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드링킹, 그 치명적 유혹 - 혼술에서 중독까지, 결핍과 갈망을 품은 술의 맨얼굴
캐럴라인 냅 지음, 고정아 옮김 / 나무처럼(알펍) / 2017년 11월
평점 :
책을 읽고 조금(어쩌면 많이) 심각해졌다. 그제는 술을 마셨다. 낮에는 점심에 막걸리를 세잔 마셨고, 한참 산책을 하고 수다를 떨다가 드라이한 칵테일을 한 잔 마셨다. 다정한 이를 바이바이 보내드리고 봄기운이 살랑 좋아서 대책없이 좀 더 걸어다녔다. 버스에서 내릴 때는 북플의 독보적 알람이 17000보를 걸었다고 알려주었다. 어쩐지 종아리가 좀 당기는 느낌이더라니.
집에 들어오니 술기운이 가셔 있었고, 어쩐지 좀 더 취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마트로 나갔다. 좋아하는 다크코젤이랑 칭따오를 집어들었다. 오늘의 독서는 글렀고, 주말에 맥주마시면서 보려고 남겨둔 <퀸스갬빗>을 마저봐야겠어. 안주는 만원짜리 동네피자로 하자! 피맥피맥 꺅~ 머릿속에 피자와 맥주의 조합을 떠올리니 신나지 않을 수 없었다. 마스크 안에서 어찌나 환하게 웃고 있었는 지, 아 정말 마스크가 있어서 다행스러웠다. 아무에게나 쉽게 보여줄 수 없는 함박웃음을 마스크뒤로 감추고 따끈따끈 피자를 사서 들어왔다. 즐거운 곳에서는 날 오라하여도. 내 쉴곳은 작은집 내집🎶 앗싸. 세수를 마친뒤 나의 흥은 머리 끝까지 차올랐다. 춤을 추기 시작했다. 둠칫둠칫 💃🏻 앗싸앗싸~ 고양이가 쟤 또저런다?하는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우리 함께 행복하자, 그대 함께 쉘위댄스? 앞발 마주잡고 함께 추었다.😹 행복은 두배가 되었다. 세배로 만들기 위해 맥주를 땄다. 캔 딸깍~ 치이익~ 유리잔에 꼴꼴꼴~
“(19)나는 술이 내는 소리도 사랑했다. 와인 병에서 코르크가 뽑히는 소리, 술을 따를 때 찰랑거리는 소리, 유리잔 속에서 얼음이 부딪히는 소리.”
사랑하는 소리소리~~ 꿀꺽꿀꺽~~ 조타조타~~ 피자피자~~ 땐스땐스~~ 이젠 넷플릭스~~~~
를 틀었는 데... 초천재 체스선수 엘리자베스 하먼이 맥주를 꼴깍꼴깍 퍼마시며 담배를 뻑뻑 피우며 나와 똑같이 춤을 추고 있었다. (정정합니다. 사실 그녀의 춤은 아름다웠고, 제가 추는 춤은 개다리 춤이었습니다. 또 저는 집안에서는 담배를 피우지 않습니다!) 맥주 캬- 피자 쩝쩝- 두조각째의 피자 위에 피클을 올려놓으며, 하먼을 보며 생각했다. 아, 안돼. 베스. 그만 마셔. 넌 약도 하잖아.. 아... 안돼..... ㅜㅜ
그러나 저러나 삽시간에 두번째 맥주 캔을 따면서 뜨끔은 했었다. 아, 저..... 그러니까.. 하먼의 저 패턴. 분위기 좋은 상태에서 한잔 하고 들어와서 뭔가 그 기분을 유지하고 싶은 마음에 술을 한보따리 사오는. 혹시라도 부족할까봐 넉넉히 챙겨두어야 안심스러운 마음. 그리고 내일이 쉬는 날이라면 넉넉한 그걸 기어이 다 퍼마시게 되지.
“(23) 내 마음은 한구석은 그런 초조함을 인식했다. 지난번에 저녁 식사를 할 때 와인이 한 병뿐이어서 그걸 4~5명이 나누어 마셨다는 사실을 불안하게 떠올렸다(…) 마음속 어두운 구석에서 불안이 깊어갔다. 또 다시 그 곳에서 술부족이라는 낭패를 당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내가 술 때문에 안절부절 못한다는 걸 알리고 싶지도 않았다.”
그렇다. 술쟁이들에게 마시는 도중에 술이 떨어진다는 것은 ‘낭패’다. (‘낭패’라는 표현 너무 찰떡..) 낭패를 당하지 않기위해 술을 마실 거면 이빠이 쟁여두어야 하는 것이다. 근데 알콜중독 아닌 사람들은 그걸 낭패라고 생각 안하나요?... 그러니까. 나 설마 알콜중독이야? 라고 의심하게 된 것은 <퀸스캠빗>에서 술에 쩔어가는 하먼의 모습이 뭔가 익숙했기 때문이었다. ‘딱 한잔만’이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인 상황. 안마시면 안마셨지 마시면 홀랑 다 퍼마셔야 하는 취한 상태에서의 기이한 집착은.. 그르니까.. 저 드라마 속 알콜 중독자의 모습은.... 어쩐지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은...? 어라라라...?
갑자기 자기검열 발동해서 한 캔 반까지만 딱 마시고 사랑하는 다크코젤을 눈물을 훔치며 (내가... 내가 술을 버리다니..) 개수대에 비우고... 드라마를 마저 다 보았다. 드라마는 넷플릭스의 명성답게 개 띵작이었다. 질생각 없는 천재 여주인공이 직진 노빠꾸로 계속 다 이겨버리니까(역쉬 천재는 자기자신과 싸울 뿐), 나도 갑자기 호승심 마구 돋아서 페미니즘 왼쪽 날개를 다 읽어버리겠숴!!!! 하고 삼십페이지 읽고 꿈나라로... 💤 (일반인은 자신과의 싸움에서 항상 패배하지.)
***
일어나서 아침에 달리기를 했어야 했는데, 밍기적 거리다보니 비가 내렸고 전날의 성찰이 떠올라 <드링킹>을 읽기로 하였습니다. 이 책은 ‘캐럴라인 냅’이라는 여성 저널리스트가 쓴 알콜중독에 관한 자전적 에세이로서 맥주 반캔이면 극락에 가계시는 저의 자매님이 꽤 오래 전 저에게 친히 권한 책입니다. “난 술 못마셔서 술 찬양은 이해가 잘 안됐는 데, 그래도 어떤 부분은 정말 공감이 되더라? 근데 언니는 술고래니까 분명히 더 와닿을 거야.”
...
....
별로.. ... 와닿지 않았다. 정말이다.
왜냐면 난 술을 몰래마시지 않고, 매일 마시지도 않고, 술먹고 막막 남자를 막막 만나고 막막 일케 절케 그짓말을 막 하고, (여... 이미 이렇게 난 다르다며 합리화하고 있는 것이.. 증상중에 하나여..) 그르지 않아!!!!!!!! (내적 비명🙀)
그치만 이 언니 글을 어찌나 잘쓰시는 지, 구구절절 공감이 자꾸 가서 (특히 술에 대한 사랑고백이..).. 하마터면 책을 읽다 말고 술을 마실 뻔 하였다. (정말로 꾹 참았다)
“(85) ‘거절이라니? 난 한 잔 더 마실 거야. 술 마시는 건 즐거운 일이니까. 기분 좋은 일이잖아.’
어머니는 그런 식으로 술을 마시지 않았다. 베카도 마찬가지였다. 두 사람은 식사 때 와인 한 잔을 마시면, 더 따라주려고 해도 술잔 입구를 손으로 막았다.
“아냐, 됐어. 이미 충분히 마셨어.”
충분하다니? 알코올 중독자에게 그것은 생경한 미지의 언어다.
충분히 마시는 일이란 없다. 우리는 언제나 술이라는 보험을 찾고 또 찾는다. 첫 잔을 마시고 따뜻한 취기가 오르기 시작하면 그다음에는 그 느낌을 지속시키는 것, 그걸 강화하고 증대하는 것, 그걸 잃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치 따뜻한 취기.. 그것이지... 평소 손발이 차가운 편인 저에게 술이란 것은 따스함. 바로 그것. 그리고 그 느낌을 지속시키는 그것임돠.. 물론 여름엔 맥주의 시원함.. 고것.. 그런데 술잔 입구를 손으로 막는다니요? ... 충분하다니요?.. 충분한 취함이란 무엇입니까? (나 정말 모르겠어..) 충분한 한.잔.?
“(101) 맥주 몇 잔을 마시면 누구와도 쉽게 이야기를 나눌수 있었다. 미간을 쪼그라들게 하던 것, 손을 멈칫거리게 하던 것, 아무리 긁어도 사라지지 않는 가려움증 같던 것이 스르르 씻겨 내려갔다. 그의 전 존재가 제자리를 찾은 느낌이었다. 알렉스가 AA 모임에서 이런 이야기를 하자, 사람들이 사방에서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바로 그거야.’
내가 아는 모든 알코올 중독자에게 공통되는 신념의 방정식이있다. 그것은 ‘불편 + 술 = 불편 없음’ 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자기 변화의 수학이 탄생한다.”
돌이켜보면 난 술을 마시기 전에는 확실히 대인관계에 어려움을 느끼는 편이었다. 그런데 성인이 되고 술이라는 무기가 생긴 이후 부턴 달라졌다. 나는 술 마시면 누구라도 다 친해질 수 있어!!! 라는 근거없는(-_-) 자만심으로 20대를 허비했다. 20대의 나는 알콜중독이라기 보다는 관계중독이었고, 당연히, 언제나, 언제나 그 관계들에는 알콜이 있었다.
“(104) 나는 그런 순간이 좋았다. 이 세상이 아주 단순한 것들로 환원되는 순간, 나하고 샘, 그리고 술잔 두 개만 있으면 되는 그런 순간들이. 그밖에 모든 것은 배경음악에 지나지 않았다. 술은 내가 마음의 문을 열고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게 하는 최고의 방법, 가장 빠르고 간단한 방법이었다. 알코올이 주는 힘은 엄청났다. 술을 마시고 나면 갑옷이라도 두른 듯 여유롭고 강력한 버전의 나로 다시 태어났다.”
아. 그러니까. 어디까지부터가 관계중독이었고 어느 순간부터가 알콜중독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술에 기대지 않았더라면 내가 맺고 쌓아온 그 많은 인연들이 과연 생겨날 수 있었을까? 그럴 수 없었을 거라는 결론에 가닿는다. 질풍노도의 이십대를 지나온 나는 나를 끈끈하게 옭아매던 많은 관계들로부터 이별했고, 모든 것이 정리된 이후부터는 나 자신도 놀랄만큼 술을 마시지 않기는 했다. 그런데. 바꾸어 생각해보니.
이후에 만든, 조금 다르다고 생각했던 새로운 관계들에도 역시.
단, 한번도 빼놓지 않고. 술이.
있었네...?
***
책을 읽다말고 정말로 진심으로 불안해지기 시작했는데 절정은 175페이지의 질문지였다. 11개에 체크했다. 그럴리 없어.. 다시해봤다. 아무리 나 자신에게 관대하게 체크해도 9개 였다.
“(177) 예라고 답한 항목이 9~21개인 사람은 (알콜중독의)중기 단계로, 대개 2년에서 5년 정도 이어진다.”
뭐, 중기라고요?? 그래도 후... 다행이다.. 5년 남았네? 안도 하고 바로 다음페이지
“(178) 그때 나는 15개의 질문에 ‘예’라고 답하고서, ‘앞으로 5년 정도는 남았군’ 하고 생각했다. 술과 깊은 사랑을 나누는 동안에는 자신이 하는 불장난이 어떤 것인지 도저히 알아차리지 못한다.”
네???????????!!!!!!!!!!!!!!!!?? 이 엉망진창 공감 안되는 저자와 내가요?? 똑같은 생각을요?
ㅋㅋㅋ??????? 맙소사...🙀(멘탈 터져나감) 망했다.. 나는 알콜중독이다. 것도 중기다...
5년 남았대..
이 엘리베이터는 탑승하는 순간 더 나빠지지 않는 것만 비교군이 되기 시작하는 엘리베이터로서.... “(295)직장이 있었고(얽.. 전 지금 직장도 없는데요?), 집도 날리지 않았으며(집도 전세자금 대출임), 친구도 많고(많...지는?), 정상적인 생활의 여러가지 지표를 잘 거느리고 있”는 사람들이 자기는 바닥이 아니라며 위안을 삼는 모습이 바로 내모습이여... 그러니 나여, 어서 엘리베이터에서 내려야합니다. 내리면 바닥은 치지 않아요.
여튼. 그렇습니다. 거기, 제 독후감을 읽으며, 나는 너같은 알콜중독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당신?
“(26) 나같은 사람을 일컬어 ‘고도 적응형 알코올 중독자’라고 한다. 겉에서 볼 때는 아무 문제 없고, 유능하며 단정하다. 그 밑은 진흙탕 처럼 혼탁하고 온갖 비밀로 들끓지만, 그런 모습은 겉으로 전혀 드러나지 않는다.”
고도 적응형일 수 있습니다. 5년 남았을 수 있어요!!!!
바로 내가 그래!! ㅜㅜㅜㅜㅜㅜㅜ
입맛이 썼다. 책을 덮고 으찌나 입맛이 썼던지, 한동한 멍해져 있다가- 이글을 끄적끄적 하고 있는 데, 곱씹을 수록 입맛이 쓰군. ㅎㅎㅎ ㅎㅎ ㅎㅎㅎ
ㅎㅎㅎ
ㅎㅎㅎㅎㅎ
ㅎㅎㅎ
ㅎ
여하튼 빼박 중기-고도-적응형-알코올-중독자 가 되었으므로..
이제 울며 겨자먹기로... 술을 끊..지는 못하겠어요... 정말요.... 그럴 생각이 안든다니까? .... ㅜㅜㅜㅜㅜ
“(64) 별을 마시는 기분이다
메리 카가 회고록 <거짓말쟁이 클럽>에 인용한 그녀 어머니의 말이다. 메리 카는 어린 시절 도자기 컵에 적포도주와 세븐업을 섞어 마시고는, 마치 빛이 비쳐오는 듯이 온몸이 서서히 따뜻해지는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그녀는 “내 존재의 한복판에서 해바라기가 둥그렇게 피어나는 것 같았다”고 썼다. 그 구절을 읽을 때 나는 그녀의 표현에 완전히 공감했다.”
나 이거 너무 잘알... 아무래도 내 존재의 한복판에서 피어나는 해바라기는 ㅜㅜ 포기할 수가 없..어... 따싯... ㅜ_ㅜ.. 줄여보겠습니다. 근데 저 정말 일주일에 한번씩만 마셔요.. 고생한 나에게 보상해주자고..(이봐, 그게 문제라고 책에 적혀있잖아!) 여튼 5년 뒤에 이 글을 읽으며 머리를 쥐어뜯을까봐 걱정이지만.. 2년에서 5년 사이에 혹시 제가 알코올로 인한 정서상의 어려움을 겪게 되거덜랑 무릎꿇고 참회하고 갱생해 볼게요, 캐럴라인 냅 작가님.
그런데, 가만. 다 읽고 앞날개에 지은이 소개 봤는데..
저자 이토록 어렵게 술은 끊었는 데 마흔넷의 나이에 폐암으로.. 사망... 무엇? 🙀
냅 언니.. 담배는 못끊은 거? (덜덜... 이 시점에서 이를 꽉 깨물었다....)
언냐..내가 요새 좀 (나가기) 귀찮아서.. 담배 끊을까 생각중인데..
만약에 끊게되면 그건 정말 언니 덕분일거야..
***
잘쓰인 에세이임에는 틀림없다. 물론 민낯까지 아주 솔직하게 까밝히고 쓰는 요런 종류의 글쓰기 요새는 나름 대세인 것 같아서 조금 식상한 점도 없지는 않았지만, 특별히 마주보지 못했던 내 문제와 얽혀 있었기에 심각하게 읽었다.
“(118~119) 알코올이 자기 존재감 혹은 성감과 생각보다 깊은 관계를 맺고 있다는 사실, 많은 여자가 적어도 나같은 여자들은 상충하는 수 많은 감정(친밀한 관계를 갈망하면서도 두려워하고, 합일을 바라면서도 매몰될 것을 겁내고, 경계선을 설정하는 일에 불안해하는 감정)을 마비시키려고 알코올을 사용한다는 사실은 깊이 이야기되지 않았다.
술 취했을 때는 거절이라는 것이 극도로 어려워진다. 그것은 술 때문에 파티나 데이트 같은 특정 상황에 대한 판단력이 흐려져서만은 아니다. 술 마시는 일은 자기 존재감 형성이라는 더 크고 버거운 일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자기 존재감 형성이라는 건 모든 사람에게 쉽지 않은 일이지만, 남자보다는 여자에게 좀 더 어렵고, 특히 술을 마시는 여자에게는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드문드문 ‘연애-사랑에 실패하는 알콜중독자 여성’의 입장에서 쓴 여성주의적 통찰도 보였고. 그 부분들을 조금 더 상세하게 써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하면서, 별 다섯개를 찍어볼까 했는 데, 하나 깐 이유는...
“(328) ‘내 인생의 어느 지점부터 나는 나 자신을 상황의 희생자로 여기며 살았어. 아주 우연히 혼란과 분노와 우울함에 찌든 사람으로, 나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었어. 그러니까 이렇게 술에 빠져지내고, 엉망으로 연애하고, 우울함에 허덕이는 건 내 운명인지도 몰라. 글 쓰는 사람들의 피할 수 없는 고통, 이를테면 입장료 같은거지.’
하지만 그러기에는 입장료가 위험할 정도로 비싼 것 같았다. 나는 여전히 높은 업무 능률을 과시할 때도 있었지만, 반대로 한심하기 짝이 없을 때도 있었다. 우울증이나 숙취에 휩싸인 날은 정신을 집중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고, 헤드라인이나 사진 캡션 말고는어떤 글도 쓸 수 없었다.
이런 것들을 깨닫자 문득 겁이 났다. 내 직업 영역은 그때까지 타격을 받지 않은 유일한 분야였고, 글은 나를 이 세상과 연결해주는 가장 확고한 수단, 진정성을 지닌 관계를 열어주는 단 하나의 열쇠였다. 나는 12구경 엽총으로 자살한 어니스트 헤밍웨이를 생각했다. 또 마흔다섯 살에 알코올 중독으로 세상을 떠난 제임스 에이지도 생각했다. 어둡고 무거운 체념이 나를 감쌌다. 마치 상자에 들어가서 나오지 못하는 것 같았다.”
이런식의 작가로서의 자의식이 요즘엔 좀 별로다....... 응, 글쓰는 사람들의 피할 수 없는 고통이라니.. 얽, 언냐, 그거 날 좀 부끄럽게 했어... 아닌가, 이런 것!까지! 쓸 수 있어서 더 대단한 건가? (으응?) 그르니까... 물론 모두 하루키처럼 살수는 없지만 (왜! 하루키 같은 자도 저렇게 자기관리 하면서 잘사는 데!!!) 꼭 엉망인 삶에 다가 글쓰는 자의식 연결짓지 말았으면..... 나는 행복해지려고 글쓴단 말야! ㅜㅜ 글쓸 때 행복하단 말야!!! ... ㅠㅠㅠ 우이씨...ㅠㅠㅠㅠ 행복해지자 좀!!!! 저런거 읽으면... 괜히 읽고 쓰는거 좋아하고 그러면 인생 함께 진창에 처바르면서 망쳐야 할 것 같잖아!!!!
엉망인 글을 읽는 거는 좋은데, 글쓰려고 엉망을 살아야 할 필요까진 없지 않을까??.. 뭐랄까... 뭔가.........겁내 재밌게 읽다가 막판에 항마력이 딸렸다.. 알았어..알았어... 어.. 그만해.. 좀 피곤해졌음. 이건 내가 늙어서인가.. 서른살이 넘으니까... 저런 종류의 예술에 대한 관점(?)... 너무 오그라든다.. 그리고 성장서사 편에서도 말했는 데, 내가 옹호하고 봐주는(?) 개망나니는 어디까지나 서른다섯살 미만인 것 같다. (지금 내나이가 기준이닼ㅋㅋㅋㅋㅋㅋㅋㅋㅋ 자신에게 관대한 편!)
하지만 정말 재밌게 읽었고요!
다음 책 바로 빌려왔음다~ <명랑한 은둔자>라니 제목 참 좋다.
제가 요즘 칩거중인데요, 과연 명랑해질 수 있을 것인가? 요 에세이도 잘 읽어 보겠음다!!
그리고.. 과연 저는 <드링킹>읽고 술 대신 담배끊는 독자가 될 수 있을까요?
(하지만 이거 써놓고 바로 담배 피우러 갈거지롱 메롱~)
유머는 전형적인 방어 수단이다. 나는 유머라는 장치로 거리감과 자기 아이러니를 만들어 벽을 치고는, 진실로 깊은 감정은 마음 깊은 구석에 꼭꼭 감춰두었다. 바로 그곳, 마음속 깊은 구석이 적응형 알코올 중독자들의 비밀스러운 본성이 존재하는 곳이다. 나 같은 사람이 음주와 관련한 진실을 주변 사람들에게 잘 숨긴다는 것은 별로 큰 일이 아니다. 많은 사람이 이런 일을 아주 멋지게 해낸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자신에 대한 진실(사무실에 앉아 메모를 휘갈기고, 서류를 작성하는 나는 누구인가. 이렇듯 멀쩡한 겉모습 뒤에 들끓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 하는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그리고 자신에게도) 숨긴다는 사실이다. - P33
술을 마신다. 술을 마시고 남자를 사랑한다. 술을 마시고, 술 마시는 남자를 사랑한다. 나는 술을 좋아하지 않는 남자와 사귄 적이 단 한번도 없다.내 인생에 데이트란 것이 시작된 그 순간부터 술을 싫어하는 남자와 사귄다는 것은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술 마시는 남자를 선택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해 보였다. 알코올은 두려움을 잠재우고, 거짓 행동을 하게 하고, 가기 싫은 곳으로 우리를 데리고 간다. 하지만 술은 행복한 섹스가 있는 로맨스의 길도 열어준다. 여자의 섹스에서 알코올은 너무도 튼튼한 결합재다. 적어도 내게는 그랬다. - P127
그녀는 술 마시고 그냥 섹스했다. 내면에 들끓는 감정에 ‘입 닥쳐!‘라고 일갈한 뒤, 그냥 섹스를 했다. 어떻게 보면 그건 나름대로 효과적이었다. 술에 취해서 아무하고 하는 섹스는 맨정신으로 섹스할 때 느끼는 불안감 없이도 친밀감에 다다를 수 있다는 환상을 주었다. 당신이 만약 친밀한 관계를 갈망하면서도 두려워한다면, 자신은 그런 관계를 맺을 자격이 없다거나 준비가 덜 됐다고 생각한다면, 혹은 그것을 원하는 자신에게 부끄러움을 느낀다면 알코올은당신에게 아주 유용한 역할을 할 수 있다. 알코올이 그런 오만 가지 갈등을 녹여주기 때문이다. 그것은 친밀한 관계를 받아들이고싶어 하는 당신의 마음을 힘있게 긍정해준다. 인생? 받아들이자. 깊은 유대감? 받아들이자. 어루만짐도, 위로도, 사랑도 모두 받아들이자. 그러나 슬프게도 술 취한 상태에서 낯선 사람과 섹스를 하며 얻은 자기 긍정은 술기운이 사라질 때 함께 허공으로 흩어져버린다. - P120
이런 것은 사소한 사건이고 어떻게 보면 사건이라고 하기도 어렵지만, 자꾸 반복되다 보면 우리의 세계상도 어떻게든 영향을 받게 마련이다. 날마다 자기 가슴을 빤히 들여다보는 남자와 가까운곳에서 지내다 보면, 이 세상은 안전하지 않다는 불안감을 느낀다. 아마 나는 분노했을 것이다. 하지만 여자들의 분노가 금기로 여겨지는 사회에서 자라난 만큼, 그 분노가 힘을 가질 수 있다고는 생각지 못했다. 나는 다른 방도를 몰랐기에 술을 마셨다. 일상에서마주치는 이런 두려움과 분노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그때는 정말 알 수 없었다. - P158
존과 앤드리아처럼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하는 부부는 그 관계를유지하고 발전시키려고 엄청난 노력을 한다는 것, 그들 또한 이따금 자신들의 관계에 깊은 회의를 느낀다는 것, 상대의 한계를 받아들이려고 고투한다는 것, 사랑하는 이가 자신의 욕구를 모두 만족하게 해줄 수는 없다는 실망감을 이겨내며 산다는 것, 이런 것은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 P28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