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럼바인
데이브 컬런 지음, 장호연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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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시절 '윤리학'이라는 학문에 관심이 많았었다. 현대 서구의 윤리사상이 어떤 것이고, 어떻게 형성되었는지에 대해서 학문이었다. 어려서부터 기독교 가정 속에서 자라왔지만, 그 시절에는 새로운 윤리적 대안에 대한 관심이 많았었다. 피터 싱어나 존 롤스 같은 사상가에 관심을 가지고 그들이 대안으로 제시하는 새로운 윤리학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서양은 근대 이후부터 신의 존재를 배제한 사회계약이라는 기초에 의해 그들만의 윤리적 법칙을 세우고 있었다. 그리고 그 당시 내게 그런 윤리적 법칙이 매우 매력적으로 보였다.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을 극복하기 위해 서로의 권리를 존중해 주는 계약으로부터 출발하는 그들의 정치체제와 윤리가 매우 합리적이고 타당하게 생각이 되었다. 서로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기 위해 국가와 법이라는 틀로 개인을 보호하는 체계가 너무나도 멋지게 들려졌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무언가 망치로 머리를 두들겨 맞는 듯한 생각을 하게 되었다. 
 
'만약 자신이 빼앗길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어차피 죽으면 모든 것이 끝이고, 자신은 이제 모든 것을 잃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런 생각을 하자 모든 것이 두려워졌다. 결국 근대 이후 서구사회는 신이나 영혼, 사후 심판 등의 과거의  존재를 배제한 채, 사람들끼리의 계약을 통해 사회를 유지하는 기본 윤리와 법칙을 만드는 것이었다. 그런데 만약 이 계약이 통하지 않는 사람이 등장한다면, 그는 과연 무슨 일을 저지를 수 있을까?
 
젊은 시절 짧게 스쳐 지나갔던 생각을 최근에 다시 하게 되었다. 뉴스에서 등장하는 끔찍한 범죄를 볼 때이다. 어차피 죽으면 끝이라고 생각하고 폭주하면서 온갖 범죄와 학살을 저지르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과연 저들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이 있기는 한 걸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특히 미국에서 이유 없이 총기를 난사해 수많은 사람을 죽이고, 너무나도 간단히 자신의 목숨을 끊는 것으로 일단락하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그때의 끔찍한 생각이 다시 떠오른다.
 
지난해에 출간된 [콜럼바인]이란 책은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총기난사 사고인 콜럼바인 고등학교의 사건을 다룬 책이다. 이 사건은 에릭과 딜런이라는 두 명의 학생이 폭탄과 총기를 통해 12명의 학생과 1명의 교사를 살해하고 수많은 학생들을 다치게 한 후,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이다. 이 책이 출간되기 전에 이 사건의 주범인 에릭의 어머니가 쓴 [나는 가해자의 엄마이다]이 출간되기도 했었다. 그러나 이 책은 조금 더 객관적인 시각에서 콜럽바인 총기난사 사고의 준비과정에서부터 사건 진행과정, 그리고 사후 수습 과정을 자세히 기록하고 있다.
 
사람을 선입관을 가지고 대하는 것을 배제하려고 노력을 하지만 에릭이라는 인물에 대한 묘사를 볼 때면 마치 영혼이 없는 존재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섬뜩함을 느꼈다. 피자 가게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아무런 거리낌 없이 폭탄을 제조하고 수많은 살상 무기를 준비한다. 그리고 당일이 되자 아무런 거리낌 없이 총을 난사 한다. 살려 달라고 애걸하는 사람들, 살기 위해서 도망치는 사람들, 부상을 입고 쓰러진 사람들에게도 스스럼없이 총을 쏘아댄다. 그리고 마지막이 되자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반면 딜런은 마지막까지 주저한다. 이 책에서는 에릭이 주도적으로 범행을 계획했다면 딜런은 에릭에게 끌려 범죄를 저지른 것으로 보고 있다. 딜런은 마지막까지 주저했으며, 총기를 쏠 때도 망설였다. 이런 딜런을 범죄에 가담시키기 위해 딜런을 더 몰아붙인 사람이 에릭이다. 물론 딜런도 자신의 범죄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지만, 만약 딜런이 에릭을 만나지 않았었더라면 하는 생각이 든다.

원래 이 에릭의 계획은 더 끔찍했었다. 공원에서 폭탄을 터뜨려 경찰의 시선을 돌리게 한 후, 식당에서 대형 폭탄을 터뜨리려는 계획이었다. 그리고 그 폭발로 살아남아 식당에서 뛰쳐나오는 학생을 에릭과 딜런이 양쪽에서 교차사격해서 학살하려는 것이 원래 계획이었다. 만약 폭탄이 불발되지 않고 에릭의 계획대로 되었다면, 이 책에서는 1000여 명의 사상자가 생겼을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다.

모든 사건이 그렇지만, 이 사건이 난 후 미국 사회에도 과연 이런 범죄가 왜 일어났는지, 동기가 무엇인지를 조사했다. 물론 완전한 동기는 밝혀내지 못했다. 다만 이 이 책에서는 에릭이 뉴스나 신문에 나온 유명한 폭탄 테러범을 흉내 내어 자신이 더 유명해지고 자 하는 욕구가 있었다고 본다. 또 안일한 대응으로 사건을 일찍 수습하지 못한 공권력의 무능을 지적한다. 그러나 과연 이것이 전부일까?

우리나라에서도 수많은 사건들이 일어난다. 끔찍한 영아살해, 어린아이들을 강간하고 살해하는 범죄, 묻지마 식 살인, 도덕이나 안전 불감증으로 인한 수많은 화재들... 과연 이런 범죄의 원인은 무엇일까? 그리고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제도와 법에 대한 지적들이 있다. 그러나 과연 제도와 법이 이 모든 것을 해결해 줄 수 있을까? 무언가 인간의 마음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이 필요한 시대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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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갈 이유 - 힘겨운 삶에 지친 이들을 위한 철학 처방전
오카다 다카시 지음, 홍성민 옮김 / 책세상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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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으로 2차 세계대전의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빅터 프랭클이 자신의 저서인 [죽음의 수용소에서]라는 책에서 이런 글을 남겼다.

"사람은 어떠한 환경에도 적응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어떻게 적응했는가는 묻지 말아 달라"

사람은 어떠한 환경에도 적응을 한다. 그리고 그 적응력이란 생존본능을 의미할 것이다. 사람은 살아남기 위해 어떠한 환경에서도 자신만의 삶의 방법을 택한다. 빅터 프랭클과 같이 혹독한 수용소나, 전쟁터의 참호 속, 그리고 독재국가의 집단 학살 속에서도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살아남는 방법을 택하고 그렇게 살아남는다.

그러나 이런 생존본능은 사회적인 극한 상황뿐만 아니라, 겉으로는 평범하게 보이는 우리의 가정생활이나 사회생활에서도 계속된다. 부모의 학대나 치열한 경쟁 사회에서 육체와 정신이 망가진 사람들은 자신만의 방법으로 삶을 유지하기 위해서 몸부림을 친다. 일본의 유명한 정신과 의사이자 작가인 오카다 다카시가 쓴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갈 이유]라는 책에는 바로 이렇게 자신만의 생존의 방법으로 힘겨운 삶을 이겨간 사람들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이 책은 유명한 철학자나 문학가들이 어떻게 삶의 위기를 겪었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그 위기를 극복하고 삶을 이어갔는지를 이야기한다. 이 책에서 언급하는 대표적인 사람 중에 한 명은 쇼펜하우어이다. 그는 유명한 실존주의 철학자이자 염세주의자로 알려져 있지만, 저자는 이것이 쇼펜하우어가 살아남기 위한 방법이라고 말한다. 쇼펜하우어는 부자 상인인 아버지와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고, 아버지가 죽자 어머니는 자유분방한 삶을 살면서 쇼펜하우어와 갈등을 느낀다. 여러 번의 갈등 후 쇼펜하우어는 어머니에게서 집에서 나가라는 소리를 듣는다.

"너에 대한 나의 의무는 끝났다. 그러니 내 집에서 나가거라. 나는 더 이상 네 일에 상관하지 않을 거야. 내게 편지 쓰지 마라. 네가 편지를 보내도 읽지 않을 테고 답장도 안 보낼 테니. 다 끝났다. 너는 나를 너무 힘들게 해, 너만이라도 행복하게 살아라. (P 45)"

이 글에서 아들에게 진저 머리를 치는 어머니의 심정이 느껴진다. 그러나 이런 말을 들었을 때 쇼펜하우어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세상에서 버려진 느낌, 삶의 의미를 잃어버린 느낌이 아니었을까? 쇼펜하우어는 이런 과정에서 자신만의 삶의 방식을 찾는다. 그것이 바로 허무주의적인 철학이다. 삶의 허무함을 바라보고, 그 삶에 집착하지 않으며, 삶의 관조하는 것이다. 그것이 쇼펜하우어 만의 살아남기 위한 방법이었다.

"어쨌든 쇼펜하우어는 많은 위기를 극복하고 노년까지 살았다. 지극히 낙관적으로 살고 있다고 보였던 사람이 자살하는 일도 있고, 자신감이 넘치고 늘 긍정적이며 어떤 어려움도 아랑곳하지 않는다고 여겼던 인물이 어이없이 꺾여버리는 경우도 있는 것을 생각하면 그의 염세적인 철학은 역설적인 방식으로 그의 인생을 지켜준 것은 아닐까 싶다. 인생에 아무것도 이해하지 않음으로써 상처받는 것을 피하는 그의 전략은 어느 정도 성공했다고 할 수 있다. 처음부터 사랑받기를 포기하면 배신당해 낙담할 일도 없을 것이다. (P 51)"

 이 책에는 쇼펜하우어 외에도 헤르만 헤세, 조르주 상드, 서머싯 모음, 비트겐슈타인, 그리고 앞에서 언급한 빅터 프랭클과 같이 유명한 철학자와 작가들이 삶을 이야기한다. 위대한 작품으로만 알았던 그들의 삶이 어렸을 때부터 치열한 삶을 살았고, 결국 그들의 사상이나 예술이 살아남기 위한 방법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중 가장 인상 깊게 읽은 사람이 '서머싯 몸'이었다. 어려서부터 부모님을 잃고 목사인 작은아버지 밑에서 자란 '서머싯 몸'은 신학교를 가기를 원하는 작은아버지의 강요와 맞서며 예술가로서의 삶을 살기 위해 발버둥을 친다. 그러나 가진 재산을 탕진하고, 가난을 경험하고, 사람들에게 배신을 당한다. 그렇게 길거리에서 방황하는 삶을 살다가 결국에 인생이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깨닫는다. 그렇게 인생이 의미가 없다는 것을 깨달은 후에야 역설적으로 그는 삶의 희망을 가지게 된다. 인생이 정해진 것이 아니면, 자신의 뜻대로 인생을 개척해 나겠다는 것이다. 그는 이런 깨달음에 대해 글로 남긴다.

"처음으로 완전한 자유를 누리게 되는 셈이었다. 자기 존재의 무의미함이 오히려 힘을 느끼게 해주었다. 이제까지 자신을 박해한다고만 생각했던 운명과 갑자기 대등해진 느낌이 들었다. 인생이 무의미하다면 세상도 잔혹하다고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가 무엇을 하고 안 하고는 이제 중요하지 않았다. 실패하는 것도 중요하지 않았다. 성공 역시 의미가 없었다. (P 142)"

서머싯 몸은 이런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인생의 굴레]라는 책을 출간했고, 작가로서 성공을 거두었다고 말한다. 이 글을 읽으며 아직 읽지 못한 이 책을 꼭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의 치열한 삶이 담긴 문학작품만큼 위대한 작품은 없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저자가 이야기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허무주의라는 철학이나 사상을 통해 인생을 관조하며 삶의 위기와 자살의 유혹으로부터 벗어났다. 그러나 이런 사상들 역시 살기 위한 방편이었다는 것이 작가의 요지이다. 그리고 이렇게 그들을 죽음의 위기로 몰아놓은 원인은 대부분 어린 시절 가정의 위기이다.

저자는 어린 시절 가정이나 어머니로부터 받는 사랑을 '안전지대'라는 말로 표현한다. 인생은 어린 시절 가정과 부모의 품에서 안전지대로서의 안전감을 누려야 한다고 말한다. 이런 안전감이 없이 자란 사람은 평생을 그 사랑을 그리워하고 그것이 채워지지 않음으로써 공허함을 느낀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공허함이 삶의 의미를 상실하게 하고, 결국 극단적인 선택까지 이르게 한다는 것이다.

이 책에는 단순히 안전감을 상실한 사람들의 이야기뿐만 아니라, 부모의 학대로서 부모의 올무 속에서 일평생을 끌려다니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육체적인 학대와 함께 정신적인 학대까지도 언급된다. 그중 하나가 그레이트 마더의 저주라는 것이다. 어린 시절 아이에게 어머니라는 존재는 절대적인 존재이다. 그런 어머니가 자녀에게 '너는 쓸모없는 존재다!' '네가 하는 것은 다 실수투성이다!' '네 삶은 엉망진창이다!'라는 식으로 말하면, 그런 어머니의 저주가 일평생 삶을 지배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스스로를 학대하여 정상적인 삶을 살지 못하게 한다. 결국 이런 상황에서는 극복하기 위해 저자는 어머니와 적당한 거리를 두어 어머니의 저주를 풀어야 한다고 말한다.

또 이 책에는 일본 사회에서 부모로 인해 학대를 당해 삶이 피폐하진 여러 가지 사례가 나온다. 아버지에게 학대를 당해 도둑질을 하고, 성적으로 유린 당하고, 마약까지 강요당하는 아들과 딸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그럼에도 그 아버지를 미워하지 못하고, 아버지에로 돌아가는 인간의 숙명을 이야기한다. 결국 저자는 이런 굴레를 끊어야 정신적으로 건강해질 수 있다고 말한다. 이 부분을 저자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부모에게 인정받고 부모와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사람은 행복하다. 그러나 누구나 그런 행운을 누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삶의 고통을 안고 있는 사람의 대부분은 부모와의 관계로 고민한다. 그런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알면 놀랄 것이다.
사람으로 태어났기 때문에 누구나 부모에게 인정받기를 원한다. 그것은 인간의 본성이다. 부모의 인정을 받지 못하고 부정당하는 것만큼 슬픈 일은 없다. 아무리 다른 사람에게 평가받아도 부모의 인정을 받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 늘 부모에게 긍정적인 말을 듣고 인정을 받으며 살아온 사람은 그런 고통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행복한 인생을 살아온 사람이라면 부모를 사랑하고 부모의 사랑을 받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로, 햇빛과 공기처럼 늘 변함없이 누릴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인생을 살지 못한 사람에게는 부모의 사랑은 변하기 쉽고, 여러 번 배신당해서 미덥지 않고, 의지할 수 없는 허무한 희망이다. 그럼에도 그 허무한 희망을 포기할 수 없어 늘 그것을 끌어안고 있다. 사랑받지 못하는 자신이 어떻게 하면 사랑받을 수 있을까 하면서 헛된 노력과 도전, 기대와 포기 사이에서 흔들린다. 자식의 짝사랑으로 남아 있는 부모 자식 관계만큼 슬픈 것은 없다. (P 154-5)"

이 책을 읽으면서 결국 정신적으로 건강하다는 것은 어린 시절 부모와의 관계가 절대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면서 나의 어린 시절을 되돌아보게 되고, 또 지금 자녀를 키우는 내 상황을 생각해 보게 된다. 나 역시 부모와 건강한 관계였다고 말할 수 없기에, 자녀에게는 안전지대가 되는 아버지가 되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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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3-03 21: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3-04 22: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하나도 괜찮지 않습니다 - 감정 오작동 사회에서 나를 지키는 실천 인문학
오찬호 지음 / 블랙피쉬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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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급한 약속을 앞두고 약속 장소인 건물 지하 주차장에 주차를 하려 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주차장 입구에 버젓이 차 한 대가 주차해 있는 것이었다. 차에는 전화번호가 있었지만 연락이 되지를 않았다. 한참을 기다리다가 어쩔 수 없이 주변 가계들에 들어가 차 주인을 수소문하기 시작했다. 한참을 고생한 후 피자가게에서 가족들과 피자를 먹고 있는 차 주인을 발견했다. 지긋한 나이의 아저씨의 풍채를 가진 차 주인은 투덜거리며 나왔다. 아무 말없이 자신의 차로 다가가는 그 사람에게 화가 나서  나도 모르게 "이곳에 주차를 하시면 어떻게 하시냐?"라는 볼멘소리를 했다. 그랬더니 그 사람이 갑자기 안색이 변하며 "여기에 주차하면 안 된다는 법이 어디 있냐?"라며 소리를 치며 흥분을 하는 것이었다. 나중에 피자를 먹던 아내와 자녀들까지 와서 말리고, 나도 죄송하다고 말해서 겨우 돌려보낼 수가 있었다. 생각할수록 씁쓸한 기억이었지만, 이것보다도 더 씁쓸한 것은 이런 비슷한 상황들을 자주 경험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어느 때부터인가 이런 사람들을 봐도, 또 그런 사람을 만났구나 생각하고 피해 다니기 시작하게 되었다. 그런 사람들과 언쟁을 해 봤자 어차피 그 사람들은 바뀌지 않을 것이고 나만 피곤해진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아마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 사회에는 이런 안하무인인 사람들은 점점 더 늘어나고 있다. 어쩌면 나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로 인해 그런 사람들이 더 늘어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 본다.

오찬호 작가의 [하나도 괜찮지 않습니다]라는 책을 읽으며 이런 생각을 다시금 해 보게 된다. 이 책의 저자는 한국 사회가 언제부터인가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회가 되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런 부끄러운 사회에서 피해를 받은 사람들은 살아남기 위해 스스로의 감정을 죽이고, 냉정한 사람들이 되어간다고 말한다. 사회나 타인의 부조리에 대항하기보다는 자기 역시 살아남기 위해 스스로 그런 사람이 되어 간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런 우리 사회의 모습을 '감정 오작동' 사회라고 말한다. 뜨거워야 할 때 오히려 냉정하고, 냉정해야 할 일에는 오히려 뜨겁게 열을 내는 우리 사회의 모습을 비꼬는 표현이다.

"각자도생을 강요하는 교육 시스템과 그 안에서 엘리트가 된 이들이 만들어 놓은 엉성한 사회구조 안에서 많은 이들이 평생 바쁘게만 살아간다. 어릴 때부터 오직 대학입시와 취업을 위한 인생설계도에 맞추어 살얼음판을 걸어야 했던 사람들이 만들어 낸 공기는 너무나도 차다. 공공선을 위해 뜨거워질 순간을 모르는 한국인들은 좀 냉정하게 따져봐야 할 '각자도생'의 삶에는 지나친 뜨거움으로 매진한다. 그래서 우리들은 낯 뜨거워질 순간을 잘 모른다. 남은 괜찮지 않은데 당당하다. 인간이라면 가져야 할 뜨거운 심장은 온데간데없다. 자신의 발버둥에 아파하는 누구의 허우적거림에는 냉정하다. 쓸데없는 열정이 강해질수록 우리는 무례한 차가움으로 주변을 내친다. 서로가 칼을 겨누고 찌르니 '하나도 안 괜찮은' 사람만 늘어간다.(P 9)"

이 책에는 언제부터인가 나만의 입장, 나만의 방식을 주장함으로 병들어 가고 있는 우리 사회의 모습을 너무나도 적나라하게 묘사하고 있다. 저자가 꼰대라고 부르는 나름대로 사회적 권위가 있다는 사람들에게서 이런 모습이 더 많이 드러난다고 말한다. 자신이 나름 사회적 지위와 부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그렇지 못한 사람들을 더욱더 함부로 대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 책에서 언급하고 있는 저자가 경험한 최고의 꼰대는 K 교수라고 부르는 권위 있는 교수이다. 저자가 어느 날 K 교수에게 특강을 부탁하는 연락을 받고 거절할 수가 없어서 먼 강의 장소까지 지 힘들게 도착했다. 그곳에서 예정에도 없던 100분의 강의를 하고 난 후, 저자가 받은 것은 K 교수의 강의를 들은 학생들이 쓴 저자의 성의 없는 독후감이었다는 것이다. 알고 보니 K 교수가 자신의 공강을 메꾸기 위해 저자를 불러다가 강의를 시키고, 강의료 대신 학생들에게 저자의 독후감을 리포트로 준비 시킨 것이다. 결국 저자는 고생고생하며 무료로 K 교수의 강의를 메꾸는 역할만 한 것이다. 어찌 저자뿐일까? 우리 사회에서 어느 분야에서나 이런 권위주의적인 갑질이 존재하지 않는 곳이 없을 정도이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이 살아남기 위해 이런 비합리적인 대우를 참을 수밖에 없다. 우리 사회에서 너무도 부끄러운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단지 개인의 문제만이 아니다. 특정 집단을 중심으로 타 집단에 대해 배척하고 차별하는 문화 역시 우리 사회의 감정 오작동의 한 부분이다. 특별히 이 책에서는 특정 계급과 특정 성별, 특정 집단들이 주도를 하고 있는 차별 문화의 민낯을 드러낸다. 계층 간에, 남녀 간에 벌어지고 있는 우리 사회의 차별 문화를 이야기한다. 학벌과 부를 통해 자신만의 권위를 만든 계층들이 자신보다 낮은 계층에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무시하고 비하하는 어둡고 구역질 나는 사회 문화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특별히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내용들은 신문이나 뉴스에서 나오는 이야기가 아니라, 저자 스스로가 직접 경험한 이야기이기에 더욱더 생생하게 느껴진다.

나 역시 매번 이런 차별 문화를 접한다. 몇 년 전 서울에서 살다가 다른 도시로 이사를 한 적이 있었다. 서울에서 살 때는 한강을 중심으로 강남과 강북을 선을 긋고, 강남 중심의 세상을 외치는 소리를 신물 나게 들었었다. 이사를 하며 이제는 그 지긋지긋한 강남 이야기를 듣지 않아도 된다는 해방감을 느꼈었다. 그런데 그곳에 살아보니 이제는 동구와 서구로 나누고 특정 지역의 가치를 높이고, 반대 지역은 빈민촌처럼 비하하는 사람들의 말을 계속 들어야 했다. 지금은 서울의 외곽의 작은 동네에서 살고 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곳에서도 작은 동네를 상단과 하단이라는 명칭으로 나누고, 아파트 위주의 상단 지역 사람들이 빌라 중심의 하단 지역을 폄하하고 무시한다는 것이다. 이제는 과연 대한민국 구석구석에 이런 집단이기주의 문화와 차별의 문화가 뿌리박히지 않은 곳이 어디 있을까 하는 생각까지 들게 되었다.

이 책을 읽으며 단순히 우리나라 문화나 특정 집단의 사람들을 비난하기에 앞서 우리의 부끄러운 모습들을 다시 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사회와 개인의 변화는 거창한 혁명이나 정치적 구호로 되는 것이 아니라, 개인들이 각자 안에 가지고 있는 부끄러움에 대한 감정들을 회복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고 생각한다. 저자 역시 사회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사회구조나 정치적인 변화가 아닌, 개인적인 의식의 변화가 먼저 선행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개인 스스로가 자신의 가치를 찾고, 세상의 불합리한 문화에 따라가지 않을 때 사회가 바뀔 수 있다는 것이다. 저자의 강의와 책들이 우리 사회에 계속해서 알려져서 우리 안의 감정 오작동의 병들이 치유되기를 바래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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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합리화의 힘 - 나를 위한 최소한의 권리
이승민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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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들어가고 가정을 이루고, 자녀까지 생기자 가장으로서의 짐이 무거워진다. 가정이라는 하나의 공동체를 이끌고 세상을 살아가면서 여러 가지 선택을 하게 된다. 그 중에서는 지금 생각해도 탁월한 선택이라고 자부하는 선택도 있었고,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내가 왜 이렇게 선택했을까 하는 후회가 되는 선택도 있다. 그리고 이런 나의 잘못된 선택으로 인해 아내와 가족을 힘들게 하는 경우도 있다. 그런 경우 끊임없이 나를 자책하게 된다.
 
내가 왜 그렇게 어리석은 선택을 했을까?’ ‘내가 왜 그런 선택을 해서 나와 가족을 힘들게 했을까?’
 
어떤 때는 자기 합리화라는 동굴 속에 잠깐 숨기도 하지만, 선천적으로 자기 합리화와 나는 친하지가 않다. 나의 잘못된 선택은 누구의 잘못보다도 내 잘못이 크다고 생각하기에, 철저히 모든 화살을 내 자신에게 쏘아 댄다. 그러다가 이 책을 읽으며 자기 합리화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보게 되었다.
 
이 책에서는 자기 합리화라는 개념을 이야기 하기 전에 먼저 방어기제라는 것을 설명한다. 방어기재란 자신이 심리적으로 공격을 받았을 때 대응하는 방식이다. 누군가에게 비난을 받았을 때, 폭력적으로 대응하거나, 타인이나 세상을 탓을 하거나, 아니면 퇴행이나 억압 같은 극단적인 심리 상태로 반응하는 것이 방어기제이다. 그래서 사람마다 방어기제를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성숙과 미성숙을 구분하기도 한다.
 
하버드 의과대학 교수인조지 베일런트는 방어기제는 성숙한다는 명제를 바탕으로 방어기제를 분류하는 작업을 했다. 베일런트에 따르면, 자아의 성숙이라는 것은 결국 성숙한 방어기제를 사용하게 되는 것을 일컫는 것이다. 반면 자기애적이고 미성숙한 방어를 과다하게 사용하는 사람은 우울이나 불안과 같은 정신병리를 가질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가 된다.” (P 31)
 
그러나 저자는 방어기제로 성숙과 미성숙을 구분하는 기존의 심리학에 반대한다. 그는 방어기제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 방어기제의 대표적인 것이 자기 합리화이다. 자기 합리화란 자기 비난의 화살을 타인이나 세상의 탓으로 돌리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까지는 이 단어가 부정적인 단어로 사용되었다. 그러나 저자는 자기 비난을 통해 스스로 자학 속에서 고통을 당하는 것보다는 자기 합리화라는 수단을 통해 자기를 보호하는 것이 더 낫다고 말한다.
 
성숙하든 성숙하지 않든 자기 나름대로의 방법으로 스스로를 보호하려고 한다면 그나마 다행한 일이다. 이것보다 더 큰 문제는, 자기를 보호하려는 최소한의 노력조차 하지 않는 사람들이다. 생각보다 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보호하려 들지 않는다. 오히려 상처에 더욱 자신을 노출시키고, 그 상처를 온몸으로 받아내려 한다. 못에 찔려 아픈 상처에 소독하고 약을 바르기는커녕 못을 더 깊숙이 찔러 넣어 고통의 극한까지 가보려는 태도를 보면 놀라지 않을 수 없다.” (P 50)


 

 

 

그러나 저자가 말하는 자기 합리화에 대한 시선을 읽다 보면 그것이 무조건 좋다는 것만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저자가 말하는 자기 합리화는 어쩌면 최소한의 자기 보호하는 수단이라는 생각이 든다. 자기 합리화가 좋은 것은 아니지만, 극단적으로 자기를 학대하고, 망신창이가 되어 구렁텅이에 빠져 있을 때는 이런 최소한의 수단이라도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세상이 점점 스스로를 엄격하게 대하길 원하고 있다. 구차하게 변명하는 것은 잘못되었으며 말보다는 행동으로 보여주기를 원하는 세상이다 중략 세상은 내면의 상처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기를 권한다. 상처로 인해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다고, 자신을 발전시키기 위해 더욱 상처를 받으라고, 당신은 잘난 게 하나도 없는 사람이라고, 항상 남들에게 배우라고 다그친다. 하지만 이런 권유와 충고는 때로는 너무 가혹하다. 우울과 불안은 아랑곳없이 발전만을 강요한다. 진료실에서도 스스로에게 모진 잣대를 적용시키는 많은 사람들을 목격한다. 그들은 스스로에게 냉철하고 엄격하며, 잘하는 게 없다며 평가절하하고, 타인을 부러워하며 극한 우울 속으로 빠져든다. 그 속에 나를 지키고자 하는 노력은 없다. 무방비 상태로 심리적 공격들을 제 몸을 노출시킨다. 상담을 하다 보면 나를 변호하는 게 무슨 소용 있나요. 난 변호받을 자격도 없어요절망의 절벽으로 스스로를 몰아세우는 사람들을 자주 보게 된다. 브레이크를 걸기 어려울 정도이다.” (P 114)
 
나의 발전을 위해서, 성수간 인격의 함양을 위해서 타인의 공격과 나의 실수에 비탄과 좌절만을 느끼는 사람의 예후는 어떨까. 뾰족한 자갈만이 깔려 있는 길을 맨발로 걷는, 수고로운 고행을 감내하는 사람은 어떻게 될까. 아마도 그 사람은 더욱 단단하고 튼튼한 발, 어떤 고통에도 대처할 수 있는 인내력을 원하기에 기꺼이 그러한 일을 경험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걷기 시작한 후 머지않아 발에서 피가 넘쳐흐를 것이며, 감염이 되어 열나고 붓고 고통으로 인해 제대로 걷기 힘든 상황이 올 것이다. 나를 성숙하게 만드는 일이라 생각했지만 상처만 커졌을 뿐이다. 후유증으로 인해 제대로 걷지 못할 상황이 생겨버렸지만, 후회는 늦었다.” (P 116)
 
합리화는 그러한 고통에서 나를 지킬 수 있게 해 준다. 이것이 정말이지 어쭙잖은것일지라도, 궁여지책에 불과한 것일지라도 고통의 순간에 나를 지켜주는 것은 그 하찮은 합리화이다.” (P 116)

 

 


 

그 동안은 자기 합리화에 대해 매우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우선 나부터도 자기 합리화를 싫어했고, 자기 합리화의 동굴 속에 숨는 타인도 못 마땅하게 여기며 충고를 했다. 상황과 자신을 직시하라고!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 도저히 견딜 수 없는 정신적인 절벽에 몰려 있는 사람에게 계속해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라고 말하는 것은 마치 그 사람을 절벽 밑으로 미는 것과 같다는 생각이 든다. 잠시 그 사람이 자기 합리화라는 그늘 속에서 쉬게 해 주는 것도 그 사람의 정신 건강을 위해 좋은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나 자신 역시 때로는 그런 그늘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다만 이런 자기 합리화가 중독처럼 매사에 지나치게 작동을 하다 보면 이 또한 심각한 상황에 빠질 수 있다는 생각도 든다. 결국 이 부분은 적절하게 나 자신에게 사용해야 할 나의 마지막 보호막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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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서티브 - 남들보다 민감한 사람을 위한 섬세한 심리학
일자 샌드 지음, 김유미 옮김 / 다산지식하우스(다산북스)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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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독 단체생활을 강조하는 한국 문화에서 내향적이거나 민감한 성향을 가진 사람들은 비난과 개조의 대상이다. 특히 군대 문화의 영향이 강한 남성 문화에서는 내향적인 사람은 사회생활에 부적합 사람으로 취급되고, 고쳐야 할 성격으로 매도된다. 나 역시 내향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기에 이런 비난을 많이 받았고, 스스로 변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 이런 나 자신을 인정하게 되었다. 물론 사회생활을 하기 위해 내가 포기하고 타인에게 맞추어주어야 할 부분이 있지만, 이런 성향이 스스로를 비난하거나 자신의 정체성까지 부정할 정도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 그렇게 할 수도 없는 나 자신을 깨달았다. 결국 내 성향을 인정하고, 내 성향은 장점과 단점을 파악한 후, 그것을 맞게 타인과의 관계를 조절해 가는 것이 필요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런 내 생각에 공감해 주고, 더 나은 길을 조언해 주는 좋은 책을 만났다. 일자 샌드라는 덴마크의 여성 목회자가 쓴 [센서티브]라는 소설이다. 이 소설에서는 '민감함'이란 주제를 다룬다. 저자 역시 민감한 사람이었고, 이로 인해 많은 고민을 했었다. 그리고 이 부분을 극복한 후 자신과 같이 민감함으로 고통을 당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이 책을 섰다.

저자는 민감함이란 남들보다 더 예민하여 더 많은 자극을 받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민감한 사람은 타인과의 관계나 사회생활에게 계속해서 자극을 받기에 개인적으로 쉼과 휴식이 필요하다. 즉 혼자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남들보다 민감한 사람들은 특별히 예민한 신경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 숨어 있는 뉘앙스를 남들보다 더 많이 인식하고, 받아들인 인풋(input)은 더 깊은 곳에 입력된다. 또 풍부한 상상력과 활발한 내면세계를 가지고 있다. 이것은 외부 세계로부터 받아들인 인풋과 느낌이 무수한 개념과 연상, 사고를 불러일으킬 수 있음을 의미한다. 이처럼 우리의 '하드 드라이브(hard drive)'는 빠른 속도로 채워지고, 그 결과 과도한 자극을 받는다.
내가 이런 경험을 하는 건 너무 많은 인풋이 들어와 머릿속에 더 이상 정보를 저장할 공간이 없다도 느끼는 순간이다. 때로는 처음 만나는 사람들과 함게 있을 때 겨우 삼십 분이나 한 시간 후에 그런 상태가 되기도 한다. 나는 억지로 그 자리를 지키고 침착함을 유지하고 심지어 그 만남을 즐기는 척하기도 한다. 그러나 속으로는 엄청난 에너지를 쏟아붓고 있어서 결국 완전히 탈진해버리고 만다." (P23)

이런 성향으로 인해 민감한 사람들은 결혼 생활이나 사회생활을 하는데 어려움을 느낀다. 그리고 이 때문에 타인의 비난을 받고, 자신에 대한 자존감이 약해진 상태가 된다. 그러나 저자는 민감한 사람들이 타인보다 외부의 자극이나 스트레스에서 약하지만, 반면 평온한 상태에서는 일반인과 다른 예민함으로 극도의 능력을 발휘한다고 말한다. 특히 민감한 사람들은 내면의 깊이가 있고, 타인과의 관계에서 깊이 공감을 하고, 또 예술적이고 영적인 감각이 뛰어나다고 말한다. 이런 민감함을 키울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어릴 때부터 부모님이 이런 민감함을 인정해 주고 격려해 주는 것이다.

 

저자는 이런 민감함을 잘 발휘하기 위해 스스로를 지키는 법을 필요하다고 말한다. 자신의 자존감을 지키고, 지나친 주변의 자극을 차단시키고,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과도히 몰입하지 않도록 관계의 선을 지키는  과정을 이야기한다.

"남들보다 민감하고 예민한 사람들은 실제로 소모적이고 과도한 자극을 주는 대화에 쉽게 빠져든다. 그들은 상대방에게 친절하고, 배려 깊고, 수용적인 사람이 되려고 노력한다. 민감한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이런 능력은 자기 문제를 남에게 떠맡기려는 사람들에게 매력적으로 느껴진다.
그러나 그런 관계를 오래 이어 가면 얼마 지나지 않아서 사회적인 에너지는 바닥을 드러내고 말 것이다. 그러므로 당신은 남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기 위해 사용하는 시간,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의 성격 유형을 현명하게 분별해야 한다. 당신의 에너지 수준은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의미 있고 보상받을 수 있는 관계에 그 에너지는 사용해야 한다." (P 104-5)"

 

내 주변의 사람들 중에는 사람과의 관계에서 힘을 얻고 에너지는 얻는 사람들 있다. 대부분 외향적인 사람들이거나 자기 주관이 강한 사람들이다. 타인과의 관계에서 거리낌 없이 행동하기에 사람들과 대화하면서 스트레스를 풀고 활력을 얻는다. 반면 사람과의 관계에서 쉽게 지치고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민감하거나 내향적인 사람들이다. 타인의 이야기를 들어주거나 타인들을 배려하는 부분이 강하다 보니 타인과의 만남에서 극도의 에너지를 소비하게 된다. 결국 민감한 사람은 스스로 자신의 연약함을 알고 자신을 관리하지 않으면 심리 에너지가 급속히 고갈되는 현상을 경험하게 된다.

책을 통해 자신의 성향을 이해해 주고 조언해 주는 사람을 만나기란 쉽지가 않다. 오랜 친구 역시 나의 성향을 알고 조언해 주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렇게 책을 통해 미처 깨닫지 못한 내면의 성향을 이야기해 주고 조언을 해 주는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독서만이 주는 큰 혜택이라고 생각한다. 민감한 성향을 가지 사람들이나 주변에 이런 민감한 성향을 가진 사람이 있으면서도 그 사람을 이해해 주지 못하는 사람들이 꼭 읽었으면 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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