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내린다. 아마 이 비가 그치고 나면 완연한 가을로 접어들려나 보다. 올해는 여름이 그 끝자락을 유독 놓지 않은것 같다. 무엇이 그리 아쉬웠던가. 사상 최고의 낮기온을 기록하며 나름대로 성실한 여름이었다. 사계절중 유독 짧은 가을의 원성을 어찌 감당할라고. 여름아! 이제 그만 움켜잡은 끝자락을 슬며시 놓아줘! 내년에 또 시원한 소나기로 만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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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ika 2004-09-06 06: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젯밤 비오는 소리 들으며 잠들었는데, 밤새 그쳤나봅니다.... 아침의 서늘한 기운에 이제 진짜 여름이 가는가보다 생각해봅니다. 빗방울이 너무 예쁘네요...

진주 2004-09-06 06: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긴 아직 비는 오지 않고 하늘이 흐려요.
바람에 비냄새가 묻어와 오늘은 긴팔 옷을 입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송다"가 이름처럼 예쁘게 사뿐이 지나갔으면 좋겠네요.
이젠 모두가 느끼는 가을이겠죠?

파란여우 2004-09-06 10: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을에 비오면 안됩니다. 첫째는 농작물이 열매 맺는 일에 지장을 초래하고, 둘째는 제가 외로워지거든요..흑흑..그나마 햇살이 비춰 주어서 얼마나 고마운 월요일 아침인지 몰라요^^

물만두 2004-09-06 10: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송다가 온다지요. 아무탈 없이 지나가야 하는데... 울 엄마 "송자"가 온단다 이러셔서 웃었지만 웃을일이 아닌듯.. 여우성님 말씀대로 비 그만 오고 곡식 여물게 태양이 따땃하게 비췄으면 합니다...

ceylontea 2004-09-06 11: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름비.. 사진 너무 예쁘네요.. 이 사진 보고 여름도 기뻐서 내년을 기약하지 않을까요?
퍼갑니다.. ^^

stella.K 2004-09-06 11: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진 진짜 예뻐요. 어젯밤 비가와서 오늘 아침은 더 선선할 줄 알았는데, 아직은 여름 기운이 남아있긴 하네요. 비가 한번씩 더 올수록 가을은 더 가까이 오겠죠. 여름에 덮었던 얇은 이불대신 좀 두꺼운 이불 내려덥고, 방에 보일러 한번씩 돌려야 감기 안 걸려고 따뜻하게 잘 수 있는 가을이. 아, 가을 오는 거 정말 싫다.ㅜ.ㅜ

잉크냄새 2004-09-06 12: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곳은 지금 화창합니다. 한낮의 열기도 어느덧 수그러진듯도 싶군요.^^
가을비는 왠지 좀 서글프죠?

비로그인 2004-09-06 13: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처음 글 남기는 듯 하네요. 사진 퍼갑니다^^

미네르바 2004-09-07 00: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빗방울이 튀기는 모습이 정말 멋져요. 어떻게 저렇게 찍는다요?
저도 파란 여우님처럼 가을에 비오면 안된다요. 쓸쓸해서 안된다요.
그냥 가을 바람만으로도 감당하기 힘들다요.^^

잉크냄새 2004-09-07 23: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리움이 눈처럼 쌓인 거리를 나 혼자서 걸었네 미련 때문에...
최 헌의 < 가을비 우산속 > 이 떠오르네요.
올 가을이 모든 님들에게 풍성한 가을이 되기 바랄께요.
 
 전출처 : 파란여우 > 알베르 카뮈-브레송


브레송(Herri Cartier-Bresson)

'알베르 카뮈(Albert Camus)'

1947년 작품


바로 이 사람이 카뮈이다. 외투 깃을 올리고 담배 한대를 피워 문 남자는 이쪽을 응시한다. <결정적 순간>으로 유명한 브레송이 찍은 이 사진은 카뮈의 몇 안 되는 사진 중의 걸작으로 뽑힌다. 또랑해 보이는 눈동자를 보면서 그가 그토록 괴로워한 실존과 허망은 어디에서도 찾아 볼 수 없다. 그저 성실한 우리의 샐러리맨 이웃 가운데 한 명 같은 친근한 분위기를 보이고 있다.  이 사진을 보면서 감성 풍부하지만 때로는 예리한 '잉크냄새'님이 떠오르는 이유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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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04-09-05 02: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렇게 멋진 깊은 눈을 가진 사진속에서 나를 떠올려 주시다니 기분 좋은 일이다.
난 또랑해 보이는 깊은 눈을 가지지 못했지만 그저 성실한 우리의 샐러리맨 이웃 가운데 한명이죠.^^

水巖 2004-09-05 06: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멋진 사진 갖고 싶네요. 그 젊은 시절 좋아하던 카뮈, 이방인, 반항적인간, 페스트....... 아, 그러다 보니 요사이 반항적 인간이 안보이네. 다시 찾아 보아야겠네.

갈대 2004-09-05 22: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까뮈 전집을 읽는 게 제 작은 소망입니다. 정말 '작가'라는 말이 잘 어룰리 얼굴이네요.
파란여우님 말씀처럼 잉크냄새님도 실제로 뵈면 저 사진과 비슷한 느낌일 것 같습니다

Laika 2004-09-06 10: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까뮈의 사진을 본적이 있긴한데, 이 사진 보니 너무 멋져서 할말을 잃습니다.
잉크님 정말 좋으시겠네요...까뮈를 보며 잉크님을 떠올리다니...
간만에 까뮈의 책을 다시 읽어보고 싶어집니다.

잉크냄새 2004-09-06 22: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사실여부를 떠나서 참 기분좋은 일입니다.^^
아 그러고 보니 저도 갑자기 까뮈의 책이 읽고 싶은 생각이 드네요.

미네르바 2004-09-07 00: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알베르 까뮈... 대학 시절 제 일기장에, 생떽쥐베리, 보들레르, 랭보와 함께 가장 많이 오르내렸던 인물이죠. 그리고 까뮈라는 인간에게 참 많이 열패감을 느꼈더랬죠. 어쨌든 그땐, 저도 피끓는 청춘, 20대 초반이었으니까요. 까뮈와 사르트르는 함께 실존주의 철학자로 묶이지만 사실 노선은 조금 다르다고 할 수 있죠. 그러나 그들은 둘 다 '인간은 무익한 정열이다'라고 정의 내리죠. 사실 전 같은 실존주의 철학자라고 해도 까뮈에게 훨씬 더 인간적인 매력을 느꼈어요.

<이방인>의 '뫼르소'나 <시지프스 신화>의 '시지프스' 모두 부조리의 영웅이죠. 사실 <이방인>의 가치는 <시지프스 신화>가 집필되고 나서 빛이 났다고 할 수 있겠죠? 그 전까지 뫼르소라는 인간은 도대체 어떤 인간인지, 무뚝뚝하고, 음울하고, 그러다가 갑자기 흥분하고, 반항하고 그러면서 온순해지는 이 인물을 통해 까뮈는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몰랐거든요. 말하자면 <시지프스 신화>는 철학에세이이지만 뫼르소라는 인물이 어떤 인간인지를 알게 해주는 책이죠. 자기의 영원히 계속되는 노력의 헛됨을 알면서도 불평하지 않고 그것을 되풀이하는, 저주받은 영웅 시지프스... 그는 분명 위대한 인간이라고 봅니다.

결국 실존적 삶이란 부조리와 혼돈, 공허 위에 세워져 있다고 보는 것이겠죠. 그리고 삶의 의미와 가치를 밖에서 찾는 것이 아니라 우리 실존 내부의 치열한 투쟁과 순간 순간의 결단과 고뇌와 실천을 통해 만들어가야 한다고 보는 것이죠.

까뮈의 저 얼굴을 보니 순간 반가움에 횡설수설했네요. 그리고 저 사진은 책세상에서 나온 까뮈전집의 표지에도 나와 있지요. 다시 보니 참 반갑네요. 책세상에서 김화영씨 번역으로 24권의 까뮈 전집이 나와 있어서 한 권 한 권 구입해서 10여권 정도 있는데, 아직도 사야될 것이 더 많네요. 한 때 나를 들뜨게 했던 이런 작가들을 보면 다시 흥분되고 그 시절로 돌아가는 착각을 일으켜요. 지금 잠시, 전 20대 초반으로 갔다 왔습니다요.^^ 아, 그리고 파란 여우님 말씀처럼 왜 까뮈의 모습에서 잉크님을 떠올리게 되는지 ^^*

잉크냄새 2004-09-07 23: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네르바님! 보들레르도 그렇고 까뮈도 그렇고 님으로 인하여 그들에 대하여 조금은 느낄수 있을것 같아요. 왠지 가을에 어울릴것 같은 작가들, 다시 한번 만나보고 싶네요.^^
 

참 많은 길을 다녀보았다. 시원하게 뚫린 고속도로부터 시골의 흙먼지 이는 작은 길까지 시간이 허락하는 한 되도록 많은 길을 다니고 싶었다. 예전에는 사진으로 보는 외국의 길들을 동경했는데 직접 차를 끌고 국도를 누비면서 만나는 소중한 풍경에 매료되어 우리나라의 국도를 더 사랑하게 되었다. 국도를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야생화 같다고나 할까. 자세히 보아주고 오래 보아주어야 그 소중한 모습을 부끄러운듯 살포시 드러낸다.  

1. 그 시절 무엇을 던지듯 버렸던가

20대 초반의 2년간은 세상이 암흑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충분히 버리고 돌아설수 있음을, 또 그런 나를 충분히 다독여줄수도 있는 일들을 왜 그리 어려워했던지. 세상이 서글프고 힘들다고 느껴질때는 어김없이 춘천행 통일호에 몸을 실었다. 지친 몸과 마음을 받아줄 친구들이 다니던 강원대에 가기 위해서였다. 우연이겠지만 그 날은 꼭 비가 왔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지만 그 당시 춘천행 기차의 맨 뒤칸은 막혀있지 않았다. 비가 내리는 그곳에서 멀어져가는 기찻길 위로 던져버린 담배위로 난 또 무엇을 던지듯 버렸던가. 서로 만나지 못하는 기찻길이 아득히 만나는 그 곳으로 무심하게 던져버린 시선위로 난 또 무엇을 던지듯 버렸던가. 언젠가 세월이 더 흐르면 그때 던진 무엇을 생각하며 한번 가보고 싶은 길이다.

2. 그때 꼬맹이들은 어느 세상에 살고 있을까

청량리 11:00시발 강릉 7:30분착 기차는 참 많은 꿈을 싣고 달리던 기차이다. 방학때마다 집으로 가는 길에 이 기차를 타곤 했다. 청량리에서 영주를 거쳐 다시 북상하여 탄광촌을 지나 옥계의 아침해를 맞이하던 기차는 아름다운 풍경 그 자체였다. 책을 읽다 자다를 반복하다 보면 어느덧 서서히 밝아오는 동해의 아침을 맞이한다. 거치는 간이역마다 밤을 싣고 새벽을 싣고 올라탄 세상풍파에 지친 이들의 꿈을 싣고 달리던 기차는 밤을 헤치고 내리는 이들의 등을 토닥거려주었다. 언젠가 태백에서 폭설로 기차가 연착된 적이 있다. 한참후 다시 출발을 하려는 순간 유리창위로 부딪히는 눈덩이들, 한밤중 눈만큼이나 하얀 가슴을 안고 있을 탄광촌의 꼬맹이들이 기차를 따라 달리며 눈을 던지고 있었다. 그날 밤 온통 하얀 꿈을 꾸었을 그 꼬맹이들은 지금은 어느 세상에서 또 하얀 꿈을 꾸며 살아가고 있을까

3. 지금이라면 그대로 풍경이 되었을까

구례의 시골장이 끝나고 시골 할머니들의 다라를 들어주며 같이 올라탄 구례에서 하동으로 가던 시골버스는 정이 듬뿍 담겨있다. 오늘 장사 이야기, 자식들 이야기, 얼마전 죽은 누군가의 이야기를 얼핏 들으며 바라보는 섬진강의 초록빛 물결. 갓 풀리기 시작한 섬진강 위로 땟목이 떠가고 막 길을 나서기 시작한 어느 시골부부의 다정한 모습이 지나가고 다시 날개짓을 시작한 새들이 날아들던 그곳에서 이대로 살아도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 한번의 발걸음으로 그곳에 풍경이 되고 싶었다. 섬진강변의 아름다움과 시골버스의 이런 정겨움이 김용택 시인의 발걸음을 붙잡은 것인지도 모른다. 지금이라면 그대로 풍경이 되었을까. 아직은 아니다. 아직 가야할 길이 있기에 시선 한번 던지고 다시 길을 나설것이다.

4. 저마다의 풍경을 만들어가는거다

동해안을 따라 태백산맥처럼 길게 늘어진 7번 국도는 어느 길보다 아름답다. 차를 때릴듯 달려드는 파도, 산속을 달리다 갑자기 맞이하는 드넓은 바다는 말로 표현하기가 어렵다. 그냥 막혔던 가슴이 확 트인다고할까. 절로 와~ 하고 탄성이 나온다. 수많은 솔숲에서 뿜어져 나오는 향기로운 바람과 파도가 던져주는 짤짜름한 바람의 어울림. 그것이 7번 국도의 생명인지도 모른다. 작년과 올해 여름휴가는 모두 7번 국도를 달렸다. 확장공사의 진행 사항을 보니 내년에는 길의 모습이 바뀔것 같다. 그러나 서글퍼하지 말자. 어차피 길도 사람과 같아서 또 저마다의 풍경을 만들어가는거다.

5. 가보지 못한 길

너무 가보고 싶었으나 가보지 못한 길이 있다. 송도와 수원을 연결하던 협궤열차이다. 95년 12월 31일 영원히 사라졌으니 앞으로도 가보지 못할 길이 되고 말았다. 직접 보지는 못했으나 학교 시화전마다 빠지지 않는 소재로 등장하던 풍경이 소래포구의 두량짜리 협궤열차였다.  갯내음과 추억을 싣고 달린다던 협궤열차. 얼마전 소래포구의 철길을 보러갔지만 너무 많은 인파속에서 두량짜리의 협궤열차 풍경을 상상하기란 힘들었다.

길을 사랑하려면 길 위에 군림해서는 안된다. 길 위에서 만나는 수줍은 야생화와 작은 짐승과 돌멩이처럼 그냥 우리도 선 자세로 굳어버려 풍경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나서 길 위에서 똑똑 노크를 해볼 일이다. 그러면 수줍은 듯이 열리는 그들의 세상을 만날수 있을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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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9-04 21: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파란여우 2004-09-04 22: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의 발자국따라 저도 지금 이 길에 찾아왔다는 거 아닙니까? 소래포구의 열차에서 만난 그 때의 그 잘생긴 남자가 님이셨군요...^^

잉크냄새 2004-09-04 23: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가보지 못한 길 > 내용을 쓰면서 파란여우님은 분명 협궤열차를 타보셨으리라 생각했답니다.
갯내음에서 삶을 읽어내시는 님을 떠올려봅니다.^^

2004-09-05 23: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미네르바 2004-09-07 00: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멋진 여행을 하시고 오셨나봐요.
저도 길을 다니는 것을 참 좋아하지요. 걷는 것이든, 자동차로 달리는 것이든... 고속도로가 질주의 본능을 가지고 있다면, 국도는 오래 보아주어야 할 도로...그래서 천천히 여기 저기 보아주어야 할 길 같아요. 그런데 님의 글을 읽으니 갑자기 기차 여행을 하고 싶어지네요.

작년 가을 춘천에 간 적이 있어요. 그리고 처음으로 강원대도 다녀왔구요. 깊어가는 춘천의 가을은 참 쓸쓸하던데... 단풍이 든 경춘가도를 달리는 것도...제 마음이 그랬는지도 몰라요. 왜 깊어간다(기본형:깊다)는 형용사는 가을이라는 계절에만 어울릴까요? 봄이 깊어간다, 여름이 깊어간다, 겨울이 깊어간다-음.. 겨울은 조금 어울리는군요 그래도 가을이 가장 잘 어울리네요.(순간, 왜 이 단어가 생각났는지...)
수인선 협궤열차에 대해선 저도 오랫동안 동경만 했지, 실제로는 보지도 못했답니다.
<길을 사랑하려면 길 위에 군림해서는 안된다> 울림을 주는 글이네요. 저도 건강이 회복되면 다시 길을 떠나고 싶어지네요. 멋진 여행기에요.

잉크냄새 2004-09-07 23: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봄이 손짓한다. 여름이 무르익다. 가을이 깊어간다. 겨울이 저물어간다.
왠지 계절에도 점층법이 적용되고 있다는 생각이 드네요. 그래요. 올 가을 건강한 님의 모습으로 느끼는 가을 저도 전해듣고 싶네요.
 

春雨 , 봄비를 이름으로 가진 동네 형이 있다. 어린 시절의 기억속에 커다란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형은 동네 골목대장이었다. 그 형은 5살 위인데 동네에서 내 위로 5살 터울 사이에 몇명이 없어서 어린 시절을 거의 같이 보냈다. 턱과 손등에 커다란 갈색의 점이 아직도 눈에 선한 그가 오늘 문득 떠오른다.

그의 집은 만물상이었다. 창호지 문을 열면 벽위에 위치한 이불대 밑으로 희귀한 물건이 가득했다. 라디오 트랜지스터, 계급장, 우산대로 만든 소총, 우표, 낡아빠진 책, 나비 표본....동심을 잡아끄는 물건들이 산재했다. 우리는 그 방에 모여 후라이팬에 빠다를 발라 메뚜기를 구워먹고 입심이 남달랐던 형의 무용담을 밤새 듣다 잠이들곤 했다. 격렬했던 옆동네와의 언덕배기 고수 전투에 머리를 맞대고 작전을 짜기도 했다. 아무것도 모르고 즐거웠던 시절의 한구석에 그는 사람좋은 웃음으로 항상 남아있다.

그러나 그는 서글펐던 기억으로 더 남는다. 이런 생각을 한것은 물론 그 당시의 일은 아니다. 한참이 지난후의 일이다. 그의 아버지는 동네에서 소문난 주정뱅이였다. 형의 어머니도 술주정과 구타를 피해 어디론가 달아났다. 술에 취한 날은 어김없이 욕설과 구타가 난무했으며 그는 아버지를 피해 언덕으로 급히 도망갔다. 그를 따라 우리도 같이 뛰었던 적도 있다. 그리고 아무일도 없다는 듯이 산과 바다를 뛰어다녔다.

어느 눈내린 겨울 아침이었다. 집에 기르던 개가 개집밖에서 오들오들 떨고 있었다. 개집안을 살펴보니 형이 개집에서 자고 있었다. 밤새 개를 껴안고 잠이 들었었던 모양이다. 형을 집안으로 불러들인 어머니가 형집에 달려가서 한참을 큰소리로 미친 주정뱅이가 애를 잡으려고 한다고 소리쳤다. 아마 한밤중에 술주정과 구타에 못이겨 도망쳐 찾아들어간 곳이 개집이었던 모양이다. 오들오들 떠는 형을 아랫목에 앉히고 아침을 먹이며 어머니는 " 불쌍한것, 너의 엄마가 도망간 걸 이해해라" 고 말하곤 했다. 그래도 철없던 나는 마냥 즐거웠다. 그와 잠시후면 놀러나간다는 사실만으로도. 지금 생각해도 눈물을 본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마 울고 있었을것 같은데...  

형이 중학교를 졸업하고 어디론가 취직을 해서 떠나면서 우리들의 어릴적 추억도 끝이 났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나도 사춘기를 거치고 어른이 되었다. 언젠가 그 형의 결혼소식과 딸아이를 낳았다는 소식도 어렴풋이 들은것 같다. 도망간 형 어머니의 죽음도 전해들었다. " 아~ 형은 이렇게 또 살아가고 있구나" 하며 참 무심하게도 살아왔다. 가을바람속으로 어렴풋한 기억 한조각이 떠오르는 걸 보니 가을인가보다. 올 추석에는 끊어진 소식이나마 다시 알아봐야겠다. 그리고 술 한잔 기울이며 그때 눈물을 흘렀는지 물어봐야겠다. 아마 허허 웃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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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04-08-31 21: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春雨...봄비...봄비처럼 이상야릇하게 울적한 감흥이 젖는군요...그 분이 행복하시길..

stella.K 2004-08-31 22: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만 둘러보면, 소설 같은 이야기들이 참 많은 거 같아요. 춘우 형님이란 분, 모르긴 몰라도 오래도록 잉크님 어머니를 잊지 못해 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누구나 어려울 때 나에게 따뜻하게 해 준 사람을 잊지 못하는 법이거든요. 얼마나 다행인지...
춘우형 정말 행복하게 잘 살았으면 좋겠네요.^^

진주 2004-09-01 06: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릴적에 고생한 사람들이 가정을 잘 일군다고 하더라구요.
춘우형님이란 분도 어디선가 좋은 아빠 좋은 남편으로 살게 계시겠죠.
이야기를 엮어가는 잉크님의 글솜씨가 아주 돋보이네요.

ceylontea 2004-09-01 11: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설같은..그것도 잔잔한 소설같은 이야기입니다.. 그 분 행복하시기를..

Laika 2004-09-01 13: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슷한 이름을 가지고 살다간 누군가가 생각났었답니다. 정말, 잉크님 글 읽을때마다 단편소설 같다는 생각들어요.... 저도 그 분 행복하시길...

잉크냄새 2004-09-01 19: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마 다시 만나면 서글픈 이야기보다는 즐거웠고 신나게 뛰어다녔던 그 시절의 추억을 더 소중하게 이야기할것 같아요. 어차피 지나간 일들은 슬프건 기쁘건 추억으로 이야기할수 있을테니까요.

미네르바 2004-09-03 22: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알라딘 와서 생긴 버릇 중에 하나가 옛날 일을 잘 떠올린다는 것이에요. 그렇게 해서 또 글 하나 쓰고...^^ 그 오래된 기억들이, 그 당시에는 슬프고, 남루해 보여도 세월이 갈수록 참 정겹고, 그리워져요. 아마 그 춘우형이란 분 만나면 즐거웠던 일만 떠올릴 것 같아요. 아니, 설령 슬펐던 일이라도 세월의 힘이 그 슬펐던 일을 그리움으로 전환시켜 줄 것 같아요. 올 추석 때 그 분 만났으면 좋겠네요.

잉크냄새 2004-09-04 19: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월은 정말 묘한 매력이 있는것 같아요.
님의 말씀처럼 모든 아픔, 슬픔을 그리움으로 바꾸어버리네요.
 

회사 공지사항에 금연규정이 올라왔다. 지정된 휴게실의 흡연공간을 제외한 나머지 장소에서 흡연 발각시 1차는 시말서요, 2차는 징계위원회 회부라고 한다. 몇년전 금연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된 이후로 금연규정에 관하여 몇차례 올라온 적은 있었다. 그 이후 사무실에서의 흡연은 자취를 감추었으나 회의실과 화장실의 흡연은 단속에도 불구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나도 거기에 한몫했다. 하지만 이번건은 분위기가 심상찮다. 시범케이스로 걸리면 꽤나 고생할것 같다.

이제 흡연이 가능한 공간은 휴게실 한쪽 구석에 마련된 작은 흡연실이다. 너구리 잡는다는 말이 있듯이 작은 공간에 들어앉아 피우는 담배는 맛이 없다. 그렇다고 학생들처럼 화장실에서 몰래 피우고 싶은 마음도 없다. 애연가들의 주장처럼 담배피울 권리에 대하여 말하고 싶지도 않다. 그냥 이번 일을 계기로 다시 한번 금연을 해볼까 생각중이다. 아직 시작은 하지 않았지만 벌써부터 담배와 관련된 일들이 살포시 떠오른다.

1. 어디서 담배연기는 남의 애을 끊나니

흡연자들이 담배를 가장 애타게 떠올리는 곳이 화장실이다. 이번 금연규정에서 화장실을 가장 크게 언급한것도 그런 이유이다. 엉터리 의학 상식인 담배 연기의 흐름과 대장운동의 연동작용이 습관처럼 굳어져버렸다. 흡연자들에게 담배는 휴지와 동일하다. 화장실에 들어앉아 휴지가 없을때의 황당함을 상상해보는 것만으로도 흡연자들의 화장실 흡연욕구를 미루어 짐작할수 있을 것이다.

요즘 신드롬을 일으키고 있는 성웅 이순신조차도 그런 욕구를 시조로 남겼다고 한다. 몇백년의 세월을 초월하여 애연가들의 가장 선호하는 시조로 자리잡았다.이 시조는 한산대첩을 하루 앞두고 변비에 걸려 찾아간 화장실에서 애타게 읊조리던 그의 인간적인 모습을 볼수 있다.

한산섬 달 밝은 밤에 변기에 홀로 앉아
큰 신문 옆에 차고 깊은 시름 하던 차에
어디서 담배연기는 남의 애를 끊나니

2. 식후연초는 불로초라

화장실의 흡연 욕구만큼이나 참기 어려운 것이 식후에 피우는 담배이다. 여기에도 어김없이 등장하는 엉터리 의학이 담배 연기와 소화 촉진제 분비의 상관관계이다. 레스토랑에서 먹는 후식정도라고나 할까. 국없이 밥을 먹은 경우나 식사후 이를 닦지 않은 기분을 상상하면 쉽게 짐작할수 있다.

불로장생을 애타게 원했던 진시황이 마지막에 사용한 방법이 식후연초라는 얼토당토한 전설이 내려오고 있다. 김삿갓 또한 방랑시절 십여차례 찾은 금강산에서 후세에 길이 남을 명언을 남겼다. 조선시대의 엄격한 통제에 의하여 뒷부분이 삭제된 명언을 소개한다.

금강산도 식후경이요
식후연초는 불로초라

3. 오늘 아침을 다소 행복하다고 생각는 것은

참을 인자 석자면 살인도 면한다고 한다. 붓과 벼루가 준비되지 않은 상황에서 참을 인자 석자의 노릇을 하는 것이 담배이다. 담배를 피우는 짧은 시간동안 자신의 문제를 돌이켜보고 흥분한 마음을 추스릴수 있는 것이다. 내뿜은 담배연기에 내부에 들어앉은 불만의 덩어리들을 그렇게 날려보내는 것이다.

혼자만의 시간과 공간, 그 곳에서 친구처럼 나를 위로해주는 것이 담배이던 시절이 있었다. 아픔도 서글픔도 외로움도 그리움도 어차피 담배연기처럼 허망한 것임을 후우~ 하고 품어내곤 했다. 나쁜 친구라고 표현해도 좋을것이다. 가끔은 기대어 울수 있는 어깨를 대신해주곤 했으니까. 그래서 아마 나에게는 이것이 금연의 가장 큰 적일것이다.

오상순의 호는 공초(空超)이다. 그의 호를 꽁초라고 잘못 알고 참 지독한 애연가인가 보구나 생각했던 적이 있다. 작은 것에 행복을 느낀 문학가들이 지독한 애연가인 경우가 많았다. 나도 그들도 담배에서 허망하고도 작은 행복을 떠올렸을까. 여기 소풍 끝내고 하늘로 돌아간 천상병 시인의 작은 행복을 한구절 올린다.

오늘 아침을 다소 행복하다고 생각는 것은,
한 잔 커피와 갑 속의 두둑한 담배,
해장을 하고도 버스값이 남았다는 것. 

9월 1일부터 단속이 시작된다. 추잡스럽게 피우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기에 금연을 다시 시도하고자 한다. 금단 증상은 그다지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으나 오랫동안 사귀던 친구를 멀리 떠나보내는 기분이 든다. 나쁜 친구지만 그래도 어렵고 힘든 시절을 같이 걸어온 그림자같은 친구, 이제는 안녕일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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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04-08-27 13: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해요. 성웅 이순신 장군께서 어찌감히 저런 시조를 읊었을까요? 금연, 잘 생각하셨습니다.^^

Laika 2004-08-27 13: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버지가 담배 때문에 병이 나셨는데도 그 친구 떠나보내기를 어찌나 어려워하시던지..
처음엔 이해름 못했는데, 의지가 강하신 분이 자식들의 원성을 사면서도 그랬던 그 심정을 지금은 쬐금 이해를 할수있을것 같아요...
그래도 잉크님은 젊을 때 그 친구 떠나보내세요...몸에 안좋잖아요...
(9월 1일부터 저도 잉크님을 불시검문 합니다.^^ )

진주 2004-08-27 14: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상순의 호를 공초라고 지은 이유가 애연가였기 때문이라는 글 어디서 줏어 읽었는데요.....

도서관에서 공부하다가 머리 식히러 나오면
휴게실 옥외에 쇠창살로 얼기설기 엮은 흡연실이 있어요.
더구나 4층이라 나무도 한 그루 안 보이는 삭막하기 그지없는 그곳에.
그러나 언제나 남자들이 박실박실 모여 하얀구름을 만들어 내고 있었죠.
담배는 피우는 폼이라도 멋있어야 될텐데
그렇게 죄수-아니면 동물원의 원숭이처럼 쇠창살에 갖혀 어깨와 어깨를
맞대고 앉아 피워야 하는지......
우리는 음료수나 커피를 마시며 그들을 감상했어요.
참 불쌍한 사람들 ㅉㅉㅉ...이러면서요.......ㅡ.ㅡ
(듣기 언짢으시죠? 그럼... 끊으세요...)


갈대 2004-08-27 15: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잉크님, 저는 태어나자마자 5평짜리 전세방에서부터 시작해서 지금까지 줄곳 23년을 간접흡연에 시달려온 사람입니다. 그래서인지 어릴 때부터 폐가 안 좋았습니다. 비흡연자의 입장에서 담배연기로 꽉 찬 화장실에 들어가는 기분이 어떤지 흡연자는 조금도 알 수 없을 것입니다. 좋은 기회가 온 것 같습니다. 과감히 담배라는 나쁜 친구를 떨쳐내시길 기원하겠습니다^^

잉크냄새 2004-08-27 20: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들의 격려와 감시(?)에 힘입어 금연을 다시 시도할 예정입니다. 아마 9월부터는 제 서재에서 담배냄새는 나지 않을겁니다.
언젠가 "노화방지에 좋은 담배" "피부미용에 좋은 담배"등등 유익한 담배가 발명되면 그때는 다시 옛추억 되살리며 피워야죠.^^

icaru 2004-08-28 08: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피부 미용에 좋은 담배라...흐흐흠...

이건 딴소리인데....요즘...조모시기가 광고하는 미래파 마스크팩이...동이 나게 팔려 나가고 있다던...얘기가 생각나네요.. 근데...이만원 정도에 팩 달랑 다섯개 들었데요...

남자 화장품 원래 이케 비싸나??

미네르바 2004-08-30 00: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잉크냄새님 홧팅!!! 꼭 금연에 성공하시길 바래요. 그런데 담배가 백해무익한 줄 알았는데 꼭 그런 것만은 아니군요. 한 가지 정도는 유익한 것도 있군요. 외로울 때, 어렵고 힘들 때 친구가 되어주는 것... 그렇지만 이젠 그 친구와 작별을 고해도 될 듯 싶어요. 대신 괜찮은 친구를 만들던지요.^^ 담배보다 훨씬 유익한 친구...

잉크냄새 2004-08-30 19: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스킨이나 로션말고는 사보지 않아서 조모시기가 하는 팩은 모르겠네요.
이제 하루 남았네요. 이번에는 꼭 끊을 예정입니다. 담배는 무조건 백해무익입니다. 그냥 배운것이 도둑질이라고 습관처럼 굳어버려 내 몸의 일부가 되어버렸기에 그러했던 거지요.

ceylontea 2004-08-31 15: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갑자기 MSN 닉으로... "오늘 아침을 다소 행복하다고 생각는 것은"이 뜨는 것을 봤는데... 무엇인가 했더니.. 천상변 시인의 시였군요?
재미있는 글 잘 읽었습니다.. 이번에는 꼭 금연에 성공하세요.

잉크냄새 2004-08-31 19: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MSN 닉네임 멋지네요. 내일부터 금연돌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