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의 두 얼굴 - 사랑하지만 상처도 주고받는 나와 가족의 심리테라피
최광현 지음 / 부키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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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오래된 영화이지만, 가족 안의 어머니와 아들의 지나친 집착과 사랑을 다룬 [올가미]라는 영화가 있다. 지금은 한류스타로 '지우히메'로 불리는 최지우가 신인 때 연기한 작품이다. 이 영화에서 주인공 수진은 귀공자 타입의 멋진 남성인 동우와 결혼을 한다. 동우는 홀어머니 밑에서 자랐지만, 시어머니 역시 수진에게 매우 따스하게 대해 준다. 다만 너무나 친근한 어머니와 아들 사이가 조금 마음에 걸린다. 그런데 결혼 얼마 후 충격적인 장면을 목격한다. 목욕탕에서 시어머니가 벌거벗은 남편을 목욕을 시켜 주는 것이다. 이를 이상하게 여겨서 남편에게 따지지만 남편은 엄마와 아들 사이에 뭐가 문제냐며 오히려 따지는 수진을 이상하게 여긴다. 영화는 점점 시어머니의 아들에 대한 사랑의 집착이 드러나고, 결국 극단적인 파국의 상황으로 결말이 난다. 오래전에 보았지만 시어머니가 수진에게 했던 충격적인 말이 아직도 기억에 남아 있다.

"넌 내 아들에게 사 준 장난감에 불과해!"

 

물론 영화의 스토리는 매우 극단적인 상황을 설정했지만, 우리 사회에는 여전히 이렇게 부모와 자식 간에 미분화된 상태인 경우가 많다. 지나치게 아들의 삶을 간섭하는 어머니, 딸의 모든 것을 대신해 주는 아버지... 그로 인해 자녀가 결혼을 해서 건강한 가정을 이루는 것에 어려움을 느끼는 경우가 많이 있다.

[가족의 두 얼굴]이란 책에서 저자인 최광현 교수는 이런 한국 가정들의 어두운 면을 예리하게 드러내고 있다. 저자는 이 책에서 세계의 유명한 가족 상담 학자들의 이론을 인용하기도 하지만, 대체적으로는 자신이 상담을 한 한국 가정의 사례별로 독자가 이해하기 쉽게 한국 가정의 문제점들을 드러내고 있다. 특히 저자가 중점을 두고 있는 부분은 가족의 건강한 자아분화이다. 자아분화라 아이가 커가면서 부모에게서 감정적으로 독립을 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상태가 되었을 때 아이가 책임감 있게 잘 자라서, 건강한 가정을 이룰 수가 있다고 말한다. 반대로 이런 감정분화가 되지 않았을 때는 가정적으로나 개인적으로 불행한 삶을 살 수 있다고 말한다.

"가족 상담의 선구적 학자인 머레이 보웬(Murray Bowen)은 정신분열을 유발하는 가족은 가족 자아(undirrerentiated family ego)가 미분화 상태에 놓여 있다고 보았다. 이런 상태의 가족은 개별 구성원들의 자아가 서로 건강하게 분리되어 있지 못하고, 감정적으로 뒤엉켜 있으며, 서로를 구속하는 애증관계에 얽혀 있다, 가족 자아가 미분화된 가족은 현실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일종의 가족 최면(family trance)에 빠진다." P 55

저자는 개인들이 가지고 있는 문제, 또는 부부 사이에 가지고 있는 문제, 부모와 자녀가 가지고 있는 문제 등은 원래의 가정에서 원인이 있다고 말한다. 어린 시절 부모와의 관계에서 상처를 받았던 아이는 커서도 이런 행동을 그대로 반복을 하는 경우가 있다. 자신이 미워했던 아버지와 어머니의 행동을 자신이 부모가 되어서 자녀에게 그대로 반복하는 것이다. 저자는 이런 증상을 어린 시절에 부정적인 패턴이 고착화되어 이를 반복하려는 성향이라고 말한다. 이로 인해 어린 시절의 상처가 계속해서 대를 이어지는 경우가 있다.

저자는 이를 끊기 위해서는 자신의 감정을 정확히 직면하고 이를 끊어버리기 위해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즉 자신의 감정의 실체를 보는 것이다. 자신이 왜 배우자에게 화를 내고 있는지, 자녀에게 왜 분노하고 있는지를 보는 것이다. 단순히 배우자나 아이의 잘못 때문인지, 아니면 내 안에 있는 어린 시절의 상처를 가족에게 배출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를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원래 가족에서 받았던 상처를 지금의 가족에게로 가져오는 일을 끊어야 한다. 저자는 이것을 자아분화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자아분화란 정서적으로 부모에게서 독립하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이런 자아분화가 건강할수록 건강한 가족을 이룰 수 있다고 말한다.

"자아분화가 발달한 사람은 감정을 이성적으로 잘 통제하고 조절한다. 가족은 감정의 덩어리다. 가족 구성원들은 가족 밖에서보다 가족 안에서 더 감정 반사적으로 행동한다. 자신도 모르게 아이에게 화를 내고, 이유도 없이 아내와 남편에게 분노를 느끼는 경우가 생기는 것도 그 때문이다. 가정을 떠나 직장이나 학교 등에서 만나는 인간관계라면 설령 분노의 감정을 느껴도 직접적으로 표출하지 못한다. 그런 이유로 살아가면서 상처를 가장 많이 받는 곳 또한 가정이다. 사랑의 둥지인 가정 안에서 큰 상처를 입는다. 가족 간 감정 반사적인 행동이 자주 일어나기에 이런 감정으로부터 자신을 분리시키는 것이 필요하다. " P 247

 

세상이 점점 각박해지고, 흉폭해질수록 우리가 마지막 안식처는 가정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 가정이 점점 안식처의 역할을 감당하지 못하는 부분을 보게 된다. 그로 인해 점점 세상의 벼랑으로 몰리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우리가 세상에서 상처 입고, 찢기었을 때 마지막으로 가서 쉬고 안식을 누릴 곳은 가정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으며 다시금 가정의 중요성을 생각해 보게 된다. 그리고 그 가정을 행복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결국 나 자신의 내면이 변화되어야 함을 깨닫는다. 어린 시절의 상처와 분노로부터 자유롭지 못한다면, 상처와 분노를 그대로 지금의 가정 안으로 끌고 들어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가정과 개인의 내면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기회를 주는 아주 좋은 책이다. 이 책으로 자신의 가정과 내면의 모습을 본 후, 결단은 개인의 몫일 것이다. 어린 시절의 상처를 끊고 가정을 건강하게 만드는 것은 부단한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마지막 글에서 가정은 노력한 만큼 행복해질 수 있다고 말한다. 현대의 상처 입은 가정들에게 권하고 싶은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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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움직이는 수학개념 100
라파엘 로젠 지음, 김성훈 옮김 / 반니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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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서부터 문학과 철학에 관심을 가지게 되다 보니, 자연스럽게 과학이나 수학을 등한시하게 되었다. 그래도 수학에는 조금 흥미를 가져서 수학문제를 푸는 것을 좋아했는데, 학교를 졸업하고는 수학과도 거리를 두게 되었다. 반니 출판사에서 출간한 [세상을 움직이는 수학 개념 100]이란 책은 내가 고등학교 졸업 후 처음으로 접하는 수학 책이다. 

 

이 책을 읽게 된 계기는 얼마 전 반니에서 출간된 [일상적이지만 절대적인 뇌과학지식 50]을 읽은 경험 때문이다. 이 책은 어려운 뇌과학의 이론을 일상에서의 적용으로 쉽게 설명하고 있다. 과학에 무지한 사람도 꼭 알아야 할 부분을 쉽게 설명하고 있는 책이다. 매우 신선한 접근이라 생각해 수학에 관한 책도 읽게 되었다. 다행스럽게도 이 책에는 어려운 수학 공식은 없다. 다만 일상적인 삶에서 어떻게 수학이 적용되고 있는지를 사례별로 쉽게 설명하고 있다.

먼저 이 책은 우리 일상에서 쉽게 접하는 건물이나 도형 등에 숨겨져 있는 수학의 개념들을 이야기한다. 눈송이에서 코희 곡선의 개념을 이야기하고, 컨베이어 벨트에서 뫼비우스의 띠의 개념을 이야기하며, 종이접기에서 기하학 개념을 이야기한다.

 

개인적으로 이 책에서 특히 관심을 가진 부분은 2장의 '행동'이란 부분이다. 오래전에 우리나라에서 마이클 샌더슨의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책으로도 잘 알려진, 존 롤스의 [사회정의론]을 읽은 적이 있었다. 젊은 날에 사회 정의의 개념을 알기 위한 열정으로 읽었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 등장하는 수많은 수학 개념들로 인해 읽다 포기하기를 반복했었다. 그중에 가장 흥미롭게 읽었던 부분이 바로 '파이의 법칙'이라는 것이다. 경제 정의란 결국 분배의 문제인데, 이 분배의 원리를 파이를 잘라서 나누어주는 개념으로 설명하는 것이었다. 이 분배의 핵심은 구도 자신이 손해 보지 않았다는 마음이 들도록 이상적으로 분배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존 롤즈는 이것을 해결하기 위해 '무지의 베일'이라는 개념을 이용한다. 즉 분배자가 개개인의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고, 공평하게 분배하는 것이다.

 

 

이 책에서도 '케이크 자르는 이상적인 방법'이라는 제목으로 이 부분을 이야기한다.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케이크 분배는 조금 더 복잡한 조건이 있다. 여기서의 케이크는 여러 맛이 섞여 있는 케이크다. 따라서 그 서로의 선호도까지 고려해서 이상적으로 분배해야 한다는 조건이다. 이런 이상적인 분배를 위해 '비가산적 효용'이라는 개념을 적용한다. 사실 아직 이 개념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기에 이 책의 내용을 그대로 인용해 본다.


 

공평한 분배 해법에서는 가산적 효용을 가정하고 있다. 약간의 크림을 좋아하는 사람은 많은 양의 크림도 좋아한다고 가정한다는 것이다. 많을수록 좋다는 얘기다. 반대로 내가 크림을 먹어서 얻는 즐거움이 가산적이지 않을 때, 즉 비가산적 효용일 때는 달달한 음식을 어느 정도 먹고 나면 단것을 먹어도 더는 큰 만족을 얻을 수 없다. 연구자들은 비가산적 효용을 동반하는 상황에서는 공평한 분할 해법이 무용지물이 되고 만다는 것을 입증했다. (P126)


 

 

또 하나의 관심을 끈 부분은 존 내시의 '게임이론'이다. 오래전 존 내시의 삶을 다룬 영화 [뷰티플 마인드]를 매우 관심이 있게 보았고, 그의 '게임이론'과 윤리학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죄수의 딜레마'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 책에서는 그 부분도 설명하고 있다. 이 부분도 아직 확실한 이해가 부족하기에 이 책의 내용을 그대로 인용해 본다.


 

게임이론의 핵심 요소에는 내시 자신의 이름이 들어가 있다. 내시균형이라 불리는 이 용어는 각각의 참가자가 게임에 참가하는 모든 사람의 전략을 알고 있다 하더라도 자신의 전략을 바꾸지 않기로 결정하는 게임을 기술하는 용어이다. 바꿔 말하면, 전략을 바꾸어 이득 볼 사람이 아무도 없는 상태에 있는 게임을 내시 균형 상태에 있다고 말한다.(P137)


 

이 책을 통해 우리 주변에 보이는 사물뿐만 아니라, 경제나 도덕적인 부분에서도 수학과 얼마나 밀접한 관련이 있는지를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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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적이지만 절대적인 뇌과학지식 50 - 100년 동안 인류가 뇌에 관해 밝혀온 모든 것
모헤브 코스탄디 지음, 박인용 옮김, 정용 감수 / 반니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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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요즘 들어 인간의 뇌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몇 가지 사건 때문이다. 첫 번째는 주변의 노인분들의 변화이다. 오랜 시절 옆에서 보았던 넓고 예리한 시각을 가지고 있던 분들이, 어느 순간부터 편협하고 좁은 생각을 하게 되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 심지어는 작은 일에도 화를 내고, 기억을 잃어가다가 결국에는 치매에 이르는 경우도 보게 된다. 평생을 노력해서 얻은 지식과 인격 등이 단순히 뇌의 노화로 인해 사라진다는 것이 얼마나 서글픈 것인지를 요즘 새삼 느끼고 있다.

두 번째는 아이의 탄생의 과정에서 육아의 책들을 읽다 보니 뇌의 성장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유아기 때의 엄마나 아빠와의 관계에 아이의 전두엽 발전에 매우 밀접한 영향을 미치며, 이 전두엽이 충동적인 행동의 절제나 합리적인 판단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또한 전두엽을 통해 '옥시토닌'이라는 호르몬이 발생하는데 이를 통해 사람과의 유대관계가 형성된다. 그래서 대부분 사이코패스 같은 경우 전두엽이 다른 사람보다 덜 발달되는 것이 관측되는 것이다. 아이의 유아기 때의 양육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새삼 느끼고 있다.

세 번째는 인문학 서적을 읽으면서 사람의 인지 능력에 대한 사색을 하게 되었다. 현상학과 해석학과 관련된 책들을 읽으며 결국 사람의 외부 세계를 시각이나 청각 등을 통해 인식해 가는 과정에서 자신만의 의식으로 기억하고 해석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사람의 뇌에 어떤 인식 작용이 일어나는 것일까라는 궁금증이 들게 되었다.

이런 궁금증을 가지고 반니 출판사에서 나온 [일사적이지만 절대적인 뇌과학지식 50]이라는 책을 읽게 되었다. 부제는 '100년 동안 인류가 뇌에 밝혀온 모든 것'이라는 제목이었다. 제목만으로 조금 어렵고 딱딱하게 느껴지는 책이지만, 일단 책을 열게 되면 50개의 이론들이 매우 일목요연하게 언어와 그림 등으로 설명되어 있다. 또한 이런 이론들도 일반인들이 알아야 할 기본적인 부분만 쉽게 설명되어 있다.

 

 

 

50개의 이론들을 여기서 모두 설명하기는 불가능하기에 앞에서 내가 가지고 있던 몇 가지 궁금증에 몇 가지만을 나열해보도록 하겠다.

먼저는 일단의 뇌의 손상과 퇴화 부분들이다. 뇌가 손상이 입거나 나이가 들어 세포가 죽으면 뇌의 기능이 저하된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예가 '니어스 게이지'라는 사람의 뇌에 대한 연구이다. 게이지는 성실한 철도노동자였는데, 어느 날 폭발 사고로 1미터짜리 쇠막대가 머리를 관통하고 날아갔다. 다행히 게이지는 살아남고, 일을 하는데도 문제가 없었다. 그런데 성격이 변했다는 것이다. 성실한 사람이 폭력적이고 거친 사람이 되었다는 것이다. 후에 그가 죽은 후 그의 뇌를 연구하니 좌뇌의 전두엽 피질이 상당 부분 훼손되었다는 것이 밝혀졌다.(P31) 결국 뇌의 손상이 사람의 성격에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진화된 근대인의 정신과 더불어 출현한 집행기능은 전전두피질에 결부되어 있다. 전전두피질은 인간과 가장 가까운 유인원 조상들보다 훨씬 고도로 발달한 뇌 부위다. 여기서 이뤄지는 과정들은 목표 지향적인 행동을 끌어내는 한편, 낯선 상황에 대처하는 데도 중요하다. 알츠하이머병, ADHD, 자폐증, 우울증, 조현병 등 광범위한 정신질환이나 신경 질환이 이 기능의 손상과 관계있다고 생각된다. (P96)

 

언어에 관련된 연구로는 브로카와 베르니케의 연구가 소개된다. 이들은 언어 장애가 온 환자의 뇌를 연구한 결과(물론 사후에) 이들의 뇌의 일정한 부분이 손상된 것을 밝혀 내었다. 그래서 연구자의 이름을 따라서 각자가 발견한 뇌의 부분을 브로카 영역과 베르니케 영역이라고 부른다. 이 부분이 뇌의 언어 부분을 감당하고, 이것이 손상되었을 경우 언어장애가 온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최근의 뇌 연구는 이보다 더 복잡하고 다층적이라고 말한다. 단순히 한 부분이 한 가지 기능을 담당하는 것이 아니라, 뇌의 모든 부분이 복합적으로 연결되어 있어서, 단순히 어느 한 부분의 문제로 언어장애가 오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다음은 뇌의 성장과정이다. 이 과정에서 유명한 실험이 '마시멜로 테스트'라는 실험이다. 아이들에게 자신들이 좋아하는 마시멜로나 과자를 앞에 놓고 기다리는 훈련을 시켰다는 것이다. 50명의 아이 중 3분의 1이 성공을 했고, 이 아이들을 생애를 추적한 결과 충동을 억제한 아이들이 학업성취도나 자존감, 스트레스 극복에 우월성을 보였다는 것이다.

결국 뇌는 어린 시절에 형성되고, 그렇게 형성된 뇌가 아이의 전 생애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이런 뇌의 성장을 방해하는 것이 바로 스트레스이다. 특히 어린 시절의 뇌의 스트레스는 치명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유아기와 사춘기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면 뇌와 행동 태도에 부정적인 영향이 오래 지속된다. 생애 초기의 생활 스트레스는 뇌 회로의 발달을 방해하고 정신적인 기능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쳐, 생애 후기에 정신질환을 일으킬 위험성을 높인다. 하지만 부정적인 영향 일부는 돌이킬 수 있으며, 이 점은 자녀 양육과 사회 정책에 중요한 의미가 있다.
스트레스나 위협적인 상황에 대응하는 능력은 생존에 꼭 필요하다. 그러나 동물과 사람을 대상으로 이뤄진 수많은 연구를 통해, 스트레스에 오래 노출되면 뇌에 유독한 효과가 미친다고 알려졌다. 뇌는 유아기, 사춘기, 노년기에 특히 스트레스에 민감하다. 보통 이 기간에 극적인 변화를 겪기 때문이다. 스트레스가 영향을 미치는 정도는 스트레스가 가해지는 시점과 지속 시간에 따라 달라진다.
특히 유아기와 사춘기에 스트레스를 오래 받으면 뇌 회로의 발달에 지장이 생기고, 행동에도 해로운 영향이 오래 지속된다. 연구에 따라면 방치, 아동학대, 궁핍 등과 같이 스트레스가 많은 상황이 거듭되면 뇌 성장이 저해되고, 이후 정신적 기능에 부정적 영향이 지속될 뿐 아니라 정신건강상 위험이 증대될 수도 있다. (P125)



마지막으로 인지 기능의 문제이다. 인간의 뇌는 어떤 기억들을 저장하고, 후에 재생한다. 그런데 이 책은 인간이 기억을 저장하고 기억하는 과정에서 기억은 변한다고 말하고 있다.

바틀릿은 실험에 이 놀이를 이용했다. 사람들에게 귀신 전쟁이라는 미국 원주민의 옛이야기를 읽게 한 뒤 여러 차계에 걸쳐, 때로는 1년 뒤에 그 이야기를 회상하게 했다. 사람들은 회상할 때마다 반드시 이야기 줄거리를 바꿔 말한다는 것이 발견되었다. 자기가 부적절함다고 생각하는 부분을 빠뜨리는가 하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으로 초점을 옮겨 부각하고, 의미가 닿지 않는 부분은 스스로 조리 있게 바꾸었다.
바틀릿에 따르면, 그들이 이야기를 바꾸는 것은 자신이 이전부터 가지고 있었던 지식의 틀에 이야기를 맞추기 위해서이다. 달리 말하면 회상을 하는 과정은 우리 자신의 기대와 선입견에 물들어, 기억을 미묘하게 바꿔버린다. 바틀릿은 이제 고전이 된 저서 [회상]에서 이 결과를 발표했다. 그는 다음과 같이 결론을 내렸다.
"어떤 사건에 대한 우리의 기억은 혼합된 정보를 반영한다. 사건이 일어날 당시에 부호화된 것에 지식, 기대, 믿음, 사고방식을 바탕으로 추론이 덧붙여진다.(P74-5)"



최근의 연구에서는 사람이 자는 동안 기억이 축적되고 재생되는데 이 과정에서 왜곡이 일어난다고 한다. 개인적으로는 내 기억이 백 퍼센트 진실이라는 것을 맹신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기억이 백 퍼센트 맞는다고 이것과 다르게 이야기하는 사람들의 의견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인간의 기억은 결국 왜곡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간과하기 때문이 아닐까?

사실 그동안 뇌과학이나 호르몬 연구에 대한 이론들을 별로 신뢰하지 않았었다. 이런 연구들이 개인행동의 책임을 유전적 여향이나 호르몬 영향으로 돌려서 회피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또한 개인이 평생 노력하고 닦은 인간의 성품이나 인격 등이 결국의 뇌의 세포나 호르몬의 작은 변화 때문에 바뀔 수 있다고 한다면 얼마나 서글픈가? 그러나 이 또한 외면할 수 없는 진실일 것이다. 문제는 자신의 뇌나 호르몬의 결핍된 부분을 인간의 노력으로 어느 정도 회복할 수 있다는 믿음을 것이다. 마치 가난한 환경에서 자란 아이가 이를 알고 더 노력해서 가난을 극복한 것처럼, 자신의 약한 부분을 알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노력한다면 오히려 더 좋은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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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란 무엇인가 - 독점계약 번역 개정판
E.H. 카 지음, 김택현 옮김 / 까치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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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역사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어렸을 때 읽은 '삼국지'의 영향이 컸다. 어릴 적 책을 좋아하시던 외 할아버지가 읽다가 놓고 가신 삼국지 전집 10권을 줄거리와 인물들을 다 외울 만큼 반복해서 읽었던 기억이 난다. 어린 마음에 영웅들의 허망한 죽음과 각 나라의 흥망성쇠를 보면서 나름 역사 사적 의문을 던지곤 했다. '왜 유비는 저렇게 허망하게 죽었을까?' '그때 제갈공명의 조언을 들었으면 어땠을까?' '그때 바람이 불지 않았으면 전쟁의 결과가 바뀌었을까?'와 같은 생각이었다. 청소년이 되면서 역사소설에 관심을 가지며 월탄 박종화나 이병주 작가의 역사소설 등을 읽기 시작했다.

대학에 온 후로는 철학과 역사에 관심을 가지며 역사 속에 흐르는 거대한 법칙에 대해 알려고 했다. 헤겔이 말하는 '세계 이성'이나  칸트가 말하는 '이성의 간계' 등이 실제로 존재하며 이것들이 역사를 어떠한 목적을 향해 흘러가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것을 깨달으면 세상과 개인의 삶을 좀 더 지혜롭게 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몇 년 전 고 노무현 대통령과 부림사건을 다룬 [변호사]라는 영화를 재미있게 보았다. 그 영화 속에서 이적단체를 구성한 것으로 누명을 쓴 피고인의 죄명 중 하나가 E.H. 카의 [역사란 무엇인가]를 읽은 것이었다. 그때 내가 찾는 법칙들이 어쩌면 이 책에 들어 있을지도 모르고, 군사독재 정권이나 권력자들은 그 법칙을 대중들이 아는 것을 싫어해서 이 책을 금서로 정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역사란 무엇인가]를 읽고 나서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이 책에는 그런 역사의 법칙이나 역사를 움직이는 보이지 않는 손, 역사가 흘러가는 목적 등에 대한 이야기가 없다. 오히려 이 책은 그런 것들을 추구하는 것을 역사와는 다른 것으로 본다. 이 책은 너무나 냉철하게 역사가와 역사가 직면하고 있는 현실을 대면하게 해 준다. 그럼에도 그 역사를 통해 우리가 교훈을 찾고, 세상과 삶이 변화될 수 있다는 희망을 잃지 않게 해 준다.

이 책은 먼저 근대까지 가지고 있었던 아래와 같은 역사에 대한 환상을 제거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첫 번째는 '역사는 과거의 사건들을 사실 그대로 재현할 수 있다'는 환상이다. 우리는 흔히 과거의 사실들을 그대로 글로 옮기는 것을 역사라고 생각하고, 다른 방식으로 역사를 기록하는 것을 '역사왜곡'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카는 마치 시장 자판대의 놓여 있는 생선을 고르는 사람처럼, 역사가는 수많은 사실들 중에서 자신의 필요에 따라서 역사적 사실을 선택하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과거에는 수많은 사건들이 있었고, 앞으로도 수많은 사건들이 있을 것이다. 그 사건들이 모두 역사일 수는 없다. 역사가가 그 사건을 선택해서 그것에 의미를 부여할 때 그것이 비로소 역사가 되는 것이라고 카는 말한다.

두 번째는 '역사가는 자신이 속한 시대와 사회와 동떨어져서 역사를 바라볼 수 있다'는 환상이다. 우리는 역사가란 자신의 속한 시대와 사회에 관계없이 객관적으로 역사를 바라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카는 개인은 사회 속에 속해 있기에 그 사회의 생각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다고 말한다. 결국 역사가는 자신이 속한 시대와 사회의 관점으로 과거의 역사를 조망하는 것이다.

세 번째 '역사에는 일정한 법칙이 있다'는 환상이다. 구약성경의 히브리 역사관과 중세의 기독교 역사관, 그리고 근대의 헤겔과 칸트에 이르기까지 역사에는 신적인 섭리가 있고, 그 섭리가 역사를 일정한 목적으로 이끌고 간다고 믿었다. 헤겔은 그것을 '세계 이성'이라고 말했고, 칸트는 '이성의 간계'라고 말했다. 아담 스미스 역시 '보이지 않는 손'을 이야기하고, 마르크스 역시 '역사의 발전 단계'를 이야기한다. 그러나 카는 이런 신적인 법칙에 기대어 역사를 조망하는 것은 역사가로서 자격이 없다고 말한다. 카는 역사를 탐구하는 것을 조커가 없이 포커게임을 하는 것으로 비유한다. 신적인 섭리에 기대한 역사를 바라보는 것이 아닌, 이성의 사고로 역사를 바라봐야 한다고 말한다.

이 책에서 카의 관점을 따라가다 보면 결국 역사는 보는 사람의 관점에 따라 이리저리 바뀔 수 있는 것이 아니냐는 생각이 들게 된다. 결국 중국의 동북공정이나 아베의 역사왜곡, 박근혜 정부의 국정교과서도 모두 자신의 관점으로 역사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냐는 생각이 들면서, 역사의 진리성에 대한 회의를 품게 된다. 그런데 여기서 입시교육 때나 평상시 몇 번이나 반복해서 들었던 카의 유명한 역사에 대한 명제가 나온다.

따라서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나의 첫 번째 대답은, 역사란 역사가와 그의 사실들의 끊임없는 상호작용 과정, 현재와 과거 사이의 끊임없는 대화라는 것이다. (P46)


카는 역사가란 과거와 대화하면서 과거의 사실들을 현시대를 위하여 선택하여 역사적인 해석을 하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이 해석의 과정이란 끊임없이 '왜?'라는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왜 그 사건이 일어났을까? 왜 그 시대는 그렇게 허망하게 종말을 맞이했을까? 왜 그 시대의 사람들은 그렇게 고통을 당했을까? 카는 이 '왜?'라는 질문의 대답을 앞에서 이야기 한 신적인 법칙이나 우연에서 찾아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역사가가 '왜?'라는 질문의 대답을 찾는 것은 그 대답을 통해 현 사회의 발전을 주기 위해서이다. 예를 들어 스미스라는 사람이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스미스의 사고의 원인은 다양한다. 우연히 그 시간 그 장소에 간 것, 또는 교통 체계의 문제, 운전자의 미숙, 차량의 결합, 어쩌면 우연이나 신적인 계획 등이 사고의 원인일 수 있다. 그러나 사고조사자들은 그 많은 요소 중에서 교통사고와 사망자를 줄일 수 있는 원인을 이성적으로 찾아서 그것을 제시하는 것이다. 카는 역사가도 마찬가지라고 말한다. 역사의 수많은 '왜?'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 중에서 이 시대의 발전을 위해서 필요한 대답을 찾는 것이다. 이것이 카가 말하는 역사가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말하는 이유이다.

결국 우리는 과거의 사건들을 선택해서 현시대와 사회의 관점으로 역사를 해석하지만, 그 해석은 시대와 사회의 발전을 위한 유용한 해석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카는 당시 역사의 발전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이 팽만한 시기에도 역사의 발전에 대한 희망을 잃지 않았다. 그는 역사가가 이성을 통해 역사의 교훈들을 발견해 나간다면, 결국 점진적으로나 사회가 발전할 것임을 믿었고, 그것을 역사가가 사명으로 보았다. 그러기에 그는 당시 시대의 보수적인 역사관을 비판한다.

그러나 나를 불안하게 만드는 것은 영어 사용권 세계의 지식인들과 정치사상가들 사이에 이성에 대한 신념이 약화되어가고 있다는 사실이 아니라, 끊임없이 움직이는 세계에 대한 그 충만한 감각이 상실되어 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 중략- 정치 및 경제 전문가들이 처방을 내릴 대, 그들이 우리에게 줄 수 있는 것이란 급진적이고 원대한 이념은 믿지 말라는 훈계, 혁명의 냄새가 나는 것은 모조리 피하라는 훈계 또는 가능한 한 천천히 조심스럽게 전진하라는 훈계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다. (P210-1)


그리고 '그래도 역사는 움직인다'는 말로서 그의 글을 마무리한다.

그렇기 때문에 루이스 네이미어 경이 나에게 강령이나 이상을 피하라고 훈계할 때, 오크셔트 교수가 나에게 우리는 특별히 어떤 곳을 향해서 항해하고 있는 것이 아니므로 아무도 배를 흔들지 못하게 살펴보는 일만이 중요하다고 말할 때, 포퍼 교수가 하찮은 점진적 공학이라는 엔진의 힘으로 애지중지하는 T자형 고물차를 길 위로 계속 끌고 다니기를 원할 때, 트레버-로버 교수가 소리쳐대는 급진주의자들의 콧잔등을 후려갈길 대, 모리슨 교수가 역사는 건전한 보수적인 정신으로 쓰여야 한다고 주장할 때, 나는 경고하는 세계, 진통하는 세계를 내다보고 나서 진부하기조차 한 어느 위대한 과학자의 말을 빌려서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 '그래도 - 그것은 움직인다.' (P211)

E.H 카가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책에서 던지는 질문들과 고민들은 아직도 이 시대에도 우리에게 유효하며, 이 책은 우리가 어떤 방향으로 역사를 탐구하고 정립해야 할지를 안내해 주는 역사의 교과서 같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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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리다 & 들뢰즈 : 의미와 무의미의 경계에서 - 데리다 들뢰즈 지식인마을 33
박영욱 지음 / 김영사 / 2009년 9월
평점 :
품절


 

개인적으로 데리다와 들뢰즈라는 철학자는 정복하다가 실패한 성과 같다. 몇 년 전인가 한국에서 들뢰즈의 [천 개의 고원]이란 책이 매우 인기를 끈 적이 있었다. 나 역시 그 독특한 제목에 이끌려 이 책을 읽기를 시작했다. 하지만 당시 내 능력으로는 독해 불가능한 책이었다. 그 후 이 책에 대한 해설서인 [노마디즘]이란 책이 다시 인기를 얻었었다. 역시 이 책을 구입했었지만 방대한 양과 당시의 부족한 시간으로 읽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들뢰즈란 성의 정복은 멀어져 갔다.

올해 다시금 니체 철학에 관한 책을 읽으며, 데리다와 들뢰즈의 니체 해석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들뢰즈 역시 데리다처럼 읽기가 어려웠다. 특히 그의 아포리즘적인 글들을 거의 독해 불가능한 수준이었다. 데리다 역시 난공불락의 요새였다.

이런 두 번의 실패가 결국 데리다나 들뢰즈가 사용하는 용어에 대한 이해 부족이라는 것을 깨닫고, 둘의 사상, 특히 용어 부분을 쉽게 해설한 책들을 찾는 중에 이 책을 발견하게 되었다.  이 책은 김영사의 '지식인 마을'시리즈로 나온 데리다와 들뢰즈의 해설서로서 [의미와 무의미의 경계]라는 부제 목을 가지고 있다.

데리다와 들뢰즈에 대한 책을 구입하기에 앞서 인터넷 서점을  비롯한 여러 포털 사이트에서 이와 관련된 책들의 서평을 읽어 보았다. 대부분 철학서적에 대한 서평은 전문 지식을 가진 사람들의 혹독한 서평이 대부분이었다. 특히 이 책의 서평은 처참한 수준이었다. 너무나 좋지 않은 평가로 인해 이 책을 구입하기가 망설여졌다. 그러나 일부 철학적 지식을 가진 사람들 중에서는 타인의 저작을 너무 간단하게 평가 절하하는 경향이 강하다는 것을 알기에, 고려하고 이 책을 구입하게 되었다.

이 책을 읽고 난 개인적 평가부터 말하자면, 접근 방법이 매우 신선하고, 철학의 초보자들, 특히 데리다와 들뢰즈의 철학에 처음 접근하려는 사람들에게 매우 쉬운 방법으로 이들의 철학을 소개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이런 시도가 인문학적으로 매우 유익한 시도라고 생각한다. 어느 그룹이든 울타리 밖의 외부와의 대화를 위한 시도가 없어지며 결국 자기 울타리 안에서 갇혀서 영영 외부와의 소통을 잃어버리게 되는 경우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의 이런 시도는 매우 신선한 시도이며 일반인들도 철학을 이해하기 쉽게 하는 시도라고 생각한다. 또한 이 책이 데리다와 들뢰즈의 철학을 쉽게 소개했다 뿐이지, 데리다와 들뢰즤의 철학은 워낙 난해하기에 그들의 철학은 쉽게 소개했다고 해도 이해하기가 쉽지만은 않다. 다만 이 책에서 너무 예술적이고 미학적인 부분에 맞추어 이들의 철학을 소개한 부분은 조금은 당황스럽게 하는 부분이었다.

이 책은 주로 데리다와 들뢰즈가 주로 사용한 용어들을 현대 예술과 건축 등에 비추어 설명하고 있다.

1. 먼저 이 책은 들뢰즈의 철학의 핵심인 '차이'의 개념에 대해서 설명한다. 들뢰즈 철학의 가장 핵심적인 용어인 '차이'는 기존의 도식화된 개념에 대한 반발로 사용되었다. 칸트는 우리가 사물을 인식할 수 있는 인식 작용으로 이성과 감성을 이야기한다. 인간은 사물을 이성적으로 이해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감성을 통해 도식적으로 이해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원의 개념을 '한 점에서 동일한 거리에 있는 점들의 집합'이라는 이성적인 개념보다는 원이라는 모양으로 도식화하여 개념적으로 이해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도식적 이해는 다른 이해를 모두 함몰시킨다. 일단 원이라는 하나의 대표적인 도식으로 원들을 인식하게 되면, 다른 원들이 가진 개성들은 그 개념에 모두 함몰되게 된다. 들뢰즈는 이것이 서구 사상이 진부함이라는 틀에 갇히게 된 원인을 보고, 개념에 묻히지 않는 다양성, 차이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2. 데리다는 '차이'라는 단어 대신 '차연'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이 단어는 프랑스어의 'differance'를 번역한 것이다. 원래 차이라는 프랑스 단어는 'differance'이다. 데리다는 기존의 차이라는 단어의 거부감 때문에 새로운 단어를 만든다. 데리다가 말하는 '차연'이란 언어의 현재 진행성을 포함하고 있다. 언어가 하나의 개념을 가지게 되면, 모든 의미가 그 개념에 갇히게 된다. 생각이 말에 갇히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예를 들어 '저 사람은 이기적이야!'라는 말을 하게 되면, 그 사람의 모든 다양성이 '이기적'이라는 개념에 갇혀서, 그 사람에 대한 생각 중 다른 면들을 사라지고, 오직 '이기적이'라는 개념만이 대표하게 된다. 그러나 데리다는 개념의 의미들은 계속 바뀌고 변화되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이런 의미에서 '차연'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3. 들뢰즈는 존재를 '다양체'로 본다. 칸트는 개념(Begriff)과 이념(dee)을 구분한다. 개념이 사물에 대한 보편적인 어휘라면, 이념은 그 사물 안에 포함된 여러 가지 성질 들을 이념이라고 한다. 들뢰즈는 우리들이 사용하는 개념들이 다양한 이념들을 사라지게 한다고 보았다. 이런 들뢰즈의 생각은 베르그송에게서 영향을 받았는데, 베르그송은 인간의 지각 작용을 도려냄 (뺄셈 과정)으로 보았다. 즉 우리가 한 가지 사물을 개념으로 지각한다는 것은 그 사물 안에 있는 여러 가지 다양성을 모두 제거하고, 한 가지 개념으로만 이해한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들뢰즈는 사물에 다양성으로 존재한다고 말한다.

4. 데리다는 '의미'와 '무의미'의 경계를 허문다. 기존의 철학은 칸트의 합목적성과 관련하여 무언가가 의미가 있으려면 그것이 목적성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보았다. 그러나 데리다는 의미와 무의미는 상호 연관되어 있을 뿐 경계가 없다고 보았다. 저자는 이것을 예술 작품을 통해서 설명한다. 하나의 예술 작품은 단지 그 작품 내에서만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작품의 전시 공간이나 배경을 통해서도 의미를 가진다는 것이다.

5. 데리다는 세계와 인간을 '기계적' 존재로 이해한다. 여기서 기계적이란 것은 단지 자동차나 로봇 등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데카르트는 우리가 감각적으로 보는 세상의 표면의 밑에는 시계 부품처럼 정밀한 체계로 이루어진 세계가 존재한다고 보았다.(수학적 세계관) 들뢰즈는 세상과 존재하는 것은 나름대로 내면에 체계성을 가지고 있다고 보았다. 그리고 이런 기계적 존재를 '절단'과 '연결'의 개념으로 설명한다. 기계적인 존재는 표면적인 것과 심층적인 것의 절단을 통해 존재한다. 특히 현대사회로 갈수록 이 절단은 심해진다. 그럼에도 이 절단은 완전한 절단이 아닌 표면적인 것과 심층적인 것의 연결 속에 존재한다. 이것을 다시 '수목적인 것'과 '리좀적인 것'으로 설명한다. '수목적인 것'은 표면에 드러나는 것이고, '리좀적인 것'은 심층적인 것이다.

이상이 이 책으로 이해한 데리다와 들뢰즈의 사상적이 용어들이다. 이 책은 처음에는 쉽게 데리다와 들뢰즈의 사상을 출발점을 이야기하다가 점점 그들의 사상 깊숙이 들어가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다만 아쉬운 것은 데리다와 들뢰즈의 서구 사상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사상들을 전개하다가 그 결론으로 예술작품이나 건축으로 끝맺는다. 쉽게 말하면 데리다가 의미와 무의미의 경계를 허물었는데, 그래서 어떠 어떠한 현대 미술작품이 나왔다는 식이다. 데리다와 들뢰즈가 서구 사상과 문화에 끼친 전반전이 영향을 알고 싶었던 개인적인 의도와는 조금 다른 방향이었다. 하지만 이 책을 통해 데리다와 들뢰즈라는 성을 공략하기 위한 공성 단계를 시작하게 된 것만으로도 만족하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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