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회'를 다 보는 데 두 주가 걸렸다. 음악과 사랑, 뒷세계가 치명적으로 녹아든 수작이었다.

연기와 음악 그리고 이 드라마만의 분위기를 오랜 기간 탐닉하는 나를 친구들은 이해하지 못했다.

불륜 드라마니 재미없는 드라마니 하면서 드라마 자체를 폄하하기 바빴고 나는 아니라며 손사래쳤다.

초반의 무아지경의 사랑에 빠져 마치 물 속에 잠긴 듯 허우적거리던 김희애와 유아인의 모습이 좋았다.

비상등의 붉은 조명이 그들을 선정적으로 비추고 있는 주차장 안에서 한참 서로의 눈망울을 탐하다 기습적으로 입술을 부딪히던 장면과 자신에게 맹랑하게 다가오던 유아인을 혼내듯 노려보다 와락 키스하던 김희애의 표정, 자신에게 항상 당당하고 올곧던 김희애의 약한 모습을 지켜본 유아인의 약간 벌어진 입술이 잊히지 않는다.

푸른 물방울 속 세계의 아득하고 몽롱한 분위기가 클래식과 만나 한층 확장되고 증폭되었다.

후반으로 가면서 극은 퇴폐적이고 범접하기 힘든 내용으로 더욱 무게를 더해갔다.

대기업 회장, 예술재단의 이사장과 사장의 충견 노릇을 하던 김희애가 몰락해가면서부터 극은 휘청거렸다.

과한 밀도와 단단하게 응집된 공기가 극이 진전하는 속도를 저해했다. 무겁게 짓누르면서.


끝을 보긴 봤다.

긴 여운이 유아인의 음성과 김희애의 머리카락에서 묻어났다.

이토록 뜨겁고 강렬한 사랑이라. 나는 이 드라마를 어쩐지 아끼는 소설처럼 오래 간직할 것 같다.

허리를 숙이는 것이 직업인 나에게 누군가 신발을 신겨준다면 나 또한 허우적거리며 그에게 빠져들지 않을까.

맹목적이고 무엇이든 버릴 수 있는 사랑의 감정이 다시 내게 찾아와준다면 좋겠다.

사랑이 없는 삶은 건조하다. 김희애에게 사랑이란 곧 자기 자신으로의 회귀였다. 

유아인은 자기의 20대의 열정과 꿈으로 가득했던 과거이자 젊음이자 잃어버린 본래 모습이었다.

그토록 빈틈없이 치열하던 그리고 치밀하던 김희애에게도 부족한 점이 있던 것이다.

치명적인 사랑, 곧 되찾음의 과정. 김희애가 연기를 참 잘했고 대본이 참 잘 쓰여졌다.

대사가 참 좋았다는 기억이 크다. 악기를 연주하듯 분위기를 뚫고 울리던 아름다운 대사들.


다음 두 주를 '워킹 데드'를 보면서 허비했다. 

좀비 드라마는 정말이지 시간 낭비 그 이상이 아니다. 

하지만 재밌었다. 두 주 동안 미쳐 있던 게 아깝지 않을 정도로 재밌었다.


그리고, 미생.






간단하게 평가를 내리자면, 정직한 드라마라는 것이다.


어쭙잖은 애정선과 부실한 갈등을 억지로 끼워맞추는 게 아니라 정면 돌파, 직구를 던지는 느낌이었다.

한강의 '소년이 온다'를 읽을 때 이런 감정을 느꼈었다. 삶을 잃은, 기억을 놓친 사람들에 대한 위로와 헌사.

그녀의 과거의 조각에서 시작된 집필은 종국에서 역사적 사건과 감정의 환생으로 이어졌다.

비망록과 같은 그녀의 소설은 최명희의 말처럼 천형이 되어 작가와 독자들의 마음에 각인을 새겼다.

나는 굉장히 폭력에 강한 사람인데, 그래서 잔인한 영화와 소설을 쉽게 읽어내지만 유독 이 작품은 힘들었다.

정부의 무자비한 무혈진압에 속절없이 쓰러진 시민들의 고통과 패배가 쓴맛으로 단어에 물들어 있었다.

단어와 문장, 작가의 호흡을 곱씹으며 무참히 쏟아진 그들의 장기를 만지고 있는 듯한 착각을 느꼈다.

이것은 한강이 담담하게, 그러나 최선을 다해 역사를 그려냈기 때문이었다.

한강은 작가의 말에서 스스로 자신이 '소년이 온다'를 어떻게 썼는지 밝히고 있다.

광주와 죽어간 사람들에게 누가 되지 않도록 최대한 잘 써야겠다는 마음으로 펜을 들었다고 한다.

사실적으로 고통을 가감없이 드러내는 것, 그것도 작가의 역량이고 힘이다. 한강을 힘을 가진 작가다.


미생을 그린 윤태호 만화가도 상당한 힘을 가진 사람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미생 만화 원작은 보지 못했고 드라마와 만화 후기를 보았을 뿐임에도 윤태호 만화가의 노력이 생생히 만져졌다.

윤태호 만화가는 회사원의 직급조차, 즉 부장과 차장의 계급 위치조차 알지 못했다고 운을 뗐다.

바둑과 회사 생활을 접목시키기 위해 회사원을 취재하고 요르단까지 찾아간 그의 수고를 후기에서 읽었다.

나는 이 후기가 어쩌면 만화의 감동을 증폭시키기 위한 거짓말이 아닐까 생각했다.

아니 어떻게 회사의 구조조차 모르던 사람이 이런 작품을 그려낸단 말인가.

그만큼 미생이라는 작품이 띠고 있는 현실성과 현재성이 뛰어나다는 말을 하고 싶다.

내가 회사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이것쯤은 짐작하고 느낄 수 있다.


無에서 有를 만들어내는 것, 작가의 힘이다. 엄청난 힘.


드라마를 보는 내내 윤태호 작가가 작정하고 그렸고 감독이 작정하고 만들었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한 편 한 편 버릴 만한 장면이 없었고 드라마가 아닌 취업에 성공한 선배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듯했다.

그러니까 막막하고 아득한 기분이 닥쳐왔다는 것이다. 내가 서 있는, 곧 직면하게 될 현실이라는 절벽.

장그래가 자신의 모든 것이었던 바둑을 버리고 생계를 짊어져야 했을 때 나는 그를 동정했고,

낙하산으로 대기업 인턴으로 들어가 주변 동료들에게 온갖 멸시와 괴롭힘을 당할 때 나는 그들을 이해했다.

아무것도 모르고 할 수 있는 것도 없이 멍하게 앉아만 있던 장그래가 회사에 적응하고 일에 능숙해질 때 나는 벅찼고 그를 측은한 눈빛으로 쳐다보는 사람들에게 이입하여 나도 그를 측은하게 쳐다보았다.

장그래는 계약직이었다. 2년 뒤면 재계약을 해야 했고 정규직으로 전환될 가능성은 없어보였다.


계약직.

드라마 '직장의 신'이 떠오른다. 전지전능의 자처 계약직 김혜수가 열연했던 드라마.

미생 이전에 회사원과 계약직의 비애, 회의, 외로움을 잘 그려낸 수작이었다고 나는 평가한다.

그러나 조금은 불필요해 보이는 애정선의 개입으로 나는 흥미를 잃고 드라마를 끝까지 보지 않았다.

이것이 미생과 직장의 신의 차이다. 명작과 명작이 될 뻔했던 작품의 차이. (공중파와 케이블의 차이.)

직장의 신에서는 김혜수 말고도 정유미가 계약직 사원으로 연기를 했었는데, 여기서 정유미 참 많이도 울었다.

곧 계약직이란 회사의 놀잇감이라는 거다. 혹은 진딧물.

필요할 때 일을 시키고 모든 걸 빼먹고는 내킬 때 내치기 위해 채용하는 인물.

직장의 신에서 계약직은 세상에서 제일 불쌍하고 처절한 사람으로 그려졌다.


미생에서 계약직이 차지하는 비중은 그렇게 크지 않다.

미생은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아직 완성되지 못한 사람들의 이야기다.

저마다의 사연과 이야기를 안고 어떤 인연을 만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우리의 인생, 삶.

항상 기쁘지도 항상 슬프지도, 웃고만 있을 수도 울고만 있을 수도 없는 우리의 인생, 삶.

그렇기 때문에 우리들은 서로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다.

상대의 부족한 점을 채워주고 함께 다음 수를 고민하고, 모두가 더불러 책임지는.

인간이 사회적 동물이라는 말은 곧 모든 인간은 미생의 존재라는 말과 동일하다.

또 우리는 아직 완벽한 상태가 아니기 때문에 어떻게든 변할 수 있다.

우리가 나아가고자 하는 대로 나아갈 수도 있고 그러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날아보는 거다. 도전하는 거다. 앞으로 성큼성큼 나아가보는 거다.

어떤 날개가 우리를 날게 해주고, 어떤 미래가 우리의 발 밑을 받쳐주고 있을지는 모르는 일이기 때문에.


나는 미생을 본 후 가끔 울적해지는 때가 잦아졌다.

취업이라는 단어가 이제 본격적으로 살갗에 뼛마디에 와닿기 시작한다.

내 미래가 어떻게 흘러갈지는 모르겠다. 까마득하고 깜깜하다.

그러나 양과 질이 다른 노력으로 땀 흘리고 부딪혀 생채기를 입다보면 어느새 서 있는 내 미래가 있겠지.

그 자리에서 미생의 사람들과 소통하고 웃으며 적응해가는 내 자신이 있겠지.

완생을 향해 날아가는 내가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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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5-01-15 13: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뭘 벌써부터 취업을 생각해? 학교 입학식도 갖기 전에.
그저 학교 들어가서 열심히 공부할 생각부터 해.
나도 밀회는 재밌게 봤는데 결국 작년에 남는 드라마는 저 미생과 정도전이었던 것 같다.
변요한이던가? 쟤 연기 잘하는 것 같아 기대가 되더군.
조만간 공중파에서 보게되지 않을까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