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갈 이유 - 힘겨운 삶에 지친 이들을 위한 철학 처방전
오카다 다카시 지음, 홍성민 옮김 / 책세상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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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으로 2차 세계대전의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빅터 프랭클이 자신의 저서인 [죽음의 수용소에서]라는 책에서 이런 글을 남겼다.

"사람은 어떠한 환경에도 적응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어떻게 적응했는가는 묻지 말아 달라"

사람은 어떠한 환경에도 적응을 한다. 그리고 그 적응력이란 생존본능을 의미할 것이다. 사람은 살아남기 위해 어떠한 환경에서도 자신만의 삶의 방법을 택한다. 빅터 프랭클과 같이 혹독한 수용소나, 전쟁터의 참호 속, 그리고 독재국가의 집단 학살 속에서도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살아남는 방법을 택하고 그렇게 살아남는다.

그러나 이런 생존본능은 사회적인 극한 상황뿐만 아니라, 겉으로는 평범하게 보이는 우리의 가정생활이나 사회생활에서도 계속된다. 부모의 학대나 치열한 경쟁 사회에서 육체와 정신이 망가진 사람들은 자신만의 방법으로 삶을 유지하기 위해서 몸부림을 친다. 일본의 유명한 정신과 의사이자 작가인 오카다 다카시가 쓴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갈 이유]라는 책에는 바로 이렇게 자신만의 생존의 방법으로 힘겨운 삶을 이겨간 사람들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이 책은 유명한 철학자나 문학가들이 어떻게 삶의 위기를 겪었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그 위기를 극복하고 삶을 이어갔는지를 이야기한다. 이 책에서 언급하는 대표적인 사람 중에 한 명은 쇼펜하우어이다. 그는 유명한 실존주의 철학자이자 염세주의자로 알려져 있지만, 저자는 이것이 쇼펜하우어가 살아남기 위한 방법이라고 말한다. 쇼펜하우어는 부자 상인인 아버지와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고, 아버지가 죽자 어머니는 자유분방한 삶을 살면서 쇼펜하우어와 갈등을 느낀다. 여러 번의 갈등 후 쇼펜하우어는 어머니에게서 집에서 나가라는 소리를 듣는다.

"너에 대한 나의 의무는 끝났다. 그러니 내 집에서 나가거라. 나는 더 이상 네 일에 상관하지 않을 거야. 내게 편지 쓰지 마라. 네가 편지를 보내도 읽지 않을 테고 답장도 안 보낼 테니. 다 끝났다. 너는 나를 너무 힘들게 해, 너만이라도 행복하게 살아라. (P 45)"

이 글에서 아들에게 진저 머리를 치는 어머니의 심정이 느껴진다. 그러나 이런 말을 들었을 때 쇼펜하우어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세상에서 버려진 느낌, 삶의 의미를 잃어버린 느낌이 아니었을까? 쇼펜하우어는 이런 과정에서 자신만의 삶의 방식을 찾는다. 그것이 바로 허무주의적인 철학이다. 삶의 허무함을 바라보고, 그 삶에 집착하지 않으며, 삶의 관조하는 것이다. 그것이 쇼펜하우어 만의 살아남기 위한 방법이었다.

"어쨌든 쇼펜하우어는 많은 위기를 극복하고 노년까지 살았다. 지극히 낙관적으로 살고 있다고 보였던 사람이 자살하는 일도 있고, 자신감이 넘치고 늘 긍정적이며 어떤 어려움도 아랑곳하지 않는다고 여겼던 인물이 어이없이 꺾여버리는 경우도 있는 것을 생각하면 그의 염세적인 철학은 역설적인 방식으로 그의 인생을 지켜준 것은 아닐까 싶다. 인생에 아무것도 이해하지 않음으로써 상처받는 것을 피하는 그의 전략은 어느 정도 성공했다고 할 수 있다. 처음부터 사랑받기를 포기하면 배신당해 낙담할 일도 없을 것이다. (P 51)"

 이 책에는 쇼펜하우어 외에도 헤르만 헤세, 조르주 상드, 서머싯 모음, 비트겐슈타인, 그리고 앞에서 언급한 빅터 프랭클과 같이 유명한 철학자와 작가들이 삶을 이야기한다. 위대한 작품으로만 알았던 그들의 삶이 어렸을 때부터 치열한 삶을 살았고, 결국 그들의 사상이나 예술이 살아남기 위한 방법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중 가장 인상 깊게 읽은 사람이 '서머싯 몸'이었다. 어려서부터 부모님을 잃고 목사인 작은아버지 밑에서 자란 '서머싯 몸'은 신학교를 가기를 원하는 작은아버지의 강요와 맞서며 예술가로서의 삶을 살기 위해 발버둥을 친다. 그러나 가진 재산을 탕진하고, 가난을 경험하고, 사람들에게 배신을 당한다. 그렇게 길거리에서 방황하는 삶을 살다가 결국에 인생이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깨닫는다. 그렇게 인생이 의미가 없다는 것을 깨달은 후에야 역설적으로 그는 삶의 희망을 가지게 된다. 인생이 정해진 것이 아니면, 자신의 뜻대로 인생을 개척해 나겠다는 것이다. 그는 이런 깨달음에 대해 글로 남긴다.

"처음으로 완전한 자유를 누리게 되는 셈이었다. 자기 존재의 무의미함이 오히려 힘을 느끼게 해주었다. 이제까지 자신을 박해한다고만 생각했던 운명과 갑자기 대등해진 느낌이 들었다. 인생이 무의미하다면 세상도 잔혹하다고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가 무엇을 하고 안 하고는 이제 중요하지 않았다. 실패하는 것도 중요하지 않았다. 성공 역시 의미가 없었다. (P 142)"

서머싯 몸은 이런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인생의 굴레]라는 책을 출간했고, 작가로서 성공을 거두었다고 말한다. 이 글을 읽으며 아직 읽지 못한 이 책을 꼭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의 치열한 삶이 담긴 문학작품만큼 위대한 작품은 없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저자가 이야기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허무주의라는 철학이나 사상을 통해 인생을 관조하며 삶의 위기와 자살의 유혹으로부터 벗어났다. 그러나 이런 사상들 역시 살기 위한 방편이었다는 것이 작가의 요지이다. 그리고 이렇게 그들을 죽음의 위기로 몰아놓은 원인은 대부분 어린 시절 가정의 위기이다.

저자는 어린 시절 가정이나 어머니로부터 받는 사랑을 '안전지대'라는 말로 표현한다. 인생은 어린 시절 가정과 부모의 품에서 안전지대로서의 안전감을 누려야 한다고 말한다. 이런 안전감이 없이 자란 사람은 평생을 그 사랑을 그리워하고 그것이 채워지지 않음으로써 공허함을 느낀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공허함이 삶의 의미를 상실하게 하고, 결국 극단적인 선택까지 이르게 한다는 것이다.

이 책에는 단순히 안전감을 상실한 사람들의 이야기뿐만 아니라, 부모의 학대로서 부모의 올무 속에서 일평생을 끌려다니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육체적인 학대와 함께 정신적인 학대까지도 언급된다. 그중 하나가 그레이트 마더의 저주라는 것이다. 어린 시절 아이에게 어머니라는 존재는 절대적인 존재이다. 그런 어머니가 자녀에게 '너는 쓸모없는 존재다!' '네가 하는 것은 다 실수투성이다!' '네 삶은 엉망진창이다!'라는 식으로 말하면, 그런 어머니의 저주가 일평생 삶을 지배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스스로를 학대하여 정상적인 삶을 살지 못하게 한다. 결국 이런 상황에서는 극복하기 위해 저자는 어머니와 적당한 거리를 두어 어머니의 저주를 풀어야 한다고 말한다.

또 이 책에는 일본 사회에서 부모로 인해 학대를 당해 삶이 피폐하진 여러 가지 사례가 나온다. 아버지에게 학대를 당해 도둑질을 하고, 성적으로 유린 당하고, 마약까지 강요당하는 아들과 딸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그럼에도 그 아버지를 미워하지 못하고, 아버지에로 돌아가는 인간의 숙명을 이야기한다. 결국 저자는 이런 굴레를 끊어야 정신적으로 건강해질 수 있다고 말한다. 이 부분을 저자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부모에게 인정받고 부모와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사람은 행복하다. 그러나 누구나 그런 행운을 누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삶의 고통을 안고 있는 사람의 대부분은 부모와의 관계로 고민한다. 그런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알면 놀랄 것이다.
사람으로 태어났기 때문에 누구나 부모에게 인정받기를 원한다. 그것은 인간의 본성이다. 부모의 인정을 받지 못하고 부정당하는 것만큼 슬픈 일은 없다. 아무리 다른 사람에게 평가받아도 부모의 인정을 받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 늘 부모에게 긍정적인 말을 듣고 인정을 받으며 살아온 사람은 그런 고통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행복한 인생을 살아온 사람이라면 부모를 사랑하고 부모의 사랑을 받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로, 햇빛과 공기처럼 늘 변함없이 누릴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인생을 살지 못한 사람에게는 부모의 사랑은 변하기 쉽고, 여러 번 배신당해서 미덥지 않고, 의지할 수 없는 허무한 희망이다. 그럼에도 그 허무한 희망을 포기할 수 없어 늘 그것을 끌어안고 있다. 사랑받지 못하는 자신이 어떻게 하면 사랑받을 수 있을까 하면서 헛된 노력과 도전, 기대와 포기 사이에서 흔들린다. 자식의 짝사랑으로 남아 있는 부모 자식 관계만큼 슬픈 것은 없다. (P 154-5)"

이 책을 읽으면서 결국 정신적으로 건강하다는 것은 어린 시절 부모와의 관계가 절대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면서 나의 어린 시절을 되돌아보게 되고, 또 지금 자녀를 키우는 내 상황을 생각해 보게 된다. 나 역시 부모와 건강한 관계였다고 말할 수 없기에, 자녀에게는 안전지대가 되는 아버지가 되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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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3-03 21:2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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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3-04 22:5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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