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럼바인
데이브 컬런 지음, 장호연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대학 시절 '윤리학'이라는 학문에 관심이 많았었다. 현대 서구의 윤리사상이 어떤 것이고, 어떻게 형성되었는지에 대해서 학문이었다. 어려서부터 기독교 가정 속에서 자라왔지만, 그 시절에는 새로운 윤리적 대안에 대한 관심이 많았었다. 피터 싱어나 존 롤스 같은 사상가에 관심을 가지고 그들이 대안으로 제시하는 새로운 윤리학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서양은 근대 이후부터 신의 존재를 배제한 사회계약이라는 기초에 의해 그들만의 윤리적 법칙을 세우고 있었다. 그리고 그 당시 내게 그런 윤리적 법칙이 매우 매력적으로 보였다.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을 극복하기 위해 서로의 권리를 존중해 주는 계약으로부터 출발하는 그들의 정치체제와 윤리가 매우 합리적이고 타당하게 생각이 되었다. 서로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기 위해 국가와 법이라는 틀로 개인을 보호하는 체계가 너무나도 멋지게 들려졌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무언가 망치로 머리를 두들겨 맞는 듯한 생각을 하게 되었다. 
 
'만약 자신이 빼앗길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어차피 죽으면 모든 것이 끝이고, 자신은 이제 모든 것을 잃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런 생각을 하자 모든 것이 두려워졌다. 결국 근대 이후 서구사회는 신이나 영혼, 사후 심판 등의 과거의  존재를 배제한 채, 사람들끼리의 계약을 통해 사회를 유지하는 기본 윤리와 법칙을 만드는 것이었다. 그런데 만약 이 계약이 통하지 않는 사람이 등장한다면, 그는 과연 무슨 일을 저지를 수 있을까?
 
젊은 시절 짧게 스쳐 지나갔던 생각을 최근에 다시 하게 되었다. 뉴스에서 등장하는 끔찍한 범죄를 볼 때이다. 어차피 죽으면 끝이라고 생각하고 폭주하면서 온갖 범죄와 학살을 저지르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과연 저들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이 있기는 한 걸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특히 미국에서 이유 없이 총기를 난사해 수많은 사람을 죽이고, 너무나도 간단히 자신의 목숨을 끊는 것으로 일단락하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그때의 끔찍한 생각이 다시 떠오른다.
 
지난해에 출간된 [콜럼바인]이란 책은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총기난사 사고인 콜럼바인 고등학교의 사건을 다룬 책이다. 이 사건은 에릭과 딜런이라는 두 명의 학생이 폭탄과 총기를 통해 12명의 학생과 1명의 교사를 살해하고 수많은 학생들을 다치게 한 후,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이다. 이 책이 출간되기 전에 이 사건의 주범인 에릭의 어머니가 쓴 [나는 가해자의 엄마이다]이 출간되기도 했었다. 그러나 이 책은 조금 더 객관적인 시각에서 콜럽바인 총기난사 사고의 준비과정에서부터 사건 진행과정, 그리고 사후 수습 과정을 자세히 기록하고 있다.
 
사람을 선입관을 가지고 대하는 것을 배제하려고 노력을 하지만 에릭이라는 인물에 대한 묘사를 볼 때면 마치 영혼이 없는 존재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섬뜩함을 느꼈다. 피자 가게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아무런 거리낌 없이 폭탄을 제조하고 수많은 살상 무기를 준비한다. 그리고 당일이 되자 아무런 거리낌 없이 총을 난사 한다. 살려 달라고 애걸하는 사람들, 살기 위해서 도망치는 사람들, 부상을 입고 쓰러진 사람들에게도 스스럼없이 총을 쏘아댄다. 그리고 마지막이 되자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반면 딜런은 마지막까지 주저한다. 이 책에서는 에릭이 주도적으로 범행을 계획했다면 딜런은 에릭에게 끌려 범죄를 저지른 것으로 보고 있다. 딜런은 마지막까지 주저했으며, 총기를 쏠 때도 망설였다. 이런 딜런을 범죄에 가담시키기 위해 딜런을 더 몰아붙인 사람이 에릭이다. 물론 딜런도 자신의 범죄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지만, 만약 딜런이 에릭을 만나지 않았었더라면 하는 생각이 든다.

원래 이 에릭의 계획은 더 끔찍했었다. 공원에서 폭탄을 터뜨려 경찰의 시선을 돌리게 한 후, 식당에서 대형 폭탄을 터뜨리려는 계획이었다. 그리고 그 폭발로 살아남아 식당에서 뛰쳐나오는 학생을 에릭과 딜런이 양쪽에서 교차사격해서 학살하려는 것이 원래 계획이었다. 만약 폭탄이 불발되지 않고 에릭의 계획대로 되었다면, 이 책에서는 1000여 명의 사상자가 생겼을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다.

모든 사건이 그렇지만, 이 사건이 난 후 미국 사회에도 과연 이런 범죄가 왜 일어났는지, 동기가 무엇인지를 조사했다. 물론 완전한 동기는 밝혀내지 못했다. 다만 이 이 책에서는 에릭이 뉴스나 신문에 나온 유명한 폭탄 테러범을 흉내 내어 자신이 더 유명해지고 자 하는 욕구가 있었다고 본다. 또 안일한 대응으로 사건을 일찍 수습하지 못한 공권력의 무능을 지적한다. 그러나 과연 이것이 전부일까?

우리나라에서도 수많은 사건들이 일어난다. 끔찍한 영아살해, 어린아이들을 강간하고 살해하는 범죄, 묻지마 식 살인, 도덕이나 안전 불감증으로 인한 수많은 화재들... 과연 이런 범죄의 원인은 무엇일까? 그리고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제도와 법에 대한 지적들이 있다. 그러나 과연 제도와 법이 이 모든 것을 해결해 줄 수 있을까? 무언가 인간의 마음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이 필요한 시대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