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정신박약아 보호소에 수용되었다 도망친 후 평생 혼자 지내며 병원 청소부로 일했던 헨리 다거는 40세에 하숙 방 하나를 얻었다. 그가 81세로 사망한 후 집주인은 40년치의 청소를 하기위해 방문을 열었다. 버려진 신문과 잡지를 트레이싱해 만든 콜라주, 그림 수백 장과 아주 많은 원고더미들이 발견되었다.
<헨리 다거의 방> (출처 : 구글 검색 - Darger’s Table. Photo by Michael Boruch)
“(190) 그는 보호소에서 달아난 뒤인 1910년부터 1912년 사이에 ‘왕국’에 관한 글을 쓰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가 그것을 생각한 것이 얼마나 오래되었는지, 얼마나 오래전부터 마음속에서 그 세계를 찾아갔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아동노예 반란으로 야기된 글랜데코-앤젤리니언 전쟁폭풍 속 비현실의 왕국의 비비언 자매 이야기 The Story of the Vivian Girls, in What is known as the Realms of the Unreal, of the Glandeco-Angelinian War Storm, Caused by the Child Slave Rebellion》는 *전체 분량이 1만 5145쪽이나 되며, 현존하는 작품으로는 세계에서 가장 긴 소설*이다. - 올리비아 랭, <외로운 도시>”
헨리 다거는 평생동안 친구가 거의 없는 상태에서 지냈다. 자기 작품을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않았다. 나는 1만 5천 145쪽 짜리의 글을 쓰는 외로움을 감히 상상해보았다. 정말 아무도 그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주지 않았던 걸까. 너무 깊고, 거대하고, 무시무시 한 외로움은 가늠이 가지 않았지만, 외롭지않기 위해 글을 쓰는 건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을 것도 같았다. 또 세상에서 가장 긴 소설 속에서 그가 구하고 싶었던 어린아이들-어쩌면 곧 그 자신-에 대해 생각했다. 검색창을 켜고 불가해한 그의 그림들도 살펴보았다. 하루치의 고된 노역을 마치고 방문을 열자마자, 신문지 속 삽화를 오려 분류해놓고 이내 의자에 앉아 실종된 아이의 얼굴을 꼼꼼히 베껴 그리는 그의 작업 모습이 어쩐지 눈앞에 그려진다.
“(211) 4월 12일 토요일 : 내 생일. 금요일과 같음. 인생사. 소동 없음. (...) 4월 30일 수요일 : 심각한 감기 때문에 여전히 자리보전 중. 오늘은 추웠고 밤에는 훨씬 심하다. 무척 괴롭다. 미사도. 영성체도 하지 않음. 인생사 없음.”
퇴직 후의 그가 썼다는 일기의 내용들. “인생사 없음. 소동 없음”에 눈이 머문다. 이 부분 읽을 때 난 좀 그를 대신해서라도 울고 싶었었다. 외롭다고 쓴 것 보다 차라리 더 외로워서. 평생 혼자 지낸 그는 외롭다고 누군가를 해치는 종류의 인간은 아니었다. 누구도 찾아오지 않는 쓰레기 더미로 가득찬 가난한 방구석에 세상으로부터 고립된 채, 세상에서 가장 긴 페이지의 세계를 창조했다. 아무에게도 보이지 않을 그림과 소설에서의 아이들은 폭력적이었고, 폭력에 난자 당했다. 그를 몰아낸 세상은 사후에 발견된 그의 삶과 작품에마저도 '정신병'의 낙인을 찍었지만, 어쨌거나 현재 헨리 다거의 작품은 아주 비싼 값에 팔리고 있고, 그는 아웃사이더 천재 아티스트의 대표인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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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위대한 미국의 시인으로 손꼽히는 에밀리 디킨슨은 결혼하지 않은 채로 이십대 후반부터 집 밖으로 거의 나오지 않는 은둔 생활을 고집했다. 세상에 알려지고 싶지도 않았던 그녀는 생전 단 7편의 시를 발표했을 뿐이다. 55세의 디킨슨이 사망한 후, 방 서랍장 안에서 2천 여 편이 넘는 시들이 발견되었다. 시집 끝의 부록으로 붙어있는 시인의 삶을 읽으면서 닮은 듯 다른 헨리 다거를 떠올렸었다.
다거는 분명 외로웠을 것 같다. 그런데 에밀리도 외로웠을까. 물론 그녀의 많은 시들이 고독을 이야기하고 있긴 하지만 다거의 그것을 떠올릴 때의 느낌과는 사뭇 다르다. 어딘가 산뜻한 종류의 외로움이랄까.
<에밀리 디킨슨의 방>(출처:Sawmill River Productions)
햇빛이 잘 드는 창을 가진 방의 저 좁은 협탁같은 책상에서 에밀리는 시를 썼다. 외로움의 차이는 채광이 만드는 건가??하는 의구심이 든다. 생각해 보니, 다거의 방은 원룸이었고, 에밀리는 대저택에서 은둔했다... (집에서 안나왔다고 하기엔 집이 너무 넓었을 지도 모른다는 소리) 퀴퀴한 외로움과 산뜻한 외로움의 차이는 역시 평수인건가?? 하는 의구심2가 든다. 다거가 싫은 건 아니지만 에밀리가 더 좋은 데, 그러려면 채광과 저택. 채광과 저택. 돈. 역시 돈.
복작복작 휴가 이후 또 다시 은둔 고독자의 모드로 들어선 오늘 밤의 나는 온갖 읽다만 책들이 널어진 식탁 위에서 시가 아닌 페이퍼를 쓴다!(에밀리의 협탁보다 두배는 넓다ㅋ) 무려 <제인에어> 해설을 읽기 위해 펴든 에이드리언 리치의 산문집에서 운명처럼 ‘에밀리 디킨슨’을 만나버렸기 때문인 거다. (자랑)
“(78) *한 방에 그토록 오래, 그토록 집요하게 살았던 시인도 없을 것이다.* 디킨슨의 조카 마사의 회고에 따르면, 애머스트 메인스트리트 280번지 2층의 모퉁이 방을 방문했을 때 에밀리 디킨슨은 상상의 열쇠를 돌려 방문을 잠그는 시늉을 하며 “매티, 이제 자유야” 라고 했다고 한다. 나는 지금 시간의 속도로 그 집과 인접 건물들이 있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 에이드리언 리치, <우리 죽은 자들이 깨어날 때>”
생강빵을 구워 바구니로 아이들에게 내려 보낼 정도로 은둔을 사랑했고, 유명해지고 싶지 않다는 유명해진(?) 시를 쓴 (에이드리언 리치 해설에 따르면)자신이 천재라는 것을 너무도 잘 알았던, 19세기의 이 여성은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으면서 “이제 자유야!”라고 외쳤다. 그러니까, 뭐지? 이 쾌활함? 뭇사람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드는 은둔고수 짬빠가 뚝뚝 묻어나는 내공 깊은 고독. 나는 앍ㅋㅋㅋ 하고 너무 좋아서 호들갑을 떨었다. 조만간 내 집 현관 입구에 “자유”써 붙이고 말겠다! 저 경지에 오르리라. 매일 매일 자유에 갇혀지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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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별 수 없이 일해야 하니까, 한숨 폭😮💨 내쉬고 주말엔 느릿느릿 게으름을 피우며 지난 4개월을 돌아보는 일기를 썼다. 기억에 남는 건 - 20일 넘도록 사람과 말을 하지 않은 것? 진정한 고독의 달인이 된 것 같아 기뻤다고 썼다. 내가 읽은 책을 다시 읽는 것을 얼마나 좋아하는 지, 이렇게까지 좋아한다는 것을 발견했으니 앞으로의 삶은 그 좋아하는 것으로 가장 많이 채울 것이라는 다짐의 마음을 썼다.
백 명의 인간이 있다면 백 가지의 종류의 외로움이 있을 테지. 외로움은 말 그대로 외로움인 거라서 정말로 각자가 겪을 수 밖에 없는 것이지만. 외로움을 자처하거나 어쩔 수 없는 외로움을 고스란히 익히고 빚어낸 것 같은 사람들이 내가 읽는 책 속에 있었다. 나는 그들이 반가웠고, 배우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혼자인 시간을, 혼자인 공간을 경험하기 전에는 몰랐다. 내가 이렇게까지 아무렇지 않게 혼자 지낼 수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나는 나의 외로움이 살짝 건조할 뿐, 정말 아무렇지 않은 상태라는 사실에 대단히 안도하고 있다. (하지만 동시에 반려묘에 대한 엄청난 애착과 점점 퇴화되고 있는 사회성에 대한 불안함을 살짝 느낀다.)
사람들의 거의 만나지 않고 혼자가 되어 지내는 동안 조금 심심했고 대체로 행복했다. 겁이 나는 건 딱 하나였다. 누군가와 어울리는 감각을 까먹어버려서, 어울려야 하는 순간 어색한 티가 너무 나면, 그 어색함을 감추기 위해서 또 부산스러워지고 결국 그게 사람들을 부담스럽게 해버리면 어쩌지?하는 걱정. 그런데 이런 겁과 걱정이 내가 가진 ‘외로움’의 모습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한다. 고독이 아니라 고독의 후가 겁나서 고독할 줄 몰랐던.
마흔에 방이 생긴 헨리다거와 서른 이후에 밖에 나가지 않은 에밀리 디킨슨과 그 중간 어디쯤의 나.
내가 그들에게서 읽은 것은 나 자신에게도 타인에게도 해가 되지 않은 형태와 종류의 외로움이다.
결국 그럴 듯한 혼자가 되기 위해선 천재가 되어야만 하는 것인가.🧐 이거 참, 천재는 좀 부담스러운 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