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의 고고학 - 미셸 푸코 문학 강의
미셸 푸코 지음, 허경 옮김 / 인간사랑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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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인터넷 등을 통해 심해(深海)의 사진 등을 접할 때가 있다.

파란 바다 한 가운데에 유독 시퍼런 색깔은 원이 그려져 있는 사진이다.

나는 짙은 색은 파란 색깔은 보면서 알수 없는 공포를 느낀다.

깊은 바닷 속을 상상하고 내가 그 바다 속으로 빨려 들어갈 것 같은 느낌을 받아서이다.


푸코의 책을 읽다보니 이런 느낌을 받았다.

젊은 날에 읽은 몇 권의 책을 통해 나는 푸코를 어느 정도 안다고 생각했었다.

이성으로 역사와 세계를 보는 주류적인 시각에 반해 비이성과 광기를 주장하는 그의 사상을 어느 정도 요약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었다.

그의 사상을 해변가에서 떨어진 조금 깊은 바다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이 책을 읽으며 푸코의 사상이 내가 측정할 수 없는 깊은 바다 속의 심해임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 심해를 들여다 보면서 알 수 없는 공포를 느낀다.

마치 이 책이 나를 그 심해 속으로 빨아 들이는 듯한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이 책은 주로 역사에 대해 비이성적인 시각으로 보는 푸코의 철학보다는 푸코의 문학에 대한 강의를 다루고 있다.

푸코는 주로 1960년대에 문학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고, 주로 그 시기에 문학에 대한 글을 쓰거나 강의를 했었다. (이 시기를 푸코의 철학에 있어서 '문학의 시기'라고 부르기도 함)

이 책은 그 동안 알려지지 않은 푸코의 문학에 대한 강의를 편집한 책이다.


이 책은 세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1부는 '광기의 언어'라는 제목으로 문학에서 인간의 광기가 차지하는 부분을 다루고 있다.

2부는 '광기 안의 언어'라는 제목으로 문학에 대한 푸코의 정의와 시각을 다루고 있다.

3부는 '사드에 대한 강의'라는 제목으로 사드에 대한 문학을 다루고 있다.


책은 프랑스어를 번역했기에 문장이 길고 복잡하며, 문장 중간에 철학과 문학적인 단어들이 반복해서 나오기 때문에 이해하기가 쉽지는 않다.

또한 프랑스 문학, 특히 사드에 대한 문학이 많이 제시되기 때문에 사드에 문학을 접해 보지 않은 나로서는 더욱 더 이해하기가 쉽지 않았다.

다행힌 것은 번역자의 배려이다.

이 책의 번역자 역시 독자가 이런 어려움을 겪을 것을 알고 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책 초반에 사드가 이 책에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들, 그리고 그가 이야기 하는 몇 가지의 개념들을 아주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물론 번역자의 글도 일반인이 읽기에는 조금 난해한 느낌을 주는 것은 사실이다.



이 책은 푸코의 문학에 대한 여러 가지 강의를 편집했기에 한 가지 주제를 제시하거나, 일관적인 내용을 요약할 수는 없다.

그러나 푸코의 여러 가지 강의를 관통하고 있는 한 가지 개념은 '광기'이다.

이 광기는 이성이 붙여 준 모욕적인 언어일지도 모른다.

마친 일본인이 한국을 식민지한 후 한국인을 '조센징'이라고 부르듯이...

이성이 인간의 무의식의 부분을 점령한 후 이성의 영역 밖에 있는 모든 것을 '광기'라고 부르고, 그것을 억압하기 시작했을 것이다.

그러기에 광기는 이성에서 배제되고, 금기시해야 하는 것이 되었다.

그러나 푸코는 광기는 우리 인간 안에 있고, 그것이 언어로 표현되고 있으며, 문학에서 광기의 언어를 발견할 수 있다고 말한다.

푸코가 말하는 광기의 언어와 문학을 대표하는 사람은 '마르키드 사드'이다.


푸코는 사드의 문학이 인간이 가지고 있는 이성의 테두리를 벗어나 광기와 욕망을 자유롭게 표현한 것으로 보았다.

푸코는 이것을 '리베트랭적 담론'이라고 말하고, 이런 문학에 나오는 인간을 '리베트탱'이라고 부른다.

사드의 소설 속에 나오는 '쥘리에트'나 '쥐스틴'같은 인물들이다.

리베르탱적 담론은 네 가지 기본 원칙을 따른다.

신은 없고, 영혼도 없으며, 따라서 비도덕적이거나 범죄가 없으며, 자연(생명)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런 리베르탱적 담론의 반대는 근대까지 유지되었던 '종교적담론' 또는 '철학적인 담론'이다.

푸코는 이것을 '거세적 담론'이라고 부르는데 그 이유는 신에 의해 선택된 완전한 내가 되기 위해서는 무엇인가를 포기해야 하기 때문이다.

'거세적 담론'에 의하면 나의 욕망과 시간과 신체를 포기해야만 올바른 평가를 받을 수 있다.

리베르탱적 담론은 이런 것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이다.

자유로워진다는 말보다 한계를 뛰어넘어 무한대의 공간으로 나가는 것이다.

그러기에 푸코는 리베르탱적 담론을 '탈거세적 담론'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사드는 그의 소설을 통해 이런 탈거세적담론을 가진 인물들을 창조해 냈다.

그들은 마음 껏 욕망을 발산하고, 사람을 죽이고, 인육을 먹고, 인간이 만들어 낸 모든 규범을 뛰어넘는 극단적인 성행위를 한다.

여기까지가 푸코의 문학과 광기와 샤드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러나 그 다음은....

인간의 이성에서 광기를 풀어서 무한의 영역으로 나간 다음에는....

그 다음에는 무엇이 있을까?


마치 영화 [그래비티]의 우주비행사들이 우주선과의 끈이 끊겨 무한의 우주 속으로 떨어져 나가는 그런 것일까?

그리고 그 우주 끝에는 무엇이 있을까?

과연 끝이라는 것이 있기는 한 것 일까?


푸코는 이성이 광기를 누른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성으로부터의 자유로운 광기를 말한다.

물론 그것이 사드의 문학에만 국환되는 것인지, 푸코의 사상인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그러나 푸코의 말처럼 우리가 이성의 끈을 끊어버리고 광기의 무한의 영역으로 들어간다면 그 다음에는 무엇이 있을까?

아무런 끈없이 심연의 바다 속으로 들어 간 후 그 바다 속에서 무엇을 볼 수 있을까?

설사 무엇을 본다고 해도 그 무엇을 보는 나조차 없어지는 것은 아닐까?


데카르트는 모든 것을 의심했다.

악마가 있어서 내 앞에 모든 허상을 만들어 놓고 이것을 실재하는 것이라고 믿게 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데카르트는 미지의 영역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리고 그 영역에서 헤매지 않기 위해 생각하는 인간, 코키도 에르고 숨(라틴어: Cogito, ergo sum , 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이라는 끈을 잡았다.


나는 철학자도 아니고, 문학을 하는 사람도 아니며, 그냥 책을 읽는 독자일 뿐이만 푸코나 니체, 사드의 책을 읽는 사람들에게 권하고 싶다.

우리가 광기의 영역을 탐험할 때는 끊어지지 않는 분명한 끈을 가지고 그 세계로 들어가기를 바란다.

그렇지 않으면 그 세계 속에서 영원히 헤매게 될 것이니까....

그 '끊어지지 않는 끈'이 무엇인지는 각자의 선택에 맡길 수밖에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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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정 본능 - 우리는 왜 자신을 속이고 잘못된 믿음을 가지며 현실을 부정하도록 진화했을까
아지트 바르키 & 대니 브라워 지음, 노태복 옮김 / 부키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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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론의 가장 큰 난제는 왜 인간만이 지적인 존재로 진화를 했느냐는 것이다.

 

진화론에는 여러 가지 난제가 있다.

왜 그렇게 넓고 넓은 우주에 왜 지구에만 생명체가 있는가? (물론 지금까지 인간이 탐구한 행성을 대상으로만...)

또한 그 지구의 많은 생명체 중에서 왜 유독 인간만이 지적인 존재로 진화를 했는가?

인간이 침팬치에서 진화를 했다면 왜 침팬치는 더 이상 진화를 하지 못하는가?


이 부분에 대해서 특이한 대답을 내 놓고 있는 책이 있다.

바로 아지트 바르키라는 인도출신의 의사이자 과학자가 이미 타계한 대니 브라워라는 미국의 분자생물학자의 이론을 다듬어 낸 [부정본능]이란 책이다.


먼저 이 책은 앞의 질문으로부터 시작한다.

진화론이 맞다면 이 세상의 모든 생명체 중 왜 유독 인간에게만 지적인 존재로의 진화가 일어났는가?

저자인 아지트 바르키는 이 대답을 우연한 만남에서 찾았다.

그가 2005년 애리조나 강의 후 우연히 잔딧밭에 앉아 있다가 대니 브라운이란 교수가 그의 이론에 공감을 표하며 자신의 견해를 이야기 한다.

그는 인간만이 독특한 존재로 진화한 것이 무엇인지를 찾기 보다는, 다른 존재들이 인간과 같은 존재가 되지 못하도록 진화를 방해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찾아야 된다고 말한다.

생각의 전환이자, 코페르니쿠스적인 사고의 전환을 하자는 것이다.

대니 브라운은 이미 그 답을 찾았었다.

그리고 이 책은 그 대니 브라운의 이론을 구체화시킨 책이다.



저자는 모든 생명체가 진화를 하면서 한 가지 벽에 부딪힌다고 주장한다.

그 벽이란 바로 존재의 필멸성을 깨닫는 것이다.

즉 모든 존재는 결국에는 죽는다는 절망적인 사실이다.

그리고 이 필멸성을 깨닫는 과정을 마음이론이라고 한다.


마음이론(ToM)이란 나를 하나의 개체로 인식하듯 타인도 하나의 개체로 인식하는 것이다.

내가 존재하고 생각하듯이 타인도 존재하고 생각하는 대상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마음이론은 타인의 죽음을 보면서 자신도 죽을 수 밖에 없는 존재라는 필멸성에 이르게 된다.


인간이 지적인 생명체로 진화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이런 마음이론의 발전때문인데...

그렇다면 다른 생명체는 왜 이런 마음이론이 발전하지 못했을까?

(이 책은 다른 생명체가 마음이론이 발전하지 못했다는 부분에 대해서 여러 가지 동물들의 실험을 통해 구체적인 예를 들고 있다.)

저자는 그 이유가 바로 필멸성이라는 벽을 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예를 들어 어떤 동물이 마음이론적인 부분에서 진화를 해서 자신이 죽는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치자.

그러면 그 동물은 죽음의 현실에 직면하여 모험을 하기를 거부한다.

즉 다른 숫컷과 목숨을 걸고 경쟁하여 암컷을 차지하기도 거부하고,

자녀를 낳으면서 닥칠 수 있는 죽음의 위협에 직면하기도 거부한다.

그로인해 자신의 진화의 유전자를 후대에 전할 수가 없게 된다.

결국 마음이론의 진화를 그 동물에게서 멈추게 된다는 것이다.


반면 인간은 이런 필멸성을 부정하는 이론을 만들어 낸다는 것이다.

그 대표적인 것이 종교이다.

어느 문화나 종교가 있고, 종교는 대부분 영혼불멸을 이야기 한다.

그리고 이런 필멸성의 부정으로 인해 자녀를 생산하고 양육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 결과 인간의 지적인 능력이 후대에 진화하게 된다고 주장한다.


이런 필멸성에 대한 부정본능은 유전자를 통해 우리 인간에게 전해져서 우리 인간은 현실적인 위협을 부정하는 본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자신이 죽을 것을 부정하고, 위험한 줄 알면서도 자녀를 낳고, 건강을 해칠 줄 알면서도 담배를 피며, 지구가 파괴되는 줄 알면서도 지구를 오염시킨다는 것이다.


저자는 우리가 이런 필멸성을 바로 인식하게 되면 몇 가지 장점이 있다고 말한다.

자신이 죽을 줄 안다면 세상을 더 가치있고, 진실하게 살 수 있다는 것이다.

즉 백만장자가 자신의 죽음을 인식한다면, 자신의 돈을 죽기 전에 많은 사람을 위해 쓰고 죽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을 인식하지 못하기에 우리는 마치 영원히 죽지 않을 것처럼 물질을 모으는데만 모든 시간을 투자한다고 말한다.



이 책은 우리를 당혹케 한다.

저자는 우리 인간이란 존재가 우주의 빅뱅에서 발생한 먼지와 같은 존재이며, 결국은 그렇게 사라질 존재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것을 외면하지 말고 똑바로 바라보라고 말한다.



나는 개인적으로 진화론에 대해 동감하지를 않는다.

그것은 진화론으로 설명하기엔 너무나 많은 우연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고 생각한다.

인간의 숫자로 샐 수 없고, 심지어 인간의 인식능력을 벗어나는 광대한 우주에서 지구에만 생명체가 존재하는 것은 우연으로 밖에 설명할 수 없다.

확률로 설명하자면 백만 분의 일 정도가 아니다.

분모가 되는 숫자에 인간이 생각할 수 없는 숫자를 넣어야 그 확률에 비슷하게나마 도달할 것이다.

그리고 바다에 있는 생명체가 아메바로 진화하는 확률 역시 앞의 확률과 같을 것이다.

그리고 진화의 매 단계마다 이런 천문학적인 확률이 필요하다.

결국 진화의 모든 단계를 설명할 수 있는 것은 이성적인 이론이 아니라 우연이라는 단어이다.

이 책은 이런 우연이라는 단어를 '부정본능'이란 단어로 대체한다.

그리고 실제로 우리 인간 안에는 이런 부정본능이 존재한다.

그러나 이런 부정본능이 어떤 과정을 통해 우리 인간에게 들어왔는지를 이 책은 과학적으로 증명하지는 않는다.

단지 그랬을 것이라고 추측하는 것이다.

이것 역시 우연으로밖에 설명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의 탁월한 점은...

인간 안에 있는 부정본능을 본성적을 아주 예리하게 파악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아지트 바르키라는 학자가 이미 타계한 대니 브라워의 이론을 체계화해서 그의 이름을 공저로 책을 출한한 것이다.

타인의 아이디어는 학술적 성과를 아무렇지도 않게 도용하는 한국적인 현실에서는 놀라운 일이다.

잠시 10분 정도 만난 잘 알지도 못하는 학자의 이론을 자신의 것으로 도용하지 않고...

그 학자에게서 출발한 이론임을 밝히는 저자의 학문적인 태도가 매우 존경할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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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산다는 것 - 세상의 작동 원리와 나의 위치에 대한 사회학적 탐구
아브람 더 스반 지음, 한신갑.이상직 옮김 / 현암사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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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초등학교때부터 사회 과목에는 영 취미가 없었다.

어렵다는 것 보다는 조금 따분한 이야기였다.

뻔한 이야기가 많았기 때문이다.

대학교때는 교양과목으로 사회과학 과목을 들었는데...

어려운 학문적인 용어때문에 또 흥미가 없었다.

그때 드는 생각이 '쉬운 이야기를 참 어렵게 하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때 막스베버나 하버마스같은 학자들에게 관심을 가지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그런 추억때문인지 네델란드 학자에 의한 쉬운 사회에 관한 책이 출판되었을 때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이 책은 네델란드 학자인 아브람 더 스반 교수에 의해 지어졌다.

이 책의 특징은 참 쉽다는 것이다.

사회가 어떻게 구성되고, 어떻게 운영되고, 그리고 현대에 이르러 어떻게 복잡해졌는지를 너무 쉽게 이야기한다.

어려운 용어 대신 사회의 구성원리를 마치 블록 쌓듯이 쉽게 설명하는 책이다.

저자의 문장 역시 보통 인문학 책에서 보는 긴단락의 문장이 아닌, 짧은 단락의 문장으로 가독성이 매우 좋다.

아마 번역자의 능력도 한 몫 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이 책은 마치 심시티 게임처럼 사회의 구성 과정을 눈에 보이게 쉽게 설명한다. 

처음 원시사회는 자급자족의 사회였다.

이런 자급자족 사회가 점차 잉여생산물이 남으면서 그것을 교환하기 시작하고, 그 결과 서로를 의존하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부와 사유재산이라는 것이 생겨났고, 그것을 지키기 위해 규칙과 제도가 생겨난다.

또한 타 집단으로부터 약탈을 막기 위해 전사집단이 생기고, 이 전사집단은 군대로 발전한다.

생산자들은 자신의 생산물을 지켜 달라는 의미에서 전사집단에게 생산물을 주고, 전사집단은 전투력을 제공한다.

마치 전략시물레이션 기지를 만들듯이 사회 구성 과정을 차근차근 설명한다.


저자가 이런 사회의 구성 과정에서 가장 중요시 여기는 것이 '네트워크'와 '상호의존관계'이다.

초기 사회는 대부분 친족사회이이다.

그러나 현대로 갈 수록 관계는 확장되고 복잡해 진다.

그리고 이 관계가 유지되는 것은 상호의존을 통해서이다.

상대방이 능력, 또는 재산 등이 필요하기에 상호의존하게 되고 이것이 사회가 되고 국가가 되는 것이다.

국민은 국가의 보호와 관섭이 필요하고, 국가는 국민의 세금과 노동력이 필요하다.

결국 사회는 네트워크와 상호의존으로 형성된다.

이 과정에서 권력, 재산, 위신, 계층화가 이루어진다.



이 책의 장점은 저자의 관점이 철저하게 중립적이면서도 심층적이라는 것이다.

보통 사회과학은 한 쪽으로 치우치기가 쉽다.

저자처럼 사회가 구성되는 과정에서 부와 재산의 축적, 그리고 계급의 형성을 다루게 되면 보통은 두 가지 시각으로 나누어진다.

하나는 보수적인 시각으로 부와 재산, 계급의 형성의 과정을 필연적으로 보는 것이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사람들의 합의에 의해 규칙과 법이 생겨나고, 이 규칙과 법은 모든 사람에게 평등하게 적용된다고 말한다.

또한 이것이 점차 발전되기에 점점 불평등이 사라지과 기회가 균등하게 주어지는 좋은 사회가 된다고 주장한다.

다른 하나는 진보적인 시각으로 부와 계급의 형성에서 당연히 지배와 피지배, 착취와 학대가 이루어진다고 보는 것이다.

규칙과 법은 지배층의 권력의 수단이기에 이것으로는 사회적 모순을 해결할 수 없다고 보는 것이다.


반면 저자는 사회의 구성 과정을 담담히 이야기 할 뿐이다.

부와 계급이 발생하는 과정을 설명하고, 이 과정에서 규칙과 법이 어떻게 형성되는지를 설명한다.

그렇다고 모든 것이 이런 공식적인 규칙과 법의 아래 있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사회 안에는 비공식적인 것이 여전히 통용된다고 말한다.


"근대 조직에서의 역할은 그 속성이 공식적이다. 역할은 문서로 규정되며 원칙상 공정하다, 상황에 관계없이 해야 할 일이 규정되어 있다. 공정함이란 지리 교사의 아들이나 잘 생긴 학생이라고 해서 예외적으로 다루어지지 않는다는, 즉 동일한 규칙이 모두에게 적용된다는 것을 뜻한다. 상급자와 하급자 간 관계와 업무 부담도 공식적 규칙에 명기된다.

  그렇기는 하지만 조직 내에서는 그러한 공식 관계와 더불어 온갖 종류의 다른 관계들이 생겨나는데. 때로는 그것들이 서로 완전히 대립될 때도 있다. 이러한 비공식적인 관계는 그 어디에도 명시되어 있지 않으며 공개적으로 논의되는 경우도 드물다.(P177)"



이 책의 또 다른 장점의 사회의 구성 과정을 한 국가 속에서만 보지 않고 세계화의 과정까지 본다는 것이다.

저자는 국가의 구성과정에 대해서 상세히 설명한다.

앞에 이야기 한 상호의존에 의해 국가가 형성된다.

개인들은 자신들의 재산을 보호해 줄 전사집단을 원하고, 그 전사집단은 다른 집단으로부터 경쟁관계로 인해 뭉쳐지며 네트워크가 형성된다.

그로 인해 왕과같은 군주가 생겨나게 된다.

그리고 이 군주는 세습이나 투표와 같은 정당성을 통해 이어지게 된다.

이 과정에서 군주는 자신의 통치를 유지하기 위해 봉건제후들 간에 '자유경쟁'을 유발시킨다.

봉건제후들의 자유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군주의 지원을 얻으려 한다.

이것을 '독점적 경쟁'이라 한다.


문제는 이런 독점적 경쟁이 나라 간에도 발생하게 된다.

현대에 이르러 미국과 소련의 냉전시대가 있었다.

두 나라의 독점적 권력에 의존하기 위해 나라들마다 어느 편엔가 속하게 되었다.

그러나 냉전이 끝나고 미국만이 독점적 권력을 가지게 되었다.

결국 현대 외교에서 중요한 것은 각 나라가 미국의 독점적 권력을 얼마나 잘 이용?하는가 있다.

가 끝나고 독이런 국가가 발전하면서 국가들의 연합체가 형성된다.

개인적인 생각에 의하면 일본은 이 권력을 잘 이용하고 있는 중이고, 우리는 그렇지 못한 상황이라고 생각된다.


"냉전시기(1984-1989) 세계에는 서로 경쟁하는 두 초강대국이 있었다. 나머지 국가들은 이 중 한 국가의 지지를 얻기 위해 경쟁했지만, 때로는 두 나라가 겨루게 할 수도 있었고, 이것이 작은 국가들로 하여금 어느 정도의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했다. 소련 붕괴 이래 경쟁의 초첨은 남은 한 초대강국으로부터 지지를 얻는 것에 맞추어졌다. 미국은 독점자가 되었다. 어느 쪽이든 미국의 지지를 얻으면 곧 상대편보다 우위에 서는 것을 의미하게 되었다.(P189)"



 

이 책으로 사회과학의 입문서이자, 사회를 보는 보다 쉬운 관점을 제공해 주는 책이다.

특히 사회의 구성을 '상호의존의 관점'에서 보는 훌륭한 시각을 소유하고 있는 책이다.

이런 시각을 유지하고 사회를 바라본다면 사회를 편협하게 보는 시각들이 사라지고, 계층이나 지역, 단체 간의 반목도 많이 사라지게 될 것이라고 생각된다.

이런 통합적이고 객관적인 시각으로 사회를 보는 좋은 시각들이 우리 사회에 많이 형성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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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수용소에서 (양장) - 빅터 프랭클의
빅터 프랭클 지음, 이시형 옮김 / 청아출판사 /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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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사람은 누구나 저마다의 힘든 경험이 있다.

그리고 누구나 각자의 방법으로 그 곳을 해치고 살아 나온다.

물론 그 힘든 경험에 뭍혀 타인이나 스스로의 의지로 삶을 마감하는 경우도 있다.

중요한 건...

살아남은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살아남았느냐는 것이다.

어떤 의지를 가지고 살아남았고...

지금 살아 있는 나는 어떤 상태의 존재가 되었냐는 것이다.

만약 내가 살아남았다고 해도 과거의 내가 죽었다면...

예를 들어 나의 꿈, 이상, 삶의 목적....

이렇것들이 죽은 채로 살아남았다면 살아도 산 것이 아닐 것이다.

 

 

이 책은 빅터 프랭클린(책에는 프랭클이라고 적혀 있는데.. 나는 이 발음의 이름이 편하다.)이라는 유대인 의사가 나치의 포로수용서에서의 경험을 적은 수기이다.

그는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서 극단적인 수용소에서 살아 남았다.

그는 어떻게 살아남았느냐고 묻는 사람들에게 그것을 묻지 말아달라고 말한다.

 

"만약 지금 그 누가 있어서 사람은 어떠한 환경에도 적응할 수 있다는 도스토옙스키의 인간에 대한 평범한 정의의 진실성을 우리에게 물어 온다면 우리는 기꺼이 다음과 같이 대답할 것이다. 그렇다! 사람은 어떠한 환경에도 적응할 있다. 그러나 우리가 어떻게 적응했는지를 묻지 말아 달라"

 

이 문장을 읽으면서 저자가 겪어 온 삶이 어떤 삶이었는지를 감히 짐작할 수 있었다.

너무나 끔찍한 포로 생활이었기에 그 곳에 도착한 사람들은 자신이 처한 상황을 인정할 수 없었다고 말한다.

그들은 사람으로서의 대우를 받지 못했다.

단지 죽기 전에, 패기도기 전에 대기 상태의 물건 취급을 받았다.

열악한 수용소 상황과 극단적인 노동, 억압으로 인해 사람들은 죽어가기 시작했다.  

비록 죽음의 현장으로 끌려가지 않아도 이미 삶의 의미를 상실한 사람들은 건강을 잃기 시작했고...

나치들은 그런 사람들부터 가스실로 보냈다.

또한 가스실로 가지 않아도 스스로 삶의 의미를 잃어버리고 고압철조망에 손을 대고 자살을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곳에서 그는 죽어가는 사람들과 살아가는 사람들을 비교한다.

죽어가는 사람들의 특징은 삶의 목적을 잃어버린 사람들이다.

내가 왜 견뎌야 하는지..

이 수용서에서 벗어나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잃어버린 사람들이다.

미래에 대한 삶의 목적을 상실한 것이다.

사랑하는 가족이 죽고, 모든 것을 빼앗기고, 인간 이하의 대우를 받고...

살아야 되는 이유를 상실한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은 스스로 죽어가고, 결국 가스실이나 자살의 길로 가게 된다.

 

반면 살아남은 사람들은 삶의 목적이 있는 사람들이다.

내가 이 곳에서 왜 살아 남아야 하는지에 대한 이유가 있는 사람들은 어떤 상황 속에서도 살아남았다.

저자는 이 곳 수용소의 실상을 알리고, 가족을 만나기 위해서 살아야 한다는 목적을 설정했다.

(물론 가족은 이미 다른 수용소에서 죽음을 맞이했지만 저자는 이 사실을 몰랐다.)

그리고 면도를 한다.

저자에게 면도란 삶이 목적이 있다는 육체적 증거이다.

그리고 그는 살아남았고...

자신의 경험을 통해 로고테피라는 심리학을 만든다.

로코테라피는 삶의 목적을 제시하는 심리학의 분야이다.

 

이 책의 전반부는 수용소에서의 저자의 경험이고...

후반부에서는 로고테라피에 대한 이론이 나온다.

힘겨운 삶을 살고 있는 사람이나...

그런 삶을 헤치고 나온 사람이라면 꼭 일기를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그리고 수용소에서는 언제나 선택을 해야 했다. 매일같이 때때로 결정을 내려야 할 기회가 주어졌다. 그 결정이란 다름 아닌 당신 자신과 당신의 내적 자유를 빼앗겠다고 위협하는 권력층에 당신이 굴복할 것인가 하지 않을 것인가 하는 결정이었다. 그리고 자유와 존엄성을 포기하여 환경의 노리개가 되어 판에 박힌듯한 전형적인 재소자가 되지 않느냐 하는 결정을 내려야 하는 것이다.(P112)"

 

"그러나 최종적인 분석을 해보면 죄수가 어떤 종류의 인간이 되느냐 하는 것은 그 자신의 내적인 결심의 결과이지, 수용소에서 받은 영향만으로 이루어진 결과가 아니라는 점이 분명해진다. 따라서 근본족으로 그와 같은 환경에 처한 어떠한 인간이라 할지라도 지적으로, 정신적으로 자기 자신이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를 결정할 수 있다. 그러니까 강제수용소와 같은 곳에 있다 할지라도 그는 인간의 존엄성을 간직할 수 있다.(P113)"

 

"이 세상에서 내가 두려워하는 한 가지 사실은 내가 겪어야 하는 괴로움이 헛되다는 것 오직 그것뿐이다.......... 이 말은 강제 수용소에서 최후의 내적 자유는 사실 할 수 없다는 사실을 행동으로써, 고통과 죽으믕로써 증언을 해 준 순교자들을 알게 된 이후 빈번하게 나의 마음 속에 떠오르곤 했다. 그러니까 그들이 받은 고통은 보람찬 것이었고, 그들이 고통을 참고 견뎌 낸 방법은 순수한 내적인 성퓌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빼앗길 수 없는 정신적 자유야말로 삶을 의미있고 목적이 있는 것으로 만드는 것이다.(P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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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의 힘 - 만족 없는 삶에 던지는 21가지 질문
김형철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5년 4월
평점 :
절판


 

 

이 책의 띠지에는 '한국의 마이클 샌델 김형철 교수'라고 적혀져 있다.

처음 책을 받아 보았을 때 마이클 샌덜 교수의 정교한 논리를 기대하기도 하고...

다시금 복잡하고 현란한 논리를 읽을 것에 대해 조금 두려움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이 책은 선전문구와는 달리 서양의 논리적인 측면만이 강조된 책이 아니다.

 

보통 동서양 철학은 논리적인 흐름에서 크게 차이가 난다.

서양철학은 모든 것에 논리적인 흐름이 있고, 논리적인 결론이 있다.

18세기 합리주의 이후부터는 더욱 더 이성과 논리를 중요시한다.

사실 합리주의라는 것이 수학에 근거를 두고 있다.

계산적인 논리에 맞아 떨어지는 것만을 진리로 인정한다.

 

반면 동양철학은 논리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논리보다는 깨달음을 강조하다.

노자의 도덕경 첫머리에는 도가도비상도(道可道非常道)라는 말이 있다.

도를 일단 도라는 글자로 정의를 하면 그것은 더 이상 원래의 도가 아니라는 말이다.(나름대로의 해석..ㅠㅠ)

어떠한 진리를 일단 언어의 틀에 가두어 두면 그것은 그 틀에 갇혀 더 이상 원래의 진리의 모습을 유지할 수 없다는 생각일 것이다.(이것도 나름대로의 해석..ㅠㅠ)

그런 의미에서 동양철학은 모든 것을 논리로 결론 내리기 보다는 깨달음을 중요시한다.

 

이 책을 읽다보니 이런 동서양의 철학이 한 책에 어울려져 있는 느낌을 받았다.

어떠한 주제에 대해서 어떤 때는 매우 논리적으로 접근을 하다가도...

또 어떤 때는 삶에 대해서 추상적인 깨달음을 강조하기도 한다.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21가지 주제 역시...

어떤 것은 매우 논리적인 접근이 필요한 주제들이 있다.

예를 들어 '정의는 누구를 위한 것인가?' '열 명을 살리기 위해 한 명을 죽일 것인가?' 등이다.

반면 매우 추상적인 주제들도 있다.

'인생은 왜 짧은가?' '죽음은 두려운 대상인가?'등이 그렇다.

이런 주제들을 때로는 논리적으로 때로는 추상적으로 균형을 이루며 접근하는 것이 이 책의 장점이다.

 

저자 역시 모든 것을 수로 계산하고, 논리로 맞추기 보다는 깨달음과 성찰, 삶의 여유를 강조한다.

 

 

이 책의 초반은 매우 쉬운 주제와 공감이 가는 이야기로 시작된다.

초반부를 읽을 때는 철학교수가 쓴 책이라고 생각하기 힘들만큼 쉬운 이야기다.

주로 삶에 대한 질문들을 우리가 잘 아는 이솝우화나 고전 등에 나와 있는 이야기로 풀어간다.

처음 읽을 때는 조금 실망하기도 했다.

또 뻔한 이야기인가?

그런데 조금씩 주제가 깊어지고, 내용도 깊어진다.

(접근 방법이 매우 좋은 것 같다.)

중간부분에서는 마이클 샌덜 교수의 책에 나왔던 정의에 대한 주제들을 언급한다.

그러나 마이클 샌덜의 책보다는 훨씬 접근 방법이 쉽고.....

이론들에 대한 설명도 매우 심플하면서도 이해하기 쉽게 접근 한다.

 

 

 

 

예를 들어 피자를 나누는 가장 정의로운 방법이란 주제에서는 롤스의 정의론의 개념들을 설명하는데...

롤스의 두 원칙인 평등의 원칙과 차등의 원칙, 그리고 무지의 장막(또는 무지의 베일이라고도 부름)의 개념을 아주 쉽게 설명하고 있다.

(사실 롤즈의 '사회정의론'의 구입하고 10년째 읽기를 시도하다가 포기하기를 반복하고 있을만큼 내게는 어렵고 무거운 책이다..ㅠㅠ)

 

 

아마 저자가 일반인들이 철학을 매우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고려를 한 것 같다.

또한 철학적인 주제가 이론이나 개념에만 머무르지 않고 실제 생활에 필요한 부분들을 다루고 있다.

자살의 문제라든지, 감시의 문제, 분배의 문제등이 언급되고 있다.

철학을 모르는 일반이나 청소년들도 읽기가 쉬울 것 같다.

다만 어떤 주제에 대해서 조금 깊게 들어가고 싶은 부분에서는 아쉬움을 남긴다.

각주 등을 통해 조금 더 깊게 설명해 주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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