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 죽지 마.


  죽지 말아요. "     - 한강, 소년이 온다










 1.


  이맘때면 늘 들려오는 소식이 있었다. 일반 학생의 신분으로서 수능시험이 끝나고 성적을 비관하며 죽기를 택한 학생들의 이야기를 접할 때마다 나는 참 먹먹하고 답답했다. 의아한 기분조차 들었다. 대체 무엇이 아직 피어나지도 못한 꽃들을 스스로 낙화하게 만든단 말인가. 어떤 비참한 감정이 그들을 휩싸고 그들의 꽃줄기를 흔들었을까. 올해도 어김없이 들려왔다. 낙화의 아픔. 그것은 두려운 마음으로 예감했던 시일보다 빠르게 다가왔다. 수능 하루 전 압박감을 이기지 못해 아파트 17층에서 몸을 내던진 것. 친구들이 마침표를 찍으러 간 사이 그는 내세의 구불거리는 길을 홀로 걸어가고 있었다.


  세상이 늘 구름 위만 같았기에 통통 튀어다녔던 내가 어느새 고등학교 3학년이라는 명패를 가슴에 달고 치열한 경쟁 하에서 중간, 기말고사를 치르고 한 자 한 자 써내려가는 것이 천형인 것만 같았던 자기소개서를 몇 장 써내고 매 순간이 걱정과 염려, 불안과 두려움으로 그득했던 수시 철을 보내고 19년 한평생의 정점이자 종점이라고 감히 칭할 수 있는 수능을 끝내고 나니 그들의 심정을 조금은 알 것도 같다. 지금 나의 기분이 어떠냐 하면 기쁘지도 즐겁지도 그렇다고 슬프지도 비관적이지도 않다. 마지막 과목인 사회탐구를 마치자마자 사위에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다른 차원으로 끌려온 듯 감정도 생각도 없다. 영화 '루시'에서 루시의 뇌 사용량이 극치에 달했을 때 경험했던 그토록 하얀 無의 세계. 나는 無를 생각하고 無를 살아간다는 느낌이다. 이것을 허탈이나 허무 등의 단어로 대치할 수 있을까.


  사실 나는 수능 시험에 사활을 거는 수험생이 아니었다. 이미 수시로 대학에 합격한 상태였고 다른 대학의 최저학력기준을 맞추어도 가지 않을 것이었기 때문에 수능은 내게 인생의 한 번뿐인 경험 이상은 아니었다. 수능 하루 전이었다. 수능 준비로 점심만 먹고 전교생 하교 조치가 내려졌고 나와 한 친구는 하굣길에 함께 했다. 그는 나의 수십 배로 열심히 공부한 친구였다. 그러나 수시에서 그가 원하는 대학교에 합격하지 못했고 남은 대학의 최저와 정시를 위해 수능 시험을 잘 쳐야 했다. 그러니 그때의 시간들은 그에게 그야말로 1분이 1초인 것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볼이 음푹 패이고 머리가 잔뜩 흐트러져 그의 모습은 초췌했다. 감기에 걸릴까봐 목욕조차 제대로 하지 못한다는 친구의 말을 들으며 나는 미안함을 느꼈고 친구도 그것을 느꼈는지 내게 장난을 치기도 했다. 친구는 내게 너는 이미 대학생인데 수능시험을 치러 올 것이냐고 물었고 나는 네 밑에 깔아주기 위해서라도 간다고 말했다. 친구의 집 앞에서 우리는 헤어졌고 다행히 친구는 수능 시험에서 만족스러운 결과를 냈다.


  어떤 면에서 잔인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냥, 세상도 잔인하다.





  2.


  나는 사람들이 죽지 않았으면 좋겠다. 수험생이든 어린아이든 한창때의 사람이든 하나의 인생이 끝맺어진다는 것은 빛이 없게만 느껴진다. 전혜린의 수필집을 읽으면서 나는 특히 이런 생각을 많이 했다. 그녀 하나의 죽음으로 그녀의 남아 있던 삶이 빛을 잃었고 그녀 곁에 있던 사람들이 빛을 잃었고 그녀가 살았던 곳과 다녔던 곳이 빛을 잃었다. 그녀의 존재가 있음으로써 가득하였던 공간과 시간 들은 이제는 텅 빈 지하처럼 공허하기만 하다. 

  

  대부분의 학생은 정치에 극히 흥미를 갖고 있다. 아데나워(지금은 은퇴했으나)의 욕설이 시작되면 끝이 없었다. '반항적'이라는 전통이 그대로 지켜져 내려오고 있는 그들은 시민적 도덕이나 소시민 근성에 대해서만이 아니라 정치적으로도 매우 반항적이었다. 핵무기 도입이 한참 신문에서 말썽거리가 되고 있을 때 그것에 대한 반대 데모 행진에 뮌헨 대학생이 거의 전원 참가했었고 에리히 케스트너가 '후버 교수 광장'에서 핵무기 반대 연설을 했을 때는 경관도 그의 경구와 아이러니에 넘친 멋있는 화술에 빙그레 웃음짓고 있었다. 

  온갖 물질의 결핍과 가난과 노동, 식사 부족, 수면 부족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그 하늘을 찌를 듯한 패기, 오만한 젊음, 순수한 정신, 촌음을 아끼고 인식에 바쳐지는 정열과 성의, 조금도 외계나 속물과 타협하려고 들지 않는 자기 유지의 노력, 정말로 이러한 모든 것으로 이루어진 팽팽한 세계가 뮌헨 대학생의 세계인 것 같았다. 

  반항을 위한 반항이 아니라 옳은 것을 끝까지 옳다고 주장할 수밖에 없는 실존적 성질에서 우러나온 반항이고, 자기를 외계의 비속화 작용으로부터 막으려는 그럼으로써 정신의 자유를 지키려는 데서 우러나온 빈곤의 감수요, 초연이며 자기 극복이다. (p 74)


  전혜린의 수필을 오래 읽으면서 나는 그녀의 삶에 대해 충분히 곱씹어보았다. 나는 한비야를 아주 좋아한다. 그녀의 서적을 모조리 찾아 읽고 그녀가 출연한 TV 프로그램도 하나하나 찾아보고 그녀의 인생관을 마음에 새기고 살아가려고 노력한다. 그녀의 열렬한 팬으로서 그녀의 당당하고 활달하고 긍정적인 에너지를 사랑한다. 나는 전혜린에게서 한비야가 품고 있는 야심과 에너지를 읽을 수 있었다. 어쨌거나 두 사람 모두 한국을 떠난 사람들이다. 이 좁은 땅, 편협한 공간에서 떠나 드넓은 공간으로 나아간 사람이다. 전혜린이 거듭 언급했듯 '떠나기 위해서 떠나는' 사람들이다.


  그녀가 전달해주는 슈바빙 사람들의 이야기와 뮌헨 대학생들의 이야기를 활자로 전해 듣고 있노라면 다리와 엉덩이가 근질거려 죽을 지경이다. 슈바빙의 사람들은 가진 것 없이 행복하고 평화로우면서도 예술에 애정을 가진 사람들이고 뮌헨의 대학생들은 가진 것 없이 정의롭고 패기롭고 씩씩하고 당당한 사람들이다. 그녀가 보았던 모든 것과 모든 이들을 나도 동일하게 경험해보고 싶었다. 슈바빙의 허름한 술집에 앉아 씁쓸한 맥주를 마시면서 수염이 길게 자란 노인과 문학을 논하고 뮌헨의 대학로를 걸으면서 학생들의 몸에서 뿜어져나오는 젊음과 패기, 뜨거움을 피부로 느끼고 싶었다. 그들과 전혜린은 삶을 즐기는 인물이었다. 그녀는 제 2장의 수필에서 이렇게 말한다. " 젊음과 아름다운 풍경과 사랑만 있으면 사실 약간의 공복은 큰 문제가 아닌 것이지 않는가? " 아무도 보지 않을 그림과 아무도 읽지 않을 시를 쓰며 예술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사실 누구보다도 행복하다. 그녀 또한 행복하지 않았을까.


  전혜린은 사랑에 충실한 사람이었다. '마지막 편지 - 장 아제베도에게'는 마치 혈서 같다. 그녀는 '너를 단념하는 것보다도 죽음을 택하겠'다고 고백하고 있다. 이 수필을 읽으면 한때 내 모든 것을 바칠 수 있을 정도로 누군가를 사랑했던 기억이 난다. 짝사랑이었으니 매우 고통스러웠고 때문에 화인처럼 심장 언저리에 찍혀 있는 사랑이다. 이 사랑이 좌절된 이후 나는 어떠한 사랑 이야기에도 공감하지 못하고 다만 그때의 감각과 감정을 희미하게나마 되짚어 억지로 느끼려고 노력한다. 전혜린의 고백은 나와 상당히 닮아 있다. 나는 그녀의 글을 읽으면서 어느새 굳어버린 감각이 약간은 살아나는 것을 느꼈다. 


  물론 이 에세이집에서 가장 아름답고 평화로운 부분은 육아일기이다. 산고를 모조리 안고 태어난 정화를 향한 그녀의 사랑은 지극하다. 나는 이 부분을 읽으면서 가슴이 아렸다. 대체 무엇이 이토록 사랑하는 아이를 두고 그녀를 죽게 만든 걸까. 나는 전혜린의 죽음으로 홀로된 정화의 심정이 자꾸 마음에 밟혔다. 지금은 교수를 하고 있다는 그 아이의 어린 시절은 엄마의 죽음으로 흔들렸겠지. 





  3.


  사강을 보면서 저 사람은 자기를 무척 사랑하고 있다고 느꼈었다.

 

  전혜린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자기애.





  4.


  다시, 한강의 책으로.


  내게 고통이라고 불리는 책이 두 권 있다. 한강의 '바람이 분다, 가라'와 한강의 '소년이 온다'이다. 전자는 가는 포스트잇을 군데군데 붙여 두고 쓸쓸할 때마다 가슴 한 켠이 아려올 때마다 수시로 꺼내 읽고 있지만 후자는 도무지 읽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는다. 아니 읽고 싶지 않다. 책을 휘 넘겨 동호의 이름이 나올 때마다 숨이 턱 막히고 코 끝이 시리다. 


  1980년의 광주에 몸을 묻은 동호와 남겨진 이들의 미래. 그 형체 없는 도로를 따라 천천히, 물이 떨어지듯, 뚝뚝, 묵묵히 걸어오는 동호. 나는 소설의 세번째 장 '일곱개의 뺨'에서의 고백이 인상 깊었다. " 치욕스러운 데가 있다, 먹는다는 것엔. 익숙한 치욕 속에서 그녀는 죽은 사람들을 생각했다. 그 사람들은 언제까지나 배가 고프지 않을 것이다, 삶이 없으니까. 그러나 그녀에게는 삶이 있었고 배가 고팠다. 지난 오년 동안 끈질기게 그녀를 괴롭혀온 것이 바로 그것이었다. 허기를 느끼며 음식 앞에서 입맛이 도는 것. " 


  한순간에 벗을 잃은 내 친구는 술을 마실 때마다 내게 전화를 걸었다. 자기가 웃는 것, 먹는 것, 걷는 것, 숨쉬는 것, 살아가는 것이 죽은 친구에게 미안하다면서 자기도 확 죽어버리겠다는 소리를 자주 내뱉곤 했다. 친구의 고통이 기린의 긴 목뼈처럼 눈 앞에 보이는 듯했다. 나는 뼈마디 하나하나를 손으로 훑어내리면서 친구의 고통을 헤아리고자 했다. 그리고 위로했다. 그 애가 네게 원하는 것은 너와 함께하는 것이 아니다. 그 애는 네가 그 애의 몫만큼 삶을 더 행복하게 즐기는 것을 원한다. 친구의 고통과 죽음을 반기고 소원하는 사람은 없다. 너희가 진정한 친구였던 만큼 그 아이는 하늘에서 너의 모습을 지켜보며 행복하게 웃음 짓고 있을 것이다. 친구는 전화기를 붙들고 엉엉 울었다. 집으로 돌아가기까지 나는 친구의 이야기를 전부 들어주었다.


  죽음 앞에서 나는 언제나 숙연해진다. 먹는 행위는 치욕스럽다고 느낀다. 

  그러나, 먹어야 한다.





  5.


  어느 / 늦은 저녁 나는

  흰 공기에 담긴 밥에서

  김이 피어 올라오는 것을 보고 있었다.

  그때 알았다

  무엇인가 영원히 지나가버렸다고

  지금도 영원히

  지나가버리고 있다고


  밥을 먹어야지


  나는 밥을 먹었다


  한강, '어느 늦은 저녁 나는'





  E. 


 " 언젠가 그에게서 왔던 참 즐거웠던 편지 하나가 기억났다.


  그것은 단지 흰 종이 위에 '죽었니?' 라고 써 있었다. "     - 전혜린, 그리고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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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1-15 01: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11-17 18: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11-15 10: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11-17 18: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BRINY 2014-11-15 11: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이진님, 벌써 고3이었군요. 수시 합격 축하합니다. 이제 서울로 올라오겠네요. 우리반에도 동국대 신방과 수시합격한 친구가 있답니다. 요즘 영화만 보며 하루를 보내고 있더라구요.
친구를 위해 `깔아주기 위해` 수능을 봐준 의리가 고맙네요. 우리반 몇명은 그런 의리도 없고, 응시료 환불 받아서 통닭 사먹을 생각밖에 안하네요. 환불하려면 수험표 반납하랬더니, 그 새 잽싸게 수험생 할인으로 퍼머에 염색하고 왔더라구요.

이진 2014-11-17 18:36   좋아요 0 | URL
네, 브리니님! 오랜만이에요. 벌써 고삼인 소이진이 인사드려요.
저도 사실 수험표 환불받고 싶었는데 최저가 있는 곳도 있고 해서 겸사겸사 치렀어요.
저또한 영화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데, 저는 그들과 다른 것이 영화과까지 꿈꿨다니까요!
저는 영화가 정말 좋아요.
저는 수시 1차 불합 환불금으로 치킨 사먹으려구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