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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제일 가망없다고 생각했다.

경쟁률이 16대 1로 결코 낮은 편이 아니었고, 동국대 자체가 국문이 세다.

경희대학교 불합이라는 결과를 받아들고 동국대도 마찬가지이겠거니 했다.

웬걸, 1차에 떡하니 붙고 최종합격까지 해버렸다.

이제 남은 시간을 즐길 일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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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4-11-11 18: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축하해요 소이진님!!

이진 2014-11-12 08:53   좋아요 0 | URL
XD

stella.K 2014-11-11 19: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이런 기쁜 일이...! 축하한다 조카!
그렇게 글을 잘 쓰더니...ㅎㅎ


이진 2014-11-12 08:53   좋아요 0 | URL
X-D 글을 그렇게 잘 쓰진 못해요...ㅎㅎ

마노아 2014-11-11 21: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하해요! 이제 정말 온전히 즐기셔요~

이진 2014-11-12 08:53   좋아요 0 | URL
:D 감사합니다!! 죽도록 즐겨야죠.

2014-11-11 23: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11-12 08: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hnine 2014-11-12 00: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와! 와!!!

이진 2014-11-12 08:54   좋아요 0 | URL
XD! :D! ^____^!

책을사랑하는현맘 2014-11-12 01: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이진님 축하드려요! 그동안 열심히 고민하고 열심히 쓰신 것에 대한 선물인 것 같네요! 많은 경험들 하시길 바래요^^

이진 2014-11-12 08:54   좋아요 0 | URL
현맘님 감사드려요! 앞으로 정말 글 잘 쓰고 많이 읽고 많이 경험한 소이진 될게요.
XD

비로그인 2014-11-12 07: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하해요...

이진 2014-11-12 08:55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흔적님! :D

스파피필름 2014-11-12 08: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립니다 ^^

이진 2014-11-12 08:56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XD

무스탕 2014-11-12 09: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축하해요.
나도 어제 조카가 동국대 붙었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오늘 소이진님한테도 동국대 소식을 듣네?
이렇게 기쁜일이!!!
조카한테도 말했지만 뿌듯한 겨울 지낼일만 남았군요 ^^

이진 2014-11-12 22:07   좋아요 0 | URL
우와 동국대 합격생이 무스탕님께는 두 명이나 있군요!
이렇게 기쁜일이!!! 뿌듯하고 여유 넘치고 행복한 겨울입니다 :D

착한시경 2014-11-12 10: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반가운 소식,,,앞으로 좋은 글 기대할께요^^

이진 2014-11-12 22:07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앞으로 더 좋은 글 써야죠. 기대에 부응할 만한 좋은 글! :D

자성지 2014-11-12 10: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도 이곳에 들러 댓글을 달게 될 줄이야..... 축하해. 네가 면접장에서 답했던 대로 창작열을 높일 수 있는 동기부여가 될 듯하다. 넉넉한 겨울 행복한 20대를 위해 고민하고 사색하는 가운데 경험을 쌓아가길 바란다.

이진 2014-11-12 22:07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이렇게 또 들러주시니... :D

마립간 2014-11-12 12: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립니다.

이진 2014-11-12 22:08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XD

비연 2014-11-12 13: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이런 경사스러운 일이! 축하드려요!

이진 2014-11-12 22:08   좋아요 0 | URL
경사에요! 감사합니다 비연님. 우리 참 오랜만이죠 XD

2014-11-12 22: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11-13 16: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히히 2014-11-12 23: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내일이 수능이라
님께 氣 주러 왔다가 되려 받고 떠납니다.
나날이 자라나소서.

이진 2014-11-13 16:22   좋아요 0 | URL
히히님, 얼마만이죠 이게!
감사합니다. 수능도 무사히 치르고 왔어요. :D

단발머리 2014-11-13 08: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키햐!!! 축하해요, 소이진님!!!
수능 잘 보라고, 힘내라고 말하려고 소이진님 방에 왔는데!

넘 기쁜 소식이예요. 우아~~ 정말 잘 됐어요. 정말, 정말 잘 됐어요.
앞으로 더 열씸히 쓸거죠? 이제 본격적으로 쓰겠어요. 넘 기대되요~~~*^^*

이진 2014-11-13 16:22   좋아요 0 | URL
단발머리님!!! 키야! 감사해요.
정말 잘 됐어요. 이제 쓰는 일만 남았어요. 쭉 쓰고 싶어요.
기대되고 떨리고 긴장되고 막... 그래요 XD

순오기 2014-11-14 22: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마무지 축하해요~
본인이 원하는 학교를 가고 하고 싶은 공부를 하는 게 최고에요!!
우리 아이도 엊그제 단편 구상한 거 현장답사 한다고 다녀갔어요.
앞으로도 주욱 응원할게요~ ^^

2014-12-13 13: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12-13 13: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12-13 13: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12-13 13: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12-13 14: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날이 추웠다 더웠다 제맘대로다. 


장마가 지났음에도 좀처럼 더워지지 아니하고 학교에서 담요를 덮고 지내야 하는 날이 많다. 날씨가 변덕스러워서 그런가 무슨 바람이 들었는지 저번 토요일부터 몸이 아프기 시작했다. 증세는 이랬다. 잠을 자고 있는데 양 어깨가 아팠다. 빠질 듯이 아팠냐 하면 그런 것도 아니다. 오로지 어깨만을 두 개의 압착기가 각각 잡아 죄고 있는 통증이었다. 얕게 신음하며 눈을 떠 휴대전화를 확인하니 아침 일곱 시였다. 맨바닥에 누워 있어서 이런 건가 하고 이불을 싸들고 소파에 가 누웠다. 그래도 아팠다. 나는 누우니까 아픈 거라고 결론을 내리고 소파에 기대 앉아서 휴대전화를 만졌다. 고모집이었고, 고모가 깨려면 아직 한참의 시간이 더 지나야 했다. 앉아 있는 것은 좋은 선택이었으나 금세 통증은 재발했다. 침대 위에 엎드려 누워 봤다. 한 팔을 구부려 턱을 받치고 다른 팔은 쭉 뻗어 몸 옆에 붙였다. 어라, 괜찮다. 아프지 않다. 아프지 않자 잠이 왔다. 나는 그 자세로 잠에 빠져든다. …2014년 7월 24일에.



고모가 일어났는지 부엌이 시끄러웠다. 고모가 나를 불러 깨웠다. 일어나니 아직 어깨가 아팠다. 게다가 몸에 힘이 쭉 빠지고 열이 났다. 호되게 아플 징조가 보이는 듯 했다. 고모는 뭘 먹기는 해야 한다며 아픈 나를 이끌고 식탁에 앉혀 볶은 오리고기와 열무김치를 차려주었다. 나는 먹는 둥 마는 둥 하다가 다시 침대에 가 누웠다. 


병원에 가는 길이 천리만리였다. 차에 오르는 것도 계단을 오르는 것도 고통이었다. 걷는 것이 힘들었던 나는 병원 계단을 오르며 할머니들의 심정을 이해했다. 힘겹게 접수하고 진료실에 들어갔다. 열이 높았다. 간호사가 9.8입니다, 하더니 의사가 심각하군, 이라며 맞장구를 쳤다. 당시엔 못 알아들었는데 39.8도를 말하는 것 같다. 내가 이마를 짚어보았을 땐 그리 뜨겁지 않았는데 39.8도라. 나는 수액실에 누워 링거를 맞았다. 삼십 분 정도 잠들었다 일어나니, 등이 흥건히 땀에 젖어 있고, 뭐랄까 정신이 밝다. 하루종일 힘이 없고 어지러워 정신이 흐릿했던 것이 명확해진다. 온몸의 힘과 수액의 영양소가 모조리 정신으로 향한 것처럼 밝다. 어깨 통증도 괜찮고 몸에 힘도 어느 정도 있다.


나, 링거를 맞아 힘을 차린 몸을 이끌고 남해로 향했다. 도중에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곧장 집에 가지 말고 읍내에 들르라는 거였다. 나는 터미널에 내려 집으로 가는 버스를 타지 않고 읍내 도서관에 갔다. 나를 만나기 위해 보충수업을 몰래 빠져나왔다는 친구와 만났다. 그는 목적지를 묻는 내 말을 철저히 무시한 채 나를 어디론가 이끌었다. 자주 가는 노래방도 제치고 PC방도 제친다. 우리는 유동인구가 적은 외곽지의 편의점 앞에 도착했다. 그는 나를 두고 편의점에 들어가더니 검은 봉지를 하나 들고 나왔다. 거기엔 술이 두 병 있었다. 나는 불만을 표했지만 그는 강경히 나를 두고 과자와 탄산음료를 더 사왔다. 우리의 최종 목적지는 근처의 고층 정자였다. 그는 성큼성큼 정자 위로 올라가더니 자리를 잡고 앉았다. 나도 속절없이 그 옆에 앉았다. 그는 종이컵의 1/4 정도 술을 따르더니 내게 건넸다. 내가 받지 않으려는 제스처를 취하자 다짜고짜 손에 쥐어줬다. 그 뒤로 나는 두 잔 정도만 더 마시고 그가 다 마셨다. 두 시간 정도였을까. 바람을 맞으며 영양가 없는 이야기를 오래 했다. 술 때문일까, 왠지 싸한 배를 움켜쥐고 집에 돌아왔다.


다음 날, 일요일이었다. 배가 아파 잠에서 깼다. 새벽 네 시. 화장실에 갔다. 설사를 했다. 한 시간의 간격을 두고 그 새벽, 계속해서 잠에서 깼다. 장염의 시작이었다. 배가 아파 교회 사모님께 소화제를 얻어 먹는다. 소화제를 먹어도 그대로다. 결국 오후 예배 반주를 하지 못했다. 나, 사흘 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한다. 아무것도 먹지 않았는데 설사는 자꾸 나온다. 달팽이처럼 초록색 물만 나온다. 월요일은 결석하고 화요일에 학교 보충에 나갔더니 친구들이 몸이 얇아졌다고 걱정한다. 내가 봐도 많이 수척해졌다. 그리고 사흘이 더 흘러 금요일이다. 보통은 사흘이 지나면 몸이 낫는다는데 나는 근 일주일 째 몸이 낫지 않고 있었다. 그나마 설사의 횟수가 줄었고 음식의 섭취가 가능해졌다. 다 나았나 싶었다. 다시 토요일이 돌아왔다. 순환인건지, 머리가 아프다. 쿡쿡 쑤시는 것 같아 고개를 돌리지 못할 통증이다. 두통은 일요일까지 이어진다. 반주를 하는데 몸에 힘이 없다. 집에 돌아와 내리 잤다. 다음 날, 학교에 갔는데 토할 것 같은 울렁거림이 있다. 머리가 싸해지고 눈 앞에 노래졌다. 동일한 경험을 한 적이 있다. 탈수 증세였다. 나는 당장 병원에 가서 링거를 맞았다. 이렇게 나는 이주 동안 링거를 세 대 맞았다. 


아직 설사가 멎지 않았다. 몸은 이제야 괜찮아진 것 같다. 국밥을, 어제는 순두부찌개를 푹푹 떠 먹었다. 쓰고보니 글이 너무 장황하다. 아무도 아픈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아 속에 쌓인 것이 많았나 보다. 아픈 몸을 이끌고 학교에 나가는 것이, 방학인데도 더위를 뚫고 학교에 나가는 것이 꽤 억울했나 보다. …2014년 8월 2일에.



…비가 쉴 새 없이 내린다. 태풍이 북상한다고 하더니 정말 태풍이 부는 것 같다.


엊그제, 그러니까 목요일이었다. 사흘 정도 강렬하게 해가 빛을 뿜어냈다. 공기는 텁텁했고 날은 뜨거워서 우리는 고생을 꽤 해야 했다. 나는 매일 등교하며 해가 투명하다는 생각을 했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에서 오롯이 떠 있는 태양은 노랗다 못해 밝은 빛을 냈다. 다행히 에어컨을 틀어주어서 우리는 꼼짝없이 반 안에 갇혀 생활했다. 밖에 나가는 일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속에서부터 열이 나 옷자락을 펄럭이며 수업에 들어갔다. 한창 수업을 하시던 선생님이 비가 내렸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차라리 조금 습한 것이 지금보다 나을지도 모르겠다고. 


그 후로 이틀, 비가 내린다. 나무가 휘어질 듯 바람이 분다. 나는 창가에 서서 언제까지 비가 내리나, 중얼거린다. 입이 심심해 간식거리를 사러 나가고 싶어도 나갈 수 없을 정도로 비가 내린다. 공기가 차갑다. 팔 월, 공기가 차가워 나는 어색하다. 선풍기를 강하게 틀고 창문을 꽁꽁 닫는다. 공기가 탁하다. …2014년 8월 2일에.



이틀을 내리 내린 비가 그쳤다. 하늘은 여전히 흐리고 바람은 세게 불었다. 언제라도 비가 다시 내릴 것 같았다. 교회에 갔다와서 집에 누워 있으려니 할아버지가 옷을 챙겨 입고 동생을 데리고 나오라 했다. 바람이 많이 불어 창고 지붕이 날아갈 것 같아 고정을 해야겠다고 했다. 동생과 나는 투덜거리며 슬리퍼를 신고 할아버지를 따라 나섰다. 낭패였다. 창고에 가는 길이 공사 중이었다. 온통 흙길을 슬리퍼 차림으로 걸어가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미끄러지고, 발에 진흙이 묻고. 할아버지는 공사장 길가에 아무렇게나 놓인 파이퍼 두 개를 각각 하나씩 들고 오라고 했다. 창고에 도착했다. 얇은 철판 지붕이 바람이 불 때마다 덜컹거렸다. 동생이 지붕 위로 올라가 파이퍼를 받아 들고 고정시켰다. 파이퍼를 밧줄로 묶어 고정시키려는 찰나에 무언가가 얼굴을 때렸다. 비였다. 바람을 타고 빗방울은 얼굴을 강타했다. 순식간에 눈을 뜰 수 없을 정도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온몸이 쫄딱 젖은 채로 지붕 고정 작업을 계속했다. 


동생과 터덜터덜 집으로 걸어간다. 공사 중인 도로 바로 옆에 개울이 흐른다. 이틀 동안 내린 비로 물이 더해져 마치 계곡처럼 유속이 빠르고 물이 맑다. 나는 주저없이 개울에 들어가 몸을 씻는다. 동생도 뒤따라 들어와 발을 담근다. 비는 계속 내린다. 몸이 으슬으슬 춥다. 동생은 자꾸 가자고 재촉한다. 나는 개울에서 몸을 꺼내 동생의 뒤를 따라가다 진흙을 밟고 미끄러진다. 다리가 더러워졌다. 다시 개울로 되돌아가 몸을 씻고 집으로 간다.


감기에 걸릴 듯하더니 몸이 괜찮다. 역시 튼튼하다. 한 번 열병을 앓게 되면 한동안은 괜찮다. 원체 몸이 튼튼하다. 잘 아프지도 않고 철도 소화할 정도로 장이 좋다. 가끔 저렇게 아플 때가 있다. 아플 때면 심하게 아프다. 오래 아프다. 그래서 힘들다. 열병처럼, 지나간다. …2014년 8월 3일에.



아픈 동안 신경숙의 '외딴방'을 읽었다. 나의 집중 시간은 단편 소설을 한 자리에서 읽어낼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많아봐야 삼십 분. 내킬 적마다 단편 소설의 분량씩 그 긴 소설을 읽어나갔다. 집중을 잃지 않기 위해 정신을 흐트러뜨리지 않도록 주의하면서. 서술자의 감정선을 따라 흘러가듯. 한강의 소설을 읽으며 형성된 독서법이 신경숙에게도 적용된다. 역시 다르다. 한강과는 다르다. 신경숙의 감정선은 한꺼풀 더 막혀 있다. 한강의 감정선은 해안가의 파도 같다면 신경숙의 감정선은 스노우볼 안의 물결이다. 감정선에 몸을 싣고 흐르기 어렵다. 더 많은 집중이 필요하다. 그러나 한 번 편승하게 되면 수월하다. 잔잔히 물결을 따라갈 수 있다. 스노우볼 안의 눈송이도 즐기고 눈사람도 보고 고요도 느끼면서.


'외딴방'을 읽으면서는 한숨을 자주 쉬지 않았다. 한강을 읽을 때에는 장을 넘길 때마다 꽉 막힌 가슴을 뚫어주기 위해 크게 숨을 쉬어줘야 했다. 신경숙에게서 그런 숨막힘을 느끼진 않았다. 다만 마지막 장, 희재 언니가 나오는 장면에서 나는 자주 책장을 넘기는 손길을 멈추어야 했다. 작가가 느꼈을 감정을 나도 안다. 어렴풋이나마. 내 마음을 읽는 듯한 문장이 나올까봐, 그 문장을 읽고 더는 버티지 못할까봐, 내가 제일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이 떠오를까봐, 나는 두려웠다.


가장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 이 문장에서 퍼져나오는 떨림을 안다. 그 대상이 내가 부모를 떠나와 처음으로 마음을 준 사람이었을 때의 고통을 안다. 어렴풋이나마. 나는 겪지 않았다. 내가 제일 사랑하는 사람이 이 죽음을 겪었다. 상상할 수 없었던 요절.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고, 믿지 못했고, 실감하지 못했고, 지금도 떨떠름한 그 죽음에 우리는 휘청거렸다. 내가 제일 사랑하는 사람은 내 어깨를 붙들고 울면서 쓰러지려는 몸을 지탱했다. 울음, 나는 담담히 그를 받쳐주었다. 아팠던….


희재 언니의 죽음에 자신이 관여되었다고 느꼈을 신경숙의 마음이 읽혔다. 그녀는 직접적으로 글에 적어두진 않았지만 나는 글 저편에 놓인 그녀의 마음이 들리는 듯하였다. 그녀의 말못할 주저가 보이는 듯했다. 그녀는 모든 것을 드러내고 싶었지만, 그리하여 자신의 영원한 문학적 숙제를 풀어내고 싶어했지만, 그녀에게도 일말의 한계점은 있었던 것이다. 한계선을 넘어가면 그녀 자신이 버티지 못했으리라. 아니라면, 오랜 세월이 그것을 덮었을지도. 먼지처럼, 더께처럼, 살점처럼 그것을 덮어 그녀 자신이 발견하지 못하도록 숨겼을지도.


글을 쓰고 있는 내 집중이 흐트러지기 시작했다. 한 곳에, 글에 모이지 않는 정신.  …2014년 8월 3일에.











몸에 힘이 빠질 때, 차라리 정신을 잃고 싶을 때, 집중을 잃고 쓰러져 있을 때, '외딴방'을 읽을 때마다 들었던 노래가 있다. 흑인 여가수의 노래다. 잔잔한 알앤비의 노래인 이 노래는 영화 'The Help'의 오리지널 사운드 트랙이다. 우리 삶에 잔잔하면서도 힘 있는 용기를 북돋우는 좋은 영화인 The Help의 OST답게 이 노래는 희망의 메세지를 담고 있다. 아주 긴 여정이 될 거라고 밝히면서 노래는 시작한다. 


아주 긴 여정이 될 거야. 아주 높은 언덕을 오르는 것 같을 거야.  …물론 아주 힘들 거야. 외로운 밤이 닥치기도 하겠지. 그러나 난 나아갈 준비가 되었어. 내 삶을 가로막던 것들이 사라졌어. 기뻐. 난 이제 살아갈 수 있어. 무엇이든 해낼 것 같아. 마침내, 숨쉬는 게 두렵지 않아. 당신이 말했던 것들, 당신이 했던 모든 것, 당신은 진실을 부정할 수 없어. 내가, 살아 있는 증거니까.


노래의 감동이 영화의 감동으로 이어진다. 영화를 다시 한 번 보려다가 그만둔다. 그저 가슴에 응어리지는 뭉클함을 만진다. 영화가 내게 주었던 용기와 희망이 가슴 속 어딘가에 묻어져 있다 피어나려 한다. 신경숙의 제주도에서의 단상들이 스쳐간다. 영상으로 내 머리를 흘러갔던 모습들. 파도가 치고, 그 파도에 앉아 바닷물을 맞는 여성의 모습. The Help의 마지막 장면이 오버랩된다. 인적 없는 긴 거리를 걸어가는 여성의 뒷모습.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이 응축된 여인의 등.  …너무 많은 감정이 내게 닥쳐온다. 


창가에 걸어간다. 물을 한 잔 따라 마셨다. 이제는 비가 그친 것 같다. 아니 아직 그치지 않았다. 눈물을 쥐어짜듯 방울방울 떨어지는 비. 떨어질 때가 아닌 은행잎이 초록의 몸을 물웅덩이에 담근 채 짓이겨진다. 은행잎 무더기를 한참 바라본다. 맞은편 창문을 건너다보다 잘 보이지 않는 하늘을 쳐다본다. 까맣다. 감정을 정리한다. 내일 입을 빨래가 잘 마르도록 뒤집어준다. 제습기를 틀어 빨래를 향해 놓는다.  …그야말로 고요한 밤이다. 선풍기 소리만이 고요를 뚫는다.


낮에 좋은 문장을 하나 생각했었는데 메모해두지 않아 잊었다. 신경숙은 문장을 메모해두는 편이 아니라고 했다. 글과 생각이 그 문장에 한정되어버리는 것 같다고. 글의 자유성을 존중해주는 그녀의 말에, 그녀조차도 글이 완성될 때까지 무슨 글이 나올지 모를 때가 있다는 말에 나는 위안을 얻었다. 글의 구조를 짜놓을 집중력이 없는 내게 글의 시작은 늘 어려웠다. 시작만 어려웠으랴. 아무런 생각도 없이 글을 시작하니 도무지 글이 전개되질 않았다. 그리고 떨어지는 펜. 그렇게 공책에 흔적으로 남은 짧은 글이 수두룩하다.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니 어떻게 소설을 써야할지 갈피가 잡히는 것 같다. 일단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찾아 큰 플롯을 잡는다. 구조를 짜겠다는 압박감을 갖지 않고 대강의 흐름만 잡는다. 머릿속으로. 그리고 무작정 써보는 거다. 어떤 글이 나올지 두려워하지 않고. 다음 문장을 차분히 기다린다. 그것이면 될 거 같다.


시험의 압박에서 벗어났다고 생각했다. 안심하고 있었더니 자소서가 나를 억누른다. 자기소개서를 작성하는 일이 내겐 버겁다. 나는 나를 소개하는 일이 영 어색하다. 나는 남을 칭찬하고 세워주는 일엔 자신이 있다. 나는 남을 누구든 사랑하니까. 그러나 나는 나를 사랑하는가. 나는 이 질문에 곧바로 답할 수 있다. 답은 아니오, 이다. 나는 나를 깊이 생각해본 적도 없고, 내 몸을 위해본 적도 없다. 자기를 사랑하지 않는데 자기를 소개할 수 있을까. 나는 걱정스러워서 자기소개서를 시작할 엄두가 나지 않는다.


…그렇게나 자기를 사랑하라는 메세지를 담은 영화와 소설을 보아와 놓고서는. 


이제 나는 전혜린을 읽어볼까 한다. 우연히 발견한 그녀. 내게 어떠한 울림을 줄는지. …2014년 8월 3일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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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 2014-08-05 21: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랜만이에요!!!!! 오랜마에 보는 이진님문체에엥! 이제 보니 문체가 제가 아는 어떤 아이의 문체와 비슷합니닿ㅎㅎ 외딴방이란 책 한번 읽고 싶네요. 건강해지셨다니 다행이고요, 자소서 화이팅입니다! 저도 이진님도 자소서ㅠㅠ

2014-08-25 20: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transient-guest 2014-08-26 08: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쿠. 그간 고생을 하셨네요. 건강이 제일입니다. 늘 단련하고 몸을 보호하세요.
 






오랜만에 글을 쓰고자 컴퓨터 앞에 앉아 인터넷 창을 띄우니, 전엔 이 넓은 페이지를 어떻게 채웠나 하는 놀라움과 제목을 짓는 것이 참으로 어려웠다는 사실을 새삼 상기하게 된다. 수백의 피지 못한 꽃이 한 줌 가루로 낙화한 지도 한 달 남짓 지났는데 아직 그때의 상처가 씻기지 않고 있다. 어마어마한 사람들을 수용할 수 있기에,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빠져나가고 난 뒤 더욱 공허하게만 보이는 진도체육관의 사진을 보며 진저리 친 것도 한두 번이 아니다. 



내 생에 세번째 죽음을 맞이하였을 때, 나는 읍내에 신설된 장례식장에서 그를 추모했다. 믿을 수 없는 죽음이었기에 장례식장으로 향하는 나와 친구들의 발걸음은 얇게 언 호수의 위를 걷는 것처럼 조심스러웠고, 우리들의 자취에는 침묵과 슬픔이 서려 있었다. 마침내 까만 물결이 치는 건물 앞에 당도했고 우리는 서로 모르게 깊은 숨을 내쉬고 나서야 발을 디딜 수 있었다. 참담한 눈길로 고개를 들었을 때 보이는 것은 상아색의 대리석 벽이었다. 시린 형광등 불빛이 반사되어 투명하고도 새하얀 빛의 떨림이 눈을 통해 틈입하는 것을 나는 느꼈다. 온몸을 장악하는 듯한 상아색의 벽은 분향소 공간 전체를 두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 가운데를 지나는 새까맣고 두꺼운 선. 그것은 마치 생사부의 이름 위에 그어진 붉은 색의 선 같아서, 나는 소름이 돋았다. 주저앉아서 고개를 숙여 얼른 그 벽에서 눈을 떼고 싶었다. 죽은 자의 신음 같은 빛의 파동에 심장이 계속 떨려왔다. 나는 친구들 틈에 껴서 얼른 묵념을 하고선 다신 그 공간에 눈을 주지 않았다. 



공간이라는, 인간을 둘러싼 환경에서 주는 장악력을 나는 그때 확실히 알게 되었다. 아직 그곳에 남은 가족들, 밝은 기억만 가지고 견디기엔 너무도 힘들어서 마지막까지 기다리는 그들, 온힘으로 기다리는 그들이 그곳에서 느낄 감정이 어떨지 나는 공간에 관해서만 조금은 알 것 같다. 



……글을 쓰니 생각을 하게 되고, 그러다보니 그때의 감정이 되살아난다.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 늦은 밤까지 거리를 떠돌며 찬바람에 식혀야 했던 슬픔, 서럽게 울던 친구를 품에 안고 도닥거리며 받아주어야 했던 상처, 주저하게 되고 머뭇거리게 되던 떨림을 잊을 수 없다. 달리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없어서 더욱 안타까웠던 시간들. 하지만 나는 무덤덤했다. 벌써 두 번의 가까운 죽음을 겪어보았기에, 어떻게 그 상실감을 달래야하는지 방법을 터득했기에, 나는 친구들보다 빨리 그것에서 헤어날 수 있었다. 잊는 것이었다. 내 방법은 어떻게든 그것에 관한 것을 생각하지 않는 것이었다. 







  소진이 정욱이에게 우유를 먹이는 동안, 나는 거실 바닥으로 내려와 소파 다리에 등을 기댄다. 눈을 감고 있다가, 나도 모르게 깜빡 잠이 든다. 혼곤한 잠 속에서 방향을 잃는다. 여기가 어딘가, 저건 어떤 아이의 울음소린가. 언제인가. 나는 지금 언제에 와 있는 건가. 마치 물 위에 떠 있는 것 같다. 어지럽다. 가슴이 울렁거린다. 어쩌면 이렇게 환한가. 물이 번쩍이는 건지 공기가 번쩍이는 건지 알 수 없다. 다시 열세 살인가. 열세 살의 여름방학인가. 작은아버지를 따라 처음 고깃배를 탔나. 흔들리는 배의 이물에 납작하게 몸을 낮춘 채 나는 겁먹고 있다. 바다 가운데로 나오자, 눈부신 잔멸치 떼가 일제히 배 밑을 헤엄쳐 간다. 빠른 빛이다. 셀 수 없는 빠른 빛이다. 배까지 쓸려 뒤집힐 것 같다. 순식간에 모든 것이 지나가고 난 뒤, 물의 정적이 숨을 틀어막는다. 기포처럼 내 몸이 부서진다. 영원히, 시간이 정지한다. 나는 떤다. 두렵기 때문이다. 너무 아름다운 것도 고통이 된다는 것을 처음 알았기 때문이다. 그것이 못이나 씨앗처럼 몸 안에 박히기도 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이 평생토록, 끈덕지게 죽지 않고 살아 꿈틀거리리라는 것까지 열세 살의 나는 아직 모른다. 갈망과 절망, 풀리지 않는 긴장으로 내 몸이 들뜨고 지칠 것임을 모른다. 다만 두렵고 모호한 예감을 잠재우기 위해, 두 손을 빳빳이 펴 오목한 가슴을 누르고 있다. 강한 물빛 때문에 거의 눈을 감은 채, 토하지 않기 위해 계속해서 침을 삼키고 있다. 부신 눈을 가까스로 부릅뜨자, 입가에 온통 흰 우유를 묻힌 아이가 뒤뚱뒤뚱 나를 향해 다가오고 있다. 무방비 상태의 웃음을 물고 있다. (노랑무늬영원, '노랑무늬영원' 293p)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을 때 혹은 할 수 없을 때마다 나는 한강의 이 소설집을 꺼내든다. 소수의 파랗고 붉은 점들의 앞뒤로 비치는 수많은 노란 점의 그림을 나는 망연히 응시하곤 한다. 한강이 소설에서 밝혔듯 이 점들은 해질녘, 산 너머로 이우는 해와 함께 몸 안에서 무언가가 함께 빠져나가는 듯한 느낌을 받는 그 시각, 나뭇잎 사이로 조각조각 나뉘는 샛노란 빛을 찍어낸 것이다. 무언가 빠져나간 빈 공간으로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生을, 광명을 바라보는 것은 나로 하여 애잔한 기분을 갖게 한다. 지금도 지나가버리고 있을, 내가 알지 못하는 무언가가 안타까워서 나는 항상 나무 밑에서 고개를 처들곤 한다.



한강의 이 소설집은 읽을 때마다 새롭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내가 성숙하는 것도 한 이유가 될 것이고, 처음에는 보지 못했던 글의 가지들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 가장 큰 이유가 될 것이다. 소설집의 마지막에 실린 중편소설 '노랑무늬영원'이 특히 그렇다. 처음에 나는 잔멸치 떼가 상징하는 바를 이해하지 못했다. 내게는 서로에게 질린 한 부부의 냉소와 그와 대비되는 산에서의 짧고 어색한 만남의 떨림만이 들어올 뿐이었다. 한강이 감각적으로 써낸 것을 나는 오로지 감각으로밖에 읽어내지 못했다. 두번째로는 '영원'이라는 단어에 주목해서 글을 읽었다. 단어가 주는 울림에 몸을 맡긴 채, 감정[感]은 스스로 팽창하거나 수축하거나 했다. 이제 내 눈에 들어온 것은 '잔멸치 떼'이다. 내 밑을 훑고지나가는 잔멸치 떼. 셀 수 없이 빠르고 거대한 무리. 순식간에 다리 밑을 스쳐지나는 그것. 그것은 生의 격정 자체이다. 격렬하게 生이 스치고 간 뒤 남는 공허감. 갈망과 절망, 가없는 동굴에 빨려들어가는 듯한 공포감. 



生이란 너무 아름다운 것이기 때문에 고통이 되는 것이다.



바닥에 떨어뜨린 유리가 깨어지듯 마음 속에서 어떠한 장면이 솟구쳐 오른다. 살아남았으므로 비통한 자들의 눈물, 이토록 아름다운 것을 홀로 누리게 된 고통에 가슴 치는 이들이 눈에 아른거린다. 어찌하여 생명은 이토록 빛나고 아름다운 것일까.








죽음에 관한 짧은 수필을 쓴 적이 있다. 동아리 신문에 투고하기 위해 밤을 패가며 써낸 수필인데 신문의 편집을 맡은 친구가, 글을 메일로 보낸 다음날 내게 말을 걸어왔다. 그 친구의 말로는 자기가 글을 읽으며 크게 감동받은 적이 딱 세 번 있는데 그 중 한번이 바로 내 글이었다는 것이다. 나는 그 칭찬을 듣고 얼마간 의아해하며 집에 와서 다시 글을 읽어보았다. 새벽에 손이 가는 대로 적었던 글에는 죽음은 곧 진입이며, 죽음으로 인해 우리가 들어가게 되는 곳은 바로 無의 세계라는 약간은 피상적인 문장들이 가득했다. 가슴 깊이 느끼지도 못하면서 용케도 이런 글을 적었구나, 하고 자조하며 마지막 문단을 읽는데 가슴에 무언가가 마치는 느낌이 들었다. 내가 쓴 글임에도 생경했다. 내가 예전에 시를 한 편 읽었는데, 그게 자꾸 떠올라. 뭔데. 상갓집에 아무렇게나 널브러진 신발들 있잖아, 그게 죽음이라고. 결국 죽음은 생과 분리된 게 아니라 생과 결부된 것, 더 나아가 생 그 자체인 거라는 말이지. 그도 발걸음을 멈췄다. 호주머니에 손을 꽂아 넣고 나를 응시했다. 그건 아닌 거 같다. 죽음이 생이라면 우린 아무것도 아닌 게 되잖아. 나는 고개를 내려 그와 눈을 맞췄다. …모르겠어. 나도 아직 잘 모르겠어. 우리는 서로 피식 웃었다. 나는 내가 이때 무슨 생각을 하며 이 문장을 적어내려갔는가 떠올리려 했지만 결국 실패했다. 죽음과 생의 결부…… 무엇일까. 내게 이런 글을 쓰게 만든 힘은.



그러나 나는 내가 적은 글이 한낱 고등학생의 중얼거림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나는 이제 죽음에 관해 정의하기보다 가슴으로 느끼려 한다. '노킹 온 헤븐스 도어'는 내게 그 시초가 된 영화이다. 뇌종양과 암으로 시한부 판정을 받은 두 남자가 같은 병실을 쓰게 되면서 영화는 시작한다. 둘은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공통점 외엔 전혀 다른 성격을 갖고 있다. 절제에 서툴어 난폭하고 거칠기만 한 마틴과 그를 마뜩잖은 눈길로 바라보는 루디. 둘은 서로가 죽음을 앞두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병원 주방에서 데킬라를 나눠 마신다. 데킬라 한 병과 소금, 많은 레몬… 그리고 바다. 루디는 자신이 바다를 본 적이 없다고 말한다. 마틴은 그런 루디에게 천국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천국에 관해서 못 들어봤니? 그곳엔 별다른 이야깃거리가 없어. 

……바다의 아름다움과 바다에서 바라본 석양을 얘기할 뿐이야.

물속으로 빠져들이 전에 핏빛으로 변하는 커다란 공.

사람들은 자신이 느꼈던 그 강렬함과 세상을 뒤덮는 바다의 냉기를 이야기하지.

영혼 속의 불길만이 영원한 거야…….



마틴과 루디는 바다를 보기 위해 병원을 탈출한다. 生의 끄트머리, 천국의 문 앞에서 그들은 당돌해진다. 은행을 털기도 하고 주유소에 침입해선 자연스러운 연기로 경찰을 피하기도 하고, 호텔에 숨었다가 차를 훔치고…… 그러다보니 둘은 단지 바다를 보기 위함이었을 뿐이었는데 강도로서 쫓기는 신세가 되어 있다. 둘은 그 와중에 버킷리스트를 작성해 하나하나 달성해나간다. 마틴은 어머니에게 차 한 대를, 루디는 두 여자와의 잠자리를 이뤄내고야 만다. 우여곡절 끝에 그들은 언덕 앞에 선다. 바람이 부는 갈대밭이 퍼져 있는 낮은 언덕. 그리고 언덕을 넘어 바다가 나오고.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가 심장을 뒤엎는 것 같다. 장엄하게 펼쳐진 거대한 바다 앞에서 그들은 잠시 멈춘다. 파도를 만드는 바람을 맞으며 둘은 걷는다. 둘은 떨리는 눈으로 바다를 응시한다. 한참을 본다. 눈이 붉어진다.



쓰러진다. 모래 위에 검은 그림자가 쏟아지고, 파도는 친다. 끊임없이.



……결국 生은 바다 앞에서 아무것도 아닌 것이다. 



生은 데킬라 한 병과 소금, 많은 레몬이면 되는 것이다.












그렇다고하여 내가 지금 여기 앉아 있는 것이 헛됨이 아님을 안다. 生은 바다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니지만 그것이 위대하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하찮은 생명은 하나도 없기에 우리는 죽음에 슬퍼하는 것이 당연하다. 하나의 위대한 별이 지는 것이기에, 그 별의 빈자리를 채울 수 있는 것은 두 번 다시 생기지 않을 것이기에. 


간단하지가 않은 것이다.



바다를 보고 싶다.



그러나 마주할 수 있을까. 그 앞에 마틴과 루디처럼 설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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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nca 2014-05-18 17: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믿어지지 않는 정말 거짓말이었으면 좋겠다는 일들이예요. 4월 16일 오전에 무심코 인터넷 포탈에서 아이들의 소식을 읽고 전원구조,라는 그 표제 기사에 아, 그렇구나, 다행이네, 별일 아니네, 했던 기억이 악몽으로 변했던 시간들. 님은 더더욱 같은 고등학생 친구들이라 많이 아팠을 것 같아요.

조금씩 덜 울고 잊어버리기도 하면서 하지만 또 떠올리면 울분이 치밀어 오르고. 내가 뭘 할 수 있을까, 생각도 해보고. 가까운 이의 죽음을 두 번씩이나 경험했다니, 소이진님이 이야기하는 죽음은 저보다 더 깊고 아파 보입니다. 저는 영원히 죽음은 잘 받아들일 수 없을 것 같아요. 그래서 시간이 가는 게 여러모로 무서워요.

이진 2014-05-18 19:48   좋아요 0 | URL
별일 아니구나. 전원 구조, 면 다 된거지. 선생님 배가 하나 뒤집어졌다는데 기사나 찾아봐요, 하면서 시간 때우기 용으로 이용하던 저의 모습이 떠올라 부끄럽네요. 저희는 그저 놀랍고 무서웠어요. 저희 학년이 작년에 배를 타고 수학여행으로 제주도를 다녀왔고, 얼마 안 있어 이학년들의 수학여행이 예정되어 있었기 때문이죠. 다들 안도하면서도 미안하고 그랬어요.

시간이 가면 갈수록 상처가 곪아가니까요...

2014-05-18 18: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5-18 19: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5-22 09: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수수꽃다리 2014-05-23 09: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시간을 보내고 있었군요!
나에겐 유구무언의 시간.
이진씨 이름을 보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반가운데 말이에요.
한강의 글을 꼭 읽어봐야겠어요.
열심히 거기 있기입니다!
 






두 달, 만인가요. 이러구러 많은 일을 해나가다보니 이러구러 시간이 지났습니다. 두 달 동안의 제 화두는 단연 친구였어요. 친구 문제로 참 많이 힘들어 했고 그만큼 또 즐겁고 행복했으며 또 성숙하기도 했습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친구들을 대할 때, 이렇게 행동하는 것이 옳은가, 하는 희한한 정당성을 따졌는데 이젠 그러지 않아요. 이 모습의 저를 좋아해주는 친구가 있고 이렇게 살아가는 것이 옳다는 것을 시나브로 깨닫고 있는 요즈음입니다. 생일이 오래 지나지 않았는데 선물도 많이 받았고, 제 가장 소중한 친구들과 함께 밥도 먹고 축하도 받은, 그야말로 생애 최고의 날이었습니다. (생애, 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은 여전히 민망하고 어색하네요.) 그러니까, 잘 지내고 있단 말입니다. 태양계까 정해진 궤도 안에서 돌듯 저와 제 친구들도 이제 일정한 궤도 위에서 구르고 있는 것 같아요. 다들 공부와 시험을 두려워 하고 무엇보다도 대학 문제에 민감해졌습니다. 제게 문학을 가르쳐 달라고 다가오는 사람들도 훨씬 많아졌고 전보다 열심히 하는 친구들도 많아졌구요. 덩달아 저도 열심히 해보았습니다. 공부를 죽어라 안 하던 저였는데 이번 학기는 죽어라 해봤어요. 그렇다고 코피를 쏟을 정도로 한 건 아니지만 괜찮은 성적을 받았고 계열 전체에서도 그럭저럭 순위에 올랐습니다. 글 쓸거라고 자만하고 나태했던 모습을 돌이켜보면 부끄러워요. 아직 철학과, 문창과, 국문과 중에서 어디에 진학하겠다는 확실한 목표를 세우지 못했지만 아무래도 글보다는 공부에 주력해야 겠다는 생각을 많이 하고 있어요. 그래서 그런가, 몸이 많이 허해진 걸 느낍니다. 개도 안 걸린다는 여름 감기를 이 년 연속으로 걸리네요. 저번 달부터 결핵환자처럼 켈록대더니 일주일 전부터는 몸살난 것처럼 찌푸둥하고 머리도 아프고 목도 갈라지고 그러네요. 덩치는 산 만한 게 몸은 또 이리 약해서. 주절주절 사담은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많은 영화와 책을 보았는데 페이퍼로 작성하고 싶어요. 시간이 아주 조금 걸릴 테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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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7-26 13: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7-27 21: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7-28 10: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7-29 01: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7-26 13: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7-27 21: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히히 2013-07-26 14: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딸들 방학 이후
목 쭈~욱 빼고 이진님을 기다렸습니다.
방학이라 출두하리라 자신했습죠. ㅎㅎㅎ

심장을 후비고 간 풍량에
크고 작은 상흔은 남겠지만 청춘의 수확입니다.
그 상처가 뜸이 들면 추억이 됩니다.
단, 너무 굼뜨서 잊을만 할 때 쯤 그리워집니다.
지금의 저 처럼요.
여고 친구들이 엄청 보고파요. T T

이진 2013-07-27 21:53   좋아요 0 | URL
히히님 저도 히히님 댓글 받고 싶어서 페이퍼 꼬박꼬박(?) 쓰는 거잖아요.
방학이라서 출두한 거 맞습니다. 사실 신간평가단 신청했는데 똑 떨어져서,
떨어진 김에 또 들른 김에 느릿느릿 재개해보려구요.

그렇겠죠. 낙화, 라는 시가 생각나요. 언젠가 열매를 맺을 거라던 위로가.
또 다른 글로 찾아뵐게요... 라는 마무리 인사는 조금 이상하네요.
그럼 :D

마음을데려가는人 2013-08-02 15: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오랫만이네요.
전 한 넉 달 동안 정말 정신없이 바빴어요.
이제야 여유를 찾은 것 같아요.

페이퍼로, 리뷰로 이진 님 자주 보고 싶네요. :)

이진 2013-08-05 19:36   좋아요 0 | URL
마음님...^__________^

jo 2013-08-06 21: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왕 셤 끗나고 여러번 들렀는데 아무것도 없어서 얼마나 속상했는데여... 친구는 뭐.. 다 그렇쳐 ㅋㅋ 친구 문제 잘 해결되셔서 기뻐요. 저도 지금 여름감기 시달리는 중입니다. 오랜만에, 정말 오랜만에 휴식을 만끽하고 있습니다~~
가족끼리 여행은 오케 스트라공연때메 참가하지도 못하고, 가끔 제 자신이 불행....ㅋ
이진님 글은 언제나 멋져부러.. 저도 그렇게 쓸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한씨 연대기 독후감을 쓰면서 1000자 이상 넘어가지 못하는 저를 보면 한심합니다.

이진 2013-08-12 15:59   좋아요 0 | URL
조님도 여전히 잘 지내시는 군요! 글은 많이 읽고 쓰면 는답니다.
저도... 어서 필력을 키워야 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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