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stella.K > 感性事典 2 [이외수 글모음 그리고 ....]

感性事典 2 [이외수 글모음 그리고 ....]   
달팽이 한여름의 고독한 여행자. 그러나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집을 한번도 떠나 본 적이 없는 여행자. 눈보라 겨울이 깊어지면 바람의 함성을 타고 수 천만 마리의 백색 나비 떼가 어지럽게 난무하며 마을에 출몰한다. 눈보라다. 때로는 길이 막히고 통신이 두절된다. 시간도 깊어지고 그리움도 깊어진다. 진눈깨비 저물어 가는 겨울 풍경 속으로 쏟아지는 비창이다. 세월의 통곡이다. 목메이는 그리움이다. 쓰라린 아픔이다. 부질없는 사랑이다. 회한의 눈물이다. 시린 뼈의 신음이다.
사랑 반드시 마음 안에서만 자란다. 마음 안에서만 발아하고 마음 안에서만 꽃을 피운다. 사랑은 언제나 달디단 열매로만 결실되지는 않는다. 사랑에 거추장스러운 욕망의 덩굴식물들이 기생해서 성장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사랑은 나를 비우고 너를 채우려 할 때 샘물처럼 고여든다. 그 샘물이 마음 안에 푸르른 숲을 만든다. 푸르른 낙원을 만든다. 온 천지를 둘러보아도 사랑의 반대말이 없으며 온 우주를 살펴보아도 아름다움의 반대말이 없는 낙원을 만든다. 사랑은 바로 행복 그 자체이다. 구름 때로는 하늘을 떠도는 풍류도인이다. 허연 수염을 나부끼며 세상을 물끄러미 내려다 보고 있다. 때로는 슬픈 영혼의 덩어리다. 암회색으로 온 하늘을 지우고 깊은 우울 속에 빠져 있다. 때로는 범람하는 비탄의 강이다. 하늘 전체를 통곡 속에 잠기게 한다. 온 세상을 적시는 눈물로 소멸한다.
가을 영혼마저 허기진 시인의 일기장 갈피로 제일 먼저 가을이 온다. 고난의 세월 끝에 열매들이 익고 근심의 세월 끝에 곡식들이 익는다. 바람이 시리고 하늘이 청명해진다. 사랑은 가도 설레임은 남아 코스모스 무더기로 사태지는 언덕길. 낙엽이 진다. 세월도 진다. 더러는 소리 죽여 비도 내린다. 수은주가 떨어지고 외로움이 깊어진다. 제비들이 집을 비우고 국화꽃이 시든다. 국화꽃이 시들면 가을이 문을 닫는다. 허기진 시인의 일기장 갈피로 무서리가 내린다. 가을이 끝난다. 가을이 끝나도 외로움은 남는다.
낙엽 수확의 가을이 끝나면 나무들은 잎을 떨구어 자신들의 시린 발목을 덮는다. 바람이 불면 세월의 편린처럼 흩날리는 갈색 엽신들. 모든 사연들은 망각의 땅에 묻히고 모든 기억들은 허무의 공간 속에 흩어져 버린다. 나무들은 인고의 겨울 속에 나신으로 버려진다. 낙엽은 퇴락한 꿈의 조각들로 썩어가지만 봄이 되면 다시금 푸르른 숲이 된다. 숲의 영혼을 덮어주는 이불이 된다.
들국화 기러기 울음소리가 하늘을 청명하게 비우고 귀뚜라미 울음소리가 달빛을 눈부시게 만들면 바람에 실어보낸 그리움의 언어들은 그리움의 언어들끼리 모여 달빛에 반짝이는 詩가 된다. 아무리 멀리 있어도 안타까운 사랑도 아무리 벽이 높아 닿지 못할 사랑도 가을 들녘에 모여 꽃이 된다. 바람이 전하는 한 소절의 속삭임에도 물결같이 설레이며 흔들리는 꽃이 된다. 이름하여 들국화다. . . . ................
출처:본효아줌마 이야기

댓글(3)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잉크냄새 2004-11-16 23: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외수의 감성사전 몇가지 더

방랑 - 외로운 목숨 하나 데리고 낯선 마을 낯선 들판을 호롤 헤매다 미움을 버리고 증오를 버리는 일이다. 오직 사랑과 그리움만을 간직하는 일이다.

불행 - 행복이라는 이름의 나무 밑에 드리워져 있는 그 나무만한 크기의 그늘이다. 인간이 불행한 이유는 그 그늘까지를 나무로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편지 - 오늘날은 고독의 터널 속에 갇힌 사람들의 생존여부를 알리는 통지서로 널리 애용된다.

아! 에디터로 쓰기를 하니까 되네요.^^


2004-11-16 23: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Laika 2004-11-17 01: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움을 버리고 증오를 버리는 일" - 저 그거 하고 싶네요...^^
 
 전출처 : 에레혼 > 체 게바라의 사진 한 장

 

 

 

 

 

 

 

 

 

 

 

 

 

A young Korean woman puts the Major’s dancing skill to test. Pyongyang, December 1960

 

우연히 이 사진 한 장을 만났다.

내가 아직 이세상에 오기 전, 그 사내, 체 게바라가 평양을 방문한 한 때의 모습.....

그는 어리고 여린 조선 처자의 전통 춤사위 한 자락을 따라하며 활짝 웃고 있다.

 

몇 달 전 서점을 하는 절친한 벗이 서점 광고 카피(라디오 광고)를 부탁한 일이 있다.

몇 가지 안 중에서 낙착된 것은 이런 문구.......

'체 게바라'를 기억하시나요?
"리얼리스트가 되자! 그러나 가슴속엔 불가능한 꿈을 가지자!"
 '보르헤스'는 또 이렇게 말했습니다
"책은 꿈꾸는 것을 가르쳐 주는 진짜 스승" 이라구요
내 인생의 꿈을 가꾸기 위해 오늘 나는 책방으로 갑니다

내 인생의 책방-- * * 문고

 

그러나, 이 광고 카피는 광고 사전 심의에 걸리고 말았다. '부적절한 용어 사용'이라는 것이 그 사유였다.

'리얼리스트'란 단어가 문제의 단어였다. 부적절하다니, 무엇에...? 

리얼리스트/ 현실을 바로 보고 현실에 발 디디며 살아가려는 자세가 우리 사회의 기존 질서를 위협할지 모른다는 어처구니없는 인식, 그것이 바로 지금 우리의 '리얼리티'이다!

1960년 평양을 방문했던 체 게바라, "이성으로 비관하더라도 의지로 낙관하라 !"던 체 게바라....

그 후 반 세기가 흘렀어도 우리 사회의 걱정 근심 많은 숱한 규율과 심의는  '체 게바라'를, '리얼리스트의 희망'을 부적절하다고 판단한다.  

 

 

솔레다드 브라보, 그림자들(Sombras)

 

 


댓글(1)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잉크냄새 2004-10-23 10: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우리 모두 리얼리스트가 되자. 그러나 가슴속엔 불가능한 꿈을 가지자 ! " 한동안 가슴속에서 잊혀지지 않는 구절이다. 저고리를 입은 한국여인 앞에서 춤사위에 몸을 맡긴 그의 모습. 전혀 이질적이거나 낯설지가 않다.
 
 전출처 : 비연 > 풍장 -황동규-

 

풍장(風葬)1

- 黃東奎 -



내 세상 뜨면 풍장시켜 다오
섭섭하지 않게
옷은 입은 채로 전자시계는 가는 채로
손목에 달아 놓고
아주 춥지는 않게
가죽 가방에 넣어 전세 택시에 싣고
군산(群山)에 가서
검색이 심하면
곰소쯤에 가서
통통배에 옮겨 실어 다오


가방 속에서 다리 오그리고
그러나 편안히 누워 있다가
선유도 지나 무인도 지나 통통 소리 지나
배가 육지에 허리 대는 기척에
잠시 정신을 잃고
가방 벗기우고 옷 벗기우고
무인도의 늦가을 차가운 햇빛 속에
구두와 양말도 벗기우고
손목시계 부서질 때
남 몰래 시간을 떨어트리고
바람 속에 익은 붉은 열매에서 툭툭 튕기는 씨들을
무연히 안 보이듯 바라보며
살을 말리게 해 다오
어금니에 박혀 녹스는 백금(白金) 조각도
바람 속에 빛나게 해 다오


바람 이불처럼 덮고
화장(化粧)도 해탈(解脫)도 없이
이불 여미듯 바람을 여미고
마지막으로 몸의 피가 다 마를 때까지
바람과 놀게 해 다오.

(시집 풍장, 1984)

 

 

 


댓글(4)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잉크냄새 2004-10-07 09: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바람 이불처럼 덮고
화장(化粧)도 해탈(解脫)도 없이
이불 여미듯 바람을 여미고
마지막으로 몸의 피가 다 마를 때까지
바람과 놀게 해 다오. ]
숙연해진다. 한때 그런 생각이 들었었다. 내가 죽으면 화장을 해서 어느 바람부는 언덕에서 회한없이 뿌려지기를...그것도 잠시나마 풍장이라고 할수 있을라나...

icaru 2004-10-07 10: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남미 어딘가에선 아직도 풍장의 문화가 남아 있다던데..

군산은 검색이 심하군요...흐흐... 몰랐습니다...

비로그인 2004-10-07 16: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황동규 시인의 시를 읽다 보면 많은 부분에서 '죽음'을 접하게 되죠.
그의 시에 있어 죽음은 곧 '아름다운 삶'의 또다른 이름이기에, 이승에서의 모든 걸 훌훌 털어 버리고 "바람과 놀게 해 다오"....이런 싯구절이 빚어진 게 아닐까 하네요.
오랜만에 제가 좋아하는 시 한 편 잘 감상하고 갑니다. ^^

잉크냄새 2004-10-07 18: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죽음은 곧 아름다운 삶의 또 다른 이름이다 ]라....
가끔은 그런 생각이 들더군요. 삶, 사랑, 죽음이 하나의 연속선상에 있다고 믿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생은 어떠한지... 그들은 진정 이 세상의 삶을 소풍이라고 말할수 있고 바람과 노니는 죽음을 꿈꿀수 있는지 궁금하더군요.^^
 
 전출처 : 진주 > 십리 밖 물냄새

사막을 가는 낙타는 십리 밖 물 냄새를 맡는다. 이것은 작년 폐암으로 이 세상을 하직한 한 병리학자의 말이다. 그는 나의 스승이었다. 아름다운 말이다.

처음 이 말을 들었을 때 나는 엉뚱한 생각을 하고 말았다. 나는 아라비아인의 인식에 대해 생각했다. 그들은 낙타를 구별하는 데 수십 가지의 언어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우리들의 세계는 우리들이 사용하는 언어에 의하여 구정되는 것일까. 그러나 존재와 언어 사이에는 아무래도 틈이 있는 것 같다. 언어는 그만치 불완전한 것이다. 그 틈을 우리는 시로 메우는 것이다.

사람에게 飛翔의 충동이 있기 때문에 비로소 새가 존재하는 것이다. 바슐라르의 황홀한 말이다. 나는 바다와 강이 맞닿는 낙동강 하구에서 바라보았던 어느 겨울날의 한 풍경을 생각한다. 그날 새는 풍경의 일부에 지나지 않았다. 아득히 먼 낙탓빛 바람에 흩날리면서 새는 눈부신 한 점에 불과했다.

시인이 맡는 십리 밖 물 냄새의 정체는 무엇일까.

1983.허만하 <낙타는 십리 밖 물 냄새를 맡는다 15,16쪽>



---------------------------------

오랫동안 갖고 싶었던 책이다. 내 책을 꽂을 공간을 갖는 것이 가장 사치스러운 소원이 되어버린 처지에 소장하는 책은 몇 번을 고심해서 고를 수 밖에 없다. 적어도 도서관에서 두어번은 빌린 적이 있는, 너무너무 갖고 싶은 열망에 잠을 설칠만한 책일 경우에 해당된다. 이 책은 바로 그런 책, 벼르고 벼르다가 산-도서관에서 몇 번은 빌려서 본 책이다.
나는  읽으며 시인이 맡는 십리 밖 물냄새의 정체가 내 속에 조금이라 잠재되어 있는지 확인 작업을 하는 모양이다.

/2004. 9. 20. 찬미/


댓글(5)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잉크냄새 2004-09-20 12: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올 가을 십리밖 물냄새의 정체를 찾아 코를 킁킁거리며 시를 읽어보리라.

진주 2004-09-20 22: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허만하님의 시집<비는 수직으로 서서 죽는다>를 추천합니다....

미네르바 2004-09-21 19: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올 봄 내내 <비는 수직으로 서서 죽는다> 이 시집을 안고 살았어요. 오래 오래 천천히 읽고 또 읽고 했지요. 참 이상하지요? 오늘은 오후에 수첩에 뭔가 적을 것이 있어서 꺼내다가 바로 '낙타는 십리 밖에서도'라는 시의 한 구절을 옮겨 놓은 것을 보게 되었어요. 그리고 다시 천천히 읽었지요.

............................
낙타는 십리 밖에서도
물냄새를 맡는다
맑은 영혼은 기어서라도 길 끝에 이르고
그 길 끝에서
다시 스스로의 길을 만든다
지도의 한 부분으로 사라진다.

이 곳에서 오늘 읽은 시의 한 부분을 읽게 되니 참 반갑네요.

잉크냄새 2004-09-21 22: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맑은 영혼은 기어서라도 길 끝에 이르고 ]
오랫동안 잊혀지지 않을 구절이네요.

진주 2004-09-24 16: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등단하고 30년만에 첫 시집을 낸 작가라 마디 맺힌 대나무 같은 시였어요.
미네르바님, 언젠가 잉크님이 제 서재에 와서 님의 이름을 말 한 것 같은데,
누군가가 나와 같은 책을 같은 시간에 읽고 있었다니
이런 걸 두고 인연..이라고 하나봐요.
 
 전출처 : stella.K > 가을 풍경


 

 

 

 

 

 

 

 

 

 

 

 


 

 

 

 

 

 

 

 

 

 

 

 


 

 

 

 

 

 

 

 

 

 

 

 


 

 

 

 

 

 

 

 

 

 

 

 


 

 

 

 

 

 

 

 

 

 

 

 


 

 

 

 

 

 

 

 

 

 

 


 

 

 

 

 

 

 

 

 

 

 

 


 

 

 

 

 

 

 

 

 

 

 


 

 

 

 

 

 

 

 

 

 

 


 

 

 

 

 

 

 

 

 

 

 

 


 

 

 

 

 

 

 

 

 

 

 

 


 

 

 

 

 

 

 

 

 

 

 

 



댓글(5)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잉크냄새 2004-09-11 11: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단풍, 코스모스, 낙엽... 가을아! 이리도 가까이 다가와 있구나!

stella.K 2004-09-11 12: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사진 유난히 예쁜 것 같아요. 저 사진이 잉크님 가슴에 불을 질러놓은 것만 같다는...흐흐.

水巖 2004-09-11 13: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직은 이라고 생각했는데 코스모스, 낙엽, 새빨간 단풍 가슴이 아려지는것 같군요.

잉크냄새 2004-09-13 00: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얼마 지나지 않으면 그림처럼 가을의 절정으로 다가설 겁니다.^^

정미숙 2014-10-14 11: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감사합니다. 멋진 사진자료 갑져갑니다.