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라우마 이후의 삶 - 잠든 상처를 찾아가는 정신분석 이야기 프로이트 커넥션 2
맹정현 지음 / 책담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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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 화산이 폭발하는 재난영화를 본 적이 있다.

도시 주변의 화산이 폭발해 용암이 도시로 흘러 내리는 급박한 상황이었다.

주인공을 비롯한 사람들은 도시를 구하기 위해 방법을 간구하다가 도로차단 콘크리트 벽으로 용암의 방향을 바꾸어 놓는다.

영화 전반의 압권적인 화면에 비해서 결말이 너무나 싱거웠다.

인간이 만든 조잡한 콘크리트 벽이 용암의 흐름을 바꾸는 부분에서 현실성이 떨어졌다.  

 

세월호 사건때도 마찬가지였다.

거대한 배가 침몰하고 그 안에 300여명의 사람이 생매장 되자 국민들의 분노는 마치 화산의 용암처럼 폭발했다.

사회가 극도의 공포와 분노 가운데 휩쌓이고, 서로에 대한 증오와 원망이 넘쳐났다.

그런데 어느 순간 부터인가 이 분노의 흐름이 방향성을 가지게 되었다.

세월호를 버린 선장이나 선원, 구조대, 정부, 세모그룹, 유병언... 그리고 어느 순간 그 분노는 정치라는 벽에 막히고 소멸되어 버렸다.

어떻게 그 거대한 분노가 누군가의 조정으로 방향성을 가지고 흐르고, 결국에는 콘크리트 벽과 같은 상황에 막혀 사라지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다시금 생각해 보면 물질적인 용암이나 감정적인 분노도 사람이 조정하는 것이 아니라, 원래 그 자체로 생명력을 가지고 일정한 방향으로 흐르고 있는 것이 아닐까?

사람이 그것을 조정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그 흐름의 물고를 터주는 것일뿐, 원래부터 그것들은 그렇게 방향성을 가지고 한 곳으로 흐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런 생각들이 이 책을 읽으면서 어느 정도 자리잡게 되었다.

 

 

 

이 책은 세월호 사건에 대한 트라우마를 정신분석학 학자가 프로이드적인 입장에서 정리한 것이다.

이 책은 150페이지 정도의 얇은 책이다.

그래서 이 책을 잡았을 때 한 나절이면 읽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세월호와 트라우마 같은 단어들은 익숙한 단어이기에, 또한 평소에 프로이드의 책을 즐겨 읽었기에, 이 정도면 간단히 해치울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예상과 다르게 이 책을 읽는데 무려 나흘이나 걸렸다.

그럼에도 아직 이 책을 다 이해하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군더더기 없는 글이 이런 글이구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저자는 짧은 문장 속에 온갖 심리학 이론과 사회적 현상을 담고 있다.

 

이 책은 세월호 참사가 가져오는 트라우마와 그 트라우마의 속성, 그리고 극복방법에 대해서 이야기 한다.

저자는 트라우마의 원인을 '죽음'과 '성(性)'으로 본다.

사람은 죽음과 성적 현실과 직면할 때 트라우마를 겪는다고 말한다.

트라우마란 죽음과 성을 현실에서 직접적으로 대면했을 때 생긴다.

그러기에 우리는 죽음과 성을 직면하기를 싫어하고 환상을 만들어 내어, 그 환상 속에 살고 있다.

예를 들어 사람이 죽으면 제일 먼저 그 눈을 가린다.

죽음 사람의 눈과 마주치어, 그 죽음과 직면하기를 외면하는 것이다.

대신 장래식과 그 사람에 대한 기억 등을 말로 전달하면서 죽음을 덮는 하나의 환상을 만들어 낸다.

성 역시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모두 성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 성의 실체에 직면했을 때 사람들은 충격을 받는다.

(여기서는 프로이드적이 생각이 많이 반영된듯 하다. 포로이드적 견해는 성의 근원에는 인간의 원초적인 본성, 광기 등이 있고, 그것이 근친상간이나 동성애, 또는 가학적인 모습으로 발현된다. 그리고 그것이 발현되었을 때는 우리는 그것으로 인한 충격을 받는다.)

그 결과 사람들은 언어나 환상을 만들어 내어 그 충격을 완화한다.

 

세월호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세월호라는 거대한 배나 국가에 대해 우리는 환상을 가지고 있었다.

세월호라는 거대한 배는 침몰하지 않을 것이라는 환상, 침몰하더라도 국가나 구조시스템이 무사히 사람들을 건져 낼 것이라는 환상, 우리가 위기에 처하면 국가나 타인이 우리를 도와 줄 거라는 환산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사람들은 직접적으로, 또는 텔레비젼 영상을 통해 거대한 세월호가 침몰하고, 사람들이 죽어가는 것을 그대로 방치하는 것을 보았다.

환상이 아닌 현실과 직면하고 그 현실은 우리에게 트라우마로 남게 된 것이다.

국민적인 집단 트라우마에 빠지게 된 것이다.

일단 트라우마에 빠지게 되면 그 트라우마는 계속해서 사람들을 괴롭힌다.

 

우리는 현실이 착각 위에 딛고 서 있다면, 트라우마적인 순간은 우리가 믿었던 것들이 얼마나 허약한 것인지를 깨닫게 되는 순간이다.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믿었던 것들, 타자에 대한 믿음, 우리가 혼자가 아닐 거라는 믿음, 가족에 대한 믿음, 생명에 대한 믿음, 심지어는 육체에 대한 믿음..., 트라우마는 이 모든 믿음이 단번에 날아가는 순간이며, 믿음 속에 전제된 관계들을 원점으로 돌리는 순간이ㅏㄷ. 가령 부모와 자식 간에 아무 관계가 없다는 것, 그 무기력한 순간에 부모로서, 혹은 가족으로 아무것도 해줄 수 없다는 것, 우리가 혼자일 수밖에 없다는 것, 우리의 육체가 힘없이 사라질 수 있다는 것이 드러나는 순간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만큼 정신에 충격일 수밖에 없다. - P125-6

 

트라우마에 빠져 나오기 위해서는 다시금 환상을 만들어야 한다.

그 환상이란 '언어'이다.

일단 어떠한 사건이 언어로 정의되거나 전달되면 그것은 더 이상 그 사건의 실체가 아니라 하나의 환상이 된다.

그래서 사람들은 수많은 단어들을 만들어 내고, 타인들에게 사건을 전달하면서 트라우마에서 벗어나려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우리는 행위화라는 증상을 통해 자신이라는 주체를 잃어버리기 때문이다.

 

트라우마가 발생하는 것은 라깡적인 용어로 '현실적인 것'에 의해 우리의 현실이, 우리의 심리적 현실이 찢겨 나가는 것을 함축한다. 현실이 찢겨 나갔을 때,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다시 상징적인 것이나 상상적인 것으로, 표상으로 그 찢긴 부분을 꿰맬 수 있을 것이다. 전이신경증적인 증상이 바로 그런 실밥에 해당한다. 강박증자는 강방증적인 증상으로 반응할 것이고, 히스테리 환자는 히스테리 증상으로 반응할 것이다. - P128

 

우리가 실재, 현실적인 것과의 만남을 피할 수 있는 가장 간단한 방법은 바로 말을 하는 것이다. 말을 하는 동안 주체는 그 경험으로부터 운신할 수 있는 작음 틈새를 만들어낼 수 있다. 하지만 트라우마적인 경험이 지닌 본성상, 트라우마가 상징적인 믹서에 의해 분쇄될 수 있는 트라우마가 아니라면 말하기가 작동하지 않을 수도 있다. 트라우마적인 장면에 대해서 더 이상 주체가 말할 수 없을 때, 주체의 말하기는 생략되고 행위가 나타날 수밖에 없다. 말하기에서 튕겨져 나와서 행위로 도약할 수밖에 없다. 이것을 위는 '행위화'라고 부른다. -중략- 행위화는 상징적인 무대를 가로질러 현실적인 것 속에 뛰어드는 것이다. 충동을 만족시키기 위해, 혹은 긴장을 해속하기 위해 모든 상징적인 관계를 단번에 가로질러 맨땅에 해딩하는 것, 그것이 바로 행위화이다. 이러한 행위화 속에 당연히 주체는 사라지게 된다. 주체가 행위를 하겠다고 결정해서 행위가 나타난 것이 아니다. 행위를 하는 순간에는 주체가 더 이상 주체가 아니다. 내가 내가 아니라 '그것'이 되는 순간이다. 마치 내가 충동의 요구에 굴복했을 때처럼 말이다. -P 134

 

결국 극단적인 행위화에 빠지지 않기 위해 사람들은 말과 환상을 통해 현실을 외면하고, 현실과 직면하면서 얻는 증오를 타인에게 돌리게 된다.

비겁한 행동이지만 어쩌면 이것이 살기 위해 몸부림이라는 생각도 든다.

이것이 세월호에 대한 분노가 용암처럼 굽이치며 대상을 향해 흘러가는 이유가 아니었을까?

결국 그 분노를 사람들이 조정한다고 생각했지만, 그 분노는 스스로 방향성을 가지고 흘러가고 있는 것이 아니었을까?

사람들은 살기위해 그 분노에 순응하며 자신을 맡겼던 것이 아닐까?

 

 

이 책을 읽으면서 평범한 사람들이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세계에 대해서 고민하게 되었다.

트라우마를 겪지 않는 많은 사람들은(물론 저자에 의하면 누구든 조금씩의 트라우마는 겪고 있지만...) 세상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있다.

세상은 안전하고, 죽음은 멀리 있고, 불행은 나에게 닥치지 않는다는 믿음.....

저자는 이것을 환상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 환상이 깨어지고 현실에 접할 때 우리는 트라우마를 겪게 된다는 것이다.

결국 평범한 사람들이 믿는 세상이란 결국 환상일 수가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어쩌면 현실과 직면하는 트라우마를 피하기 위해 세상이 말하는 환상 속에 자신을 맡기고 있는지도 모른다.

마치 매트릭스라는 영화의 주인공 레오처럼, 우리는 현실을 접하기 싫어 환상의 세계 속에 안주하려고 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 환상을 깨려는 모든 사람들을 적으로 돌리고, 그 환상 속에서 평안한 잠을 자려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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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 인간
캐롤 K. 트루먼 지음, 신소영 옮김 / 레디셋고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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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젊었을 때 군대 훈련소 시절과 이등병 시절에 두드러기 증상으로 많이 고생을 한 적이 있었다.

갑자기 몸에 열이 오르고, 온 몸이 따끔거리는 증상이었다.

다행히 그 시절 이후 같은 증상으로 고생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올 봄에 다시 이런 증상이 찾아왔다.

운동을 하거나, 긴장을 하면 어김없이 같은 증상이 찾아왔다.

병원에 가니 '콜린성 두드러기'라라며 항히스타민이라는 약제를 처방했지만 거이 효과가 없었다.

이로인해 올 한 해 무척 고생을 했다.

다행히 얼마전부터는 증상이 호전되고 있다.

인터넷에 검색하보니 콜린성 두드러기가 생기는 원인이나 치료법은 여전히 불투명하다고 한다.

그래서 곰곰히 군대시절과 올 해의 상황을 비교를 해 보니 공통점이 하나 있었다.

두 시기 모두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은 시기였다는 것이다.

전부는 아니겠지만 스트레스가 육체의 질병에 커다란 영향이 있음을 깨닫는다.

그 후로 스트레스를 다스리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

 

 

 

이 책은 우리 내부의 감정에 대해서 다루는 책이다.

저자는 많은 사람들이 감정의 부분을 소홀히 다루고 있다고 생각한다.

불쾌한 감정이나 상처받은 감정도 시간이 지나면 잊혀지거나 사라질 것으로 생각하고 참고 인내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저자는 우리 안의 감정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고 말한다.

비록 감정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지만 우리 내부에 숨어서 우리의 건강과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말한다.

저자는 감정을 원인으로, 그리고 질병을 현상으로 본다.

결국 저자는 감정을 잘 다스림을 통해 육체적 질병이 치료되고, 삶의 질도 변화된다고 본다.

 

저자는 우리의 감정도 하나의 에너지로 본다.

이 책에서는 그 증거로 죽음을 앞 둔 두 명의 감정을 주파수로 측정한 결과를 제시하고 있다.

한 명은 신앙을 가진 한 여성으로 그녀는 죽음 앞에서 감사의 기도를 했다.

그리고 그녀가 죽어갈 때 그 근처에는 +500의 강한 주파수가 흘렀다.

반대로 사망직적은 성병환자와 간호사의 부정적인 대화를 측정했을 때는 -500의 강한 주파수가 흘렀다.

결국 인간의 감정은 에너지형태로도 측정될 수 있으며, 그것은 사라지지 않고 인간의 내부에 심겨진다.

저자는 우리의 감정이 세포와 DNA에 새겨지고 그로 인해 우리의 육체와 삶의 방향을 결정하게 된다고 말한다.

 

그런 감정들은 떠나지 않았다. 우리가 산 채로 붇어버렸다고 해서 그것은 죽었다는 것을 뜻하지는 않는다. 그런 감정들은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한, 해결되지 않은 '갈등의 원천'으로 남게 된다. 잠재의식 속에서 그것들은 잊히지 않았거나 앞으로도 잊히지 않을 것이다. 오래전부터 계속 이어져 온 감정들은 우리 몸의 세포에 지속적으로 새겨졌거나 새겨지고 있다. 그것들은 생각의 패턴, 신념, 태도 등을 통치할 뿐 아니라 우리의 감정적인 반응과 삶의 경험까지도 결정한다.(P23)

 

저자는 부정적인 감정이 어떻게 육체와 삶의 영향을 미치는지를 샤론이라는 여성의 이야기를 통해 들려준다.

그녀의 가정은 경제적으로 매우 복잡한 소송에 얽혀 있었고, 스스로 법적인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녀는 자신의 남편이 자신을 도와주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극도의 분노를 퍼부었고, 얼마 후부터 하열 증상이 생겼다.

결국 그녀는 암과 종양이 생겼고, 그것을 제거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

그리고 그 암과 종양을 만들어 낸 것이 자신의 부정적인 감정임을 깨달았다.

 

 

저자는 이런 부정적인 감정이 어머니의 모태에서부터 형성된다고 말한다.

그러기에 어머니의 태교가 중요하며, 특히 출산의 시점이 매우 중요하다고 말한다.

잉태과정이나 출산과정에서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거나 거절의 경험을 당한 아이는 부정적인 감정을 가지게 되고, 그 감정은 계속해서 그 아이의 내부에 남아서 그 아이의 삶의 결정하게 된다고 말한다.

물론 이런 감정은 성장기와 성인기에도 계속 형성된다.

 

그렇다면 이런 부정적인 감정은 영원히 바꿀 수 없는 것일까?

저자는 이런 부정적인 감정을 바꾸기 위한 방법을 제시한다.

저자가 제시하는 방법은 '감정노트'를 쓰는 것이다.

자신의 불쾌한 감정을 느꼈을 때 그것을 외면하지 말고, 그 당시의 감정을 솔직하게 직면하라고 말한다.

자신이 느꼈던 불쾌한 감정, 그리고 그 감정이 생기게 된 원인을 발견하라고 말한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그동안 자신의 감정을 억눌르고 있던 부정적인 생각들을 발견하게 된다.

 

자신의 감정을 발견했다면, 이제 그 감정을 선한 방향으로 다스리라고 말한다.

저자는 우리 안의 부정적인 감정들의 원인을 외부에서 찾지 말고 내부에서 찾으라고 말한다.

우리는 흔히 자신이 화가 나거나 마음이 상하면 그렇게 만든 상대방, 즉 가족이나 직장 상사 등에게서 원인을 찾는다고 말한다.

그러나 저자는 결국 자신의 감정이 생긴 것은 자신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 감정을 다스리지 못하면, 가장 해를 입는 사람도 자신이라로 말한다.

따라서 저자는 자신의 감정의 정체를 알고, 그 감정을 선한 방향으로 다스리라고 말한다.

저자는 말하는 선한 방향은 미움과 불평의 원망의 감정 대신 감사와 사랑의 감정이다.

그리고 우리들의 내부에서는 충분히 그것을 바꿀 힘이 있다고 말한다.  

 

 

 

이 책의 뒷 부분에는 온갖 질병들을 목록을 나열하고, 그 질병들이 어떤 감정과 연관이 있는지를 적어 놓고 있다.

물론 조금 신비적(?)인 측면이 있는 것은 인정해야 할 것 같다.

하지만 감정과 육체의 질병의 연관성을 제시하는 부분은 매우 도움이 되는 것 같다.

참고로 앞에서 언급한 개인적인 질병인 '피부병'의 원인이 되는 감정을 이 책에서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1) 해소되지 않는 짜증과 비판적인 의견

2) 사소한 것에 쓰이는 신경

3) 안정감 결여

4) 조급함, 지루함, 불안정함

 

맞는 부분도 있고, 맞지 않는 부분도 있는 것 같다.

자신의 감정과 질병과의 문제는 개인이 읽고 판단해야 할 몫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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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여자 2015-12-24 19: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고싶어지는 책이네요
 
인간의 품격 - 삶은 성공이 아닌 성장의 이야기다, 빌 게이츠 선정 올해의 추천도서
데이비드 브룩스 지음, 김희정 옮김 / 부키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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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2차 세계대전의 두 영웅을 이야기 꼽으면 맥아더와 아이젠하워를 이야기 한다.

맥아더는 일본과의 태평양 전쟁을 승리로 이끈 인물이고, 아이젠하워는 노르망디 상륙작전으로 독일과의 전쟁을 승리로 이끈 인물이다.

전쟁 후 아이젠하워는 대통령이 되고, 맥아더는 대중적인 인기와는 달리 역사에서 쓸쓸히 사라진다.

과연 그 차이가 무엇이었을까?

 

이 책에는 여러 인물들의 내면의 성장 과정을 다루고 있는데 그 중에 아이젠하워의 이야기도 나온다.

아이젠하워는 어린시절부터 매우 다혈질적이고 화를 참지 못하는 성향을 가졌었다.

그가 어렸을 때 아버지가 형들만 할로윈 파티에 가게 하고 어린 아이젠하워는 가지 못하게 했다.

순간 화가 난 아이젠하워는 문밖으로 나가 나무를 주먹으로 쳐서 손의 피부가 벗겨지고 피범벅이가 되었다.

그로 인해 어린 아이젠하워는 아버지에게 매를 맞고 자기 방에서 울고 있었다.

그 때 그의 어머니가 조용히 그에게 다가와서 성경의 한 구절을 읽어 주었다고 한다.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은 자보다 나으니라"

어머니는 어린 아들 내면에 있는 분노와 증오를 이야기 하고 그 분노와 증오를 다스리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말했다.

그 후 아이젠하워는 평생 자신 안에 있는 분노와 증오를 다스리는 삶을 살았다.

2차세계 대전까지의 대부분의 군생활을 참모로 생활하며 다혈질적이고 권위적인 지휘관들의 뒷처러를 감당했다.(그 중에는 맥아더도 있다.)

그는 자신을 내세우지 않고 묵묵히 맡겨진 일을 감당했으며 결정적인 순간에 2차세계 대전의 전세를 바꿀만한 상륙작전을 성공시켰다.

대통령이 되어서도 그는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자신을 다스리며 맡겨진 일을 감당했다.

이는 맥아더의 자기과시욕이나 독단적인 행동과는 대조되는 모습이었다.

 

 

이 책은 불우한 어린 시절이나 연약한 건강을 이유로 연약한 내면을 가지고 있던 인물들이 어떻게 위대한 인물들이 되었는지를 이야기 하고 있다.

이런 인물들을 통해 저자인 데이비드 브룩스가 이야기 하려는 것은 내면의 성장의 중요성이다.

저자는 현대인들의 외적인 성장만을 중요시하고 내적인 성장을 돌보지 않음을 지적하고 있다.

그는 한 인간의 자아를 '아담1'과 '아담2'로 나눈다.

'아담1'은 우리 밖에 있는 외면적인 자아로서 자신의 성공과 사람들의 인정을 위해 노력한다.

반면 '아담2'는 우리 내면에 있는 자아로서 영적인 부분을 감당한다.

그러나 '아담2'는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아름답고 도덕적인 자아가 아니다.

저자는 칸트의 말을 인용해 이 내면의 자아를 뒤틀린 목재로 본다.

우리 인간에는 자기 중심적이고, 교만과 욕망과 증오와 분노가 담긴 내면의 자아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런 뒤틀린 자아의 연약함을 깨닫고 내면을 성장시키는 사람만이 진정한 성장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부분을 뼈 속까지 성공주의에 물든 현대인의 시각으로 잘못 이해하면, 진정한 외적인 성공을 이루기 위해서는 내면의 성장에 신경을 써야 한다고 이해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저자가 이야기하는 성장은 그런 것이 아니다.

저자는 인간마다 자신이 해야 할 '소명'이 있다고 믿는다.

그리고 그 사명을 통해 진정한 내면의 성장을 이룰 수 있다고 말한다.

그 대표적인 인물로 루즈벨트의 뉴딜정책의 막후 조력자이자, 미국의 복지정책의 어머니로 불리는 '프랜시스 퍼킨스'에 대해서 이야기를 한다.

그녀는 뉴욕화재때 이주 노동자들의 참혹한 죽음을 보고 그것을 사람들의 방관으로 인해 발생한 일이며, 그런 방관자 중에 자신도 한 명임을 깨닫는다.

그리고 자신의 평생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깨닫고, 그 일에 평생을 받친다.

저자는 그것을 '소명'이나 '천직'이라고 부른다.

 

천직은 선택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천직을 고르는게 아니라는 얘기다. 천직은 소명이다. 천직이 그를 부르는 것이다. 천직에 몸담은 사람은 대체로 이 문제에 대해 선택의 여지가 없다고 느낀다. 소명에 따라 천직을 추구하지 않으면 그의 인생은 몰라보게 달라질 것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P58)

이라고 한다.

소명이란 자신이 성공을 위해 그 일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일 자체가 자신을 부르는 것이다.

그리고 그 일을 하면서 진정한 자신의 존재 가치를 깨닫는 것이다.

그렇게 소명으로 불려진 사람은 그 소명을 이루기 위해 자신의 내면을 단련한다.

가치있는 삶을 살기 위해 자신의 욕망과 자아를 억제하는 것이다.

저자는 이럿을 '내적 장악력'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런 내적 장악력이 있는 사람은 다른 사람들의 인정을 받는 커다란 성공에도 흔들리지 않는다.

 

 

이 책에 나오는 대부분의 인물들은 모두 불행한 어린 시절을 살았고, 성인이 되어서도 힘든 삶을 살았으며, 그들의 연약한 성품으로 인해 결혼과 가정 생활에 심각한 어려움을 겪었다.

그러나 그들은 모두 그런 자신의 내면의 연약함을 직시하고 그 연약함과 끊임없이 싸운 인물들이다.

그들은 이 싸움을 통해 내면이 성장하고 인류와 국가에 지대한 공헌을 한 사람들이 되었다.

그들은 성공을 해서도 그 성공을 누리는 것이 아니라, 그 성공에 파뭍혀 자신이 변질되지 않으려고 끊임없이 자신의 내면을 단련했다.

저자는 랜돌프와 러스틴이라는 미국의 유명한 흑인인권운동가들이 자신들의 명성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타락하지 않았는지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 한다.

 

이렇게 대결 국면의 한가운데 있었고, 랜돌프와 러스틴을 비롯한 인권운동가들의 활동이 가장 활발한 순간이었음에도 그들은 자신드의 공격적 행동으로 인해 타락할 위험이 있다는 것을 잊지 않았다.자기들에게 가장 유리한 순간에도 죄를 짓게 될 수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대의가 정당하는 이유로 독선의 죄에 빠질 수 있었고, 대의가 성공적으로 진척됨에 따라 잘난 체하는 죄에 빠질 가능성이 있었다. 또한 그룹과 그룹이 맞서면서 악의적이고 파벌적인 성향을 띠게 될 수 있었고, 추종자들을 동원하기 위한 선전 활동을 벌이면서 지나친 단순화와 교조주의로 흐를 수 있었으며, 그들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모인 군중이 점점 많아짐에 따라 허영심에 빠질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다. 나아가 그들의 가슴은 갈등이 더덕 심각해지고 적들에 대한 증오가 깊어짐에 따라 무감각해질 수 있었고, 권력에 가까워질수록 도덕적으로 타락한 선택을 해야만 할 수도 있었으며, 역사를 변화시키게 될수록 더욱 자만심에 빠질 수도 있었다. (P268)

 

바로 이것이 사방에서 타락한 세상을 보는 사람들이 찾은 반전의 논리이다. 20세기 중반에 이러한 역설적 논리로 가장 이름을 떨친 사람이 라이홀드 리버이다. 랜돌프, 러스틴, 킹 같은 사람들은 니버 식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었으며, 그에게 많은 영향을 받았다. 니버는 인간이 죄를 짓는 본성에서 헤어날 수 없는 존재이며 그 스스로가 짐이자 문제의 원인이라고 주장했다. 인간의 행동은 우리가 이해하기에는 너무나 큰 의미의 틀 안에서 일어난다. 우리는 자신이 한 일에서 비롯되는 기나긴 연쇄적 결과를 이해할 수 없고, 심지어 우리 자신의 충동의 근원마저도 이해할 수 없다. 니버는 현대인의 아인한 양심과 모든 방면에서의 도적적 안주를 경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독자들에게 우리는 스스로 생각하는 것만큰 도덕적이지 않으며, 스스로 판단하는 것만큼 순수한 동기를 지니고 있지 않다고 일깨운다.(P269)

 

결국 저자는 인간 내면의 뒤틀린 본성과 욕망을 깨닫고 그것과 끊임없이 싸우는 사람만이 그것에 잠식되지 않고 진정한 성장을 이룰 수 있다고 말한다.

이 책은 그런 과정들을 다루고 있다.

어린시절의 성적타락과 무질서한 삶에서 자신을 이기고 빈민들의 어머니가 된 도러시데이나, 한쪽 눈과 한쪽 청력을 잃고 한쪽 팔까지 절단한 후 수많은 육체와 정신의 압박을 당하던 사뮤엘 존슨이 그것들을 이기고 위대한 작가가 된 스토리를 읽다보면 저절로 그들의 삶에 경의를 표하게 된다.

그들의 이야기를 읽다보니 안치환이 부른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는 의미가 무엇인지를 진정으로 느끼게 된다.

 

 

현대의 문화는 성공의 문화이다.

누구나 성공을 이야기 하고, 어린 아이때부터 성공을 위한 훈련을 받는다.

그 성공으로 가는 과정에서 우리의 뒤틀린 내면은 더욱 더 뒤틀려 진다.

그리고 성공을 누렸을 때 우리 안에 뒤틀렸던 내면이 터져 나온다.

뒤틀린 자기과시와 약한 자에 대한 무시, 그리고 자신이 가진 것으로 무한한 욕망을 누리려 한다.

그러나 더 무서운 것은 성공하지 못했을 때이다.

자기과시와 폭력으로도 분출되지 못하고 내면에 쌓여만 가는 뒤틀린 내면은......

성공하지 못했다는 자괴감과 함께 타인에 대한 분노가 된다.

그리고 그것은 '광기'가 되어 분출된다.

자신과 타인을 모두 태워버리는 '광기'기 된다.

현대문화가 인간 내면의 자아를 방치하고 그것을 계속해서 뒤틀리게 만드는 상황에서 저자가 이야기 하는 내면의 성장이 너무나 소중하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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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의 해부 - 어떤 사람은 범죄자로 태어난다
에이드리언 레인 지음, 이윤호 옮김 / 흐름출판 / 2015년 8월
평점 :
절판


요사이 활발히 연구되는 폭력과 범죄에 관한 유전학적인 관점의 연장선상에 있는 책으로 보입니다.. 유전으로 폭력을 백퍼센트 설명할 수 없지만 그것의 영향이 있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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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의 신전
황광우 지음 / 생각정원 / 2015년 8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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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톤이라는 거대한 산


내가 처음 플라톤의 [국가]라는 책을 접한 것은 고등학교 방학 때였다.

어린 나이에 만난 [국가]라는 거대한 산이었다.

그곳에 인생과 철학이 있었다.

그 후 내가 읽는 철학서와 사상서를 보는 기준은 플라톤의 [국가]가 되었다.

책을 읽을 때마다 이 책은 어떻게 플라톤의 사상과 다른지, 이 책은 어떤 부분이 플라톤의 국가와 비슷한지를 생각하게 되었다.

그래서 캄파넬라의 [태양의 나라]라는 책을 읽을 때는 반가웠고, 니체의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라는 책을 읽을 때는 불편했다.

나이가 들면서 플라톤의 이상주의가 점점 현실과는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지만 아직까지는 플라톤은 산이었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며 플라톤이라는 거대한 산이 무너지는 것을 보게 되었다.

플라톤 역시 한 명의 인간이었고, 플라톤의 사상은 시대와 플라톤이라는 인간성이 만든 하나의 사상이었다는 것을......



플라톤도 인간이었다.


먼저 이 책은 플라톤의 사상 배경과 그 배경으로 탄생된 [국가]라는 책에 대해서 설명한다.

저자는 플라톤은 당시의 아테네의 정치에 대해 회의를 가지고 있었다고 말한다.

아테네는 페리클레스라는 이상적인 지도자를 통해 민주정치의 전성기를 누렸지만, 그가 죽은 후 정치가들은 백성들의 욕구를 채워주기 위한 선동가에 불가했다.

플라톤은 이런 시대에 철학적인 지식을 가지고 시대와 국가를 이끌 철학적인 정치인의 필요성을 이야기 한다.


플라톤은 소피스트를 사육사에 비유했다. 사육사는 거대하고 힘센 짐승을 다루는 사람이다. 사육사가 짐승을 잘 다룰 수 있는 것은 짐승의 기질과 욕구를 잘 파악하고 잇기 때문이다. 짐승이 어떤 대 난폭하게 되고 어떤 때 유순하게 되는지 그 성질을 아는 사육사는 사나운 짐승을 자신의 뜻대로 잘 부린다는 것이다. 아테네의 청년들에게 연설을 가르치는 소피스트의 지혜는 고작해야 대중의 의견 이외에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하낟. 또 플라토은 아테네의 정치가를 사육사에 비유하면서 정치인이 대중에 대한 아첨꾼으로 전락하고 말았다고 비판했다. (P56)

결국 플라톤은 자신의 철인 정치의 근거를 세우기 위해 [국가]라는 책을 쓰게 된다.

플라톤은 [국가]에서 영혼에는 이성과 기개와 욕구가 있듯이, 국가 안에서 이성적인 철학자와, 기개가 있는 전사와 욕구를 충족시키는 장인이나 농민이 있다고 보았다.

그리고 이성이 몸을 통치하듯, 철학자가 국가를 통치해야 한다고 보았다.

그리고 그 철학자의 이성은 이데아, 곧 신의 세계로 부터 나오는 것이다.


이런 플라톤의 사상을 가장 잘 나타내 주는 것이 [국가]에 나오는 '동굴의 비유'이다.

저자는 이 동굴의 비유를 감금된 단계, 풀러남의 단계, 동굴에서 지상으로 올라가는 단계, 내려가는 단계의 4단계로 나누어 쉽게 설명한다.

철학적 지식을 깨달은 철학자는 이제 다시금 동굴로 내려가 동굴에 묶여 있는 일반 사람들을 도와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아마 이것이 플라톤 자신이 가졌던 사명감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런 사명감에 가장 걸림돌이 되는 대상이 '호메로스'였다.



인간적인 신을 이야기한 호메로스


저자는 호메로스의 [일리아드]와 [오디세이]에 나오는 신은 인간의 내면의 또 다른 목소리라고 말한다.


호메로스의 신은 인간 위에 군림하는 절대적 지배자가 아니었다. "당신이나 파리스의 잠 시중을 들어라. 나는 그렇게 못 하겠다." 호메로스의 신은 인간의 내면에서 울려나오는 자신의 의지에 반대되는 또 다른 음성이 아닐까? (P126)

저자는 그리스인들은 신을 통해 이해할 수 없는 인간의 심리와 자연현상, 역사 등을 이해했다고 말한다.


신은 인간의 동반자이다. 신은 인간을 통해 인간사에 개입한다. 인간은 신의 뜻을 통해 인간의 의지로 해결되지 않는 삶의 오묘를 이해한다. 고대인들은 신을 통해 인간 심리의 복잡성을 풀이했으며, 역사의 뒤틀림을 이해했다. (P139)

그러기에 호메로스의 신은 인간적이다.

올림푸스의 신들은 변덕스럽고, 이기적이고, 정욕적이다.

그들은 편을 나누어 사람을 도와 주준다.

자신에게 많은 재물을 바치는 사람을 도와 주고, 자신에게 재물을 바치지 않는 사람을 저주한다.

[일리아드]는 신들이 편을 나누어 인간을 도우며 벌인 전쟁이야기 이고, ]오딧세이]는 신에게 재물을 바치지 않아 20년 동안 방황한 오딧세이의 이야기이다.



플라톤이 호메로스를 싫어했던 이유


절대적인 정의를 추구하고, 그 정의가 신의 존재와 그의 세계로부터 유례했다고 믿는 플라톤에게 변덕스러운 신의 존재를 이야기하는 호메로스의 사상은 어떤 느낌이었을까?

그러기에 플라톤은 그의 저서 [국가]에서 '시인추방론'을 이야기 한다.


저자는 더 나아가 플라톤이 호메로스를 싫어한 이유가 죽음을 보는 차이에서 비롯되었다고 본다.

호메로스에게 있어서 인간은 필멸의 존재이다.

비록 신화를 통해 죽음을 하데스의 지배를 받는 것처럼 묘사하고 있지만, 호메로스는 죽음을 이생과 분리되는 어둠으로 표현하고 있다.

반면 플라톤에게 있어서 죽음은 신에게도 돌아가는 과정이다.

그리고 그 돌아가는 과정이 올바르기 위해서는 이생의 삶도 올바라야 한다.

결국 플라톤에게 있어서 죽음과 신의 존재는 이 땅에서의 도덕적인 삶을 유지하는 근거이다.

그러기에 그 근거를 허무는 호메로스의 이야기와 그리스 신화에 분노하고 배척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저자는 이런 관점이 놀랍다.

이 책을 읽고 인터넷을 통하여 서평들과 평가에 관한 글들을 찾아보았다.

저자의 관점을 동의하는 글과 동의하지 않고 비판하는 글들이 있었다.

그러나 나는 이 책의 관점이 맞고, 틀리고 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한국인이 자신의 관점으로 서양철학의 뿌리인 플라톤과 그리스 사상을 논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동안 내가 읽은 한국 철학자들의 책은 보통 서양철학자들의 책이나 사상을 번역하거나 주석하는 정도였다.

그것도 대부분 비슷한 시각으로......

서양 사상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주장하는 것을 넘지 않아야 할 선으로 여기고, 그것을 넘지 않기 위해 조심하는 모습들이 보였다.

당연히 학자의 무거움일 것이다.

그러나 누군가는 그 무거움을 넘어 자유롭게 그 사상을 논할 수 있어야 한다고 보았다.


저자의 글은 자유롭다.

때로는 인문학 글에서 볼 수 없는 호방함과 자유로움이 느껴진다.

어떤 대목에서는 라톤이 호메로스를 인간적으로 시기해 그를 비판했다고 자유롭게 말을 한다.

아마 플라톤을 공부하는 사람들이 들으면 무척 불편했을 글이었을 것이다.

또한 호메로스의 이야기의 주인공들의 심리를 마음껏 해석하고 비판한다.

플라톤을 인간으로 보고, 호메로스도 인간으로 본 것이다.

그렇다!

우리는 모두 인간이다.

인간이기에 틀릴 수도 있고, 맞을 수도 있다.

그렇게 보고, 그렇게 해석하는 것이 자유로운 것이라고 생각한다.

자유로운 사상을 만날 수 있음에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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