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모두 삶의 초보운전자다. 그런 면에서 적당히 망각할 수 있다는 게 인간에겐 참으로 큰 축복이다. 내가 특별히 못난 놈이라 그런지 몰라도 지금도 떠올리기 끔찍한 기억이 너무나 많고, 떠오르는 즉시 우울해져 버리고 만다. 잊지 못했다면 운전대를 놓쳐버리고 말았을 것이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절절했던 지난 사랑의 기억들도 어느정도 왜곡시켜 저장해둔 덕에 약간의 자긍심을 지킬 수 있었던게 아닌가 싶다. 이 책의 주인공도 보기드물게 찌질하다. 아 그런데 이 비호감 영국인이 너무나 낯이 익다. 그저그런 인간인걸 상대방에게 숨기려는 모습, 독한 말로라도 자존심을 지켜보려는 덧없는 노력까지..
아이를 낳고 산후조리원에서 처음 집어든 책이었다. 소심하고 겁이 많아 고심고심 선택을 해도 내 감은 영 꽝이다. 결혼도 출산도 모유수유도 아니 아가 자체도 예상과는 전혀 다르기만 하다. 책은 얇고 뒷맛은 씁쓸했다. 그래도 누구나 삶은 한번이고, 누구나 실수를 하고, 잘나보이는 아무개도 숨기는 찌질함이 있을 것이라는게 이 책이 주는 위안이라면 위안이다.
작가가 지입으로 '내 책의 독자들은 다읽고 처음부터 다시 읽는다'는 자신만만한 이야기를 했을만큼, 적은 분량에 압축적이고 깔끔한 이야기를 담은 게 인상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