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크맨
C. J. 튜더 지음, 이은선 옮김 / 다산책방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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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에는 세상이 온통 재미있고 흥미로운 것에 가득 차 있는 것 같았다. 그냥 동네 친구들과 공터에서 노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부모님은 항상 건강하게 내 옆에서 나를 돌봐주실 것 같았다. 친구들은 항상 옆에 있고, 그들이 절대로 나를 배반하거나 뒤통수를 칠 일은 없을 것 같았다. 세상에 나오는 끔찍한 불행들과 사고들은 드라마나 뉴스에서만 나오는 것인 줄 알았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그런 세상에 조금씩 금이 가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부모님도 병이 들거나 세상을 떠날 수 있고, 가정에도 아픔과 사고들이 생길 수 있고, 친한 친구들 중에서도 내게 끔찍한 일을 저질를 수도 있다는 것을 안다. 그렇게 어릴 적 세상이 조금씩 금이 가고 사라지면서, 어른의 세상이 탄생된다. 그 어린 시절의 세상과 어른 세상 어디엔가 세상의 변환점에는 어린 시절의 악몽인 초크맨의 이미지가 있다.

[초크맨]이란 책을 처음 접했을 때는 표지에 그려진 여자 아이의 그림으로 인해 끔직한 상상을 하게 된다. 아스팔트 바닥에 분필로 그려진 여자 아이의 그림은 어린 아이가 그린 그림처럼 단순해 보이지만, 그 뒤에 사이코패스와 같은 연쇄살인마 등이 존재할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초크맨은 끔찍한 살인 사건을 다루고 있지만, 잔인한 스릴러 이야기는 아니다. 어찌보면 성장소설과 같은 이야기이고, 끔찍한 살인 사건을 다루고 있는 소설이라고는 믿기지 않을만큼 아름답고 아련한 문장들로 가득 차 있다.

소설은 어린 시절 '에디 먼스터'라고 불리던 주인공 에디가 40대의 어른이 된 2016년에서 12살이던 1986년을 회상하는 내용이다. 에디는 '뚱뚱이 게브'라고 불리는 단짝 친구와 '호프', 그리고 조금은 불량하고 야비해서 '메탈 미키'라고 불리는 세 친구들과 함께 다닌다. 또 한 명이 있다. 마을 목사의 딸이자, 시크하면서도 에디의 마음의 한 시절을 차지한 '니키'가 있다. 에디는 이들과 어울리며 어디서나 행복할 것 같았다.

"재미있게 놀다 오지 못할 이유가 없었다. 태양은 밝게 빛났다. 나는 가장 좋아하는 티셔츠를 입고 컨버스 운동화를 신었다. 쿵쿵거리는 축제장의 음악 소리가 벌써부터 희미하게 들렸고 햄버거와 솜사탕 냄새가 나는 듯했다. 오늘은 완벽한 하루가 될 예정이었다. (P 17)"

그렇게 완벽한 하루가 될 예정이었던 놀이동산에서 그는 처음으로 어린 시절의 희망찬 세상에 금을 내는 균열을 맞닥드린다. 에디는 잃은 지갑을 찾으러 무리에서 혼자 떨어져 나온다. 그러다가 우연히 댄싱머신 앞의 한 아름다운 금발 머리의 여자를 발견한다. 곧 댄싱머신은 고장을 나고, 돌아가던 회전판이 날아들면서 아름다운 금발의 여자를 얼굴과 다리를 절단한다. 다행히 학교 영어 선생이던 핼로런씨가 그녀를 구조하고, 그녀는 다리를 건진다. 얼굴은 어쩔 수 없었지만....

이 사고가 에디의 마음 깊숙한 곳에 영향을 미친다. 그 후로부터 이상한 일이 생긴다. 친구들과 놀던 분필 놀이의 그림들이 그려져 있고, 그 그림 속에서 사건을 예고하는 초크맨이 등장한다. 결국에는 사지가 절단된 여자아이의 그림이 등장한다. 그리고 실제로 그런 여자아이의 시체가 발견된다. 놀이동산의 댄싱머신 사고로 겨우 목숨을 구한 금발의 여자였다. 당시 사건은 죽은 여자를 사랑했던 핼로런씨가 저지른 것으로 결론이 난다. 핼로런은 자살을 하고, 죽은 여자가 끼던 반지가 그의 책상 위에서 발견된다. 그런데 에디는 범인이 핼로런 씨가 아니라는 것을 안다. 그 반지를 가져다 둔 사람이 바로 에디 자신이기 때문이다. 에디는 과연 왜 그 반지를 핼로런 씨의 책상 위에 가져다 두어야 했을까. 그리고 어린 시절 그의 집 앞에 등장했던 초크맨 그림의 정체는 무엇일까.

소설은 잘 구성된 성장소설 같기도 하고, 완벽한 시나리오를 가진 스릴러 소설 같기도 하다. 아름다운 문체로 에디의 어린 시절을 그리다가도,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며 초크맨의 정체를 이야기한다. 최근에 읽은 스릴러 중에서는 가장 문학성이 있는 스릴러이면서도, 완벽한 구성을 가진 스릴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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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밤은 되살아난다 - 전면개정판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9
하라 료 지음, 권일영 옮김 / 비채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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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마다 독특한 향기와 색깔이 있다. 개인적으로는 부드럽고 달콤한 커피를 좋아하지만, 신맛이나 쓴맛을 강조하는 커피들도 있다. 쓴맛의 커피는 개인적으로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나 최근에 다크 로스팅 된 커피를 마셔보고 커피 특유의 쓴맛과 향기가 어떤 것인지를 느끼게 되었다. 커피의 본래의 맛이 이런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형사 소설과 탐정 소설들을 좋아하는 독자들 역시 각자 좋아하는 맛이 틀릴 것이다. 그러나 이런 소설의 본래의 맛을 느끼고 싶다면, 레이먼드 챈들러나 하라 료의 소설 등을 권하고 싶다. 레이먼드 챈들러나 하라 료의 주인공들은 특유의 무뚝뚝하면서도 강인한 내면을 가지고 있어서 어떤 사건의 무게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는다. 특히 돈과 권력을 가진 사람이나 세상 앞에 당당하게 맞서고, 매혹적인 여성들의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는다.

[그리고 밤은 되살아난다]는 하라 료가 창조한 대표적인 탐정 사와자키 시리즈의 첫 소설이다. 소설의 배경은 도쿄 중심부에서 조금 거리가 있는 골목의 낡은 건물 2층에 있는 와타나베 사와자키의 탐정 사무소이다. 탐정 사무소의 이름은 두 명이지만, 사와자키만이 이 쓸쓸한 공간을 혼자 지키고 있다. 5년 전 와타나베가 경찰과 폭력조직의 거래에 이용되는 척하다가 1억 엔과 필로폰을 가지고 잠적했기 때문이다. 덕분에 혼자 남은 사와자키는 경찰이나 폭력조직 모두에게 미움을 받는 존재이다. 그럼에도 그는 꿋꿋이 탐정의 역할을 감당한다.

소설은 혼자 사무실을 지키고 있는 사와자키에게 오른손을 호주머니 속에 감춘 남자가 찾아오며서 시작된다. 그는 사와자키에게 다짜고짜 '사에키 나오키'라는 르포라이터가 찾아오지 않았느냐고 묻는다.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기에 머뭇거리는 사와자키에게 얼마를 요구하냐며 거금의 돈 봉투를 던져 놓고 간다. 이름을 묻자 그는 자신을 '가이후'라고만 소개한다.

그런데 얼마 후 또 전화가 온다. 일본의 대기업의 고문이며, 유명 미술평론가인 사라시나의 변호사가 그에게 '사에키 나오키'를 아느냐고 전화를 해 온 것이다. 그리고 사와자키를 자신의 대저택으로 부른다. 그리고 그곳에서 사라시나이의 딸이자, 사에키 나오키의 아내인 사에키 나오코를 만난다. 묘한 향수 향기를 품기며 자신의 남편을 찾아달라는 나오코와 함께 사에키의 숙소에 찾아간 사와자키는 숙소에서 총에 맞아 죽어있는 시체를 발견한다. 과연 사에키 나오키는 왜 사라졌고, 사람들은 왜 그를 찾으려고 혈안이 되었을까? 사에키 나오키와 그를 찾으려는 가이후를 찾아가면서 사와자키는 도쿄 도지사 선거와 관련된 저격사건까지 쫓아가게 된다. 결국 기업과 정치, 그리고 돈에 얽힌 복잡하고도 잔인한 세계 속으로 들어간다.

하라 료가 창조한 탐정 사와자키 캐릭터는 매우 매력적인 캐릭터이다. 돈과 권력의 협박이나 여성의 유혹 등에도 눈 하나 깜짝이지 않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사건을 수사한다. 아무것도 잃을 것이 없다는 듯한 그의 무심한 태도 앞에 조직폭력배까지도 한 수 접어 줄 정도이다.

"내가 왜 널 죽이지 않는지 알아? 야쿠자가 누군가를 죽일 때는 자기보다 상대가 잃을 게 많다는 손익계산이 있기 때문이야. 세상 사람들이 야쿠자를 두려워하는 것도 그 손익계산이 되기 때문이지, 야쿠자와 서로 죽인다 해도 상대편이 훨씬 손해거든. 상대는 슬퍼할 부모가 있고, 보복을 두려워할 마누라가 있고, 길거리를 헤맬 자식이 있고, 멍청한 짓을 했다고 꾸짖을 친구가 있어, 그래서 야쿠자를 건드리지 않는 거야. 그런데 넌 뭐야? 지금 널 죽여봤자 내가 너보다 잃을 게 많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어째서일까?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하시즈메의 눈에 내가 그렇게 보였다는 사실에 놀랐다. (P 121)"

소설은 시종일관 매우 거칠다. 사와자키는 그의 성격처럼 좌우충돌하며 사건의 핵심 속으로 들어간다. 그럼에도 치밀하게 사건을 조사하고, 사건 속에 숨어 있는 또 다른 사건을 발견해 낸다. 이 소설은 이미 오래전에 출간되었던 책인데, 최근에 탐정 사와자키 시리즈의 최신간 [어리석은 자는 죽어야 한다]가 출간되면서 개정판으로 새롭게 출간되었다. 앞에 언급한 쓴맛의 커피처럼, 탐정 소설의 본연의 묵직한 맛을 느끼고 싶은 독자라면 읽기를 추천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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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디머 형사 해리 홀레 시리즈 6
요 네스뵈 지음, 노진선 옮김 / 비채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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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네스뵈의 '형사 헤리 홀레 시리즈'가 벌써 10권이 출간되었다. 해리 홀레 시리즈를 읽으면서 맞닥뜨리는 것은 시종일관 이어지는 어두운 분위기이다. 그리고 결국에는 주인공 해리 홀레를 비롯한 주변의 모든 것을 무너뜨려버리는 암담함 결말을 보게 된다. 작가가 무슨 파괴적인 성격이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할 정도로, 요 네스뵈는 일체의 희망을 남겨두지 않고 주인공 해리 홀레와 주변 사람들의 삶을 갈가리 찢어 놓는다. 그럼에도 이 시리즈가 출간될 때마다 또 읽게 된다. 암울한 분위기 속에서도 이 책만이 가지고 있는 매력이 있기 때문이다. [리디머]라는 소설을 읽고서야 비로소 이 시리즈의 매력을 알게 되었다. 그것은 바로 '희망'이다. 요 네스뵈는 해리 홀레라는 인간을 통해 암울한 세계와 그 암울한 세계에서의 희망을 찾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는 우리 자신을 그리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때로는 요 네스뵈 그리는 희망이라는 것이 깊은 함정에 갇혀 작은 출구만을 바라보고 바둥거리는 짐승의 몸부림 같기도 하지만, 어쨌듯 그가 그리고자 하는 것은 희망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정확히 열 번째로 번역되어 출간된 [리디머]는 원래 순서상으로는 여섯 번째이다. 오슬로 3부작이라고 불리는 [데빌 스타] 이후 이야기이고, 영화화되어서 유명해진 [스노우맨] 전 이야기이다. 소설의 시작은 크리스마스를 앞둔 강추위가 몰아치는 스산한 오슬로를 배경으로 한다. 소설은 해리 홀레 시리즈 특유의 어둡고 차가운 분위기로 시작된다.

"지하철 출구 유리문을 빠져나오는 그의 입에서 담배가 위아래로 끄덕거렸다. 오슬로 지하의 부자연스럽고 강렬한 열기를 뒤로 한 채, 계단을 올라가 12월 오슬로의 지극히 자연스러운 어둠과 살을 에는 추위 속으로 나갔다. 본능적으로 몸을 움츠들었다. 에게토르게. 이 작고 트인 광장은 여러 개의 보행자 도로가 만나는 지점으로, 오슬로 중심부였다. 요즘처럼 추워서 사람들의 왕래가 없는 때에도 중심가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크리스마스를 2주 앞둔 일요일이라서 이례적으로 상점들이 영업 중이었다. 광장을 둘러싼 4층짜리 수수한 상점 건물에는 쇼윈도에서 노란 불빛이 떨어졌고, 광장은 그 불빛 속을 서둘러 오가는 사람들로 붐볐다. (P 25)"

해리 홀레의 시점에서 암울한 오슬로와 그 오슬로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이 전개되지만, 동시에 한 남자의 시점에서도 이야기가 언급된다. 크리스토 스틴키츠라고 불리는 남자로 별명은 크로아티어로 '말리 스파시텔리'이다. 어린 구세주라는 의미이다. 소설은 그가 크로아티아에서 어떤 참혹한 전쟁을 겪었고, 어떻게 암살자가 되었는지를 담담하게 이야기한다. 그는 '욘'이라는 구세군 성직자를 암살하기 위해 노르웨이로 왔다. 그러나 실수로 욘과 닮은 욘의 동생 로베르트를 죽인다. 그리고 그로 인해 해리 홀레를 중심으로 한 노르웨이 경찰에게 쫓기게 된다. 이제 그는 무기도 없고, 돈도 없지만 그는 끝까지 오슬로에 남아서 임무를 완수하려 한다. 이 과정에서 금욕적이고 자선적인 욘이라는 젊은 성직자를 둘러싼 어두움들이 들춰진다.


 


 

보통 해리 홀레 시리즈에는 다른 형사 시리즈에 비해 액션적인 장면이 적게 등장한다. 때로는 사건의 전개보다 해리 홀레의 어두운 내면을 묘사하느라 지루하게 느껴질 때도 있다. 그러나 [리디머]에서는 크리스토 스틴키츠로 불리는 남자를 중심으로 무척 속도감 있는 액션 장면이 등장한다. 로베르트를 죽인 후 해리 홀레와 노르웨이 경찰에게 쫓기면서도 끝까지 욘을 추적하는 장면이 매우 박진감 있게 그려진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해리 홀레 비슷하게 이 남자의 어두움도 진하게 묻어 나온다. 보통은 이런 소설을 읽으면서 잔혹한 암살자에게 분노를 느끼기 마련인데, 이 책을 읽는 내내 쫓기는 암살자에게 연민을 느끼게 되었다. 그리고 오히려 그가 무사히 노르웨이에서 탈출해서 고향으로 돌아가게 되기를 바라기까지 되었다.

다른 시리즈에 비해서 무척 뛰어난 수사 실력을 보이는 해리 홀레도 만나 볼 수 있었다. 다른 시리즈에서 해리 홀레는 금세 수사 방향을 잃고 알코올에 중독되어 자신과 수사를 망치기 일쑤인데, 이 소설에서 해리 홀레는 매우 뛰어난 수사관으로 등장한다. 얼굴을 바꾸어 가며 신출귀몰하는 크리스토의 정체를 밝히고, 그가 남긴 단서들을 추적해서 크리스토가 등장하는 곳마다 귀신같이 나타난다. 물론 그때마다 한 걸음씩 늦기는 하지만...

소설의 결말 역시 다른 시리즈와 다르다. 항상 해리 홀레와 주변 사람들에게 절망을 주던 결말이 이 소설에는 비교적 해피 엔딩으로 끝난다. 해리의 연인 라켈과 아들 올레그는 등장하지 않지만, 소설 결말 부분에서는 그들과 행복한 삶을 이어질 것 같은 기대감도 준다.

 

 

 

다만 소설의 결말 부분에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도 있다.(이 부분부터는 조금의 스포가 있다.) 해리 홀레는 마지막에 모든 사실을 알고 스탄키츠가 임무를 완수하고 도망하게 방치를 한다. 스탄키츠에게 죽임을 당하는 상대는 해리에게 왜 자신을 용서하지 않느냐고 묻는다. 그러자 해리는 이렇게 말한다. '형사의 임무는 용서가 아니다! 구원이다!'라고 말한다. 모두를 구원하기 위해 스탄키츠의 범행을 눈감아주고, 그를 달아나게 해 준다는 것을 암시한다.

그러나 [팬텀]의 마지막 장면에서는 아들 올레그가 자신의 범행을 밝혀내고 자수를 강요하는 해리에게 한 번만 눈 감아 달라고 절규한다. 그럼에도 해리는 '나는 경찰이다! 그리고 경찰로서 해야 할 일이 있다!'라고 말한다. 그로 인해 올레그는 해리에게 총을 쏜다. 왜 스탄키츠는 되고, 올레그는 안 되었을까...

그럼에도 이 책은 내가 읽은 해리 홀레 시리즈 중 최고였다. 그전에 가장 마음에 드는 소설은 [레드 브레스트]였고, 가장 마음에 들지 않는 소설은 [팬텀]이었다. 팬텀의 암울한 결말과 시종일관 이어지는 어두운 분위기에 읽고 나서도 내내 마음이 답답했었다. 다시는 해리 홀레 시리즈를 읽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팬텀]의 느낌이 좋지 않았다. 그러나 [리디머]를 읽으며 다시금 해리 홀레 시리즈의 매력을 되찾을 수가 있었다. 이제 남은 것은 [팬텀] 이후의 [폴리스]와 [서스트]이다. 이 두 권의 책에서 [팬텀]의 어두운 분위기가 반전되기를 희망해 본다. 물론 지금까지 분위기로 봐서는 가능성이 매우 작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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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루얼티
스콧 버그스트롬 지음, 송섬별 옮김 / arte(아르테)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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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암 니슨이 비교적(?) 젊은 시기에 찍은 [테이큰]이란 영화가 있다. 한국에서 리암 리슨을 알린 영화이기도 하다. 이 영화에는 유럽으로 여행을 갔다가 납치된 딸을 찾는 아빠의 여정이 담겨 있다. 오래전에 본 영화이지만, 이 영화에서 딸이 납치되었을 때 리암 니슨의 대사가 매우 인상적이었다.

"네가 누구인지 모른다. 뭘 원하는지도 모른다. 몸값을 원한다면 안 됐지만 돈은 없다. 다만 남다른 재주는 있지, 밥 먹고 해 온 것이 그 짓이다. 지금 딸을 놔준다면 여기서 끝내겠다. 내 딸을 놔주지 않는다면, 꼭 찾아가서 죽일 것이다."

매우 담담하면서도 강렬하게 대화를 한다. 상대는 아무렇지 않게 "행운을 빈다!"라고 말하지만, 곧 끔찍한 맛을 보게 된다.

[크루얼티]는 아빠의 복수극이 아닌, 딸의 복수극이다. 이 소설에서는 딸이 아닌 아빠가 납치가 된다. 평범한 외교관 아빠와 생활하는 고등학생인 그웬돌리는 학교에서 왕따를 당하는 것 빼고는 역시 평범한 생활을 하고 있다. 그런데 어느 날 유럽으로 출장을 간 아빠가 납치가 되었다. 그리고 밝혀지는 아빠의 충격적인 직장생활... 아빠는 평범한 외교관이 아닌 CIA 요원이었다. 아빠의 동료들과 정보기관은 총동원해서 아빠를 찾지만 아빠의 행방은 묘연하다. 그리고 그들은 점점 아빠의 행적을 의심한다. 아빠가 이중 스파이의 행동을 하다가 잠적한 것으로 의심한다. 그웬돌리는 아무도 믿을 수가 없게 된다. 혼자 아빠가 남기고 간 단서를 추적하다가, 아빠의 비밀 창고에서 아빠가 남긴 [1984]라는 낡은 소설책과 알 수 없는 숫자들을 발견한다. 그리고 그 숫자가 가리키는 곳을 쫓아가며 아빠를 찾아간다.

그웬돌리가 처음 도착한 곳은 파리이다. 그곳에서는 그녀는 야엘이라는 이스라엘 첩보 요원을 만난다. 전직 체조선수였던 그녀는 야엘에게 혹독한 훈련을 받고, 그녀 안에 잠자고 있던 무언가가 깨어나기 시작한다. 왕따를 당하고, 친구에게 뺨을 맞고 눈물을 흘리던 그웬돌리는 이제 무자비하게 상대를 제압하고, 뼈를 꺾고, 총으로 상대를 제압한다. 파리, 베를린, 프라하를 거치며 유럽 대륙을 뒤져서 드디어 아빠를 찾아낸다. 그 과정에서 아빠를 납치하고 유럽 전역에 어린 여성들을 인신매매하며 무기를 밀매하는 잔혹한 악당을 찾아낸다. 그리고 이제 리암 니슨이 혀를 내두를 만한 딸의 복수가 시작된다.

미국에서는 YA 소설이라는 장르가 매우 인기가 있다. 영 어덜트라고 불리는 이 장르는 청소년문학이라고 부르지만 장년들에게도 매우 인기가 있다.  그리고 이런 인기를 끌고 있는 작품들은 대부분 영화화되었다. 대표적인 작품이 [헝거게임]나 [메이즈러너], [트와일라잇] 시리즈가 있다. 언제부터인가 이 장르의 배경이 암울한 미래사회가 되고, 주인공은 어린 여성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 혹독한 세계에서 여자아이가 세상과 사람과 싸우면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내용들이 많았다.

[크루얼티] 역시 YA 문학이지만, YA 문학으로는 드물게 스파이 소설이다. 평범한 여학생이었던 그웬돌리가 아빠를 찾기 위해 스파이 세계에 발을 디디며 학교에서는 알지 못했던 잔혹한 세계를 보게 된다. 납치, 인신매매, 마약, 폭력, 무기 밀매, 그리고 CIA가 연결된 검은 커넥션까지... 그런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해 고분분투하며 점점 성장해 가는 내용을 담고 있다. YA 문학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스케일이 크다. 후반부에는 폭력적인 내용도 많이 등장한다. 미국 청소년들은 이 정도는 거뜬히 받아들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만큼 우리 세계가 점점 더 잔혹하고 폭력적으로 변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아닐까. 속도감 있게 읽히며 주인공 그웬돌리의 심리를 매우 잘 표현하고 있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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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탕 1 - 미래에서 온 살인자, 김영탁 장편소설
김영탁 지음 / arte(아르테)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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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부터 타임머신이나 시간여행과 관련된 영화나 책들을 좋아했었다. 가장 좋아했던 작품은 이제는 꽤 오래된 영화인 [백투 더 퓨처]라는 영화이다. 이 영화에서 주인공은 괴짜 과학자를 만나 이상한 슈퍼카를 타고 과거와 미래를 여행한다. 여러 시리즈로 만들어졌던 이 영화 중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과거로 돌아가 자신이 엄마를 만나는 장면이었다. 문제는 엄마가 자신을 좋아하게 된다는 것이다. 영화에서는 엄마가 자신을 좋아해서 아버지와 결혼하지 않으면 자신은 태어날 수 없다는 이상한 논리에 빠진다. 영화를 본 후 한참 지나서 시간이 지나서 생각한 것이지만, 결국 영화에서 엄마가 주인공을 낳지 않았다면, 주인공이 과거로 오는 일도 없을 거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나중에서야 이것을 시간여행의 패러독스라는 이론으로 존재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결국 시간여행을 소재로 한 영화나 소설은 이 시간여행의 패러독스라는 묘한 찰흙 덩어리는 잘 반죽해서 멋진 작품을 만들어함을 깨달았다.

[곰탕]이란 소설은 바로 이런 묘한 소재로 만든 특이한 작품이다. 이 소설을 처음 접할 때는 시간여행이라는 소재에 끌렸다. 그럼에도 곰탕을 배우기 위해서 과거로 여행한다는 내용으로 인해 소설이 조금 황당한 설정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닌가 염려스러웠다.  그러나 소설을 펼치는 순간, 그런 염려는 모두 사라지게 되었다. 저자는 소설가보다는 [헬로우 고스트]나 [슬로우 비디오]라는 영화를 만든 영화감독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작가의 이력답게 소설은 초반부터 짧은 단문으로 화려하고 빠른 이미지 변환으로 이야기를 전개해 나간다.

2063년 부산은 몇 번의 쓰나미에 휩쓸려 지금의 부산과는 다른 모양이 되었다. 가장 다른 점은 바다가 멀리 물러갔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바다가 물러간 지점에 사람들은 옹기종기 집을 짓고 모여 산다. 이들을 아랫동네 사람들이라고 부른다. 아랫동네 사람들은 날 때부터 윗동네 사람들과는 차별되어 바닥 인생을 살아간다. 이들은 다시 쓰나미가 몰려와서 죽든지, 윗사람들의 허드렛일을 하다가 죽게 된다. 그중 하나가 과거로 시간 여행을 하는 것이다. 대부분 돌아오지 못하는 시간여행은 아랫마을 사람들이 윗마을 사람의 심부름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주인공 우환도 마찬가지이다. 우환은 아랫마을 출신으로 아무런 소망 없이 식당에서 주방보조로 일한다. 미래에는 여러 가지 전염병으로 인해 짐승들이 사라지고, 유전자 결합을 해서 만든 쥐와 같은 동물을 먹는다. 식당 주인은 항상 예전에 먹었던 곰탕을 이야기하고, 결국 우환에게 시간여행을 통해 곰탕을 만드는 법을 배워오라고 말한다.

13명이 탄 시간여행 일원 중 우환과 한 소년만이 살아남는다. 소년은 12명의 남자를 죽인 살인자를 죽여 달라는 한 노파의 부탁으로 과거로 왔다는 것밖에는 알려진 것이 없다. 소년과 헤어져 우환은 부산에서 꽤 유명한 곰탕집에 취직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곰탕집의 사고뭉치 아들 이순희와 그의 여자친구 유강희를 만난다. 문제는 이순희와 유강희의 이름이 자신을 어린 시절에 버린 부모의 이름과 같다는 것이다. 이제 우환은 곰탕을 배우는 것보다 무책임하게 자신을 만들고 버린 두 아이들을 갈라놓는 것에 집중한다. 자신의 저주스러운 인생을 탄생시키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이다. 그러나 그들과 가까이할수록 그렇게 증오하던 그들과 정이 들어버린다.

이와 함께 소설에서는 과거로 돌아와 자신이 미래를 바꾸려는 사람들이 존재하고, 그것을 쫓는 경찰들이 존재한다. 소설에는 유머와 감동과 함께 현대사회의 특유의 비정함을 보여준다. 레이저와 순간이동, 비행청소년, 장기밀매, 안면성형 등 충격적이면서도 현실적인 소재 등이 등장한다. 마치 영화 [국제시장]과 [황해]를 섞어 놓은 듯한 묘한 분위기를 가지고 있다. 특히 1편의 말미에서는 우환과 함께 온 소년이 죽이려고 하는 12명을 살해한 사람의 정체가 발켜지면서 충격적을 준다. 마치 영화 한편을 보는 듯한 빠른 전개와 스토리가 압권적인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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