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회'를 다 보는 데 두 주가 걸렸다. 음악과 사랑, 뒷세계가 치명적으로 녹아든 수작이었다.

연기와 음악 그리고 이 드라마만의 분위기를 오랜 기간 탐닉하는 나를 친구들은 이해하지 못했다.

불륜 드라마니 재미없는 드라마니 하면서 드라마 자체를 폄하하기 바빴고 나는 아니라며 손사래쳤다.

초반의 무아지경의 사랑에 빠져 마치 물 속에 잠긴 듯 허우적거리던 김희애와 유아인의 모습이 좋았다.

비상등의 붉은 조명이 그들을 선정적으로 비추고 있는 주차장 안에서 한참 서로의 눈망울을 탐하다 기습적으로 입술을 부딪히던 장면과 자신에게 맹랑하게 다가오던 유아인을 혼내듯 노려보다 와락 키스하던 김희애의 표정, 자신에게 항상 당당하고 올곧던 김희애의 약한 모습을 지켜본 유아인의 약간 벌어진 입술이 잊히지 않는다.

푸른 물방울 속 세계의 아득하고 몽롱한 분위기가 클래식과 만나 한층 확장되고 증폭되었다.

후반으로 가면서 극은 퇴폐적이고 범접하기 힘든 내용으로 더욱 무게를 더해갔다.

대기업 회장, 예술재단의 이사장과 사장의 충견 노릇을 하던 김희애가 몰락해가면서부터 극은 휘청거렸다.

과한 밀도와 단단하게 응집된 공기가 극이 진전하는 속도를 저해했다. 무겁게 짓누르면서.


끝을 보긴 봤다.

긴 여운이 유아인의 음성과 김희애의 머리카락에서 묻어났다.

이토록 뜨겁고 강렬한 사랑이라. 나는 이 드라마를 어쩐지 아끼는 소설처럼 오래 간직할 것 같다.

허리를 숙이는 것이 직업인 나에게 누군가 신발을 신겨준다면 나 또한 허우적거리며 그에게 빠져들지 않을까.

맹목적이고 무엇이든 버릴 수 있는 사랑의 감정이 다시 내게 찾아와준다면 좋겠다.

사랑이 없는 삶은 건조하다. 김희애에게 사랑이란 곧 자기 자신으로의 회귀였다. 

유아인은 자기의 20대의 열정과 꿈으로 가득했던 과거이자 젊음이자 잃어버린 본래 모습이었다.

그토록 빈틈없이 치열하던 그리고 치밀하던 김희애에게도 부족한 점이 있던 것이다.

치명적인 사랑, 곧 되찾음의 과정. 김희애가 연기를 참 잘했고 대본이 참 잘 쓰여졌다.

대사가 참 좋았다는 기억이 크다. 악기를 연주하듯 분위기를 뚫고 울리던 아름다운 대사들.


다음 두 주를 '워킹 데드'를 보면서 허비했다. 

좀비 드라마는 정말이지 시간 낭비 그 이상이 아니다. 

하지만 재밌었다. 두 주 동안 미쳐 있던 게 아깝지 않을 정도로 재밌었다.


그리고, 미생.






간단하게 평가를 내리자면, 정직한 드라마라는 것이다.


어쭙잖은 애정선과 부실한 갈등을 억지로 끼워맞추는 게 아니라 정면 돌파, 직구를 던지는 느낌이었다.

한강의 '소년이 온다'를 읽을 때 이런 감정을 느꼈었다. 삶을 잃은, 기억을 놓친 사람들에 대한 위로와 헌사.

그녀의 과거의 조각에서 시작된 집필은 종국에서 역사적 사건과 감정의 환생으로 이어졌다.

비망록과 같은 그녀의 소설은 최명희의 말처럼 천형이 되어 작가와 독자들의 마음에 각인을 새겼다.

나는 굉장히 폭력에 강한 사람인데, 그래서 잔인한 영화와 소설을 쉽게 읽어내지만 유독 이 작품은 힘들었다.

정부의 무자비한 무혈진압에 속절없이 쓰러진 시민들의 고통과 패배가 쓴맛으로 단어에 물들어 있었다.

단어와 문장, 작가의 호흡을 곱씹으며 무참히 쏟아진 그들의 장기를 만지고 있는 듯한 착각을 느꼈다.

이것은 한강이 담담하게, 그러나 최선을 다해 역사를 그려냈기 때문이었다.

한강은 작가의 말에서 스스로 자신이 '소년이 온다'를 어떻게 썼는지 밝히고 있다.

광주와 죽어간 사람들에게 누가 되지 않도록 최대한 잘 써야겠다는 마음으로 펜을 들었다고 한다.

사실적으로 고통을 가감없이 드러내는 것, 그것도 작가의 역량이고 힘이다. 한강을 힘을 가진 작가다.


미생을 그린 윤태호 만화가도 상당한 힘을 가진 사람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미생 만화 원작은 보지 못했고 드라마와 만화 후기를 보았을 뿐임에도 윤태호 만화가의 노력이 생생히 만져졌다.

윤태호 만화가는 회사원의 직급조차, 즉 부장과 차장의 계급 위치조차 알지 못했다고 운을 뗐다.

바둑과 회사 생활을 접목시키기 위해 회사원을 취재하고 요르단까지 찾아간 그의 수고를 후기에서 읽었다.

나는 이 후기가 어쩌면 만화의 감동을 증폭시키기 위한 거짓말이 아닐까 생각했다.

아니 어떻게 회사의 구조조차 모르던 사람이 이런 작품을 그려낸단 말인가.

그만큼 미생이라는 작품이 띠고 있는 현실성과 현재성이 뛰어나다는 말을 하고 싶다.

내가 회사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이것쯤은 짐작하고 느낄 수 있다.


無에서 有를 만들어내는 것, 작가의 힘이다. 엄청난 힘.


드라마를 보는 내내 윤태호 작가가 작정하고 그렸고 감독이 작정하고 만들었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한 편 한 편 버릴 만한 장면이 없었고 드라마가 아닌 취업에 성공한 선배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듯했다.

그러니까 막막하고 아득한 기분이 닥쳐왔다는 것이다. 내가 서 있는, 곧 직면하게 될 현실이라는 절벽.

장그래가 자신의 모든 것이었던 바둑을 버리고 생계를 짊어져야 했을 때 나는 그를 동정했고,

낙하산으로 대기업 인턴으로 들어가 주변 동료들에게 온갖 멸시와 괴롭힘을 당할 때 나는 그들을 이해했다.

아무것도 모르고 할 수 있는 것도 없이 멍하게 앉아만 있던 장그래가 회사에 적응하고 일에 능숙해질 때 나는 벅찼고 그를 측은한 눈빛으로 쳐다보는 사람들에게 이입하여 나도 그를 측은하게 쳐다보았다.

장그래는 계약직이었다. 2년 뒤면 재계약을 해야 했고 정규직으로 전환될 가능성은 없어보였다.


계약직.

드라마 '직장의 신'이 떠오른다. 전지전능의 자처 계약직 김혜수가 열연했던 드라마.

미생 이전에 회사원과 계약직의 비애, 회의, 외로움을 잘 그려낸 수작이었다고 나는 평가한다.

그러나 조금은 불필요해 보이는 애정선의 개입으로 나는 흥미를 잃고 드라마를 끝까지 보지 않았다.

이것이 미생과 직장의 신의 차이다. 명작과 명작이 될 뻔했던 작품의 차이. (공중파와 케이블의 차이.)

직장의 신에서는 김혜수 말고도 정유미가 계약직 사원으로 연기를 했었는데, 여기서 정유미 참 많이도 울었다.

곧 계약직이란 회사의 놀잇감이라는 거다. 혹은 진딧물.

필요할 때 일을 시키고 모든 걸 빼먹고는 내킬 때 내치기 위해 채용하는 인물.

직장의 신에서 계약직은 세상에서 제일 불쌍하고 처절한 사람으로 그려졌다.


미생에서 계약직이 차지하는 비중은 그렇게 크지 않다.

미생은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아직 완성되지 못한 사람들의 이야기다.

저마다의 사연과 이야기를 안고 어떤 인연을 만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우리의 인생, 삶.

항상 기쁘지도 항상 슬프지도, 웃고만 있을 수도 울고만 있을 수도 없는 우리의 인생, 삶.

그렇기 때문에 우리들은 서로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다.

상대의 부족한 점을 채워주고 함께 다음 수를 고민하고, 모두가 더불러 책임지는.

인간이 사회적 동물이라는 말은 곧 모든 인간은 미생의 존재라는 말과 동일하다.

또 우리는 아직 완벽한 상태가 아니기 때문에 어떻게든 변할 수 있다.

우리가 나아가고자 하는 대로 나아갈 수도 있고 그러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날아보는 거다. 도전하는 거다. 앞으로 성큼성큼 나아가보는 거다.

어떤 날개가 우리를 날게 해주고, 어떤 미래가 우리의 발 밑을 받쳐주고 있을지는 모르는 일이기 때문에.


나는 미생을 본 후 가끔 울적해지는 때가 잦아졌다.

취업이라는 단어가 이제 본격적으로 살갗에 뼛마디에 와닿기 시작한다.

내 미래가 어떻게 흘러갈지는 모르겠다. 까마득하고 깜깜하다.

그러나 양과 질이 다른 노력으로 땀 흘리고 부딪혀 생채기를 입다보면 어느새 서 있는 내 미래가 있겠지.

그 자리에서 미생의 사람들과 소통하고 웃으며 적응해가는 내 자신이 있겠지.

완생을 향해 날아가는 내가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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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5-01-15 13: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뭘 벌써부터 취업을 생각해? 학교 입학식도 갖기 전에.
그저 학교 들어가서 열심히 공부할 생각부터 해.
나도 밀회는 재밌게 봤는데 결국 작년에 남는 드라마는 저 미생과 정도전이었던 것 같다.
변요한이던가? 쟤 연기 잘하는 것 같아 기대가 되더군.
조만간 공중파에서 보게되지 않을까 해.
 






0.


"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


- 이상화





1.


교회에 새로운 친구가 왔다. 한 집사님의 동생이었는데 미국에서 지내다 방학을 맞아 잠시 한국에 내려온 것이라 했다. 마침 나와 동갑인 남자아이였기에 나는 호기심을 가지고 살펴보았다. 미국에서 살아서인지 키는 나보다도 컸고 골격도 튼튼해보였다. 몸은 꽤 마른편이었고 캘리포니아에서 살다와서 그런지 바닷바람이 몸을 휘몰아치는 남해의 추위에 잘 적응하지 못해보였다. 연신 춥다고 말하면서 코트를 여몄다. 생김새는 중학교 2학년때 사회과목을 맡았던 선생님과 놀랍도록 흡사해서 도무지 또래라고 생각할 수가 없었다. 게다가 성격도 나와 비슷해보였다. 먼저 다가가지 못하고 부끄러움이 많은 듯한. 물론 그 친구야 여기가 처음이라 모든 게 어색하고 민망하겠지만 그 아이를 보는 내 심정도 그랬다. 마침 오늘 찬양대 연습도 길어지고 나도 피로한지라 이야기할 겨를이 없었다. 결국 친해지지 못하고 각자 집으로 향했다.


늘 느끼는 거지만 타인과의 관계는 첫 단추가 가장 끼우기 어렵다. 옷에서야 맞는 구멍에 끼워넣기만 하면 되지만 생면부지의 사람과 나를 맞춰간다는 것은 상당한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다. 이름부터 나이, 취미, 하는 일까지 대강의 신상은 서로 파악한 후에야 대화를 어느정도 주고받을 정도가 되는데 문제는 신상을 파악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신상을 알기 위해선 많은 질문이 필요한데 그렇다고 심문하듯 질문만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어떠한 접점을 찾게 되면 그때부터 물꼬가 트이기 시작하지만 그게 아니라면 내겐 좀 어렵다. 결국 중요한 것은 내가 얼마나 어떻게 그 사람에게 다가가느냐 인 것 같다. 목마른 사람이 우물 파야한다고, 내가 먼저 마음을 열고 웃어주고 말을 계속 건다면 그 사람도 내 사람이 되는 것이다. 


말을 번지르르, 그럴 듯하게 하지만 역시 어렵다. 집사님 댁에 한 번 놀러가야겠다. 그 친구도 헤어지기 전에 집에 한 번 놀러오라고 그랬다. 빈말인 게 확실하지만 그래도 난 패기 있게 찾아갈 거다.





2.










(스토리 북이 있다. 사야겠다.)




어제는 친구들과의 약속이 취소되어 종일토록 집에 있었다. 저녁에 고모네와 삼촌이 들러 오리고기집에 가서 동생와 한 마리를 해치우고 오기 전까지 나는 씻지도 않은 채 영화를 보고 책을 읽고 음악을 들었다. 음악이라고 해봐야 요즘 푹 빠져서 듣고 있는 에이핑크의 노래들이고 책이라고 해봐야 예전에 읽다가 마지막장을 끝까지 읽지 못했던 테스를 읽었고 영화라고 해봐야 '드래곤 길들이기 2'였다. 


하지만 다 좋았다. 에이핑크의 노래들은 아주 발랄하고 귀여워서 자꾸 들어도 쉽게 질리지 않는다. 노래들이 전부 사랑타령이긴 하지만 예전에 짝사랑하던 기분도 살풋 들기도 하고 무료한 생활에 생수가 되는 것 같다. '테스'의 끝은 정말 비극이었다. 이런 비극을 이전에 읽어본 기억이 없을 정도였다. 책을 덮고 한참 가만히 있다가 일어서서 또 가만히 있었다. 영화가 제일 좋았다. 형만한 아우없다고 보통의 후속작들은 흥행 참패와 더불어 엄청난 욕을 먹기 마련인데 '드래곤 길들이기 2'의 평판도 그랬다. 북미에선 흥행이 저조했고 나도 재미없다는 평가를 들어왔다. 때마침 시작 부분이 지루하고 어색해서 한 주 전에 재생했다가 다시 창을 닫은 일도 있었다.


그러나 웬걸, 영화가 끝나갈 무렵 나는 엉엉 울고 있었다. 내가 영화를 보면서 울 때는 항상 머릿속으로 이것 때문에 눈물이 난다, 하고 인지하는 편인데 이것에서 벗어난 두 번째 경우였다. 처음은 일본 멜로 영화인 '다만 널 사랑하고 있어' 였다. 이 영화의 결말에서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눈물이 책상에 툭 떨어지는 기이한 현상을 경험한 바 있다. 그나마 이 영화는 다양한 감정이 표출되는 멜로 영화이니 이해가 간다손 치더라도 '드길2'를 보면서 엉엉 우는 건 뭔가. 나는 휴지로 눈물을 훔치면서도 내가 왜 울고 있지? 하고 생각했다. 마음이 허하긴 한가보다 생각했다.


'드길 2'의 주인공인 히컵은 드래곤을 지배하려는 드라고 군단에 맞서 싸운다. 전형적이게도 드래곤과 진정으로 교감하고 화합하려 했던 히컵의 승리로 영화는 끝이난다. 영화 말미에 히컵은 침몰하는 드라고를 향해 이렇게 외친다. 충성심은 너처럼 무력으로 얻을 수 없어. 바로 나처럼 얻는 거지! 나는 영화수첩 30자 평에 이 영화를 이렇게 요약했다. "올라선다는 것은 지배가 아니라 지켜준다는 것"





3.


조금은 편파적인 글이 나올지도 모르겠다.


아이들 보는 애니메이션 영화에서까지 이토록 윗사람의 책임과 태도의 중요성을 설파하고 있다. 그런데 지금 대한민국의 가장 큰 이슈인 조현아 부사장의 행태를 보면 한숨만 나온다. 갑과 을이라는, 언젠가부터 권력의 주종 혹은 상하관계로 정립되어버린 관계가 조부사장과 승무원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전체를 뒤덮고 있다는 것이 안타깝고 무섭기만 하다. 민주주의를 내세우는 국가에서 아랫사람을 존중하고 떠받치기는커녕 자신들의 몸무게를 늘려 지지대를 꺾으려고만 하니 진정으로 국가가 원활히 돌아갈까 의심스럽다. 지금껏 이런 사태로 처벌받고 비난받은 '갑'의 인간들이 수두룩한데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고 이런 행위를 하다니. 내 머리론 이해가 안 간다. 자기한테는 비난의 화살이 비껴갈 줄 알았던 걸까?


중요한 것은 도의다. 조부사장은 법을 어긴 게 아니다. 그녀는 도의의 선을 넘어섰다. 아버지의 권력을 등에 업고 호가호위하다보니 세상에는 도의라는 것이 통용되고 있다는 것을 배우지 못한 것이다. 도의는 누가 가르쳐주지 않는다.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 가정에서 이루어지는 교육 속에, 초중고 중등교육의 교과과정 속에 녹아 있는 것을 스스로 깨닫고 수용하고 정립해야 한다. 그녀는 이 교육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 것일까. 자기가 어떤 짓을 하든 모든 것을 덮어주는 큰 이불과 같은 권력이 그녀를 떠받들고 있었으니.


뉴스를 봤다. 수원의 토막살인과 종북 콘서트, 조현아 부사장의 기사를 샅샅이 훑었다.


한 시간 가량 긴 글들을 읽어내려가며 나는 몇 번의 한숨을 내쉬었는지 셀 수 없다.


등 따듯하고 배 부르니까 자기들이 왜 배부르고 등 따신지 잊은 것 같다.


특히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종북 콘서트다. YTN 뉴스를 보면서 나는 기가 찼다. 어쩜 저리도 당당히 카메라 앞에 서서 저따위 주장을 내세울 수 있을까. 그녀는 정말로 사람들과 언론이 이해가 가지 않는 것처럼 자기 주장을 역설하고 있었다. 가증스럽고 역겨웠다. 기사를 두 번 읽고 세 번 읽어도 나는 그녀들의 행보를 납득하기 어렵다. 김정일이 사망하자 최소한 검은 옷은 입어야 하지 않겠냐던 황 모 위원의 발언을 듣고는 내가 다 억울해서 눈물이 날 뻔했다. SNS에는 탈북 여성들의 억울한 호소를 담은 기사가 올라와 있다. 신은미 황선과 맞짱 토론을 요구하며 자신들의 고통을 읍소한 탈북자들의 이야기는 참으로 참담하다. 신 모씨는 미국 국적이란다. 아 나 또 어이없어. 그만 써야겠다. 이건 내가 화낸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국가적 재앙이다. 올해 우리나라에 악재가 씌었나보다.


박 씨는 시신을 훼손한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럼 또 형량이 깎이겠지. 나는 화가 나다 못해 슬퍼진다.





4.


윗사람들에게 '드래곤 길들이기 2'를 어서 보여주고 싶다.


느껴라.





5.


밀회를 보고 있다. 야간 알바를 하면서 끝까지 다 볼거다.


미생도 봐야 겠다. 야간 알바를 하면서 재밌게 다 볼거다.


사실 나는 지금 아주 힘겨운 다이어트를 하고 있다. 저녁 여섯 시 이후로 아무것도 안 먹는 건 기본이고 보통 열시에 아침 겸 점심을 먹고 내내 굶거나 세 시 경에 가볍게 뭘 주워 먹곤 끝이다. 가만히 앉아만 있으니 에너지 소모가 많지 않아 덜 배고픈 덕에 미칠 듯이 허기지지도 않는다. 한창 먹어대면서 살 걱정을 할 때 한 친구가 허기를 즐기라고 했는데 이제야 그게 조금은 이해가 간다. 대학도 붙었겠다, 상경도 하겠다, 나도 이제 남들처럼 빼입고 애인도 만들고 대학생활도 즐겁게 하고 싶다. 살을 쫙 빼야 겠다. 두 달... 알바 하면서 틈틈이 스트레칭 하고 안 먹고 그러면 살이 빠지긴 빠지겠지.





6.


테스 리뷰를 써야겠다. 


춥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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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파엘 2014-12-15 09: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애니메이션을 꼭 봐야겠어요 ㅋ

이진 2015-01-13 20:44   좋아요 0 | URL
꼭 보시길 바랍니다 ㅎ

아이리시스 2014-12-17 20: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많이 먹어요~아직어른아니야^^
나도 에이핑크♥ 밀회♥ 미생♥ 드길은 안봤고 야간알바는 ㅠㅠ 소이진님 잘지내요?~^^

이진 2015-01-13 20:44   좋아요 0 | URL
아직 어른 아닌거죠?
아이님 ㅠㅠ 보고싶어요 너무
저 지금 에이핑크 밀회 미생 전부 섭렵했어요... 이거 한다고 지금 바빠서 알라딘도 못하고!

ICE-9 2014-12-18 02: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빨리 써요, 테스 리뷰^ ^
나는 에이핑크는 모르겠고 밀회는 안봤으며 드길은 1만 봤어요. 예전에 극장에서 3D로 아주 신나게, 혼자서! ^ ^
야간알바할 때 드렁큰 타이거의 편의점 들으니 참 쫄깃 하더군요. 미생은 강추!

이진 2015-01-13 20:45   좋아요 0 | URL
헤르메스님.. 강추하는 이유가 있었군요 미생 아우!!! 아우 좋아!!
드길!! 신나게 혼자서!! 저 이제부터 드길 같은 거 나오면 심야로 혼자서!! 아주 신나게 볼겁니다
야간알바할 때 드렁큰 타이거라...
참고해두겠습니다 ^_^

책을사랑하는현맘 2014-12-18 12: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번 글이 눈에 쏙쏙 들어오게 맘에 드네요 ㅎㅎ 꼭 찾아가세요. 패기있게!
근데 살 빼려다 건강 해쳐요. 아직까지는 많이 먹고 잘 자고 열심히 운동하시면 더 좋겠네요^^

이진 2015-01-13 20:46   좋아요 0 | URL
현맘님! 반가워요
살 빼려다... 일단 먹어야지.. 하고 야간알바 하니까 체력이 후달려서 먹지 않고는 못 버티겠더라구요
그래서 이젠 헬스 다니면서 운동도 좀 하고 그러려구요!

jo 2014-12-30 22: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살 빼려고요. 고3때 찔거니까 쪄도 돼지처럼은 안보일정도로 미리 살을 빼 둬야 해요. 전 이제 3년의 레이스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학교 신입생 설명회 갔더니 공부를 안하고 오면 3월달 달력이 찢어지기 전에 우리들 마음먼저 짖어질 거래요. 제가 선택한 레이스니 열심히 뛰어야 하는데 내키는 데로 되지는 않네요.

이진 2015-01-13 20:47   좋아요 0 | URL
조님.. 맞아요 살은 한 살이라도 어릴 때 빼는 게 맞는 거 같아요
늦으면 늦을수록 마음도 나태해지고 몸도 불어서 빠지질 않아요 흑흑...
조님이 그러고보니 예고 들어갔던가??

jo 2015-01-17 13:02   좋아요 0 | URL
제가....... 예고라니요! 뭐 제가 뛰어나게 그림을 잘그리긴 하지만 아쉽게도 예고갈 정도는 아니라서 외고를 가기로 했습니다~ 서울빨리 오세요. 좋아요

마음을데려가는人 2015-01-02 13: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상경! 하시는군요. 이제 같은 서울 하늘 아래에 사는 건가요? 후훗 :)

이진 2015-01-13 20:46   좋아요 0 | URL
마음님 ^__________^
마음님과 같은 서울 하늘 아래 살게 된다니 꿈만 같아요! 힛
 





















황정은의 이 책 나는 도무지 못 읽겠다.

한 구절 적어보겠다.


앨리시어의 어머니가 짐승을 다스린다.

씨발 상태가 되어 씨발년이 된 그녀는 그녀가 가진 짐승의 머리뼈부터 꼬리뼈까지를 다룬다.

짐승을 향해 팔을 휘두를 때 그녀는 관절을 어깨 뒤쪽까지 젖혀 완전한 힘을 싣는다.

어깨를 움켜잡을 때는 엄지로 쇄골을 쑤시고 배를 때릴 때는 불시를 노리고

짐승의 자세를 바로잡을 때는 정수리에 돋은 머리칼을 쥐고 당긴다.

귀를 꼬집고 뺨을 때리다가 엉뚱한 모서리에 빗맞아 손가락을 삐고

악 소리를 지르며 누웠다가 발딱 일어나 짐승의 목을 쥐고 흔든다.

때리는 쪽도 맞는 쪽도 구토를 하며 보내는 시간이고 그럴 떄 그녀의 검은 눈은 쇠구슬처럼 작고 단단하다.

땀이 고인 얇은 턱은 악다물어 터질 듯하고 귀는 창백하다.

반들반들하고 나긋나긋하게 그녀의 기색을 먹은 옷자락에서 타는 듯한 피부 냄새가 난다.


독서할 수 없는 책이 있고 감상할 수 없는 영화가 있다.

황정은의 이 책이 그렇고 '마터스'가 그렇다.

나는 잠시 이 책을 옆으로 차치해두고 김훈의 남한산성을 읽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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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E-9 2014-12-18 02: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쩌죠? 나는 정말 좋았는데~^ ^;
마터스도 환장했어요~^ ^; 나만 어쩌면 이상한 걸지도... 원래 공포영화 정말 좋아라 합니다만...^ ^;
 






0.


" 버스에 가장 오래 앉은 사람은


가장 바깥에 산다 그곳은 춥다 "     - 김소연, 수학자의 아침





1.






2.


버스에 앉아 창가를 물끄러미 내다본다. 스치듯 흐트러지는 풍경. 바삐 걷는 사람들, 올곧게 솟은 가로수, 밀도 있게 들어선 건물들, 그리고 공기와 생기와 삶들, 모든 곳에 녹아 있는 각자의 이야기. 단지 들여다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속삭이는 이야기가 들리는 듯하다. 아무도 없는 버스 안에서 도로를 따라 덜컹거리는 좌석에 몸을 묻고 어디든 가본 고 싶을 때가 있다. 저마다의 풍경이 전하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눈은 감은 채 세상 위로 부유하고 싶을 때가 많다. 그럴 때면 나는 외롭다. 그런 시간은 내게 있어 가장 추운 시간이고 몸을 움직이기 힘든 시간이다.


문득 그런 순간들은 찾아온다. 밥을 먹다가, 교실에 앉아서 책을 읽다가, 친구들과 거리를 걷다가, 도서관에서 컴퓨터를 하다가, 친구와 메신저를 주고받다가, 친구들과 둘러앉아 이야기를 나누다가, 여럿이 모여서 떠들고 있는 친구들을 보다가, 조용히 앉아 자습하는 친구들을 보다가, 창 밖으로 운동장을 지켜보다가, 학교 앞 화단에서 자라고 있는 야자수를 보다가 나는 울적해지고 외로워진다. 나는 아무런 이유도 없이 우울해진다고 생각하지만 나는 내 울증의 원인을 알고 있다. 다만 인정하고 싶지 않아서, 아니 원인을 꺼내게 된다면 그것을 더 명확히 직면해야 할 것이고 그렇게 된다면 나는 더 우울해질 것이 확실하므로 나는 그것을 속에 꽁꽁 싸매둔다.


관계, 라는 것이 나는 참 두렵다. 그리고 아직 잘 모르겠다. 


간, 쓸개도 빼주고 평생 붙어다닐 것만 같았던 친구와 소원해졌다. 분명 내 문제도 있었고 친구에게도 잘못이 없었다고는 할 수 없었다. 서로에 대한 불만이 쌓여만 갔고 수능이 얼마 남지 않았을 때 친구는 내게 절교 통보를 해왔다. 우리는 본래 부산으로 진학해서 함께 자취하자는 계획을 짜놨었는데 그걸 파기하자는 거였다. 사흘 정도 연락이 없다가 다짜고짜 전화를 걸어 선언한 것이었기 때문에 전화를 끊고 나서도 나는 한동안 맥없이 앉아 있었다. 정신이 들고 친구의 말이 절교 선언임을 깨닫고 난 뒤에 나는 복잡한 감정을 느꼈다. 홀가분, 시원함, 섭섭함, 서운함, 허함, 슬픔, 외로움, ……. 아니다. 이렇게 단어로 형용할 수 있는 감정이 아니었다. 나는 다소 피로했고 감긴 눈을 뜨기 힘들었다. 


그 일에 대처하지 못한 채 사흘이 지난 저녁이었다. 친구는 술을 잔뜩 마시고 우리집에 쳐들어왔다. 한창 특별새벽집회에 반주를 나가느라 잠을 통 자지 못해 초저녁부터 잠을 보충하고 있을 때였다. 나는 잠도 깨지 못하고 그를 맞아야 했다. 친구는 꽤 힘들어 보였는데 대학 때문인지 아니면 나 때문이었는지 정확히 알지 못한다. 나는 그를 제대로 반기지 못하고 다시 침대에 누워 잠을 청했다. 친구는 내 옆에 눕더니 내 팔을 잡아 당겨 자기를 감쌌다. 친구는 나를 정말 좋아하는 듯했고 나도 친구가 좋았다. 내게 있어 유일하다 싶은 친구였다. 


화해한 듯 했지만 내 육체는 그를 이미 차단해버린 것 같았다. 그가 불편했고 미소조차 지어지지 않았다. 눈 근육은 마비된 것처럼 경직되었고 친구의 전화도 반갑지가 않았다. 내 반응이 이토록 미적지근하자 친구도 점점 내게서 관심을 거두어갔다. 마침내는 지금의 상황에 이르렀다. 우리는 더이상 서로에게 말을 걸지도 눈길을 주지도 않게 되었다. 내가 자초한 일인 것만 같아 마음이 아프다. 나 혼자만의 착각인 것만 같아 불안하다. 하지만 더이상 예전처럼 마음을 터놓을 수 없다는 걸 내가 느끼고 있고 알고 있다. 시간이 더 흐르지 않는 이상 나는 전처럼 친구를 받아들일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다. 몇 안 되는 내가 나에 대해 파악하고 있는 일이다.





3.


내가 문득 외로워지는 것은 그 때문인가.


요 며칠은 친하게 지내는 여자아이들과 함께 놀았다. 부산에서 면접보는 친구를 따라가서 이틀 동안 놀기도 하고 피자도 먹고 치킨도 먹고 스파게티도 먹고 영화도 보고 즐겁게 놀았다. 그러나 그 순간이 지나고 집을 돌아왔을 때 나는 오래 멍한 상태에 머무른다. 내가 원하는 관계가 이것인가. 물론 좋다. 행복하고 즐겁고 기쁘다. 하지만 관계적인 측면에 보았을 때 나는 현재 얼마나 위태로운 줄 위에 서 있는 것인지. 의지할 곳도 기댈 곳도 없는 외줄 위에서 바람 부는 대로 휩쓸리고만 있는 것 같다. 심장에 굳게 박혀 있던 기둥이 한순간에 빠져버린 듯, 허하기만 하고 추운 느낌. 





4.


그래서 더 위축된다.


스스로 작아지려 하고 있다.





5.




안나 윈투어의 헌정작이라고도 할 만한 '셉템버 이슈'를 어제 봤다.


미국 보그지의 편집장으로서 현 패션계의 정점에 서 있는 여자라는 수식어가 아깝지 않은 거물 안나 윈투어 휘하로 보그 9월호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다. 안나 윈투어의 말 한 마디에 패션계의 흐름이 좌지우지 되고 세계 4대 컬렉션의 순서가 바뀌며 디자이너의 미래가 결정되는 것은 물론 마크 제이콥스를 발굴해낸 여인이라고 하니 그 위상이 얼마나 높은지는 짐작할 만하다. 메릴 스트립과 앤 해서웨이가 유쾌한 연기를 펼쳐낸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모티프를 따온 여인이라고도 하니 어떤 여인일까 정말 궁금했다.


그녀는 냉철했지 냉정하지 않았다. 그녀의 목소리를 나긋했고 웃음도 많았다. 메릴 스트립의 연기만을 생각하고 있었기에 아주 차갑고 모진 얼음 마녀를 떠올렸지만 그녀는 오히려 패션계에 오래 근속한 일인자 혹은 우두머리라고 불릴만 한 능력을 가진 사람이었다. 자신의 일에 자부심이 굉장히 뛰어나고 사람들과의 관계 또한 매끄럽다. 그녀가 냉철한 것은 오직 그녀의 잡지를 편집할 때 뿐. 잡지에 오를 사진을 고를 때면 그녀의 가장 가까운 친구이자 스타일리스트인 그레이스의 사진마저도 빼버리는 결단력을 가지고 있다.


치열하고도 체계적인 그녀의 삶은 뭉클하게 다가왔다. 


무언가에 열정을 쏟을 수 있다는 것, 어떤 분야에서 최고로서 군림한다는 것, 또 그 자리에 걸맞은 능력을 가지고 지휘한다는 것 모두가 부러웠다.





6.


영화를 봐야겠다.


한바탕 울고 속을 게워내야겠다. 아니다. 슬픈 영화는 보지 말아야지.


드래곤 길들이기를 봐야겠다.





7.









" 난 쏘다녔지, 터진 주머니에 손 집어넣고,


짤막한 외투는 관념적이게 되었지 "     - 랭보, 지옥에서 보낸 한 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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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2-03 00: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12-03 11: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12-03 08: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12-03 11: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녀고양이 2014-12-04 22: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이진님, 오랜만이예요...
여전히 글이 따스하고 달콤하고 때로는 퇴폐적인 우울감이 들기도 해요, 개인적인 평가 미안해요. ^^

사람과의 관계, 그 마음 참 어려워요.
그리고 용기가 필요하더라구요, 내게 얼마나 절실한가의 문제인 것 같아요.
늘... 사람이 제일 어려워요. 그러게요. 그리고 저도 마지막처럼 열정을 다해 살고 싶다고 꿈을 꾸네요.

고등학생 조카같았는데, 이제 성인이 되는군요..... ^^
 




  0.


" 죽지 마.


  죽지 말아요. "     - 한강, 소년이 온다










 1.


  이맘때면 늘 들려오는 소식이 있었다. 일반 학생의 신분으로서 수능시험이 끝나고 성적을 비관하며 죽기를 택한 학생들의 이야기를 접할 때마다 나는 참 먹먹하고 답답했다. 의아한 기분조차 들었다. 대체 무엇이 아직 피어나지도 못한 꽃들을 스스로 낙화하게 만든단 말인가. 어떤 비참한 감정이 그들을 휩싸고 그들의 꽃줄기를 흔들었을까. 올해도 어김없이 들려왔다. 낙화의 아픔. 그것은 두려운 마음으로 예감했던 시일보다 빠르게 다가왔다. 수능 하루 전 압박감을 이기지 못해 아파트 17층에서 몸을 내던진 것. 친구들이 마침표를 찍으러 간 사이 그는 내세의 구불거리는 길을 홀로 걸어가고 있었다.


  세상이 늘 구름 위만 같았기에 통통 튀어다녔던 내가 어느새 고등학교 3학년이라는 명패를 가슴에 달고 치열한 경쟁 하에서 중간, 기말고사를 치르고 한 자 한 자 써내려가는 것이 천형인 것만 같았던 자기소개서를 몇 장 써내고 매 순간이 걱정과 염려, 불안과 두려움으로 그득했던 수시 철을 보내고 19년 한평생의 정점이자 종점이라고 감히 칭할 수 있는 수능을 끝내고 나니 그들의 심정을 조금은 알 것도 같다. 지금 나의 기분이 어떠냐 하면 기쁘지도 즐겁지도 그렇다고 슬프지도 비관적이지도 않다. 마지막 과목인 사회탐구를 마치자마자 사위에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다른 차원으로 끌려온 듯 감정도 생각도 없다. 영화 '루시'에서 루시의 뇌 사용량이 극치에 달했을 때 경험했던 그토록 하얀 無의 세계. 나는 無를 생각하고 無를 살아간다는 느낌이다. 이것을 허탈이나 허무 등의 단어로 대치할 수 있을까.


  사실 나는 수능 시험에 사활을 거는 수험생이 아니었다. 이미 수시로 대학에 합격한 상태였고 다른 대학의 최저학력기준을 맞추어도 가지 않을 것이었기 때문에 수능은 내게 인생의 한 번뿐인 경험 이상은 아니었다. 수능 하루 전이었다. 수능 준비로 점심만 먹고 전교생 하교 조치가 내려졌고 나와 한 친구는 하굣길에 함께 했다. 그는 나의 수십 배로 열심히 공부한 친구였다. 그러나 수시에서 그가 원하는 대학교에 합격하지 못했고 남은 대학의 최저와 정시를 위해 수능 시험을 잘 쳐야 했다. 그러니 그때의 시간들은 그에게 그야말로 1분이 1초인 것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볼이 음푹 패이고 머리가 잔뜩 흐트러져 그의 모습은 초췌했다. 감기에 걸릴까봐 목욕조차 제대로 하지 못한다는 친구의 말을 들으며 나는 미안함을 느꼈고 친구도 그것을 느꼈는지 내게 장난을 치기도 했다. 친구는 내게 너는 이미 대학생인데 수능시험을 치러 올 것이냐고 물었고 나는 네 밑에 깔아주기 위해서라도 간다고 말했다. 친구의 집 앞에서 우리는 헤어졌고 다행히 친구는 수능 시험에서 만족스러운 결과를 냈다.


  어떤 면에서 잔인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냥, 세상도 잔인하다.





  2.


  나는 사람들이 죽지 않았으면 좋겠다. 수험생이든 어린아이든 한창때의 사람이든 하나의 인생이 끝맺어진다는 것은 빛이 없게만 느껴진다. 전혜린의 수필집을 읽으면서 나는 특히 이런 생각을 많이 했다. 그녀 하나의 죽음으로 그녀의 남아 있던 삶이 빛을 잃었고 그녀 곁에 있던 사람들이 빛을 잃었고 그녀가 살았던 곳과 다녔던 곳이 빛을 잃었다. 그녀의 존재가 있음으로써 가득하였던 공간과 시간 들은 이제는 텅 빈 지하처럼 공허하기만 하다. 

  

  대부분의 학생은 정치에 극히 흥미를 갖고 있다. 아데나워(지금은 은퇴했으나)의 욕설이 시작되면 끝이 없었다. '반항적'이라는 전통이 그대로 지켜져 내려오고 있는 그들은 시민적 도덕이나 소시민 근성에 대해서만이 아니라 정치적으로도 매우 반항적이었다. 핵무기 도입이 한참 신문에서 말썽거리가 되고 있을 때 그것에 대한 반대 데모 행진에 뮌헨 대학생이 거의 전원 참가했었고 에리히 케스트너가 '후버 교수 광장'에서 핵무기 반대 연설을 했을 때는 경관도 그의 경구와 아이러니에 넘친 멋있는 화술에 빙그레 웃음짓고 있었다. 

  온갖 물질의 결핍과 가난과 노동, 식사 부족, 수면 부족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그 하늘을 찌를 듯한 패기, 오만한 젊음, 순수한 정신, 촌음을 아끼고 인식에 바쳐지는 정열과 성의, 조금도 외계나 속물과 타협하려고 들지 않는 자기 유지의 노력, 정말로 이러한 모든 것으로 이루어진 팽팽한 세계가 뮌헨 대학생의 세계인 것 같았다. 

  반항을 위한 반항이 아니라 옳은 것을 끝까지 옳다고 주장할 수밖에 없는 실존적 성질에서 우러나온 반항이고, 자기를 외계의 비속화 작용으로부터 막으려는 그럼으로써 정신의 자유를 지키려는 데서 우러나온 빈곤의 감수요, 초연이며 자기 극복이다. (p 74)


  전혜린의 수필을 오래 읽으면서 나는 그녀의 삶에 대해 충분히 곱씹어보았다. 나는 한비야를 아주 좋아한다. 그녀의 서적을 모조리 찾아 읽고 그녀가 출연한 TV 프로그램도 하나하나 찾아보고 그녀의 인생관을 마음에 새기고 살아가려고 노력한다. 그녀의 열렬한 팬으로서 그녀의 당당하고 활달하고 긍정적인 에너지를 사랑한다. 나는 전혜린에게서 한비야가 품고 있는 야심과 에너지를 읽을 수 있었다. 어쨌거나 두 사람 모두 한국을 떠난 사람들이다. 이 좁은 땅, 편협한 공간에서 떠나 드넓은 공간으로 나아간 사람이다. 전혜린이 거듭 언급했듯 '떠나기 위해서 떠나는' 사람들이다.


  그녀가 전달해주는 슈바빙 사람들의 이야기와 뮌헨 대학생들의 이야기를 활자로 전해 듣고 있노라면 다리와 엉덩이가 근질거려 죽을 지경이다. 슈바빙의 사람들은 가진 것 없이 행복하고 평화로우면서도 예술에 애정을 가진 사람들이고 뮌헨의 대학생들은 가진 것 없이 정의롭고 패기롭고 씩씩하고 당당한 사람들이다. 그녀가 보았던 모든 것과 모든 이들을 나도 동일하게 경험해보고 싶었다. 슈바빙의 허름한 술집에 앉아 씁쓸한 맥주를 마시면서 수염이 길게 자란 노인과 문학을 논하고 뮌헨의 대학로를 걸으면서 학생들의 몸에서 뿜어져나오는 젊음과 패기, 뜨거움을 피부로 느끼고 싶었다. 그들과 전혜린은 삶을 즐기는 인물이었다. 그녀는 제 2장의 수필에서 이렇게 말한다. " 젊음과 아름다운 풍경과 사랑만 있으면 사실 약간의 공복은 큰 문제가 아닌 것이지 않는가? " 아무도 보지 않을 그림과 아무도 읽지 않을 시를 쓰며 예술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사실 누구보다도 행복하다. 그녀 또한 행복하지 않았을까.


  전혜린은 사랑에 충실한 사람이었다. '마지막 편지 - 장 아제베도에게'는 마치 혈서 같다. 그녀는 '너를 단념하는 것보다도 죽음을 택하겠'다고 고백하고 있다. 이 수필을 읽으면 한때 내 모든 것을 바칠 수 있을 정도로 누군가를 사랑했던 기억이 난다. 짝사랑이었으니 매우 고통스러웠고 때문에 화인처럼 심장 언저리에 찍혀 있는 사랑이다. 이 사랑이 좌절된 이후 나는 어떠한 사랑 이야기에도 공감하지 못하고 다만 그때의 감각과 감정을 희미하게나마 되짚어 억지로 느끼려고 노력한다. 전혜린의 고백은 나와 상당히 닮아 있다. 나는 그녀의 글을 읽으면서 어느새 굳어버린 감각이 약간은 살아나는 것을 느꼈다. 


  물론 이 에세이집에서 가장 아름답고 평화로운 부분은 육아일기이다. 산고를 모조리 안고 태어난 정화를 향한 그녀의 사랑은 지극하다. 나는 이 부분을 읽으면서 가슴이 아렸다. 대체 무엇이 이토록 사랑하는 아이를 두고 그녀를 죽게 만든 걸까. 나는 전혜린의 죽음으로 홀로된 정화의 심정이 자꾸 마음에 밟혔다. 지금은 교수를 하고 있다는 그 아이의 어린 시절은 엄마의 죽음으로 흔들렸겠지. 





  3.


  사강을 보면서 저 사람은 자기를 무척 사랑하고 있다고 느꼈었다.

 

  전혜린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자기애.





  4.


  다시, 한강의 책으로.


  내게 고통이라고 불리는 책이 두 권 있다. 한강의 '바람이 분다, 가라'와 한강의 '소년이 온다'이다. 전자는 가는 포스트잇을 군데군데 붙여 두고 쓸쓸할 때마다 가슴 한 켠이 아려올 때마다 수시로 꺼내 읽고 있지만 후자는 도무지 읽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는다. 아니 읽고 싶지 않다. 책을 휘 넘겨 동호의 이름이 나올 때마다 숨이 턱 막히고 코 끝이 시리다. 


  1980년의 광주에 몸을 묻은 동호와 남겨진 이들의 미래. 그 형체 없는 도로를 따라 천천히, 물이 떨어지듯, 뚝뚝, 묵묵히 걸어오는 동호. 나는 소설의 세번째 장 '일곱개의 뺨'에서의 고백이 인상 깊었다. " 치욕스러운 데가 있다, 먹는다는 것엔. 익숙한 치욕 속에서 그녀는 죽은 사람들을 생각했다. 그 사람들은 언제까지나 배가 고프지 않을 것이다, 삶이 없으니까. 그러나 그녀에게는 삶이 있었고 배가 고팠다. 지난 오년 동안 끈질기게 그녀를 괴롭혀온 것이 바로 그것이었다. 허기를 느끼며 음식 앞에서 입맛이 도는 것. " 


  한순간에 벗을 잃은 내 친구는 술을 마실 때마다 내게 전화를 걸었다. 자기가 웃는 것, 먹는 것, 걷는 것, 숨쉬는 것, 살아가는 것이 죽은 친구에게 미안하다면서 자기도 확 죽어버리겠다는 소리를 자주 내뱉곤 했다. 친구의 고통이 기린의 긴 목뼈처럼 눈 앞에 보이는 듯했다. 나는 뼈마디 하나하나를 손으로 훑어내리면서 친구의 고통을 헤아리고자 했다. 그리고 위로했다. 그 애가 네게 원하는 것은 너와 함께하는 것이 아니다. 그 애는 네가 그 애의 몫만큼 삶을 더 행복하게 즐기는 것을 원한다. 친구의 고통과 죽음을 반기고 소원하는 사람은 없다. 너희가 진정한 친구였던 만큼 그 아이는 하늘에서 너의 모습을 지켜보며 행복하게 웃음 짓고 있을 것이다. 친구는 전화기를 붙들고 엉엉 울었다. 집으로 돌아가기까지 나는 친구의 이야기를 전부 들어주었다.


  죽음 앞에서 나는 언제나 숙연해진다. 먹는 행위는 치욕스럽다고 느낀다. 

  그러나, 먹어야 한다.





  5.


  어느 / 늦은 저녁 나는

  흰 공기에 담긴 밥에서

  김이 피어 올라오는 것을 보고 있었다.

  그때 알았다

  무엇인가 영원히 지나가버렸다고

  지금도 영원히

  지나가버리고 있다고


  밥을 먹어야지


  나는 밥을 먹었다


  한강, '어느 늦은 저녁 나는'





  E. 


 " 언젠가 그에게서 왔던 참 즐거웠던 편지 하나가 기억났다.


  그것은 단지 흰 종이 위에 '죽었니?' 라고 써 있었다. "     - 전혜린, 그리고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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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1-15 01: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11-17 18: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11-15 10: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11-17 18: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BRINY 2014-11-15 11: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이진님, 벌써 고3이었군요. 수시 합격 축하합니다. 이제 서울로 올라오겠네요. 우리반에도 동국대 신방과 수시합격한 친구가 있답니다. 요즘 영화만 보며 하루를 보내고 있더라구요.
친구를 위해 `깔아주기 위해` 수능을 봐준 의리가 고맙네요. 우리반 몇명은 그런 의리도 없고, 응시료 환불 받아서 통닭 사먹을 생각밖에 안하네요. 환불하려면 수험표 반납하랬더니, 그 새 잽싸게 수험생 할인으로 퍼머에 염색하고 왔더라구요.

이진 2014-11-17 18:36   좋아요 0 | URL
네, 브리니님! 오랜만이에요. 벌써 고삼인 소이진이 인사드려요.
저도 사실 수험표 환불받고 싶었는데 최저가 있는 곳도 있고 해서 겸사겸사 치렀어요.
저또한 영화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데, 저는 그들과 다른 것이 영화과까지 꿈꿨다니까요!
저는 영화가 정말 좋아요.
저는 수시 1차 불합 환불금으로 치킨 사먹으려구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