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합리화의 힘 - 나를 위한 최소한의 권리
이승민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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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들어가고 가정을 이루고, 자녀까지 생기자 가장으로서의 짐이 무거워진다. 가정이라는 하나의 공동체를 이끌고 세상을 살아가면서 여러 가지 선택을 하게 된다. 그 중에서는 지금 생각해도 탁월한 선택이라고 자부하는 선택도 있었고,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내가 왜 이렇게 선택했을까 하는 후회가 되는 선택도 있다. 그리고 이런 나의 잘못된 선택으로 인해 아내와 가족을 힘들게 하는 경우도 있다. 그런 경우 끊임없이 나를 자책하게 된다.
 
내가 왜 그렇게 어리석은 선택을 했을까?’ ‘내가 왜 그런 선택을 해서 나와 가족을 힘들게 했을까?’
 
어떤 때는 자기 합리화라는 동굴 속에 잠깐 숨기도 하지만, 선천적으로 자기 합리화와 나는 친하지가 않다. 나의 잘못된 선택은 누구의 잘못보다도 내 잘못이 크다고 생각하기에, 철저히 모든 화살을 내 자신에게 쏘아 댄다. 그러다가 이 책을 읽으며 자기 합리화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보게 되었다.
 
이 책에서는 자기 합리화라는 개념을 이야기 하기 전에 먼저 방어기제라는 것을 설명한다. 방어기재란 자신이 심리적으로 공격을 받았을 때 대응하는 방식이다. 누군가에게 비난을 받았을 때, 폭력적으로 대응하거나, 타인이나 세상을 탓을 하거나, 아니면 퇴행이나 억압 같은 극단적인 심리 상태로 반응하는 것이 방어기제이다. 그래서 사람마다 방어기제를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성숙과 미성숙을 구분하기도 한다.
 
하버드 의과대학 교수인조지 베일런트는 방어기제는 성숙한다는 명제를 바탕으로 방어기제를 분류하는 작업을 했다. 베일런트에 따르면, 자아의 성숙이라는 것은 결국 성숙한 방어기제를 사용하게 되는 것을 일컫는 것이다. 반면 자기애적이고 미성숙한 방어를 과다하게 사용하는 사람은 우울이나 불안과 같은 정신병리를 가질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가 된다.” (P 31)
 
그러나 저자는 방어기제로 성숙과 미성숙을 구분하는 기존의 심리학에 반대한다. 그는 방어기제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 방어기제의 대표적인 것이 자기 합리화이다. 자기 합리화란 자기 비난의 화살을 타인이나 세상의 탓으로 돌리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까지는 이 단어가 부정적인 단어로 사용되었다. 그러나 저자는 자기 비난을 통해 스스로 자학 속에서 고통을 당하는 것보다는 자기 합리화라는 수단을 통해 자기를 보호하는 것이 더 낫다고 말한다.
 
성숙하든 성숙하지 않든 자기 나름대로의 방법으로 스스로를 보호하려고 한다면 그나마 다행한 일이다. 이것보다 더 큰 문제는, 자기를 보호하려는 최소한의 노력조차 하지 않는 사람들이다. 생각보다 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보호하려 들지 않는다. 오히려 상처에 더욱 자신을 노출시키고, 그 상처를 온몸으로 받아내려 한다. 못에 찔려 아픈 상처에 소독하고 약을 바르기는커녕 못을 더 깊숙이 찔러 넣어 고통의 극한까지 가보려는 태도를 보면 놀라지 않을 수 없다.” (P 50)


 

 

 

그러나 저자가 말하는 자기 합리화에 대한 시선을 읽다 보면 그것이 무조건 좋다는 것만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저자가 말하는 자기 합리화는 어쩌면 최소한의 자기 보호하는 수단이라는 생각이 든다. 자기 합리화가 좋은 것은 아니지만, 극단적으로 자기를 학대하고, 망신창이가 되어 구렁텅이에 빠져 있을 때는 이런 최소한의 수단이라도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세상이 점점 스스로를 엄격하게 대하길 원하고 있다. 구차하게 변명하는 것은 잘못되었으며 말보다는 행동으로 보여주기를 원하는 세상이다 중략 세상은 내면의 상처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기를 권한다. 상처로 인해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다고, 자신을 발전시키기 위해 더욱 상처를 받으라고, 당신은 잘난 게 하나도 없는 사람이라고, 항상 남들에게 배우라고 다그친다. 하지만 이런 권유와 충고는 때로는 너무 가혹하다. 우울과 불안은 아랑곳없이 발전만을 강요한다. 진료실에서도 스스로에게 모진 잣대를 적용시키는 많은 사람들을 목격한다. 그들은 스스로에게 냉철하고 엄격하며, 잘하는 게 없다며 평가절하하고, 타인을 부러워하며 극한 우울 속으로 빠져든다. 그 속에 나를 지키고자 하는 노력은 없다. 무방비 상태로 심리적 공격들을 제 몸을 노출시킨다. 상담을 하다 보면 나를 변호하는 게 무슨 소용 있나요. 난 변호받을 자격도 없어요절망의 절벽으로 스스로를 몰아세우는 사람들을 자주 보게 된다. 브레이크를 걸기 어려울 정도이다.” (P 114)
 
나의 발전을 위해서, 성수간 인격의 함양을 위해서 타인의 공격과 나의 실수에 비탄과 좌절만을 느끼는 사람의 예후는 어떨까. 뾰족한 자갈만이 깔려 있는 길을 맨발로 걷는, 수고로운 고행을 감내하는 사람은 어떻게 될까. 아마도 그 사람은 더욱 단단하고 튼튼한 발, 어떤 고통에도 대처할 수 있는 인내력을 원하기에 기꺼이 그러한 일을 경험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걷기 시작한 후 머지않아 발에서 피가 넘쳐흐를 것이며, 감염이 되어 열나고 붓고 고통으로 인해 제대로 걷기 힘든 상황이 올 것이다. 나를 성숙하게 만드는 일이라 생각했지만 상처만 커졌을 뿐이다. 후유증으로 인해 제대로 걷지 못할 상황이 생겨버렸지만, 후회는 늦었다.” (P 116)
 
합리화는 그러한 고통에서 나를 지킬 수 있게 해 준다. 이것이 정말이지 어쭙잖은것일지라도, 궁여지책에 불과한 것일지라도 고통의 순간에 나를 지켜주는 것은 그 하찮은 합리화이다.” (P 116)

 

 


 

그 동안은 자기 합리화에 대해 매우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우선 나부터도 자기 합리화를 싫어했고, 자기 합리화의 동굴 속에 숨는 타인도 못 마땅하게 여기며 충고를 했다. 상황과 자신을 직시하라고!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 도저히 견딜 수 없는 정신적인 절벽에 몰려 있는 사람에게 계속해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라고 말하는 것은 마치 그 사람을 절벽 밑으로 미는 것과 같다는 생각이 든다. 잠시 그 사람이 자기 합리화라는 그늘 속에서 쉬게 해 주는 것도 그 사람의 정신 건강을 위해 좋은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나 자신 역시 때로는 그런 그늘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다만 이런 자기 합리화가 중독처럼 매사에 지나치게 작동을 하다 보면 이 또한 심각한 상황에 빠질 수 있다는 생각도 든다. 결국 이 부분은 적절하게 나 자신에게 사용해야 할 나의 마지막 보호막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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