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1

소세키의 등장인물은 공통적으로 지식인이다. 1900년 작가 소세키는 일본 문부성 제1회 국비유학생으로 영국을 유학을 가게 된다. 그 유학생활은 소세키를 지적, 정신적으로 팽창시키면서 동시에 신경쇠약이라는 딱지를 평생 안고 살아가게 된다. 서구문명을 직접 육안으로 대하면서 느낀 유학생활은 소세키의 내면세계의 큰 획을 그은 사건이 아닌가 싶다. 나쓰메 소세키는 100년이 훨씬 넘은 과거에 활동했던 작가이다. 그 작가가 어떻게 지금 우리 현대에서도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가 하는 것은 아마도 소세키가 묘사하는 인간의 내면세계에 대한 집요한 탐구에 있지 않을까 싶다.

 

 

 

 

2

길 위의 생(이레)(한눈팔기(현암사)의 다른 번역본)을 번역한 김정숙은 제자들에게 ‘20대에게는 산시로를 추천하지만, 나이가 들면 길 위의 생(한눈팔기)을 추천한다고 했다. 확실히 산시로의 맛과, 한눈팔기(길 위의 생)의 맛은 확연히 다르다. 점수를 주자면 오히려 한눈팔기에 더 주고픈 마음이다. 나이가 들어서 그런 것인지도 모르지만, 인생의 중후한 맛을 보여주는 작품이 바로 한눈팔기(길 위의 생)이 아닐까 싶다. 도서관에 한눈팔기(현암사)가 없어서 길 위의 생(이레)을 빌려 읽었는데. , 이 책은 확실히 소세키를 이해하는데 굉장한 도움이 된다. 소세키의 산문 유리문 안에서도 소세키를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기도 하지만, 개인적으로 한눈팔기(길 위의 생)을 더 추천하고 싶다. 내면세계에 대한 집요한 탐험과 성찰이 아마도 그를 일본의 세익스피어, 일본을 대표하는 작가로 군림하게 하지 않았나 싶다. 일본의 지폐에 소세키가 등장한다는 이야길 듣고 굉장히 부러웠다. 우리에게도 이이’, ‘이황이나 세종대왕이 있긴 하지만, 근대와 현대의 문학가가 화폐의 주요인물로 등장한 것을 생각할 때 조금 부러울 따름이다.

  참고로, 한눈팔기(길 위의 생)』는 원제목이 <미치쿠사>이다. 일본 특유의 어휘로 사전적 설명으로 두 가지 의미가 있다. 하나는 단순히 길가에 난 풀을 말하고, 또 하나는 길 가는 도중에 딴 짓으로 시간을 보낸다는 말이다. 보통 후자쪽이 '도중에서 지정거린다, 도중에서 한눈 팔며 시간낭비를 한다'는 관용구와 함께 널리 쓰이고, 소세키 또한 후자의 감각으로 이 제목을 붙인 것 같다(길 위의 생. 320p). 

    

 

3

소세키가 어떻게 인간의 내면세계, 마음 안으로 깊이 내려갈 수 있었는가 하는 것은 그의 유학생활 이전에 그의 불행했던 유년시절의 경험들을 들 수 있다. 소세키는 아버지의 후처의 53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양친이 고령인데다 형제가 많은 탓에 그의 태생은 환영을 받지 못했다. 고물상의 수양아들로 보내졌지만 사는 게 변변찮은 것을 누나가 불쌍히 여겨 다시 생가로 돌아온다.

 

나는 작은 광주리 속에 뉘여 매일 밤 고물가게의 잡동사니와 함께 요츠야 야시장의 노점에서 밤바람을 맞으며 있었다고 한다. 그것을 어느 날 밤 누나가 무슨 일인가로 그 앞을 지나가다가 발견하고서 가엾게 여겨서였을까, 품에 싸안고 집으로 데리고 왔는데, 나는 그날 밤 잠을 안 자고 밤새도록 울어 대기만 해서 누나는 아버지에게 몹시 꾸중을 들었다고 한다.’(유리문 안에서, 109-110p)

 

 

하지만 소세키는 또 다시 4살 되던 해에 어느 집에 양자로 보내진다. 8-9세때까지 그 집에서 자랐는데, 얼마 안 되어 양가의 묘한 분란이 생겨 다시 집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그런데, 웃고픈 현실은 소세키가 집에 돌아왔을 때 자신의 부모들은 소세키에게 부모가 아니라 조부모라고 여겼다는 사실이다. 이 사실을 모르고 지내다가 어느 날 밤에 하녀가 조용히 이 비밀을 알려준다.

 

 

도련님, 도련님이 할아버지 할머니라고 생각하고 계시는 분은 정말은 도련님 아버지와 어머니세요. 아마 그래서 저렇게 이 집을 좋아하는 모양이야. 참 묘하지, 하고 두 분이 말씀하시는 걸 제가 들었기 때문에 살짝 도련님에게 알려 드리는 거예요. 아무한테도 말씀하시면 안 돼요. 아셨지요?”(유리문 안에서, 111-112p)

    

이 비밀을 듣고선 소세키는 굉장히 기뻤다고 했다. 하지만 그 기쁨은 사실을 가르쳐 준 데서 오는 기쁨이 아니라, 단지 하녀가 나에게 친철한 데서 오는 기쁨이었다는 것. 그렇게 따져 본다면, 그 늦둥이자, 8남매의 막내인 소세키가 환대받지 못한 가혹한 운명이 얼마나 그의 마음을 무겁게 짓눌렀는지를 알 수 있다. 길 위의 생(한눈팔기)에선 이런 대목이 나온다.

주인공 겐조의 말이다.

 

친 아버지 쪽으로 보더라도 양아버지 쪽으로 보더라도 그는 인간이 아니었다. 오히려 물건이었다. 단 친아버지가 그를 허드레 물건으로 취급한데 반해 양아버지는 당장 무슨 도움을 받으려는 속셈이었을 뿐이었다....사환이든 뭐든 시킬테니까 그리 알아라.’(길 위의 생275p)

 

친부나 양부도 모두가 소세키에겐 상처였다. 누구 하나 제대로 환대해주는 이가 없었는데, 소세키가 도련님이란 소설을 쓴 이유는 무엇일까? 도련님은 일본어로 봇짱이다. 봇짱에서 은 친근함을 주는 애칭이고, ‘봇짱은 도련님이란 뜻이라고 한다. 작품에서 등장하는 하녀 할머니는 누가 그를 뭐라고 해도 주인공, 도련님의 편을 든다.

 

도련님, 소원인데요. 기요가 죽거든 도련님 네 절에 묻어주세요. 무덤 속에서 도련님 오기를 낙으로 삼고 기다리고 있겠어요.”(도련님, 231p)

 

개인적은 생각인데, 기요 하녀 할머니는 소세키가 그리워하는 어머니에 대한 상징이 아닐까 싶다. 이 집, 저 집 돌아다니면서 힘겨운 삶을 살았던 소세키가 14살 때 생모 치에(54)는 죽는다. 1875년에 양가에서 생가로 돌아온 소세키는 1881년에 어머니의 죽음을 맞이한다. 그가 어머니와 함께 보냈던 시간이 6년 남짓 되겠다. 생가에 돌아와도 부모님을 조부모님이라고 불렀던 소세키에겐 할머니란 단어가 어머니였던 것이다. 막둥이 소세키의 할머니는 나이 많은 엄마였던 것이다  

    

 

4

소세키의 가정사에 얽힌 슬픔은 숙부의 사기 사건이 더해진다. 아버지의 유산 상속문제를 믿고 따랐던 숙부에게 모든 것을 맡겼다. 하지만, 돈이 결국 사람을 그렇게 만들어버린 것일까? 원래 사람이 그런 것일까? 소세키의 작품 속에는 항상 <돈>문제가 나온다. 아마도 돈은 우리 현실에 있어 빼놓을 수 없는 요소가 아닌가? 특별히『길 위의 생』(한눈팔기)에서는 '돈'이야기로 계속 점철된다. 우리 인생도 돈 이야기 안 할 수 없는 인생이지 않는가! 소세키는 숙부에게 유산상속 문제로 인해, 돈 문제로 인해 받은 상처와 아픔을 그는 작품 속에서 등장시키는데, 그 대표적인 작품이 마음이다. 그 작품에서 등장한 선생님의 이야기들 속에 숙부는 선생님을 더욱 외롭게 만들어버렸고, 사람에 대한 불신, 세상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진다.

 

나는 외로운 사람일세.”(마음, 27p)

 

자신이 그토록 사랑했던 여인 시즈와 결혼하였지만, 선생님 당신은 고독하고 외로운 영혼이었다. 마음을 읽어보면 알겠지만, 그 삼촌에게서 상처받은 데미지는 자신의 소울메이트 K의 운명을 좌지우지하게 된다. 소세키의 이러한 집요한 마음탐구는 삼촌에게 받은 데미지, 상처로 인해 K까지, 자신의 결혼생활까지, 그리고 자신의 인생까지 영향력을 미치게 된다. 하지만, 더 빛나는 성찰과 참회는 이렇게 나타난다.

 

숙부에게 속았을 당시 내 마음은 타인에 대한 불신으로 가득했네. 그러면서도 나 자신만은 정직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지. 세상이야 어찌 되었든 나만은 훌륭한 인간이라는 믿음이 마음 속 어딘가에 있었던 걸세. 그 믿음이 K의 일로 맥없이 무너져버리면서 나 역시 숙부와 똑같은 부류의 인간임을 깨닫고 나니, 갑자기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네. 타인을 불신했던 나는 이제 자신까지 불신하게 되어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되었네.’(마음, 304p)

 

 

   

 

 

5

자신의 인생, 사람에 대해 불신감을 가득 안겨주었던 숙부의 사기 사건은 에서 언급하기도 했다. 191043세의 소세키는 3월부터 6월까지 아사히 신문에 을 연재한다. 그리고 6월에 위궤양 때문에 나가요 위장병원에 입원한다. 8월에는 슈젠지온천에서 다량의 피를 토하며 위독한 상태에 빠진다. 이를 슈젠지의 대환이라 부른다. 19161121, 49세의 소세키는 위궤양 악화로 쓰러진다. 122일에는 내출혈로 재차 위독한 상태에 빠지고, 129일 오후 645분에 사망한다. 소세키가 이야기한 문은 무엇일까?

은 주인공 소스케와 아내 오요네의 평범하고도 단촐한 일상을 그려준다. 외부사회의 단절은 그 두 사람 부부를 하나되게 만들었다.

 

소스케와 오요네는 확실히 금실 좋은 부부다. 결혼하고 나서 지금까지 6년이라는 긴 세월동안 아직 한나절도 서먹서먹한 마음으로 지낸 적이 없다. 말 다툼으로 얼굴을 붉힌 적이 없다....그들의 생활은 넓이를 잃음과 동시에 깊이를 얻었다. 그들은 6년간 세상과 산만한 교섭을 찾지 않는 대신 그 6년의 세월을 걸쳐 서로의 가슴에 파고들었다. 그들의 생명은 어느새 서로의 밑바닥까지 파고들었다. 세상에서 보면 두 사람은 여전히 두 사람이었다. 하지만 두 사람이 보기에는 도의상 떨어질래야 떨어질 수 없는 하나의 유기체였다.’(, 168-169p)

 

하지만 그 부부는 세상을 등진 부부였다. 부모, 친척, 친구, 일반사회, 학교로부터 버림받은 타락학생이었다. 이 이야기는 20대의 산시로, 30대의 그 후, 그리고 의 이야기로 얼추 이어진다고 보면 되겠다. 소스케와 오요네, 그리고 그들 가운데 있었던 야스이, 이 삼각관계에서 부부의 도덕적인 책임을 나타난다.

 

산시로에서 등장한 산시로와 미네코는, 그 후에서는 다이스케와 미치요가 등장한다. 20대의 푸르른 청춘이 이제 30대로 접어든 셈이다. 산시로에서도 돈을 빌리는 대목이 나오는데, 그 후에서도 다이스케가 친구 히라오카와 미치요 부부에게 돈을 빌려준다. 이 세 사람은 동창이다. 다이스케가 손수 히라오카와 미치오 커플을 이어주는 중개역할까지 했다. 그러기에 남다른 관계이다. 하지만 다이스케는 한량처럼 늘 지낸다.

남의 부인이 찾아오는 것을 그렇게까지 기다릴 까닭이 없다는 생각’(165p)을 하면서도 다이스케는 스스로 자기야말로 그 누구보다도 상대방을 답답하게 만드는 사람’(176p)이라고 평한다. 다이스케는 모든 이의 만족이 아닌 오직 한 사람, 특별히 자기 자신의 결정에 따른다. 그 후의 다이스케의 결정에 대한 도덕적인 책임이 에서는 소스케 부부의 이야기로 이어진다고 볼 수 있다.

 

소세키는 이 도덕적인 잘못의 결과로 부부의 태의 문이 열리지 않는 것을 보여준다. 태의 문도 문이긴 하다. 3번의 유산을 통해 6년의 결혼생활 동안 자식이 없는 불행을 안고 산다. 더 나아가 요오네는 점쟁이한테 찾아가 아이가 영원히 들어서지 못한다는 저주 섟인 발언을 듣게 된다. 자기 부부의 잘못으로 인해 인생이 완전히 틀어진 야스이가 몽골에서 돌아와도 대면할지도 모른다는 극도의 불안감에 소스케는 뜬금없이 10일 간의 참선체험을 하게 된다.

 

자신은 문을 열어달라고 하기 위해 왔다. 하지만 문지기는 문 너머에 있으면서 아무리 두드려도 끝내 코빼기도 비치지 않았다. 다만 두드려도 소용없다. 혼자 열고 들어오너라하는 목소리가 들렸을 뿐이다(, 252p).’

 

그 자신은 오랫동안 문 밖에 서 있어야 할 운명으로 태어난 사람 같았다....그곳에는 견고한 문이 언제까지고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그는 문을 지나는 사람이 아니었다. 또한 문을 지나지 않아도 되는 사람도 아니었다. 요컨대 그는 문 아래에 옴짝달싹 못하고 서서 해가 지는 것을 기다려야 하는 불행한 사람이었다.’(, 253p)

 

소세키가 가정환경으로부터 느꼈던 불안과 트라우마는 평생 그의 가슴에 그림자로 남았다. 개인적은 가정사에서 느꼈던 불안은 외부환경에 상관없이 그의 마음을 늘 짓눌렀을 것이다. 그 어린 시절에 대해 소세키는 길 위의 생에서 이렇게 말한다.

 

“...설혹 사실에 선을 긋는다 하더라도 감정을 밟아 죽일 수는 없어. 그때의 감정은 살아 있으니까. 살아 지금도 어느 구석에서 꿈틀거리고 있으니까. 내가 죽어도 하늘이 부활시켜주니까 난들 어쩔 수 없다구.”(길 위의 생, 304p)

 

감정을 밟아 죽일 수는 없어. 그때의 감정은 살아 있으니까. 살아 지금도 어느 구석에서 꿈틀거리고 있으니까.’ 란 이 대목은 물론, 셋째 형에게 빼앗긴 첫째 형의 유품인 시계에 대한 부분이다. 소세키가 얼마나 많은 부분에서 상처받았는지를 보여주는 기록의 파편이기도 하다 

 

    

 

6

소세키가 소유한 내면의 끊임없는 불안이 그는 <>에 대한 생각을 하게 했다. 물론 소세키는 자신의 작품의 제목에 대해 그리 신경을 쓰지 않았다고 한다. 오히려 신문사에서 제목을 붙여주기도 했다고 한다. 그렇다 하더라도, 소세키의 <>은 인생의 문, 고통스런 인생의 문을 말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그의 마음 속에는 죽지 않는 아내와 튼튼한 아기 외에 면직이 될 듯 될 듯 하면서 안 되는 형이 있고, 천식으로 죽을 듯 죽을 듯 하면서도 아직 살아 있는 누이가 있었다. 새 지위를 얻을 듯 얻을 듯 하면서 아직 얻지 못한 장인도 있었다. 또한 이들과의 관계가 아직 끝나지 않은 상태로 있기도 했다.’(길 위의 생, 248p)

 

길 위의 생을 보면 진짜 겐조와 얽힌 관계들이 그를 얼마나 고통스럽게 하는지를 보여준다. 그래서 이 작품이 소세키를 이해하는 데 제일 큰 도움을 받았다고 할 수 있다. 소세키는 유리문 안에서에서 이런 말을 남긴다.

 

죽음이 삶보다 고귀하다고 나는 믿는다.

불유쾌함으로 가득 찬 이 삶을 어떻게 빠져나갈 것인가?’

 

소세키는 자살하지 않았다. 그는 건강 악화로 인해 죽었다. 하지만, 그의 불행과 고통 가운데서 야기된 모든 것들이 그에게 이런 말을 남기게 하지 않았나 싶다.

 

문을 두드려도 소용없다. 혼자 열고 들어오너라

인생의 문, 죽음의 문은 누가 대신 열어주는 것이 아니라 혼자 열고 들어가야 할 문인 셈이다. 소세키가 말한 문은 죽음의 문이란 생각을 나 혼자서 해본다. 아무리 생각해도 '한눈팔기'란 제목은 잘 지은 듯하다는 생각도 해본다.

 

 

 

7

소세키는 확실히 잘 읽힌다. 확 읽힌다. 하지만 너무 마음이 무겁고 우울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노릇인 듯 하다. 소세키의 내면을 훑는 데는 아마도 무게감 있는 감정의 저울질이 필요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소세키가 지금도 많은 이들에게 읽히는 것은 삶의 무거움에 대한 공감도 한몫하겠지만, 치열한 삶의 환경 속에서 고군분투하는 한 인간의 내면세계의 깊이를 들여다 볼 수 있는, 한 인간의 깊숙한 불안을 조망해 주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8

위화는 모든 이야기는 영혼을 지니고 있다고 했다. 소세키가 지닌 이야기의 영혼 때문에 우리는 아니, 적어도 나는 읽는다. 누군가 그런 이야기를 하지 않았던가? ‘한 개인, 한 사람이 바로 세계라는 말...소세키에게 그 말이 적용되겠다 싶다

  -소세키의 작품 중에 오른쪽은 읽은 책들이고, 왼쪽은 읽으려고 빌린 책들이다. 현암사의 소세키전집은 진짜 탐나는데, 카알 벨루치 요즘 많이 참고 있습니다. ㅎㅎ내 마음대로 소세키 읽기는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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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19-09-08 19: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런..... 이제 저는 알라딘에서 소세키 관련해서 깝치지 말아야겠네요.

나의 자리는 어디인가......

카알벨루치 2019-09-08 19:44   좋아요 0 | URL
그 자리가 그 자리이지 어디긴요 ㅋㅋ소세키 매력적이네요 인제서야 읽어내고 있습니다 소요 오늘도 즐겁게 하루 마무리 하세요 지금 설인가요?

syo 2019-09-08 19:46   좋아요 1 | URL
ㅎㅎㅎㅎ 저는 영대병원이요. 엄마 내일 수술이라서 오늘은 여기서 보초섭니다. 카알님도 주말 마무리 잘 하세요^-^

카알벨루치 2019-09-08 19:50   좋아요 0 | URL
아휴 수고가 많네요 어머니 수술 잘 하시길 어여 쾌차하시길 기도합니다 ~거기서도 책 볼듯 하네요 ㅎㅎ

syo 2019-09-08 19:51   좋아요 0 | URL
정답 ㅋㅋㅋㅋ

stella.K 2019-09-09 19: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작 읽기 부럽습니다. 전 맘에만 있고 정작 읽지는 못하고...ㅠ
몇년 전 <나는 고양이로 소이다> 조금 읽다 말았습니다.
좋은 작품이긴한데 잘 안 읽혀지더라구요.
게다가 지금은 그런 짓 안하지만 당시 이벤트 도서를 엄청 많이하고
살아서 자꾸 읽는 게 미뤄지더라구요.
소설 보단 에세이나 인문학을 주로 읽기도 했고.
그런데 카일님은 <...고양이...>는 아직 안 읽으셨나 봅니다. 그건 안 다루셨네요.

카알벨루치 2019-09-09 20:01   좋아요 1 | URL
<나는 고양이...>는 전에 이북으로 읽다가 말았는데 이게 대개 두껍네요 빌렸으니 읽어야겠죠 읽으면 리뷰 올릴께요~리뷰가 밀려서 큰일입니다 그나저나 건강 늘 유의하소서

페크(pek0501) 2019-09-15 12: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 멋지군요. 한 작가를 탐독하기!
저는 <도련님>을 꽤 재밌게 읽었었습니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는 오디오북으로 들었는데 신선했어요.
카알 님의 탐독이 계속되시길...
소세키의 다른 책 두 권을 가지고 있는데 올해 안으로 탐독해 보겠습니다.

카알벨루치 2019-09-15 12:42   좋아요 1 | URL
소세키의 전집을 읽으려고 시작한건 아닌데 <산시로>의 첫 감동이 너무 커서 읽고 있긴합니다 ㅎㅎ
 

 

1

테렌스 데 프레의 생존자라는 책에 보면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폴란드에 있는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있었던 일이다. 이 책은 2차 세계대전의 홀로코스트에서 살아남은 생존자들에 대한 책이다. 거기에 보면 커피 반 잔에 대한 일화가 있다. 수용소에서 매일 커피를 한 잔씩 포로들에게 주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 커피는 향긋한 향이 나는 아메리카노나 내가 매일 드리퍼로 내려 마시는 커피의 커피향도 아니고, 대한민국의 자랑꺼리인 맥심믹스 커피도 아니다(맥심믹스 커피를 외국인들이 그렇게 좋아한다고 한다). 그 수용소에서 내주는 커피는 악취가 나는 물에 불과했다. 수용소의 포로들은 목욕도, 심지어 세수할 물조차도 변변찮았다. 포로들 중에는 그 커피 한잔을 냉큼 다 마시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커피 반잔은 마시고, 반잔은 고양이세수라도 하고 손도 씻고 그러했다고 한다. 수용소에서 세수는 무슨? 수용소에 있는 누구에게 잘 보이려고, 다 그 사람이 그 사람인데, 왜 그렇게 커피 반잔을 낭비한단 말인가? 수용소 내에서도 서로 다른 생각들이 교차했을 것이다. 하지만, ‘커피 반잔을 자신의 용모에 투자(?)한 사람들이 끝까지 생존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 다들 들어본 이야기일 것이다. 나는 이 이야기를 접하면서 새삼스럽게 커피 반잔의 힘에 대해 생각해 본다. 소통전문가인 저자 김창옥은 커피 한잔을 다 비운 사람들의 가슴에게 있었던 것은 절망이라고 했다. ‘커피 반잔을 남겨두고 자신을 관리(?)했던 사람은 희망을 가슴에 담아두었다고 볼 수 있겠다. 굳이 키에르케고르의 절망은 죽음에 이르는 병이라는 유명한 문구를 갖다대지 않는다 하더라도 절망은 희망을 좀먹는 좀비와도 같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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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번연이 쓴 대작 천로역정을 읽었다. 크리스천들에겐 성경 다음으로 읽어야 할 책이라고 선전한다. 읽어 보니 그럴 만하다고 생각한다. 존 번연은 라이센스가 없는 설교자였다. 정식적인 신학수업 과정을 밟지 않았기에 당대의 교권에서 추방을 당한 셈이다. 그 결과는 그는 감옥에서 12년을 수감생활을 해야 했다. 12년이 그에게 없었다면 과연 그의 작품이 세상에 얼굴을 내밀 수 있었을까? 책을 읽으면서 가장 인상적인 대목은 순례자인 크리스천’(주인공 이름이기도 하다)이 동행자였던 유순한과 함께 처음 봉착한 위기는 바로 낙담Despond’이라는 이름의 구렁텅이를 만나는 대목이었다. 같이 동행하겠다던 유순한은 이렇게 말한다.

 

길을 떠나자마자 이처럼 험악한 사태에 맞닥뜨린다면 남은 여정이나 목적지에서 겪게 될 일은 더 말해 무엇하겠소? 살아서 이 늪을 빠져나가거든 그 멋지다는 나라에는 댁 혼자 가시꾸려. 난 이쯤에서 관두겠소.”(천로역정, 36-37p)

 

유순한은 그 길로 낙담의 늪을 빠져나와 돌아가 버린다. ‘옹고집은 처음부터 동행하기를 거부했는데, ‘유순한옹고집의 길을 따라 가버린 것이다.

 

낙담이다. 낙심이다. 절망이다. 좌절이다.

우리 인생에 부딪히는 가장 큰 난제가 아닐까 생각한다. 내가 선 자리에서 내가 버틸 의지를 내 스스로 포기하는 것이 바로 낙담이고, 낙심이고, 절망이고, 좌절이 아닐까 싶다. 존 번연이 감옥생활을 한 이유가 무엇인가? 자기 확신과 믿음에 따라 복음을 설교하다가 갇힌 절망적인 감옥이었다. 하지만, 그는 거기서 글을 썼다. 위화의 글쓰기의 감옥에서 발견한 것이란 책 제목처럼 그의 감옥은 글쓰기의 감옥이 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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잭 캔필드는 자신의 저서 내 영혼의 닭고기 스프에서 이런 말을 남겼다.

 

당신이 원하는 모든 것은 두려움 저편에 존재한다.”

 

동의한다. 우리가 가진 모든 두려움, 절망, 좌절, 낙담, 낙심, 트라우마, 실패감, 열패감 등. 그 모든 것들을 넘지 못한다면 과연 우리는 우리다울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해본다. 존 번연의 주인공처럼, 낙담의 늪 너머에 멋진 나라가 존재하는 것이다.

    

  

 

4

솔직히 나는 김창옥의 강의를 유튜브를 통해 많이 접했고, 중복된 내용도 많다. 그래서 더 빨리 속도감 있게 책을 읽게 된 지도 모른다. 김창옥은 사연 뒤에 숨지 마세요’(38p) 라는 이야길 한다. 우리의 우여곡절의 사연들 뒤에 우리는 사연이 그림자가 되어 우리를 움츠러들게 만든다. 언제쯤 맨홀 뚜껑을 열고 지상으로 올라갈 수 있을까?’(내가 늘 애용하고 좋아하는 문구란 걸 여러분들은 아실 것이다)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해 댄다. 그 때 우리는 커피 반잔의 힘을 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5

문득 이전에 읽은 헤밍웨이의의 말에서 본 문장이 생각이 난다.

 

˝작가는 우물과 비슷해요. 우물이 마르도록 물을 다 퍼내고 다시 차기를 기다리는 것 보다 규칙적인 양을 퍼내는 게 낫습니다.˝(헤밍웨이의의 말, 7p)

 

나는 작가는 아니지만, 종종 글과 글의 소재를 숙성시킨다는 대의명분(?)아래 글쓰기를 미룬다. 글쓰는 속도가 읽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지 않는가! 하지만 헤밍웨이는 규칙적인 양을 퍼내는 게 낫다고 이야기한다. 이런 예는 존 치버의 생애에서도 살펴볼 수 있다.

 

가족과 함께 서튼 플레이스 근교의 아파트로 이사하다. 이후 오년 동안 매일 아침 정장을 차려입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실로 내려가 점심시간까지 글을 썼다.’(1946/34)(기괴한 라디오, 479p)

 

   

 

   

6

우리가 잘 아는 스티븐 킹은 그의 저서 유혹하는 글쓰기에서 자신이 ‘6년 동안 이 책상에서 썼는데, 당시 나는 술이나 마약에 취해 제정신이 아니었다. 마치 정처 없이 바다 위를 떠도는 배의 선장과도 같았다’(123p)라고 기술한다. 하지만, 그는 그리고 글쓰기도 중단하지 않았다’(122p). 스티븐 킹은 세익스피어, 포크너와 예이츠와 쇼와 유도라 웰티 같은 작가들은 천재이며 거룩한 우연의 산물이다. 우리처럼 평범한 사람들은 그런 재능을 갖기는커녕 제대로 이해하지도 못한다. 아니, 대부분의 천재들은 자기 자신조차도 이해하지 못한다. 그래서 많은 천재들이 불행한 삶을 살아가면서 자기들은 결국 우연이 빚어낸 괴물에 불과하다고(적어도 어느 정도는) 느낀다.’(172p)

결국 스티븐 킹 자신도 우연이 빚어낸 괴물이 되었던 것이다. 어떻게 가능했는가? 계속 글을 썼기 때문이다. 특별히 그의 저서에서 <인생론>을 읽어 보면 왜 그가 글쓰기는 절망의 얼굴에 침을 뱉는 일’(308p)이라고 했는지 알 수 있다. 그는 1999724, 산책을 하다가 봉변을 당한다.

 

허파가 함몰됐군.”

가슴에 튜브를 꽂아야 합니다. 스티븐. 약간 좀 아플 거예요. 조금만 참으세요.”(319p)

 

그는 5주 후에 다시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날 나는 꼬박 1시간 40분 동안 글을 썼다. 스미스의 승합차에 받힌 이후부터 그때까지 이렇게 오랫동안 앉아 있어 보기는 처음이었다. 작업이 끝났을 때 나는 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으며 너무 지쳐서 휠체어에 똑바로 앉아 있을 기력조차 없었다. 골반의 통증은 숫제 재앙에 가까웠다. 그리고 처음 500개쯤의 단어를 쓰는 동안 유별나게 힘이 들었다. 마치 난생 처음으로 글을 써보는 것 같았다. 예전에 갖고 있던 글쓰기 요령도 내 머리 속에서 몽땅 사라진 듯했다. 나는 마치 시냇물 속에 비뚤비뚤 놓여 있는 미끄러운 징검다리를 건너가고 있는 힘없는 노인처럼 낱말 하나하나를 어렵사리 써 내려가고 있었다. 그날은 영감도 떠오르지 않았다. 다만 오기를 가지고, 그리고 이렇게라도 계속하다 보면 곧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을 품고 버텨낼 뿐이었다.’(330p)

 

만신창이가 된 그의 몸을 이끌고 글을 써가기 시작한 스티븐 킹을 보면서 역시 작가는 다르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그는 커피 반잔의 힘을 안 인물이었다.

 

    

 

7

글쓰기의 목적은 돈을 벌거나 유명해지거나 데이트 상대를 구하거나 잠자리 파트너를 만나거나 친구를 사귀는 것이 아니다. 궁극적으로 글쓰기란 작품을 읽는 이들의 삶을 풍요롭게 하고 아울러 작가 자신의 삶도 풍요롭게 해준다. 글쓰기의 목적은 살아남고 이겨내고 일어서는 것이다. 행복해지는 것이다. 행복해지는 것...글쓰기는 마술과 같다. 창조적인 예술이 모두 그렇듯이, 생명수와 같다. 이 물은 공짜다. 그러니 마음껏 마셔도 좋다. 부디 실컷 마시고 허전한 속을 채우시기를.’(332p)

 

글쓰기의 목적은 살아남고 이겨내고 일어서는 것이다는 말은 그의 삶에서 녹아내린 말이기도 하다. 하지만, 글쓰기는 헤밍웨이처럼 매일 물을 퍼내고, 존 치버처럼 매일 지하실로 내려가는 일처럼, 스티븐 킹도 동일한 이야기를 한다.

 

뮤즈는 분명히 존재하지만 그가 여러분의 집필실에 너울너울 날아들어 여러분의 타자기나 컴퓨터에 창작을 도와주는 마법의 가루를 뿌려주는 일은 절대로 없다. 뮤즈는 땅에서 지낸다. 그는 지하실에서 살고 있다. 그러므로 오히려 여러분이 뮤즈가 있는 곳으로 내려가야 한다. 그리고 내려간 김에 그의 거처를 잘 마련해 줘야 한다. 다시 말해서 찡찡거리는 힘겨운 노동은 모두 여러분의 몫이라는 것이다.’(175p)

 

글쓰기의 고전古典이라고 할 수 있는 스티븐 킹의 저서는 읽지 못하신 분이라면 추천한다. 왜 그 책이 고전인지 느낄 수 있다. 작가들이 다들 그렇지만, 유쾌한 재미있는 작가라고 생각한다. 그의 책의 <이력서>란 chapter에선 자기 이야기를 줄기차게 하고 있는데, ‘이 사람 괴짜 아니야? 마약과 알코올 중독자이기도 하고...’ 뭐 그런 생각을 했더랬다.

 

 

 

8

이 글을 읽고 있는 알라디너라면, 다들 글쓰기가 커피 반잔의 힘’, 커피 반잔의 힘은 글쓰기에서 나온다라는 것에 동의할 수 있는 분들일 것이다.

 

 

 

 

9

글쓰기는 절망의 얼굴에 침을 뱉는 일이다’-스티븐 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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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9-08-25 18: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신문을 볼 때면 으레 커피 한 잔을 가져와서 마시며 보게 되고,
글을 쓸 때면 으레 커피 한 잔을 가져와서 마시며 쓰게 되고...
커피 한 잔의 힘으로 합니다, 저는...

흥미롭게 읽고 갑니다.

카알벨루치 2019-08-25 19:00   좋아요 1 | URL
페크님은 커피반잔의 힘을 아시기에 반잔을 더한 한잔의 힘으로 글을 쓰신다고 감히 말씀드립니다 ㅎㅎㅎ 잘 지내시죠? 인제 가을입니다 감기조심하소서 조약한 글에 댓글 감사 드립니다 ^^

cyrus 2019-08-26 07: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가끔 글을 쓸 때 하리보 젤리를 먹어요. 껌을 씹으면 집중력이 높아진다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입에 무언가를 씹으면 글 쓰는 일에 몰입이 잘 돼요. ^^

카알벨루치 2019-08-26 08:39   좋아요 0 | URL
우리 꼬맹이들이 좋아하는 하리보 젤리를 드신다는 말씀 ㅎㅎ집중력과 몰입을 위해 소도구를 애용하는 사이러스님은 엄연히 꾼이시군요 독서꾼^^
 

“책을 읽는다는 게, 우리 생의 일회성을 비웃어줄 수 있는 가장 멋진 방식이라고 생각하긴 해.”(81p)




정미경 소설 속, 그 섬에는 서점이야기가 나온다. 문득 <섬에 있는 서점>이란 책과 요즘 읽고 있는 망구엘의 <은유가 된 독자>가 생각난다.


인간은 유한한데, 그 유한함을 망각하고 긍정하고 위로하는 게 “독서”가 아닐까? “우리 생의 일회성을 비웃어줄 수 있는 가장 멋진 방식”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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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9-08-20 19: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런 생각을 가져야 하는데 저는 한때 엉뚱하게도 소설을 읽는 게 일회성 같아
한동안 소설을 안 읽었다는...
소설은 마음만 먹으면 몇번을 읽을 수가 있는 건데 말입니다.ㅠ

카알벨루치 2019-08-20 21:12   좋아요 2 | URL
다치바나 다카시는 소설이 픽션이라는 이유로 소설읽기는 하지 않는다고 자신은 fact, 넌픽션만 읽는다고 했지요 쟝르를 불문하고 읽는다는 것은 대단한 행위인 듯 합니다 이래야 독서를 더 하겠죠 ㅋㅋ
 

  

1

이 책은 저자 부부가 2017년 여름 세계여행을 떠나 유럽, 아메리카, 오세아니아의 31개구을 돌면서 여행 중에 세계 곳곳에 살고 있는 젊은 한인 이민자들을 만나 30여차례 인터뷰한 내용을 모아 이민자 인터뷰라는 이름으로 연재한 이야기를 보여준다.

 

 

 

2

사람이라면 누구나가 다 장강명의 소설 한국이 싫어서에서처럼 한국의 부정적인 면을 떠올리면서 한국 사회, 한국이란 나라를 떠나고 싶어하는 때가 있을 것이다. 몇 년 전이었다. 삶의 위기가 찾아왔다. 그 위기는 한국을 떠나고 싶을만큼 강렬했다. 물론 나는 젊은 시절부터 외국에서 생활하고픈 욕망이 있었다. 아무런 시선의 제한을 받지 않는 나라에서 내가 누리는 자유는 정말 내 안에 잠재된 또 다른 나를 발견하게 한다. 몇 번 되지 않는 외국여행은 언제나 그런 내 자신의 모습을 일깨워주기도 했다.

    

 

3

지인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내가 갈 수 있는 나라는 바로 미국이었다. 오우 아메리카! 북아메리카! 미쿡, 와우~꿈에 그리던 미국! 이때만 해도 나는 거품을 뺀 미국이 아닌 단지 거품이 가득 찬 미국이라는 나라란 말로도 설레고 가슴이 뛰었다. 그런데, 미국은 미국인데, ‘또 다른 미국이었다. 바로 알라스카! ALASKA! 여러분, 아는가? 알라스카가 미국의 또 다른 영토란 것을? 지도를 찾아 보았다. 말로만 듣던 공항이름,‘앵커리지란 고유명사가 눈에 들어왔다. ‘설국을 연상시키는 눈덮인 천지, 문명의 이기에서 벗어난 자연 그대로의 멋! 강도 높은 추위! 백야도 있었던가? 모르겠다! 워낙 사람들이 이주하기를 꺼려서 살기만 해도 정부에서 보조금을 제대로 지급해준다는, 천연자원이 많아서 그 혜택을 이주민들에게 돌려준다는 정보도 접했다(하지만 춥고 멀기에 생필품의 가격도 굉장히 비싸다는 사실) 가장 강력한 정보는 거리를 이동할 때는 택시를 타야 하는데, 택시가 항공기라는 사실이었다! 우하하하! 비행기가 택시인 셈이다.

 

 

 

4

영주권 이야기이다.

알라스카에 계시는 분과 통화를 했다. 이전에 거기서 일하시던 분이 7년인가 존버(?)하시다가 영주권이 나오니깐 가족들을 초청해서 바로 미국 본토로 잽싸게 이주하셨다는 이야기를 하셨다. 영주권은 소중하니깐!!! 하지만, 그 곳에 사시는 분들의 가슴에는 기대가 무너진 실망감을 이루 말할 수 없었다고 했다. 미국이란 나라가 주는 영주권이 얼마나 대단한가! 싶었다.

 

 

5

지인 중에 미국에서 유학을 하시고 국내로 들어오셨다. 아이들이 국내로 들어왔다가 국내적응하는 길 보다는 아이들을 다시 도미시켜 유학길에 오른 것으로 안다. 중요한 것은 그 분이 국내에 들어왔는데, 영주권이 나와서 그 영주권을 어떻게 해야 할지 선택을 해야 했다. 그토록 사람들이 간절히 원하던 영주권! 시민권이 아니지만, 시민권으로 갈 수 있는 영주권이기도 하지 않은가! 영주권을 계속 유지하려면 다시 미국으로 들어가서 얼마 동안 거주해야 한다는 것으로 나는 알고 있다. 찾아보지는 않겠다. 대충 그렇게 알고 있다(우리 시대는 정보과잉시대이다. 너무 많은 검색과 너무 많은 정보는 내게 해롭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귀찮아서 찾지 않았음을 양해바랍니다). 그런데, 그 분이 그 영주권을 포기하셨다! 영주권이 주는 모든 혜택과 이익을 내려놓았다.

 

 

 

6

영주권에 대한 두 사람의 이야기는 그 분들의 상황과 환경과 처지를 고려해야 할 것이다. 어느 누구도 비판하고 판단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이냐? 무엇이 가장 중요한 가치이냐? 그 질문은 늘 우리를 따라다니는 듯 하다.

 

바로, ‘where가 아니라 how’란 문제, 명제(thesis)이다.

 

 

7

그래서 나는 한국을 떠났다고 하면 단순히 한국이 싫어서’, ‘한국의 분위기와 사고방식과 가치관이 싫어서떠났다고 볼 수 있다. 물론, 대부분의 이민자들은 직장 생활 가운데서 느껴지는 상사의 갑질, 회식문화, 근무환경, 노동자에 대한 열악한 대우와 몰이해 등이 이민의 이유로 한 몫을 한다. 각 장의 소제목 중에서 한국에 대한 부정적인 것이 싫어서 이민한 이들의 이야기만을 소개해본다면?.

 

-‘행복하는 말이 낯설다면?’

-‘재미없는 일은 그만!’

-‘오후 330분 퇴근?’

-‘우물 안의 개구리처럼 살기는 싫어

-‘이기적이라고?’

-‘평생을 로 살고 싶지 않아

-‘당신의 돈만큼 나의 땀도 중요하기에!’

-‘내 걱정은 NO!’

 

하지만, ‘한국이 싫어서가 아니라 이 나라가 좋아서’(44p) 이민을 택한 이들도 있다. 슬로바키아 브라티슬라바, 프랑스 그르노블, 독일 에센, 영국 런던, 캐나다 토론토 2, 미국 버지니아, 콜롬비아 보고타, 호주 시드니, 호주 멜버른, 뉴질랜드 오클랜드에서 이민한 경험을 인터뷰한 이 책은 소위 젊은이들에게 헬지옥이라 불리는 한국 땅을 떠나 또 다른 유토피아(utopia)를 찾아 나서는 파랑새 신드롬을 선물하진 않는다. 내가 좀 더 젊었더라면 그랬을 수도 있겠지만, 이 책은‘ ‘어디에서보다는 어떻게살아가느냐 하는 것이 우리 삶의 질과 행복을 결정한다는 것(292p)에 대해 말해주고 있다.

 

 

 

8

콜롬비아 보고타의 김소연님의 인터뷰를 보면서 필리핀을 여행했을 때의 기억이 떠오른다. 그때 우리는 한 주는 도시 투워, 한 주는 관광으로 이뤄졌다. 첫 주는 하루 하루 미션을 주고 마닐라 도시를 이곳 저곳 조를 짜서 움직이면서 훑어보는 프로그램이었다. 소액의 금액으로 식사와 교통비를 제공한 채. 젊은이들과 함께 도시투어하는 것은 굉장한 체험이었다. 하지만 무조건 저녁시간 전에는 돌아와야 한다는 지침이 있었다. 그런데, 하루, 이틀...저녁시간을 훌쩍 넘어 늦게 도착한 조가 있었다. 그때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현지에 사시는 분이 굉장히 긴장하고 초조해하셨다. 바로 필리핀이란 나라가 가진 안전에 대한 위협 때문이었다. 총기사고는 수시로 나고, 사람 죽는 일은 태반이었다. 콜롬비아의 안전도 만만치는 않았다. 휴대폰이나 지갑을 길 거리에서 내놓으면 안 된다는 경고는 그런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나라의 상황, 선진국이거나 후진국이거나 상황에 따라 또 다른 면모를 보여줄 것이다. 그 장소, where에 있어서 위험하고, 그 공간이 아니라 다른 공간으로 옮겼다고 해서 덜 위험하고 그런 면도 분명히 있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How’의 문제이다. ‘보이는 위험만이 전부가 아닌 보이지 않는 위험은 언제나 우리 인생에 산재해 있지 않는가!

 

 

 

9

많은 이들이 이민가고 싶은 나라가 바로 캐나다인데, 캐나다 토론토에서 이민자로서 정부의 공무원이 되었다는 이장헌님의 사연은 참 대단하다 싶다. 우리나라에서 외국인이 공무원이 된다는 것을 상상할 수 있는가? 그만큼 캐나다가 어떤 나라인지, 다민족, 다인종의 열려진 사회란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물론, 우리가 그 곳에서 살아보지 않고선 그 곳의 상황과 분위기를 파악할 수 없다. 내가 직접 피부로 체감해 봐야 내 판단력과 분별력이 명료해지는 것은 사실이다.

 

 

 

10

책이 주는 매력이 무엇인가? 세계를 투어한 듯한 간접 체험, 통찰력(insight)이라고 할까? 마치 제러드 다이아몬드가 대변동에서 미국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틈새정보라는 말을 사용한다. 그것을 차용한다면 틈새통찰’(?)이라고 할 수 있을까? 제러드 다이아몬드 이야기가 나오니 미국이야기를 해야겠다. 그래서 나는 한국을 떠났다에선 미국 버지니아로 이민간 임지혜님 이야기가 나온다. 미국이란 나라? 제러드 다이아몬드는 미국의 가장 큰 문제점을 <양극화>로 뽑았다. 민주당과 공화당의 양극화, 정치의 양극화는 당연히 경제의 양극화로 드러난다. 그 벌어진 간격을 메울 수 없는 만큼 벌어진 나라가 미국인데, 그것이 주는 파급효과는 미국에만 제한된 것이 아니라 앞으로 전세계적으로 영향력을 미칠 것이라는 사실이다. 미국의 현상이 먼 데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빈익빈 부익부가 가장 선명한 나라가 또한 미국이기도 한 것이 그 이유이다. 대변동이야기는 기회가 된다면 따로 글을 적고 싶다. 글이 또 삼천포로 빠질 뻔했다는...

 

    

 

11

이민을 가고자 한다면, 이민가고자 하는 나라에 대한 준비가 필요한데, 두말 할 것도 없이 바로 언어이다. 하지만, 또한 그 나라가 자신에게, 자신의 가치관에 부합한 지를 먼저 따져보아야 한다. 책이 책인지라, 당연히 이민자들이 살아가는 도시와 가족사진이 게재되어 있는데, 그것이 그림의 떡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독자는 알아야 한다. 행복은 저기 건너편 어디쯤에 있을 것이라는 유토피아적 기대 보다는 오히려 이민사회에 대한 현실적인 적확한 분석과 평가가 나를 더 행복으로 이끈다는 사실이다.

 

 

 

12

결국 행복은 언젠가 내가 영화 <레버루셔나리 로드>의 리뷰에서 밝힌 것처럼, ‘Where’의 문제가 아니라 ‘How’의 문제이다. 내가 최애했던 가수, 김광석은 <행복의 문>이란 노래에서 이렇게 노래했다.

 

어두워지는 하늘을 보며

오늘 또 하루는 스쳐 지나가고

어제의 다짐 모든 꿈들을

다시 또 새기며 애써 돌아보네

오늘 하루는 어제보다는

나을 것 같다고 생각해봤지만

오늘도 역시 그대로인 걸

모두가 내게서 시작된 일이지

익숙해진 무감각 속에

인정하면서 살아가지

세상은 늘 변해가는 것

우리 가슴을 열어야지

쳇바퀴 돌 듯 똑같은 날의

길어진 그림자 고갤 들질 않고

풀리지 않는 실타래처럼

뒤엉킨 생활은 돌이킬 수 없네

 

 

익숙해진 무감각 속에

인정하면서 살아가지

세상은 늘 변해가는 것

우리 가슴을 열어야지

쳇바퀴 돌 듯 똑같은 날의

길어진 그림자 고갤 들질 않고

풀리지 않는 실타래처럼

뒤엉킨 생활은 돌이킬 수 없네

 

행복의 문은 자신의 마음

자신의 노력에 달려 있는 것

열심히 살고 보람도 얻고

진정한 행복을 모두 찾았으면

열심히 살고 보람도 얻고

진정한 행복을 모두 찾았으면

행복의 문은 자신의 마음

자신의 노력에 달려 있는 거야

(이 글을 적으면서 김광석의 노래를 부르고 싶다. 그리운 목소리이다!)

    

이렇게 노랠 불렀고 나도 젊을 때 열창을 했더랬는데, 그는 왜 그렇게 자살을 한 것일까? 삶이, 인생의 ‘How’가 노래만큼 쉽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생은 여전한 딜레마이다.

 

 

 

13

한국을 떠나고, 떠나지 않고의 공간(where)의 문제가 아니라,

결국, 인생은 ‘HOW’의 문제이다!

 

 

 

*역시 도서관이 좋다. 이런 책도 내가 읽게 되다니! 감으로 고른 책인데, 순식간에 읽어버렸다! 이런 책 열렬히 환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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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8-13 12: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8-13 12: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수연 2019-08-13 13: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민은 아닌데 항상 이 나라를 떠나는 것에 대해서 생각하는 순간들이 많아요. 어느덧 중년이 되어 지나온 시간을 돌이켜보면 이 나라에서 잃은 것보다는 얻은 것들이 많고 이 나라에서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중산층에 언제나 속했지만 뭔가 껍데기의 삶이라는 인식이 언제나 강했던듯 싶어요. 자의적으로 떠날 일은 거의 없을듯 싶은데_ 이젠 나이도 슬슬 먹어서_ 그래도 떠나고싶다는 마음은 가시지 않네요. 추천해주신 책은 읽어봐야겠어요. 떠날지 남을지 알 수 없지만요. :)

카알벨루치 2019-08-13 13:45   좋아요 1 | URL
이민에 대해서 정확한 지식과 준비, 그리고 언어는 여기서 준비하는 것보다 직접 부딪히면서 배우는게 낫고, 학술적으로 들어가면 더 고급단계로 들어가야겠죠 인터뷰대상자들이 다 젊어서 좌충우돌하면서 배울수 있는데 나이가 있는 우리 세대는 아마 좀더 고려해볼 사항이 많겠죠 이것도 좋고 저것도 좋은데 더 나은 최선의 선택이 필요한거겠죠 가고싶은데 못가는건 항상 현실에 대한 불만과 볼멘소리가 나올수 있으니 정확한 자가진단이 필요합니다 아니면 아예 작정하고 몇개월 살아보시는 것도 좋은 방인인데 가족이있으니 제약이 많겠죠 정말 떠나고 싶으시다면 준비가 필요하겠습니다 책은 꼭 한번 읽어보세요 아님 저자나 인터뷰대상자들과 연결되서 정보를 알아보시는 것도 좋구요! 한국의 정서와 행정과 시스템, 가치관과는 판이한 곳이니 그런 부분도 참조하시면 좋겠네요

어디서나 무엇을 하건 자기만족의 최대값을 낼 수 있는 그 곳을 잘 찾으시길 바래요 화이팅! 사랑은 움직이는거야 란 이전 광고문구처럼 사랑도, 사람도 움직이는거니깐요 ^^

수연 2019-08-13 15:11   좋아요 1 | URL
‘자기만족의 최대값을 낼 수 있는 그곳‘ 찾아보도록 노력해볼래요. 지금 상태로서는 도서관에 일단 가서 이 책을 빌리는 일부터!

2019-08-13 14: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디든 그곳이 익숙해지면 삶이 무료해지는 것 같아요.
어느 스님이 그러시더라구요. 반복되는 일상을 매일 매일 새롭게 맞는 것이야말로 깨어있는 삶이라구요.
어느정도 수행을 해야 그런 경지에 이를 수 있을지.......^^;;
정말이지 where의 문제가 아니라 how문제인 것 같아요. 내 삶의 주인이 된다는 건~

카알벨루치 2019-08-13 14:56   좋아요 1 | URL
미국사람들은 평균적으로 5년마다 이동한다고 하더군요 그럼 설님은 미쿡으로? ㅋㅋㅋ매일을 새롭게, 하루를 그렇게 누리는게 우리의 몫이죠! 매너리즘은 최대의 적이고~인간은 인간인지라...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은 계속되어야 하죠 수동이 아닌 능동으로! 삶은 계속 keep going on~

2019-08-13 15:02   좋아요 1 | URL
정말이지 저도 살림이 간단하여 5년마다 이동할 수 있긴 한데....... 책이 문제입니다. ㅎㅎㅎ;;;;;;;
책만 없다면 가뿐하게 옷가지 몇 개 챙겨 이동네 저동네 풀옵션 원룸을 옮겨다니며 살아보고 싶긴 해요. ^^
글로 옮기고보니 정말 그렇게 살아보고 싶네요! ㅎㅎㅎ
뱅기타기에 적응을 해야 하는까 일단은 미쿡은 넘 멀고 제주도라고 고려해봐야겠어요. ㅋㅋ

카알벨루치 2019-08-13 15:12   좋아요 0 | URL
책 안되면 저한테 맡기세욧! 그리고 소확행을 따라~~~ㅋㅋㅋㅋㅋ책 맡길데는 알라딘에 많을껑요! 책이 그렇죠 이삿짐센터에서 젤 싫어하는 그룹중에 하나가 책많은 사람이죠 헬쓰클럽이 기피대상 1호이고 ㅎ

psyche 2019-08-14 09: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민자로서 where 가 아니라 how 가 문제라는 말씀에 백만번 동감입니다!

찾아보시지 않은 영주권에 대한 이야기는 영주권이라고 하는 것이 말 그대로 나 여기 살겠다고 하는 것이기 때문에 다시 한국으로 돌아갔으면서 영주권을 유지하는 건 무척 어려워요. 물론 리엔트리 퍼밋을 받으면 되긴 하지만 그것도 1,2년이니까요. 6개월에 한번씩 미국으로 드나들 수 있는 사람이 아닌 다음에는 영주권을 포기할 수 밖에 없죠.

저 책의 저자들이 브런치에 글을 올려왔더라고요. 책에는 거기에 없는 인터뷰 도 있다고 하던데... 암튼 이민자의 입장에서 읽으면서 이런저런 생각을 많이 했네요. 공감가는 내용도 많았고요. 덕분에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카알벨루치 2019-08-14 09:55   좋아요 0 | URL
긴 댓글 먼저 감사드립니다 이민자가 아닌 저이지만 책을 읽으면서 많은 생각을 했고 “환기”라는 단어가 생각나더군요 수연님이 그 브런치의 글을 읽어봤음 좋겠네요 제러드 다이아몬드가 ‘정확한 자기평가’란 말을 했는데 개인이든, 국가이든 모두가 곱씹어야할 대목인듯 합니다 이민도 마찬가지인 듯 합니다 anywhere이든 자신의 마음의 평안을 유지할 수 있는 곳이 바로 이민가야할 where가 아닐까 싶네요 즐거운 하루되십시오!

레삭매냐 2019-08-14 11: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미쿡에 사시는 분의 지인이 저명한
기업의 부사장의 자리에까지 오르셨는데,
여전히 자신은 이방인일 수 밖에 없다는
자조적인 말을 하셨다고 하더라구요...

자기 자식들 그 다음 세대에나 완전한
그 나라 시민이 되지 않을까 싶다고 하시
던 말쌈이 기억나네요.

카알벨루치 2019-08-14 11:45   좋아요 0 | URL
미국에는 평등 평등을 이야기하지만 가장 차별이 심한 나라가 아닌가 싶어요 근데 그 부사장님 다음세대도 그나라 시민이라고 생각하지만 정작 본인이 의식치 못하는 차별을 당하지 않을까 싶어요 미국이란 나라는 <대변동>을 읽으면서 새로운 면을 많이 알게 되었네요
 

1

  문학이 좋은 것은 문학의 프레임frame에는 한계limit가 없기 때문이다. 거기엔 무한대의 포용과 허용의 게토ghetto가 존재한다. 문학이란 우주는 끊임없는 용납과 얼싸안음으로 독자를 품고 위로한다. 문학은 보여주는 것이지 설명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문학은 나를 도덕으로, 사상이나 이데올로기로, 기타 그 어떤 매개를 통해 단죄하거나 비판하거나 공격하지 않는다. 문학의 인물들이나 캐릭터들은 텍스트 위에 살아있어 내게 공감의 눈물과 동감의 쾌락과 위로의 전율을 선물한다.

문학은 그래서 위대하다.

 

인생이 문학이고, 문학이 인생이지만,

여전히 문학은 텍스트라는 지면 위에 영혼의 날개를 펼쳐 자유를 만끽하게 해 준다. 그것이 문학이 주는 카타르시스다.

 

 

 

2

  존 치버의 단편소설집 기괴한 라디오에 보면, <애절한 짝사랑의 노래>란 이야기가 있다. 잭은 남성편력이 대단한 조앤을 세월이 지나도 늘 한결같은 시선으로 설레어 하고 흥분된 태도를 유지한다. 시간이 지나도 그 감정의 tension은 늘 한결같다. 조앤은 지나칠 정도로 이 남자, 저 남자에게 기웃거렸고, 심지어 아주 점잖아 보이는 노신사가 외설스러운 제안’(259p)을 할 정도였다. 자신의 몹쓸 평판에 대해 조앤은 자신을 돌아보기보다 자신을 도마질하는 이웃들을 향해 그 사람들이 내 삶을 비참하게 만들었어”(260p)라고 책임을 회피한다.

 

 

 

3

  조앤은 그런 남성편력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남성을 바꿀 때마다 지인들을 파티에 초대해서 자기 연인을 자랑질한다. 하지만, 조앤이 만나는 이들은 늘 그렇듯 그저 그렇고 그런 인물들이었고, 지나치게 말하면, 사회적인 쓰레기들이었다. 구제불능남들이었다. 더 가관인 것은 조앤이 만난 연인들 중 생존해 있는 이들이 드물다는 현실이다.

 

 

어둠 속에서 조앤은 자기를 떠나간 애인들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고 그녀의 말에서 잭은 그들 모두가 어려운 시절을 겪어왔음을 알 수 있었다. 닐스, 그 수상쩍은 백작은 죽었고, 휴 배스컴, 그 술정뱅이는 상선을 탔다가 북대서양에서 실종되었다. 그리고 프란츠, 그 독일인은 나치가 바르샤바를 폭격한 날 밤, 독약을 먹고 자살했다. “우리는 라디오를 통해 그 뉴스를 들었어.”....

아 피트.”

뭐랄까, 그 사람은 언제나 많이 아팠어. 그래서 사라낙 호숫가로 가야 했지만 그러기를 미루고 또 미루고....” 층계에서 발소리가 들려오자 그녀가 혹시나 랠프(또 다른 연인)의 발소리가 아닐까 해서 말을 멈췄다.’(267-268p)

 

 

 

4

  이 작품의 첫대목은 이렇게 시작된다.

 

잭 로리는 뉴욕에서 조앤 해리스를 알게 된 지 몇 년부터 그녀를 미망인으로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언제나 검은 옷을 입었고 또 그녀가 사는 아파트의 이상한 무질서 때문에 그는 언제나 장의사들이 막 다녀간 게 아닌가 하는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악의적인 느낌을 받는 것은 아니었다. 그는 조앤을 좋아했다.’(243p)

 

 

 

5

  잭은 두 번이나 이혼했지만, 여전히 조앤바라기이다. 근데 잭이 직장을 나오고, 실업자 신세를 지내다 병까지 얻게 되자 아이들이 즐겨 부르는 만화영화의 주제가처럼 갑자기 어디선가 무슨 일이 생기니 나타나는 조앤이었다. 잭은 병상에 누워 누추하기 짝이 없는 자신의 몰골을 자신의 짝사랑 앞에 보이길 수치스러워한다. 이런 곳에서, 이런 몰골과 행색을 보이는 것이 견디기가 힘든 것이다. 잭은 조앤이 연인들의 죽음의 사신’, ‘연인의 저승사자인 것처럼, 조앤을 늘 따라다니는 남자의 죽음의 그림자라는 인상에 간호하겠다는 조앤을 한사코 돌려보낸다. 이런 곳에서, 이렇게 만나기가 싫었던 것이다. 좋은 곳에서, 좋은 모습으로 보자는 말을 남긴 채...

<애절한 짝사랑의 노래>를 부르는 잭의 뒷모습은 을씨년스럽다...

 

 

 

 

6

  무엇을 말하고 싶은가?

없다...그냥 존 치버의 단편을 읽고 있으면 그가 내뱉는 스토리의 배경background가 느껴진다. 과연 교외의 체호프라 할 수 있구나 싶다. 도시 생활, 미국인들의 평범한 삶을 이리저리 훑으며 레이먼드 카버와는 또 다른 느낌과 체취를 느끼게 해 주는 존 치버이다.

 

 

 

7

  삶의 밑바닥의 밑바닥까지 다다르며 밑바닥의 지형을 훑고 살핀 고통의 파편과 흔적이 작품에 녹아나 있다. 그것은 특출나게 튀어나온 돌기처럼 생겨 먹은 것이 아니라 삶의 자잘한 일상 가운데 순간 순간 찌르는 머리 아픈 일들, 골치 아픈 일들, 편두통의 압정 같은 일상의 일상이다. 권투선수가 무너지는 것이 한방의 강력한 KO주먹이기도 하지만, 계속 치고 들어오는 잽, 무수한 잽의 충격이 누적되면서 무너지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인생의 링 위에서 우리가 다운되거나, KO되지 않기 위해선 잽을 되도록 맞지 않으면 좋으련만. 그 잽들을 우리가 무슨 수로 피할 수 있단 말인가? 고통이 없는 링이 어디에 있는가?

 

얼마 전 1616승의 전승의 무패복서가 링 위에서 펀치를 맞고 실신했는데 그날 죽었다고 한다. 그 무패의 승리자, 챔피언이 어찌 그리 무너졌는가?...인생은 모를 일이다.

 

 

 

8

  문학은 인생의 링 위에서 휴식시간을 제공하는 복서의 벤치와도 같다고 생각한다. ‘3분 경기에 1분 휴식시간과 같은 것. 그 숨 고르는 휴식시간조차 없다면, 복서는 더 지치고 더 빨리 자주 무너질지도 모른다. 어릴 적 시골에서 권투장갑을 끼고 친구와 권투를 한번 한적이 있었다. 근데 주먹에 맞은 느낌은 아찔했다. 아무것도 아닌 것이 아무것도 아닌 것이 아니었다!!! 권투선수들의 2,3분은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다. 숨 쉬기에도 벅찬 1분, 1초이다.

 

문학은 숨 고르기 할 수 있는 벤치와 같다. 문학은 숨 고르기를 할 수 있는 이야기이다.

문학은 스토리를 통해 인생을 위로한다.

 

 

 

9

  그 스토리가 자전적이든, 비자전적이든 간에 인생을 쓰다듬는다. 그 스토리에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스토리가 무슨 힘과 내공이 있냐고?

 

존 치버는 말했다.

훌륭한 작품의 한 페이지는 그 어느 것에서 비교할 수 없을만큼 막강한 힘을 지닌다.”

 

인생도 스토리이다. 이야기이다.

 

 

 

10 

  위화는 글쓰기의 감옥에서 발견한 것에서 이렇게 말했다.

 

문학의 가치는 지금 이 순간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나중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지금 이 순간의 것들은 뉴스가 해야 할 일들이지요.”(8p)

    

 

문학은 조앤을 욕하지 않는다 

문학은 잭을 욕하지 않는다.

문학은 인생을 욕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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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19-08-14 11: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한 동안 존 치버를 읽겠노라고 그의
책을 모으곤 했었는데,,, 정작 책은
하나도 읽지 않았네요. 이 배짱이란.

그나저나
위화 선생의 책 표지는 참 그렇네요...

카알벨루치 2019-08-14 11:41   좋아요 0 | URL
존 치버는 단편이라 두고두고 읽어야 할 것 같아요 하루에 한편씩 읽어주고..ㅎㅎㅎ단편은 몰입감이 떨어져서 워밍업했다가 좀 속도 낼려면 다시 워밍업해야하고...그게 단편의 단점이면 단점이죠
근데 레삭매냐님 참 꼼꼼하시네요 전 책표지에 별로 신경을 안 쓰는데 그게 보이시나봐요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