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선 역사소설이 우리가 어디에 있었는지를 통해 우리 모습을 보여준다면, 아래에 다룰 범죄와 기괴한 이야기를 다룬 소설은 보다 직접적으로 우리 모습을 보여준다. 요즘 소설 속의 우리 모습은 너무 외롭다. 너무 외로워서 누군가 옆에 있고 싶은데, 서로 소통할 방법은 잊은지가 너무 오래되서, 상대를 괴롭히거나 속이는 방식으로 밖에 함께 있는 방법을 모르는듯 하다. 그러는 과정에 너와 내가 모두 부서진다.
1. 변호인측 증인
크게 기대하지 않고 잡은 책이었는데, 재미있게 읽었다.
작가는 첫줄부터 함정을 파놓았다. 편견이라는 함정에 빠져든다.
평범한 생활을 꿈꾸며 호스티스 생활을 청산하고 부잣집 아들과 결혼한 그녀.
아비의 재산에만 관심이 있는 자식들.
여러가지 욕심과 거짓말들이 서서히 밝혀진다.
2. 탐정은 바에 있다
정말 읽지 않을 수 없는 제목이다.
벌써 제목이 느와르(?)적이지 않은가.
동네 양아치 같은 알콜중독 직전의 탐정이 사라진 여자친구를 찾아달라는 의뢰를 받는다. 곧이어 러브호텔에서 한 사내가 살해된 채 발견된 사건과 여자의 행방불명 사건이 얽혀간다.
무수히 영화와 드라마로 제작된 대중적 시리즈의 원작의 힘이 보인다.
3. 고토바 전설 살인사건
저마다 좋아하는 소재가 있겠지만, 나는 역사나 설화를 소재로 하는 이야기들에 늘 매력을 느낀다. 이런 이야기들은 시대상과 지역의 분위기, 민중의 소망들이 얼켜들어 자연스로운 개성이 뿜어져 나온다. 82년도에 나온 오래된 작품이고 대중적 시리즈다. 마지막에 밝혀진 범인의 정체는 다소 생뚱맞지만, 용의자들의 알리바이와 범행시간과 장소의 미스테리를 풀어가는 고전적 추리소설의 맛을 느낄 수 있다.
4. 킵
소설 속의 소설이라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교도소에서 문학을 가르치는 불행한 여자와 그녀의 문학수업을 듣는 한 제소자가 있다. 제소자는 자신에게 문학을 가르치는 그녀에게 보여주려고 한 호텔에 대한 이야기를 쓰고 있다. 제소자의 이야기 속 소설에는 중세의 마을 같은 어두침침한 분위기 속에서 목숨을 위협하는 기괴한 일들이 벌어진다. 교도소에서 문학 수업을 하는 그와 그녀는 범죄자와 선생이라는 신분의 차이를 넘어서는 공감을 이뤄내고, 소설의 끝에서 두 이야기는 만난다. 고딕환상소설이라는 장르를 특별히 좋아하지 않아서인지 몰입하는데 시간이 걸렸다.
5. 다섯째 아이
결혼을 하고, 아이를 가지며 평범한 가정을 만드는 것. 많은 사람이 자신의 소망으로 꼽는다. 그런데 당연하게 받아들이지만 그게 정말 자신이 원하는 삶일까? 사실 우리는 정말 스스로가 원하는 바를 모르기 일수다. 솔직히 내가 가지는 우울의 원인도 모를 때가 얼마나 많은가. 당연한 것들을 의심해 보고, 나조차 제대로 모르는 나의 감정을 말로 표현해 주기에 우리는 책을 읽는다.
6. 캐비닛
돌연변이들을 소재로 한 소설이다. 그런데 소설이 그리는 삶의 모습은 왜 이리 익숙할까. 의미 없이 시간을 보내는 직장생활, 거대한 도시에 혼자 남겨진 외로움. 내 손가락에서 자라는 나무 만큼 이 세상에 내가 있어야할 이유를 확실히 설명해 주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래도 캐비닛 속에서 작가와 나는 작은 공감의 방을 만드는데 성공했다.
7. 뉴욕3부작
모처럼 다시 폴오스터의 작품을 빼읽었다. 왠지 이 사람의 재기발랄한 글이 읽고 싶은 날이 있다. 서른이 넘은 사람은 읽기가 힘든 열린책들의 촘촘한 편집도 그의 매력을 경감시키지는 못한다. 그의 글은 기괴하다. 그러나 그가 다루는 감정들은 인간이면 누구나 공감하게 하는 무엇이다. 쌍둥이처럼 가까운 친구에게 느끼는 시기, 질투, 거짓말이 거짓말을 부르는 경험, 손사이로 술술 행복이 빠져나가는 듯한 불안감. 얄밉도록 솜씨좋게 그런 감정들을 그려내는 그를 사랑할 수 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