조수의 관계는 더 끈적끈적할 수밖에 없는 것은 명수의 생명이 조수에게 달려있기 때문이다. 우물 파는 일은 그만큼 위험한 일이기도 했다.

 

 

 

 

3

하지만...

왼괴렌에서 만난 마흐무트 우스타, 그리고 자신의 운명을 또 다르게 결정짓게 할 빨강머리 여인, 귈지한도 만나게 된다. 10대 소년의 가슴에 첫사랑의 불을 지핀, 빨강머리 여인.

 

1부의 이야기는 이랬다.

 

 

 

 

4

2부에서 젬은 자신 고향 땅을 떠나 왼괴렌에서 만난 우스타와 귈지한이 앞으로 어떤 인생으로 이어질지 작가는 드문드문 불안한 신호를 보내준다.

 

최선의 방법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행동하는 거야.”(176p)

 

마흐무트 우스타 덕분에 지질학을 공부한 젬은 연인 아이쉐를 만나 결혼을 하게 된다. 이십 년의 세월이 흘렀다.

 

 

 

 

5

페르시아의 고전에 등장하는 뤼스템이야기가 오이디푸스 이야기와 연결된다.

 

뤼스템은 이란에서 탁월한 영웅이자 용장이었고 전사였다. 모든 이들에게 인기와 사랑을 독차지한다. 어느 날 뤼스템은 사냥을 나갔다가 길을 잃어버린다. 며칠을 헤매다가 적국의 땅인 투란으로 들어가게 된다. 그의 유명세는 이미 그곳에서도 퍼져있었기에 그는 융숭한 대접을 받는다. 뤼스템이 식사를 마치고 방에 왔을 때 투란 왕의 딸인 타흐미네가 잘 생긴 뤼스템에게 사랑한다고 말하며, 이름난 영웅이자 영리한 뤼스템의 아들을 낳고 싶다고 애원한다. 뤼스템은 그 청을 거절하지 못하고 사랑을 나눈다. 아침에 뤼스템은 태어날 아이에게 자신이 주는 징표로 팔찌 하나를 놓고 자기 나라로 돌아갔다. 타흐미네는 아버지 없이 태어난 아이에게 쉬흐랍이란 이름을 지어 주었다. 시간이 흘러 어머니는 장성한 쉬흐랍에게 아들의 아버지가 뤼스템이라고 일러준다. 아들은 아버지를 찾아 이란으로 떠난다. 하지만 운명의 장난이란? 전설적인 전사 뤼스템과 아들 쉬흐랍은 전장에서 서로의 적으로 마주치게 된다. 물론 갑옷을 입었고, 부자는 마치 오이디푸스와 그 아버지처럼 서로를 알아보지 못했다. 셋째 날 결투에서 뤼스템이 아들을 땅에 눕힌다.

 

 

 

 

6

서양의 신화의 주인공, 오이디푸스가 아버지를 죽였다면, 동양의 고전의 주인공, 뤼스템은 아들을 죽인 이야기이다. 여기서 작가는 아주 특별한 해석을 한다.

 

오이디푸스의 죄악은 아버지를 죽인 것이 아니라 신이 그를 위해 정한 운명에서 도망치려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같은 식으로 해석하자면 뤼스템의 죄악 역시 아들을 죽인 것이 아니라 하룻밤의 정사로 아들이 생겼고, 이 아들에게 아버지 역할을 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오이디푸스는 죄책감에서 자신을 장님으로 만들어 벌을 주었을 수도 있다. 고대 그리스 관객들은 그가 신이 부여한 운명에 맞섰기 때문에 벌을 받았다고 생각하며 안도했다. 똑같은 논리로 생각하면 아들을 죽인 뤼스템도 벌을 받아야 했다. 하지만 동양 이야기의 결말에서 아버지는 벌을 받지 않고 우리 독자들의 마음을 아프게 할 뿐이다. 그 누구도 동양인 아버지를 벌하지 않을 것인가?’(213p)

 

작가는 끊임없이 아버지와 아들, 아들과 아버지의 이 이야기들을 늘어놓는다. 무언가 터질 듯 한데 터지지 않는 이야기꾸러미...

 

 

 

7

오이디푸스와 쉬흐랍을 서로 그렇게나 형제처럼 닮게 만든 것은 아버지의 부재와 아버지를 찾는 안타까움이다...어쩌면 내가 나의 아버지를 원한다는 것을 내 자신에게 숨기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이성의 한 구석에서 갈수록 작아지는 어떤 사람이 세상의 한 끝에서 다른 끝을 향해 우물을 파고 있었고, 때로 다른 옷을 입고 내 꿈속에 들어와 이야기를 해 주었다.’(221p)

 

젬과 아이쉐는 아이가 없었다. 그들은 쉬흐랍이란 이름으로 회사를 설립한다. 회사는 승승장구했다.

 

나는 아이쉐에게 말한다. ‘이 왼괴렌 마을에는 내가 어린 시절에 들었던 동화처럼 불운이 감도는 뭔가가 있는 것 같아....이곳에서는 일단 건축 일은 하지 말자고. 그곳에서 가장 좋은 경치는 분명 별들로 반짝이는 밤하늘일거야.’(239p)

 

 

집을 나가 사라진 아버지, 아버지로 대체하고 싶었던 우스타, 사랑하는 아내 아이쉐와 세운 쉐흐랍’, 그리고 계속 떠나지 않는 왼괴렌, 그리고 잊혀진 줄로만 알았던 빨강머리 여인, 궐지한...

 

우리 아이가 없고, 내가 사라지면 이 모든 것이 주인 없이 남겨지기 때문일까? 울적해질수록 아이쉐와의 우정에 의지했다. 그녀에 대한 나의 충실함이 강하고 영리한 영자와 가까이 있고 싶은 나의 필요에서 기인한다는 것을 아이쉐는 직감했다. 내가 그녀를 절대 배신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았다. 그녀에게 감추는 정신적으로 은밀한 삶, 바람, 비밀이 있을 거라고는 믿지 않았다. 쉬흐랍의 사무실에서 서로를 한 시간 이상 보지 못하면 휴대 전화로 전화를 걸어 어디 있어?”하고 물었다. 이 친밀함이 부여하는 자신감과 암암리에 느끼는 일종의 자만심은 2013년 초 쉬흐랍에 큰 피해를 안기는 실수의 원인이 되었다.’(265p)

 

 

 

8

빨강 머리 여인을 다시 만나고 싶은지, 아들과 친하게 지내고 싶은지, 자신이 그 아이와 친해지기를 원하는지 물었다. 우리가 평생을 오이디푸스 왕과 뤼스템과 쉬흐랍에 얽힌 이야기와 해석들을 조사한 것이 이러한 이유 때문일지도....’(277p)

 

 

9

아버지 없이 자라면 세상에 중심부와 한계가 있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요.”

하지만 결국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고, 그래서 삶에서 어떤 의미를, 어떤 중심을 찾으려 애쓰죠. 당신에게 아니다라고 말해 줄 누군가를 말이에요.”(305p)

 

현대인은 도시의 숲에서 길을 잃은 사람입니다. 어떤 면에서 아버지가 없다는 의미지요. 하지만 아버지를 찾는 것도 사실은 쓸데없습니다. 현대적인 감각을 지닌 개인이라면 도시의 군중 속에서 아버지를 찾지 못할 겁니다. 찾는다면 이번에는 개인이 되지 못하는 거지요. 프랑스의 현대성의 선구자 장 자크 루소는 이것을 잘 알았기 때문에 네 명의 자녀가 현대적이었으면 하는 바람에서 일부러 그들을 떠났고, 아버지 노릇을 하지 않았습니다. 루소는 자녀들을 궁금해하지도 않았고, 한 번도 찾지 않았지요. 당신도 내가 현대적인 사람이 되었으면 해서 떠났나요? 그렇다면 당신이 옳았네요.”(319p)

 

 

아버지와 아들의 연대감, 관계는 어김없이 어그러진다. 오이디푸스 신화도, 뤼스템과 쉬흐랍의 이야기도, 그리고 파묵이 보여주는 젬의 이야기도. 아버지는 여러 가지 의미를 상징할 수 있다.

 

내가 아버지에게 복종했더라면 행복했을까?”

어쩌면 좋은 아들이 되었을지도 모르지. 그렇지만 진정한 나는 될 수 없었을 거야.”

 

그 개인주의에 대한 지나친 관심과 안달복달 때문에 유럽을 선망하는 우리 부자들은 개인은 고사하고 자기 자신조차 되지 못했다고. 유럽 스타일의 터키 부자들은 신을 믿지 않아. 왜냐하면 자신들이 무엇이나 되는 거처럼 생각하니까. 그들에게 개성은 아주 중요한 문제지. 대부분이 오로지 다른 사람과 같지 않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신을 믿지 않는 쪽을 선택해. 심지어 신을 믿는다는 말조차 하지 않지. 하지만 믿음은 다른 모든 사람처럼 되는 거야. 종교는 겸손한 사람들의 천국이며 위로라고.”(321p)

 

 

 

 

10

현대는 이미 신을 버린 세대이고 시대이다. 신을 버리고, 신을 죽인 세대이다. 아버지와 같았던 신을 버린 이 시대를 상징하는 젬, 아버지 없이 자란 젬, 엔베르, 상처는 상처를 낳고, 데미지는 데미지를 낳고, 아들을 만나는 것을 두려워해 무기를 가지고 간 아버지가 오히려 화를 당하고야 만다. 내가 이야기를 두리뭉실하게 접근한 것은 스포를 최대한 자제하기 위해서이다. 이전에 어네스트 헤밍웨이가 <잃어버린 세대Lost Generation>이란 이야기를 했던가! 우리는 아버지를 아버지에게서 찾는 것이 아니라 자기 안에, 자기 존재 안에서 찾는 것이 최고의 덕목이요, 미덕임을 주장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나는 전자의 삶을 추구하는 사람이기에 생각이 다를 수 있겠다. 아버지를 그토록 그리워했지만, 아버지 없이 지낸 삶에서 축적되고 누적된 분노와 화는 결국 상처를 낳고, 그 상처는 결국 의도치 않게 아버지를 공격하고야 마는 신화와 현실의 이야기! 남의 이야기가 아닌 듯 하다.

 

오르한 파묵! 엄청난 이야기꾼이구나!

 

 

 

신화와 고전과 현실이 마구마구 뒤섟이면서도 결코 흥미와 재미를 놓치지 않게 하는 오르한 파묵의 이 소설은 너무 흥미롭게 읽었던 기억이 난다. 소설은 정말 이렇게 써야 한다. 근데 빨강머리 여인내 이름은 빨강은 다른 작품이란 것을 책을 읽고나서야 알았다. ‘빨강이 들어갔다고 다 똑같은 내용의 작품이 아니란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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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9-12-19 14:2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마지막 글이... 오르한 파묵이 빨강을 좋아하나 봐요.ㅋㅋㅋㅋ
그렇지 않아도 파묵의 책 있긴한데 아직도 읽을 생각을 못하고 있네요.
전 이상하게 노벨상 알러지가 있어서.ㅠ
한 번 읽어 보겠습니다.

카알벨루치 2019-12-19 15:00   좋아요 0 | URL
개인적으로 굉장히 흥미롭게 읽었어요 <하얀 성>보다는 확실히 잘 읽힙니다 잼납니다 ^^

레삭매냐 2019-12-19 21: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읽다만 파묵의 책들을 다시
읽어야 하는데...

다른 책들에 휩싸여서 쉽게
다시 돌아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카알벨루치 2019-12-19 21:29   좋아요 0 | URL
레삭매냐님은 한번 읽으면 아예 작가를 파버리니깐 천천히 파헤쳐도 되겠습니다 ^^

서니데이 2019-12-24 18: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카알벨루치님, 2019년 서재의 달인 북플마니아 축하드립니다.
올해도 좋은 이웃이 되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즐거운 크리스마스 되세요.^^

카알벨루치 2019-12-24 18:11   좋아요 1 | URL
늘 꼼꼼하게 챙기시는 서니데이님 덕에 클스마스 이브가 더 훈훈해지네요 서니데이님도 서재의 달인 축하드리고 메리 클스마스 되시길 ^^

페크(pek0501) 2019-12-27 23: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호! 멋진 독서를 하십니다. 고전의 세계는 매혹적이죠.
저는 왠지 민음사 책이 좋더라고요. 그래서 고전은 민음사 것을 선호합니다.
글씨체도 맘에 들더라고요.

새해에도 멋진 독서로 자극을 주시기 바랍니다. 복도 많이 받으시고요...^^

카알벨루치 2019-12-30 13:25   좋아요 0 | URL
네 페크님 한해동안 수고많으셨어요 새해에는 더 건강하시고 건필하시길 소원합니다 댓글 감사합니다!

겨울호랑이 2019-12-28 18: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카알벨루치님 지난 한 해 감사드립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독서도, 좋아하시는 운동도 마음껏 하시는 한 해 되세요!^^:)

카알벨루치 2019-12-30 13:26   좋아요 1 | URL
겨울호랑이님의 지성과 열정에 늘 탄복하는 1인입니다 새해엔 더 많은 도전과 열정으로 우리를 기쁘게 해주시길 바랍니다 댓글 감사합니다!

서니데이 2019-12-31 23: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카알벨루치님 새해인사 드리러 왔습니다.
조금 있으면 2020년 경자년이 됩니다.
새해에도 항상 건강하고 가정에 평안 있으시기를 기원합니다.
소원하는 일을 이루는 시간 되셨으면 좋겠어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희선 2020-01-01 01: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카알벨루치 님 2020년이에요 십이월 마지막 날에 써야 할까 새해 첫날 인사를 할까 하다가 2020년이 됐습니다 자주 인사하지도 않았으면서 그런 생각을 했네요 카알벨루치 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카알벨루치 님과 카알벨루치 님 식구 모두 건강하게 지내시기 바랍니다 새해 하고 싶은 거 즐겁게 하시면서 지내세요


희선

카알벨루치 2020-01-03 12:12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희선님도 늘 건강하시고 새해 복많이 받으세요! ^^
 
장사의 기본 - 백년 가게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오카무라 요시아키 지음, 김윤희 옮김 / 부키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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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가게가 있는 것이 아니다. 좋은 사람, 좋은 staff이 있는 가게가 있을 뿐이다.’, ‘사람이 빛나면 가게가 빛난다. 대박가게만들기는 사람 만들기, 그 자체이다.’(23p)

 

 

꽃과 벌의 관계를 생각해보자. 꽃이 자신에게 꿀과 향기가 없는 것은 안중에도 없고 찾아오는 벌이 없다고 투덜대고 불평한다. 문제는 찾아오지 않는 벌이 아니라 바로 꽃에게 있다는 사실이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꽃과 벌에 대한 관계를 생각해보았다.

 

 

 

2

홍보를 하지 않아도, 간판을 세우지 않아도, 할인을 하지 않아도, 음식 맛은 좀 부족해도, 네가 사랑받는 사람이 되면 사람들이 먼저 다가와 줄거야.’(26p)

 

저자는 서른 살이 될 때까지 자기가 좋아하는 일에 미쳐 지내다가 어머니가 운영하는 이 가게를 물려받게 되면서 생각의 전환을 가져오게 된다. 문제는 손님이 아니라, 바로 주인이다. 바로 사람이 문제인 것이다.

 

 

 

3

여러분 앞에 있는 사람은 바로 여러분 자신이다.”(49p)

 

인생은 언제나 사람과 사람 사이의 문제들이다. 내가 한 만큼 돌아온다. 일종의 메아리 법칙이다. 먼저 나를 돌아보고 타인을 돌아보아야 한다. 내 얼굴이 좋아야 다른 이의 얼굴도 좋은 것이다.

 

 

4

인맥은 만드는 것이 아니라 생기는 것’(74p)이다.

돈이 필요했다. 은행에는 신용이 저질이라 빌릴 수가 없었다(내가 굳이 이렇게 밝히는 것은 이 글을 읽는 이들 가운데 위로가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위로가 안 되면 어쩔 수 없고...). 그래서 결국 사람들에게 일일이 도움을 구해야 했다. 다행히 구해졌다. 하지만 그 과정은 손에 땀을 쥐게 했고 피를 말리게 하는 일이었다. 전화번호를 누를지 말지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손가락이 방황하고 표류하고 안절부절하는 모양새였다. 그러면서, 돈 빌리는 자와 돈 빌려주는 자의 마음을 한번 헤아려보는 시간이 되었다. 어머니가 자식인 나를 위해, 자식들을 위해 돈을 빌릴 때의 마음이 이런 마음이었구나! 생각하니 마음이 더 짠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그런 생각도 해 보았다. 돈을 빌리면서 그래도 세상이 아직 살만한 세상이구나!’ 그런 생각을 했다. 돈 때문에 글도 잘 못 쓰겠더라. 내가 지인들에게 돈을 빌리는 것을 보고서 아내가 내 인성을 극찬했다. 그런가 싶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돈이 뭔가 싶기도 하고. 눈 앞에 뵈는 게 없으니, 너무 절박하니 입이 떨어지더라는 것이다. 돈을 빌려주지 못했을 때, 거절당했을 때의 그 참담한 기분과 열패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안 당해 본 사람은 모를 일이다. 모두가 인생 공부이다. 나는 앞으로 잘 빌려주는 인간이 되어야겠다는.

 

 

 

5

저자는 음주 운전 교통사고를 당한 어린 아이의 소식을 들었다. 그는 사고당한 어린아이를 돕기 위해 매장 하나의 하루 매출을 전액 기부했다고 한다. 그는 술을 판매하는 장사꾼으로써 느끼는 부채감에서 직접적인 관계도 없는데 그렇게 행동했다고 한다.

 

 

 

6

사람 사는 세상에 모든 것은 결국 사람의 문제인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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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9-11-29 19: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누가 그런 말을 하더군요. 일본이 그렇게 백년 가게가 많은 건
그 나라의 특성상 그럴 수 밖에 없다고. 워낙에 상명하복의 문화다 보니
감히 딴 것을 생각할 수 없는 환경이어서 그렇다고.
우리나라는 3년 또는 5년안에 폐업률이 높긴한데 외국 사람들이 볼 땐
그게 또 활기로 보여지나 봐요. 낭만적으로.ㅎㅎ

카알벨루치 2019-11-29 20:10   좋아요 1 | URL
부모대에 워낙 잘된 가게이니 그런가보다 했는데 일본의 문화와 배경 탓도 있네요
부모의 뜻을 따라 자신의 길을 정하는게 쉽지 않은 결정이긴 합니다
리뷰도 밀리고 독서도 밀리고 글은 안 써지고 하루에 페이퍼 두개 올렸는데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

레삭매냐 2019-11-30 14: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사람의 문제라는 점에 공감합니다.

어젠가 예고를 하고 음주단속을
했는데도 2시간 만에 88건인가가
단속되었다고 하더군요.

사람의 문제가 맞습니다.

coolcat329 2019-11-30 15:46   좋아요 1 | URL
그것도 고속도로에서요! 윤창호 법 그새 잊은건가요ㅠㅠ이런 뉴스는 정말 화가 납니다.

카알벨루치 2019-11-30 21:11   좋아요 0 | URL
글을 써놓고도 참 부끄러워집니다
사람이 제일 중요하건만...아!

빵굽는건축가 2019-11-30 15: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기본은 사람에 있다는 것을 알게하는 좋은 리뷰군요. 고맙습니다

카알벨루치 2019-11-30 21:13   좋아요 1 | URL
앞에서도 이야기했지만 그냥 글 쓰고나서 얼굴이 확 달아오르네요
너무 솔직하게 써도 얼굴이 달아오르는데 너무 삶이 안 따라주는데 글이 앞서갈때 또한 그렇다고 봅니다 댓글 감사드립니다
저 책 읽으면서 제 자신을 또 돌아보았습니다 ^^
 
칼자국 소설의 첫 만남 10
김애란 지음, 정수지 그림 / 창비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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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식당을 운영했던 어머니에 대한 기억을 을 통해 기억하는 저자의 작품이다. 짧은 소설이지만 그림까지 있어 어머니에 대한 독자가 가진 저마다의 기억을 생각나게끔 하는 소설이다.

 

 

 

 

 

2

어머니는 좋은 어미다. 어머니는 좋은 여자다. 어머니는 좋은 칼이다. 어머니는 좋은 말이다.”(55p)

 

우리 어머니가 쓰던 칼은 어떤 칼이었던가?

어린 시절부터 자취를 하면서 부모님과 떨어져 지냈던 나, 주말에 잠시 얼굴을 뵙고 하룻밤 자고 주일이면 대구로 어김없이 올라와야 했던 기억이 난다. 대구행 버스에 오르면 언제나 내 손에 들려있던 어머니의 칼자국이 서린 반찬들, 때론 그 반찬통에서 김칫국물이 새어 나오기도 하고, 때론 과일주머니에서 과일이 버스바닥에 흩어져 낭패를 당한 경우도 있었다. 사춘기 소년인 나와 사춘기 소녀였던 여동생은 서로 그 반찬주머니를 들고 가지 않으려고 미루기도 했던 기억이 난다. 그땐 그랬다. 교통수단이 대중교통이 거진 대부분이었던 시절이었다. 어머니의 흔적이 다분했던, 직간접적인 칼자국이 배인 반찬들은 언제나 맛있었지만, 그걸 운반하는 책임은 피하고 싶었던 사춘기 소년의 경험이다.

 

 

 

 

3

부모님 곁에 늘 같이 생활하는 정상적인 부모가정, 자식들이 나는 늘 그리웠고 부러웠다. 매일 같은 공간에 숨을 쉬며 몸을 부대끼는 것이 때론 지루하고 보링boring한 일상일 수 있으나 나는 그 일상이 부러웠고 나는 자식을 낳으면 절대 떨어져 키우진 않으리라고 혼자서 다짐했었다. 부모님의 교육정책(?)에 의해 부리나케 대구로 전학오던 날, 난 흑백TV에서 재밌게 방영되고 있는 바야바였던가, 만화영화 딱따구리였던가 암튼 그걸 시청중이었다. 그런데 어머니가 갑자기 전학가야한다고 밤에 우린 무슨 피난을 가듯 대구행 버스에 올랐다. 너무 갑작스런 전학행에 난 학교애들과 인사도 못하고 떠나왔다. 그땐 너무 정신이 없었는데, 지금 돌아보니 이별을 준비하고 아쉬움과 아픔을 충분히 느꼈어야 하는데 나와 여동생의 정서에 보이지 않는 상처가 배인 것은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해본다.

우리 첫째 아이 전학시킬 때의 영상이 떠오른다. 나도 급하게 아이를 인사시키고는 전학을 시켰더랬는데, 우리 큰 아이의 마음에 보이지 않는 칼자국을 남긴 건 아닐까? 그런 생각...

 

어머니는 왜 그렇게 급작스럽게 전학을 서둘렀을까? 인사도 안 시키고 그렇게 움직이셨을까? 당시 학교에선 시골에서 도시로 넘어가는 전학생이 불어나는 관계로 우리가 전학하는 것에 대해 반대하고 미뤘던 것으로 기억한다. 어머니는 일단 행동파였기에 전학을 물리적으로 시키고 후에 서류나 시스템적인 부분을 해결하려고 했다. 내가 전학을 간 지 한참 후에 이전 학교에서 서류가 넘어왔다. 

 

 

 

 

 

 

4

시골에서 남들보다 더 교육 잘 시키고, 잘 키우고 싶은 마음에 어머니는 고된 농사일을 하기 위해 아침에 버스를 타고 시골에 가셨다가 해가 뉘엿뉘엿 지는 저녁이 되면 피곤한 육신을 이끌고 다시 대구행 버스에 몸을 실어 우리를 챙기셨다. 그땐 자가용이 없던 시절이었다.

나 같으면? 그렇게 할 수 있을까?

어머니의 교육정책과 돌봄과 케어로 인해 우리는 주욱 대구에서 주말 부모-자녀 관계를 유지했다. 오히려 그것이 장점이 되기도 했다. 부모님과 자주 뵙지 않으니 덜 다투게 되고 애틋함과 아쉬움의 감정의 여운이 남는다는 것, 근데 내가 부모가 되어 보니, 그게 아니다 싶다. 자식은 부모의 마음을 참 모르는구나, 참 몰랐구나 싶다. 얼마나 자식들이 보고 싶었을까? 내가 초등학교 5학년 때 전학을 갔었는데, 지금 우리 큰 애가 초등학교 4학년인데...진짜 성가시고 귀찮은 게 많고 손도 많이 타는 시기이긴 하지만, 어른들 말로 애들이 제일 예쁠 때라고...

자식을 떨어뜨려놓고 지낸 부모님의 마음...피곤하게 하루를 보냈어도 저녁에 온 가족의 얼굴을 볼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가! 물론 일상에서 우린 자주 눈치채지 못하고 무성의하게 보낼 때가 많다. 우린 무감각하기 짝이 없는 존재인지라...

 

 

 

 

 

5

이 작품 칼자국을 읽고 생각의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어머니의 마음에 새겨진 칼자국을 생각한다. 명절이 되면, 떠나려고 채비하는 장남인 나에게 어머니는,

 

하룻밤 더 자고 가지 그러냐?”

 

할머니도 벌써 갈라꼬 카나?”그렇게 대구하셨다.

그 말이 가슴에 내려앉아 생각을 하게끔 한다.

 

하룻밤 더 자고 가지 그러냐?”

 

부모 마음 따로, 자식 마음 따로이다. 부모는 자식을 품에 두고 싶어하지만, 자식은 머리가 굵어지면 부모의 품을 귀찮아하고 성가셔하고 멀리 두려고 한다. 내 자식들도 머리가 점점 굵어지면 나를 귀찮아하고 성가셔하고 받은 만큼 돌려준다는 식으로 칼자국(?)을 선물하진 않을까?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6

어머니가 내 준 밥상, 그 밥상은 어머니의 칼자국의 결과물이다.

어머니가 내놓은 모든 나의 교육적인 환경도 어머니의 결정에 의한 진로의 영향이기도 하다.

 

 

 

 

 

 

 

7

나는 애들이 많아 손이 많이 가야 하는 애들의 아버지이다. 머리가 쭈뼛쭈뼛 서고, 내 속에 이런 수많은 신경질과 스트레스와 분노와 짜증의 DNA가 다분한지 매일 매일 연신 놀라 자빠지는 유형의 인간 아빠이다. 나는 필시 철인이 아니었더란 말이다.ㅠㅠ 문득 내 어린 시절 부모님과 함께 보낸 시간의 부재不在로 인해 내겐 역할모델의 후유증이 존재하는 듯.

 

부모의 본을 보고 자녀가 배운다는 데 내겐 짤막짤막한 만남의 씬scene만 존재하지, 긴 일상의 장편필름film이 없는 게 아쉽다. 애들과 함께 지내지 못한 아버지와 어머니의 마음 한 구석이 뻥 뚫린, 아쉽고도 안타깝고도 아픔이 저민 그 가슴! 그렇게 한 평생 살아오셨고 최선을 다해 최고의 것을 자녀들에게 주기 위해 달려오셨기에 더 이상의 불평과 불만의 토로는 무의미하고 추잡한 짓이라고 타박해 본다. 난 그래도 애들과 함께 좋든, 싫든 생활할 수 있다는 것 자체에 감사할 수 있어야겠다 싶다.

 

나는 두렵고 떨린다. 나중에 우리 애들이 부모인 나를 원망하고 불평하진 않을지. 세상의 완벽한 부모가 어디에 있겠는가 마는. 그래도 이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하고, 그리고 이것이 내 한계의 마지노선이라고 생각하면서 오늘 하루도...

 

 

 

 

 

8

가족의 공유된 감정,

공유된 기억,

공유된 추억,

공유된 시간과 공간,

공유된 질감과 양감,

공유된 상처까지도(물론 이런 건 좀 빼고 싶지만).

함께함’(togetherness)이 큰 축복이라는 것을 새삼 느낀다.

 

 

 

 

 

9

작품 가운데, 어머니가 식당에서 갑작스럽게 쓰러졌다. 그리고 그렇게 떠나셨다. 장례식을 마친 후 어머니가 운영하시던 식당 부엌에 들어선 작가의 눈에 들어온 풍경, 설거지 꺼리가 이만큼 쌓여있는데, 딸의 눈에 들어온 것이 있었다.

 

칼은 도마 위에 비스듬히 누워 있다....갑자기 참을 수 없는 식욕이 밀려왔다. 뭔가 베어먹고 싶은 욕구, 내장을 적시고 싶은 욕구....’(77p)

 

그렇게 딸은 사과 아주 맛있게 베어먹는다. 씹는다.

 

 

 

 

 

10

어제 도서관에 앉아 리뷰를 짧게 메모하고 넘어가려고 앉았는데, 생각이 담쟁이 덩쿨처럼 세월과 기억의 담을 타고 들어와 글이 이렇게 길어져 버렸다. 이것만 쓰고 가야할 것 같다. 도서관 문이 곧 닫을 시간이다....

 

부엌의 칼을 볼때마다 김애란의 소설이 생각난다. 그리고 어머니가 생각이 난다. 이런 소설이 좋은 소설이 아닌가! 일상의 한 편련에 의미를 부여하게끔 하는 소설 말이다...그래서 나는 소설을 읽는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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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9-11-15 12: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김애란 작가, 글 잘 쓰죠? 그의 단편 소설을 읽고 단박에 재능을 알아봤어요.

가장 아름다운 낱말이 ‘어머니‘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가장 슬픈 낱말이기도 한 것 같아요.
자식과 부모가 떨어져 있으면 애틋한 건 맞지만 한 집에서 사는 게 좋은 것 같더라고요.
큰애가 몇 년 저와 떨어져 살았는데 그래서인지 독립적인 여성이 된 것 같아 어떤 면에선 섭섭하더라고요.
뭐든 자기 혼자 결정을 하더라고요. 그게 습관이 된 듯해요. ㅋ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카알벨루치 2019-11-15 13:58   좋아요 0 | URL
부모와 자녀의 관계가 그렇네여 섭섭하셨다는 말이 남 말 같지 않습니다 적당한 때에 놓아주는 지혜도 필요한데 말입니다 ㅎㅎ

레삭매냐 2019-11-15 13: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냥 문득... 김숨 작가의 <국수>라는 소설집 생각이 나네요.

카알벨루치 2019-11-15 13:58   좋아요 0 | URL
김숨 작가는 <흐르는 편지>를 너무 슬프게 읽었네요 ㅎㅎ읽고싶은 작가가 왜 이리 많지요 ㅎ

2019-11-15 13: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11-15 13: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북프리쿠키 2019-11-17 20: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이고 어무이란 말만 입밖에 내뱉어도
뭉클해집니다. 전 이 책 자신이 없습니다. ㅠ

카알벨루치 2019-11-19 20:51   좋아요 0 | URL
어머니란 존재는 언제나 그런 것 같습니다! ㅎㅎ어무이~어무이~ㅋㅋ

transient-guest 2019-11-20 09: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무리 애를 써도 부모님께 받은 걸 다 갚는 날은 오지 않을 것 같아요. 매일 제가 나이를 느끼는 몇 배로 계속 연세가 들어가시는 걸 보는 것이 너무 맘이 안 좋습니다. 그저 주어진 시간만큼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생각 밖에 못하네요.

카알벨루치 2019-11-20 10:24   좋아요 1 | URL
그러게요 부모님을 세월의 무게가 요즘 더 찐하게 느껴집니다 예전에는 늘 크게 보였던 부모님의 어깨가 왜 그렇게 왜소해보이는지...그 은혜를 힘입어 자식인 우리가 이만큼 왔나봅니다 ^^
 
갱부 현암사 나쓰메 소세키 소설 전집 6
나쓰메 소세키 지음, 송태욱 옮김 / 현암사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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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9034월에 나쓰메 소세키(당시 36)는 제1고등학교 강사와 도쿄제국대학 영문과 교수를 겸하게 된다. 그리고 5개월 후인 9월에 제1고등학교의 제자인 후지무라 미사오가 게곤 폭포에서 자살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이 사건으로 인해 다시 신경쇠약증세가 악화된다. 또한 아내와의 불화로 임신중인 부인과 별거에 들어가게 된다. 나쓰메 소세키는 어릴 적부터 곁에 있던 사람들의 죽음을 무수히 목도해왔지만, 교편을 잡은 첫 해에 자신의 제자의 자살 사건은 충격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5년이란 시간이 지났다. 1908(당시 41) 1~4월까지 아사히 신문에 갱부를 연재한다.

 

 

 

 

 

2.

인간이 동물과 다른 점은 멘탈시뮬레이션이 가능하다는 이야기를 어느 책에서 본 적이 있다. 제자의 죽음 이후의 소세키의 가슴 속에는 말할 수 없는 상처의 응어리가 깊게 남아 있었다. 작가 장정일은 이 작품을 이렇게 표현했다.

 

게곤 폭포에서 자살한 소세키의 제일고등학교 제자 후지무라 마사오의 번민에 대한 석명”(321p)

 

닛코의 산속에 있는 게콘 폭포는 높이가 100미터를 훌쩍 넘어 보는 이로 하여금 그 웅대함에 감탄을 금치 못한다고 한다. 소세키가 가르친 제1고등학교는 도쿄제국대학 진학을 위한 예비문(교양학부)이었다. 후지무라 마사오는 이 폭포에서 투신자살 직전에 바위 위의 나무에다 <암두지감>이란 글을 남겼다.

 

막막한 하늘과 땅

아스라한 과거와 현재.

보잘 것 없는 내가 이 신비를 풀어보고자 했지만

호레이쇼(햄릿의 친구)의 철학으로는 아무것도 풀 수가 없다.

세상의 진실은 오직 한 마디,

불가해라!

풀리지 않는 번민 끝에 죽음을 결정했으니

절벽 위에 서서도 가슴 속엔 아무런 불안이 없다.

이제야 깨닫게 된 것은

커다란 비관과 커다란 낙관이 서로 같다는 것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나 영화 글루미선데이gloomy Sunday(노래도 있다)의 이야기처럼 자살은 또 다른 자살을 불러왔다. 후지무라 마사오의 유서의 후폭풍도 거셌다. 숱한 이들이 이 폭포에서 자살을 했고, 후에 이 게콘 폭포는 자살의 명소가 되었다. 소세키는 제자의 죽음 이후 5년의 깊은 사색과 성찰이 이 작품에 녹아나 있다고 볼 수 있다. 작중의 주인공은 소설 같지 않다’, ‘소설이 아니다라고 했지만,

 

정리되지 않은 사실을 사실 그대로 기록할 뿐이다. 소설처럼 만든 것이 아니기 때문에 소설처럼 재미있지는 않다. 그 대신 소설보다 신비하다. 모든 운명이 각색한 자연스러운 사실은 인간의 구상으로 만들어낸 소설보다 더 불규칙적이다. 그러므로 신비하다. 나는 늘 이렇게 생각하고 있다.’(147p)

 

 

이 작품은 unique한 교양소설이다.

 

 

 

 

3.

일단 이 정도의 결심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이는 나중에 그때의 심리 상태를 해부해본 것일 뿐이다. 당시에는 그저 어두운 곳으로 가면 된다. 어떻게든 어두운 곳으로 가지 않으면 안 된다며 오로지 어두운 곳을 목표로 걸었을 뿐이다. 지금 생각하면 빙충이 같은 짓이었지만, 어떤 경우가 되면 우리는 죽음을 목표로 나아가는 것이 최소한의 위로가 된다는 것을 납득하게 된다. 다만 목표로 하는 죽음은 반드시 멀리 있어야만 한다는 것도 사실이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너무 가까우면 위로가 되지 못하는 것은 죽음의 운명이다.’(22p)

 

주인공은 정확하게 밝히진 않지만 19세의 젊은이가 느끼는 격한 감정으로 인해 가출을 하게 된다. 그리고서 자살을 결정하다가 생을 포기한 자의 마지막 선택으로 광부가 되기로 한다. 그것은 대단한 과정이 아니었고 우연한 결과였다. 인생은 누가 누가 그렇게 표현하지 않았던가!(누군지 알았다. 사르트르였다!) 

 

인생은 B(birth 출생)D(death 죽음) 사이의 C(choice 선택)의 문제라고.

 

주인공은 BD 사이에서 D로 가기 전에 또 다른 C를 취한다.

 

애석하게 당시의 내게는 자신을 연구하겠다는 마음이 전혀 없었다. 그저 분해서, 괴로워서, 슬퍼서, 화가 나서, 그리고 딱해서, 미안해서, 세상이 싫어져서, 인간임을 다 버리지 못해서, 안절부절 못해서’(44-45p) 그는 가출을 했고, 또 다른 C를 선택한다. 돈벌이를 위해 그는 갱부가 된 것이 아니었다. 그는 D를 선택하기 전에 우연찮게 조조란 인물이 그에게 던진 한 마디,

임자, 일할 생각 없나?”(85p)

 

그 말에 꽂혀 선택한 것이 바로 갱부였다. 과연 그 허약해 빠진 19세의 가출청년이 과연 갱부가 될 수 있을까?

 

 

 

 

 

4.

돌아가고 싶어도 돌아갈 곳이 없습니다.”

집이 없습니다. 갱부가 되지 못하면 구걸이라도 할 수밖에 없습니다.”(158p)

 

온실 속의 화초처럼 19년 동안 자라온 주인공이 죽음을 결심했다가 또 다른 선택지인 갱도로 들어섰을 때, 거기엔 막다른 장소였고 특별한 시간이 존재하는 곳이었다. 우리가 정말 돌아갈 집이 없는 노숙자가 아닌 다음에야, 다들 come backhome이 있다. 주인공은 상실의 시대의 젊은이들처럼 돌아가고 싶어도 돌아갈 곳이 없다는 말을 하면서 갱부를 선택하지만, 그 선택으로 그는 돌아갈 곳을 찾게 된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피 끓는 청춘의 시절에는 다들 자신의 개인적인 마음의 상처와 데미지가 너무나 크게 느껴지는 나머지(실제로 대단히 크고 심각한 경우도 종종 있긴 하지만) D(death)를 선택하기도 하지만, 소세키는 제자의 죽음을 사유하면서 D가 아닌 C(choice)를 선택할 것으로 말해주는 듯 하다. 1만명이 넘는 탄광촌에 수많은 노동자들, 하루에도 몇 번의 장례식이 치러지는 그 곳, 먹는 쌀, 안남미-막부 말기부터 메이지 시대 이후에 걸쳐 중국이나 동남아시아에서 수입된 쌀의 속칭, ‘벽토라고 불렸는데, 이 수입쌀은 일본인의 미각에 맞지 않았다고 한다-, 불편하고 더럽고 추잡한 잠자리, 끊임없이 몸을 휘감는 빈대와 벌레, 그리고 섟일래야 섟일 수 없을 것만 같은 관계들...

 

평소의 흰밥도 신물이 날 정도로 먹고 싶지만, 그보다는 빈대가 없는 이부자리에 들어가고 싶다. 30분이라도 좋으니 푹 자보고 싶다. 그런 뒤라면 할복이라도 하겠다.’(304p)

 

 

 

 

 

5.

어때, 여기서 지옥의 입구야. 들어갈 수 있겠어?”(211p)

 

갱부 하쓰 씨가 갱도에 들어가기 전에 주인공에게 한 말이다. 삶이 죽음을 선택하고 싶을 만큼 고통스럽고 지옥 같다고 할지라도, 갱도에서 일하는 갱부들의 일상을 경험하면서 주인공은 변해가고 성장해간다. 물론 작품이 그것을 구체적으로 언급하진 않는다.

 

구약성경 욥기를 읽다가 문득 갱도를 발견하고 기뻐했다.

 

그저 사람이 사는 곳에서 멀리 떠나 갱도를 깊이 뚫고 발길이 닿지 않는 곳 사람이 없는 곳에 매달려 흔들리느니라’(욥기 284)

 

갱부는 사람이 사는 곳과 멀리 떨어진 곳, 발길이 닿지 않는 곳, 깊이 뚫린 갱도에서 하루를 보내는 사람들이다. 그 지옥 같은 장소와 시간의 하루...그곳에서 존버하는 인생이 바로 갱부였다.

 

 

 

 

6.

D(death)가 아닌 C(choice)를 선택하는 자, 그 자가 또 다른 의미의 갱부가 아닐까? 문득 인간실격을 썼던 다자이 오사무의 생애가 생각이 난다. 끊임없이 D를 선택하려다가 실패하고, 실패하고, 결국 39세에 다섯 번째 D시도를 강물에서 투신 자살로 마무리했던 다자이 오사무! 하지만, 우리는 삶이 지옥 같은, 하데스 같은 고통과 고난이 있다손 치더라도 D가 아닌 C를 선택하는 자가 되었음 좋겠다. ‘살아남은 자의 슬픔이 있겠지만, ‘살아남은 자의 희열또한 있기에. 호흡이 있기에 존재의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닌가!

 

 

 

 

 

 

7. Epilogue...

나는 작품을 읽으면서 문득 문득 소세키의 건강을 생각했다. 몸도 안 좋은 양반이 갱도 속에서 들어갔나, 어떻게 들어갔을까? 어떻게 이렇게 디테일하게, 사실적으로 묘사할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했더랬다. 마치 내가 그 현장에서 직접 보고 듣고 느끼는 느낌이 들었다. 무슨 체험현장도 아닌데, 어떻게 이렇게 리얼할 수 있나 싶을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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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1-14 14: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11-14 22: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19-11-14 15: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저는 나쓰메 소세키를 언제쯤 읽게될까요.
읽을 책이 너무 많다는 건 행복한 불행 같아요. 언제나 멋진 글을 쓰는 카알님.ㅠ

카알벨루치 2019-11-14 22:05   좋아요 0 | URL
마음만 먹으면 됩니다 ㅋㅋㅋㅋㅋㅋㅋ제가 <전쟁과 평화>에 대한 마음과 비슷할 듯 합니다 톨스토이 먼저 읽을 줄 알았는데 도끼를 먼저 읽다니...독서도 그런 것 같습니다 언젠가 만나야할 책은 꼭 만나겠지요 ㅎㅎ

페크(pek0501) 2019-11-15 12: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작가의 <도련님>이란 소설을 좋아합니다. 감동이 있으면서도 코믹하죠.
언제 전집을 사서 읽고 싶단 생각을 했었던 작가였어요.

카알벨루치 2019-11-15 16:04   좋아요 0 | URL
현암사 전집이 참 마음에 드는데 전 <산시로>와 <풀베개>만 구입했습니다 나머진 빌려서 읽어야겠죠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는 사야할 것 같습니다 너무 두꺼워서 ㅎㅎ

북프리쿠키 2019-11-17 20: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갱부 요고 은근 명품입디다^^;

카알벨루치 2019-11-17 21:20   좋아요 1 | URL
어찌 이런 작품을 썼나 싶네요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