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하나도 괜찮지 않습니다 - 감정 오작동 사회에서 나를 지키는 실천 인문학
오찬호 지음 / 블랙피쉬 / 2018년 1월
평점 :

얼마 전 급한 약속을 앞두고 약속 장소인 건물 지하 주차장에 주차를 하려 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주차장 입구에 버젓이 차 한 대가 주차해 있는 것이었다. 차에는 전화번호가 있었지만 연락이 되지를 않았다. 한참을 기다리다가 어쩔 수 없이 주변 가계들에 들어가 차 주인을 수소문하기 시작했다. 한참을 고생한 후 피자가게에서 가족들과 피자를 먹고 있는 차 주인을 발견했다. 지긋한 나이의 아저씨의 풍채를 가진 차 주인은 투덜거리며 나왔다. 아무 말없이 자신의 차로 다가가는 그 사람에게 화가 나서 나도 모르게 "이곳에 주차를 하시면 어떻게 하시냐?"라는 볼멘소리를 했다. 그랬더니 그 사람이 갑자기 안색이 변하며 "여기에 주차하면 안 된다는 법이 어디 있냐?"라며 소리를 치며 흥분을 하는 것이었다. 나중에 피자를 먹던 아내와 자녀들까지 와서 말리고, 나도 죄송하다고 말해서 겨우 돌려보낼 수가 있었다. 생각할수록 씁쓸한 기억이었지만, 이것보다도 더 씁쓸한 것은 이런 비슷한 상황들을 자주 경험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어느 때부터인가 이런 사람들을 봐도, 또 그런 사람을 만났구나 생각하고 피해 다니기 시작하게 되었다. 그런 사람들과 언쟁을 해 봤자 어차피 그 사람들은 바뀌지 않을 것이고 나만 피곤해진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아마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 사회에는 이런 안하무인인 사람들은 점점 더 늘어나고 있다. 어쩌면 나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로 인해 그런 사람들이 더 늘어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 본다.
오찬호 작가의 [하나도 괜찮지 않습니다]라는 책을 읽으며 이런 생각을 다시금 해 보게 된다. 이 책의 저자는 한국 사회가 언제부터인가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회가 되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런 부끄러운 사회에서 피해를 받은 사람들은 살아남기 위해 스스로의 감정을 죽이고, 냉정한 사람들이 되어간다고 말한다. 사회나 타인의 부조리에 대항하기보다는 자기 역시 살아남기 위해 스스로 그런 사람이 되어 간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런 우리 사회의 모습을 '감정 오작동' 사회라고 말한다. 뜨거워야 할 때 오히려 냉정하고, 냉정해야 할 일에는 오히려 뜨겁게 열을 내는 우리 사회의 모습을 비꼬는 표현이다.
"각자도생을 강요하는 교육 시스템과 그 안에서 엘리트가 된 이들이 만들어 놓은 엉성한 사회구조 안에서 많은 이들이 평생 바쁘게만 살아간다. 어릴 때부터 오직 대학입시와 취업을 위한 인생설계도에 맞추어 살얼음판을 걸어야 했던 사람들이 만들어 낸 공기는 너무나도 차다. 공공선을 위해 뜨거워질 순간을 모르는 한국인들은 좀 냉정하게 따져봐야 할 '각자도생'의 삶에는 지나친 뜨거움으로 매진한다. 그래서 우리들은 낯 뜨거워질 순간을 잘 모른다. 남은 괜찮지 않은데 당당하다. 인간이라면 가져야 할 뜨거운 심장은 온데간데없다. 자신의 발버둥에 아파하는 누구의 허우적거림에는 냉정하다. 쓸데없는 열정이 강해질수록 우리는 무례한 차가움으로 주변을 내친다. 서로가 칼을 겨누고 찌르니 '하나도 안 괜찮은' 사람만 늘어간다.(P 9)"
이 책에는 언제부터인가 나만의 입장, 나만의 방식을 주장함으로 병들어 가고 있는 우리 사회의 모습을 너무나도 적나라하게 묘사하고 있다. 저자가 꼰대라고 부르는 나름대로 사회적 권위가 있다는 사람들에게서 이런 모습이 더 많이 드러난다고 말한다. 자신이 나름 사회적 지위와 부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그렇지 못한 사람들을 더욱더 함부로 대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 책에서 언급하고 있는 저자가 경험한 최고의 꼰대는 K 교수라고 부르는 권위 있는 교수이다. 저자가 어느 날 K 교수에게 특강을 부탁하는 연락을 받고 거절할 수가 없어서 먼 강의 장소까지 지 힘들게 도착했다. 그곳에서 예정에도 없던 100분의 강의를 하고 난 후, 저자가 받은 것은 K 교수의 강의를 들은 학생들이 쓴 저자의 성의 없는 독후감이었다는 것이다. 알고 보니 K 교수가 자신의 공강을 메꾸기 위해 저자를 불러다가 강의를 시키고, 강의료 대신 학생들에게 저자의 독후감을 리포트로 준비 시킨 것이다. 결국 저자는 고생고생하며 무료로 K 교수의 강의를 메꾸는 역할만 한 것이다. 어찌 저자뿐일까? 우리 사회에서 어느 분야에서나 이런 권위주의적인 갑질이 존재하지 않는 곳이 없을 정도이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이 살아남기 위해 이런 비합리적인 대우를 참을 수밖에 없다. 우리 사회에서 너무도 부끄러운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단지 개인의 문제만이 아니다. 특정 집단을 중심으로 타 집단에 대해 배척하고 차별하는 문화 역시 우리 사회의 감정 오작동의 한 부분이다. 특별히 이 책에서는 특정 계급과 특정 성별, 특정 집단들이 주도를 하고 있는 차별 문화의 민낯을 드러낸다. 계층 간에, 남녀 간에 벌어지고 있는 우리 사회의 차별 문화를 이야기한다. 학벌과 부를 통해 자신만의 권위를 만든 계층들이 자신보다 낮은 계층에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무시하고 비하하는 어둡고 구역질 나는 사회 문화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특별히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내용들은 신문이나 뉴스에서 나오는 이야기가 아니라, 저자 스스로가 직접 경험한 이야기이기에 더욱더 생생하게 느껴진다.
나 역시 매번 이런 차별 문화를 접한다. 몇 년 전 서울에서 살다가 다른 도시로 이사를 한 적이 있었다. 서울에서 살 때는 한강을 중심으로 강남과 강북을 선을 긋고, 강남 중심의 세상을 외치는 소리를 신물 나게 들었었다. 이사를 하며 이제는 그 지긋지긋한 강남 이야기를 듣지 않아도 된다는 해방감을 느꼈었다. 그런데 그곳에 살아보니 이제는 동구와 서구로 나누고 특정 지역의 가치를 높이고, 반대 지역은 빈민촌처럼 비하하는 사람들의 말을 계속 들어야 했다. 지금은 서울의 외곽의 작은 동네에서 살고 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곳에서도 작은 동네를 상단과 하단이라는 명칭으로 나누고, 아파트 위주의 상단 지역 사람들이 빌라 중심의 하단 지역을 폄하하고 무시한다는 것이다. 이제는 과연 대한민국 구석구석에 이런 집단이기주의 문화와 차별의 문화가 뿌리박히지 않은 곳이 어디 있을까 하는 생각까지 들게 되었다.
이 책을 읽으며 단순히 우리나라 문화나 특정 집단의 사람들을 비난하기에 앞서 우리의 부끄러운 모습들을 다시 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사회와 개인의 변화는 거창한 혁명이나 정치적 구호로 되는 것이 아니라, 개인들이 각자 안에 가지고 있는 부끄러움에 대한 감정들을 회복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고 생각한다. 저자 역시 사회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사회구조나 정치적인 변화가 아닌, 개인적인 의식의 변화가 먼저 선행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개인 스스로가 자신의 가치를 찾고, 세상의 불합리한 문화에 따라가지 않을 때 사회가 바뀔 수 있다는 것이다. 저자의 강의와 책들이 우리 사회에 계속해서 알려져서 우리 안의 감정 오작동의 병들이 치유되기를 바래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